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53화 (153/200)

# 153

55장 - 상담사와 게임 (2)

16레벨에 이른 NBSC의 능력으로 볼 때, 나는 분명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상담사다.

110의 ‘외모’는 상담관계를 이끌어내는 아우라.

110의 ‘관계’가 순식간에 라포를 만들면, 110의 ‘진단’이 문제의 근원을 꿰뚫고, 110의 ‘화술’이 방어기제를 헤집는다.

100의 ‘환기’나 초능력에 가까운 기술들까지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상담사는 아니다.

어떤 심리 문제든 해소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상담이라는 행위에 100%가 존재하지 않는 까닭.

수십억의 사람이 수십억의 삶을 살아가는 지구상에서, 개인이 뛰어나봤자 그 모두를 끌어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유종찬과의 게임은, 능력의 자부와는 무관했다.

할 수 있다고는 단 한 번도 믿은 적 없다.

다만,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 뿐이다.

‘나사없’에는 NBSC를 가진 내가 있다.

한효준과 이용덕과 조명기가 있다.

그런 드림팀이 해소하지 못하는 문제라면, 다른 어떤 전문가라 해도 큰 도움을 주지 못할 터였다.

우리는 가장 까다로운 사연들을 맡아야만 한다.

그렇기에 결정권자인 PD를 자극했다.

그가 혹시라도 위기의 가정들을 외면할까봐.

첫방에서는 몹시 심각한 케이스를 골랐지만, 이후로는 방송의 재미나 입소문을 의식해 가벼운 사연을 채택할까봐.

원래는 그쪽이 보다 바람직한 PD의 자세.

그렇지만 그렇게 보기 좋은 가정을 촬영하는 사이에 다른 사연자의 가정이 파국에 이른다면, 그것은 바람직할까.

돌다리를 두드리다 익사자를 만드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유종찬의 야욕이 느껴지는 메일을 보며 그것을 생각했다.

한효준조차 헤매는 마음의 미로에서 홀로 지도를 들고 있는 나라면, 위태위태한 외나무다리 위라도 달려야만 한다고.

언제까지고 겸손만 찾아서는 안 된다고.

그렇기에 감히 내담자의 예후를 두고 내기를 제안했다.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다.

‘실패하면 어떡하지’를 두려워할 시간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만을 고민하면, 성공 확률은 몇 배로 증가한다.

내게도 유종찬에게도 그것이 필요했다.

물론 곤란한 것은 그보다는 내 쪽이겠지만.

당장 두 가지 문제에서 난항이 예상되는 가정방문이었다.

첫째는, 방송이 나간 뒤의 시청자 반응.

게임에 푹 빠져 학교에서 문제행동을 일으키고 모친까지 폭행했다는 중3이다.

그 과거만으로도 네티즌의 증오를 살 법했다.

이번 촬영 때까지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아무리 편집으로 포장해준다 한들 사이버불링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그리고 둘째는……

게임중독이라는 프레임에 관한 문제였다.

“중독이요? 저희야 뭐, 중독되면 워커홀릭인 셈인데.”

전설의 게이머 ‘뉴겜’ 이혁권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게임중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크게 불쾌함을 느끼지는 않은 투였다.

“게임중독이라. 참 지겹게 들었던 얘기네요. 지금이야 과거에 비해 여자들까지 게임 많이 해서, 젊은 층에서는 다른 스포츠랑 전혀 다를 것 없는 취미생활로 인식되긴 했는데…… 들어보면 학부모 세대까지만 가도 20년 전이랑 비슷한 것 같더군요. 저희 연습생들 얘기 들어보면 그렇습니다. 아마추어 대회 나가서 우승까지 하고 들어와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잘하는 짓이라는 소리 듣기 일쑤였다고.”

“그렇군요.”

“하하. 물론 그 속도 이해는 합니다. 뉴스만 틀면 게임중독으로 사람 찔러 죽였다는 둥 정신병원을 탈주했다는 둥…… 왜곡에 과장으로 게임업계 다 죽이려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언론 상황이 좀 나아졌다 싶으니 WHO에서 난리 브루스 추기도 했죠. 제가 볼 땐 그런 인간들 다 자식한테 미움 받는 부모들이 분명합니다. 인격적으로 문제 있는 부모들이요. 애한테 사랑받지 못하는 처지를 인정하기 싫으니까, 자기 애가 좋아하는 게임 쪽으로 증오의 화살을 돌리는 거죠. 어떻습니까? 꼰마방 회장 2개월이면 풍월을 읊죠?”

부적절한 행동은 부정적인 감정이 불러온다는……

저건 내 논리다.

열혈 회장 마구니가 꼰마를 벤치마킹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단정할 수는 없는 문제.

게임과 무관한 무수한 사건들에 구태여 게임 타이틀을 붙여 진실을 왜곡한 기자들과, 4대중독증이라며 술, 도박, 마약과 게임을 동일선상에 놓으려 했던 국회의원들과, 게임 의존 증세를 ‘증상’이 아닌 ‘질병’으로 분류한 WHO의 ICD 위원들이, 전부 미움 받는 부모들만 모인 집단일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유가 어찌됐건, 그들의 독선은 피해를 키워왔다.

권위자 집단을 맹신하는 중년은 그것으로 자식을 해석한다.

아이가 적당히 시간을 조절해 게임을 플레이해도, WHO의 질병 분류 얘기를 듣고 난 뒤에는 곱게 보이지 않는다.

자연히 몇 시간째냐며 공부는 했냐며 따지게 되겠지.

그런 언행은 오히려 반발을 부른다.

부모와 신뢰관계 형성이 아주 잘 이뤄진 케이스가 아닌 바에야, 아이들은 거의 모두가 청개구리니까.

세대 차이 나는 간섭을 즐겨 들을 리 없는 것이다.

“혁권 씨는 어땠습니까?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에요.”

“전 운이 좋았죠. 잘하는 정도가 지나쳤거든요. 초등학생 때부터 랭겜에서 프로게이머들 뚜까패고 다녀서…… 학교엔 저랑 같이 PC방 가고 싶어서 게임비 내주겠다는 애들이 넘쳤어요. 젊은 선생님들까지도 제 플레이 구경하는 일이 많았고요.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알아서 하라고 놔두셨습니다.”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였군요.”

“예. 물론…… 그런데도 좀 후회되는 면이 없진 않아요. 가끔은 모니터 말고 부모님 얼굴도 좀 보고 그럴 걸…… 지금에 이르러선 그런 생각도 듭니다. 뭐 시간을 돌려도 똑같이 게임만 할 것 같긴 하지만, 다른 방식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렇군요. 좋은 부모님이시네요.”

“엇. 결론이 그렇게 갑니까?”

“그럼요. 세계 최고의 게이머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 이들이라면, 세계 최고의 부모일 수밖에 없지요.”

“하하, 세체엄빠라니. 아무튼…… 저 이제 대기실 들어가봐야 됩니다. 꼰마님, 오늘 경기 보고 가실 거죠?”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곧 제작발표회라서요.”

“아, 맞다. 그게 오늘이었구나. 아쉽네요. 경기 끝나고 선호랑 같이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는데.”

“다음 기회로 미루지요. 개막전 건승을 기원합니다.”

“그거야 뭐. 2:0으로 순식간에 끝낼 겁니다. 선호 걔가 아주 물이 올라서요. 발표회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꼰마님.”

테이크게임즈 감독과 헤어져 경기장을 한 차례 둘렀다.

롤 파크 LCK 아레나.

제작사에서 1000억을 투자해 건설한 롤 게이머들의 성지다.

나야 감독의 지인이라는 관계자 입장으로 초대됐지만, 인기 팀의 경기를 보려는 팬들은 암표 구매까지 불사한다 했었다.

아레나 바깥으로 나오니 과연 인파가 모여들고 있더라.

아직 경기 시작까지는 세 시간도 더 남은 시각.

그럼에도 일찌감치 도착해서 롤파크 내부의 이모저모를 구경하는 청소년들이 많았다.

서머시즌의 개막전인 것이 큰 역할을 한 듯했다.

“아, 존나 설레네. 드뎌 시작하네. 서머는 누가 우승할라나?”

“대황텤이지 븅아. 1경기부터 1위 달고 전승 각임.”

“행복회로 오지네? 투썬 오늘도 처발릴 건데?”

“뭐 븅아. 평가전 못 봤냐? ‘돌아왔구나 선호형’이거든?”

“MSI에선 7데스하고 3대떡으로 개발렸는데?”

“그건 시발아…… 팀이 안 받쳐줘서 그런 거지.”

“네 다음 투독?”

“아 이 새끼 개에바네? 한판 뜰까?”

“여기 피방 개비싼디?”

“응 니가 냄.”

“코와이네? 오마에가 질질 짜고 삼천 원 오네가이데스네?”

“쉬벌탱이 존나 깝치네. 따라오라고 새끼야.”

투닥거리며 PC방 라운지로 이동하는 아이들을 지켜본다.

나 때와는 언어도 행동도 많이 달라진 세대.

옛날 상식으로 보자면 눈살을 찌푸릴 법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말보다 마음이다.

내용을 평가하려 들지 않고 얼굴에 담긴 감정을 보면, 두 학생은 그저 순수하게만 보였다.

천사의 표정과 악마의 음성이었다.

그 대화가 바둑에 대한 것이었다면, 천사만 보였으리라.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 대해 논의하는 청소년들을 두고 말세라며 한탄할 어른은 많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은 21세기의 기호다.

듣는 20세기 어른들로서는 절로 불편함이 느껴질.

그러니, 게임중독을 둘러싼 갈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세대 갈등의 최첨단.

구세대의 대다수가 꺼리고 신세대의 대다수가 즐기는 문화이기에, 오해와 편견 속에서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젊은 살인자가 평소 복싱 관람을 즐겼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해 폭력성이 심화됐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기사는 없다.

그러나 FPS 게임 계정이 하나 나오면 난리가 난다.

모니터 속 총격이 직관하는 복싱보다 잔인할 리 없는데도.

모르는 것은 위험해 보이기 마련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편견 역시 커져, 기사도 정책도 비뚤어진 방향으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그 왜곡이 대중의 인식에 영향을 미쳐 갈등을 양산한다.

편향된 의견을 강요하는 행위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출산해보지 않은 이가 임신 중의 신체적 변화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황당하듯이, 최신 게임을 즐겨본 적 없는 부모의 간섭에 아이들은 반감을 키울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에 대화의 단절은 필연적이다.

그 무너진 관계 속에서 아이의 무의식은 가정이라는 공간을 불편하게 여기게 되고, 탈출구로써 또 게임을 찾게 된다…….

그것이 보편적인 게임 의존 현상의 시발점.

아이의 문제는 가정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단순한 이야기다.

가정이 최소한의 행복 수준을 이룬다면, 아이는 절대 게임에 과몰입하지 않는다.

게임이 희(喜)라면 가족도 락(樂) 정도는 될 테니까.

빗장을 걸어 잠그고 게임에만 몰두할 이유가 없다.

F-19 케이스를 그 지점에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맞벌이로 인해 얼굴도 마주하기 힘든 부모.

한 살 차이의 모범생 형과 한 방을 써야 하는 상황.

그 안에서 중3 남학생이 정서적인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를 어찌 가해자로만 볼 수 있을까.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이용덕에게 그런 생각을 토로했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라.

“충분히 합리적인 얘기예요. 이제 작년에…… 힐링센터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건데, 게임중독 관련한 진료 중 88.5%가 정신질환을…… 그러니까 gaming disorder 같은 독선적인 진단명 말고, ADHD나 우울증, 조울증 등 실재하는 질환으로 진단됐다고 합니다. ‘애가 게임에 미쳤어요’ 하면서 병원 끌고 왔더니 우울증이었다는 거지. 내용적으로는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나…… 아이를 게임중독으로 몰아가며 병원 데려온 것부터가, 가정의 문제를 암시하고 있어요. 왜일까요?”

“게임의 중독성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이 현실인데, 부모가 그것을 질환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자기 취미를 병 취급하는 부모에게 신뢰를 느낄 아이는 없지요. 이미 관계가 단절돼 있었을 것은 분명하고, 우울증 등에서도 일정한 인과관계를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요. 결국은 문제 가정이 문제아를 만들지요.”

그렇게 말하는 이용덕은……

스스로를 저주하는 표정이었다.

출세에 집착하느라 외아들의 자살 징후를 알아채지 못했던 정신과 전문의는, 메말라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탈출구가 게임이라면, 얼마나 다행입니까. 부족한 부모 밑에서 괴로워하다가 그나마 게임에서라도 행복했다면, 얼마나 다행이에요. 환경만 바뀌면 돌아올 수 있는 것을. 부모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예전의 착한 아이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을. 아직은 삼도천을 건너가지 않은 점에, 감사해야 할 것을…….”

“교수님.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어흠. 아무튼…… 이번 케이스는 신중해야 할 겁니다. 한 교수님도 한참 얘기하셨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도 말을 보태지요. 주의하세요. 이미 폭행까지 갔던 만큼 감정의 골이 무척이나 깊을 겁니다. 자세한 것은 가서 검사해봐야 알 일이지만, 일단 연년생 형과 같은 방이라는 것부터가 그래요. 한 방에서 다닥다닥 붙어 자도 괜찮았던 건 부모의 권위가 하늘같았던 80년대까지나 가능한 이야기지. 애완견들도 계속 붙어 있으면 문제행동을 보이는 판에, 한 살 차이 손윗사람의 부속품이 된 영장류가 겪을 심리는 문제로 가득할 게 뻔합니다. 장남이야 맞벌이 하는 부모를 대신해 동생을 돌보려 애썼겠지마는, 모범생 형의 간섭 역시 아이에게는…….”

생각해보면 이용덕 역시 2남 중 차남이라 했지.

연년생은 아니고 두 살 차이인가 그랬던 것 같지만, 유사한 환경 덕분인지 꽤 그럴싸한 진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맹신하진 않은 채 마음에 갈무리했다.

이후 도착한 조명기 쪽은 또 새로운 견해를 보여줬다.

“게임중독 얘기를 들으면, 난 늘 정형행동이 생각나요.”

“정형행동(stereotyped behaviour)…… 동물원이군요.”

“동물원도 있고, 목줄에 매인 개들도 있고. 우리 아버지 댁이 나주에 있는데, 그 옆집이 개를 좀 방임적으로 키웠어요. 이 방임적이라는 게 풀어둔다는 게 아니라 문간에 묶어두고 방치한다는 거지. 문짝도 없는 집이라 지날 때마다 늘 마주쳤는데, 늘 뱅글뱅글 돌고 있더라고요. 자기가 싼 배설물 먹기도 하고, 기둥 핥아서 혀에 피가 나기도 하고.”

“……그 정도면 학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 학대예요. 당연히 학대지. 내가 스물둘 때였나, 가서 담판을 지었어요. 동물심리학 이론을 보면 저 개 지금 미치기 일보직전이다……. 그랬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이러더라고요.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광견병이었구나! 하하.”

“……쉬운 해답을 찾은 거군요.”

“그래요. 우리는 늘 쉬운 해답을 찾지. 마음이 덜 아픈 해답을. 내가 아이를 잘못 키워서, 아이에게 행복한 가정을 안겨주지 못해서 애가 엇나간다고는 생각하기 싫은 거야. 당연한 일이지. 나라도 그럴 거예요. 귀인오류는 대단히 매력적인 경국지색이거든. 게임중독. 얼마나 좋아요? 나는 부모로서 아무것도 잘못한 거 없고, 내 애도 학대 같은 환경에 놓인 적이 없고, 그저 게임회사가 광견병 같은 걸 퍼뜨려서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 그래서 그쪽으로 마음이 가버려요. 사실은 가정의 문제를 암시하는 정형행동인 줄도 모르고…….”

책임의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귀인오류.

그 의견 역시 신중하게 갈무리했다.

그때쯤에 유종찬 PD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들, 박 선생님. 여기, 질문지입니다. 모범답변도 살짝 적어놨으니 괜찮으시면 미리 살펴봐주세요.”

방송에 익숙지 않은 조명기를 염려한 걸까.

의도야 어쨌건, 성실한 친구다.

잘 이끌어준다면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겠지.

그 유종찬에게도 질문을 건네봤다.

“F-19 케이스는, 제보 경로가 어떻게 됩니까?”

“아, 그거요. 원래는 다른 다큐 쪽으로 들어왔던 제보입니다. 그랬는데 내용이 너무 심각해서 반려됐던 거죠. 그걸 작가들이 찾아내서 다시 연락하고 촬영 일정 잡은 겁니다.”

“그래요. 교양국에서도 반려했던 사연이군요.”

“……그, 이제 그게 꼭 그런 뜻이라기보단……”

“그건 그렇고. 이번 제작발표회, 이슈가 된다면 좋겠지요?”

“예? 어, 예. 아무래도 본 촬영 시작하기도 전에 제작발표회부터 찍는 셈이라, 내용 면에서 알찬 게 없을까봐 걱정하고는 있었죠. 혹시 무슨 좋은 아이디어 있으십니까?”

“아이디어는 없습니다. 그저 진심으로 답할 뿐이지요. 그것이 이슈가 된다면…… 서로가 좋을 것 같긴 하군요.”

“어, 예. 그러면 좋겠는데…….”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가 이상한 소리라도 할까봐 걱정하는 모양.

그런 그에게 씩 웃어줄 때쯤, 마침내 한효준이 김지연과 함께 회견장에 들어섰다.

아침에 학교에서 만났을 때는 잔뜩 투덜거렸던 스승이지만,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어험. 이게 질문지인가?”

“아, 예 예. 교수님 오셨군요. 이 질문지 외에도 다른 질문이 추가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데, 관련해서 모범답안도 준비했으니 미리 살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 모범답안? 우리가 연기자도 아니고 그런 것을 읽을 이유가 뭔가? 그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될 일을.”

“아…… 박 선생님이랑 똑같이 말씀하시네요.”

곧바로 내 옆자리를 꿰찬 한효준은, 분명 뭔가 또 투덜대고 싶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곧바로 기자들의 입장이 시작됐다.

사담을 나누기 좋은 시간은 아니었다.

내가 첫 번째 질문자를 호명한 뒤에는 조금 달라졌지만.

“예, 그쪽. 하늘색 옷 입으신 분 먼저 질문하시죠.”

“감사합니다. 유하늘 기자입니다.”

“엇?”

“유하늘?”

“쟤가?”

“유하늘이 여기에……? 소속도 없이?”

기자들이 수군거리고, 유종찬이 얼떨떨하게 중얼거린 뒤.

내 제자가 누구도 준비하지 않은 질문을 내뱉었다.

“처음부터 부정적인 질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가정 교정 프로그램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출연자의 사생활 침해죠. 진지한 이야기를 희화화하는 데 재미를 느끼는 네티즌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한한다 해도 불법적인 유통을 막을 수 없어, 프로그램의 스크린샷을 이용한 2차창작물이 나돌게 될 것은 명약관화예요. 그때마다 출연자들이 유튜브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조리돌림 당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예방책이 있으신지요?”

“예. 유 PD, 내가 대답해도 되겠지요?”

얼이 빠진 유종찬이 눈만 끔뻑거린다.

그의 허락을 굳이 기다리지 않고, 웃으며 답변해줬다.

“좋은 질문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반인을 촬영하는 다큐멘터리나 예능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지요. 저희도 그에 대해 대비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지금 제 생각으로는, 기본적으로는 출연진의 초상권을 침해하는 2차창작에 대해서 강력하게 제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의 홍보가 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기존에는 아량을 베푼 측면이 있었는데…… 더는 그래서는 안 될 겁니다. 방송내용을 무단 전재한 게시물 작성자나 2차창작물 제작자는 어떻게든 찾아내 고소하겠습니다. 방송 내에도 관련 고지를 꾸준히 진행한다면,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유 PD님도 동의하실 것 같은데요.”

“아…… 그게, 일단은, 저…… 예. 물론 그렇죠.”

기자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다.

첫방도 나가기 전부터 고소를 언급하는 식으로 시청자들에게 반감을 주기는 싫었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음흉한 PD의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지.

유하늘의 돌발 질문과 미리 준비한 내 질문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해서는, 가능한 최선의 준비를 마쳐뒀다.

이제 남은 것은 내담자와 만나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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