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46장 - 상담사와 심리검사 (1)
[으, 진짜, 너무 힘들어요…….]
이아리는 진이 빠진 듯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지친 건 신체뿐인지, 언제 칭얼거렸냐는 듯 금세 목소리가 밝아졌다.
[근데요! 여기 언니들이요, 다 삼촌 알아요.]
“나를? 다른 연습생들이?”
[네! 그래가지고요, 쉬는 시간에 삼촌 얘기 하면서 놀았어요. 빨리 퀸즈랜드 보고 싶다고 그랬고요, 나중에 데뷔해서 마음이 아프면 삼촌 방송 초대석 나가면 된다 그랬고요.]
“……그랬구나. 아리 동료들이라면 출장을 가줄게.”
[아, 진짜요? 그러면요, 삼촌 안다고 해도 돼요?]
“지금 당장은 말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이제 출근한 첫날인데, 벌써부터 주목을 받는 건 곤란할 수 있어.”
[응, 알았어요. 그러면 비밀로 할래요.]
아리는 결국 연습생 캐스팅을 받아들였다.
나름대로 복합적인 사고를 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녀의 자살기도로 가슴에 대못이 박혔을 부모님께, 뭔가 변화를 보여드리고 싶었겠지.
당장은 내 도움으로 학급에서도 중심에 서게 되었지만, 여전히 학교가 생활의 메인이라면 계속 걱정하실 것이 뻔하니.
물론 아리의 양친은 그 의욕을 거꾸로 받아들였다.
딸이 무서운 학교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습생이라는 도피처를 찾은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런 염려로 내게 전화를 걸기도 했는데, 허락하든 하지 않든 심리적 문제는 전혀 없을 것이라 확답해줬다.
[내담자 평가]가 오류 없는 진실을 알렸기에.
「 내담자 명 : 이아리
평가 결과 : ‘왕자님’의 키스로 연못을 박차고 날아오른 개구리 공주. 총천연색의 세상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
……이래서야 이미 심리평가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지만.
어쨌든 그 진술을 통해 아리의 부정적 추동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 결과가 조퇴 뒤의 기획사 출근이 되었다.
연습생이라고 해서 학교를 완전히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집중적인 트레이닝은 주로 방학 때 이뤄져, 학기 중에는 학교생활에도 충실할 수 있다고.
다만 아리는 그간 병결 외에는 출결이 좋았기에, 한동안은 조퇴도 하며 연습에 매진할 예정이라 했다.
[학교 쌤들은 많이 걱정하셨는데요, 저는 되게 좋아요.]
“저런. 그렇게 공부가 하기 싫었니?”
[헤헤…… 춤 추는 게 쪼금 더 좋아요.]
“그랬구나. 노래는 어때?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음역대는 괜찮다고 하셨는데요, 연습 많이 해야 된대요.]
“그래. 노력하면 유명한 가수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그렇게 되면요, 방송에서 삼촌 얘기 할 거예요. 삼촌이 제일 멋있는 상담사라고요. 홍보요정 돼줄게요!]
“하하. 그래, 그렇게 해주면 정말 고맙겠다.”
[그쵸? 헤헤. 은혜 갚은 아리 돼야지.]
은혜라고 말하면 영 민망한 노릇이지만.
슬픔을 걷어내고 걸어가기 시작한 아이는, 응원해줘야 한다.
“잘할 거야. 아리 너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니까.”
[헤헤…… 헤헤…… 응! 저요, 오늘 트레이너 쌤들한테 칭찬 많이 받았어요. 계속 열심히 하면 데뷔할 수 있을 거래요. 그래서요, 저 그거 생각했어요. 기획팀장이요.]
“아, 도세나님 웹툰?”
[응! 삼촌이 주인공인 웹툰…… 여기서도 인기 짱이에요. 언니들이랑 동생들이랑 다 본댔어요. 그래서 삼촌 방송에도 관심이 생겼대요. 제가 꼭 보라고 말했어요. 저도요, 빨리 유명해져서 미지처럼 삼촌 응원해줄게요. 스승니임!]
도세나의 신작 <기획팀장>에서, 여주인공인 ‘이미지’는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는 데뷔조 연습생.
그렇지만 초반의 몇 화를 통해서 가능성을 인정받는다.
성격적인 약점만 해소하면 분명 스타가 될 거라고.
그 말을 해준 기획팀장 ‘박건무’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어, ‘스승님’이라 부르며 따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요즘은 중년들도 잘 안 쓰는 호칭을 꺼낸 것이야 웹툰의 작법이겠지만……
내 경우에도, 스승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가 있다.
오전수업 하나를 마치고 부산으로 날아간 한효준 교수가.
[비행기를 탈 수 있으니 참 좋구만. 심포지엄 하나 때문에 수업 다 빼지 않아도 되고, 구태여 자고 올 필요도 없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찌 쉬운 일이랴.
오랜 상처를 치유했다 해서 50년간 겪어온 비행공포증이 씻은 듯 사라졌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무리해서 국내 일정까지 비행기를 타고 있다.
내게 보여주기 위함임을 모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가신 김에 푹 쉬고 오시면 좋을 텐데요.”
[구태여 그럴 것이 뭔가. 그리고 고양이란 족속도 분리불안이 없지는 않단 말이야. 하나뿐인 가족과 함께 잠들 수 없다면, 그날은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게야.]
“키우시는 고양이는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나비.]
“……너무 대충 지으신 거 아닙니까?”
[이름이 무에 중요한가. 그 녀석이 나하고 이름자 부를 것도 아니고. 아무튼 만찬 뒤에 이런저런 사전조율을 할 게야. 그 내용을 전해줄 테니, 내일도 일찍 나오도록 해.」
“예. 제가 나비 밥 주러 한번 들를까요?”
[쓸데없는 짓 말고 자네 일에 집중해. VR상담만 해도 하루 1회씩은 공개상담을 진행한다지 않았나? 남들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열심히 준비하란 말이야. 자네의 평판이 곧 내 위신이니. 그리고 미리 말해두는 것인데, 심리검사에는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게. 혹시라도 오염되는 일이 없도록.]
심리검사의 오염이란, 불특정다수가 검사 과정의 함의를 알게 되는 상황을 일컫는다.
이때는 검사의 신뢰도가 심각하게 훼손된다.
어떤 답이 어떤 결과에 영향을 주는지 아는 상태로는, 순수한 무의식보다 의식이 답을 선별하게 되는 까닭.
대표적인 사례가 HTP(Home Tree Person)다.
피검자에게 집과 나무와 사람을 그리게 해, 그 화법에서 심리상태를 추정하는 종합심리검사.
방송을 통해 오브젝트의 형태나 위치에 따라 도출되는 해석이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원래는 전연령용이었으나, 현재는 사전지식이 없을 것이 명백한 아동들을 대상으로만 활용되는 실정이다.
그 외에 로르샤흐 검사(잉크 반점 검사)는 아예 위키백과에 상세한 해석기법이 공개된 바 있다.
판권 보유자가 소송을 걸었지만, 위키미디어는 저작권 시효가 종료되었으며 대중에게 알 권리가 있다고 항변했다.
그를 대체할 새 검사를 고안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가 요구될지에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심리사들에게는 그 검사야말로 모든 상담을 시작할 준거로, 연구집단의 피와 땀이 담긴 저작물인 동시에, 내담자의 정신건강을 돕기 위한 치료도구다.
그것을 오염시키는 일에는 어떤 변명도 용인될 수 없다.
“물론입니다. 공개상담에서는 검사를 금지할 것입니다.”
[그래. 하지만 비밀상담에서는 철저하게 활용하게. 마음의 지도만 믿고 곧이곧대로 결론 내리지 말고. 나야 그 편이 나음을 믿을 수 있지만, 다른 꼰대들은 최소한의 준거를 바라거든. 추후 사례발표를 위해서라도 미리 연습해둬야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의 말대로, 내 경우에는 굳이 심리검사가 필요치 않다.
[내담자 평가]의 신뢰도가 모든 검사를 압도하니.
서술법이야 점점 추상적이 돼가고 있지만, 내게는 오히려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어쩌면 NBSC가 내 사고방식을 학습해 표현을 커스터마이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다만, 심리검사가 심리평가를 위한 준거라고 할 때, 그 양은 많으면 많을수록 바람직한 법.
보조적인 용법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감정 표현이 서툰 내담자의 경우에는 특히 그랬다.
손바울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를 처음 만났을 당시에도 ‘진단’은 110에 달해 있었고, [내담자 평가] 역시 100%의 신뢰도가 확실시됐지만, 무감정의 스토커에게서는 이렇다 할 정보를 얻어내기가 어려웠다.
표정이 극단적으로 억제되어 있었기에.
일상적인 대화로는 도저히 감을 잡기 어려웠다.
그런 케이스에 심리검사는 큰 도움이 된다.
단순하게는 문장완성검사로 구술적 표현의 밋밋함을 보완할 수 있고, 깊이 들어가면 MMPI나 BIG5를 통해 NBSC가 해석에 참고할 만한 준거를 제공할 수 있다.
인터넷방송이나 단발성 상담에서는 활용하기 어려웠지만, 본격적으로 수련이 시작되면 철저히 연습해야 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만 하루가 지난 시점.
처음으로 심리검사를 수련할 기회가 찾아왔다.
같은 스승을 모신 상담사의 의뢰였다.
“고2 남자애인데요…… 저로선 좀 곤란해서요.”
연구실 앞 복도로 날 불러낸 김지연은, 정말 답답하다는 투로 목덜미를 짚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요?”
“애가 좀, 겉과 속이 달라요.”
“HPD(연극성 인격장애)입니까?”
“거기까진 아직……. 그냥, 그런 애들 있잖아요? 자기 내면을 파고드는 질문에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그게 애답지 않게 굉장히 적극적이고 정교해요. 특히 저한테는 리액션을 의식하는 태도를 반복해 보이고 있어서…… 심리검사도 신뢰도를 기대하기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부탁드리는 거예요. 선생님께서 한 번만 제 슈퍼바이지가 돼주실 수 없을까요? 내담자에겐 일단 허락을 받아뒀어요. 이유는 변명이었지만요…….”
무슨 의미인지는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때때로 피검자들은 사회적인 체면이나 검사자의 편견을 우려해 답변을 조절하는데, 그런 ‘반응 경향성’은 자기보고검사(문항에 답하는 검사)에서 오염변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검사자를 의식해 순수한 반응을 숨기게 되는 것.
그래서야 제대로 상담이 진척될 리 없었다.
그걸 조율하는 것 역시 검사자의 업무다.
심리검사의 변인통제라고 해서, 학부 과정에서도 이론 강의에 포함되어 있는 부분.
젊지만 실력 있는 김지연에겐 익숙한 일일 터였다.
그러나 검사자 변인의 조절은 쉽지 않다.
한창때의 남학생이라면 젊고 예쁜 이성 앞에서 소위 ‘가오’를 잡으려 애쓰게 마련.
그 경향성을 해소하는 것은 능력 이전의 문제다.
검사자를 존중하지 않아서 취하는 태도가 아니니.
그렇기에 내게는 별반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정작 부탁하는 사람의 표정이 침울했다.
조력을 요청하는 자신이 못내 부끄러운 모양이지.
그도 그럴 것이, 김지연의 목표는 스승 한효준.
고등학생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후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스스로 기꺼웠을 리 만무하다.
그런 선배를 위해서는 입장정리부터 해둬야겠지.
“김 선생님. 아시다시피 제가 참 바쁩니다.”
“아…… 그렇죠. 요즘 정말 바쁘실 텐데…… 죄송해요.”
“다른 사람이 부탁했다면 고민도 안 하고 거절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김 선생님은 달라요. 제게는, 상담이라는 세계를 처음으로 안내해준 분입니다. 말하자면 은인이시지요. 가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 으, 네. 그…… 감사합니다. 정말…….”
고개로 맞절을 한참 한 뒤에야, 나는 육성주의 프로필에 대해 듣게 됐다.
“온진고 2학년 학생이에요. 공학이긴 한데 남녀 분반이라 학급은 남학생뿐이고…… 성주는 1학년 때부터 교우관계에서 반복해서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요. 친구와 주먹으로 다툰 사건들이었죠. 애들끼리 치고받고 하는 거야 흔한 일이지만, 피해자가 입원까지 할 정도여서 전문상담교사에게 평가를 지시한 듯해요. 그런데 그분도 딱히 문제점을 찾기가 힘드셨대요. 네 번째 싸움이 발생한 최근까지도요. 그래서 혹시 세대차이일까 하는 생각에 젊은 상담사의 지원을 요청하셨대요. 거기서 제가 Wee센터 통해서 연결됐고요. 그 뒤에…… 어린 내담자한테 우습게 보이고 말았지만요.”
“우습게 보인 건 아닐 겁니다. 그 친구가 약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거겠지요. 괜히 자격지심 느끼지 마세요.”
“……후후. 고마워요, 선생님. 어쨌든 교우 평가는 이래요. 학급 리더, 추진력 있는 스타일, 유쾌하고 매력적인 성격…….”
“이상하게 평이 좋군요. 폭행 이력에 비해서요.”
“네. 동급생들의 평가는 그래요. 반면 피해자들은…… 기록은 안 남았지만, 그 아이를 악마라고도 말했던 모양이에요.”
“악마라니. 비일상적인 어휘로군요.”
“네. 무섭고 끔찍한 성격이라고 평했대요. 정상이 아니고……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미친놈이 분명하다고요.”
동급생들의 평가와 대비되는 노골적 악담.
그것이 아주 가능성 없는 추론은 아닐 것이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라고 해도 사회에 잘 적응한 케이스라면 주변을 휘어잡을 수 있어서, 진면모를 아는 것은 피해당사자 몇뿐인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했다.
다만 묘한 것은……
그렇게 말한 피해자들에게 공통점이 있었다.
한때 육성주와 가장 친밀하던 그룹 멤버라는 것.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눈 밖에 난 것인지, 지독하리만치 집요한 폭력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특히 그 가해를 다른 동급생들이 묵인한 탓에 문제를 인지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심지어 ‘육성주는 좋은 친구’라는 탄원까지 나왔다고.
“그건, 이상하군요. 그렇게 극단적인 대비라니.”
“드문 일이죠. 내용도 그래요. 성주가 이유도 없이 때릴 리 없다, 사소한 싸움일 뿐 일방적인 괴롭힘이 아니었다……. 상담교사님도 그 진술에 주목하셨던 모양이에요. 어쩌면 그 애들이 집단따돌림에 동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하지만, 정말 집단따돌림이었다면 한두 명 정도는 인상적인 답을 냈을 법도 한데요. 자기고백은 아니라도 방어적으로 예민한 모습을 보였을 법합니다.”
“네. 보편적인 상황은 아니죠. 그래서 학폭위에 집단따돌림에 대한 소견을 내실 수 없었대요. 실제 폭행 양상도 전부 개인적인 싸움이었던 게 사실이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일이 1년 반 사이에 네 번이나 있었으니까…… 뭔가가 있겠죠. 자세히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반적인 대화는 잘 하면서도 검사에는 영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어요.”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남학생 집단의 갈등은 여학생들과는 달라, 상대적으로 적극성을 보이는 경향이 크다.
묵인이나 회피보다는 동조나 저항의 비율이 높은 것.
그런데 육성주의 폭행은 전부 1:1이었다고 한다.
상담교사와 면담한 피해자들 역시도, 육성주 외의 다른 동급생들이 폭행에 가담했다고 고발한 경우는 없었다고.
그에 더해, 폭행의 선후가 불분명했다.
피해자들은 친한 사이였는데 갑자기 맞았다고 진술했다.
육성주는 역으로 자기가 먼저 당했다고 진술했고.
동급생들은 거기서도 육성주를 편들었다는 모양이었다.
반복되는 동일인물의 폭행과 주변의 일방적 옹호.
그 와중에 육성주를 왕따 가해자로 지목하지 않은 상담교사는, 분명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다.
섣부른 진단은 아이의 미래를 망칠 수 있다.
학생부 기입 여부를 떠나서, 정서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들은 한마디가 평생의 낙인이 될지도 모르니.
그렇지만 그 육성주와 갈등을 빚은 동급생이 벌써 네 명.
이 상황에서는 상담교사를 두둔할 수도 없다.
무엇이 계기였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폭력이었다.
문제의 중심에 선 학생들의 평가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일선 현장의 심리검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의 처벌을 위해서가 아니라, 추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찾아간 연 심리상담연구소.
마침내 얼굴을 마주한 육성주는……
청소년드라마 주인공 같은 미소년이었다.
“쌤, 저 왔- 어? 누구세요?”
“반가워요, 성주 군. 오늘부터 상담을 이어받을 박대민입니다. 김 선생님께 이야기 듣지 않았어요?”
“……아, 맞다. 오늘부터였구나. 예…… 바빠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튼, 여기 앉으면 되죠? 오늘은 또 뭐 해요? 어제는 자꾸 뭐 적으라고만 해서 좀 지루했는데.”
“실은 오늘도 비슷한 활동을 할 겁니다.”
“아, 그래요? 할 수 없죠. 얼른 해요. 저 농구 하러 가야 되거든요. 한 시간 안에는 끝나겠죠?”
쾌활한 태도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입가.
동급생들이 딱 좋아할 법한 태도다.
덩치 큰 어른인 내게도 저토록 당당하니, 또래들 사이에서는 얼마나 거침없겠는가.
육성주는 일말의 그늘도 없는 풍운아 같았다.
상담교사가 혼란에 빠진 것도 당연했다.
문제행동에는 분명 어두운 그늘이 있기 마련.
왕따 가해자도 내적으로는 몰려 있는 것이 당연한데, 그게 아니라 더없이 해맑은 아이니, 가해자가 맞나 싶었을 수밖에.
이래서야 문제아로 낙인 찍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그렇지만 나는……
한순간에 알 수 있었다.
저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는, 사실, 그늘의 결정체.
태양처럼 뜨거운 흑체가 내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