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46장 - 상담사와 심리검사 (4)
“엄마는…… 자살했어요.”
소년은 그렇게 서두를 꺼냈다.
머리가 멍해지고 마는 이야기였다.
“그랬구나. 마지막 기억은, 어떤 거였니?”
“……저한테 욕을 했어요. 너 때문에 다 엉망진창이라고요. 개새끼라고요. 자기가 낳아놓고…… 치사하게…….”
육성주가 중학교 2학년이던 3년 전의 일.
우울증을 앓고 있던 그의 모친은, 의부증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아들에게 풀어내며 하루하루 말라갔다고 한다.
소년에게는 그보다 끔찍한 현실이 또 없었을 터였다.
“엄마 죽었을 때…… 그러면 안 되는데,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더 맞을 일 없을 테니까. 근데 며칠…… 몇 달이었나. 그렇게 지나고 나니까 이상했어요. 마지막에 욕하면서 집 나가던 얼굴이…… 자꾸 떠올랐어요.”
우울증이 전부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BPD는 환경 요인만큼 유전 요인이 큰 질환이니.
끊임없이 가족을 의심했던 모친 역시 BPD에 해당해서, 그것이 육성주에게 이어졌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다만, 유전 요인이라는 것은 결국 확률일 뿐.
가장 멀쩡하던 사람도 앓을 수 있는 것이 인격장애다.
역으로 말하면, 적절한 환경 속에서는 어떤 유전 요인도 발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
육성주도 모친도 고통받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환경은 썩 긍정적이지 못했다.
호프집 사장인 부친은 임대료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고, 자연히 가정보다 바깥일에 신경을 더 쓰게 됐다는 모양.
모친이 죽고 난 뒤에도 아들에게 큰 관심을 주지 못했다.
그 결과가 대를 이은 질환으로 발현된 것이다.
“아빠는, 술집이라 밤에 집에 잘 오지도 않았어요. 나도 집에 있기 싫었고요. 그렇게 되고 나니까 자꾸 엄마 생각나서……. 그래서 친구들 불러서 농구도 하고 술도 마시고……. 애들이랑 있으면 그래도 마음이 좀 편해서…… 그때는 친구들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고1 때 처음으로, 좀 그랬어요. 준호한테…… 엄마 얘기 했거든요. 걔라면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반응이 이상하더라고요. 평소랑 다르게 피하는 거 같고……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졌어요. 이 새끼 나 동정하나, 그런 생각 들고…… 빡치더라고요.”
“그래. 그 아이가 처음 싸운 아이였지?”
“네……. 근데 진짜 제가 먼저 때린 거 아니에요. 그냥 자꾸 이상하게 쳐다보니까 짜증나서, 뭐라고 한 거 같긴 한데.”
“뭐라고 했을까? 한번 생각해봐.”
“……몰라요. 그냥…… 니 엄마도 죽었으면 좋겠다 그랬나.”
“그게 친구한테 할 말이냐?”
“……그러게요.”
그렇게 첫 번째 사건이 벌어진 이후.
이후로는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고 했다.
매력적이고 유쾌한 리더인 육성주는, 친구에게 마음을 털어놓지 않게 됐다.
특히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꾹 다물었다고 했다.
“근데 가끔 그런 애들이 있거든요. 좀 친해졌다 싶으면 비밀 캐내려는 애들이. 성주는 왜 가족 얘기 안 하냐는 식으로…… 애들한테 그런 얘기 들리면, 돌겠더라고요. 다 그렇게 준호처럼…… 다 가버릴 것 같았어요. 그게 싫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니?”
“말로 조지고 은근히 까고…… 그랬죠. 저…… 별로죠?”
“별로지. 싸가지가 심하게 없네.”
“……그래도 괜찮아요?”
“그래도 괜찮아. 사과하고, 이제부터 안 그러면 돼.”
“쌤. 저 동정하는 거죠?”
BPD를 공부하며, 학부생들이 종종 말하곤 했다.
타인의 마음을 몰라서 불안해하는 거라면, 조건 없는 사랑을 계속 주면 나아지지 않겠냐고.
신뢰할 만한 상담사가 되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다고.
선량한 마음이지만, 가망 없는 이야기였다.
왜곡된 인지라는 것은 거대하고 공고한 장벽.
순진한 동정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장 압도적인 호의를 안겨줘도, BPD 환자는 그 안에서 무언가 꼬투리를 찾아내고 만다.
그렇게 집요한 의심 속에서 상담사인들 버텨낼 수 있으랴.
풋풋했던 애정은 금세 무너진다.
풋내기 상담사의 사적인 동정은, 결국 또 다른 배신이 되어 예후를 악화시키기만 할 터였다.
다만 내 경우에는……
마흔일곱의 야매 상담사는, 조금 다르다.
주먹질을 당해도 허허 웃을 수 있는 바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번에는 NBSC의 덕이 더욱 컸을 듯했다.
“어떤 것 같니?”
“……모르겠어요. 쌤은 진짜 졸라 이상한 거 같아요. 혹시 쌤도 그랬어요? 저처럼…… 이런 거였어요?”
나는 분명 그를 동정하고 있다.
너무도 아프고 괴로운 이야기였기에.
그러나 육성주가 아는 동정과는 조금 다를 터였다.
나는, 실제로 잠시나마 육성주였으니까.
[완전한 공감]은 잔재를 남긴다.
선인장 소년의 통증이 내 가슴속에 살아있다.
그러니 내 동정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같은 감정.
마음만 앞선 순진한 동정과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오직 나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다.
완전한 공감.
육성주가 동경과 의심의 양가감정 대신 혼란스러운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그 기술의 작용 덕분이었다.
“그런 건 신경 쓰지 마라.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아 왜요? 내 얘기만 듣고, 자기 얘긴 안 하고.”
“억울하면 니가 상담사 하든가.”
“아, 치사해 진짜.”
“그건 됐고, 상담교사 선생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니?”
“개자식이죠.”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고. 표현을 다르게 해볼까?”
“……쓰레기요.”
“조금 더 순화해볼까?”
“아, 씨. 그냥…… 이기적이에요. 자기 멋대로 비밀 다 깨버리고…… 약속도 안 지키는 인간이에요.”
“좋아. 그 정도는 인정.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쪽에는 정이 다 떨어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야. 그 사람한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걸 이해해야 돼. 쓰레기나 개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채로는, 그 부정적인 정서가 다른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좋은 사람까지 도망가게 만들 거야. 친구들이 상담교사 언급했을 때 빡쳤던 적도 있지? 그때도 때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지 않았어?”
“……쌤은 진짜 뭐예요? 독심술 해요?”
독심술은 아니고, 그저 육성주가 되어 생각해봤을 뿐이다.
그 동질감 속에서 라포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DBT(변증법적 행동치료)라는 대안적 치료를 통해.
변증법이라는 것은 극단에서 중용을 찾아가는 기술.
엉망으로 꼬여버린 문제의 근원을 알아내고자 내담자에게 접근하는 대신, 적당한 선에서 자기 정서를 조절할 스킬들을 가르치는 상담이다.
그를 통해서 자해의 빈도나 치료중단율이 감소했다는 연구결과가 이미 상당했다.
단, 이때 상담사는 내담자를 완전히 수용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스승과 제자 같은 신뢰관계가 정립된다.
상담사가 자기 상태에 대해 감도 잡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내담자는 결코 변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
DBT의 창시자인 마샤 리네한이 경계선 인격장애 병력을 갖고 있는 것이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 경험한 환자의 심리를 통해서 유용성에 초점을 맞춘 상담기법을 정립했다.
비록 유형이 다양하긴 하지만, 동일한 병증으로 고통받았던 사람이기에 고안할 수 있었던 방향성일 터였다.
그리고 내 경우에는 [완전한 공감]을 통해서 육성주 본인의 감정을 완전히 수용했다.
그 내면의 정서와 행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고 있다.
말 하나하나를 육성주에 맞춰 개인화했기에, 수긍하기 힘들 이야기조차 쉽게 설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문제행동을 줄인다는 것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다.
조금씩 BPD라는 진단기준에서 멀어질 수야 있겠지.
그러나 행동치료를 통해 도달하는 곳은 이데아가 아니다.
여전한 지옥 속에서, 그저 전보다 덜 다치는 법을 배울 뿐.
근원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곳으로 다가가야 한다.
원래대로라면 모친이 그 대상이겠지만, 그녀는 이미 고인.
육성주의 인격을 뒤흔든 사람은 다른 곳에 있을 터였다.
“준호. 이름이 심준호지? 걔 번호 불러.”
“……왜요?”
“내가 만나보려고. 그래야 되겠어.”
“하지 마요!”
“아, 광대뼈 너무 아프네. 이거 멍 들려나.”
“마, 많이 아파요? 죄송합니다…….”
“그래서 번호가 어떻게 된다고?”
“아니…… 왜 그래요 진짜…….”
“빨리 말해라. 마음 바뀌어서 학교에 보고하기 전에.”
“아! 진짜! 여기요.”
2학년 2반 심준호의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기입한다.
그 뒤에 다시 말을 이어갔다.
“심준호한테 고맙다는 말은 한 적 있니?”
“그 새끼한테요?”
“새끼?”
“그…… 걔한테요?”
“그래. 상담교사가 그 아이도 자세히 인터뷰를 했었어. 그런데 엄마 얘기는 하나도 안 했더라. 네 엄마 돌아가신 사정이나, 네가 자기 엄마에 대해서 심한 말 했던 거나. 그걸 얘기하면 너한테 엿 먹일 수 있을 게 뻔했는데도 말이야.”
“……그러네요.”
“그래. 도망치지 않고 생각했으면 바로 알 수 있었겠지?”
“근데…… 왜 그랬을까요? 좀…… 빡쳤을 텐데.”
“알긴 아는구나. 그런 식으로, 한마디 한마디가 남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를 생각해라. 꼭 주먹을 휘둘러야만 폭력이 아니야. 내가 준호였더라도 너 냅다 팼을 거다.”
“아니…… 쫌 그러지 마요.”
떨떠름하게 중얼거린 뒤, 육성주는 쏟아진 음식물을 치웠다.
신이 나서 열심히 준비했을 도시락.
그때의 이상화된 천사는 이제 없어졌다.
그렇지만 아이의 표정은 결코 어둡지 않았다.
“쌤은 진짜…… 이상해요. 짜증나는데…… 편해요.”
“나도 비슷해. 네가 불편한데 짜증은 안 난다.”
“진짜 이상해. 쌤, 근데 오늘 드라마 나와요?”
“그래. 볼 거니?”
“봐야죠!”
“잠깐밖에 안 나와. 안 봐도 된다.”
“그럼 잠깐 보죠 뭐. 암튼…… 다 치웠어요.”
“그래. 그럼 나가자. 분식이라도 사줄게.”
“아, 네!”
그날, 육성주는 여러 차례 더 볼멘소리를 했다.
과거 때렸던 친구들에게 사과할 방법을 배워야 했기에.
그렇지만 소리를 지르거나 도망치지는 않았다.
“시키는 대로 하면…… 저 좋아해줄 거죠?”
“안 해도 좋아해. 내담자니까.”
“아니 근데, 더 좋아해줄 수도 있잖아요.”
“더도 없고 덜도 없어. 나한테 내담자는 다 똑같다.”
“……어떻게 그래요? 이해가 안 돼.”
“아, 준호가 좀 더 좋긴 하다. 아주 인격자야.”
“그 새…… 아닌데요. 나쁜 놈인데.”
“내일 만나서 확인해보면 되겠네. 오늘은 일단 푹 자라. 내일 아침에 내가 부르는 데로 나와.”
“……싫어요. 드라마 보고 잘 거예요.”
거기까진 말릴 수 없을 듯해, 그저 웃어줬다.
그때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그늘 없이 웃는 육성주의 얼굴을.
“보기 좋다. 그렇게 웃어. 가식적으로 실실 쪼개지 말고.”
“아, 쌤…… 짜증나요.”
말만 그렇지, 여전히 웃음은 밝았다.
덕분에 나 역시 환하게 웃게 됐다.
전날과 달라진 분위기에 진대수가 황당해할 정도로.
“아니, 형님이 조울증이 있으셨나? 어제랑 전혀 다르네요?”
“인마, 농담으로 할 말이냐?”
“진심인데요? 근데 진짜 싸움 붙으신 거 아니죠? 얼굴에 멍이 아무리 봐도 주먹으로 맞은 것 같은데.”
“굴렀다니까. 그만 가자.”
“아니 근데…… 필터 넣어서 시청자들이야 몰랐겠지만, 집에 가면 바로 걸리실걸요? 좀 괜찮은 변명 생각해두세요.”
아쉽게도 괜찮은 변명이 떠오르지 않아, 우직하게 정면돌파를 감행했다.
“여보 왔어? 드라마 이제 시작하려나봐. 광고 세 개 나왔- 뭐야! 그거 뭐야! 어떤 잡놈한테 맞았어!”
“맞은 거 아니야. 계단에서 굴렀어.”
“거짓말할래? 얘 지수야! 아빠 얼굴 좀 봐!”
“왜? 어? 왜 그래? 아빠 왜 터졌어? 어떤 새끼야?”
“새끼라니. 지수야, 그런 말을 하면 돼?”
“아빠가 터지고 왔으니까 그러지.”
“터진 거 아니라니까.”
“아니긴 뭐가 아냐! 이리 와, 좀. 지수 넌 계란 가져와!”
두 사람에게 둘러싸인 채 한참 간호를 받았다.
그러는 내내 생각했다.
육성주의 집안도 이랬다면 좋았을 텐데.
부친이 일 때문에 자꾸 바깥으로만 나돌아도, 서로를 지키고 사랑할 줄 아는 가족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터무니없이 슬픈 가정이다.
그 부친을 위해서라도, 육성주는 행복해져야 마땅했다.
심준호라는 아이가 그 키가 될 터였다.
*
[거 아주 통보를 하시는구만. 아주 제멋대로야. 이래서야 누가 스승이고 누가 제자인지 알 수가 없어.]
등교가 조금 늦어진다는 말에, 한효준은 신경질을 부렸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태도.
거기서 저간의 사정이 짐작되었다.
“김지연 선생이 이야기를 전했군요.”
[와중에 눈치는 빠르군. 자네, 무슨 짓을 한 겐가? 어쩌다 코찔찔이 내담자한테 주먹질을 당했어?]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상담의 일환이었습니다.”
[설마…… 스키마치료인가? 전이를 이용해 자네 스스로가 부적응적 스키마를 깨뜨리는 키가 되었다고? 이, 무모한!]
……상담의 일환이라는 한마디에 거기까지 짐작하다니.
과연 천재는 천재였다.
[그게 될 법한 일이냔 말이야! 우리가 치료적 도구로 기능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선을 지키면서 하는 일이야! 자칫 문제행동이 심화됐으면 어쩔 뻔했나!]
“죄송합니다.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자네가 대체 무엇이기에!]
“바보 같은 사람이지요. 마음의 지도를 갖고 있기에, 어떤 끔찍한 꼴을 당해도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제가 아니고서야 그 아이의 부정적 인지도식을 깨뜨릴 수 없었……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체 이런 자가…… 후우. 이 문제는 내가 엄히 따질 게야. 그런데,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말은 뭔가?]
“한 명이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그 아이를 찾아가는 중이지요.”
[……그런가? 그건 고무적이로군. 만나보고 나서 전화하게.]
내담자를 위한 희소식에는 이렇게 순순해진다.
참 존경스러운 스승.
나 역시 그렇게 되어야 할 터였다.
육성주의 왜곡된 스키마를 파괴하는 스승이.
“심준호 학생?”
“어, 어! 진짜다! 와, 저, 뻥인 줄 알았는데! 저 어제 드라마도 봤거든요! 와…… 연예인이 내 앞에 있네.”
학교 앞 분식집에서 만난 심준호는, 굉장히 밝게 웃었다.
육성주 문제로 만나자고 불러낸 것을 알면서도.
마음속의 가시들이 녹아내린다.
[완전한 공감]이 남긴 육성주의 잔재가, 그 아이의 동급생을 보며 치유되기 시작했다.
“준호야. 상담교사한테 왜 말 안 했니? 엄마 얘기 말이야.”
“엄마…… 누구 엄마요?”
“너희 두 사람 엄마. 모른 척하지 않아도 돼. 성주한테 다 들었다. 너랑 싸웠던 날에, 굉장히 심한 말을 했었다고.”
“헐. 걔가 그거 기억해요? 까먹었을 줄 알았는데.”
“왜 그랬니? 그런 말을 들었다고 상담교사한테 말했다면, 다른 애들이 성주만 싸고돌지는 않았을 텐데. 너도 힘들었을 거 아냐? 그런데 왜, 끝까지 비밀을 지킨 거야?”
“……이거 성주한테 말하실 거죠?”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게. 난 약속은 지킨다.”
“올. 그냥…… 저도 그래요. 약속은 지켜요. 걔가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그랬거든요. 근데 니 엄마도 뒈졌으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말한 거 꼰지르면…… 상담쌤 얘기 들어보니까 예전에도 애들 사정 떠벌린 적 있었다고 그러던데…… 그러면 다 알게 될 거잖아요. 쌤도 애들도 걔 불쌍하게 쳐다볼 텐데. 그건 좀 별로 같아서요. 암튼, 이거 성주한테 말하지 마세요.”
분식집의 안쪽 테이블을 일별했다.
바람도 안 부는데 커튼이 살랑거린다.
그쪽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알았다. 말 안 하는 조건으로 하나 더 물어볼게. 왜 별로라고 생각했어? 엄마 욕하고 때린 아이를…… 왜 지켜줬어?”
“……진짜 말 안 하실 거죠?”
“안 한다니까. 이 자리에서 얘기 듣고 끝이야.”
“헤헤. 별 건 아닌데. 그냥, 친구잖아요.”
“……욕하고 때리는 친구도 친구니?”
“그건 좀 빡치긴 했는데…… 친구는 친구죠. 나중에 사과하겠죠 뭐. 나라도 그랬을 거예요. 엄마가 나 때리고 욕하다가 자살했으면…… 그거 진짜 미칠 일이잖아요. 멀쩡하게 견딘 것만 해도 대단하지. 이해해요. 좀, 존경하고요.”
커튼 안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준호가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보는 동안, 짐짓 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심리검사는 끝났다. 살아보니까, 남들 욕하고 다니는 녀석이 제일 성격 더러운 법이더라. 쓸데없이 의심하고 테스트하는 건 거기까지 해. 믿고 의지하고 다가가라. 그게 진짜 친구를 사귀는 방법이야. 좋은 친구 둬서 좋겠다, 성주야.”
“엑? 뭐, 예? 성주? 어어?”
“아저씨는 간다. 나머지는 둘이서 해결해.”
분식집을 나서면서, 나는 괜스레 코끝을 훔쳤다.
있을 수 없을 것만 같던 행운이 감격스러워서.
부드러워진 선인장의 잔재가 자꾸만 눈물을 불렀다.
하지만 울지는 않는다.
이건 행운이 아니니까.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면, 어디에나 누구보다 밝게 웃으며 지켜보는 친구가 있다.
의심과 염려라는 커튼이 그들을 가리고 있을 뿐.
그러니 우리는……
사실 모두가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다.
가시를 녹일 행운을 발견하는 시점이 서로 다를 뿐.
언제고 모두가 도달하게 되리라.
심리검사가 필요치 않은, 진정한 신뢰의 관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