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47장 - 상담사와 스승 (2)
“지금 웃음이 나오나!”
한효준은 붉어진 얼굴로 삿대질을 했다.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 얼굴.
그에게 진짜 상담사로 인정받은 이들만이 마주할 수 있는, 내가 존경하는 스승의 진면모다.
이유는 몰라도 일단 사과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사과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야.”
“……사죄드려야 마땅한 일이었지 않습니까?”
“사죄는 무슨. 선배 상담사에게 막말을 한 것도, 내 허락 없이 내 이름 팔아 연수를 강요한 것도, 괜찮아. 자라날 아이들을 위한 일이었으니.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야.”
“실은 그러시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허. 당당하게 말하기는.”
“그런데, 그게 아니면 왜 화를 내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궁금해서 건넨 질문에, 한효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뜻이 아니야. 그것만이 방법이었는가?”
“……제 소견으로는 그랬습니다. 다른 방법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충격요법이 가장 주효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덕자 선생의 경력은 담임교사 17년에 상담교사 8년입니다. 어지간한 충고로는 자기 방식을 바꾸려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군. 그것만이 방법이었는가?”
“……오전에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내담자에 매몰되지 말고 상담자들을 살펴야 한다고요. 추후 무수한 학생들을 상담할 전문상담교사였습니다. 한시가 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알아. 그래서, 그것만이 방법이었는가?”
반복되는 질문.
분명 내가 생각지 못한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도무지 뜻을 읽기 어려워, 다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지도해주시면 귀를 열고 듣겠습니다.”
“싫어.”
……딸에게나 들을 법한 투정을 듣고 말았다.
얼이 빠져서 멍하니 보고 있었더니, 피식 웃더라.
“꼬마들이라면 그렇게 하나하나 가르쳤겠으나, 자네는 꼰마 아닌가? 꼰대 중의 꼰대 아냐? 그래서 꼰대마스터잖나? 스스로 깨우치게. 이덕자 선생은 내일 다섯 시에 올 게야. 자네가 데리고 가. 자네 방송 참관이 연수야.”
“교수님. 바쁘신 것은 알지만, 그래도 연상이신 교수님께서 상담윤리를 지도해주시는 것이 그림이 좋지 않겠습니까?”
“자네와도 몇 살 차이 안 나지 않나. 직접 지도해.”
“제가 무슨 자격으로 그럴 수 있겠습니까?”
“한 아이의 아비 아닌가? 상담교사에게 학생 지도법에 대해 논하는 일에 그 이상의 자격이 있겠나? 나가봐.”
한효준의 뜻을 헤아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덕자를 생방송에 참가시키려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학교현장의 상담과는 별반 관련성이 없을 텐데.
만 하루 내내 고민했지만,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렇기에 연구실에서 마주한 우리는 서로 어색했다.
“저기, 안녕하세요……?”
“예……. 교수실에는 들르셨습니까?”
“네. 박 선생님하고 얘기를 해보라고 하시던데요.”
“그렇군요. 일단 나가시죠.”
“나가요? 뭘…… 하는 거죠?”
“인터넷방송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선생님께서 제 생방송에 참여하시길 바라고 계십니다.”
“생방송? 제가요……?”
“불편하십니까? 그러시다면-”
“아, 아뇨! 괜찮은데, 거기서 뭘 하라고요?”
“상담사가 상담 말고 뭘 하겠습니까.”
설명은 거기까지였다.
나로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말없이 주차장으로 안내해 원룸으로 이동했다.
그러는 동안 이덕자가 종종 푸념을 늘어놓았다.
“제가요, 어제도 말했지만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그야 저도 연수 때 배우기는 했죠. 애들한테 신뢰를 얻으려면 비밀상담 원칙을 지켜야 된다고요.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나요? 현장에서는 달라요. 아이들은 집안에서 가르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고요. 상담이라는 건 사실 구실이고, 집안에 문제가 있는데 안에서 해결이 안 돼서 학교로 들고 오는 경우가 대다수예요. 그러니까 집에 연락을 해야죠. 저한테 한 말을 전달해서, 집안에서 아이를 잘 가르치게 해야 되는 거예요. 이론하고는 다르다고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상담소라면, 대부분의 미성년자 내담은 가족이 귀를 잡아 끌고 온 집단상담이다.
상담사 입장에서도 그쪽이 기껍다.
거의 모든 청소년 문제가 가족역동 속에서 발현되기에.
하지만 Wee클래스는 그와 반대로 학생 개인의 방문.
내담자는 어리고 여리며, 상담교사의 권한은 미미해서, 대부분의 상담이 겉핥기에 그치고 말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아이와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학부형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필요성은 분명 존재한다.
이덕자는 그런 필요성을 강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궁여지책.
아이들이 상담 자체를 불신하게 만드는 방식으로는, 어떤 긍정적인 결과도 긍정할 수 없다.
상담사라면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내야 마땅하다.
그녀의 항변은 자기합리화에 불과했다.
“이 선생님. 운전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아…… 네. 그러세요 그럼.”
토라진 아이처럼 입술을 삐죽거리는 상담교사.
그런 이덕자를 바라보며, 나는 프리챗을 생각했다.
프리챗은 한때 국내 최대의 커뮤니티였다.
가입자 1000만 명, 커뮤니티 수 100만 개.
어떤 분야든 최대 가입자 동아리는 전부 프리챗에 둥지를 틀고 있을 정도였다.
2002년에는 골든타임에 공중파 CF까지 내보낼 만큼 커져서,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나와 동아리 멤버들이 밤잠을 설치며 만든 포털 사이트.
프리챗은 신생 프리월드의 보물이었다.
2002년 가을의 사건 이전까지는.
첫 사업의 성공에 어깨가 치솟은 진갑수 대표는, 실패를 상정치도 않은 채 유료화 정책을 추진했다.
연간 10억의 순수익을 예상하면서.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인터넷 사업의 정석적인 수순으로, 유료 커뮤니티의 혜택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면 정말 대단한 성과를 냈을 터였다.
그렇지만 시기와 방식이 문제였다.
아직은 대체할 만한 무료 커뮤니티가 많고 많던 시점.
거기에, 진갑수 대표가 인터뷰를 통해서 유료화를 안 하면 커뮤니티를 폐쇄할 것이라는 식으로 떠벌린 것이다.
반발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진갑수는 그 반발에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성질을 부렸고.
뒤늦게라도 말렸다면 좋았을 텐데.
나라면 그 독불장군을 멈출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벤처 주제에 대기업과도 직접 협상을 할 만큼 커진 회사의 위상에, 나 역시도 취한 사람처럼 흥분해 있었기에.
자리에 취한 사람은 이성을 잃는다.
이덕자 역시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었다.
예전처럼 치열하게 수업준비를 할 필요 없는 상담교사라는 지위와, 쿵짝이 잘 맞는 또래상담부 학생들과의 우호적 관계.
그런 상황에서는 고통에 허덕이는 내담자들이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렇기에 상담심리학회장의 일갈이 필요하다 여겼는데……
한효준은 이덕자를 내게 보냈다.
내 권위로는 왜곡된 상담교사를 바꿀 수 없음을 알면서도.
운전하는 내내 고민했지만, 여전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원룸에 들어설 때까지도 표정이 어두웠던 건 그래서였다.
진대수가 염려를 품고 귓속말을 건네더라.
“형님. 이거 제 생각에도 꽤 디피컬트한 상황인데요? 저 아줌마 진짜 상담사 맞어요? 남의 원룸 벽지 가지고 왜 저렇게 구시렁거리는 거야? 형님, 그냥 내보내죠?”
“……교수님께서 시키신 일이야. 무슨 의미가 있겠지.”
“그야 효준좌는 믿지만…… 아, 오늘 노잼 되겠는데.”
나보다도 여덟 살이 더 많아, 정년이 머지않은 상담교사.
그녀는 당연하게도 인터넷 상담에 적응하지 못했다.
교내 상담과 결이 다른 까닭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녀 본인이 꼰대인 탓이었다.
“이걸 읽으라고요? 그냥 읽어요? 네…… 안녕하세요 꼰마님, 꼰줌……마? 꼰줌마님? 이게 무슨 뜻이에요?”
“꼰대 아줌마라는 뜻입니다.”
“네? 저보고 꼰대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줌마 부들부들」
「꼰줌마 힘내여~」
“그냥 장난스럽게 하는 말입니다. 계속해주세요.”
“아니, 장난이라도 그렇죠. 이렇게 말부터 함부로 하면 상담이 돼요? 상담 선생님을 존중을 할 줄 알아야죠.”
“일단 계속 읽어주세요.”
“참…… 그래요. 저는 고2 여자인데요, 오늘 엄마랑 싸웠어요. 엄마가 머리 염색한 거 가지고 자꾸 뭐라고 해서요. 탈색 좀 했다고 까졌냐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고 그러는 거예요. 어이없지 않아요? 아뇨, 어이없지 않아요. 고2가-”
“잠시만요. 이 선생님? 우선 사연을 끝까지 읽어주셔야죠.”
“네? 아니 근데 이거는, 이 친구가 너무 어린 생각을 갖고 있어서요.”
“그렇게 어린 생각이라고 단정 짓는 태도가 상담사로서 부적절한 것 같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고등학교 2학년인데 탈색이라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컨텐츠는 꼰머대첩인가」
「ㄹㅇ꼰대를 데려오면 어떡해여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조금은 기대했었는데.
친밀하게 지내는 건 또래상담부 몇 명 정도겠지만, 그래도 학생들과 매일같이 마주하는 직업이다.
학생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다가설 수는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덕자는 내 기대보다도 못한 상담사였다.
“제가 계속 읽죠. 어이없지 않아요? 엄마 세대랑은 진짜 세상이 달라졌는데. 열 받아서 저도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뭐라고 했어요. 근데 엄마가 너무 상처받은 것 같아요. 훌쩍거리면서 하소연하는 거 보는데 좀 미안했어요. 어떻게 화해하면 좋을까요? 알려주세요. 이렇게 말씀해주셨네요.”
“일단 머리부터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스톱. 선생님? 그래서야 문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왜요? 뭘 잘 모르셔서 그런 말씀 하시는 거예요. 지금 문제의 본질이 머리 탈색이잖아요? 학생이 학생다워야지, 그렇게 잘못해놓고 엄마를 원망하면 되겠어요?”
“됩니다. 그게 학생다운 겁니다. 학생이 남들 시선 생각해서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사회가, 정말 건강한 사회겠습니까? 독재정권의 장발 단속 앞에서도 아이들은 자기 이상을 실현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충동과 외부 세계와의 갈등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그게 정말 학생다운 배움입니다.”
“그러니까, 고2쯤 됐으면 이제 조절을 해야죠. 선생님 너무 애들을 모르시네요. 그렇게 오냐오냐하면 안 돼요.”
「엌ㅋㅋㅋㅋㅋㅋ이거 먼데 치열하냐고」
「은근 웃기네요 ㅎㅎ」
「희한하게 꾸르잼ㅋㅋㅋㅋ」
「꼰마님 파이팅!!! 이겨주세영!!!」
맞은편에서는 대수가 배를 잡고 웃고 있다.
예기치 못한 케미가 잘 먹힌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하지만 내게는 몹시 불쾌한 상황일 뿐이었다.
“이 선생님. 그건 본인의 선택이지요. 누구도 강요해선 안 됩니다. 가족이 아닌 바에는 말입니다.”
“가족이, 지금 엄마가 슬퍼했다고 하잖아요?”
“그 슬픔의 근원이 과연 탈색일까요? 그렇진 않을 겁니다. 단지 딸아이의 머리 색깔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상식과는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유행을 추구하는 딸과의 괴리감 때문이 아닐까요? 머리 색만 바꾼다고 끝날 일이 아닙니다.”
“이건 선생님이 어리셔가지고 잘 모르시는 건데-”
“제 나이가 마흔일곱입니다. 딸이 중1이에요.”
“예에? 저, 정말이에요?”
「꼰줌마 개당황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꼰마님 누군지도 몰랐나보네」
「검색좀 해보시지 ㅋㅋㅋ」
이덕자는 민망한 듯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블링블링한 장식이 달린 지갑 케이스.
기기변경으로 최신 기종을 사용하고는 있어도,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곧바로 포털 검색을 해볼 만한 나이는 아니다.
아마 ‘꼰마’에 대해서도 학생들 얘기나 들어봤겠지.
“정말 마흔일곱 맞고, 우선 사연으로 돌아가지요. 미고녀딩님. 엄마와 화해를 하시려면, 우선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단짝친구…… 그러니까 베프나 절친이라고 할 만한 친구가 있으시지요? 만약 그 친구가 힙합을 하겠다면서 뜬금 삭발을 한다면 어떤 느낌이실까요? 그 세계에서는 바이브 있는 스타일로 인정받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친구 입장에선 당황스럽겠지요?”
「미고녀딩 : ㅎㅎㅎㅎㅎ상상했는데 개웃겨여」
「미고녀딩 : 안대여 안대여」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단지 미고녀딩님을 옛날 바이브에 묶어두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고만 생각지는 말아주세요. 엄마들도 모르지 않아요. 세상은 변하지요. 거기에 발맞추고 싶다는 생각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미고녀딩 : 마자여 엄마도 막 신조어 공부하는데」
「미고녀딩 : 근데 이상하게쓰고 그래서 짜증나여」
「미고녀딩 : ㄹㅇ1도몰라」
“그렇겠지요. 애들 짜증을 유발하는 게 중년의 숙명이니까.”
이덕자는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50대 엄마의 마음에 닿는 측면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쪽에 관심을 주지는 않았다.
도대체 정신 제대로 박힌 상담사가 아니어서, 솔직히 말해 눈도 마주치기 싫은 심경인 탓에.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변한 세상에 속해 있지 않으니까요. 누구도 새 세상을 공유해주지 않으니까요. 딸이라고 하나 있는 미녀 고딩조차, 엄마한테 끈기 있게 요즘 세대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알겠어요? 요즘 세상이 어떻게 변해서 고딩이 탈색해도 이상하지 않게 됐는지를, 엄마가 무슨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다 알고 있겠어요? 알려드려야지요. 미고녀딩님의 세상에 초대해야지요. 그러지 않으면 끝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남을 겁니다. 부끄러워서 딸에게는 말도 못 한 채, 자기 전에 눈물지으실 겁니다.”
「미고녀딩 : 아 ㅠㅠㅠ」
「미고녀딩 : 엄마 우는거 시른데」
「미고녀딩 : 한번 해볼게여」
「꼰줌마님은 왜 암말도 안함 ㅋㅋㅋㅋ」
[오리대리님 별사탕 100개. 꼰줌마님도 파이팅.]
“어, 어? 꼰줌마…… 저 부른 거예요?”
“……예. 파이팅 하시라고 응원해주네요.”
“어머…… 별일이야 참.”
그런 식으로 몇 차례 사연을 맞이하는 동안.
이덕자는 조금씩 감을 잡기 시작했다.
갑자기 인터넷방송에 적응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와 시청자들이 공유하는 그 젊음의 이야기에서 자신이 얼마쯤 소외돼 있는지를 깨달았을 뿐.
[케바케님 별사탕 100개. 꼰줌마님 왜케말이없어여 유유.]
“……이 선생님? 혹시 몸이 안 좋으십니까?”
“아, 아뇨. 아니에요. 그냥, 보는 게 재밌네요.”
“그러십니까. 그래도 다음 사연 읽어주시지요.”
“네……. 보라돌아이……님의 사연이네요.”
그런 이덕자를 보며 종종 고민했다.
한효준은 이것을 바랐을까
Wee클래스 안에서 자신의 개똥철학을 영위하던 상담교사가, 상상과 다른 아이들의 진짜 바이브를 느끼길 원했을까
그렇기에 직접 나무라지 않고 내게 보낸 것일까
하지만 그건 한효준답지 않은 방식이다.
젊은 세대에게 소외되는 경험은 부정적 방어기제를 낳는다.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말한 것은 옛 성인의 일화.
보통 마흔 이상의 나이가 되면, 불혹(不惑)의 부정적인 사례로서 자기 세계관을 고집하기 일쑤다.
내 스승은 그런 불확실한 수단에 기대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일까.
이덕자에게, 한효준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 답을 이리저리 추론하며 방송을 마무리했다.
처음 예상과 달리 희한한 케미가 꽤나 재미를 줬다며 기뻐하는 대수를 남겨두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던 와중.
이덕자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애들이, 선생님을 참 좋아하네요.”
“……예. 꼭 애들만은 아니고, 성인들도 많습니다.”
“그렇구나. 부럽네요. 저는, 그렇게는 안 되던데.”
“그…… 또래상담부 아이들과는 잘 지내시지 않습니까?”
“그 애들이요. 네. 그냥…… 간식 주니까요. 부실 내려와서 수다 떨고, 제가 주는 간식 먹고, 그러면서 좋다고 웃더라고요. 정작…… 걔들은 저한테 상담을 하지 않지만요.”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두 눈으로 보고 있는 아이들인데. 선생님께서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상담하시는지 말입니다.”
“주먹구구……는 아니에요. 저도 나름대로, 잘하고 있어요.”
이렇게 되는 것이다.
소외의 경험이 자성을 부르는 것은, 청소년기에도 어렵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이덕자에게는 불가능할 터였다.
그렇기에 권위와 나이에서 우위인 한효준의 직면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는 이덕자를 내게 보낸 것일까.
혹여, 권위의 부족과 연령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정말로 내가 스승을 대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차 앞에 다다른 이덕자가, 물빛의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한 교수님이 그러시던데. 여기서 뭘 배우게 될 거라고요.”
“……그렇습니까.”
“그게 뭔지 모르겠네요.”
“글쎄요……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딸이 있으시다고 그랬죠?”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애들을 참 잘 다루시네요.”
문득 묘한 감회에 사로잡혔다.
‘딸이 있어서 그런가’라는 말은……
어쩌면, 그녀가 갖지 못한 가족을 부러워함일까.
“혹시, 아이가 없으십니까?”
“네. 늦게 낳은 외동아들이 있었는데, 사고로 하늘나라 갔네요. 열두 살 때.”
“……죄송합니다. 그런 줄은 몰랐습니다.”
“전요, 애들 보면요, 아들 같아요. 보면 참 예쁘고, 안쓰럽고, 품어주고 싶어요. 그런데 그러면 안 돼요. 걔들한테는 진짜 가족이 있으니까. 그래서 선을 그었어요.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냥 애 아빠 엄마들이랑 통화해서, 오래 이야기해서, 애들한테 좋은 가정을 만들어주려고 했어요. 알아야 될 일이니까. 알려줘야 될 일이니까. 그게 나쁜 건가요? 제가 이렇게…… 밤늦게 불려다니면서, 훈계 들을 정도로?”
“훈계라기보다는…….”
말을 맺지 못하고 생각했다.
이덕자라는 엄마에게 Wee클래스란 어떤 의미였을까.
친아들이 겪어보지 못한 고등학생 시기를 사는 아이들.
멀쩡히 살아있으면서도, 가족들과 격리된 채 홀로 고민하며, 피 안 섞인 상담교사에게나 털어놓는 고민들.
그것이 그녀에게는 어떤 색깔로 보였을까.
“애들이요, 또랑또랑하게 보면서 그래요. 죽겠으니까 해결해달라고요. 뭘? 내가 뭘요? 어떻게요? 그냥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된다고요? 비밀은 보호해줘야 되는 거니까, 상담사답게 고개만 끄덕여주면 된다고요? 아 넌 죽고 싶구나, 정말 안타깝네. 그거면 돼요? 걔들은, 살아있잖아요? 내 아들은 죽어서 없는데, 걔들은 멀쩡하잖아요? 뭐가 그렇게 고민인데? 엄마나 아빠가 있잖아? 그런데 왜, 왜 이야기하지 않는데? 왜 나 같은…… 꼰대 아줌마 찾아와서 그런 소리를 하는데? 그게 정말 맞는 거예요? Wee클래스? 거기 담당교사라고 해서, 내가 뭘 할 수 있는데요? 뭘 더 어디까지 듣기만 해야 되는데요?”
아이 잃은 엄마의 비애와, 권한 없는 상담사의 갈등.
그 앞에서 마침내 깨달았다.
한효준이 그녀를 내게 보낸 이유를.
그는 내가 한효준이 되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내 스승이 내게 요구한 것은……
상담사를 치유하는 상담사.
꼰대 중의 꼰대- 꼰대마스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