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49장 - 상담사의 아바타 (3)
“케룸 회원정보요? 으아. 어려운데요. 그 유저는 왜……?”
명현수 과장이 난색을 표한다.
내담자의 비밀보호와 유사하게, IT업계에도 유저 개인정보의 보호가 무척 중요한 문제인 까닭.
자칫 소문이 퍼지면 엑소더스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게도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케룸이 정말 에픽퀘스트의 대상인 유하늘이라면, 어떤 위기에 놓여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르기에.
지금껏 퀘스트의 주인공과는 어떤 식으로든 얽혀왔다.
그렇지만, 다시 만날 날을 멍하니 기다려도 될까.
그 부분은 확신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네 건의 에픽퀘스트를 돌이켜본다.
조명기와 한효준과 손바울은 먼저 내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용덕의 경우엔 반대.
관악캠퍼스와 연건캠퍼스로 활동 영역이 전혀 달랐고, 프리VR 모델 역시 미련 없이 때려치울 수 있는 입지였다.
내가 협력을 결심하고 다가가지 않았더라면.
그로써 제2의 루트를 발동시키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내 스승이 되어줬을지는 차치하고, 의사로서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으리라 단정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살한 아들을 주민성에게 겹쳐보던 정신과 의사.
만약 그가 나와 끝끝내 대립했다면.
그 결과 주민성이 월드투어 도중 어떤 문제에 직면했다면.
이용덕은, 두 번이나 자식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손바울 역시 그 점에서는 비슷했다.
감정이 없었기에 버텨냈을 뿐, 누구보다 위험했던 아이.
처음 찾아왔던 날 내가 그를 제대로 붙잡지 못했더라면……
뒤늦게나마 감정을 찾아주는 일이 가능했을 것인가.
퀘스트라는 것은 본디 실패의 가능성을 내포한 과제다.
나는, 유하늘과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먹구름처럼 슬프게 웃던 그 아이와…….
“현수야. 누구도 모르게 하마. 꼭 알아야 해서 그래.”
“음…… 부장님 부탁이라면 무조건 들어드리고 싶은 게 제 심정이긴 하지만…… 이건 진짜 어렵네요. 직업윤리라서…….”
“부탁한다. 결코 네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마.”
“아, 부장님도 참. 제가 피해 때문에 이럽니까? 그냥 잠깐만 제 기준과 부장님에 대한 존경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거죠. 부장님 그런 얼굴 보면 가슴 미어진다고요. 아으, 죽겠다.”
갈등은 길지 않았다.
현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왜 그러니? 문제가 있어?”
“탈퇴를…… 했어요. 데이터 삭제 요청까지 들어와서, 지원팀에서 딜레이 없이 바로 처리해준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찾을 수 없다는 말이구나.”
포렌식(forensic)을 통해 데이터를 복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서버 이전에 긴급점검에……
현수 혼자서는 절대 처리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나와 유하늘 사이의 접점은, 끊어지고 말았다.
몸이 떨려왔다.
케룸의 목소리는, 아닌 척 웃고 있었지만, 진한 물빛이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결코 내지 못할 음성.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만약, 공개상담에서 보인 내 어떤 실수가 그녀로부터 나에 대한 라포를 끊어낸 것이라면.
그로써 그녀가 마지막 기대마저 잃고 세상에 절망했다면.
나는 그 결말을 도대체-
“아. 얘, 선희네요.”
“어? 선희?”
“삭제 처리 도와준 애요. 다 바빠서 대리 선까지 올라갔나.”
끝까지 듣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비밀상담 시작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서.
하지만 우선희 대리가 혹시라도 메일주소를 기억했다면.
그랬다면, 끊어진 실을 이어붙일 수 있다……!
“네? 아. 그건 좀.”
“선희야, 부탁하마. 절대 아무도 모르게 할게.”
“아,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기억이 안 나요.”
“아…….”
“메일주소까지 상세하게 보고 그러진 않으니까…… 죄송해요. 왜 그러시는데요? 혹시, 방송 중에 뭐 느끼신 거예요? 케룸 유저한테서 어떤 시그널이 있었던 거예요?”
덩달아 안달이 난 우선희에게 애써 웃어 보였다.
그리고 마음처럼 흔들리는 발걸음으로 돌아섰다.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길이, 천 리처럼 멀게 느껴졌다.
“어라? 여기 계셨네요?”
올려다보니, 손바울이 있었다.
집에 안 가고 돌아다니고 있었던 모양.
손에는 시리얼 컵이 들려 있다.
“너…… 가서 밥을 먹지는.”
“선생님, 오늘 식사하실 시간도 없다면서요? 여기 사람들 참 못 쓰겠네요. 아무리 메인모델이라도 그렇지, 무슨 일정을 그렇게 빽빽이 잡아? 이거라도 좀 드시라고 사 왔습니다.”
“……고맙다. 일정은, 내가 잡은 거야. 최대한 많은 내담자를 만나고 싶어서. 공개상담에서 말하기 힘든 사연도 있으니.”
“흠. 그런데 선생님, 표정이 안 좋으시네요. 왜 그러십니까?”
왜냐하면……
가지 못한 길 때문이다.
내가 붙잡아주지 못한 어떤 마음 때문이다.
서브퀘스트에 사로잡혀 있었다.
유키히메, 오동동, 개딴딴이라는 세 자살 고위험군.
그들에게만 시선을 집중했다.
나머지는 별로 중요치 않은 내담자라고 단정하고, 퀘스트가 알려준 대상들에게만 귀를 기울였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NBSC가 위험군을 놓칠 리 없다 믿었지만……
이미 에픽퀘스트의 대상이 되어 있는 유하늘이라면, 시스템상의 충돌로 서브퀘스트에 등재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녀야말로 가장 위급한 내담자였을지도 몰랐다.
“바울아…… 나는, 놓쳐선 안 될 사람을 놓쳤다.”
“예? 아, 케룸이요?”
“그래. 그렇게 보내선 안 되는 내담자였어.”
“그렇구나. 그러실 것 같아서 알아봤습니다.”
뭔가, 굉장히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았다.
잠깐 고개를 흔든 뒤에야 이성이 돌아왔다.
“어, 알아봤다고? 뭘?”
“케룸이요. 애가 좀 같잖게 굴…… 그러니까 묘한 리액션을 보였잖아요? 그래서 사무실 기웃거려봤습니다. 그랬더니 빈 컴퓨터가 꽤 있더라고요. 토요일이라 그런가.”
“너, 너, 그건…… 산업스파이나 하는 일인데.”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괜찮습니다. 저는 아바타니까요. 현세의 범죄 정도야.”
“……신이 아니라니까.”
장난기와 함께 손바울의 입에 담긴 아바타.
가상현실의 아바타가 아닌 원 의미를 말한 것이다.
신의 분신이기에, 그 뜻을 위해서라면 세속적인 가치에 얽매이지 않는.
원래였다면 화를 냈을 일이지만……
지금만큼은 그럴 수가 없다.
그것이야말로, 좌절하던 내게는 신의 기적이었기에.
“알아봤더니, 어땠니?”
“기자였습니다.”
“기자?”
“예. 메일주소 검색하니까 바로 뜨데요. 유하늘이라고, 항상인포 연예부예요. 인터넷기자 같습니다. 써놓은 기사라곤 연예인 SNS 반응이나 핫이슈 단신 같은 것밖에 없더라고요.”
취재가 아니라 가십을 수집하는 인터넷기자.
유하늘은 그런 직군이었다.
그 사실에서 일련의 변천사가 떠올랐다.
인터넷언론은 한때 청년층과 지식인들을 열광시키며 대안 언론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언론이 사양산업에 접어드는 풍토 속.
종편 등으로 활로를 찾은 대형언론과 달리, 영세한 인터넷언론은 2007년을 기점으로 파국을 맞이했다.
그때부터 그들은 언론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흑자를 내려면 정부 광고를 유치해야 한다.
그 공익광고의 마지노선은 포털의 기사 연동.
치열한 심사 경쟁을 뚫고 ‘뉴스캐스트’ 등에 오르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워딩으로 조회수를 높이는 일이 필수였다.
기자로서의 소명의식은 개나 주고 당장 대중을 유혹할 캐치프레이즈 전략부터 마련하라는 것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인터넷언론 편집국의 기조라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정규직 역시 극단적으로 축소됐다.
이른바 ‘프리랜서 기자’라고 불리는 인터넷기자의 양산.
기사의 질이 아닌 조회수로 돈을 버는 직군이다.
본질적으로 자아실현이 불가능한 업무구조였다.
윗선의 압박 속에서 연예인 가십만을 수집하는 일상……
멀쩡한 사람이라도 염세주의자가 될 환경이다.
작은 계기 하나로도 삶을 비관하게 됐을 법했다.
“아무래도 취재나 해볼까 하고 들어온 듯하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요즘 유명한 꼰마가 자살 카테고리로 VR 상담을 진행한다는 얘길 어떻게 주워듣고, 혹시 문제성 발언 끌어내면 조회수 나오겠다 싶어서 기어들어온 거겠죠. 같잖습니다 참.”
“……바울아. 목소리를 들었잖니.”
“흠. 울적해 보이긴 했죠. 그래도 싫습니다.”
“싫다니?”
“감히 선생님 말씀을 무시하고 도망쳤으니까요. 그러면 우울증이든 뭐든 걸려서 자살해버리는 게-”
“바울아!”
손바울은 찔끔한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드물게 겁에 질린 눈치였다.
어쩌면 엄한 조모의 호통이 플래시백 됐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미안한 노릇이었지만, 이 문제만큼은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바울아. 그런 말은…… 다시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생각조차도. 부탁하마. 그래줄 수 있을까?”
“……네.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냥, 이유가 궁금하긴 하네요.”
“사람은…… 우리는 말이다. 살아있기 때문에 사람이야. 죽고 나면 가지 않은 모든 길이 사라져버려. 미워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고인이 돼버린다. 심지어 사형이 선고된 자라 해도, 상담사라면 그들의 죽음을 논해서는 안 돼.”
“흠. 직업윤리인가요? 알겠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의 윤리.
손바울은 양친을 자살로 잃은 아이다.
아주 나중에라도 스스로 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리며 괴로워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비극만큼은 막아주고 싶었다.
“부탁한다. 유하늘을 사랑해주렴.”
“그건 안 되겠습니다. 저 현서랑 사귀기로 해서요. 방금 톡 받았거든요. 오늘부터 1일입니다.”
“……축하한다. 다만 내가 말한 건 인간애 쪽이었어.”
“그렇군요. 그거라면 노력해보죠. 그런데 진짜 위험한 상황입니까? 신의 힘으로 그걸 알아보신 거예요?”
“신의 힘…… 그래.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일종의 계시를 받았다. 정확한 사정은 몰라. 다만 너만큼…… 또는 너 이상으로 좋지 않은 환경에 노출돼 있을 수 있는 사람이야. 그래서 유하늘을 꼭 찾아야 해. 하지만 난 움직일 수 없다.”
“그렇죠. 다섯 시까지 세 건의 비밀상담이 있으시니까. 다시금 트롤리 딜레마인데요? 한 명을 찾느냐, 세 명을 맞느냐.”
손바울의 첫 번째 테스트.
그는 살인자들의 목숨과 복수자들의 목숨을 저울에 올렸다.
한쪽을 살리려면 한쪽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복수자들이, 그의 친부모였다.
하지만……
이번 일은 트롤리 딜레마가 아니다.
눈을 보지 않는 청년의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확신했다.
“한 명을 찾고, 세 명을 맞을 거다.”
“흠……? 설마?”
“그 설마가 맞아. 바울아, 유하늘을 찾아주렴. 나는 다섯 시까지 판교를 벗어날 수 없어. 부탁할 사람이 너뿐이다.”
“오. 저한테 부탁을. 흠.”
손바울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크게 떴다.
갈라진 홍해를 바라보듯이.
“최고네요. 네. 다섯 시까지 어떻게든 찾아내서 선생님 앞에 대령시키겠습니다. 전 선생님의 아바타니까요.”
“신이 아니래도…….”
제자는 듣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이 듬직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스스로 생각해도 민망한 노릇이지만.
이 순간 손바울은 정말 신의 화신 같았다.
나는 상담사.
약속된 상담을 제쳐두고 유하늘을 찾아 헤맬 수는 없다.
이제 갓 런칭한 VR 상담 어플에 별사탕을 충전해 비밀상담을 신청한 이들의 동기가, 단지 호기심뿐일 리는 없기에.
그들 중 누군가가 또 어떤 위기 속에 있을지 몰랐다.
다만 유하늘 쪽은, 경찰이 됐건 한상인포 편집국이 됐건, 공식적으로 연락해서 신병을 찾을 수 없는 상황.
정신건강이 염려된다는 말이 먹힐 리 없다.
나는 상담사일 뿐, 신이 아니니까.
다만 한 명만큼은 다르다.
내 아바타를 자처하는 손바울.
그는, 내가 때로 신과 같은 힘을 사용함을 믿고 있다.
그렇기에 맡길 수 있었다.
인간을 혐오하던 시절의 습관으로 인해 아직도 종종 시니컬한 말들을 내뱉고, 남의 사정은 생각지도 않은 채 덜컥 불법적인 일까지 자행하지만.
내 제자에게는 마음이 있다.
아름다운 꽃이 될 감정의 씨앗이 있다.
언젠가 한효준만큼이나 크고 멋지게 만개할.
내 제자는 그런 아이다.
유하늘을 찾아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이성과 감성은 별개의 문제.
비밀상담을 위해 스튜디오로 돌아간 뒤로도 번민이 끊이질 않았다.
주로 유하늘이 만든 아바타의 외양 면에서.
축 처진 눈꼬리로 웃는 소녀의 표상이었다.
핑크색 파나마햇 같은 것을 쓰고, 하늘하늘한 원피스 차림에, 푸른 단발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온.
소위 ‘여성여성’한 스타일의 대명사.
케룸에게서 어떤 구조 신호도 느끼지 못했던 건, 그 아바타가 누구나 흔히 만들 법한 미형인 까닭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울고 있었다.
에픽퀘스트가 지정한, 내가 구해야 할 최우선 목표였다.
그 아바타에도 분명 어떤 징조가 있었을 터.
110의 ‘진단’으로 일찌감치 알아챘어야 마땅했다.
왜였을까.
왜 그녀는 그토록 평범한 표상들만을 선택했을까.
답을 알게 된 것은, 세 번째 비밀상담마저 끝마친 뒤.
명현수가 하얗게 된 얼굴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킨 뒤 속삭였다.
“저, 부장님. 그 케룸 아바타요…… 어디서 봤다 했었는데.”
“봤다고? 그 아바타를?”
“네. 아니 그게, 예전에 <나츠미 스텝>이라고, 애니메이션이 하나…… 그러니까 되게 반전 있는 플래시인데, 그게…… 직접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인터넷언론이 몰락하기도 전인 2003년에 일본에서 제작됐다는 플래시 애니메이션.
그 영상의 한복판에, 케룸의 아바타가 있었다.
“이게 나츠미거든요. 얘가 전철 타고 여행하는, 그냥 귀여워 보이는 애니메이션인데, 자세히 보면 암시가 있습니다.”
“이건…… 설마.”
“벌써 눈치채셨어요? 네. 얘, 죽었습니다. 자살한 걸로 추정되고요. 그래서 지옥행 열차를 탄 설정인 건데…… 그래서 인터넷에서 꽤 떠들썩했었죠. 부장님. 부장님 짐작대로 케룸이란 유저가 상태가 안 좋았다고 한다면, 이거 어쩌면……”
징조는 있었다.
너무도 뚜렷하게, 내 눈에 명확하게 비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알지 못하는 세계의 이야기였기에.
내가 전혀 모르는 지식이라면, NBSC의 준거가 못 된다.
분명 신을 추정할 만한 초능력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 박대민이기에.
나는 무지했다.
너무도 무력했다.
그렇지만, 나는 단수가 아니다.
[선생님, 부끄럽습니다. 약속 못 지켜서 죄송합니다. 가능하면 판교까지 끌고 가고 싶었는데, 그건 안 됐습니다.]
“바울아.”
[네. 여긴 병원입니다. 빨리 건져낸 게 천만다행이래요. 4분이 골든타임인데, 구조대 위치랑 멀어서 구조율 제일 낮은 지점이었다나. 이래저래 아슬아슬했던 거죠. 아, 저 심폐소생술 처음 해봤습니다. 이게 되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바울아.”
[아무튼…… 그쪽으로 갈까 하다가, 어차피 선생님께서 오실 것 같아서, 여기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오실 거죠?]
“바울아. 고생했다. 고맙다.”
[고맙긴요.]
아무렇지 않은 척 답하고 있지만, 나는 안다.
제자의 목소리 속에 담겨 있는 격동을.
물에 잠겨가는 유하늘을 향해 헤엄치며, 자살자들의 아이인 손바울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나만큼은 모를 수 없었다.
“넌, 좋은 상담사가 될 거야.”
[……맥락이 이상합니다. 좋은 구조사 말씀하신 거죠?]
“하하. 넌 아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상담사가 될 거다.”
[흠…… 그렇긴 하겠죠. 누구 아바탄데요. 아무튼 저…… 외람되지만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저 걸칠 외투 하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대충 말리긴 했는데 축축해서…….]
“그래. 금방 가마.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아바타를 자처하지만, 우리 사이는 신성과 무관하다.
그보다는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쪽이 어울리겠지.
푸른 아바타처럼, 그저 인간으로서 무언가를 지킬 뿐이니.
손바울과 나는 같은 신의 신도.
작고 여리지만 크고 강인한, 생명신의 상담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