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44화 (144/200)

# 144

51장 - 땡벌의 학벌 (3)

“아, 박 선생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석사 과정 우지현이 내 팔목을 잡고 건네는 말.

월요일 아침이 되어 연구실에 출근한 직후였다.

이른 시각에 대체 누가 찾아왔나 싶어 바라보니, 후줄근한 작업복 차림의 남자 한 명이 어수룩하게 일어서고 있었다.

“박대민 선생님, 맞지요?”

“예, 제가 박대민입니다. 혹시 유성도 씨?”

“예, 그래요. 내가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유하늘의 부친, 유성도.

지방에서 잔업 중인 탓에 딸의 자살 기도 소식을 듣고도 곧바로 올라오지는 못했던 인물이다.

쉰여덟이라고 들었지만, 햇볕에 노출되는 업무환경 탓인지 일흔은 족히 되어 보였다.

그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내 손을 붙잡았다.

“고마워요. 큰애 목숨 붙들어주어서, 고마워요.”

손에 느껴지는 촉감이 마치 나무껍질 같다.

억양은, 썩 진한 느낌은 아니지만, 아마도 강원도 방언.

오랫동안 각지를 떠돌며 제법 중화가 된 듯했다.

“예…… 일단은, 나가실까요? 차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아이고, 어떻게요. 내가 사야지요. 은인 선생님이신데.”

“……알겠습니다.”

카페를 향해 걷는 동안에는 말이 없었다.

원래 말수 적은 성격인가 했는데, 앉은 뒤엔 달라졌다.

“큰애한테, 상담사 선생님이라고 들었는데요. 그래서 큰애를 치료해주실려구…… 저도 보겠다구 하셨다구요?”

“선생님이라고까지 불릴 사람은 못 됩니다. 상담심리학 석사 과정에 진학 예정이지요. 편히 대민 씨라고 부르세요.”

“아이고, 그래도 그러면 되나요…….”

“그러셔도 됩니다. 편안하게 말씀하시길 바라는 거예요.”

잠깐 고민한 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라.

마냥 밝은 미소는 아니었다.

그는 풍파에 깎이고 패인 나무처럼 웃었다.

“대민 씨. 나는 워낙에 일이…… 지방으로 많이 도는 일을 해요. 집에 있을 때는요, 그래도 애들하고 많이 이야기도 하고 그러구 싶지만은…… 요즘은 그게 잘 안 됐어요.”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딸애를 그렇게…… 그럴 줄 몰랐는데…….”

고목의 진액 같은 눈물이 글썽거린다.

그 어깨를 다독이며, 대화의 소재를 조정했다.

“따님 이야기를 들려주시길 바라는 건 아닙니다. 우선은 유성도 씨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어떻게 살아오셨는지요.”

“나요? 나를…… 내 얘기요?”

상상도 못 한 질문이라는 듯 눈을 크게 뜨더라.

그 얼굴에서 내가 보였다.

처음 상담소를 찾았을 때, 나 역시 그와 비슷했을 터였다.

내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왔다.

우리의 시절은 그저 목표와 일로 점철됐을 뿐.

서울대 공대에 진학해 벤처기업 창립멤버가 된 나와 먼짓밥 먹으며 세 아이를 키운 그의 삶이 같지는 않겠지만, 마음이야 크게 다르랴.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

“예. 유성도 씨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무엇일까요?”

그 [인자한 웃음] 덕이었을까.

유성도 역시 조금은 안정을 되찾은 듯했다.

자기 얘기를 하며 보이는 어색함은 어쩔 수 없었지만.

“나는…… 뭐라고 할까요. 땡벌이라고 하면 맞을까.”

“땡벌이요.”

“예, 그니까는…… 아이구. 땡벌이라고 하면 모르나?”

“압니다. 땅벌의 강원도 방언이지요?”

“아, 그렇지요. 땅벌이지. 어렸을 때 그걸 자주 봤어요.”

“그렇군요. 왜 땅벌을……?”

“글쎄, 갑자기 나를 한마디로 말해보라고 하니까는…… 그게 생각이 났어요. 어렸을 때 산에서 봤던 그게요. 그때는 돌을 던져서 벌집을 맞추고는, 웅웅 하면서 나오는 땡벌을 구경하기도 했지요. 다른 벌들처럼 높은 곳에 집을 지으면 그럴 일이 없을 텐데. 그것들만 이상하게 땅속에 집을 짓더라는 거예요. 아마 그거 때문에 생각이 났으려나. 아내하고 성혼을 하구 처음 들어간 집이 반지하였거든요. 거기 살면서, 땡벌들 생각을 많이 했지요. 더 크고 좋은 집을…… 갖고 싶다구요.”

땅벌은 땅에 집을 짓고 일벌을 낳는다.

그리고 나이테 모양으로 집을 늘려나간다.

지금이야 깊은 산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종이지만, 나 어릴 적에는 벌초 때마다 땅벌집을 표시하며 돌아가곤 했다.

그런 땅벌의 이미지가 유성도에게 겹쳐진다.

반지하에서 시작해 지금의 빌라 3층까지.

크게 나아진 세간은 아니지만, 참 많이 애써온 듯했다.

“나는…… 아이구…… 중졸이에요. 부모님은 춘천에서 장꺼리를 나가셨어요. 지금은 다 안 계시구. 그때는 나두 공부보담은 일을 해가지구, 빨리 돈을 벌고 싶었어요. 그래가지구 여비 몇 푼 받아서 서울로 나와서, 인제 구두닦이도 하구 신문배달도 하구 그러다가, 뼈 좀 굵고서는 공사판에 나갔지요. 그래서 한푼 두푼 모으던 와중에, 지금 아내를 만났구요.”

“전부인과는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그게 몇 년이었나…… 80년대에 홍수가 크게 났었던 날인데, 그날 여자애 하나가 난간을 잡구 울고 있는 거야. 그걸 보구 어떻게 그냥 가요. 너무 안됐어서 덜컥 업어서 집까지 데려다줬던 거예요. 그게 고맙다구 그쪽 집에서 밥을 해줬는데…… 그때 뒤로 그 여학생이 날 자꾸 쫓아다녔어요. 자기를 구해줬다구, 멋있는 오빠라면서. 그렇게 시작했어요.”

드라마 같은 만남.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벅찬지, 유성도는 연신 웃었다.

금세 쓴웃음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참 예쁘고 착한 아이였어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그런데 미안한 것도 많았지요. 공부를 잘했는데, 그때 당시로서는 집이 참 잘 살았거든. 이화여대에 들어가구선 매양 자랑을 했는데…… 애가 생기는 바람에 졸업을 못 했지요.”

“……졸업을요.”

“예. 그쪽 집은 애가 여럿이기도 했구, 또 당시 생각으로는 애가 들어서면은 무조건 시집을 가는 거였거든. 그래서 장인 장모가, 나한테 대거리를 좀 하신 다음에는, 잘 살아보라구 이렇게 저렇게 챙겨주시기도 많이 했지요.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요.”

들키지 않게 한숨을 삼켰다.

아이를 가진 탓에 일류 여대를 졸업하지 못하게 된 여인은, 이후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가 되었을까.

그리고 아내의 미래를 자신이 망쳤다고 느낀 남자는……

장녀에게 어떤 아빠가 됐을까.

“그런데, 이혼을 하시게 됐지요. 어째서였습니까?”

“어째서는 뭐…… 내가 잘해주지를 못했으니까는. 당시처럼 건설 경기가 좋은 세월이 오래는 안 가서, 모아뒀던 돈을 계속 까먹기만 했어요. 그 와중에 애가 또 들어서구, 큰애는 학원이다 뭐다 안 보내면 안 될 것 같구, 그래서 경황이 안 좋을 때는 빚도 지기도 하구, 결국은 아내까지 일을 시켰거든요. 나 없을 때는 어린 애들 건사하면서 일터에도 나가야 했던 거예요. 얼마나 외롭구 힘들었겠어.”

“……자책을 많이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랬지요. 계속 그랬지. 빨리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저 여자랑 애들이랑 호강을 시켜줘야지 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좀체 안 됐어요. 경기가 좀 좋아졌나 싶으니 내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들어가기도 하구, 같이 일하는 누가 좋은 종목이 있다구 해서 그걸 믿었다가 목돈을 홀랑 날려먹기도 하구. 내가 못나서 다들 힘들었지요. 일자무식인 내가…… 다 잘못했어요. 부모다운 부모가 돼줬어야 했는데…….”

그 자체는 분명 부모다운 고민.

하지만 부모답다는 그 어휘에 모순이 있다.

우리는 때로 부모답기 위해서 부모의 길을 놓치고 만다.

“유성도 씨. 어떤 부모가 부모다운 부모일까요?”

“그야, 아이들한테 뭐든지 해줄 수 있어야겠지요. 나는 학원정도밖에 못 보냈어요. 다른 집에서는 과외도 시키구 선행교육도 시키구 한다는데, 나는 그렇게는 못 해줬어. 맞벌이를 해도 세 아이 키우는 일이 쉽지가 않았던 거예요.”

“그러셨군요. 하지만 역으로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다 해준다고 꼭 좋은 건 아니겠지요.”

“아니, 아니요. 그런 게 아니에요. 대민 씨는 모를지도 모르지. 이렇게 좋은…… 한국에서 이찌방, 제일가는 대학교를 나오셨으니까. 큰애한테 들으니까는 이…… 방송을 하시기 전에도 굉장히 좋은 기업에서 일하셨다구요? 그게 전부 다 공부를 잘하니까 할 수 있는 거예요. 나는 그걸 알잖아요. 무식해서 노가다판밖에 못 다닌 나한테는, 우리네 이 하류인생들이 얼마나 무시를 당하는지가 너무 잘 보이잖아요. 그래서 나는 애들한테라도 참 잘할려구 노력했어요. 행복하게 해줄려구 애썼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당장 직면을 시도할 타이밍은 아니리라.

[직면 선택지]가 나타날 기미가 없는 걸 보면.

좀 더 이야기를 끌어내고자, 조심스레 말을 돌렸다.

“그러셨는데, 따님께서 참 영특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고, 집에 오셨었다구 했지 참. 보셨지요? 우리 큰애가 정말로, 정말로 똘똘했거든요. 학교 다니면서 상장이라는 상장은 전부 다 따왔지요. 집에 걸어놓은 것은 그중에서도 굵직한 것들만…… 그렇게 걸어놓은 거예요. 그래, 나중에 연세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현수막에도 이름이 올라갔어요. 그때는 아내가 정말 좋아했지. 연세대학교하구 이화여대하구는 굉장히…… 가깝잖아요? 그러니까 기대를 많이 했었지요. 그랬는데 내가…… 내가 잘못한 거지. 그때 또 무릎이 아파서는 일을 쉬게 됐는데, 큰애가 동생들 용돈 챙겨주겠다면서 과외수업을 많이 했었나봐. 좋았던 성적이 뚝뚝 떨어졌어요. 정말 똑똑한 앤데, 뒷바라지만 잘해줬어도…….”

“그 일도 이혼에 영향을 줬던 겁니까?”

“……그랬으려나. 하기야, 그 일로 싸우기도 많이 했지요. 아내는 그렇게 생각했나봐. 내가 자기 인생도 망치구 딸애 인생까지 망친다구 생각을 했나봐. 그래서 나 같은 사람하구는 떨어져서 딸만 데리고 살아야겠다구 했었는지도 몰라요.”

그 이야기에 잠깐 멍해졌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면이 숨어 있었다.

“전부인께서 딸을 데려가려고 했던 겁니까?”

“응, 그랬지요. 나 같은 놈한테 못 맡기겠다구 그랬지요. 부인이랑 사별한 사업가 한 놈이랑 은근하게 지내면서, 이제 재혼을 다 준비한 상태에서 이혼하자구 했던 거야.”

“하지만 지금은, 셋 모두 유성도 씨와 살고 있지 않습니까?”

“큰애가 싫다구 했어요. 동생들도 나도 자기가 챙겨야만 한다구, 남의 집에 가서 살지 않겠다구, 그러면서 남았지요.”

모친이 순전히 가족을 내팽개친 것은 아니었나…….

다만, 장녀만을 데리고 떠나려 했다는 지점에서 왜곡된 동일시가 느껴졌다.

너만은, 너만큼은 제대로 살게 만들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남편을 저버렸던 모양이지.

그리고 유하늘은……

누구나가 부러워할 학벌을 내팽개쳤던 그 아이의 마음은, 단지 박탈감과 열등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걸 깨달은 시점에 두 줄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제 들을 이야기는 다 들은 셈.

내 쪽에서 이야기를 건넬 차례였다.

날개가 떨어지고 발이 문드러지도록 가족의 집을 넓히고자 애썼던, 이 늙은 땡벌을 향해서.

“유성도 씨.”

“예, 예. 어떤 걸 또 말씀드릴까요? 어떤 이야기를 드려야, 우리 큰애 마음이 안 아플 수 있을까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성도를 보며 생각했다.

홀로 상경한 중졸 노동자.

이화여대를 중퇴한 맞벌이 주부.

선행교육을 받은 중산층 아이들과 경쟁해온 유하늘.

그들 모두의 마음을 내 안에 담고자 애썼다.

“유성도 씨. 부모가, 부모답다는 것이, 공부를 잘 시키면 되는 것입니까? 그거면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겁니까?”

“아이고. 아까도 말했지만은, 대민 씨는 그거 몰라요. 공부만 잘하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구, 행복해질 수 있어요. 지금 대민 씨가 좋은 옷 입구 좋은 학교 다니는 것도 다-”

“행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유성도 씨는, 중졸이라고 해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혼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끔찍한 생각을 하지 않게 해줄 수 있었습니다. 부모답기만 했다면요. 더, 조금 더 부모다웠다면요.”

유성도가 주름 사이의 눈을 부릅뜬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냐는 듯이.

딸의 은인이 아니었다면 이미 화를 내고 있었겠지.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부모의 이혼을 평온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유하늘.

그리고 그 곁에서 누나에게만 신경을 집중하던 유마루.

그 막냇동생의 표정은, 부모 따위 없어도 누나만 있으면 괜찮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제 갓 스물이 된 아이다.

7년 전 두 사람이 이혼했을 때는, 고작 열세 살.

그 일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불편해해야 마땅했다.

그런 아이가, 어찌 돼도 좋다는 투로 입술을 삐죽거렸다.

스물하나에 모친을 거부한 유하늘 역시 마찬가지.

그녀는 부모의 이혼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저 동생들을 걱정시킨 스스로를 비난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땡벌의 집안이었다.

“따님은, 유하늘 씨는, 평생을 시달려왔을 겁니다.”

“평생을……요? 왜요?”

“유성도 씨 때문에요. 결별하신 전부인 때문에요. 부모다운 부모가 되겠다면서, 자기 몸도 보살피지 않고 열심히 일해온 여러분 때문에요. 두 분 때문에 장녀는 어린 엄마가 되었을 겁니다. 그녀 자신을 원더우먼으로 만들었을 겁니다. 아주 어린 시절…… 아마도 철이 들 무렵부터요.”

“그게 무슨……?”

“제발, 딸 입장에서 생각해보십시오. 자길 임신한 탓에 이화여대를 중퇴했다는 엄마가 있습니다. 그런 모친의 못다한 꿈을 딸이 이뤄주길 바라며 무릎 연골이 다 닳도록 흙바닥을 전전한 아빠가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이, 자기 학원비를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며 나가서 들어오질 않습니다. 다쳐서 들어오고 지쳐서 들어와서는, 공부는 잘 했느냐고 묻습니다. 그게 대체…… 그게 대체 뭘 잘해주는 겁니까? 희생한다고, 헌신한다고, 그게 딸의 행복이 됩니까? 애가 그때마다 무슨 생각을 했겠냐는 말입니다.”

“애, 애가, 우리 애가…….”

“자기 하나를 위해서 땡벌처럼 흙을 퍼내고 나무껍질 모아오는 부모가, 성적이 떨어지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것이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시험을 볼 때마다 장이 뒤틀리고 가슴이 울렁거렸을 겁니다. 부모가, 사랑으로 가득하고 헌신을 아끼지 않는 부모가, 자기 하나만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그게 정말 잘해주는 겁니까? 그건, 지옥이잖습니까?”

벌벌 떨기 시작하는 유성도의 어깨를 붙잡는다.

그리고 그의 촉촉한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제 하늘 씨에게 물어봤습니다. 학교를 왜 그만뒀느냐고요. 동생들을 위해 일을 해야 했다고 대답하더군요. 그런데 그 말에서 어떤 감정이 느껴졌는지 아십니까? 후련함입니다. 무겁고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개운함이 느껴졌습니다. 대체 어째서인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야 알겠네요. 더 이상 죽을힘을 다해 공부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사회에 진출해 돈을 버는 편이, 몸은 힘들지언정 마음에는 훨씬 더 여유로울 테니까. 그래서 스스로 집어던진 겁니다. 사실은 휴학하고 과외만 하는 게 수입은 더 좋았을 텐데도. 모친 쪽을 따라갔다면, 그럴 것도 없이 캠퍼스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도 말입니다. 유성도 씨가 부족해서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고 말씀하셨지요? 반대입니다. 그놈의 학벌지상주의…… 유성도 씨와 전부인의 과도한 기대가, 작고 여린 아이를 무한경쟁의 지옥에 몰아넣었던 겁니다.”

내 경우는, 반대였다.

선친은 내게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 역시 두 분에게서 기대를 버렸다.

내 부모 같은 보잘것없는 삶은 살지 않겠다는 결의로, 죽어라 공부해 서울대에 진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핏줄은 핏줄.

나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 없었다.

동생을 위해 캠퍼스의 낭만을 포기해야 했다.

일벌처럼, 매달 꿀을 실어 고향의 집으로 날려보냈다.

스무 살의 내게도 무겁고 무거웠던 짐.

그런 것을, 유하늘은 대체 몇 살부터 느껴왔을까.

장녀의 성적을 올릴 생각에 혈안이 되어 있는 부모와, 나이차 많이 나는 동생들의 선망 속에서……

그녀는 얼마만큼 스스로를 몰아세웠던 것일까.

“그렇게…… 그렇게 안 하셔도 됐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고, 아내를 괴롭히고, 딸을 괴롭히지 않으셔도 됐습니다. 중졸이신 대로 괜찮았습니다. 아내의 중퇴를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괜찮았습니다. 적은 수입이면 적은 수입인 대로, 서로를 보듬으며 웃으셔도 괜찮았습니다.”

“아…… 그런 것은…… 그래서는……”

“그러셔야 했습니다! 딸을 정신질환으로 잃지 않기 위해서,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래야 했어요.”

“아…… 그…….”

늙은 땡벌은,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 앞에서 나도 마음으로 울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그가 스스로를 반성해야 함이, 견딜 수 없이 서글퍼서.

“……유하늘 씨는 행복해질 겁니다. 제가 그렇게 되도록 돕겠습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이제부터라도 그 짐을 내려주세요. 정말 아이들을 위하신다면, 그 집에서 상장과 성적표를 모두 치워주세요. 그것들 대신 아이들을 봐주세요. 아빠에게 쌓인 감정은 없었는지, 하고 싶은 말은 없었는지, 요즘 대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 마음을 바라봐주세요.”

유성도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절절한 마음이 눈물이 되어 볼 위로 흘렀다.

그런 그를 돌려보낸 뒤, 나는 수업 내내 상념에 잠겼다.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서.

어쩌면 내 미래에 해당했을지도 모를 인물이라서.

학벌로 따지자면 하늘과 땅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두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닮아 있었다.

빈한한 집안 출신이며, 어려서부터 돈을 벌기 위해 애썼고, 가정을 꾸린 뒤에도 바깥으로만 나돌았다.

나 역시 그처럼 될 수 있었다.

내 아내가 진주희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내 딸이 유하늘처럼 앓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유성도가 사랑스럽고 또 미웠다.

그 우직하고 헌신적인 땡벌의 삶이.

거친 표현이 앞섰던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닌 것을 알기에.

단지 사랑을 올바르게 표현하지 못했을 뿐임을 알기에.

도저히 부드러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만나면 사과해야 할 일.

좀 더 부드럽게 접근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유하늘이 당장 자살을 재시도할 상황도 아니었으니.

개인적인 감정에 휩쓸려 표현을 정제하지 못한다면, 상담사로서는 실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유성도는, 내 부족한 상담에 응답해줬다.

“아빠가…… 엄청 많이 울면서 들어오셨어요. 그런 모습 처음 봤어요. 저한테 계속 미안하다고 하셔서…… 슬펐어요.”

점심에 찾아온 유하늘은 그렇게 말하며 볼을 붉혔다.

내게 가정의 약점을 보인 게 부끄러운 듯이.

다만 그 곁에 선 유가람은, 볼이 붉어진 것은 같았지만, 누나와는 생각이 좀 다른 듯했다.

“아저씨가 뭔데, 남의 집에 감 놔라 배 놔라-”

“유가람! 누가 그런 식으로 말하래?”

“……괜찮습니다. 동생에게도 해줘야 할 말이 있어요.”

유하늘이 손을 꼼지락대며 불안해한다.

물가에 내놓은 자식을 바라보는 엄마처럼.

그 포근하고 예쁜 관계 역시, 조금은 바뀌어야 할 터였다.

“가람 씨. 누나가 죽으려 한 원인, 가람 씨한테도 있습니다.”

“뭐, 뭔 소리예요!”

“저기, 동생들은, 상관없어요!”

주변 테이블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쏠렸다.

아침의 카페는 한산했지만 학식은……

아무래도 사진 한두 개로 끝나지 않을 듯했다.

“목소리는 조금만 낮추고요. 내가 정신과 의사는 아니니까 흘려들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일단 들어요. 듣고 나면 가람 씨 입장에서도 느껴지는 게 있을 테니까.”

거기까지 말하자 두 사람이 잠시간 잠잠해졌다.

다음 이야기에는, 둘 모두 눈이 몹시 커졌지만.

“이혼하실 때 모친이 누나를 데려가려 했음을 알고 있습니까? 끝까지 들어요. 모친께선 양육을 전부 포기했던 것이 아니에요. 그분은, 동생이 둘이나 딸린 가난한 집안에서 영특한 장녀를 제대로 지원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전략적인 이혼의 이유였습니다. 그럼에도 누나는 남았지요. 부친과 동생들의 곁에 남았어요. 공부는 사실 정말로 원하던 길이 아니었으니까. 부모님과 동생들의 기대 탓에, 하루하루 말라가며 걷던 고난의 길이었으니까.”

유하늘은 원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왜 그 얘기를 동생 앞에서 하냐는 듯이.

그 눈길을 피하며, 나는 유가람을 바라봤다.

청년의 눈동자는, 격동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한 적 있습니까? 스스로 원하지도 않는 목표를 꿈꾸고, 남들은 과외를 쏟아부어도 가기 힘든 대학에 기어이 합격한 누나를, 사람으로 봐준 적이 있습니까? 아직까지도 기대고 의지하고만 있지 않습니까? 그대로는 안 됩니다. 이제 스물둘이잖아요. 누나가 학교를 그만뒀을 때보다도, 한 살이나 더 많잖아요. 이제는 짐을 벗겨줘야지요.”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동생들은, 공부만 하면 돼요.”

“누나…….”

정말이지 우애 좋은 남매다.

이러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박대민은, 착한 이들에게는 한없이 약한 호구니까.

“원래는 장기적인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된 김에 바로 시작해보지요. 6개월. 그동안 장학금을 지원하겠습니다. 동생들은 다른 알바 관두고, 대학 다니는 한편으로 누나 도와요.”

“뭐, 뭘요? 누나, 기사 쓰는 거요?”

“그거 말고. 하늘 씨는 회사를 그만둘 겁니다. 그리고 내가,유하늘 씨를 대표로 인터넷언론을 창간하겠습니다.”

크고 넓은 집을 짓고 싶었다던 유성도의 마음을 떠올리며.

그 마음을 똑 닮은 장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평생을 가족의 일꾼으로 살아왔던 부녀를 위해, 새로운 벌집을 안겨주기로 했다.

땡벌도 학벌도 아닌, 하늘 위의 벌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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