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48장 - 호밀밭의 파수꾼 (1)
<닥터 프로스트>라는 웹툰이 있다.
심리학과 교수가 상담실에서 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그렇기에 상담사라기보다는 심리학자로서 내담자를 대하는 느낌이 강하고, 그 과정에서 심리검사 문항을 오염시키는 등의 실수로 인해 비판받기도 했다.
하지만 심리학에 대한 대중의 몰이해를 깨뜨린 공로가 혁혁한 작품이라고 한다.
내 경우에는 직접 보지는 못한 웹툰.
다만 인터넷 짤방 등으로 접했는데, 주인공인 백 교수의 이미지가 강한 감상으로 남았다.
심리학자면서도 감정을 어려워하는 자.
그렇기에 도무지 상담사라고 말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내담자에게 접근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
당시에는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 못지않게 특이한 상담사가 되어버린 지금 시점에는, 뭐라고 꼬집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퓨플(pupil) 프로스트가 있다.
세미정장을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푸석푸석하던 반곱슬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넘겼으며, 너저분하던 수염까지 깔끔하게 면도해, 일견하기에는 꾸미기 좋아하는 대학생이라고 봐도 무방한 모습이지만.
손바울은 분명 닥터 프로스트를 닮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하필 콘 푸로스트를 먹고 있었다.
“바울아.”
“으움? 선생님, 미팅 끝나셨어요? 아침 좀 먹고 있었는데.”
민망하다는 투로 씩 웃어 보인다.
아직 만들어진 듯한 느낌이 남아 있어,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연히 인지되지만……
아마 아무나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눈썰미가 예리한 한효준이나 110의 ‘진단’을 가진 나 정도가 아니면.
“시리얼이 아침이야? 우유도 없이?”
“저 우유 못 먹습니다. 유당불내증이라. 아침엔 뭐 해 먹기 귀찮아서 그냥 이거 하나예요. 영양분은 충분하니까요.”
그렇다고 컵으로 된 시리얼을 마시듯이 들이붓고 있다니.
학과에서 4차원이라 불릴 만도 하다 싶다.
손바울 입장에서야 극히 1차원적인 현실이겠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무속의 신들을 모시느라 손자에게 무관심했던 조모 슬하에서 성장한 아이다.
아침식사라는 행위에 즐거운 추억이 있을 리 없다.
자연히 생략하거나 단축하려는 추동이 생길 수밖에.
손바울의 4차원은, 슬픈 상식이었다.
“……앞으로는 가능한 챙겨먹도록 해. 상담사가 되려면, 대학원 진학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누구보다 건강해야 한다.”
“네. 점심은 선생님하고 같이 먹겠습니다. 열두 시에 드실 거죠? 그 직후에 판교로 이동하실 거고요.”
“그건 또 어떻게 아는 거니?”
“해킹한 건 아니에요. 인지심리학 보강이 열두 시까지고 프리VR 일정이 한 시부터니까, 당연히 그렇게 되겠죠 뭐.”
“합당한 추론이구나. 그 외에 또 뭘 알고 있니?”
“최근에는 이것저것요. 아, 도청한 건 아닙니다. 미행을 좀.”
“그런 건 하지 말라니까, 또 그랬구나.”
“용서해주세요. 하지만, 그건 좀 위험했잖습니까.”
“위험했다고?”
“방송 봤습니다. 필터 때문에 잘은 안 보였지만, 분명히 얼굴에 멍이 들어 계셨죠. 그날 선생님의 일정이라면 김지연 씨 요청으로 BPD 고딩 도와주러 가신 것밖에 없었는데요.”
“너…… 정말이지 이것저것 알고 있구나.”
“그걸 보고 나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있어야죠. BPD도 BPD지만, 요즘 고딩들이 좀 무섭습니까? 그래서 부득불 미행하게 됐는데…… 흥미로운 광경을 봤습니다. 분식집에서요.”
“분식집? 거기까지 왔었니?”
“네. 선생님이 가시고 난 뒤가 특히 재밌었어요. 전 그런 장면은 만화 속에만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땀내 나는 녀석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엉엉 우는…….”
“너는 참…… 일단은 좀 앉자.”
16동 건물 안쪽의 주차장에는 벤치가 있다.
과거 흡연공간으로 활용되었지만, 현재는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어 별다른 용도가 없는 곳.
그곳에서 손바울이 식사를 마치길 기다리려 했다.
본인은 시리얼 쪽에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그게 상담사가 되겠단 결심에 20%쯤은 작용했을 겁니다.”
“그, 분식집에서 본 광경이?”
“예. 성주라는 애는 두려워하고 있었죠. 분명히 끔찍한 말을 듣게 되리라고 확신하면서도, 못내 기대하고 있었어요. 자신의 의심이 불식되기를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죠. 선생님께서 해주신 일은…… 그 아이에게 기적이었을 겁니다.”
“그야,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지. 사실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지만 말이다.”
“선생님께는 그랬겠죠. 하지만 보통은 아닙니다. 있을 수 없는 일. 드라마. 비현실. 그런 현상이었어요. 그야말로…… 신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신이 아니라니까.”
“예…… 보편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였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이니까…… 바울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래서 대학원을 생각하게 됐어요.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향후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일단 알겠다. 그것부터 마저 먹어. 배는 채워야지.”
“예, 선생님.”
시리얼을 입에 붓는 손바울을 보며 생각했다.
대체 왜 그런 업적이 나왔을까 했는데……
이 경험까지 포함해서 정산된 것이었구나.
NBSC의 시스템은 예상보다도 한참 더 심오한 것 같았다.
“음…… 움. 다 먹었습니다. 죄송해요. 더 일찍 올걸.”
“그러지 마라. 오히려 한참 늦어도 상관없어. 비공식적으로 사제관계가 됐다만, 네가 내 비서는 아니잖니.”
“예? 그럼 곤란한데. 수행비서 쪽으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세미정장 차림이었던 건가.
혹시 저녁에 데이트가 있나 했더니, 그 반대였던 모양이다.
“우선 내가 물어볼 게 하나 있다. 너, 사귀는 사람 있니?”
“75% 정도요. 현서한테 들으셨죠?”
“글쎄. 네가 먼저 설명해줄 수 있을까? 75%라니?”
“오늘 안에 사귈 확률이요. 어제 고백은 했는데, 아직 대답을 못 들어서요. 제 나름대로 변수들을 고려해보니까 그 정도 확률로 YES일 것 같아요. 오차가 좀 있긴 하지만요.”
“오차라면, 어떤?”
“현서가 저에 대해서 선생님께 여쭤봤을 가능성은 100%입니다. 그 대답 여하에 따라 ±50%쯤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걔는 절 거의 모르는 상태니까요.”
그렇다면, 손바울 기준에서 현재의 오현서는 125% 그의 여자친구라고 할 수 있는 셈인데.
반복해 퍼센테이지를 말하는 이유야 짐작이 갔다.
독순술까지 사용하며 타인을 관찰해온 경험을 통계로써 활용해, 행동 기작을 알고리즘화 한 것이겠지.
이제야 감정을 배워가고 있는 아이에게는 그보다 적합한 분석법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이해된다 해서 마음이 편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감정의 문제는 감정으로 바라봐야 한다.
어떤 확률로 어떻게 반응하리라고 분석하는 상태로는, 진정한 소통에 다다를 수 없으니.
“바울아. 내가 전에도 한 차례 말했었다만-”
“사람은 관찰로는 해석되지 않아. 누군가를 정말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석하고 연구하는 게 아니라 그 마음에 들어가야 해. 이 말씀 해주시려는 거죠?”
“……그래. 기억하고 있었구나.”
“당연하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들은 전부 다 기록해두고 있습니다. 사도…… 흠. 비서의 역할이죠. 나중에 자서전 출간하고 싶으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바로 써드릴게요.”
“그렇게 되면 자서전이 아니라 평전이잖니.”
“주체를 바꾸면 그만이죠. 저야 그냥 기록만 하는 거니까.”
“……그래. 일단, 본론으로 돌아가자. 현서한테 왜 고백한 거니? 정말 그 아이가 좋아서 그런 거라면 기쁘겠다만.”
“흠…… 80% 확률로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 감정까지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도출한 제자의 대답.
분명 지나치게 냉철한 색깔이지만……
내게는 그것조차 감동적이었다.
과거의 손바울이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말이기에.
“좋아.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좀 자질구레한 이야기인데…… 처음부터 말씀드릴게요.”
대만에서 돌아온 뒤 평범한 학생을 연기하기 시작한 손바울은,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동기들과 자주 만났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특히 가까워진 것이 오현서였다고.
처음에는 각자 나와 접점이 있다는 인연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공감대가 생겨난 모양이었다.
“일주일 전에 들었어요. 걔도 부모님이 안 계시대요.”
“……그걸 함부로 말해도 괜찮은 거니?”
“예. 현서도 동의했어요. 사실 동의고 자시고, 선생님한테라면 자기 생리 주기까지 알려줘도 된다는 애지만요.”
“그건 좀 곤란한 일이구나. 그릇된 애착일 수 있어.”
“외람되지만 양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걔, 선생님한테 아빠를 치환(displacement)하고 있어요. 현서 고1 때 돌아가셨다는데, 그 전까지 기부도 자원봉사도 많이 하셨다나. 그게 사회복지사로 진로를 정한 동기 중 90% 이상을 차지할 겁니다. 선생님께 반한 것도 그 연장선이겠죠.”
“음. 그랬구나. 하지만 이런 건 본인에게 듣는 게 맞는 이야기 같다.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남의 일을 너무 말하진 마. 상담사가 되고 싶다면 필히 숙달해야 할 자세야.”
“주의하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 듣다 보니까, 걔한테 약간 호감이 생겼어요. 네, 알아요. 지금이야 동병상련 비슷한 그런 감정이겠죠. 하지만 저한테는 그것도 특별하거든요. 다른 여자들한테서는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니까. 손바울이라는 인간의 특수성을 전제로 놓고 보면, 이것도 사랑이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듯해요.”
여전히 제3자 입장에서 말하는 추론.
그러나 그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원시우주 같은 마음의 아이에게는.
110의 ‘진단’으로 보노라면, 미약한 티끌 같은 감정이다.
그 나이대 남자애들이 느끼는 강렬한 충동과는 천문학적인 거리가 있을 터.
손바울은 그 성간물질을 뭉치려 애쓰고 있다.
비정상적인 자기 세계관을 조금이라도 더 평범하게 만들기 위해서, 자신하지 못할 자신으로 확률을 논하고 있었다.
“……바울아. 너무 무리하진 마라.”
“흠. 아직 사귀는 건 이를까요? 일단 원나잇부터?”
“바울아.”
“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선생님께는 불편한 이야기였을 수 있겠네요. 저희 세대에선 흔한 일이라 쉽게 말했어요.”
“그런 뜻이 아니라…… 멀쩡한 척하려고 너 자신에게만 짐을 지우지는 말라는 얘기야. 현서에게 뭐라고 고백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연애라는 건 네 생각처럼 쉽게 꾸며지는 관계가 아니다. 그렇게 돼서도 안 되고. 평범한 사랑을 꾸며내는 태도가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어. 연기하지 말고 진심으로 말했으면 싶다. 세상 모든 여자 중 가장 특별하게 생각하는 건 분명하지만, 아직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그럼에도 믿어줄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흠…… 저자세인 게 좀 싫긴 한데,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생님 말씀이니까요. 이렇게…… 쓰면 되겠죠?”
손바울은 내가 보는 앞에서 메시지를 작성했다.
그리고 채 1분이 지나기 전에, 내 핸드폰 쪽이 진동했다.
「사복17오현서 : 선생님선생님선생님!!!! 어떡해 어떡해 아 진짜 바울이 넘나스윗해서 저 죽겠어요ㅠㅠㅠㅠㅠㅠ」
「..무슨 일 있었니 」
「사복17오현서 : 세상에서 제가 제일 특별하대요!!! 와 어떻게 그런말을하죠? 얘 진짜 저 엄청좋아하나봐요ㅎㅎㅎ」
……전혀 그런 메시지가 아니었는데.
이미 콩깍지가 씌어 있는 건지, 해석이 영 주관적이었다.
곧 125%의 확률이 실현될 기세.
뭐라 답할 말이 없어, 손바울에게 시선을 돌렸다.
“바울아. 너…… 아무래도 연기를 좀 하긴 해야 되겠다.”
“흠. 그거야 자신 있습니다.”
“그 뒤는?”
“뒤요?”
“네가 연기하는 손바울의 모습을, 실체로 만들 수 있겠어?”
“그야 물론이죠. 스승님이 계시니까요. 좋은 남친이 되겠습니다. 좋은 사도……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상담사가 되겠습니다. 가르쳐주세요. 제가 ‘꼰린이’가 될 수 있도록.”
장난스레 고백하며, 청년은 시원하게 웃었다.
진심임에 분명한 미소였다.
보강을 듣는 내내 그 미소에 대해 생각했다.
진짜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긍정하기 시작한 손바울이지만, 그는 아직 나를 맹신하고 있다.
가끔 말실수로 ‘사도’를 자처하는 것이 그 연장선.
내 제자는 여전히 박대민을 신격화한 채였다.
그것이 아주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 벗어나는 일을 자제하려 애쓰니.
인간을 혐오하던 아이가 인간다운 마음을 배워나가는 일에, 나에 대한 의존이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분명했다.
손바울은 나와 만나지 않는 동안 변화를 일궈냈다.
외견의 변화는 물론이고, 동기들과 자주 만나며 내적으로도 보기 좋은 감정들을 만들어나가는 중.
그 과정이 억압적이거나 부적응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분명한 선의로 스스로를 다잡고 있다.
하지만……
그릇된 신념은 왜곡된 인지를 낳는다.
이 상태로는 과거를 극복했다 말하기 어려울 터.
그 아이를 보다 나은 미래로 이끌어줘야 할 시점이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그래야 하는 사람이니까.
「 에픽퀘스트 4 “손바울을 쓰러뜨려봐요” 완료!
손바울의 내면을 움직여 그가 향후 ‘상담사’님을 위해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2의 루트를 통해 업적 “호밀밭의 파수꾼” 달성!
(업적 “호밀밭의 파수꾼” 효과 : 화술 +10)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명저 <호밀밭의 파수꾼>은, 줄거리상으로는 단순히 문제아의 방황기로 설명된다.
하지만 주인공 홀든 콜필드에게는 꿈이 있다.
생각 없이 마구 달려 절벽으로 향하는 아이들을 지키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겠다는.
위선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순수를 지키고자 하는 열망이다.
그 스스로는 조금만 비위가 상하게 굴어도 위선자로 몰아붙이는 악동이지만.
인물에 대한 평가는 행동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꼬마가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온종일 지켜주고 싶다고 읊조리던 그 인물은,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콜필드 신드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울림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손바울 케이스와는 무관한 이야기인지라, 대체 왜 그런 업적이 나왔을까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네 번째 에픽퀘스트의 주인공은 대상이 아닌 관찰자였다.
육성주를 상대하는 나를 관찰하며, 그 아이는 내 행동으로부터 원시우주의 진화를 염원하게 됐다.
그것이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제2의 루트로 드러났다.
육성주와 심준호의 순수를 지켜낸 파수꾼.
그런 나를 바라보는 손바울의 마음은……
씬보이의 상담을 바라보던 한효준과 비슷했으리라.
손바울은 순수할 수 없는 아이였다.
죄악으로부터 잉태되어, 부모를 절규의 살인자로 만들고.
세상을 관찰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비겁하고 부도덕한 자들이 즐겨 찾는 신당에서 하루 내내 악의에 둘러싸여.
의식을 갖춘 시점에는 이미 마음을 잃은 채였다.
그렇기에 아이는 감정 없는 관찰자가 되었다.
그저 잿빛의 시선으로 인간을 관찰해왔다.
누구도 믿거나 사랑하지 못한 채.
그 스스로조차 긍정하지 못한 채.
그런 손바울에게 육성주는 어떤 신비였을까.
절벽 끄트머리를 붙잡고 버티고 또 버티다가, 나라는 파수꾼을 만나 순수의 호밀밭으로 돌아온 아이.
일련의 과정이 어쩌면……
관찰자 본인의 구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손바울은 이제 상담사를 꿈꾸고 있다.
세상의 악의에 짓눌려 절벽으로 쫓기는 아이들을 붙잡아주려고 한다.
그들이 바울의 수렁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사도 바울은 ‘다메섹 회심(回心)’의 주인공이다.
본디 로마 시민권을 갖고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사울’이었으나, 신의 아들을 만나 마음을 고쳐먹고 ‘바울’로 개명한.
장구한 성경의 역사에서도 하나뿐인 이방인 사도.
태동하는 아이에게 그 성인의 이름을 예정하며, 비통의 어머니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아마도 남편에게 자신의 비극을 고백하기도 전.
그녀는, 아이가 박해의 사울이 되어 복수해주길 바랐을까.
회심의 바울이 되어 세상을 사랑해주길 바랐을까.
방황을 마쳤으나 아직은 연약한 아이를 생각하며, 나는 다시금 NBSC의 메시지를 살폈다.
「 ‘상담사’님께 가장 적합한 보상을 분석할게요……
[암시 구조화] 할인권을 지급해드렸어요.
100exp 상당의 기술이 지금은 25exp!
(구매조건 : 외모 100 달성과 “호밀밭의 파수꾼” 달성) 」
[암시 구조화]는 그간의 보상들과도 격이 다른 기술이다.
개념이야 상담의 기본 골조(骨組) 중 하나지만……
손바울에 한해, 이 구조화는 신의 음성일 터.
‘자네가 신이야! 자네가 신이냐고!’
귓전을 울리는 한효준의 물음에, 읊조려 대답했다.
“저는 신이 아닙니다. 다만, 파수꾼이 되고 싶습니다. 얼어붙은 아이의 우주를, 따스한 호밀밭으로 이끌고 싶습니다.”
신만이 듣고 있을 진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