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47장 - 상담사와 스승 (3)
“상담사란, 참 곤란한 업이야.”
한효준은 그렇게 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마음의 색깔이 들여다보인다.
푸르른 잿빛.
예쁜 희망을 안타까운 현실이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상담사를 꿈꾸는 이들 중 심리가 편한 이가 흔치 않아. 당연한 일이지. 그 스스로 마음을 앓아보지 않고서야, 어찌 타인의 마음을 보살피기를 꿈꿀 수 있겠나? 동기 면에서 정신질환이 가장 많을 수밖에 없는 직종이야.”
“예…… 그렇겠군요.”
“그래. 그리고 그 업무라는 것이 또 감정노동이지. 보람은 있되, 그 이상으로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이야. 행복만으로 가득한 상담사가 세상에 존재하리라 믿는 것은 지나친 이상론일 터…… 늘 말하지만, 자네는 논외일세.”
“예…….”
“그렇기에 우리가 다년간 자기분석 과정을 거치는 것이네만, 학교현장의 전문상담사나 전문상담교사는 그러기가 쉽지 않지. 결국은 자기 문제를 안고서 아이들을 상담하게 되는 셈이야. 제대로 된 수련도 받아보지 못한 채로. 그런 현실의 문제 속에서야 그들을 비난하기도 어려운 노릇이지.”
그렇게 말하는 스승을 보며, 나는 못내 의기소침해졌다.
상담사라고 해서 철인이 아님을 알고 있었는데.
김지연을 보며, 또 스스로 경험하며, 일찍이 느꼈던 일인데.
그럼에도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이덕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바랐다.
내담자만을 생각하며 그녀의 괴로움을 마주하지 않았다.
그것이 잘못된 대처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상담사라면, 적어도 스스로를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감히 상담사를 자처해서는 안 된다.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이 단순한 직업이 아니기에.
상담사는 누구보다 완벽해야 한다.
상담의 끝에 작은 실망조차 자아내지 말아야 한다.
이전에도 그랬듯, 이후로도 무수한 내담자들이 상담사라는 직함만으로 그들에게 기대를 걸게 될 테니.
그렇기에 상담사들에게는 좀 더 가혹해지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방법이었을까.
한효준의 질문 속에 답이 있었다.
비난을 퍼부어줄 사람이야 많고 많은데, 구태여 나까지 그녀를 몰아붙여야 했나.
“상담사 역시 자기분석이라는 이름의 상담을 받지요. 그들 역시 내담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상담자인 동시에 내담자입니다. 그런 이를 보듬기에 앞서 비난부터 한 것은, 향후 이 선생님을 찾아갈 수많은 내담자들까지 괴롭힐 수 있는 실수였습니다. 대상이 누가 됐건 마음을 먼저 담아야 했습니다.”
“흠…… 그래. 이 선생의 마음은 어떻던가?”
“학생이라는 집단에 양가감정을 품고 계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알고 계시지요?”
“그래. 이 선생 기수의 연수를 감독한 것이 날세. 요즘은 다른 후배들에게 물려줬지만, 초기에는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거든. 그때 느꼈지. 아들을 잃고 나서 다른 학생들에게 과도한 애착을 품었음을. 특히 무거운 이야기여서 기억이 나.”
애착은 아름다운 본능이지만, 지나치면 병이 된다.
이덕자의 애착은 이내 양가감정으로 발전했다.
멀쩡히 살아있는 주제에 사소한 고민 따위에 흔들린다며, 학생들 각자의 고민을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치부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가족이라는 관념을 과신했다.
아이를 키워봤지만, 사춘기까지 이르지 못했기에.
자신이 경험해본 따뜻하고 포근한 육아가 모든 연령대에서 기능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부모가 아닌 상담교사에게 다가가야 했던 아이들의 괴로움을, 그녀는 본질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부모의 학대나 집착으로 인해 행복한 마음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마음에 대해서. 그런 이들에게, 가족이 어떤 의미일지에 대해서요.”
“잘 들어주던가?”
“예…… 의외로 진지하게 들어주셨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의외였습니다. 흔히 알려진 사례들일 뿐이었거든요.”
“허. 꼭 중요한 포인트를 놓친다니까. 이봐, 박 군. 내가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하나? 자네의 그 정석에서 한참은 벗어난, 경박하고 촐싹대는 인터넷방송을, 내가 왜 좋아하는지를.”
“……너무하십니다. BJ 중에서는 나름 선비 소리를 듣고 있는데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서, 왜 좋아하시는 겁니까?”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이야. 심리검사도 수행할 수 없고 장기적인 플랜도 세울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꼰마라는 상담사가 언제나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야.”
그야 NBSC의 힘이 가능케 한 일이다.
다른 상담사들이라면 주의를 기울여 회기를 반복해야 할 문제에서도, 높은 능력치와 다양한 기술을 가진 나는 곧바로 핵심으로 파고들 수 있다.
그렇기에 정석에 얽매이지 않는 상담이 가능했다.
하지만, 내 스승은 전혀 다른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송을 하고 있는 자네는, 때로는 꼰대랍시고 아주 가혹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늘 내담자 편이지. 그들의 문제를 스스로 겪는 일처럼 받아들여. 그럼으로써 일심동체처럼 고민하는 게야. 그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정말 필요한 일이 무엇일지, 말과는 다르게 울 것 같은 눈으로 고뇌하고, 도출된 해답에 스스로 괴로워하지. 더 행복한 결론으로 이끌어주지 못한 것이 답답하다는 양. 내담자의 우울감을 훔쳐가버리는 게야! 그거야말로…… 본질적으로 가장 훌륭한 상담사의 태도야.”
“……제가, 그랬습니까?”
“이렇게 모른다니까. 대체 내가 왜 매일 자네 방송을 본다고 생각하는 겐가? 단지 참견쟁이 슈퍼바이저로서? 개인적인 문제를 가진 내담자로서? 아니야. 나는 상담사로서 자네에게 매일 배우고 있어. 스스로를 비우고 하루에도 수십 명의 내담자를 받아들이는 그…… 그 천치 같은 마음씨를 말이야. 그렇기에 내게는 꼰마가, 제자인 동시에, 스승이야.”
한없이 존경하는 스승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다.
제자인 동시에 스승이라고.
그렇기에 매일같이 내 방송을 보고 있다고.
“박 군. 인터넷방송이란 것은 말이야, 근본적으로 상담에 어울리지 않아. 당연한 일이지. 오염이 염려되는 인터넷 환경이기에 심리검사를 수행할 수 없어. 내담자의 미세표현을 관찰할 수도 없지. 심지어 채팅이라는 것이 너무 빠르게 올라가는 탓에, 깊이 있는 소통을 나누기도 어려운 게야.”
“그건, 교수님께서 노안이 오셔서-”
“거! 쓸데없는 소리로 맥 끊지 말고. 그렇지만 그 방송에는 반대급부의 장점 역시 존재하지. 익명으로 편안하게 자신의 사연을 토로할 수 있어. 채팅이란 것이 마치 SCT(문장완성검사)처럼 기능할 수 있다는 게야. 또한, 그 과정에서 비슷한 고민을 안은 다수의 시청자들이 변하는 과정을 볼 수도 있지. 보다 수월하게 마음을 열고 새로운 인지도식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야. 마치막으로…… 그야말로 누구나 볼 수 있지. 가해자도, 피해자도, 그리고 상담자도.”
“상담자도…….”
“그래. 내가 보고 있고, 지연이가 보고 있지. 조명기나 이용덕 그치들도 마찬가지고. 학부의 상담사 지망생들 역시 거의 전부 보고 있으니, 그 10만 명 중 몇이나 상담자겠나? 내가 자네 잘되길 바라는 것이 단지 내담자 몇을 위한 일인 줄 알았나? 아니야. 상담자의 마음을 울리기를 바라는 까닭이야. 수만 상담사의 응어리를 풀어, 수천만의 내담자를 울릴 수 있기를 기원하는 게야. 그걸 어찌 아직까지도 모르는 겐가?”
꼰마의 고민상담소가, 내담자만을 위한 방송이 아니라, 상담자의 마음을 울리는 방송이라고.
내가, 모든 상담사들의 귀감이 되길 바랐다고.
한효준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선생을 자네에게 보냈네. 그저 방송 보라고만 시킨다면, 분명 틀어놓은 채로 설거지를 하거나 드라마를 보며 집중하지 못할 테니까. 그 결과가 어땠나? 이전에 비해서 훨씬 더 자네의 이야기에 집중해주었지? 설득력이란 오직 권위나 나이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야. 어제 방송을 통해서, 자네는 이미 이덕자의 스승이 되었던 게야.”
“제가…… 감히 그렇게 되어도 되겠습니까? 저는 이덕자 선생님의 마음을 모른 채로 그녀를 비난했습니다. 교수님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제멋대로 지레짐작해서, 오히려 그분께 마음의 짐을 더하려 들었습니다. 그런 제가, 정말 상담사의 스승이겠습니까?”
“박 군. 자네는 나와 달라. 내가 상담 문제에서 툭하면 지적질을 일삼는 것은, 그렇게 생겨먹은 괴팍한 노인네라서야. 하지만 자네는 다르잖나? 부족한 이들마저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지 않나? 이제는 인정하게. 자네는 이미 많은 이들의 등불이야. 때로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러 골치 아프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본질은 자신을 비우는 성인군자의 마음임을 모두가 알고 있어. 그것이 내가 자네를 기대하는 이유야. 새 시대의 칼 로저스. 뭐 저런 이상론자가 다 있나 싶으면서도, 보고 있으면 작게나마 웃음 짓게 만드는, 그런 천치. 되어주게나. 모든 상담사의 스승이 되어줘. 그렇게 해서…… 수천만이 행복해지는 새 시대를 열어줘. 그 마음의 지도로써.”
NBSC의 힘으로……
단지 내담자들을 위로하는 상담사가 아니라, 지치고 상처받은 상담사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아이콘이 되라는 이야기.
한효준이 말하는 스승은 그런 것이었다.
내 스승은, 나라는 사람을 오아시스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교수실을 나서는 길.
나는 플로럴 폼(floral foam)을 생각했다.
꽃꽂이에 활용되는 블록 모양의 흡습재다.
많은 양의 수분을 흡수하고 이후 꽃이 꽂혔을 때 오랫동안 전달할 수 있기에, 설치형 화훼장식에 적합한 부자재.
그것을 흔히 오아시스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브랜드네임이 상품 전체를 대변하게 된 케이스로, 과거 세제를 ‘하이타이’라고 불렀던 것과 일맥상통했다.
다만 뜻 모를 하이타이보다는 의미가 잘 이어진다.
줄기에서 잘려나와 장식되는 꽃들에게는, 플로럴 폼이야말로 오아시스라는 이름에 완벽히 부합할 테니.
꽃의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 마음씨 고운 플로리스트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오아시스는 아니다.
그저 천치 같은 사람일 뿐, 오랫동안 상담을 공부한 선배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스승은 되지 못한다.
나 하나로는 한두 명의 내담자만을 배불릴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플로럴 폼이라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라는 사람이 가진 보잘것없는 특징이, 가물어가는 마음의 꽃에 작은 위로를 안겨줄 수는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생각 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이덕자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선생님, 저예요.]
“아, 예.”
[저…… 성주 보러 가봤어요. 농구코트에…….]
“그러셨군요.”
[애가, 농구 참 잘하데요.]
“자기 말로는 한국의 르브론 제임스라고 하더군요. 준호는 카와이 레너드를 자부하고요.”
[카와이…… 일본 사람인가봐요?]
“하하. 어쨌든, 어떠셨습니까?”
이덕자는 한참 말없이 숨을 골랐다.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차분히 기다려줬다.
토요일에 농구코트를 찾은 것은, 자발적인 시간 외 근무.
이번에는 나나 한효준이 강요한 일이 아니다.
그녀는 보지 못했던 세계에 스스로 발을 들였다.
자신의 신념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그 과정이 얼마나 괴로운 일일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이 무의미였음을 인정하는 일.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경력이 길면 길수록, 한마디 한마디가 스스로의 가슴을 찢어발기는 자해일 터였다.
이덕자는 5초쯤 뒤에 그렇게 했다.
창을 휘둘러, 자기 자신의 가슴을 꿰뚫었다.
[저 때문에, 자해를 했대요.]
“……그랬습니까.”
[어차피 별 기대도 없었지만, 설마 자기 상처를 아빠한테 떠벌릴 줄은 몰랐대요. 그 일로 아빠가 술을 많이 마셨대요. 자기 때문에 애엄마가 죽고, 아들까지 미쳐가고 있다면서, 알코올중독 수준으로 마셔댔대요. 성주한테 저는…… 안 그래도 힘들었던 가정을 더 망쳐놓은, 몬스터였대요.]
“그랬군요.”
[그런데도…… 사과를 받아줬어요. 그렇게 치고받고 싸웠던 준호랑 어깨동무를 하고, 씩 웃더라고요. 쌤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젠 괜찮다고요. 자기가 아빠 치료해줄 거라고요. 그러니까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 얼굴이 정말…… 정말 너무 편안해 보여서…… 저는……]
성주 그 녀석…….
나까지 가슴이 먹먹해져서, 푹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착한 아이입니다. 아직 2학년이니, 1년 반이나 더 학교에 다니겠지요. 그동안 갚아주십시오. 이제야 행복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는 그 아이에게, 어른으로서, 상담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그거면 된 겁니다.”
[네…… 네, 그럴게요. 제가…… 제 아들한테 못 해준 만큼, 애들한테 더 잘할게요. 선생님……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알려주셔서, 연수, 받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울음소리 속에서 전화가 끊겼다.
나는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미래를 생각했다.
그간 내 머릿속의 상담사는 나와 몇몇뿐이었다.
자격지심 때문에 상담사들과 마주하는 일을 꺼렸다.
나 홀로 완전무결한 상담사가 되고자 했다.
그 꿈이 무너진 뒤로도, 혼자서 무수한 내담자들을 변화시켜 그들을 일상의 오아시스로 만들고자 했다.
이제는 서브퀘스트의 등장으로 다시 exp가 쌓이는 시점.
처음의 꿈도 이후의 대안도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담사들은, 그보다도 더 소중한 제3의 루트.
내가 한 명의 상담사를 담는다면, 그가 수십 수백의 내담자들을 담을 수 있다.
비록 아직도 입문자라는 꼬리표를 못 뗀 시점이지만……
나는, 플로럴 폼이 되고 싶다.
상담사들이 다가와 목을 축일 오아시스가 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귓전을 쩡쩡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NBSC는 당신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합니다. 아시죠?
‘상담사’로서 숨겨진 메인퀘스트를 찾아낸 당신!
이제부터 NBSC와 함께 최고의 ‘스승’이 되어볼까요?
히든퀘스트 “사명을 위한 다른 수단을 찾아봐요” 완료!
10exp와 특성 ‘지도’를 지급해드렸어요.
메인퀘스트 “제자를 성장시켜봐요(1/10)” 발생! 」
……뜬금없이 메인퀘스트라니.
이제껏 진행했던 반복퀘스트는 일반퀘스트였단 말인가.
그것만으로도 시대의 석학들에게 인정받는 상담사가 되었는데, 저 메인퀘스트의 보상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고민 속에서 우선 새로운 특성을 살폈다.
「 지도 : 49
제자로부터 열정과 잠재력을 이끌어냅니다. 100에 도달하면 비자발적인 제자조차 열성을 갖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
상담보다는 제자를 키우기 위한 특성.
상담이론을 가르치는 과정에서는 ‘관계’나 ‘화술’도 작용하겠지만, 이쪽은 그 이전의 개념이었다.
일종의 동기부여 기술이라고 보면 맞겠지.
그런 능력치가 고작 49밖에 안 되는 것은……
내가 의도적으로 타인을 성장시킨 적이 없던 까닭이리라.
박대민이라는 사람의 과거는 정말로 플로럴 폼 같아서, 누군가 다가와서 꽂히지 않는 이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져야지.
방황하는 상담사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
이 땅의 모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서.
기존에 쌓여 있던 exp가 38에, 방금 들어온 exp가 10.
여유는 충분했다.
그렇기에 두 차례의 레벨업을 수행했다.
「 성명 : 박대민 / 성별 : 남 / 연령 : 47
직업 : 상담사 Lv.16 (28/10)
관계 : 100 / 진단 : 100 / 화술 : 100 / 외모 : 100
환기 : 100 / 지도 : 69 」
……69면 어느 정도의 지도력일까?
아직은 마땅히 제자라 부를 만한 사람이 없어서,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확인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또 다른 연락을 받게 됐다.
사회복지학과 17학번 오현서였다.
[선생님! 저요 저요, 상담할 게 있는데 괜찮으세요?]
“나야 괜찮긴 한데, 목소리가 너무 밝은 거 아닌가요? 상담받으려는 사람 치고 말입니다.”
[헤헷. 좀 다른 상담이거든요. 선생님, 이거 비밀인데요!]
“예. 내담자의 비밀은 철저히 지킵니다.”
[아싸! 저요, 바울이요, 어때요? 선생님이 보시기에요.]
“……그렇게 물어보는 뜻은, 혹시?”
[헤헤…… 아이…… 히히. 저, 고백 받았거든요. 근데 제가 바울이 잘 모르기도 하고요, 친구들 중에도 아는 애가 거의 없어서요. 근데 선생님이랑은 같이 여행도 하고 방송도 나오고 했잖아요? 그래서, 어쩌면 제일 잘 아실 것 같아서요.]
……손바울 이 녀석은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걸까.
황당한 심경이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일단 현서와의 통화를 마무리해야 했다.
“일단 내 생각을 말하기에 앞서서, 현서 학생은 기분이 꽤 좋은 눈치네요? 바울이가 싫진 않은 모양이죠?”
[에헤헤…… 걔, 좀 잘생긴 것 같아요. 옛날에는 맨날 머리 기르고 고개 숙이고 다녀서 몰랐는데, 요새 보니깐요.]
“그렇군요. 이미지 변신이 잘 먹힌 모양이네요.”
[음…… 그렇다고 제가 얼빠는 아닌데요!]
“알아요.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바울이는 얼굴보다는 마음이 더 예쁜 아이입니다. 하지만 연애가 수월하지는 않을 수도 있어요. 일단…… 모쏠이니까요. 리드는 무리일 거예요.”
[아, 그거야 뭐, 제가 잘하니깐. 헤헤. 그렇구나. 선생님이 마음 예쁜 애라고 하셨으면, 믿어도 되겠네요! 고맙습니다!]
대뜸 끊긴 전화를 한참 바라봤다.
그렇게 말하지 말걸 그랬나.
손바울의 마음이 순수하고 예쁜 것은 사실이지만……
오현서에게 접근하는 마음 쪽은 확신이 어려운데.
마지막으로 확인한 그 아이의 [내담자 평가]는, 내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자 스스로를 관조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고백 역시 그 일환일지 모른다.
순수한 애정이라기보다는,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선한 아이와 연애를 경험해보려는 것일지도.
그 목적성은 어쩌면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나중에라도 진실을 알면 배신감을 느낄 테니.
이 부분은 손바울과 좀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생각하는 중에 또 전화벨이 울렸다.
양반은 못 되는 손바울이었다.
[선생님. 격조했습니다.]
“그래, 바울아. 나도 마침 연락하고 싶었다.”
[저, 고백할 게 있습니다.]
“……고백?”
[예. 상담사가 되겠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감정들이 많이 헷갈리긴 해요. 이런저런 애들 만나면서 구체화시켜보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최소한의 준비는 된 것 같습니다. 행복해질 준비요. 그러니까…… 선생님한테 배워도 되죠? 저, 가르쳐주실 거죠? 상담사, 되고 싶습니다.]
전혀 다른 고백을 듣고 멍해진 순간.
NBSC가 에픽퀘스트의 완료를 알렸다.
「 에픽퀘스트 4 “손바울을 쓰러뜨려봐요” 완료!
손바울의 내면을 움직여 그가 향후 ‘상담사’님을 위해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2의 루트를 통해…… 」
예상치 못한 일들이 너무 많긴 한데.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 듯했다.
스승이 처음인 나와, 행복이 처음인 아이.
이 만남이야말로 나의 메인퀘스트가 아닐까.
확인해볼 것은 딱 하나 정도였다.
“상담사가…… 왜 되고 싶은 거니?”
[음. 간단하게만 말씀드리자면, 일기를 하나 더 찾았어요.]
“일기를, 하나 더?”
[네. 어머니 거요. 거기에 적혀 있더라고요. 제 이름을, 바울이라고 정한 이유요. 지금 파일로 보내드릴까요?]
“……하하. 괜찮아. 그리고, 고맙다. 내 첫 제자야.”
[오, 바로 오케이예요? 뭐지? 아, 짐작하셨구나? 하긴 뭐. 바울이니까요. 고맙습니다, 나의 주여. 곧 찾아뵐게요.]
사도의 이름을 가진 아이가 경쾌하게 말한다.
그리고 나는 인간의 마음으로 생각했다.
이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상담사로 만들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