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40화 (140/200)

# 140

50장 - 상담사의 심판 (2)

5월 18일 월요일, 나는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했다.

그리고 자살한 연예인에 관한 질문에 답했다.

악플러들이 아니라 수익에 목매는 당신들 언론이야말로 살인자라는 뉘앙스로.

꼭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지만, 진대수의 관점에 따르면, 옆자리 앵커가 살인범 본 사람처럼 창백해졌다는 모양.

그 앵커 한 명에 국한된 반응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게 관심이 있던 언론인들……

악플을 유발할 만한 기사를 양산해온 프리랜서 인터넷기자들 역시, 공중파 뉴스를 화제로 달군 그 사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물론 절대적인 영향력은 아니었을 터.

인간은 자신을 긍정하는 일에 능숙하다.

반성해야 마땅한 이유를 직접 들었을 때조차 합리화할 정도인데, 짧은 초대석 발언이 무겁게 전달됐을 리야.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 발언이 누군가를 괴롭히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내 의도보다 강경하게 해석된 상황을 해소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누구 하나라도 반성하기를 기대했다.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면 기쁘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틀린 사고방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부 특별한 사례를 제외하자면.

당시 앵커가 내 언급을 끌어내고자 했던 대상은, 송이랑.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연예인이다.

그런 그녀를 파멸로 몰아간 이들 중에, 유하늘이 있었다.

「 [스타SNS] 송이랑 라이브로 설전 ‘너는 팬 아냐’

[항상인포=유하늘 기자] 아이돌 출신 여배우 송이랑의 SNS 라이브가 화제다.

지난 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던 송이랑은, 노출 사진 업로드를 줄여달라는 팬의 요청이 채팅창에 올라오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해당 채팅을 본 뒤 잠깐 침묵하던 그녀는, “저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제 생각에 팬이 맞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라며 돌발발언을 내뱉었다.

송이랑이 자리를 비운 뒤 채팅창에는 설전이 일었다. “너는 팬 아니다” “이랑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 등의 주장으로 날 선 말다툼이 진행되는 와중에 갑자기 방송이 종료됐다.

이와 관련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송이랑을 옹호하는 의견과 비판하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는 “표현의 자유”라며 송이랑의 행보를 지지했지만, 대다수는 “지나치다” “공인으로서 자각을 가져야 한다” “팬이 아니라며 불통하는 아이돌이 어디 있냐”며 상식선의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송이랑은 지난 며칠 동안 유명 포토그래퍼 진한과의 협업으로 화보를 촬영해 일부를 SNS에 게재한 바 있다. 」

「 [스타SNS] ‘역대급 괴짜’ 송이랑, SNS에 폭언 게재

[항상인포=유하늘 기자] 아이돌 출신 연기자 송이랑의 SNS 게시물이 화제다.

지난 12일 송이랑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생명을 지켜줘요’라는 내용의 캘리그라피를 게재했다. 관련해서 네티즌들은 선배 배우인 이정운이 11일 뺑소니 용의자로 입건된 일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며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일부는 “개인으로서 SNS에 의견을 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며 옹호했지만, “수사가 종결되지도 않은 걸 속단하는 건 어불성설” “선배 배우를 저격하는 게 말이 되냐”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관종”이라며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다…… 」

「 [스타SNS] 송이랑 시스루로 미모 과시 ‘내 몸매 최고!’

[항상인포=유하늘 기자] 연기자 송이랑이 시스루 스타일의 웹화보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 [스타SNS] 송이랑 눈물 라이브에 네티즌 ‘갸우뚱’ 」

……부모의 원수라도 되는 것일까.

얼핏 살의까지 느껴질 정도로 공격적인 기사들이다.

워딩이야 팩트에 더해 네티즌의 반응만 전달하는 것처럼 꾸며내고 있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 뿐.

저런 기사를 보면 연예인 SNS에 별 관심 없던 이들마저도 송이랑 계정에 악플을 남길 법했다.

그런 과정 끝에, 송이랑은 자살했다.

2019년의 사건.

한때 가장 빛나는 별이었던 아이가, 세계에서 내쳐졌다.

아마 어떤 기사에도 사심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대중의 니즈에 맞춘 전략일 뿐.

저렇게 쓰지 않으면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 게 현실이다.

기자로서의 소명의식 없이 용돈벌이로 기사를 올리는 이들에게, 급여의 유혹을 포기하고 중립적이며 온건한 기사로 일관하는 일이 어찌 쉬울까.

단순히 기자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양심이란 것이 가소로운 농담이 된 시대.

직장인 중 들키지 않고 횡령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소시민의 가난에 만족하며 포기할 이가 몇이나 될까.

예술가 중 들키지 않고 표절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자신의 돈 안 되는 작품세계를 고수할 이가 몇이나 될까.

유혹을 끊어주는 것은 양심보다는 법령 쪽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직업군이든 직업윤리로만 강제할 수 없는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기자들 역시 적절한 규제만 있었다면 저렇듯 비화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니 누구라도 혼란스러워질 일이다.

양심 없이 돈을 추구한 기자들을 비난해야 하나.

관련 규제를 확충하지 못한 정부부처를 비난해야 하나.

남의 약점 파고들어 괴롭히는 일에 열의를 보이는, 기괴하고 저열한 인간의 본성을 비난해야 하나.

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수술해야 마땅한 일일까.

그 부분에 대해, 기자들은 확연한 답을 갖고 있었다.

「 [스타SNS] 송이랑 자살, 악플로 인한 우울증 의심 」

「 [스타SNS] 송이랑 SNS의 악플 수준 」

「 [스타SNS] ‘악플 피해자’ 송이랑을 추모하는 스타들 」

「 [스타SNS] ‘악플러는 살인자’ SNS 자성의 물결 」

유하늘 등의 기자들은, 불특정다수의 악플러들을 심판대에 세움으로써 책임의식으로부터 도피했다.

사실은 그들 역시 공범임에도.

그들 자신이 ‘송이랑 총공격’을 진두지휘했으며, 악플러들은 그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기자들은 마치 고위 정치인들처럼 꼬리를 잘랐다……

그 일련의 흐름을 보며, 문득.

내 마음속의 어떤 감정을 느꼈다.

거대하고 어두운 그늘이었다.

뉴스데스크 초대석에 섰을 때, 나는 용서를 말할 셈이었다.

그럼에도 해석은 거꾸로였다.

그 방송을 본 대다수가 언론에 대한 내 적의를 이야기했다.

‘관계’와 ‘화술’이 모두 110이 되어, 어지간해서는 오해를 줄 리 없는 표현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나는……

아마도, 양가감정 속에 있었던 모양이다.

조명기에게 미디어를 믿는다고 말했지만.

이용덕에게 악플러를 용서하겠다고 말했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서, 나는 언론을 미워하고 있었다.

무책임하고 양심 없는 족속들이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는 현실을, 증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초인적인 ‘관계’와 ‘화술’에는 강력한 힘이 실린다.

고작 인방으로 트라우마까지 치료할 수 있는 것은 그 덕분.

조금 과장하자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가능할지 모르겠는걸’ 따위의 반응을 불러일으킬 만한 초능력이었다.

그런 힘으로 말했던 것이다.

최소 100만 명 이상의 시청자들을 카메라를 통해 노려보며.

스스로도 모르는 증오심을 두 눈으로 뿜어내면서.

송이랑을 죽인 것은 악플러만이 아니라고.

그것이 5월 18일 20시 11분의 일.

그날 저녁 19시 40분의 기사를 마지막으로, 유하늘은 더 이상 어떤 기사도 쓰지 않았다.

쓰지 못했던 것이다.

내 발언이, 묻어뒀던 죄의식을 되살렸기에…….

“역시 신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요.”

점심 무렵에 종위보육원에 도착한 손바울은, 귀기 어린 얼굴로 그렇게 논평했다.

그로써 추측이 입증되었다.

“심판……이었구나.”

“네. 심판하지 않으니 신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유하늘은 스스로 심판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출연하신 뉴스를 본 뒤 자살을 결심한 거예요. 그거야말로 신의 힘이죠.”

“……자세히 말해주겠니?”

“자세히 묻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혼자 주절주절 말하더라고요.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난 살인자예요. 내가 죽인 거예요. 누구보다 빨리, 최선을 다해 썼어요. 당사자가 보면 죽고 싶어질 만한 기사를 썼어요. 그래야 조회수가 느니까. 그게 인터넷기자의 원칙이니까. 맞아요. 그래서, 나보다도 어린 그 여자애를 절벽 끝으로 몰아넣었어요. 아니라고 믿었어요. 내가 한 게 아니라고, 나쁜 건 대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악플러들을 죽일놈으로 만들면 죄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 사람이 나한테 말했어요. 네가 죽인 거라고. 네가 살인자라고. 그래요. 그런 거였어. 난 죽어 마땅해. 죽지 않으면, 찾아올 거예요. 날 죽이러 올 거예요……. 흠. 듣는 내내 한 대 치고 싶었습니다. 망상장애 맞죠?”

망상장애는, 상식적 수준의 망상이 일상생활을 왜곡시키는 증상을 일컫는다.

여기서 ‘상식적 수준’이라는 것은 의학적인 관점.

환각이나 사고장애를 일으키는 조현병과 비교했을 때 덜 기괴하다는 것뿐, 일상적으론 있을 수 없는 망상이다.

대표적인 유형은 유명인에 대한 사랑이 집착이 되는 색정형, 자신을 위대한 존재라고 믿는 과대형, 연인의 부정을 의심하는 질투형, 주변인이 자신을 공격한다 믿는 피해형 등.

개중 피해형을 흔히 피해망상이라 부른다.

유하늘이 앓고 있는 증상이 거기에 해당할 듯했다.

다만, 정확하게는 혼재형.

보편적인 피해망상은 공격성으로 대변된다.

그게 아니라 스스로를 부정하고 자살까지 기도했다면, 아마 죄업망상과 결부되어 있겠지.

그쪽은 망상이라기보다는 진실인 셈이지만.

스스로를 죽어 마땅하다고 믿으며, 그로 인해 심판자가 찾아오리라고 망상하고 있는 상태.

유하늘의 죽음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마도, 나로 인해서.

망상장애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유년기의 과도한 억압이 사회적인 고립, 자존감 저하 등의 환경 속에서 도파민 과다분비로 이어지고, 그것이 변연계 및 기저핵의 과활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공격적인 말 몇 마디 들었다고 없던 질환에 시달리게 됐다는 판단은 지나친 비약이지만……

110의 ‘화술’이라면, 트리거 정도는 됐을 터.

유하늘을 자살로 몰아넣은 것은 나였다.

그 진단을 [내담자 평가]가 긍정했다.

「 내담자 명 : 유하늘

평가 결과 : 자판을 두드리는 살인마. / ‘꼰마님’의 심판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리라 믿고 있다. 그 해소법은 하나뿐. 」

“하하…… 그랬구나. 그랬던 거였어.”

“……선생님? 설마 자책하고 계신 겁니까?”

손바울이 아니길 바란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그 반응에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바울아. 너와 내가 본 게 오류 없는 진실이라면, 유하늘은 나 때문에 자살을 결심하게 된 셈이야. 미안한 일이잖니.”

“그게 어떻게 미안한 일입니까? 기뻐할 일이지. 악플을 없애겠다고 선언하셨잖습니까? 그 원인인 언론을 향해 메스를 들이대셨잖아요? 그 결과 나온 게, 이 훌륭한 심판인 거죠.”

“바울아. 훌륭한 심판은 없어.”

“정말요? 송이랑 사건은 사회심리학 공부를 위해 저도 나름 파고들었던 부분입니다. 유하늘은 악플의 기점 중 하나가 맞아요. 대중의 관심은 결코 스스로 재생산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거의 전 국민이 SNS를 활용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그 태반은 자기 현실 친구 몇몇과만 소통할 뿐이죠. 송이랑 SNS를 팔로우한 사람이 개중 몇 %겠습니까? 극소숩니다. 그중 대다수는 진짜 팬들일 거고, 관종 악플러들이야 그 자리에서 연예인 울리는 걸로 만족하는 족속이고요. 그냥 놔두면 절대로 일파만파 번지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초기에는 악플 있어도 화기애애하게 라이브 한 경우가 많았어요. 그랬는데, 유하늘 등의 기사가 무수한 악플러를 부르게 됐던 거죠.”

안다.

알고 있다.

유하늘은, 송이랑이라는 스타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가장 사악한 악플러보다도 잔혹한 살인마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 진실에 사로잡힐 수 없다.

유하늘이 에픽퀘스트의 대상이라서가 아니라……

그 아이를 죽어 마땅하다 생각한다면, 동일한 기사를 ‘우라까이’로 재생산한 수십 명을 마음속에서 죽여야 하기에.

나만큼은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바울아. 일단은…… 일단은 곁에 있어주렴. 그 아이가 자살하지 못하게 다독여줘. 부탁한다.”

“흠…….”

“바울아.”

“선생님 말씀은 이행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여자가 죽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이것만큼은 이해해주셨으면 싶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차량에 오르며, 손바울의 말을 곱씹었다.

나를 거의 신처럼 추앙하는 아이.

그럼에도 내 뜻에 반해 죽음을 논하고 있다.

그 마음의 추동 역시, 나 자신의 양가감정 때문일 터였다.

뉴스데스크에 출연한 나는 분명 언론을 증오하고 있었다.

내게 비상한 관심을 가졌으며 관찰력 역시 뛰어난 손바울이라면, 필시 그 감정을 꿰뚫어봤을 터.

그가 긍정하려는 것은 그때의 박대민이다.

과거의 스승을 현재의 스승이 부정하는 상황이기에, 제자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운 것도 당연했다.

실은 나 자신도 마찬가지.

일단은 살리자는 결론만 있을 뿐이다.

마음속에서는 양가감정의 소용돌이가 지독했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덮고 살아왔던 걸까.

깨닫고 나니, 그늘은 끔찍한 마물이 되었다.

그 앞에서 좀체 용서를 말하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송이랑의 미소 때문에.

TV고 K팝이고 드라마고 무관심하게만 살아온 워커홀릭이었지만, 그 연예인과 아주 접점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미디어 자체제작을 위해 인수해 재편한 프리웍스.

송이랑은 그 자회사의 첫 번째 웹드라마 주연이었다.

아마 그쪽도 데뷔작이었으리라.

막 그룹에서 탈퇴하고 연기자로 전향한 시기.

그녀는 해사하게 웃으며 대본을 받아들었다.

그 얼굴의 어느 한구석에서도, 사신의 그림자 따위는 엿보이지 않았다.

4년 전의 일.

만약 그때도 그녀가 괴로워하고 있었던 거라면.

그때 내 ‘진단’이 턱없이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아이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정일 뿐이다.

그 당시에는 정말 심리적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모회사 관리직인 나와 가까워질 가능성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나는 심판하고 싶었다.

낄낄거리는 악플러들을, 표리부동한 기레기들을, 연예인 걱정이 세상 제일 쓸데없는 짓이라며 확연한 자살의 징조를 무시하던 대중들을, 싹 다 모아서 단두대 앞에 세우고 싶었다.

내 딸이었다면 그랬을 테니까.

송이랑이 남이 아니라 내 딸이었다면, 내 남은 생을 모조리 분노와 증오와 살의로 가득 채웠을 테니까.

그렇기에 도세나에게 동조해 악플러들을 욕했다.

죄 없는 앵커를 향해서 날 선 발언을 내뱉었다.

내 마음은, 아름다운 오아시스가 아니었다……

“꼰마님? 오늘 표정이 좀 어두우신데요?”

이혁권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설적인 게이머 ‘뉴겜’이자 테이크게임즈의 감독인 그는, 동시에 인터넷방송의 열혈 후원자 ‘마구니’.

내 얼굴의 그늘을 쉽게 눈치챈 것도 당연했다.

“미안해요. 좀 골치 아픈 일이 있어서. 그렇지만 공개평가전에 폐가 되지는 않을게요. 캐스터석에서는 집중하겠습니다.”

“에이, 그건 대충 해주셔도 됩니다. 그냥 궁금하네요. 무슨 일이십니까? 제가 뭐 도와드릴 게 없는 부분일까요?”

“꼰마 쌤! 무슨 일 있으세요?”

경기 준비에 집중해야 할 ‘투썬’ 양선호까지 달려온다.

내 표정은 그 정도로 읽기 쉬운 걸까.

절로 한숨이 나오는 일이었다.

그런 한편으로, 못내 양선호 쪽에 시선이 갔다.

내 뉴스데스크 초대석을 본 뒤 합방을 제안했던 아이.

마음이 그 이름처럼 선량하고 호의적이기만 해서, 자길 욕하는 악플러들조차 용서하려 애쓰는 청년이었다.

저 아이라면 내 딜레마에 답해줄 수 있지 않을까.

“……양 선수. 혹시, 기자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기자들요? 어떤 기자님이요?”

“인터넷기자들 말입니다. 근래에는 롤 선수들도 연예인 비슷한 입지가 돼서, 개인방송에서 한 발언들을 토대로 인터넷 기사가 꽤나 나옵니다. 그런 기사들이 관심 없던 팬들에게도 악플의 기회를 안겨주고 있지요. 그들이, 밉지는 않습니까?”

“기자님들이 밉냐고요? 어…… 왜요? 어, 저희는 그냥 편하게 앉아서 손가락으로 게임만 하는데, 그런 저희가 돈 많이 벌 수 있게 해주시는 게 기자님들이잖아요? 기사가 안 나오면 화제성이 떨어져요. 그러면 대회 주목도가 낮아지고, 광고가 줄어들고, 연봉도 깎여요. 그러면 또 해외리그로 선수들 빠져나가서 리그 경쟁력 줄어들고…… 악순환 될 거예요.”

“필요하기에 긍정한다는 뜻인가요? 악플을 유발할 만한 왜곡성 기사를 마구 쓴다고 해도요?”

“어, 음. 그건 싫은데…… 근데 전…… 그냥, 고마워요. 좋은 기사도 나쁜 기사도, 나쁜 마음으로 쓰는 건 아닐 테니까.”

순진무구한 대답.

그렇지만 그것도 정답이다.

e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연예계 역시 무수한 기자들의 열성적인 보도 없이는 좀처럼 흑자를 내기 어려운 업계다.

유하늘도 악의로 송이랑을 공격하진 않았을 테고.

악플러들은, 기자들에게 쉽게 휘둘리는 하수인.

그 기자들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

나는 그 어느 쪽도 증오할 수 없다.

그런 이성이 그늘 속의 독을 막고 있던 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너졌지.

진심을 깨닫자, 둑은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오래 가둔 만큼 극히 거대해져, 내 호수를 휘감고 솟구쳤다.

그 끝에는 하나의 감정과 하나의 이름이-

“꼰마님. 혹시 기억하십니까? 아리아리가 별사탕 쏜 날.”

이혁권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무수한 후원을 받아왔지만, 그만큼 선명한 기억은 드물었다.

[아리아리님 별사탕 1개. 히히. 아저씨 갠차나여. 내얘기 일거줘서 고마워여. 재밌었어여. 인제 딴사람 들어바여.]

나는 그날……

그 후원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었던가.

“그거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꼰마님도 참 힘드시겠구나. 왕따 피해자인 아이를 위해 울지만, 왕따 가해자인 아이들을 미워하지도 못하니까요. 그런 사람에게 이 불합리한 세상이 어떤 식으로 해석될지가 궁금했습니다. 호기심에 점점 꼰마님 표정에 집중하기 시작했죠. 주작 같은…… 현실이었거든요.”

“주작 같은, 현실이요.”

“예. 보통은 그럴 수 없으니까요. 신의 아들이나 뭐 그런 존재만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근데 지금 꼰마님은, 확실히 인간미가 있네요. 그게…… 이기적인 말일 수 있겠지만…… 조금 슬픕니다. 전 아마, 주작이 현실이길 바랐던 것 같아요.”

멋쩍게 웃어 보인 뒤, 이혁권은 돌아섰다.

그 등을 보면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오랫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자꾸만 한 이름이 떠올랐다.

그 끝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됐다.

“제발, 제게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손바울의 모친이 남긴 기도문.

신을 개잡놈이라 부르던, 불경 그 자체인 이야기.

“저는…… 저는, 그들을 심판하지 않을 것입니다. 쓰러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살인마마저 사랑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도록…… 이 모자란 상담사에게, 힘을 주십시오…….”

대답은 없었다.

다만, 호수 위의 바람이 잦아들었다.

안개가 걷힌 마음에, 독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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