# 154
55장 - 상담사와 게임 (3)
인터넷을 ‘어그로 끌어서 미안하다’로 뒤덮었던 기자가 나타난 TV프로 제작발표회는, 자연히 화제의 중심에 섰다.
기자회견 영상의 조회수가 빠르게 50만을 달성했다.
그리고 자막이 붙은 스크린샷이 여기저기에 퍼져나갔다.
유하늘과 나의 문답에 관한 논쟁 속에서.
아직 촬영도 시작하기 전에 고소부터 언급한 패기.
그 강경한 태도에 즐거워한 이들도 있었지만, 역으로 뭐가 그리 잘나서 시청자들을 범죄자 취급하느냐며 불만을 보인 이들도 적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터넷에서 ‘짤’은 이미 대중적인 문화니까.
자신들에게 자연스러운 행위를 무조건 고소하겠다는 선포는, 옳고 그름을 떠나 아무래도 고깝게 들릴 터였다.
그로써 곳곳에서 ‘키배’가 벌어지기 시작한 상황.
유종찬은 날 볼 때마다 표정이 복잡해지곤 했다.
괜히 시청자들에게 반감을 심어준 출연자가 밉기도 하겠지.
그렇지만 노이즈마케팅이라는 측면에서는 ‘나사없’을 동시기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 흥미로운 아이템으로 만든 것이 사실인지라, 마땅히 뭐라 핀잔을 주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를 제외한 지인들은 염려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가족들과 학우들의 표정이 나보다 더 무거워졌다.
일요일에 다시 만난 조미소 역시 그랬다.
“아저씨, 잘못하면 욕 오지게 먹겠던데?”
불퉁스러운 말투지만,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웃으며 고개를 저어줬다.
“곧 다들 이해해줄 거야.”
“에이. 괜히 아저씨 이미지만 깎아먹는 거 아냐?”
그럴 수도 있다.
막상 모습을 드러낸 프로그램 속에서 내담자가 무엇 하나라도 보기 좋지 않은 태도를 보인다면, 그가 우리의 상담에도 자신의 문제행동을 바꾸지 못한다면.
그때는 반감이 적개심으로 발전할 수 있다.
고쳐주지도 못할 거면서 똥폼 잡는 프로그램 제작진이 고소미 먹어야 되는 거 아니냐면서.
내 팬덤이 상당하다고는 하지만 아직 2개월차.
빠르게 달아오른 냄비는 식기도 잘 식는 법이다.
어쩌면 이번 수가 패착이 될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다시 고개를 저었다.
실패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분명한 건, 첫 방송이 나오는 순간 모든 반감이 무너질 거란 사실이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다.”
“뭐래. 꼰마 그는 신인가?”
“하하. 우리 소미, 만화 드립도 아는구나?”
“만화 드립이야? 몰라. 그냥 수호가 쓰길래. 아.”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조미소는, 정수호의 동생인 정수영이 깨어난 것을 확인하고 그쪽으로 다가앉았다.
“수영이, 깼어? 낮잠 잘 잤어?”
“웅…… 잘 잤어. 언니, 모 해써?”
“여기 아저씨랑 수다 떨고 있었지. 시끄러웠어?”
“아니이. 아조씨, 안뇽하세요?”
“응, 수영아. 안녕하세요?”
“히히. 언니이, 나 까자 먹을래. 까자 있어?”
“과자, 언니가 마법으로 만들어주지? 아수라발발타…….”
옆에서 보면 치맛자락에 숨겨둔 과자가 빤히 보이지만.
손짓 발짓을 해가며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조미소를 보며, 그 미소에서 죽은 딸을 그리는 마음을 인지하며.
나는 말 없이 F-19를 생각했다.
분명 쉽지 않은 케이스다.
연륜의 한효준조차 한 달 안에는 성과를 보여주기 힘들 것이라고 단언했는데, 나사없의 첫방 시기는 6월 24일.
12일의 촬영 뒤 고작 12일 뒤에 방송이 나가게 된다.
편집까지 생각하면 후일담 촬영조차 21일쯤이 될 터.
상식적으로 호전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NBSC의 상담사.
할 수 있다.
해야만 한다.
그 정도 문제 가정도 도와줄 수 없는 능력이라면, 조미소에게 엄마를 돌려주는 일은 불가능할 테니까.
가족에게 성폭행을 당한 아이다.
그 문제를 토로했지만, 모친은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조미소가 가족을 버리고 홀로 살아가게 된 이유였다.
그 뒤로 아빠 모를 아이를 갖고, 낳고, 잃은 뒤.
조미소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나를 불렀다.
그렇게 종위보육원에 이르러 간신히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
그녀처럼 오갈 데 없는 정수영이라는 아이와 함께.
그렇지만 화인처럼 새겨진 트라우마가 지워지랴.
짐승 같은 부친이야 마음에서 지운다 쳐도, 끝끝내 문제를 외면했던 모친에게 받은 배신감은 지금도 날카로울 것이다.
나는 언젠가 그 가족에게 직면을 시도해야 한다.
모친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미소를 위해.
그러니 해내야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모든 가정을 끌어안아, 그들의 마음에 싱그러움을 안겨줘야지.
“헤헤…… 마시쏘.”
“오야, 우리 수영이. 많이많이 먹어. 언니가 몸 팔…… 아니, 이 아저씨 꼬셔서라도 많이 사줄 테니까.”
“미소야. 교육에도 좋지 않고 내 아내도 싫어할 만한 가정은 하지 말아주겠니?”
“헹. 애가 뭘 아나?”
“보고 들은 것을 누구보다 빨리 흡수하는 것이 아이들이야. 애한테 애를 맡긴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주의해주렴.”
“치. 너무해. 뽀뽀할 땐 안 피했으면서.”
“어흠. 흠.”
“장난이야, 표정 좀 풀어. 사람이 유머러스하게 살아야지, 안 그래? 솔직히 말해서, 진짜 꼬시려고 했으면 내가 벌써 백 번도 더 꼬셨다. 잉꼬부부라서 봐준 거야.”
진심 없는 투정이 하릴없이 귀여워 보였다.
그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심코 질문했다.
“미소야. 넌 게임 해본 적 있니?”
“게임? 나 오락실 게임만. 가끔 애프터 불러서 그런 데 데려가는 아저씨들 있거든. 왜?”
“……미안하다.”
“왜? 아 왜? 이건 나쁜 얘기 아니잖아?”
“아무튼, 게임이란 행위에 중독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보편적으로 건전하다고 생각되는 활동은 잘 하지 않고, 언제나 게임 생각으로만 가득한 거야. 그래서 학교고 가족이고 관심 두지 않고 늘 게임만 하고 있어. 그런 사람에게 너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니?”
“어떤 얘기? 게임 하지 말라는 얘기?”
“그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겠어?”
조미소는 이름처럼 웃었다.
그리고 나처럼 고개를 저었다.
“아아니. 난 그냥 같이 게임 해줄래. 게임 안에서라도 친구 해주면 되잖아.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래도 평생 게임만 할 순 없잖니?”
“평생 게임만 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어? 몰라. 난 게임중독은 모르는데, 드라마중독인 언니들은 많이 알거든? 근데 걔네한테 드라마 보지 말고 자기계발을 해라 자격증을 따라 말해봤자 절대로 안 들어. 그냥 같이 봐주면 돼. 그래서 드라마 얘기나 하고 그러다가…… 나중에 친해지면, 자기가 먼저 너 취미는 뭐야 물어보더라. 뭐든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된 거지. 그게 먼저 아냐? 친하지도 않은데 남의 취미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면, 중독이든 아니든 듣기 싫지 않나?”
풋내 나는 목소리.
그렇기에, 가장 싱그러운 이야기였다.
조미소와 헤어져 초등부 교실에서 한효준을 만났다.
정수영의 오빠인 정수호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던 내 스승은, 그를 돌려보낸 뒤 내 어깨를 짚었다.
“참 어른스러운 녀석이야.”
“그렇습니까?”
“그래. 말로는 동생 귀찮았는데 새로 온 누나가 도와줘서 편해졌다고 떠벌리지만, 속이 빤해. 천애고아가 된 동생을 지킬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렇군요. 멋진 오빠네요.”
“허나, 그 순수한 마음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라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네. 지나친 부담감이 인격의 성숙을 저해할지도 몰라. 아니면 그 의무감이 범죄를 충동할 수도 있고.”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뭐? 어찌 그리 확신하나?”
“교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부정적인 추동마저 극복하고 훌륭한 오빠가 돼주겠지요.”
“허…… 그야…… 흥. 아주 내 코를 꿰려고 드는군.”
말과는 달리 빙글빙글 웃는 낯이다.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즐거워한 한효준은, 내가 전해준 말을 듣고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그 고양이가 의외로 생각이 깊군? 그래, 그렇지. 게임중독 아니냐며 의심하는 주체는 결국 가족이야. 가족들이 보기에 자기들보다 게임에 관심을 집중하니, 그것이 문제행동이라고 여기는 것이지. 문제는 게임이 아니야. 게임이 됐건 드라마가 됐건, 중독처럼 보이는 것은 비교우위일 뿐일세.”
“그렇지요. 전통적인 가족관념 속에서야 가족들 말을 무시하고 모니터만 보고 있으면 이상행동처럼 보이겠지만…… 조금 바꿔 말하자면, 기숙사 룸메이트의 말을 무시하고 음악에 집중하는 아이를 음악중독이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거, 비유 좋구만. 룸메이트가 오죽 못살게 굴었으면 대화에도 응하지 않을까. 그 기숙사가 얼마나 남의 세상이면, 귀를 닫고 음악에만 집중해야 했을까. F-19 케이스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게야. 좁은 집과 둘이 함께 쓰는 방. 모든 면에서 비교되는 형. 그리고 맞벌이라서 아이들을 단편적으로밖에 봐줄 수 없는 부모. 환경 자체가 차남에게 긍정적일 수 없는 형태야. 그 상황에서 그나마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지. 그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을 겁박하거나 도둑질을 벌였다면, 우리가 아닌 경찰과 마주했을 테니.”
“그럴 수도 있었겠습니까?”
“물론이야. 비슷한 환경에서 정말 큰 문제를 벌인 아이들을 수도 없이 봐왔네. 환경만 개선되면 그 모든 부적응이 완화됐지. 극단적으로 마약을 이야기해볼까? 호기심에 마약을 건드려본 이들조차, 보편적인 인간의 행복 속에서는 중독적인 충동에서 벗어나곤 하네. F-19 케이스의 차남에게 게임세상이 그야말로 마약 같다고 해도, 근원은 게임이 아냐.”
게임이 현대인들에게 치명적인 매력을 갖는 것은, 그것이 선택과 결과라는 매혹적인 구조를 품고 있는 탓.
그 안에서는 노력이 분명한 보상으로 돌아온다.
유저의 접속률이 중요한 회사 입장에서도 가장 극명하게 동기를 유발하고 만족감을 줄 만한 요소들을 배치하게 마련.
그런 측면에서는 정신적인 마약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그 마약조차도, 행복한 사람에게는 무의미하다.
정수영을 보살피며 밝게 웃는 미소에게 엑스터시가 매력적으로 느껴질 리 없는 것처럼.
환경이 최소한의 즐거움을 마련해준다면, 그때에 게임은 문화의 일부분으로 기능할 따름이다.
“이용덕 교수는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의심했고, 조명기 교수도 정형행동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관련 케이스를 연구하며 섭식장애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섭식장애. 조명기가 안겨준 케이스 중에도 있었지? 어떤 면에서 유사점을 느꼈는가?”
“자기통제감입니다. 섭식장애는 대체로 외부의 통제에 의해 자신이 휘둘리고 있다는 부정적 감정에서 비롯됩니다. 그런 자기통제감의 상실을, 자기 몸을 학대함으로써 보상받습니다. 게임 역시 비슷하게 기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오직 강요만을 당하는 처지라면, 가정 내에서 인간적인 교류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환경이라면, 게임은 손쉬운 도피처가 되지요. 이때 게임중독이란 질병이 아닌 증상입니다. 터무니없이 정상적인 방어기제입니다. 그것을 병으로 규정하면 무엇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섭식장애가 그러하듯, 문제의 근원을 보아야만 회복이 이뤄질 것입니다.”
“옳지. 잘 접근했네. 그렇게 가야지. 아이가 게임이 아니어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게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줘야만 해. 너무도 당연한 그 여건이 형성되지 않는 케이스가 많단 말이야. 게임에 대한 의존성도 모친을 향한 폭력도, 본질적인 접근 없이는 해소되지 않을 게야. 그러나…… 문제는 회기일세. 단 하루의 촬영이야. 고작 12시간이지. 그 안에, 한 가정을 휘감은 왜곡을 모두 걷어낼 수 있겠나?”
촬영을 마쳤다고 해서 이후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것이나, 방송에는 오직 하루의 이야기만이 들어갈 것이다.
어떤 위대한 상담사도 자신하지 못할 단회기 상담.
그렇지만,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해보겠습니다. 가족보다 게임을 우선할 정도로 고립되어 있는 차남에게, 그리고 그 아이에게 보편적인 행복을 안겨주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겠습니다.”
“새로운 세상이라.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예. 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허허. 그래…… 그렇다면 기대하고 있지.”
주차장으로 나오는 길에, 나는 종위보육원의 모든 것을 눈에 담고자 애썼다.
부모를 잃고 서로만을 의지하게 된 정수호와 정수영.
그 아이들을 보살피며 잃어버린 딸을 그리는 조미소.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이수아.
“아저씨…… 괜찮아요?”
“하하. 너도 걱정을 해주는구나. 아저씬 괜찮아.”
“지수가…… 불안해 죽겠대요.”
“저런. 걔가 못난 아빠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은가보네.”
“넹. 근데, 괜찮을 거라고 해줬어요.”
“그렇게 말해줬어? 고맙다.”
“그냥…… 아니까. 지수 실망 안 시키실 거요.”
정확하다.
시험기간이라 잠시 학교생활에 집중하고 있는 손바울 식으로 표현하자면, 진실일 확률이 100%.
나는 내 아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이수아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세상 가장 외로운 처지면서도, 지수와 날 걱정하는 아이를.
*
차는 달동네로 접어들었다.
언덕배기 위의 복잡한 골목 끝.
그곳의 2층 주택을 에두른 계단을 올라, 옥탑방에 접어든다.
“오케이.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저희 먼저 올라가서 자리 잡겠습니다. 위에서 신호 드리면 그때 멋있게 올라와주세요.”
“예, 노력해보지요.”
유종찬이 스탭들과 함께 위로 올라간 뒤, 층계에 함께 선 막내작가 한소진이 리시버 상태를 체크하며 설명했다.
“이제부터 상황실 쪽 소리도 들어올 거예요. 가능하면 모니터 보시면서 상담 중에는 경청해주시라고 부탁드렸는데, 진행하시면서 목소리 겹쳐서 헷갈리시면 이렇게 툭 쳐주세요.”
“하하. 제가 잘 흘려듣겠습니다.”
“네…… 근데요, 선생님. 이거 진짜 괜찮을까요? 저희가 일단 다양한 케이스들 올려놓긴 했는데, 그중에서 이게 채택될 줄은 몰랐거든요. 너무…… 처음부터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 친구가 선생님한테도 주먹 휘두르거나 하면…….”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관찰카메라 보셨잖아요. 오늘도 상태 안 좋던데.”
약 한 시간, 상황실에서 교수들과 관찰카메라를 확인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촬영된 분량.
그 안에서 일촉즉발이라 할 만한 순간이 자주 발견됐다.
‘악편’이 필요치 않은 문제아인 차남 이준영은, 관찰카메라에 둘러싸인 상황 속에서 당장이라도 가족들에게 주먹을 휘두를 것처럼 곤두서 있었다.
유명인인 내가 들어가본들 가벼운 대화조차 쉽지 않겠지.
그 태도에서 네티즌의 분노가 촉발될 것이다.
고소를 염려해 초상권은 침해하지 않겠지만, 각도기를 재며 이런저런 방식으로 이준영을 악마화하리라.
관련해서 가정 내의 그릇된 역동 역시 여럿 발견됐지만……
그런 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 가정이 가진 아픔의 본질은, 세월이 쌓은 감정.
보편적으로 가족은 익숙함에 속기 쉬운 대상이다.
거기에 외부의 문제까지 겹쳐져 노이로제로 작용할 때에는, 성인군자조차도 가족구성원에게 실수를 범할 수 있다.
마음속 긍정적인 감정들은 무뎌져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눈물의 후회를 불러올, 투명 망토 속의 진실이다.
그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어떤 약물도 이론도, 감정을 남겨두고는 그저 속 빈 강정.
상담사는 마음으로 들어가야 한다.
“오케이! 올라오시면 됩니다!”
유종찬의 목소리를 멀리 들으며, 나는 이수아를 생각했다.
정수영과 정수호를, 유진호를, 신은혜를, 신규민을……
그들을 떠올리는 내 감정을 생각했다.
가족은 인간에게 대체 불가능한 가치.
그런 존재가 어떤 이들에게는 짜증만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이 어떤 행복 속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꽃이 지고 난 뒤에야 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누구세요……?]
“예, 상담사 박대민입니다.”
가정방문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한 가벼운 연기.
약속된 대로, 이준영의 모 양숙자가 문을 열었다.
그녀를 따라 걷는 길에 작은방의 문이 있었다.
이준영의 형 이준일에 의해 문이 열린 방.
이층침대와 책상 둘이 꽉 들어찬 그곳에는, 등을 돌린 이준영이 이어폰을 낀 채로 게임에 열중 중이다.
내가 들어왔음을 모를 리 없는데 열심히 모른 척하고 있다.
얼굴을 파묻으면 보이지 않으리라 믿는 유아처럼.
그런 이준영의 등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가정방문이란 침략의 다른 말.
거실에서 헛기침을 하는 부에게도, 어색하게 웃으며 맞아준 모에게도, 문고리 붙잡고 꾸벅이는 형에게도, 움찔거리면서도 모니터만 보는 동생에게도, 나는 아직 침략자일 뿐이다.
그렇지만 진짜 침략은 이제부터.
조소미를 그리는 조미소의 미소를 생각하며……
나는, 그들의 마음으로 들어갔다.
“이준영 군? 손님이 왔는데, 얼굴 좀 보여주지 그래요?”
「 [암시 구조화]를 사용합니다 > 내담자 4인
100의 ‘그리움’이 스며듭니다…… 」
1/100 스케일의 역전이.
그렇기에 그것은 최면이 아닌 구조화로 명명됐다.
아무리 애써본들 전달되는 것은 그저 편린뿐이다.
그렇지만 스케일이란 어디까지나 계산식에 지나지 않는다.
0에는 뭘 곱해도 0이지만, 무한은 100으로 나눠도 무한.
나는 무한한 그리움으로 이준영을 불렀다.
“……안녕하세요.”
게임에서 눈을 떼고 조심스레 돌아보는 ‘문제아’의 얼굴.
그렇게, 우리의 게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