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29화 (129/200)

# 129

46장 - 상담사와 심리검사 (3)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다.

전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한 여성을 두고,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BPD(경계선 인격장애)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술했다.

정서가 불안정하고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특성을 지녔다면서.

그는 ‘어쨌든 성격장애이기에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은 없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개소리죠. 그쪽 인간들은 어째 발전하는 법이 없다니까. 성격장애라서 동정심이 없어? 심리학과였으면 20학번 새내기들도 코웃음 칠 소리를 당당하게 언론에 지껄이다니.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정석이었습니다.]

조명기는 생각만 해도 열이 뻗친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말할 것은 없지 않나 싶지만, 그 인터뷰로 인해 상처받았을 무수한 인격장애 환자들을 생각하면 말리기도 어려운 노릇이었다.

특히 조명기는 그 문제에 침착할 수 없는 처지.

죄 없는 BPD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던 미디어의 몰상식이야말로, 그를 오랫동안 괴롭힌 슬픔이었다.

[다른 정신질환들은 많이 나아졌지만, 인격장애 쪽으로 오면 그렇게 오해가 판을 칩니다. 그러니 교수씩이나 되는 자가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 거지. 심리평가를 할 때마다 조심스러워지곤 해요. 혹시라도 자기 진단명 검색해보고 자괴감에 휩싸이진 않을까 해서. 후배님도 그 부분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내담자가 오해하지 않도록 잘 지도해야 돼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선배님. 정말 병원에 보내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정확한 진찰이 필요할 듯한데요.”

BPD는 진단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동일한 정신질환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유형이 존재하는 까닭에.

의존성 인격장애처럼 소수의 타인에게 순종하며 사랑받으려 애쓰는 케이스는, 위축형.

연극성 인격장애처럼 끊임없이 남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과장하는 케이스는, 충동형.

자기애성 인격장애처럼 타인의 시선에 쉽게 분노하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케이스는, 분개형.

조현형 인격장애처럼 스트레스 상황에서 엉뚱하고 편집증적인 정동을 보이는 케이스는, 자벌형.

모든 유형론이 그렇듯 절대적인 분류는 아니다.

그저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특성일 뿐, 대부분의 경우에는 여러 유형이 혼재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기에 BPD는 쉽게 다른 인격장애로 오진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인격장애의 종합선물세트’.

풋내기 상담사 따위가 진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조명기가 보는 박대민은 풋내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거야, 후배님이 어련히 정확하게 보셨을까. 못 믿을 사람 아니니 쓸데없는 과정은 빼는 거예요.]

“지나친 신뢰입니다, 선배님. 저는 의사도 임상심리사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라 믿는 겁니다. 도무지 단정 지을 줄 모르는 양반이 처음부터 BPD를 확신하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그럴 만한 준거가 있었겠지. 내담자 비밀보호 원칙 때문에 자세히 말하지 못하는 거 알아요.]

정확하게는 내담자가 아닌 내 비밀 때문인데.

어쨌든 그의 말대로 확신할 수 있는 케이스긴 했다.

육성주에게 처음 시도해본 심리검사가 [내담자 평가]에 신비로운 영감을 준 것인지, 뜬금없이 진단명이 나와버렸기에.

덕분에 과정 없이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식과 해소가 별개라는 점.

알고 있다고 해서 만사형통인 것은 아니다.

“진단은 그렇다 쳐도, 약물치료에는 전문의의 처방이 필요하잖습니까?”

[약물이라……. 분명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당장 문제행동이 심각하지 않다면 ‘비추’예요. 학생이라고 했잖아요? 동급생들에게 약 들키면 문제가 비화될 수 있어요.]

“예, 그럴 수는 있겠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 저절로 호전되리라 기대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절로는 어렵지요. 악순환의 질환이니까. 하지만 적절한 상담과 함께라면 금세 관해(remission : 병세가 호전되어 진단기준에서 벗어남)에 이를 수 있는 병증이기도 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빼지 말고. 후배님이 잘하는 거잖아요? 우선은 라포부터 형성해요. 그 전에는 병원도 약물도 무리수입니다. BPD는 정말 델리케이트한 증세니까요.]

Delicate라는 표현이 꽤나 적절해 보였다.

BPD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예민함’이라고 할 수 있으니.

네 가지 유형으로 드러나는 BPD가 하나의 진단명으로 묶인 이유는, 기저의 근원이 동일한 까닭.

그들은 미움받고 말 것이라는 불안 속에 허덕인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핀다.

마치 매 순간이 심리검사의 회기인 것처럼.

이중인격처럼 극과 극을 오가는 것이 그런 까닭이다.

검사자의 시선으로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다보면, 사소한 말 한마디가 이별의 징조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럴 때면 돌변해서 문제행동을 벌이는 것이다.

그 자체는 자연스러운 심리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어’라는 대사가 인터넷에서 밈처럼 통용되는 것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보편적인 감정인 탓.

누구나 일정 정도는 상실의 공포에 파괴적으로 대응하는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다.

그저 이성으로 자제하고 있을 뿐.

다만 BPD의 경우에는 그 공포가 비할 바 없이 거대해, 바람직한 판단을 내려줘야 할 이성이 마비된다.

그렇기에 종종 위협과 폭행까지 저지른다.

범죄심리학계에서 안 좋은 낙인이 찍힌 게 그래서겠지.

치료가 아니라 분석을 목적으로 하는 그들에게는, 문제행동 이면에 자리한 선량한 마음 쪽은 무의미할 테니까.

다만 BPD를 동정심 없는 광증처럼 묘사한 범죄심리학 교수는, 심리학을 개론부터 다시 공부해야 마땅하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문제행동에 대한 자책 속에서 자살까지 선택할 정도로.

그러니 ‘사랑을 갈구하는 선인장’이다.

다정이 지나쳐 병이 되어버렸을 뿐, 내면은 누구보다도 큰 사랑으로 가득하다.

문제는……

그 넘치는 사랑이 문제해결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

그렇기에 내내 육성주 생각을 거두기 힘들었다.

방송을 마친 뒤 진대수가 조심스런 질문을 건넬 정도로.

“형님……? 뭐 안 좋은 일 있으셨어요?”

“별거 아니야. 내가 혹시 방송 내내 찡그리고 있었니?”

“아뇨, 아니었죠. 그냥 사연 사이사이에 잠깐씩요. 왜 그러시는데요? 제가 도와드릴 수 없는 문제임까?”

“……대수야. 넌 어떤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니?”

“엥? 갑자기요? 저야…… 형님의 판타스틱한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고 시청자들이 지려버렸다면서 유유 댓글 달 때?”

“하하. 일상생활에서 말이야.”

“음…… 글쎄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해줄 때? 그때는 충족감 같은 게 많이 들죠.”

보통은 그렇겠지.

평범한 사람은 그런 일들에서 커다란 즐거움을 느낀다.

사랑받는 것이야말로 비할 바 없는 행복이기에.

그렇지만 그 보편적인 행복에서 유리된 이들도 있다.

인간관계에서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

세상이 누구 하나 믿을 이 없는 지옥이라 생각하는 이들.

에서, BPD 환자들은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미아가 된 7살 아이에 비유된다.

울부짖으며 엄마를 찾아 헤매지만 보이지 않는다.

두렵고 낯선 타인의 차가운 시선만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불안을 극복하고자 하염없이 손을 뻗지만, 진심으로 호의를 보여주는 사람마저 의심해 날을 세우게 된다.

누구보다도 사랑받길 원하는 이들인데.

그럼에도 어떤 애정표현에도 만족하지 못해, 언제고 모두 떠나갈 것이라는 왜곡된 인지 속에서 일그러진다.

순종도 과장도 분노도 왜곡도 원인은 전부 그것이다.

그렇기에 선인장.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고자 온몸에 가시를 두르고, 결국 그 가시로 인해 목표했던 행복에 닿지 못한다.

본말이 전도된 애정결핍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육성주에게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결코 쉬이 해소할 수 없는 왜곡을, 어떻게 깨뜨려야 할까.

하염없이 한숨이 나왔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단서를 발견했다.

호들갑스레 내 어깨를 때리는 대수를 통해서.

“형님 형님, 이거 이거. 이런 게 제 행복이죠. 오늘 팬가입한 애한테서 쪽지 왔는데, 읽어드릴게요. 와 진짜 방송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쌤은 진짜 완전 착하신 것 같아요.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고 생각했는데 쌤은 다르시네요. 완전 천사예요. 내일 농구 약속 안 잡을게요, 같이 밥 먹어요……? 이건 뭐지? 형님, 아시는 애예요? 닉네임이 6star 이건데요.”

“……육성이구나.”

“예압. 육성이 뭐지? 프린세스메이커 이런 건가?”

BPD의 또 다른 특성 하나.

불신 속에서도 그들은 이상적인 인연을 찾아 헤맨다.

그 기준에 부합되는 인물을 찾았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를 극단적으로 이상화해, 세상 유일한 천사라고 믿어버린다.

모든 감정을 쏟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애쓴다.

내 방송을 보길 권했던 건 실수였을지도 모르겠다.

빠른 라포 형성을 위해서였지만……

그것이 과도하게 빨라졌을지도.

*

“쌤 쌤! 왔어요? 저녁밥 안 드셨죠?”

김지연의 상담실에 들어섰을 때, 먼저 와 있던 육성주가 벌떡 일어섰다.

손에 든 작은 가방을 흔들어 보이며.

“……그게 뭐니?”

“도시락이요! 쌤이랑 같이 먹을려고 싸왔어요. 쌤, 저 요리 좀 하거든요. 엄마 안 계시니까……. 빨리 앉으세요. 뭐 못 드시는 거 있어요? 알러지나 그런 거?”

잘생긴 얼굴에 체격도 훤칠한 아이다.

아마 따르는 여학생들도 많겠지.

그런 녀석이 마치 꼬리 흔드는 강아지처럼 웃고 있다.

내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서.

그 마음에 웃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극단적으로 치닫는 아이의 애착이, 오히려 적신호라는 것을.

“성주야, 이제 다섯 시 반이잖아. 먹기 전에 이야기부터 마무리하자. 어제 진행한 Big5에 대해 설명을 들어야지.”

“아, 그럴까요? 그게 낫나? 네, 그래요.”

내 한마디에 의견을 바꿔 다시 자리에 앉는 소년.

귀가 얇아서 하는 행동이 아니다.

혹시라도 내게 미움받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숨을 참기가 어려웠다.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는 신뢰관계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애착으로 발전하는 것은,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애정과 증오가 때때로 종이 한 장 차이인 까닭에.

사랑이 무너지면 극단적인 미움이 생겨난다.

보통은 배신이라 느낄 만한 행동에 주의하면 그만이겠지.

하지만 BPD는 애착관계에서 비상식적으로 예민해지기에, 예기치 못한 이유로 라포가 깨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한마디 한마디에 극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일단 네 검사결과는…… 안정성이 꽤 낮아.”

“진짜요? 글쿠나. 약간 예술적으로 천잰가? 하하.”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외향성도 극히 낮았어.”

“진짜요? 아닌데? 저 딱 봐도 외향적이지 않아요?”

“완벽하게 정확하진 않을 수도 있어. 다만 검사결과로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거리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아…… 그거야 뭐 다 그런 거 아닌가? 하하.”

“그럴 수도 있겠지. 마지막으로, 우호성이 가장 낮더라.”

“예? 헐. 아닌데? 저 착해요. 애들한테 얼마나 잘하는데.”

“그래. 인기도 엄청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 이 부분은 오해하지 않았으면 해. 누구나 어느 정도 가식적으로 살아가는 법이니까. 수치가 낮다고 나쁜 게 아냐. 너무 의심을 안 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어.”

“근데…… 너무 의심을 많이 하는 것도 문제잖아요? 저 이상하다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저 그거 다시 할래요. 이거 아니야. 저 진짜 그런 사람 아닌데…….”

육성주는 떨고 있다.

내 시선을 직접 맞받지는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힐끔거리며 어떤 조짐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눈치.

어제와는 반대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어린 내담자가 내 심리를 검사하고 있었다.

저게 문제지.

BPD의 애착이란 것은 의심과 동의어다.

끊임없이 대상을 관찰해 태도를 검사하고 만다.

상대 입장에서는 매일 사상검증을 당하는 꼴인지라, 가까웠던 친구 사이조차 깨어지고 마는 것이 당연했다.

그 결과 발생한 것이 네 건의 폭행이리라.

나 역시 작은 틈을 보이는 순간 그의 적이 될 터.

라포가 아닌 애착이, 우리의 상담관계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김지연의 부탁이 재해석되는 순간이다.

단지 혈기왕성한 남고생과의 관계형성에서 문제를 겪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애착 때문이었을지도.

상담사의 친절이란, 사랑을 갈망하는 아이에게는 이렇게 비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육성주는 벌써 몇 차례의 배신을 겪었다.

학교의 전문상담교사는 둘만의 비밀을 멋대로 전파했다.

젊고 아름다운 김지연은 변명으로 상담을 회피했다.

그 끝에 나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NBSC를 가졌을 뿐, 결코 대단치 못한 이 야매 상담사를.

저 아이에게 나는 무엇을 해줘야 할까.

DBT(Dialectical Behavior Therapy : 변증법적행동치료)를 위해 극히 객관적으로 다가가야 할까.

스키마치료를 위해 차분하게 속을 떠봐야 할까.

……그런 것은 나중 문제겠지.

답은 분명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하자.

세상에서 오직 박대민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성주야. 넌 경계선 인격장애에 해당해.”

“네? 어…… 그게 뭔데요?”

“비정상이라는 뜻이야. 정신질환이다.”

“하, 하하. 그런 거 아닌데요? 검사 다시 해야 되겠네요!”

“그간 친구들과 갈등을 빚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을 거야. 그 아이들이 실수한 게 아니었어. 네가 지나치게 의심하고 두려워했기에 문제가 생겼던 거야. 그게 너란 사람이다.”

“아, 진짜…… 하하. 쌤, 장난쳐요? 왜 이래요? 아니라니까요? 나 그런 거 아니라고! 사람을 왜 미친놈 취급하는데!”

갑작스런 고성 때문인지,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다.

원래는 BPD 환자에게 절대로 취해선 안 될 방식이지만……

나라면 괜찮다.

개 같은 나라면, 이 불행한 소년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넌 미쳤어. 그게 진실이야.”

“아니라고! 그런 거 아니라고!”

육성주가 몸을 일으켜 달려든다.

그 결에 가방이 엎어지며 내용물이 쏟아졌다.

참 예쁘게 담겼던 음식물들이 테이블 위로 흩어지고, 훤칠한 소년이 주먹을 휘두르며 내게 육박했다.

“여기요! 선생님, 여기 열쇠 좀!”

바깥쪽에서는 비상사태를 알리는 목소리가 요란하다.

미리 잠가뒀기에, 열쇠를 가져오는 데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리고 나는……

소년의 폭력에 몸을 맡겼다.

어떤 두려움도 없이, 그저 샤워기의 물을 맞이하듯이.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난, 멀쩡해! 나는, 괜찮아! 당신이 뭔데! 당신이 뭔데 나한테, 날, 나쁘다고 그래!”

얼굴과 가슴을 일곱 대 정도 맞았을까.

문득 눈을 크게 뜬 육성주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다.

예상한 반응이 나오지 않자 퍽 당황한 듯했다.

“아, 씨, 아, 씨발,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그래. 난 맞다고 했고.”

“당신이, 쌤이 잘못한 거야! 난, 잘못 없어!”

“그건 잘 모르겠다. 누가 잘못했는지가 중요한 일일까?”

“……왜…… 왜 욕을 안 하는데!”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널 일부러 화나게 만든 거야. 그래놓고 욕을 하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닐까?”

“……왜! 왜, 왜 그랬는데!”

“알려주려고. 성주야. 넌 분명 1분 전까지만 해도 날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렇지만 몇 마디 말만 듣고 주먹을 휘둘렀지. 그게 경계선 인격장애라는 거야. 감정이 지나치게 빠르게 변해.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사랑받지 못하게 돼버려. 그게 네가 처한 상황이야.”

“아…… 아냐! 난…… 아니야! 아, 씨바알!”

폭력이 먹히지 않자, 소년은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내게 붙잡힌다.

‘외모’의 효과로 가장 이상적인 밸런스를 회복한 신체가, 늦지 않게 육성주의 몸을 끌어안았다.

“씹, 놔! 이거 놔!”

“괜찮아. 성주야, 난 여기 있다. 어디 가지 않아.”

“놔! 놓으라고! 당신도 똑같잖아! 날, 나보고, 꺼지라고 할 거잖아! 놓고 가버릴 거잖아! 날 싫어할 거잖아!”

“몇 대 맞은 일 정도로 싫어하진 않아.”

“거짓말하지 마!”

“거짓말이 아니야! 그래도 괜찮아. 이상해도 괜찮아. 한심해도 괜찮아. 그래도 미워하지 않는다.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비상식적인 애증 앞에서, 비상식적인 애정을 건넨다.

도망치려던 육성주조차 일순간 멍해졌다.

“……내가, 때렸는데요?”

“괜찮아.”

“내가, 나보고 미쳤다면서요!”

“괜찮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보고 이상하다면서요!”

“괜찮아. 세상에 이상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너는 아주 더럽게 미친 동시에, 더럽게 정상적이야. 그러니까 괜찮아.”

육성주는 내 품에 안긴 채 굳어버렸다.

대답 없이 한참을 안겨 있다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때쯤에 김지연이 잠긴 문을 열었다.

“어…… 저…… 괜찮으세요? 대체 무슨 일이……?”

“괜찮습니다. 아무 일 없었으니, 다시 닫아주세요.”

“그…… 네…… 알겠어요.”

김지연이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서도 육성주는 그대로였다.

석상처럼 굳은 채 말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완전한 공감]이 들여다봤다.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 거짓말이야. 가버릴 거야. 욕하고 도망가버릴 거야. 근데…… 근데……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이런 나까지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아냐! 나 같은 새끼를 누가 좋아해! 엄마도 욕하고 때리고 버렸는데, 누가 날 좋아해! 천사는 없어! 세상에 날 사랑할 사람은 없어! 그러니까 사랑해줘-가버려-믿어줘-죽어버려-제발 날-

“성주야.”

“흑, 윽, 끅……”

“성주야. 괜찮아. 나는 천사가 아니지만, 그저 흔하고 별 볼일 없는 아저씨지만, 그래도 괜찮아. 사람이니까. 너도 나도 사람이니까. 넌 그대로도 괜찮아. 사랑받을 수 있어. 정말로.”

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

“……안, 아파요?”

“더럽게 아파. 너 진짜 싸움 좀 하는구나?”

“근데 왜…… 왜 화 안 내요?”

“알고 있으니까. 네가 더 아프다는 걸. 그래서 괜찮아.”

“뭘…… 어떻게…… 알아요?”

“다 아는 수가 있다. 그러니까 상담사인 거야.”

“……거짓말.”

마지막 ‘거짓말’은 조금 어감이 달랐다.

바들바들 떨던 품속의 소년이, 점차 느려졌다.

아주 조금쯤은 안심하게 된 듯했다.

의도된 전이(transference)였다.

내담자의 부정적인 경험을 상담자인 나 자신을 통해 되살려, 왜곡된 인지에 작은 균열을 내기 위한 일.

어디서도 장려되지 않는 위험천만한 접근법이다.

한효준이 듣는다면 분명 이면지를 집어던지겠지.

그렇지만, 그로써 심리검사는 끝났다.

이 아이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다시 없을 호구가, 인간이 어디까지 멍청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으니까.

어떤 경우에도 나만큼은 떠나지 않음을 확인했으니까.

다만……

그 예상이 기쁨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엄마를 떠올리며 울부짖던 육성주의 마음들이, 가슴 한구석을 사정없이 찔러대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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