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37화 (137/200)

# 137

49장 - 상담사의 아바타 (2)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란, 유명인의 자살 이후 모방자살이 잇따라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파파게노 효과(Papageno effect)란, 자살에 대한 언론 보도를 자제시킴으로써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의미.

그런 심리효과를 들은 이들은 흔히 생각한다.

자살이라는 말 자체를 조심해야겠다.

우울하다는 애들한테 물어보지 말아야겠다.

그런 생각 자체가 들지 않게 딴소리만 해야 되겠다……

호의의 배려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위험한 발상.

자살에 대한 터부시는 오히려 해소의 기회를 억제한다.

많은 자살사별자들이 한탄하곤 하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터놓고 얘기해볼걸.

자살 같은 약한 생각 말라고 소리치지 말걸.

어떤 일 때문에 우는지, 왜 자꾸 약이 늘어가는지,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물어볼걸.

마음의 고통은 저절로 사라지는 감기가 아니다.

기침처럼 내뱉고 또 내뱉게 해야 회복을 도울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자살과 관련된 이야기 전반을 기피한다면,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상태를 강요할 뿐.

어느 한순간 계기가 생겼을 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한효준은 베르테르 효과가 그 계기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자살이 터부시된 사회에서, 고위험군의 숫자는 자살 실행자보다 많을 것이 당연해.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이들 말이야. 가족이나 친지를 염려하거나, 자살 뒤에 자길 비웃을 지인들을 우려하거나. 그런 이들에게 유명인의 자살 보도가 트리거(trigger : 행동을 유발하는 자극)로 작용하는 게지. 저런 사람도 죽었는데, 나도 못 할 게 뭐야? 무의식의 터부시가 일시에 무너지면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찰 공터가 마련되네.”

“그렇군요. 자살한 유명인의 팬층과 모방자살자 통계가 무관한 것이 그런 까닭이겠군요.”

“그래. 어떠한 유명인의 자살 보도가 나온 시점이건 간에, 20대 여성과 50대 남성이 특징적으로 높은 자살률을 보이지. 팬이라서가 아닐세. 이미 마음에서는 죽어 있었던 게야. 지나친 보도는 자제하는 것이 옳겠으나, 정말로 공부해야 할 것은 파파게노 효과가 아닌 파파게노 쪽이 될 터.”

파파게노 효과와 파파게노의 시사점은 일치하지 않는다.

<마술피리>의 등장인물인 파파게노는, 실연의 아픔으로 자살을 시도하다, 요정의 노래로 마음을 돌린다.

그의 함의는 자살을 터부시하는 사회가 아니다.

“상담사라면, 요정이 되어야지. 그저 범용한 이들처럼 이야기를 기피하기만 해서야 될 일인가. 그래서야 상담소를 찾지 않는 이들의 아픔은 어루만질 수 없을 터. 해서 자네의 VR 공개상담에 찬동하는 게야. 꼰대들 역시 설득해뒀네. 이번 문제에 있어서는, 상담심리학회가 전폭적으로 자네를 지원할 거야. 그러니 실수하지 말아. 철저히 준비하고, 처절히 마주해. 그들 모두에게 요정의 노래를 들려주게. 알겠나?”

……생각해보면 내 스승도 참 대단하지.

프리VR을 심리상담 수련기관으로 인준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학회 차원에서 감독하고 지원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 결론이 어찌 한두 마디 말로 이뤄졌으랴.

부산의 심포지엄에서 그가 얼마나 철저하고 처절하게 학자들을 설득했을지, 짐작하지 못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노래를 불러야지.

실물 한 번 보지 못한 생판 남의 자살조차 죽음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세상이라면……

나는, NBSC의 노래로 그 총을 부술 것이다.

직접 얼굴을 마주보지 못한 상태라고 할지라도.

물리적으로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어떤 이유로든 대면 상담을 신청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죽음을 꿈꾸는 아바타들 앞에서, 나는 노래했다.

“유키히메님. 가장 먼저 이야기 꺼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저도 오늘 첫 상담이라 많이 긴장하고 있었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유키히메는 눈의 공주라는 뜻인가요?”

[와, 네! 일본어 아세요?]

“제 동년배들은 기초적인 일본어 몇 개씩 주워들으면서 자란 세대거든요. 정말 눈의 공주처럼 하얗고 차가운 인상이네요. 아바타만 봐도 마음이 안 좋으신 게 느껴져요. 진짜 얼굴은 웃고 있다면 좋겠네요. 오늘 수다 많이 떨고 가요.”

[아…… 네!]

“그리고 옆에 계신 오동동님? 아바타가 아저씨 외모인데, 혹시 저와 동년배신가요?”

[하하. 아닌데요? 저 그냥 재미로 만든 건데.]

“그렇군요. 아저씨를 재밌다고 생각해줘서 고맙습니다. 자세히 보니 되게 귀엽네요. 환하게 웃고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죠. 웃고 있는데, 어딘지 참 슬퍼 보입니다.”

[그런가? 약간 조커 생각하면서 만들긴 했는데요.]

“아, 그렇군요. 오늘 상담이 영화보다 가취 있기를.”

[하하…… 오, 해피!]

“그리고, 개딴딴님? 닉네임이 독특하신데요?”

[저요? 어, 재밌죠?]

“재밌다기보다…… 아바타가 강아지네요? 치와와?”

[네. 강아지도 만들 수 있더라고요. 몇 종 없지만.]

“강아지를 좋아하시나요?”

[네. 귀여워서요. 인간하고 다르게.]

“그렇군요. 실례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개딴딴님도 귀여워요. 와줘서 고맙습니다. 이번 상담조 마스코트시네요.”

[……헤헤.]

아바타라는 것은, 단순한 요식행위가 아니다.

상담사에게는 그 역시 호수에 담아야 할 마음.

스스로 구상하고 구현화한 심상이기에, 극히 정교하고 내밀하게 내담자들의 마음을 드러낸다.

어쩌면 얼굴 그 자체보다도.

「 내담자 명 : 유키히메

평가 결과 : 끝없는 설원 앞에 오체투지한 눈사람 」

「 내담자 명 : 오동동

평가 결과 : 말라버린 가슴으로 웃고 웃는 광대 」

「 내담자 명 : 개딴딴

평가 결과 : 인간을 포기한 강아지 인간 」

아바타의 외형이 [내담자 평가]와 맞닿는다.

그 자체로 자아에 닿는 표상인 까닭이리라.

내담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것들을 커스터마이징 했을지, 나만큼은 모를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한 분씩 인사 나눌게요. 일단은 처음이니까 저하고만 인사하지만, 나가실 때는 여기 계신 분들이 모두 친구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시겠죠? 다음은, 용꼬리용용님?”

[오…… 안녕하세요! 와, 진짜 앞에 있는 거 같네.]

3인의 고위험군에 이어 저위험군과도 인사를 나누고, 30분이 넘도록 24인의 사소한 수다를 보조했다.

그 뒤에야 비로소 자살을 이야기했다.

어떤 이유로 죽음을 생각하게 됐는지.

어떤 이유로 삶을 잡고 있는지.

“유키히메님은 성적이 떨어진 뒤 죽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셨군요. 그만큼이나 중요하게 느끼셨던 모양입니다.”

[네. 1등이었는데…… 계속 1등이었으니까…… 진짜 죽으려고 했거든요. 아빠도 엄마도 나 숫자로밖에 안 보니까. 친구들도, 등수 높아서 나한테 친한 척하는 거니까. 그래서 죽으려고 했는데…… 무서웠어요. 너무 아플 거 같고…… 그래서 안 아프게 죽는 방법 검색하고 그랬는데, 잘 안 나와서요.]

“그렇군요. 작년부터 자살을 보조할 만한 정보를 인터넷에 게시하면 처벌받는 자살예방법이 시행됐습니다. 검색해도 정보가 잘 안 나오면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거지요.”

[진짜요? 아 뭐야. 완전 짜증나지 않아요? 왜? 지들이 뭔데? 전화해봐도 받지도 않으면서.]

“아, 자살예방전화를 걸어보셨군요.”

[다 통화중이던데요! 안 받아요.]

[하하. 그거 받아봐야 쓸데없는데.]

“……오동동님은, 통화가 연결된 적이 있으시군요.”

[예. 그냥 아 네 네 들어주다가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요’ 이러면서 좋은 생각 해봐라 그 각오로 살아보자…… 하하. 매뉴얼대로 구시렁구시렁 하는 거죠. 아무 도움 안 돼요.]

[와! 개에바다.]

“이런. 개딴딴님이 개에바라고 할 정도면 정말 큰일이네요. 사실 저 역시 다른 이야기는 해드릴 수 없거든요. 한계가 있습니다. 사실 죽음이라는 문제에는 전문가가 없지 않겠어요? 환생을 한대도 콜센터에 취업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모쪼록 용서해주세요. 그분들도 많이 노력하셨을 겁니다.”

[아니 뭐, 노력이야 하긴 하데요. 하하하.]

죽음에는 전문가가 없다.

매뉴얼대로밖에 답할 수 없는 것은 그래서.

그 매뉴얼에 대한 증오로나마 잠깐 자살의 충동에서 눈을 떼게 만들 수 있었다면, 그 나름의 역할을 한 셈이겠지.

보람보다 자책이 많은 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마음속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다만, 죽음과 달리 자살에는 전문가가 있다.

스스로 마음의 살인자를 극복해본 이들.

나 같은 문외한보다는 조금 나으리라.

[사실 저는 그…… 지금 죽고 싶은 건 아닌데요.]

“아, 용꼬리용용님은 위장전입 하셨군요?”

[헤헤. 아니 이런 거 생긴다고 하니까 신기해가지고요. 예전에도 이런 거 있었으면 좋았을 거 같다 싶고. 저 인강 강사거든요. 자살 상담 받았다고 알려지면 좀 안 좋을 거 같아서 참고 참고 그랬죠. 어떻게 어떻게 지금까지 왔네요. 그래서…… 근데 이거, 제가 이런 얘기 해도 되는 거예요?]

“물론입니다. 위장전입이나마 이웃이 되셨으니까, 기탄없이 말씀해주세요. 대신 이상한 말씀 하시면 분필 던집니다.”

[하핫. 저는 그냥 그래요. 죽고 싶을 때면 가족 생각하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별 도움 안 됐어요. 그리고 여기에 혹시 가족 안 계신 분들은 오히려 빡…… 열 받으실 거고. 아무튼 저는 죽고 싶어지면 사진 봤어요. 죽기 전에 꼭 가고 싶었던 여행지요. 아, 이건 어렸을 때 관용적으로 해본 표현이고, 그때는 죽을 마음 없었지만요. 아무튼 그 여행지 생각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일종의 토템처럼?]

“저런. 위장전입에 사이비 포교까지 하시는군요.”

[아하하하. 아, 너무 저만 미워하시는 거 아니에요?]

“시끄럽습니다, 쁘락치 씨. 그래도…… 혹시 한번 해보실 분? 유키히메님, 지금 손드신 거죠?”

[아…… 저 삿뽀로 가보고 싶었는데…….]

“그러셨군요. 에이, 기분이다. 개업 이벤트로 사진 인화권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시국에 가긴 좀 그런 곳이니까, 멋진 사진이라도 뽑아두세요. 꼭 지갑에 넣어두세요.”

[와…… 네! 꼭 넣어둘게요!]

집단상담이란 이런 것이다.

같은 고민이나 아픔을 공유한 이들의 소통을 돕는 것.

나 스스로가 해결사로 나서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는 단 한 명의 마음도 담지 못할 테니까.

그렇기에 자살 집단상담은 때로 자조 모임이 된다.

긍정적이되 그만큼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 있는 조언보다는, 역으로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공감만을 독려하는 것.

문제는 다를지라도 마음은 유사한 법이다.

작은 공감대라도 찾고 나면, 마음속 살인마가 조금쯤 누그러들 수 있다.

물론, 야매 상담사에게는 예외도 존재한다.

정말 필요하다면……

집단상담이 됐건 콜센터가 됐건, 순간을 놓칠 수 없기에.

「1. 인간은 개 같은 존재죠. (R-1 S+2 P+8)」

「2. 인간이나 개나 똑같아요. (R-9 S+9 P-9)」

동일해 보이지만, 함의는 정반대인 두 진술.

개딴딴의 홀로그램 앞에 그런 것이 떠올랐다.

“……개딴딴님은, 그러셨군요. 시골집에서 기르던 강아지가 잡아먹히는 광경을 목격하셨군요. 그날 본 인간의 야만성과 강아지에 대한 동정이, 오랫동안 마음을 괴롭혔겠네요.”

[그랬나……? 닉네임 물어보니까 그냥 생각났어요. 죽고 싶었던 건 그거랑은 상관없는데요.]

직접적인 상관은 없겠지만……

NBSC의 [직면 선택지]는 ‘낄끼빠빠’를 잘하는 편.

대상의 내면을 좀먹는 가장 커다란 트라우마거나, 문제행동과 극히 긴밀하게 연결된 인지왜곡의 시발점이거나.

그 정도 문제가 아니라면 나오지 않는 기술이다.

그러니 이 메시지의 함의는 명확하다.

지금을 놓치지 말라는 뜻.

지금이라면, 그 끔찍한 기억을 흩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개딴딴님. 그 아이, 이름은 뭐였어요?”

[몰라요. 까먹었어요.]

“잘 생각해봐요. 제가 볼 때는 기억하고 계실 것 같은데.”

[아니…… 그냥, 마초랬어요. 할아버지가.]

“마초. 멋진 이름이네요. 너무 어렸을 때 일이라 명확하게 기억은 못 하시는 것 같은데, 다시 여쭤볼게요. 정확하게 어떤 순간을 목격하신 건가요? 마초가 맞고 있을 때였나요, 아니면 모든 일이 끝난 뒤였나요?”

[아, 그만하죠. 그 얘기 하기 싫은데.]

“혹시, 더 나중이었나요? 아무것도 모른 채…… 할아버지가 주시는 국그릇을 받아든 건 아니었나요?”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어우. 쟤 어떡해.]

[진짜 끔찍했겠다…….]

종종 호의가 트라우마를 만들기도 한다.

인간과 짐승을 완벽히 구분 짓는 이들에게는, 축사의 소나 개집의 개나 필요할 때 잡아먹어도 되는 가축일 뿐.

그렇기에 다른 고깃국을 가장해 건네주는 일도 흔했다.

반려견을 사랑하던 이들의 충격을 상상치 못한 채.

그렇게 형성된 트라우마는, 해리(dissociation)를 거치며 의식 중에서는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의식의 심해에서 괴물로 자라난다.

때로 숙주를 물어뜯어 죽일 만큼 거대하게.

“개딴딴님, 아까 말했지요? 학교에서 개딴딴님 옷을 벗기고 사진을 찍은 동급생들이, 개딴딴님을 개처럼 때려죽일 것 같았다고. 그렇기에 아무런 반항도 못 한 채 고개를 숙이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고. 그렇게 약해빠진 놈은 죽는 게 낫다고……. 사실은 약해서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개딴딴님은 고작 그런 모욕 때문에 괴로워할 만큼 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저씨가 뭘 알아! 난, 약해빠졌어!]

“유기견 봉사활동을 다니고 있다면서요? 그거 아무나 못 해요. 정말 약해빠진 사람이라면, 강아지들 슬픈 눈 보고 나면 다시 봉사활동 못 갑니다. 무서워서. 구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워서. 개딴딴님은 강한 사람이에요. 저한텐 보여요.”

[아니…… 됐어요. 그냥 죽으면 끝나잖아요. 그게 낫잖아요. 인간 새끼들은 개쓰레기 씹……]

“개쓰레기라니, 너무하네요. 인간은 강아지보다 훨씬 더 잔혹한데요? 그렇지만…… 사람도 강아지도, 나쁜 건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이거 저 혼자 생각인가요, 여러분?”

[아, 그쵸. 개딴딴님, 우리 집 유기견 데려와서 키워요. 애들 앉아 엎드려도 잘하는데. 동영상 보내줄까요?]

[난 학교에서 진짜 개처럼 맞기도 많이 맞았는데, 지금은 동창회 나가서 나 괴롭혔던 놈들한테 쪽 주고 그래요.]

[저기, 봉사활동 어디로 가요? 같이 가도 돼요?]

[아니…… 아 뭐야……]

“뭐긴요. 인간들이죠. 잔혹하고 선량한 인간들. 믿어줘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란 걸. 살아갈 가치가 있는 세상이란 걸. 인간이, 강아지 같을 수 있다는 걸.”

[아니 뭔…… 여기 이상해요!]

[하하하!]

[이상하다니, 마상인데!]

이상한 사람들이, 치와와 같은 아바타를 바라본다.

표정들은 저마다 커스터마이징 되어 제각각이지만……

개딴딴에게는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음이.

「 3. 강아지 같은 인간이에요. (R+4 S-7 P+9)

서브퀘스트 “개딴딴을 살려봐요” 완료!

5exp를 지급해드렸어요! 」

……별다른 말이 아니었는데.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저 아이는 얼마쯤을 헤맸던 걸까.

개 같은 세상 속을 참 얼마나……

금색의 문구를 서글프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나만 이런 능력을 갖게 된 걸까.

모든 인간에게 나눠줄 수는 없는 걸까.

그렇다면, 세계 곳곳에서 요정의 노래가 울려퍼질 텐데.

그런 한탄의 와중이었다.

박수 소리가 들렸다.

케룸이라는 닉네임의 내담자 쪽이었다.

프리VR의 아바타는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다.

컨트롤러와 센서를 이용해, 박수를 치는 모션은 구현 가능.

하지만 그것이 박수 소리를 만들지는 못한다.

소리가 난다는 건, 컨트롤러를 놓고 실제로 손뼉을 치고 있다는 뜻.

그렇기에 케룸의 아바타는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박수소리에 맞춰 입만 벙긋거릴 뿐.

수음 센서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어째선지 그것이 무척이나 괴이쩍게 느껴졌다.

[하하…… 재밌었다. 이거 좋네요.]

“……케룸님?”

[꼰마님, 능숙하시네요. 상담사 된 지 얼마 안 되셨다면서.]

“실제로는 아직도 감히 상담사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저 여러분 말씀을 정리하는 역할일 뿐이지요.”

[그런가. 아무튼 재밌었어요. 전 갈게요.]

“잠시만요. 가신다고요? 아직 상담 중입니다.”

[그런가? 하하핫. 가볼게요.]

손바울의 말대로, 목소리에는 많은 미세표현이 담긴다.

보통 사람은 미약한 차이를 잡아내기 어렵지만.

110의 ‘진단’을 가진 내게는, 분화되어 있는 트랙처럼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케룸이 웃고 있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당장이라도 쓰러져 울고 싶은 심경임을.

그러나 가상현실은 가상현실.

마치 실제처럼 마주보고 있지만, 내게는 아바타에 손을 뻗어 붙잡을 능력이 없다.

홀로그램 스크린의 케룸은 요정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대학생이라던 한 내담자가 중얼거렸다.

[케룸…… 아, 뭐였지? 라틴언데. 아, 맞다. 하늘.]

하늘.

내가 놓친 것은, 아마도, 유하늘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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