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52화 (152/200)

# 152

55장 - 상담사와 게임 (1)

“……오늘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루원들 방송이 진행 중인데, 좌표는 안 남길게요. 궁금하신 분들은 ‘꼰마크루’로 검색해주세요. 그리고…… 세이 선생님?”

“네. 어흠, 큼. LP, 신뢰할 수 있는 이름.”

「ㅋㅋㅋㅋㅋㅋㅋㅋㅋ세이 엘피!」

「엘피 요즘 떡상했던디ㅎㅎ」

「오늘도 잼썼어여~~」

「꼰마님 사랑해여 가지마여ㅠㅠㅠㅠㅠㅠㅠ」

“내일도 일곱 시에 뵙겠습니다.”

늘 하던 방식대로 방송을 마무리한다.

대수가 오늘도 최고였다며 떠들고 손바울이 당연한 일에 호들갑 떨지 말라고 비웃는 가운데, 화장실에서 나온 유하늘만이 축 처져 있었다.

“으…… 선생님, 저, 나레이션 잘 못했죠?”

“아냐. 네 덕분에 오늘도 참 반응이 좋았다.”

“근데, 저, 타이밍 못 맞춰서 목소리 물리고, 눈치 없어서 헷갈리고, 화장실이라서 소리 울리고 그랬는데요?”

“그게 더 흥미진진했대. 평소에 진행하는 슈아는 완전히 프로 나레이터니까. 오랜만에 어리바리한 나레이션 듣는 게 무척이나 유쾌했다고 하더라. 그렇지, 대수야?”

“바로 그렇슴다. 하늘 후배? 걱정 노노. 유 굿. 투 굿.”

“흐아…… 그래도 다신 안 할래요. 방송은 진짜 어려워요. 선생님은, 너무 대단하신 거 같아요.”

둘째 제자의 찬사에 손바울이 눈살을 찌푸린다.

아마도 ‘그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니, 멍청함이 극에 달했네요’ 따위의 비난을 하려 했으려나.

다만 내 핸드폰의 진동이 그 대꾸를 막았다.

유종찬 PD의 전화였다.

[선생님? 방송 끝나는 거 기다렸다 연락드립니다. 혹시 폐가 된 건 아니죠?]

“괜찮습니다. 프로그램 때문에 전화 주신 거지요?”

[예. 첫 사연을 선정했습니다. 관련해서 메일 보내드렸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오늘 중에 확인해주실 수 있을까요?]

23시 5분에 하는 부탁으로는 적절치 않은데.

저쪽 역시 마음이 급한 까닭일 터였다.

첫 촬영이라 그런 건지 사연을 고르고 또 고르느라, 촬영일이 예정보다 많이 밀려버렸으니.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귀가해서 확인하지요.”

[예, 감사합니다. 회사에서 회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늘밤에 정리해서 작가들이랑 플로우차트 짜야 해서……. 아, 그렇지. 프로그램 타이틀도 윤곽이 결정됐습니다.]

“그렇습니까? 말씀해주시지요.”

[<나쁜 사람은 없다>로요.]

……당황스럽다.

최초에 내가 제안했던 문구지만, ‘나쁜 사람은 없다’라고 하면 아무래도 타사의 모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될 터.

축약어인 ‘나사없’이 입에 잘 붙지도 않는다.

구태여 그 가제를 채택한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혹시 제 아이디어라는 점에서 강제성을 느끼셨다면, 그러실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정교정 프로젝트니 보다 주제에 맞는 타이틀이 있겠지요. 이를테면 ‘나가없’이라거나.”

[그렇긴 한데…… 선생님, 제 계획은 이렇습니다. 나가없. 나학없. 나회없.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이 뜻을 캐치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황당해졌다.

“가정, 학교, 회사. PD님. 대체 무슨 큰그림을 그리시는 겁니까? 당장 첫 시즌만 해도 성공이 불명확한 상황인데요.”

[불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럽니다. 처음에는 저도 징검다리 정도의 기획이라고 생각했어요. 교정 프로그램이란 게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 어떤 재미요소를 넣어도 커다란 흥행은 어려울 거라고요. 하지만 선생님은…… 그렇게만 볼 수 없는 분이 되셨습니다.]

“제가요?”

[예. 지난번 뉴스부터 해서, 트립크루와 퀸즈랜드 시청자 반응까지 지속적으로 살펴본 뒤에 내린 결론입니다. 단순히 의외의 화제성만이 아니에요. 선생님의 상담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마성…… 백 주부나 강 훈련사가 가진 아우라. 그런 게 없다면, 시청자게시판과 SNS에 꼰마님 또 언제 나오냐는 말이 넘쳐나는 상황을 해석할 수 없죠.]

“음…… 그저 제 팬들이 극성스런 것 아닐까요?”

[하하. 그 극성스러움도 방송인의 자질입니다. 몇 화 나가지도 않아서 학교나 회사에도 와달라는 사연이 쏟아질 겁니다. 그때 돼서 ‘가정’에 한정된 타이틀 때문에 확장을 못 하면 곤란하겠죠. 그래서 ‘나쁜 사람은 없다’입니다.]

“유사한 타이틀이 있다는 점은요?”

[괜찮습니다. 그것도 이쪽에선 흔한 일이라서요. 예를 들면 SBS <우아달>이 유명해진 뒤에 EBS에서 성인 버전으로 <달라졌어요>를 제작하기도 했죠. 문제없어요.]

이 정도로 말하는 걸 보면 이미 내정된 거겠지.

더 따져봐야 무의미할 듯했다.

당장 타이틀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있기도 하고.

그렇게 곧바로 귀가해 메일을 확인했던 것인데……

그 내용이, 내 예상과는 차원이 달랐다.

「 보낸 이 : 유종찬

제목 : 나쁜 사람은 없다 F-19 (#1)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유종찬입니다.

저희가 최종적으로 선정한 첫 사연을 정리합니다.

가족형태 : 부49세 모45세 장남16세 차남15세

가택형태 : 중랑구 옥탑방 방 두 칸 (옥상 평상 등)

고민사연 : 중3 차남의 담임교사가 부의 허락을 얻어 제보. 게임중독인 차남이 학교 컴퓨터실에 숨어들어 밤을 새는 등의 문제로 상담 받았으나 긍정적인 변화 없음. 관련해서 가정에서는 두 아들의 심한 다툼이 동네 주민들 사이의 걱정거리라고 함. 고1 장남은 모범생으로 차남을 계도하려 애쓰지만 거듭 실패. 운수업을 하는 부와 식당일을 하는 모는 가택에 거하는 시간이 길지 않음. 모는 차남의 게임을 말리려다 폭행당해 갈비뼈가 부러진 일이 있고, 이후 대화 단절 상태.

촬영일정 : 6월 12일 10~24시.

로케이션 : 옥탑방(메인) 동네(도입) 학교(후일담)

선생님께서 게임을 즐기시는 분이니, 이런 사연이라면 인상적인 첫방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채택하게 됐습니다.

살펴보시고 답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렇게 나온다는 거로군.

도저히 예능으로 커버할 수 없는 ‘문제아’다.

그런 것을 들이밀며 <나쁜 사람은 없다>를 강변한 유종찬은, 정말 의뭉스러운 인물이었다.

기본적으로는 타이틀로 어그로를 끄는 전략이리라.

나쁜 사람은 없다면서 대놓고 나쁜 녀석을 등장시킨다면, SNS나 입소문으로 바이럴마케팅이 활성화되기 좋다.

이때는 타이틀과 내용이 괴리될수록 이득.

‘<나쁜 사람은 없다>에 나온 걔 진짜 나쁘던데?’ 하는 식의 표면적 모순이 소통에 해학을 얹어줄 것이다.

그에 더해, 1화에서 강한 인상을 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막장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내듯, 임팩트 있는 사연은 그 자체로 시청자를 묶어두는 요인.

게임에 중독돼 모친까지 때리는 패륜아라면 채널을 돌리던 시청자들을 붙잡을 만한 유인책이 되리라.

그래서 거기까지는 다 이해가 되지만……

참 못된 PD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없었다.

그는 ‘나쁜 사람은 없다’라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게 가제를 고스란히 채택한 이유에 대해 해명하면서도, 그것이 올바른 가치판단이라 여긴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직 필요에 맞춰 골랐을 뿐이기에.

애초에 사람이 선하다 믿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리고 그는, 그 자신 역시 나쁘다고 믿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신이 택한 사연의 끝을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테니.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나 <달라졌어요>나, 구성원의 문제는 대체로 가정 내의 어긋남에 기인함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시청자에게 본질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

드러난 문제행동을 욕하는 것이 훨씬 더 쉽기에.

그중에서도 특히 세 가지 카테고리의 케이스에서, 출연자에 대한 악마화가 자주 발생하곤 했다.

패륜. 탈선. 그리고 게임.

각각의 추동은 서로 다르다.

존속폭행이나 아동학대 등 패륜을 증오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자기에게도 내재된 갈등을 부인하려는 욕구.

탈선의 경우에는 사회가 재생산하는 오지랖 문화 때문.

게임은, 주로 언론에 의해 세뇌된 중독 프레임이 문제였을 것이다.

그런 편향된 시각들이 편향된 행동에 불을 붙였다.

시청자게시판에 저주가 쏟아지는 것은 일상다반사.

때때로 출연자의 신상이 털리는 경우도 발생했다.

실제로 피해를 입힌 사례는 극히 드물지만, 게임 계정이 노출된 경우엔 ‘넷 여포’들이 출동해 접게 만들기도 했다고.

또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인 법.

인터넷이란 적토 위의 여포들은, 악마화된 인물이 등장한 영상에서 스크린샷을 뽑아내 희화화하길 즐기기까지 했다.

인권은 표현의 자유 앞에서 한갓 무가치가 됐다.

그들은 스스로를 정의의 사도라고 믿을 수도 있다.

나무위키 등에 ‘이러이러한 잘못을 한 건 사실이니 출연자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따위의 서술이 자주 등장하듯이.

그렇게 쉽게 결론짓는 이들인 것이다.

신보다도 경쾌하게 판결을 언도하는.

옳고 그름은 잘 모를 일이다.

나는 신이 아니기에, 어느 쪽도 비난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것이다.

그들의 정의는 단 하나의 슬픔도 해결하지 못한다.

프로그램에만 제공한 사생활과 초상권이 인터넷 곳곳에서 돌아다닐 때, 출연자는 어떤 감정을 느낄까.

‘아 내가 잘못한 탓이구나’ 생각하며 반성할까.

‘비판을 피할 수 없다’라고 단언하는 이들은 그걸 바라겠지만, 막상 그들도 당해보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바람으로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수 없는 법이니.

피해를 입었다고 느낀 출연자들은, 우선 PD를 저주한다.

악마의 편집이 아니더라도 편집 자체가 맥락을 지우기에.

연출자의 무성의한 연출이 자신을 악마로 왜곡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주 틀린 발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촬영을 마친 PD와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기에, 분노는 자연히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로 향한다.

넷 여포들이 도우려 했던 TV 속의 가족들.

그들의 고통은, 적토마의 오지랖으로 인해 가중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좀 더 본질적으로……

어쩌면 호전됐을지도 모를 출연자의 미래가, 죽는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부터 누군가 자기 얼굴을 알아보고 욕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릴 테니까.

우울증은 당연하고 공황장애나 조현병이 수반될 수 있다.

악플 피해자들이 보통 그렇듯이, 자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인터넷의 향유자들은 훌륭한 심판자다.

흉기는 키보드, 동기는 정의감.

방식은 처벌받지 않는 완전범죄- 암수살인이다.

그렇게 위험천만한 소재가 패륜과 탈선과 게임일진대……

F-19 케이스는, 그 모두를 갖추고 있었다.

신태훈 CP의 말에 따르면 유종찬은 자료조사에 능한 타입.

처음 맡은 교정 프로그램을 허투루 준비했을 리 없다.

이 케이스의 차남이 ‘패륜중딩’으로 낙인찍혀 공격당할 것쯤은 분명 짐작하고 있겠지.

그럼에도 정의로운 악의의 종합선물세트를 채택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신태훈 CP에게 악편을 싫어한다고 밝힌 까닭.

다른 프로그램에서 하듯 억지로 패륜을 강요하거나 유도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렇기에 진짜 패륜아를 기다렸으리라.

F-19라는 숫자가 쌓일 때까지.

정말이지 못된 PD다.

가볍게 말하면 영악하고, 조금만 보태면 사악한 자였다.

그리고 그렇기에 나는……

[예, 선생님.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종찬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과거라면 몰랐겠지만, 지금은 듣는 즉시 느껴질 정도로.

질책을 들을 일을 했다고는 생각하는 모양이지.

그런 유종찬에게, 마음을 담아 인사했다.

“PD님. 고맙습니다.”

[……예? 고……맙다고요?]

“예. 이렇게 몇 달도 지나지 않아 파탄에 이를 것 같은 가정의 사연을 선정해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그게…… 왜 선생님께서 고마워하실 일이죠?]

“아닌가요?”

[아니, 아니죠. 저야 그냥 제 일 하는 거고…… 작가들도 마찬가지고요. 고마워하실 일은 아니죠. 그게 아니라 오히려…… 걱정하셔야 하는 상황 아닌가요? 이게, 겨우 한나절 촬영해서 호전시키기 어려운 상태라고들 하시던데요. 교수님들과도 방금 통화를 했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무거운 케이스를 가져왔다고, 그런 식으로 생각들을…… 물론 그렇게까지 무거운 케이스는 아니지만, 이제 오해를 하셨을…… 것 같았는데요.]

유종찬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자기 나름대로 질책에 대한 방어논리를 되새기고 있던 가운데, 뜬금없이 고맙다는 소리를 들은 까닭.

그렇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해고 뭐고, 그게 사실인 건 분명하지요. 무거운 케이스예요. 이런 걸 방송 소재로 쓴다는 것부터가 별로긴 합니다.”

[아니, 그게 좀 오해가 있습니다. 제가 이제 서술을-]

“됐고.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부탁드립니다.”

[……예?]

“최악의 상황에 이른 가정들을 우선해서 찾고, 최선을 다해서 그 가정을 설득해줘요. 나라면 할 수 있으니까.”

[아…… 예. 저…… 의외네요. 늘 겸손하셔서, 이번에도 염려부터 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혼돈 속의 감사인사를 들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또 신에게 감사했다.

저토록 영악한 자가 내게 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는 이제 다른 이들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을 수 있다.

신태훈 CP에 의해 내게 귀속됐으니, 더는 사악한 슬픔을 만들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그가 그러기 전에, 내가 슬픔을 지울 테니까.

“PD님. 아니, 유 PD. 내가 지금 오만해 보이나요?”

[예? 아, 아닙니다. 전 그럴 능력 있으신 분이라고 믿죠.]

“그런 뜻으로 묻는 게 아닙니다. 나는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나라면 할 수 있다는 말은 능력의 자부가 아닙니다. 의도의 당위예요. 나는,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어야 하기에. 실패한다면 죽을 각오로 임하고 있는 겁니다.”

[아, 아, 예. 그렇……군요.]

“그러니 이번엔 내가 하나 제안하죠. 게임 좋아합니까?”

[예? 그…… 게임……은 잘 모릅니다.]

“게임을 시작하지요. 유 PD. 나는 당신이 가져온 케이스를 전부 해결하겠습니다. 누가 봐도 토 하나 달지 못할 만큼 완벽하게, 그들을 구하겠습니다. 동의합니까?”

[저…… 예. 저는,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죠.]

“그 반대급부는 이겁니다. 내가 열 건의 고민을 해소하면, 그때는 믿어주세요.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진실을.”

[나쁜 사람은 없다는…… 음…….]

유종찬은 대답하지 못했다.

터무니없는 조건이라고 생각했을지, 이 중년이 뭔 중2병 같은 소릴 하냐며 투덜댔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건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내 게임은, 목숨을 건 챌린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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