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28화 (128/200)

# 128

46장 - 상담사와 심리검사 (2)

처음 김지연에게서 육성주에 대해 들었을 때, 나는 귀찮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아리를 생각했다.

집단따돌림으로 인해 죽음까지 생각했던 소녀를.

그래서 약간은 들떠 있었다.

어쩌면 왕따 가해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직 자격을 취득하지 못해 슈퍼바이지 입장이지만, 마침내 비자발적인 내담자를 상담하게 된 것이다.

가해자들은 보통 자신의 심리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갈등에도 상담소를 찾지 않으니, 학교 등의 사회적 명령이 있어야만 상담사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상담사에 인방 BJ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간 내가 만나왔던 내담자는, 극소수의 인지 왜곡 사례를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피해자에 치중되어 있었다.

물론, 피해자의 상담을 통해서도 문제를 해소할 수는 있다.

갈등이라는 자물쇠는 안팎에서 풀리는 법이니.

안쪽에서 문을 열면 바깥의 온도 역시 변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아리였다.

일방적인 피해자였던 아이지만, 그 주변인들을 변화시킴으로써 가해자에게 간접적인 반성을 안겨줄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이 한 달쯤 진행된 현재.

아리는 친구들의 동경을 받는 아이돌 연습생이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죄책감이 남았다.

아무 죄 없는 아이에게만 짐을 지웠기에.

가해자들의 반성에 앞서서, 그 불쌍한 소녀에게 용서를 권했기에.

그래서 변화한 내 입지에 감사했다.

이제는 누군가가 가해자들을 맡길 만한 상담사가 되었음에 기뻐했다.

잘못 없는 어린 영혼들에게, 내 딸에게는 차마 권하지 못할 슬픈 해결책을 더는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막상 마주한 육성주는……

단순한 가해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쌤? 검사지 빨리 주시면 안 돼요? 쌤도 바쁘시잖아요? 저 상담 뺑뺑이 도는 중이라, 대충 하셔도 될걸요?”

짐짓 어깨를 으쓱이며 하는 말이다.

나를 Wee센터 소속 상담사라고만 생각하는 모양.

‘꼰마’의 영상이나 사진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덕분에 다중관계를 염려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절차라는 것이 있는 법.

특히 심리검사는, 부족한 라포로 인해 오염되기도 한다.

김지연을 위해서라도 사회적 통념을 따라야 할 터였다.

“성주 학생? 오늘이 우리 첫 만남인데, 대화도 없이 종이부터 들이밀 수야 있나요. 먼저 몇 가지 물어볼게요.”

“아, 네…… 그러세요.”

“성주 학생은 왜 여기에 와 있습니까?”

“저요? 담임쌤이 보내서요.”

“그걸 물어본 게 아닌 거 알지요?”

“……애들 때려서요?”

“정확하게는, 반복적으로 싸움에 휘말렸기 때문입니다.”

“휘말려요? 딴 쌤들은 제가 때렸다고 하던데.”

“그 말은 부정확하지요. 때리기도 하고 맞기도 했잖아요?”

“글죠. 저도 맞았어요. 그냥 제가 더 셌던 거죠.”

“그렇군요. 2학년 중에 제일 센가요?”

“네? 글쎄요? 아마도?”

별반 두려울 것 없다는 듯한 대답.

싸움에는 꽤 자신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확신 없는 어조에서는, 구태여 싸움을 일으킬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 심리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번이나 반복된 폭행.

의도한 것이건 휘말린 것이건, 육성주 본인의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터였다.

다만, 온전히 그 혼자만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듯했다.

“싸웠던 애들이랑은 어때요? 반이 갈렸다고 들었는데.”

“네. 딴 층 돼서 잘 못 봐요.”

“보고 싶은데 못 본다는 뜻인가요?”

“네? 에이. 보기 싫죠. 보고 싶었으면 걔네 반 가면 되죠.”

“그렇군요. 거기부터 시작해보죠. 왜 보기 싫습니까? 원래는 친했다고 들었는데요.”

“그거야 저 보면 또 지랄…… 화낼 거니까요.”

“그래요. 그 친구들은 왜 화를 냈을까요?”

“그거야 저도 모르죠.”

“그러면 싸웠을 당시에는, 왜 그렇게 됐던 것 같아요?”

“아니, 이거 계속 말한 건데, 걔네가 갑자기 덤볐다니까요?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새끼들이 미쳐가지고.”

“그렇군요. 하지만 한두 명도 아니고 같은 사례가 네 번이나 반복됐어요. 이 정도면 성주 학생 본인도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고민하게 됐을 법한데요.”

“아뇨, 전혀요. 요즘 애들이 문제잖아요? 괜히 질투하고 반항하고 그러는 거죠. 전 진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저것이다.

육성주를 본 순간 감지했던 그늘.

친구와의 관계를 논하는 소년에게서 다시 그것이 보였다.

육성주를 두고, 김지연은 방어적 태도가 애답지 않게 적극적이고 정교하다고 진술했다.

말하자면 천부적인 연기자라는 뜻.

같은 공간에서 오래 생활한 동급생들 모두가 유쾌한 리더라고 평가할 정도니, 초면에 가면을 벗기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럼에도 직관적인 의구심이 드는 것은……

아마도 110의 ‘진단’이 가진 힘이겠지.

잘 꾸며낸 쾌활한 태도 아래의 무언가가 느껴진다.

육성주라는 아이가 짊어진 인생의 무게가.

「 내담자 명 : 육성주

평가 결과 : 사랑을 갈구하는 선인장. 」

……문제는, 그 직관을 확인해줘야 할 [내담자 평가]가 이렇게 추상적인 소리만 하고 있다는 것.

아직은 그를 분석할 준거가 부족한 까닭이리라.

지금처럼 소모적인 대화만 거듭한다면, 회기가 끝날 때까지도 그대로일 것이고.

그렇기에 오늘 수행할 BIG5가 중요했다.

“어제는 MMPI 검사를 했지요?”

“엠엠…… 그랬나? 뭐가 되게 많았어요.”

“그랬군요. 혹시 답하다가 지겨워서 대충 하지는 않았나요?”

“아뇨. 성격검사 같은 거래서, 궁금해서 열심히 했죠.”

거짓말이다.

육성주는 마음의 소리를 부정하고 답변을 조작했을 터였다.

그게 아니라면 K척도가 그토록 높지 않았을 테니.

1차 심리검사로 자주 활용되는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 MMPI)에는, 타당성 척도(validity scale)라는 것이 존재한다.

피검자가 의도적으로 거짓된 답을 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답했는지 등을 판단하는 문항들.

567개의 문항 중에 그 함정이 숨어 있다.

전문가라 해도 문항을 외우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니, 부적절한 검사지는 걸러지게 마련이다.

김지연이 육성주에게 요구한 것이 그 MMPI의 중고등학생용 버전(MMPI-A)였다.

문항 수는 338개로 줄어들지만, 메커니즘은 동일.

그 검사의 타당성 척도 중 K-r값이 무효에 해당한 것이다.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답을 체크했다는 의미였다.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미모의 김지연에게 잘 보이고자 진심을 감췄거나, 이곳에서 진행하는 검사 자체에 부정적인 스키마를 품고 있거나.

전자라면 일이 간단하겠지만……

만약 후자라면, 검사에 앞서 여건을 형성해야 할 터였다.

“오늘 진행할 검사는 훨씬 짧아요. 119문항짜리.”

“으…… 그래도 많네요.”

“빨리 농구 하려면 대충 답하고 가야 되겠지요?”

“에이, 안 그래요. 저도 제 성격 궁금한데요.”

“그래요? 그러면 오늘 검사가 딱이겠네요. 심리학자들이 성격이라는 말과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심리검사니까요.”

“성격이랑 동의어요?”

“그렇습니다. Big5라고, 들어봤어요?”

“어…… big4는 들어봤는데요.”

“비슷한 표현법이긴 해요. 사람의 성격에 다섯 가지 중요한 스탯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분석법이지요. 게임은 좀 해요?”

“폰게임은 가끔요.”

“게임에 보통 그런 게 있잖아요? 힘, 민첩성, 마력, 이런 거. 사람의 성격을 그런 방식으로 분석하는 검사예요.”

“올……? 착함 나쁨 이런 거예요?”

“그건 아니고. 좋고 나쁨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이를 검사하는 겁니다. 외향성, 안정성, 호감성, 성실성, 개방성. 이렇게 다섯 개예요. 그게 바로 무수한 성격검사 중에서도 심리학자들에게 특히 인정받는 Big5지요. 아무 데서나 받아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늘 좋은 기회를 잡은 거예요.”

“올…… 재밌겠는데요? 그럼 빨리 주세요.”

점수 매기기를 좋아하는 건 만국 공통.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그만큼 흥미로울 요소가 또 없다.

보통은 게임 비유만으로도 검사 신뢰도가 향상될 터.

그렇지만 재밌겠다고 말하는 육성주의 눈빛은……

흥미보다는, 묘한 아쉬움만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래도 일이 복잡해질 것 같았다.

“성주 학생. 아저씨가 하나 맞춰볼까요?”

“네? 뭘요?”

“학생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격검사에 제대로 임할 생각이 없지요? 검사만이 아니라 상담이란 행위 자체에 부정적인 인상을 품고 있는 것 같은데. 어째서입니까?”

“헐. 아닌데요? 왜 그래요? 이상하시네.”

말과는 달리 움찔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협조적인 태도를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는 것.

그 지점에서, 퍼뜩 떠오르는 문제가 있었다.

“혹시…… 상담 내용이 부모님께 전달됐습니까?”

“어…….”

“……그런 일도 있다고 들었어요. Wee클래스의 자리매김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지만, 짧은 기간 동안 급격하게 확충된 시스템인지라 주먹구구식인 경향이 없지 않다고요. 특히 자주 발생하는 문제가, 상담교사에 의한 내담자 개인정보의 유포라고 하더군요.”

“와. 알긴 아시네요. 애들끼리만 욕하는 줄.”

정답을 맞혔지만, 이를 악물게 됐다.

모든 것을 용서하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지만……

이 경우는 정말 긍정적으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내담자가 후회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도와야 할 상담사가, 상담에 임한 일 자체를 후회로 만든 죄악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야 알고 있다.

전문상담교사라고 이름만 그럴싸하게 붙여놨을 뿐, 나이 많은 상담교사들의 대부분은 일반교과 교원으로 재직 중 연수 프로그램 하나 이수하고 자격증을 취득한 이들.

2~3년의 수련을 거친 상담심리사들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오랜 기간 교사로 재직하며 체득했을 나름의 교육철학이 고작 연수 정도로 혁신되길 기대하기도 어렵고.

그러나……

그럼에도 상담사가 아닌가.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문제를 안은 아이들에게, 마지막 안전망으로 기능해야 하는 이들이 아닌가.

“……성주 학생. 내가 말을 놓아도 괜찮을까요?”

“네? 아, 그러세요.”

“성주야. 미안하다. 대신 사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정말 미안해. 아저씨들이…… 어른들이, 너희한테 그 정도로 무심하다. 그건 변명할 여지 없는 잘못이야.”

“……그런가? 근데 괜찮아요. 별로 중요한 얘기도 아니었고.”

이번에도 말과 표정이 다르다.

전혀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누설된 상담기록은, 그에게 정말 중요한 이야기였을 것이고.

“성주야. 이런 상황에서 날 믿어달라고 말하는 것도 웃긴 일이겠지만…… 하나만큼은 분명히 말해주마. 오늘 진행할 Big5는 네 속을 캐내는 그런 검사는 아니야. 착하고 나쁘고, 좋고 나쁘고, 그런 개념과는 무관해. 예를 들어 다섯 개의 스탯 중에 안정성이라는 게 있어. 이름만 들으면 낮으면 안 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 심리적 안정성이 높다는 건 역으로 말하면 둔하다는 뜻이거든. 그래서 이게 낮은 사람들이 예술 쪽으로 활약하기도 해. Big5는 그런 식이야. 그저 사람마다 다른 성향을 확인하는 거지, 문제아로 낙인 찍거나 정신병이라고 진단하는 그런 게 아니야. 인터넷 검색해봐도 좋아.”

“……쌤이 잘 아시겠죠 뭐.”

“검색해봐.”

“귀찮아요.”

“부탁할게. 한번 해봐.”

“……아니 근데, 쌤. 그게 문제가 아닌데요? 어차피 결과 나오면 학교 쌤들이랑 공유할 거잖아요? 쌤이야 뭐 잘 아니까 좋고 나쁜 거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쌤들은 다른데요? 안정성? 그거 낮게 나오면, 딴 애들한테 저 문제아라고 성질 긁지 말라고 그런 얘기나 떠들 거 같은데요. 존나 애들 위하는 척하면서…… 자기 생각만 맞다고 생각하니까.”

이건, 진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육성주의 목소리가 처음보다 훨씬 더 솔직해졌다.

상담교사를 대신해 사과한 것이 도움이 됐을지도.

혹은, 한효준이 말한 개 같은 인상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평가 결과 : 사랑을 갈구하는 선인장. / ‘상담사 쌤’이라는 수맥에 뿌리를 뻗어보고 있다.」

선인장의 뿌리를 뻗고 있다는 표현이 완전한 신뢰에 해당하지는 않겠지만……

가시가 아니라 뿌리인 게 감지덕지지.

나 역시 최선을 다해 그에게 다가가야 할 때였다.

구태여 진심을 감출 필요는 없어 보였다.

“학교 쌤들, 다 좆까라 그래.”

“……네? 헐. 쌤 그렇게 말해도 돼요?”

“돼. 난 너희 학교에서 돈 한 푼 받은 것 없고, 이번 상담이 잘되든 안 되든 어떤 손해도 볼 게 없다. 그러니까 상관없어. 너희 학교에 말 한마디 문자 하나 안 보낼 거다. 김지연 선생님도 마찬가지야. 너와 나만의 대화야.”

“예…… 뭐 그렇겠죠.”

이 반응은 반신반의일 것이다.

잠깐의 대화로 좋은 인상을 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본적인 스탠스마저 뒤흔들 정도는 아니었을 테니.

의심하는 아이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성주야. 사적인 얘긴데, 내 딸이 중1이야.”

“……예? 어? 진짜요? 쌤 속도위반?”

“그건 아니고. 내가 보기보다 나이가 많아. 마흔일곱.”

“헐…… 에반데?”

“넘어가자. 아무튼 그래서 하는 말이야. 내 딸이 만약에, 나한테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상담사에게 이야기했는데, 그게 뜬금없는 전화로 내 귀에 들려온다면. 나는 바로 전학 보낼 거다. 그렇게 제멋대로인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으니까. 나한테 중요한 건 학교 선생들이 아니라 너야.”

“올. 왜요?”

왜.

단순한 질문에 수많은 의문이 함축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육성주에게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내 딸과 같은 시대를 살아갈 아이니까.”

“……그게 왜요? 저 쌤 딸 알지도 못하는데요?”

“알고 모르고는 중요치 않아. 네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나비효과가 돼서 또래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테니. 여섯 명만 거치면 전 세계 사람들과 연결된다는 얘기 알지? 이 좁은 한국에서는 더할 거다. 두세 명만 거쳐도 다 아는 사이일 거야. 그러니까 함부로 행동할 수 없어. 내가 너한테 뭔가를 잘못하면, 다른 누군가가 내 딸에게 똑같이 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나한테는 너랑 딸아이가 다르지 않아.”

“헐. 특이하네요. 흠…… 그럴 수도 있겠네요. 오케이요.”

119개 문항으로 구성된 ‘5요인 성격검사’를 받아든 육성주는, 처음에 비해 훨씬 안정된 태도로 펜을 쥐었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문항을 채워나간다.

모래바람뿐인 사막에서 한줄기 물을 찾듯이.

그 과정을 마친 소년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네 비밀 얘기, 어떤 거였는지 물어봐도 될까?”

“그거요? 그냥, 엄마 얘기였어요. 엄마 돌아가시고 친구들이랑 같이 노는 날이 늘었다고 말했는데, 그거를 멋대로 해석해가지고 아빠한테 말했더라고요. 뭐랬지? 엄마를 잃은 상실감 때문에 친구들한테 의존적인 성격이 생겼다? 으, 역해요.”

“……그래. 이 검사지는 그런 식으로 되지 않을 거다. 결과는 오직 너한테만 전달될 거야.”

“헤. 그래요. 암튼 그럼…… 내일도 요때 와요?”

“그래. 내일도 농구 약속 잡을 거니?”

“어…… 몰라요? 봐서요.”

그 반응에서도 뭔가를 숨기는 인상이 감지됐지만……

아까와는 다른 느낌이다.

육성주가 감춘 진실은, 아마도 이미 약속이 잡혀 있다는 사실일 듯했다.

“일곱 시로 잡아라. 그때는 나도 바쁘니까.”

“뭐 쌤도 저녁밥 드셔야죠.”

“그게 아니라, 방송을 하고 있어. 궁금하면 오늘 한번 봐라. 꼰마의 고민상담소 검색하면 바로 나올 거야.”

“……꼰마요? 예? 어? 어어? 쌤이 꼰마예요?!”

몹시 당황한 육성주는, 이후 한참 동안 날 붙들고 인방에 대해서 질문했다.

어떤 그늘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아마 농구 약속에는 꽤 늦어버렸을 듯했다.

그렇게 내담자를 보낸 뒤에는, 김지연에게 사과를 건넸다.

“죄송하지만 이번 건, 슈퍼바이징을 거부하고 싶습니다. 성주 학생이 상담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었어요. 저와 둘만 공유한다는 전제 속에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양해해주신다면 당분간은 그렇게 진행하고 싶어요.”

“……아, 너무해요. 저도 센터에 보고를 해야 되는데…….”

“알아서 잘 꾸며주시겠지요?”

“으…… 진짜 나빠요. 암튼 가요. 선생님이 밥 사실 거죠?”

“저는 거르겠습니다. 검사지부터 확인하려고요.”

“아, 선생님, 식사는 하셔야죠!”

김지연을 설득해서 내보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어려운 것은 Big5의 해석 쪽이었다.

검사결과를 도출하는 일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각 척도의 점수는 답변을 기입하기만 하면 나오는 것이고, 요인 분석 역시 워낙 구체적으로 되어 있는 모형.

그렇지만 그 결과값이 의외였던 것이다.

육성주는 세 가지 측면에서 특징적이었다.

상당히 낮은 안정성과, 그보다도 낮은 외향성과 우호성.

친구들에게 매력적인 리더로 평가받는 아이가, 대단히 쉽게 상처받고 상호작용을 불편해하며 타인을 의심한다고 답했다.

자기보고검사와 타인의 관점은 다른 것이 당연하지만……

이 정도의 괴리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토록 안팎이 맞부딪치는 원인이란, 대체 어떤 비극일까.

교우들과의 갈등이 바로 거기에 기인할 것이다.

적당히 선을 그은 사이에서는 매력적인 모습만을 보여주는 아이지만, 친밀해진 일부에게는 진짜 자신을 드러냈을 터.

그때에는 예상치도 못한 충돌이 생길 수 있다.

본인만 아는 진짜 육성주가, 친구들에겐 타인이었을 테니.

그러니 갈등의 해결이야 간단한 노릇이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평가 결과 : 사랑을 갈구하는 선인장. / ‘상담사 쌤’이라는 수맥과 맞닿았다. 경계선 인격장애에 해당한다.」

경계선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Big5로는 단정 짓기 어려운 진단명을, NBSC의 초능력이 오류 없는 진실로 드러내고 있었다.

인격장애의 여러 유형 중 가장 난해하다는 정신질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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