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54장 - 거시적인 미시세계
[아마 더 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아일보 사회부 심중훈 기자는 그렇게 운을 떼었다.
[5분쯤 지나서 곧바로 삭제되긴 했지만, 너무 늦었죠. 기사 게재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순식간에 퍼졌으니까요. 곧 항상인포 유하늘 기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될 겁니다. 언론 내부에서 현대 언론의 폐해를 직접적으로 비난한 목소리가 고스란히 기사화된 일인데다, 그것도 내용이 참……. 가볍게 낄낄거리고 넘어갔던 ‘부장님 랩탑 연습 기사’ 때하고는 격이 다릅니다. 일주일 정도는 이 사건 하나로 떠들썩할 듯해요.]
나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기사화된 밈이라는 것은 이례적인 만큼 화제성이 넘친다.
6월 현재에 이르러서는 유행이 꽤 지난 억지 밈이었지만, 패션이 그렇듯 인터넷 트렌드 역시 TPO(Time Place Occasion)가 중요하게 작용하기에.
그러니, 전화를 건 목적은 그걸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 시점에 베테랑 기자에게 물어봐야 할 문제는 다른 것.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그 화제를 입에 담았다.
“화제성은 그렇겠습니다만…… 내용 면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들에겐 꽤 불쾌한 방향이었을 텐데요.”
[아, 내용이요. 음…… 말씀하신 대로긴 합니다. 흡연구역에서 대놓고 욕하는 친구들도 있고 그래요. 만약 이게 정치적인 이슈였다면, 그 기사의 프레임을 깨뜨리기 위해서 반박 기사가 냈을 수도 있겠네요. 이번 케이스는 관념적이라서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 듯하지만요.]
“심 기자님께서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하하. 전 좋았습니다. 꼭 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양심 있는 기자들은 거의 그래요. 애초에 유 기자가 거론한 이야기가 새삼스러울 것 없는 현실이었으니까요. 지성이 있는 기자들은 오히려 통쾌함까지 느꼈을 겁니다.]
유하늘의 기사는, 모든 언론에 대한 공격이었다.
집단을 악마화해 자성을 강요하는 직면.
그렇기에 본질적으로는 공감을 끌어내지 못해야 마땅했다.
‘너희는 잘못됐다’라는 말을 들으면, 자기가 잘못됐다고 인지하고 있던 이들조차도 본능적으로 짜증을 내기 마련이니.
다만 방식 면에서 적절한 유머가 섞였다.
유하늘 입장에서야 이슈화를 위한 선택한 밈이겠지만, 표현방식의 해학은 청자와의 관계에서도 유의미한 일.
‘넌 이클립스 메타데이터 같아’ 같은 참신한 방식으로 욕을 먹으면 오히려 웃음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무엇보다 그 비난의 타깃에 화자도 포함됐다.
자기방어 없이 토해낸 내부자의 목소리는 울림이 크다.
한강에서 기자를 구출한 손바울 영상이 유튜브에서 꽤 조회수를 낸 뒤인지라, 금세 그 사건과 연결되기도 했고.
덕분에 진정성 면에서 고평가를 받은 듯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염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처벌은 어떻게 될까요? 삭제한 기사가 계속해 공감을 얻는 상황이, 항상인포 입장에서는 무척 부담이 될 듯한데요.”
[그렇긴 하겠죠. 사직은 불가피할 겁니다. 하지만 소송까지는 갈 일이 없을 듯해요.]
“그렇겠습니까?”
[예. 여론 면에서 불리한 만큼 소송을 통해 부차적인 이슈를 만드는 게 불편할 겁니다.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고 싶겠죠. 그렇다고 해서 유 기자가 다른 매체에 취업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글 쓰는 품을 보면 젊은 친구 같던데, 이렇게 커리어를 마감하다니 말이에요.]
“……그 부분이라면 염려치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예? 그 말씀은…… 혹시?]
“저와 알고 지내는 사이입니다. 이후 제가 만들 인터넷 미디어에 참여할 예정이지요.”
[그렇다는 건…… 하하. 이거 참, 한 방 먹었네요. 호기심에 연락하신 게 아니라 자기 사람이 걱정되신 거였군요. 어쩐지. 본인 기사에도 문자 한 통 없으시던 분이 갑자기 전화를 주신 게 이상하다 했습니다. 그나저나 인터넷 매체라니…… 이것도 특종일 것 같은데요? 엠바고 있습니까?]
심중훈의 반응은 유쾌하다.
사실을 숨기고 속을 떠본 일에도 기분이 상하진 않은 듯.
그렇기에 조금쯤 편안하게 본론에 접어들었다.
“가능하면 기사화는 미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련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도 있는데,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지요?”
[하하. 화제의 ‘꼰마님’을 만나는 일이라면, 사회부 기자의 시간은 백수들과 다를 게 없죠. 언제든 좋습니다……만, 말씀하시려는 내용이 얼추 짐작될 듯한데요?]
“아마 짐작하신 그대로일 겁니다. 유하늘 기자를 대표로 현행 언론과도 유튜브 뉴스와도 다른 대안언론을 구축할 예정인데, 그곳의 사회부 부장 자리를 드리겠습니다.”
[……하하. 의외인데요? 자리를 먼저 말씀하시다니.]
“물론 자리를 먼저 말씀드려야지요. 권한보다 의무가 큰 직위니까요. 초기에는 큰 수입을 보장해드릴 수 없습니다. 부서 기자들을 지휘하고 일차적인 기사 검수를 맡으시는 일로는, 사실상 생활임금 정도밖에 못 드려요. 소득을 내시려면 나름의 기획으로 영상을 올리셔야 할 겁니다.”
[아하. 오히려 디메리트라는 거군요. 패를 내미는 순서가 정말…… 박대민 선생님답습니다. 부장의 영상이라는 건, 사회평론 같은 컨셉이 되겠군요……? 신입 기자들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주간 심중훈’ 같은 걸 찍어야 된다라…….]
생각이 복잡한지 말이 자주 끊어졌다.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선은 예의를 차렸다.
“불쾌한 제안이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뇨. 재밌네요. 재밌습니다. ‘어그로 끌어서 미안한’ 유하늘 기자와 ‘천수연의 이상형’ 꼰마님의 신생 언론에, 사회부 부장으로 들어간다는 거죠. 이거야 원.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네요. 소득 면에서는 아내하고도 얘기를 해봐야 되겠지만……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부인께서 허락하실 거라 생각하시는군요.”
[그럴 수밖에요. 그 사람, 선생님 광팬입니다. 사적인 말씀을 드리는 게 어색하긴 한데…… 아내가 고아거든요.]
얼추 짐작하고 있던 일이다.
대민재단의 창립식에서 날 선 질문으로 고아 채용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던 심중훈은, 결코 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
그저 너무도 뚜렷이 실재하는 차별에 좌절하던 인물.
그런 종류의 심리는 가까운 사람의 피해를 보며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습니까.”
[예. 선생님 얘기를 처음 해준 것도 그 사람이었습니다. 봉사활동 다니는 도중에 소문을 들었다는 얘기였어요. 어느 보육원에 사비로 스마트폰을 사서 아이들 전부에게 나눠준 후원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인터넷방송을 한댔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어쨌든요. 본인이 나온 보육원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리만족이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이후로 선생님 얘기를 제게 해주면서 많이 웃었죠. 좀 질투가 날 정도였어요. 아무튼…… 그런 분이신지라 기대가 되는 면이 있기도 하고. 사회부 취재기자 생활이 슬슬 넌더리 나기도 하고. 불러주신다면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메일로 간략한 설명을 보내드리지요.”
통화를 마치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쉽게 대답할 일이 아닌데.
종편 검언유착 사건 이후로 동아일보의 사세가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해도, 사회부 베테랑에게는 기업 사장에게도 하대를 할 만한 위세가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버티면 임원 영전도 가능할 터.
그걸 박차고 신생 미디어 이직을 고려하는 것은……
심중훈이 심중훈인 까닭일 듯했다.
사회부는 독특한 곳이다.
언론의 꽃이라고도 불리며, 3D 중의 3D라고도 불린다.
타 부서에 속하지 않은 온갖 취재를 떠안는 까닭이다.
사회부 보도 내용은 부서명 그대로 사회 전반이다.
경찰서로, 집회와 사건 현장으로, 사건과 논란을 찾아 뛰어다니며, 시민들에게 전해야 할 우리 사회의 민낯을 파헤친다.
큰 사건이 터지면 그 후속보도를 위해 뛰어야 한다.
사건이 없으면 찾아내기 위해서 또 뛰어야 한다.
그렇기에 시경팀도 법조팀도 행정팀도 쉴 시간이 없다.
오죽하면 모 언론에서 부서명을 ‘24시팀’으로 바꿨는데, 그것이 너무 적절해서 내부자들도 한숨만 쉬었다고 했었다.
그런 바쁜 발걸음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이끌었다.
동아일보는 정부가 은폐한 고대생 습격 사건을 보도해 정치깡패의 민낯을 드러냈고, 그것이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주간조선은 전태일의 일기장을 게재해 사회 전반에 충격을 안겼고, 이는 노동자 인권이 처음으로 대중화된 사건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그들은 진실의 수호자였다.
기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마음 놓고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현대 한국을 만들었다.
이제는 물론 과거의 영광일 뿐이고, 진실을 찾는 기자들보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 사리사욕을 채우는 이들이 많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조중동의 사회부 기자는 강하다.
마음 독하게 먹고 날조된 기사를 쓰면, 대기업 임원이든 판검사든 목을 날릴 수 있기에.
심중훈이 넌더리 난다고 말한 자리는 그런 자리였다.
정말 그답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 기자님…… 제가 썼던 기사들은 못 보신 모양이에요.”
곁에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보던 유하늘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나중에라도 검색하고 아시면 어떡하죠?”
“죽다 살아난 후배에게 욕이라도 하겠니?”
“하지 않을까요……?”
“욕까지는 하지 않을 거야. 날 믿으렴.”
심중훈의 과거 기사를 함께 읽었기에 나누는 대화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는 송이랑의 죽음을 두고 언론의 책임을 이야기했던 유일한 기자였다.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진실.
심중훈은 언론이 은폐하는 언론의 민낯을 말하려고 했다.
제대로 어그로를 끌지 못해 묻히고 말았지만.
“그분이…… 선생님 기사도 되게 잘 써주시는 분이죠? 동아일보에 선생님 나온 거 읽어보면 다 심중훈 기자님이던데.”
“창립식의 인연이 있으니, 위에서도 전담을 시켰겠지.”
“그랬겠네요. 근데…… 정말 나오실까요? 동아일보 사회부를 박차고, 한참 어린 제 밑으로요?”
“내 생각으로는 그렇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말도 안 되는 일로 하루 만에 레전드 된 네가 할 말이니?”
“으아…….”
볼이 빨개진 제자에게, 나는 사람을 물었다.
“네가 한번 얘기해보렴. 경제적인 부분은…… 비슷하다 치고. 사회적 위신이 줄어드는 동시에 안정성도 떨어지는 직장으로 이직하는 사람은, 왜 그런 결정을 내릴까?”
“……사명감 때문이겠죠?”
“사명감. 그 사명감은 어디서 올까?”
“죄책감……일까요?”
“좀 더 본질적으로. 희생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올까?”
“어…… 잘 모르겠어요. 마음은 어디서 올까요?”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야. 네 경우를 생각해보렴. 너는 무엇을 위해서 희생했니? 연언홍이라는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학력을 포기한 건, 무엇 때문이었니?”
“……전, 가족이요.”
“그래. 가족은 그 어떤 사회적 본능마저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근원이야.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가족을 위해서라면 당연해지지. 그렇기에 작고도 큰 사회. 가장 미시적인 공동체인 동시에, 무엇보다도 거시적인 사회의 근본이다.”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손바울의 차량이 도착했다.
오늘 막 뽑았다는 15인승 승합차.
첫 시승식을 내가 아닌 이들을 위해서 수행해야 했기에, 차에서 내리는 표정이 썩 좋지는 못했다.
“저 왔습니다, 선생님. 귀 따가워서 죽는 줄 알았네요.”
“하하. 아이들이 꽤 신이 난 모양이구나.”
“심하게요. 뭐 대단한 일이라고 저러는 건지.”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즐거운 일 아니겠니. 보육원 친구들이 모두 함께 서울대 탐방을 오는 것이니 말이야.”
“즐거운 걸로 따지자면 선생님이 좋아서 그런 것 같지만, 아무튼…… 야, 쓰레기 안 챙기냐? 내 차가 쓰레기통이야?”
“헤헤헤. 울이 형 빡침?”
“오빠, 나 가방 놓고 내린다?”
“아저씨! 저 이거 맨투맨 어울려요? 이뻐요?”
“그래 그래. 예쁘다. 참 잘 어울려.”
“저는요? 아저씨, 저는요?”
“하하. 규민아, 너도 잘 어울려.”
“푸하핫! 댓츠 라잇 맨!”
종위보육원 아이들이 종달새처럼 지저귀며 하차한다.
그 자유분방한 모양새에 손바울의 이마가 달아올랐지만, 내 앞이기에 더 투덜대지는 않았다.
그리고 승합차에 뒤이어 한효준의 차량이 도착했다.
김효원 생활지도원과 이수아, 유진호를 태운 채였다.
“오셨습니까, 교수님.”
“흠. 자넨 안 나와도 된다니까. 바쁠 거 아닌가.”
“아닙니다. 청강생이라 시험도 없는데요. 교수님께서 연구를 제쳐두고 아이들을 데려오시는데, 저도 도와야지요.”
“거…… 그럴 필요 없다니까. 흠.”
종위보육원 중고등학생들의 서울대 탐방은, 두 가지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
보육원 쪽에선 아이들의 면학 의욕 고취를 위해.
내 쪽에서는, 한효준과 수아의 친밀도를 위해서다.
내 아픈 손가락인 고3 아이를 조만간 입양하고자 하는 내 스승.
그들을 위해서 부담 없이 소통할 기회를 마련했다.
그런 자리에 내가 빠질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에서 제일 바쁜 고3도 불렀는데, 제가 뭐라고 다른 일에 시간 쏟고 있겠습니까?”
“그거야 뭐. 어흠. 아무튼…… 이리 와라, 수아야.”
“넹. 아저씨, 오늘은 안 바빠요?”
“그럼. 오늘은 너희랑 같이 저녁밥도 먹을 거야. 얘기 들었지? 학교 탐방한 뒤에는, 여기 교수님 댁 정원에 가서 같이 파티를 할 거다. 바비큐도 구울 거야.”
“거기가 왜 내 정원인가? 교수회관 옥외 카페지.”
작은 과장도 용인하지 않는 교수는, 이후 아이들에게 학내의 시설들을 선보일 때 역시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
“보다시피 건물들이 꽤나 낙후됐다. 저쪽으로 보면 또 최신식 중앙도서관이 있기도 하지? 다양한 시기에 마구잡이로 건물을 올리다보니 조화가 되질 않아. 해외의 학자들은 왜 이리 일관성이 없냐며 웃기도 하지. 이게 서울대학교다. 동경할 가치가 없어. 이런 곳에 들어오겠다며 애쓸 것이 없다. 어디까지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학습하도록 하렴.”
“왜 셀프디스?”
“이쁜데요?”
“저 서울대 올 건데요!”
“어험. 신은혜? 넌 왜 여길 들어오려는 게냐?”
“대민 아저씨랑 같이 공부하고 싶어서요!”
“흠. 고1인 네가 입학한 뒤에도 공부를 하려면, 내가 박 선생을 3년 이상 괴롭혀야 되겠구나.”
“앗…… 아아…… 아저씨 그 전에 졸업해요?”
“원래는 그 전에 학위를 따게 해주려 했으되, 다시 생각해보마. 내게도 동년배의 제자는 편한 존재니 말이다.”
“푸하핫! 동년배래! 웃겨요!”
애써 인자하게 웃은 한효준은, 이후 내 귀에 대고 물었다.
“동년배 소리에 왜들 저리 웃는 게야?”
“그게, 인터넷에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노인이 청년인 척하고 ‘나 10대 청년인데 내 동년배들 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식으로 여론을 왜곡하려 한 거지요. 그 뒤로 동년배라는 말이 일종의 개그코드로 쓰이고 있습니다.”
“거…… 참…… 에잉. 이후론 또래라고 해야 되겠구만.”
10대 청년들을 이끄는 50대의 동년배.
아이들 중 맏이인 수아도 그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 종종 하염없이 대학생들을 바라봤지만.
어떡할까 고민하는데, 눈썰미 좋은 한효준이 먼저 물었다.
“수아야. 너는 대학에 가지 않을 셈이라 했지?”
“……넹. 왜요?”
“잘 생각한 것 같아 하는 말이다. 대학 따위, 똥이야.”
“똥이요?”
“그래. 상아탑이니 뭐니 말한다만, 어디까지나 일부에 국한된 이야기. 한국의 대학은 상호 경쟁과 인간불신을 조장하는 직장인 사관학교일 뿐이란다.”
“학점 받으려고 견제하고, 팀플 할 때 치사하게 업혀가고 그러니까요?”
“잘 아는구나. 이곳 어디에도 사람됨을 가르치는 강의는 존재하지 않는단다. 네가 부러워할 가치가 없는 곳이야.”
“……부러워한 적 없는데요.”
“……그러면, 됐고.”
“넹. 그냥…… 평범하게 컸으면, 저도 내년쯤엔 상호 경쟁과 인간불신을 조장하는 직장인 사관학교에 다녔겠죠.”
“그야, 그랬을 가능성이 높겠지.”
“넹.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다가 집 가면, 아빠가 혼냈겠죠.”
“그렇다면 몰상식한 부친이지.”
“넹. 좋아하는 남자 생겼다고 엄마한테 상담하고 그랬겠죠.”
“연애에 있어서 엄마의 상담은 도움이 안 된단다.”
“넹. 하교하는 길에, 내 집은 어딜까…… 그런 생각을 할 일은 없었겠죠. 그런 건 좀 부러운 것 같아요.”
“……너는…… 너는 그런 걸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
“……넹.”
탐방을 마치고 교수회관으로 이동할 무렵이었다.
한효준의 차 대신 내 차에 오른 유진호가 슬며시 물었다.
“아저씨? 교수 할아버지는 로리콘이에요?”
“……그런 못된 말은 어디서 배웠니?”
“헤헤. 우리 동년배들 다 이 말 아는데요?”
“저런. 아무튼 그런 건 아니야. 한 교수님은, 너희와는 다른 의미에서 가정을 그리워하셨던 분이란다.”
“왜요? 서울대 나왔으면 가족 있는 거 아닌가? 돈도 많구.”
“가족도 돈도 있으셨지. 그 무엇도 행복은 아니었겠지만.”
“왜 그런대? 희한하네요. 전 솔까 돈만 있으면 되는데.”
“그래? 내 딸한테 접근한 것도 돈을 노린 행동이구나?”
“헉. 고런…… 고런 오해는 네버 스탑 요.”
“네버 스탑이면 계속하라는 뜻이 되잖겠니?”
“오 노. 플리즈. 진짜 아니에요. 바꿀게요. 돈이랑 지수만 있으면 돼요. 어…… 지수만 있으면 돈도 필요 없어요.”
“하하. 그래도 장기적으로 생각하렴. 너흰 아직 어리니까.”
“치. 알 거 다 알거든요? 로리콘 아니면, 교수 할아버지, 수아 누나 입양할라고 그러는 거 아님요?”
말하고 눈치를 살살 보는 것이, 확신한 투는 아니었다.
그런 소년에게 작게 웃어주기만 했다.
그리고 호암교수회관 야외 카페에 당도해 파티를 즐긴 뒤.
홀로 정원을 구경하던 수아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수아야. 오늘 어땠어? 즐거웠니?”
“넹. 이제 가봐야 되죠? 나레이션 넣어야 돼요.”
“하하. ‘일해라 핫산’ 하러 온 게 아니야. 오늘은 쉬어도 된다. 도와줄 다른 친구도 있으니까.”
“……왜요? 저 못해서요?”
“너무 잘해서. 워라밸이라는 거야.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쉬엄쉬엄 일할 수 있게 해줘야지.”
“……헤헤.”
이수아를 보고 있으면…… 아프다.
아픈 손가락.
밴드로 막고 붕대로 감싸려고 해봐도, 110의 ‘진단’이 그 통증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만다.
“수아야. 가족이 있다는 건, 무조건적으로 좋은 일이야.”
“……왜요? 가정폭력도 있고, 안 좋은 거 많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대하는 부모라도, 공부하라고 강압하는 부모라도, 돈 떄문에 자식을 파는 부모라고 할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적어도 추억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단 한 순간도 행복하지 않은 가정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왜 팩폭해요? 아저씨…… 나빠요.”
“아저씨는, 이제 곧 그 가정들을 찾아가게 돼. 수아 네가 보기엔 참 한심한 고민들이 나올 거야. 가정에 소홀한 부친. 인터넷쇼핑에 빠진 모친. 일탈하고 반항하는 자식……. 그런 것들을 세상 가장 중대한 문제처럼 고민하는 집안들이 내담자로 등장할 거다. 한심한 일이지만 할 수 없지. 부족한 상담사라서 더 많이 배워야 하거든.”
“……부족한 상담사 아닌데. 아저씨, 좋아요.”
무엇 하나 해준 것 없는 내가 좋다는, 작은 아이.
그 아이에게 아이만큼 작은 진심을 전달했다.
“그렇게 연습해서, 수아 네 가정을 지킬게.”
“저요? 저는, 가족 없는데요.”
“만약에 생긴다면 말이야. 네게 가족이 생긴다면, 하굣길에 발길을 멈추고…… 내 집이 어디더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아저씨가 그 집을 지킬 거다. 세상 가장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 거야. 그것만 기억해주렴.”
“……넹. 근데…… 세상 가장 행복한 건 안 돼요.”
“왜 안 된다고 생각하니? 아저씨는 할 수 있어.”
“싫어요. 가장 행복한 건, 아저씨네 해요. 난 두 번째…….”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모든 걸 아는 듯한 목소리.
눈물을 참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차량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있다.
때로 겉과 속이 다르기도 하고, 학대 등의 범죄로 비화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 안에는 가족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거시적인 미시세계.
저 아이들이 잃어버린, 누구나가 누려야 했던 행복이.
그렇기에 나는 상담사다.
가정에서 시작해, 온갖 인간들의 불행을 마주할 인간.
그리고 내 내담자들을 세상 가장 행복하게 만들 인간.
가정이 있는데도 불행한 인간은 존재해선 안 된다.
나는,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