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51장 - 땡벌의 학벌 (2)
“꼴사나운 녀석들이었습니다. 지들끼리만 사랑 넘치면 되나. 사람이 상식적이고 인도적으로 살아야죠.”
운전대를 잡은 손바울이 투덜거리듯 말한다.
그 말에 헛웃음이 머금어졌다.
“상식적이고 인도적인 일은, 너도 잘 못 하잖니.”
“흠…… 저야 필요한 일을 하는 거죠.”
“저 친구들도 그랬을 거다. 그게 아니면 답이 없었을 거야.”
“그야, 꼬락서니가 한심하긴 하더군요. 세 명 다 인서울에 성공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동생들이야 탑급은 아니긴 하지만…… 무서운 교육열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 보통 현장 노동자들의 자녀들은 교육 기회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친 때문이었을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모친 쪽이 의외로 고학력자여서, 애들이 남편처럼 살지 않길 바라며 심하게 몰아붙였을지도.”
“부친 쪽에도 학력 콤플렉스가 있을 수 있겠어.”
“그렇겠죠. 저학력 중년층에서 그런 게 참 많더군요. 신당에서 자주 봤습니다. 애들 성적 올릴 부적 써달라면서, 돈은 얼마든 내겠다고 외치곤 했죠. 자기가 갖지 못한 학벌을 애들만큼은 꼭 얻게 하려는 심리였겠죠.”
그런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자신이 가진 열등감을 자식의 우월성으로 대리만족한다는.
그것을 세간에서는 부모의 보상심리라 말한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자식에게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를 세뇌하는 보상(compensation) 욕구.
꼭 그렇게만 바라볼 문제는 아니겠지만……
유사한 것을 유하늘의 집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초라한 세간살이 중 유일하게 먼지 하나 없던 상장의 액자.
그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자, [내담자 평가]가 새로운 준거를 획득했다.
「 내담자 명 : 유하늘
평가 결과 : 자판을 두드리던 살인자. ‘꼰마님’의 심판으로 인해 속죄를 고민하게 됐다. 그 완성은 흐릿한 안개 속. / 외부적 주사로 인해 학력 개념이 콤플렉스로 발달했다. 」
콤플렉스(complex)라는 것은, 한국에서는 열등감과 비슷한 의미로 활용되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억압되어 뭉뚱그려진 인지도식들을 총칭한다.
아들러는 그것을 열등과 우월 콤플렉스로 분류했다.
열등은 자학적이고 자기비판적인 방향, 우월은 타인을 깔보고 비난하는 방향.
열등감이든 우월감이든 행동이 부적응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콤플렉스라고 통칭하는 것이다.
그중 학력의 경우, 한국에서 특히 흔한 콤플렉스.
보통은 성적지상주의적 억압 환경이 자라나는 청소년의 심리를 좀먹는 경우를 의미한다.
하지만 좀 더 넓게 생각해야 마땅하리라.
때로는 성인들 사이에서 더 무서운 인지도식이니.
서울대 공대를 나온 내게는 꽤나 먼 이야기지만, 주위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프리월드 내에서만 십여 명을 봤을 정도니까.
중견 벤처기업이 된 이후의 신입사원들 중에는, 인서울 대학이 제일 많았지만, 종종 2년제나 고졸까지 끼어 있었다.
진갑수 대표가 의외로 학벌은 안 보는 경영자였던 까닭.
창립멤버는 전원 서울대 공대였으나, 이후로는 오히려 직속 후배들을 잘 뽑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 직원들 중 상당수가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때로 고참 부장인 내게 상담을 청할 만큼.
대학 중퇴라 고졸 상태인데 방통대라도 다녀볼까요……
혹시 지방대 출신이면 승진에 지장 있을까요……
여친 부모님 뵙기로 했는데 2년제라고 어떻게 말하죠……
그런 내밀한 이야기를 직장 상사인 내게 물었던 건, 생각해보면 참 별일이다.
대체 어떤 ‘와룡’이었던 건지 원.
학력과 무관하게 사람을 보려 애쓴 마음이 전달됐던 거라고 한다면 기쁜 일이려나.
하지만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는 어려웠다.
나야 이름만 대면 누구나 감탄할 학벌이니.
아들딸 모두를 일류 대학에 진학시킨 장인 눈에도, 내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가점이 됐었다더라.
학력을 자조하는 청년들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실은 그조차도 회사 분위기가 중화해준 소소한 고민들이다.
프리월드의 업무는, 코딩이 됐건 기획이 됐건 낭중지추(囊中之錐)일 수밖에 없는 내용들.
그렇기에 지방대든 2년제든 고졸이든 실력만 있다면 그것이 실적이 되었다.
실적만능주의의 대표 덕에 사내에서는 학벌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드물었다.
다른 회사에서는 아마 차원이 다를 것이다.
대기업이야 애초에 학벌이 안 되면 들어가기 어려운 별세계고, 중소기업들조차 학력에 따른 차별이 상당하다 했다.
종종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강제할 정도로.
자회사인 프리웍스의 신종혁 부장이 그런 케이스였다.
나보다도 네 살이 더 많은 중년이었는데, 딱 지금 내 나이에 만학도 전형으로 야간대학에 지원했었다.
그것이 신기해서 이유를 물어봤다.
대체할 사람 없는 인력이라 학력이 중요한 상황이 아니신데, 왜 굳이 소중한 여가를 학업으로 채우시려는 거냐고.
그에 신종혁은 나를 흡연구역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어딘지 물기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답했다.
“학교 어디 나왔어요, 전공은 뭐예요…… 그 질문이 평생 공포스러웠어요. 나름대로 업계에서 입지를 굳힌 지금도 움찔한다니까. 박 부장님이야 그런 질문 들어봤자 기억에도 안 남겠죠. 그걸 과시하는 부류가 아니신 건 알지만, 사실대로 대답하고 감탄 듣고 평범한 대화 이어가면 그만이잖아. 하지만 나 같은 사람한테는 그게 안 돼요. 상대가 아무 편견 없이 본다고 해도…… 말하는 순간 내가 ‘루저’가 되는 기분이라서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평균 80%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이 학벌공화국에서, 고졸이라는 단어가 그 자체로 얼마나 무거운 족쇄였을지.
유하늘의 부친은 어땠을까.
50대의 건설업 노동자라면, 아마 고학력자는 아닐 것이다.
높은 확률로 중졸이나 고졸일 터였다.
놀랍도록 똑똑한 딸에게 그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연세대학교 합격장은 또 얼마나 커 보였을까.
그 모든 영광을 포기하고 사회에 투신한 장녀를 바라보는 마음은, 대체 어떤 빛깔이었을까.
그 학력 콤플렉스가 죄업망상의 근원일지도 모르겠다.
단순 죄책감만으로 자살을 선택하기는 어려운 일이니.
삶을 긍정하기 위해 어떻게든 자기합리화를 성사시키는 것이 인간의 생리다.
그러지 못하고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갔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현상 이면의 추동이 있을 법했다.
그렇다고 해서 유하늘의 죄책감이 가짜라는 뜻은 아니다.
그녀는 분명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악업에 직면했고, 그 결과 반성에 이르게 되었다.
문제는 그것이 자살이라는 자기파괴적 행위로 드러난 점.
보다 긍정적인 속죄를 위해서라도, 편향된 콤플렉스를 먼저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원룸에 들어섰다.
먼저 도착해 있던 진대수가 두 팔을 벌려 보였다.
“형님! 오늘은 일찍…… 어…… 바오로도 왔네.”
“바오로가 아니라 바울입니다.”
“그래 그래.”
“제대로 부르시죠. 나한텐 소중한 이름이니까.”
“아니 근데, 제대로 부르려면 파올로스? 이게 맞지 않냐?”
“그럼 그러시든가요, 진드기 씨.”
“아, 이 서라벌놈이?”
“손바울입니다.”
“……예 예, 손바울놈아.”
여전히 사이가 안 좋은 녀석들.
손바울의 어깨를 짚어 중재한 뒤에,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다는 대수를 따라나섰다.
대수는 늘 그랬듯 바람의 방향을 고려해 위치를 잡았다.
“아, 형님한테 냄새 풍기면 죄송한데. 무슨 일이신데요?”
“물어볼 게 하나 있다. 혹시 너한테도 학력 콤플렉스가 있었니? 사촌이 서울대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엥? 갑작스런 질문이시네요? 왜요? ‘나사없’에 저학력자 가족 나온대요?”
“‘나쁜 사람은 없다’는 가제고, 아마 다른 게 될 거다만. 그쪽이 아니라 개인적인 조사야. 괜찮다면 말해주겠니?”
“흐음. 저도 뭐 없진 않았죠. 집에서 저한테 거는 기대가 워낙 컸으니까요. 사촌형이 벤처 CEO 돼서 잘나가니까 저도 서울대 정도는 껌으로 들어가겠지 생각하셨던 모양이에요. 저야 뭐 워낙 긍정적인 놈이라 별로 신경 안 썼지만요.”
“그랬구나. 힘들었겠어.”
“……가끔은요. 친척들 결혼식이나 그럴 때요. 진갑수 사촌동생이라 그러면 야 얘도 한가락 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지인들이 많았거든요. 당당하게 지방대 신방과라고 대답하면, 얼굴이 약간 이렇게 되더라고요.”
저 업신여기는 표정이야 대수 나름의 너스레겠지만……
마음이 가볍지 못했을 것은 분명했다.
나조차도 대수가 지방대 출신이란 말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
“비하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만, 놀랍구나. 너처럼 머리회전 빠른 아이라면 당연히 성적도 좋았을 줄 알았어.”
“엥? 에이. 잔머리랑 공부머리랑 같나요. 저 좀 날라리였거든요. 학교 공부란 게 착실하게 엉덩이 붙이고 안 하면 절대로 안 늘잖어. 그런 면에서 최악이었던 거죠. 뭐 비하하셔도 괜찮슴다. 신방과 중에 거의 최하위권이니까.”
“그러진 않으마. 네 말마따나 착실하게 엉덩이 붙이는 능력일 뿐이잖니. 그거 잘한다고 인생 잘 사는 게 아닌 것을. 등급컷 높은 대학 나온 애들 다 모아놓아도, 너만큼 내 방송을 잘 지원해줄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다.”
“헤헤. 슈퍼 엘리트 형님한테 그렇게 들으니까 기분 째지네요. 암튼 그래서요? 학력 콤플렉스 있는 애가 있어요?”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에 입학했는데, 집안이 여의치 않아서 중퇴하게 된 아이라면. 어떤 기분일 것 같니?”
대수는 입을 동그랗게 말고 한동안 고개를 까딱거렸다.
“연언홍…… 고미디랑 어떻게 되더라…… 어쨌든 빡공에다 상장 오지게 받았을 텐데…… 야, 그거 진짜 자살 각인데요?”
“음. 그렇게까지 말하진 말고.”
“아, 옙, 죄송합니다. 암튼…… 그 정도면 아무리 학력에 미련 없는 애라고 해도 되게 몰렸을 것 같습니다. 이게 인생이냐 이러면서요. 부모들 증오했어도 이상하지 않겠는데요.”
유하늘은, 그러지는 않았다.
부모의 이혼을 말할 때조차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그렇다면 그 박탈감과 열등감이 전부 어디로 향했을까.
그녀 자신의 내면 말고는, 갈 곳이 없었을 터였다.
그 결과가 자아를 부정하는 죄업망상이었다면.
콤플렉스를 해소하지 않는 한, 유하늘은 언제고 다른 트리거에 의해 자살 충동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그런 고민 속에 진행한 생방송.
그날 사연 중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다.
“양꽃님의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꼰마님. 수학과 새내기입니다. 저 오늘 좀 고민이 많이 돼서 조언을 구하고 싶어요. 지금 다니는 대학교가 지방대인데요, 수학 쪽으로는 교수님들도 좋고 논문인용도 꽤 돼서 괜찮은 대학이에요. 물론 인서울 일류대학들보다는 별로긴 한데, 제 생각엔 비전이 있거든요. 재수나 편입 준비에 시간 쏟는 것보다 여기서 교수님들한테 잘 배워서 훌륭한 수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근데 엄마는 그걸 몰라줘요. 자꾸 편입 자료 가져와서 이런 방법도 있다 너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래요. 몇 번씩 제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설명했는데도요. 진짜 왜 그러는 걸까요. 저 수학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진짜 지방대는 무리인 걸까요.”
학력 콤플렉스 사연은 일평균 하나 이상 나온다.
젊은 층이 많은 인터넷방송인 까닭도 있겠지만, 그만큼 한국사회가 학벌 노이로제에 물들어 있다는 방증도 되겠지.
그 앞에서 잠깐 고민하다가……
대수에게서 본 업신여기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입결도 잘 안 차는 지방대 수학과 간 실력으로 훌륭한 수학자가 되고 싶으시다고요?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꼰 머 등 장」
「양꽃 : 으앙..」
「놀라지말고 걸러들으세여 ㅋㅋㅋㅋㅋ」
“걸러들을 것도 없습니다. 전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 」
「ㅋㅋㅋ태세전환 너무빨라」
“수시건 정시건, 고등학교 수준에서 배우는 수학이라는 것은 이공계 대학의 수학과 결이 다르지요. 거기에 수학과라고 한다면 아예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방식부터가 달라야 할 것입니다. 유형 달달 외워서 수능 만점 받은 친구들보다, 수학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 쪽이 성공확률이 높겠지요.”
「ㅋㅋㅋ말은되네여」
「근데꼰마님 수학과도 학벌무시못해여」
「지잡 출신으로 교수 테크 타려면 개잘해야되는데」
무척 잘해야겠지.
해당 학부의 동기들과 경쟁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강의를 진행하는 강사들과 토의를 할 수준까지는 올라야 하리라.
새내기 대학생에게 그런 좁은 문을 독려하는 것은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이 사연은 진로상담이 아니다.
그런 문제야 나보다 당사자가 더 잘 알 테니까.
“대충 그런 거니까, 편입을 할지 복전을 할지 지방대 수학과에 올인을 할지는 알아서 생각하시고. 저는 양꽃님의 사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멋지네요. 그 나이 친구들 대부분이 인서울 인서울 외치며 꿈도 없이 점수에 맞춰서 진학하곤 한다던데, 그게 아니라 수학자를 꿈꾸며 대학에 다니고 계시다는 점이요. 존경스러워요.”
「이건 인정」
「양꽃 : 아.. 그런가여..ㅎㅎㅎ」
「ㅋㅋㅋㅋㅋ 믿지마여 이꼰머 칭찬능력자임」
“진심을 말했는데 믿지 말라고 하는 분들이 계시네요. 마구니로다. 짐이 관심법으로 보아하니 마구니가 끼었어.”
「양꽃 : 진심맞져 ㅎㅎ」
「마구니 : 가 끼었어」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회장님ㅋㅋㅋㅋ」
“아무튼 그런 건 알아서 하시고, 문제는 어머니 쪽이네요. 진로라는 것이, 어떤 비전을 얘기해본들 확신은 불가능한 문제입니다. 자식을 몹시 사랑하는 부모님께는 특히 그렇겠지요. 어머니께서는 아마 양꽃님에 비해서 한국이란 사회를 훨씬 더 잘 알고 계신 듯해요. 존경스럽다고 말은 했지만, 양꽃님의 비전이란 이상론에 불과하거든요. 진정성 없는 꿈이었다면 저도 당장 편입 준비하라고 했을 겁니다.”
「양꽃 : 으아.. 엄마한테 머라고하면좋을까여 」
뭐라고 하면 좋을까.
자식이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이고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길을 권장해온 부모에게.
한국사회를 오래 겪으며, 오직 학력만이 우월한 삶의 해답이라고 믿게 된 학벌의 신봉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엄마, 내가 부끄러워?”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우 쎈데」
「양꽃 : 으아.. 어떻게그렇게말해요..」
“어떻게 그렇게 말하냐니요? 왜요? 상처받으실 것 같아요?”
「양꽃 : 네 엄마 슬퍼할텐데..」
“슬퍼해야지요. 슬퍼하셔야 합니다. 아이가 세상을 모른 채 허무맹랑한 소리만 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꿈을 펼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끝내 보상받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섰다고 할지라도, 부모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모르는 현실의 시야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게 부모예요. 양꽃님의 어머님께서는 그 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양꽃 : 으 근데」
「양꽃 : 근데요 엄마가」
「양꽃 : 저 부끄럽다고 대답하면 어떡해요..」
아이들은 참 묘한 존재다.
부모에게 심정적으로 의지하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부모에게 남보다 못하게 대하는 아이들조차도, 늘 불안해한다.
혹시라도 배제될까봐.
가족에게 내 마음과 꿈과 미래를 부정당할까봐.
참 예쁘고 안타까운 마음이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데.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면, 대답은 하나뿐인데.
“날 믿고 말씀드리세요. 절대로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미안하다고.”
악독한 부모라면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자신을 투사하는 부모는, 악하지 않다.
그저 사랑이 깊어 집착이 되었을 뿐.
마치 극악한 부모들처럼 억압하고 강요하지만, 그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는 누구보다 큰 사랑이 있을 터였다.
내 진단은 30분 뒤에 입증됐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양꽃은, 꽃처럼 예쁜 단어로 답했다.
[양꽃님 별사탕 100개. 엄마가 미안하다고 그랬어요. 제가 그렇게 힘들어할지 몰랐다고, 울었어요. 꼰마님 사랑해요.]
「와우」
「꼰마님 캬」
“……그럴 수밖에 없다니까요. 대신, 양꽃님도 하나 약속해주세요. 어머님께서 염려하신 일들은 어쩌면 현실이 될지도 모릅니다. 교수도 연구원도 되지 못한 채 뒤늦게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할지도 몰라요. 지방대 학사라는 인정받기 힘든 학력만 가지고요. 그때, 절대 원망하지 마세요. 왜 날 더 열심히 말리지 않았냐며 부모님을 몰아붙이지 마세요.”
「아 이건맞지」
「자기가 선택했으면 책임도져야댐」
「양꽃 : ..네! 안그러겠습니다! 저진짜 열심히 할게요!」
「ㅋㅋㅋㅋㅋ 이거좀 흐뭇하네여 만화같당」
시청자들은 즐거워하고 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사실은 모친의 염려 쪽이 더 정당한 것이라서.
지금은 꿈에 부푼 양꽃이라 해도, 언젠가는 후회하고 자책하며 괴로움에 흔들릴지 모른다.
내 간섭은 정말 올바른 것이었을까……
“그에 더불어서, 이 아저씨도 노력하겠습니다. 학벌주의 사회라는 건 정말 똥이에요. 그 사회 속에서 덕만 보며 살아온 나지만, 그게 똥이라는 건 확실히 알겠습니다.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초면의 타인에게 학교나 전공을 묻지 않을게요. 고학력자를 우러러보지 않고 저학력자를 무시하지 않을게요.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시청자 여러분께서도 그래주셨으면 좋겠습니다.”
「ㅋㅋㅋㅋ네넹」
「아당근이져 ㅎㅎㅎ」
「ㅎㅎ 그래도 좋은대학 애들이 더 잘하긴하던데」
“무어라? 누가 좋은대학 소리를 내었는가?”
[마구니님 별사탕 1000개. 마구니가 끼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에 돌아왔을 때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됐다.
늘 그랬듯 내 방송을 집중해서 시청한 딸에게서였다.
“아빠, 수학 재밌어? 수학자는 왜 하는 거래?”
“……수학이 재밌냐고 묻는다면 답이 애매하긴 하네. 사람마다 다를 거야.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학문이라고 보면 돼.”
“아항. 그럼 아빠, 나 그럼 대학 안 가도 돼?”
“어…… 억지로 아빠 생각을 강요하진 않을게. 다만 현실적으로 어떤 길이 나을지 함께 생각해보긴 해야겠지?”
“아 뭐야. 나 공부 시킬 거야?”
“일단, 우리 딸 꿈이 뭔지 들어볼까?”
“BJ꼰순이! 나 데뷔하면 바로 10만따리 되지 않을까?”
곧바로 튀어나오려는 대꾸를 참고,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하지만 그 직후에 아내가 참전했다.
“박지수! 너 미쳤어? 그런 게 꿈이니? 꿈이야?”
“아 왜! 아빠도 하는데, 나는 왜 안 돼?”
“아빠가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넌 지금 아빠 유명세에 업혀서 쉽게 성공하려고 하고 있는 거잖아. 그게 어떻게 꿈이니? 더 생각해. 고민하고 고민해서 네 힘으로 이뤄.”
“아 진짜! 엄마 완전 올드해. 몰라!”
……올드하다면 올드한 얘기가 맞지만.
고지식한 아내의 내리사랑에, 마음이 못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