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42화 (142/200)

# 142

51장 - 땡벌의 학벌 (1)

“드, 들어오세요…….”

“예. 실례하겠습니다.”

타인의 집에 들어서는 일은 늘 부담스럽다.

김서현의 아파트 앞에서 그랬듯, 유하늘이 사는 빌라에 들어서는 발걸음도 무겁기만 했다.

하지만 익숙해져야 할 일.

2주 뒤부터는 매주 가정 상담 프로그램을 촬영하게 된다.

이번 방문은 그 예행연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연습이라기에는 좀…… 실전적이지만.

유하늘의 망상장애는 완전한 회복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죽지 말라는 내 명령은 그저 대처(coping)의 강제.

당장 모든 왜곡이 정상화됐을 리 없다.

망상장애라는 것이 본디 그런 질환이니까.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30% 정도는 호전되지 않는다.

50%는 완전히 회복한 것으로 보고되지만, 그조차 질환의 진단기준에서 벗어났을 뿐.

다른 트리거로 인해 재발할 가능성은 작지 않다.

억압적인 성장환경이 근원인 케이스라면.

망상장애는 어린 시절 겪은 부모의 강압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성장환경이 만든 심리적 억압 상태가,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망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

절대적인 인과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부적응적 방어기제의 대부분이 유년기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

거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회복은 불가능하다.

망상장애 치료에 가족상담이 필수인 이유였다.

인지도식을 왜곡시킨 최초의 매듭.

그것을 찾아낸다면, 입원 없이도 호전될 수 있다.

트리거와 결부되던 내적 갈등이 누그러질 테니까.

“일요일인데, 부모님께서는 안 계십니까?”

“부모님이요? 어…… 이혼하셨는데, 아빠는 일하러요…….”

“그렇군요. 실례지만 부친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는지요?”

“저…… 건설업이요…….”

건설업이라는 어휘에서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대기업 소속 관리직은 아닌 모양이지.

하청의 계약직이거나, 노년의 일용직일지도 모르겠다.

현대문명의 근간인 건축물을 만드는 업종이다.

평균 종사자가 200만 명에 가깝고, 알바 등으로 거쳐간 청년들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열 명 중 하나는 경험해봤을 일.

하지만 경기나 기후에 의해 작업 일수가 달라지며, 부상 위험도 상당히 높아, 대중의 인식은 극히 나쁜 편이다.

‘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라는 차별주의적 세뇌의 타깃이 되는 직업군인 것.

그나마 수입이라도 좋다면 만족하며 살 수 있겠지만, 훑어본 집안의 세간은 썩 풍요롭지 않았다.

장녀가 일하고 있음에도 극히 초라한 살림살이.

양친의 이혼에 그런 이유가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돈을 잘 못 버는 남편은, 긍지를 주는 대상이 되기 힘드니.

“저, 저기, 뭐 좀 드릴까요……?”

거실에 앉자, 유하늘이 어쩔 줄 모르고 꼼지락거렸다.

너무 급하게 들어온 감이 있긴 하지.

우선은 마음부터 안정시켜줘야 할 듯했다.

“바울아. 과일 사 온 거 남았니?”

“네. 차려오겠습니다. 야, 따라와.”

“저, 저요?”

“그래. 손님 혼자 일하게 시킬 거냐?”

유하늘의 막냇동생이 머리를 긁적이며 손바울을 따른다.

투덜거리던 것에 비해서는 관계가 양호해 보였다.

내 부탁으로 라포 형성에 애를 쓴 모양.

두 청년의 뒷모습을 일별하며, 유하늘에게 자리를 권했다.

“약속도 없이 쳐들어오게 됐습니다. 미안해요.”

“아뇨, 괜찮아요…….”

“프리VR 공개상담에도 참여했었지요? 미안합니다. 집단상담이라곤 해도 좀 더 신중하게 이야기를 들어드렸어야 했는데.”

“아, 아뇨. 괜찮은데…… 어? 어떻게 아셨어요?”

손바울은 우연한 구조를 가장해왔다.

혹시라도 내 명예가 실추될까 염려한 까닭.

나 역시 불법적인 개인정보 수집은 숨기고 싶지만……

내담자 본인에게는 고백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케룸이라는 내담자의 목소리를 듣고 노파심이 들었습니다. 곧 삶을 놓아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이었지요.”

“저, 정말요? 으아…….”

“거기다 아바타가 나츠미였잖습니까.”

“그, 그것도 아세요? 으아…….”

“그래서 바울이에게 추적을 부탁했습니다. 해서는 안 될 불법적인 신상털이였어요. 그 점도 사과드립니다.”

“아, 아뇨…… 괜찮아요. 덕분에, 살았어요. 감사합니다…….”

자살자를 구해놨더니 왜 죽지 못하게 했느냐며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극히 드문 케이스.

스스로를 죽이는 일은 근본적으로 갈등의 소산이다.

마음 한쪽에는 살고 싶다는 욕구 역시 존재하기에, 심리가 안정되면 구조자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다만 유하늘의 감사인사는 조금 복잡해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망상 속의 심판자가 자신을 살리려 노력했다는 얘길 들으면, 아무래도 인지부조화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

“해명이 늦어졌는데, 이쪽부터 확실히 말씀드리지요. 유하늘 씨가 밉게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 불쌍한 아이를 자살로 몰아간 일만큼은 용서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하늘 씨가 삶을 놓기를 바란 적은 없습니다. 뉴스에서 떠들었던 이야기는…… 원한보다는, 한이었습니다.”

“한……이요?”

“예. 그저 공감해주길 바랐을 뿐입니다. 내가 비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밉고도 밉지만, 하늘 씨에게 복수할 권한은 내게 없습니다. 유족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요.”

“……유족들이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자극된 듯했다.

후회와 공포가 함께 얼굴을 채운다.

그 얼굴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청년.

도저히 살인마로는 보이지 않는다.

적당히 성실하고 적당히 이기적인 시대의 일원……

그런 그녀가, 조금 더 어린 한 젊은이를 살해했다.

무수한 공범들과 함께.

“유족들이라면 하늘 씨가 죽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실현 가능한 일은 아니지요. 원한의 대상이 될 만한 기자가 적어도 수십 명. 극악한 악플러들만 보태도 백 명은 가뿐히 넘어갈 겁니다. 무엇보다 그중 누구에게도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기자들도 악플러들도…… 친고죄인 모욕 정도에만 해당해, 기껏해야 벌금 정도에 그치겠지요.”

“법……으로는 그렇죠. 그래도…… 밉겠죠.”

“유족들이나 팬들의 복수심을 이해하십니까?”

“네, 네.”

“그걸 아는 사람이, 왜 그랬습니까?”

“죄송……해요.”

최소 백 명 이상의 공범들.

개중에서 죄책감을 느낀 이는, 내가 알기로는 한 명뿐이다.

유하늘만이 그나마 반성할 줄 아는 죄인이었다.

망상장애를 발현해 스스로를 죽이려 했을 정도로.

물론, 그것도 용서의 충분조건은 못 된다.

반성 좀 했다고 가족을 잃은 이들의 마음이 풀릴 리 없다.

그녀의 속죄는 사과 한두 마디로 끝나선 안 된다.

“그런 말은 이제 무의미합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가 그리 가벼울 리 없지요. 그러니 사과는 자살에 한정해서 듣겠습니다. 다시는 엉뚱한 생각 마세요.”

“저…… 죽는 게 낫지 않을까요……?”

“당신이 죽는다고 고인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유족들에게는 또 어떤 위로가 되겠습니까? 통쾌할까요? 개운할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수백 공범 중 하나의 자살이라면…… 글쎄요. 별다른 위로가 안 될 듯하군요.”

“그럼 전, 저는…… 어떡해요?”

“평생 속죄하며 살아야지요. 죽음이라는 도피처에서 안식할 기회는 허락지 않겠습니다.”

“아…… 속죄…….”

고인과 무관한 내가 감히 판결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유족들의 심리적 만족을 위해 유하늘의 자살을 방조할 수도 없는 노릇.

만일 피해자들이 복수하겠다며 직접 유하늘을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미래를 위해 말려야만 할 터였다.

그렇기에 내 심판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유하늘의 속죄는 적극적이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죄업망상이 다시금 고개를 쳐들 테니.

“하늘 씨. 복직하세요. 그리고 그릇된 언론인과 대중을 나무라는 심판자가 되세요. 그것만이 당신이 속죄할 길입니다.”

“시, 심판자요?”

“그렇습니다. 송이랑 씨의 죽음에는 무수한 죄인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가깝게는 직접 라이브 방송에 찾아가 입에 담지 못할 모욕을 가한 악플러가 있을 것이고, 멀게는 소극적이나마 인터넷기사 댓글이나 개인 SNS에서 험담을 한 네티즌이 있을 것이며, 하늘 씨처럼 의도적으로 이간질을 했던 기자들도 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하면 수천 명 단위가 돼요. 그 나머지가 멀쩡히 웃고 있는 와중에, 하늘 씨 혼자 자살한다고 속죄가 될 것 같습니까? 그들 모두가 반성하며 고인 앞에 참회하도록 만드세요. 쉽진 않겠지만, 해내세요.”

“……저, 정말 쉽지 않은데요……. 데스크…… 편집국에서 이상한 기사 쓴다고 뭐라고 할 거예요. 조회수 안 나와서 수입도 줄어들고, 선배 기자들한테 미움 사서 잘릴 수도 있고……”

“당연히 어렵겠지요. 그저 공포와 후회 속에 자기 목숨 끊는 도피보다는, 백배 천 배 어렵겠지요. 그러니 속죄인 겁니다. 자살처럼 유치하고 쉬운 방법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으아…… 네…….”

사실은, 그것조차 완전한 속죄는 못 된다.

수천수만 명이 진심으로 고개를 조아리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고인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죽는 날까지 죄인일 수밖에 없다.

유하늘도 나도.

그 관리감독을 나 외에 누가 할 수 있을까.

죄인의 마음속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는 인물만이 속죄의 진정성을 평가할 수 있다.

NBSC를 가진 나만이.

「 내담자 명 : 유하늘

평가 결과 : 자판을 두드리던 살인자. ‘꼰마님’의 심판으로 인해 속죄를 고민하게 됐다. 그 완성은 흐릿한 안개 속. 」

미안하지만, 완성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토록 이어질 살인자의 참회니.

나는 그녀를 언제까지고 지켜보며 심판해야 한다.

돌아올 수 없는 이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도록.

사후세계가 있어 그곳에서 피해자를 마주하게 됐을 때, 아주 조금이나마 동정받을 수 있도록.

우리는 괴로움과 부끄러움 속을 살아가야 한다.

“하늘 씨. 거칠게 말했지만, 실은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군대에서 한 아이가 자살할 때까지 그 조직적인 폭력을 묵인했어요. 나도 살인자입니다. 사실은 그때 함께 죽었어야 할.”

“네……? 네…….”

“그래서, 세상을 바꾸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다시는 누구도 스스로를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걸 해내지 못한다면, 나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감히 당신을 붙잡았습니다. 나와 같은 길을 걷길 바라며. 이 기대에 동의하십니까?”

“……동의, 해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후 모든 기사를 감독하겠습니다. 하늘 씨가 다시금 과거처럼 타인을 괴롭히는 기사를 쓰려고 한다면, 그때는 내가 직접 당신을 심판하겠습니다.”

“아…… 그건…… 네. 저한테는…… 구원이네요.”

죽이겠다는 말이 때로 구원이 될 수도 있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죄책감 속의 아이들에게는.

나 역시 그것을 바랐던 것 같다.

어떤 절대적인 히어로가 나타나, 내 죄업을 비난하며 내게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을 선고하기를.

하지만 영웅은 오지 않는다.

인간의 세상에는, 선하고 악한 인간들만이 있을 뿐.

신조차도 NBSC 같은 소극적인 간섭만을 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인간의 범주에서 속죄해야 한다.

복수도 용서도 기대할 수 없는 무간지옥을 살며,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힘겨워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전할 수 있는 작은 위로일 테니까.

“……선생님. 드시죠.”

손바울과 유하늘의 동생이 쭈뼛거리며 곁에 앉는다.

그중 동생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인사가 늦었네요. 상담사 꼰마, 박대민이라고 합니다.”

“아…… 네. 유마루라고 합니다.”

“예. 마루 씨는 삼남매 중 셋째지요?”

“네, 네.”

“대학생이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네.”

“혹시 학비나 용돈을 누나가 충당하고 있었습니까?”

“네. 누나가 계속…… 고맙죠.”

“그렇군요. 우애 깊은 남매였던 것 같네요.”

“네. 아빠 일은 좀…… 안정적이지 않아서요. 지방에서 작업 잡히면 집에도 못 왔고…… 우리끼리 뭉쳐야 됐어요.”

“그러면, 누나가 자살하려 한 이유도 알고 있습니까?”

“네…….”

유마루의 답에, 유하늘이 석상처럼 굳는다.

그 얼굴에서 동생에 대한 애정과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유마루 쪽의 감정 역시 비슷해 보였다.

“누나 노트북에, 유서가 있었어요. 오늘 아침에 봤어요.”

“그랬군요. 내용은 뭐였습니까?”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그런 거였어요.”

“좋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묻지요. 나는 하늘 씨에게 속죄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줬습니다. 그건 자살보다도 더 힘들고 고된 길이 될 겁니다. 지금까지처럼 생활비를 충분히 보태주지 못할 거예요. 동생분들은, 장학금을 무조건 따내는 한편으로 알바도 늘려야 될 겁니다. 동의하십니까?”

“……그래야지 누나가 사는 거면…… 네.”

입술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숙이는 동생.

그를 바라보는 유하늘의 얼굴은, 좌절로 일그러져 있다.

그 마음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나 역시 빈한한 집안의 장남이었기에.

“하늘 씨. 동생들이 걱정되십니까?”

“아, 그…… 조금……요. 대학, 잘 다녔으면…….”

“그래요. 아마도 그런 바람에 기사들을 마구 썼던 것 같군요. 조금이라도 풍족한 환경에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누나로서 한 푼이라도 더 벌려 했던 모양이에요. 맞습니까?”

“네…….”

“가상한 마음이지만, 방법이 그릇됐습니다. 사람 죽여 번 돈으로 행복해질 사람이 있을 리 없잖아요?”

“누나한테……! 그러지 마세요. 다, 다들 그러잖아요? 누나만 잘못한 거 아니잖아요?”

“마루! 너, 가만 안 있어? 어딜, 끼어들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가만히 거실을 훑어봤다.

별반 장식물이라 할 것이 없는 누런 벽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액자에 담긴 몇 개의 상장들.

하단마다 유하늘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그 끝에 연세대학교 언론학부 합격확인서가 있었다.

졸업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 씨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나요?”

“……네. 저 2학년 때 그…… 이혼하셔서요. 원래 맞벌이셨는데, 엄마가 다른 남자랑 살게 됐는데…… 사립대학 계속 다니기는 불가능해졌고…… 동생들도 있고 해서요.”

수입이 불안정한 부친에겐 세 아이가 힘에 부쳤을 터.

장녀 유하늘이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것은 그래서였다.

그때부터 가장 아닌 가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또래들의 80%가 웃으며 캠퍼스를 즐길 나이에, 한국에서 한 손에 꼽히는 명문대를 자퇴하고, 고졸 학력으로도 입사할 수 있는 3류 인터넷언론에 투신해……

그녀는 가족을 지키려 했다.

“수입을 생각하면 과외나 학원이 나았을 텐데요.”

“과외도 몇 건씩 하기는 했는데요, 요즘 애들이 많이 줄어들어서요. 그니까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아져서…… 언론에 빨리 자리 잡는 게 더 비전이 있을 것 같았거든요. 조회수만 잘 내면 재계약도 금방 해주고 되게 대우해준다고…… 고등학교 선배가 그렇게 말해서, 그것만 믿었어요.”

“그래요. 대단히 전략적이었군요.”

“죄, 죄송합니다.”

“누나가 뭐가 죄송해?”

“넌 좀 조용히 해! 죄송해요, 동생이 어려서…….”

스무 살이라 했지.

유하늘과는 여덟 살 차이.

그 사이에 스물두 살의 유가람이 끼어 있다.

어지간한 부장 급여로도 감당이 쉽지 않은 대학생 두 명.

그들을 뒷바라지하고자 정말 열심히 일했으리라.

누구보다 성실하고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일해……

그 결과, 한 여인을 죽음에 몰아넣었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선하고 악한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

날 닮은 스물여덟의 가장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참 착한 살인자로군요.”

“아니, 진짜, 아저씨가 뭔데-”

“유마루!”

“괜찮습니다. 오늘 상담은 여기까지니까. 내일은 다른 동생과 함께 만나도록 하지요. 그 뒤에는 춘부장 차례입니다.”

“왜, 왜요? 가족, 다 만나보셔야 돼요?”

“그럼요. 하늘 씨는 살인자지만…… 내게는 내담자고 제자입니다. 살인 이외의 죄로 고통받는 건 용납할 수 없어요. 그래서야 충실하게 속죄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 치료하겠습니다. 당신이 가장 처절하게 괴로워할 수 있도록.”

“……헤헤. 제자, 좋네요. 감사합니다.”

유하늘이 웃고, 유마루가 다시금 입술을 삐죽거리고.

손바울만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라도 우쭐대지는 마시죠. 어디까지나 서자 같은 존재니까. 선생님의 수제자는 납니다. 기어오르려고 한다면-”

“바울아.”

“흠. 그렇다는 얘깁니다.”

“다시 그런 말을 하면 너부터 혼낼 거야. 알겠니?”

“흠…… 죄송합니다.”

독점욕이 좌절돼 눈살을 찌푸리는 제자를 나무란 뒤.

나는 눈을 감고 유하늘의 삶을 생각했다.

이혼한 부모와 우애 깊은 동생들.

장녀로서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세월.

그 어디에서도 왜곡된 가정환경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열 살 차이 나는 동생을 위해 헌신했던 내가, 단지 선의만으로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아님을.

유하늘이라는 가장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망상장애의 요인을 심어준 억압은……

저 빛나는 상장들 가운데 있을지도 모르겠다.

연세대학교 합격확인서가, 곰팡이 핀 벽면에서 홀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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