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44장 - 이상한 상담사 (3)
‘가출팸’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집을 벗어나고 싶지만 혼자서는 불안한 아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함께 가출할 패밀리를 사전에 모집하는 것.
조미소는 중학교 2학년 때에 그 팸에 들어갔다고 했다.
이후로 4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고.
그 내막을 듣게 된 건, 내 차로 자리를 옮긴 뒤.
눈을 내리깐 소녀가 감정 없이 과거를 읊조렸다.
“가출할 때 돈 훔쳐서 나와서 보증금은 모였는데, 애들끼리 집 알아보고 계약하고 그럴 수 없잖아요. 그래서 브로커를 구했는데…… 생활비 모자라지 않겠냐고, 일 소개해준다는 거야. 그래서 하게 된 게 오피 일이었어요. 그러다가 취해서 실수했어. 애가 생겼어요. 지워야 되는데…… 낳고 싶었어. 혼자였으니까. 주변에 다 나쁜 놈들밖에 없었으니까. 1년 일하는 동안 팸 애들은 다 어디로 가고, 나한텐 돈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낳았어. 그냥, 혼자가 싫어서. 근데요…… 애기가요, 내 손가락 이렇게 쥐고, 웃는 거야? 걔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내가 몸 파는 년인 거. 지 아빠 이름도 기억 못 하는 년이라는 거. 그냥 걔는, 나라서 좋은 거야. 내가 안아주면 그게 좋은 거야. 그게요, 나한테는요, 진짜 처음 행복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처음으로 가족이 생겼던 거야…….”
보살핌만 받고 살아야 마땅할 나이.
그렇지만 끔찍한 부모에게서 도망쳐 남들보다 10년은 더 일찍 아이를 낳은 소녀는, 그로써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있기에 살아가는 부모가.
나보다 서른 살 가까이 어린 그녀가, 나와 닮아 있었다.
“다시 일 시작하고 나서도 걔가 있어서 행복했어. 우리 일은요…… 아저씨, 그런 데 가봤어요?”
“아니, 잘 몰라.”
“착하네. 근데요, 거기 있으면 진짜 별별 손놈들 다 오거든요? 개 쓰레기 새끼들…… 결혼도 한 새끼들이 지 딸뻘인 나한테 막, 사랑한대. 개에바야. 그런 새끼들 보고 있으면 세상 진짜 역겹고…… 하하. 그래도 내 아빠보단 낫나? 그놈들은 그래도 지 딸은 안 건드릴 거 아냐. 몰라요 진짜. 다 좆같애. 그랬는데, 인제 집에 오면 애기가 있는 거예요. 걔 보면 다 괜찮아져요. 다 그냥…… 다 예뻐 보여요. 그래서 빨리 돈 더 모아서 아가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그래서, 올해 세 살 됐거든요? 근데요, 걔가 아팠어요. 근데 그냥 감기인 줄 알았어. 그래서 아는 언니한테 좀 봐달라고 하고 일 나왔어. 돈 빨리 모아야 되니까. 애기 더 크면은, 나 나쁜 일 하는 거 알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애기 맡겨두고 나왔는데…… 하하. 얼마나 아팠을까? 엄마도 없는 데서, 맡겨놓은 년은 놀러 나가버린 방에서, 혼자 얼마나 아팠을까? 난 진짜…… 진짜 개썅년이야. 내가 걔 죽인 거야. 그런데, 내가 왜 살아야 돼요? 왜 더 살아야 되는데요? 응? 말해봐요. 나 살릴 거라며. 나, 어떻게 살릴 건데요……?”
자식의 죽음은, 노인들에게조차 견딜 수 없는 슬픔이다.
그렇기에 단장(斷腸)이라 한다.
창자가 끊어질 듯 아프다는 뜻에서.
그런 것을 고작 열아홉 소녀가……
부모 같지 않은 부모에게서 상처만 받고, 자기 몸을 팔아 삶을 영위해온 이 아이가, 겪어야 했던 것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아이는, 아이의 엄마인 아이는,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을까.
그 소녀의 새까만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계시를 바라는 천사처럼.
심판을 바라는 악마처럼.
상담심리사 자격조차 아직 얻지 못한 나를 보며, 신에게 기도하듯 흐느끼고 있었다.
조미소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지수를 잃는다면, 나 역시 그녀처럼 무너질 게 뻔한데.
NBSC의 힘조차 거대한 비극 앞에서는 무의미한데.
아니…… 능력의 문제조차 아니다.
설령 신이라고 해서 이 슬픔에 답할 수 있으랴.
신의 멱살을 잡는 것으로도 모자랄 비애 앞에서, 그 무엇이 어떤 위로를 전해줄 수 있으랴.
그런 생각들의 끝에, 나는 작게 웃었다.
아마 몹시 볼썽사나운 꼴이었을 것 같다.
여전히 눈물이 마르지 않은 채였으니.
엄마였던 소녀를 바라보며, 나는 울며 웃었다.
“세상 참 엿 같다. 그렇지?”
“……욕도 할 줄 아네?”
“당연하지. 신 새끼, 엿 먹어라.”
“올…… 잘한다. 신 새끼, 엿 먹어라!”
“악마 새끼, 지옥에 떨어져라.”
“악마 새…… 응? 바보야, 지옥은 악마 사는 데잖아.”
“걔들도 걔들 지옥이 있겠지. 그런데, 너 왜 반말하니?”
“헤헤. 그냥? 화났어요?”
“그래. 화가 나네, 나한테. 나 새끼, 개새끼.”
“왜요? 아저씨는 또 왜?”
“잠깐, 행복했었거든. 네가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느꼈을 때 말이야. 그렇게 생각했어. 아, 이번엔 늦지 않았구나. 이번엔 지킬 수 있겠구나. 저 아이를 구할 수 있겠구나…….”
신이 얼굴을 붉히고 악마가 고개를 저을 비극 앞에서.
나는 또 얼마나 추악했던가.
괴로워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먼저 생각했던 나는, 정말 얼마나 끔찍한 악마였던가.
나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놈이다.
“……진짜, 또라이. 왜 그러고 살아요? 어차피 남인데.”
“미소야. 그거 아니?”
“뭐요.”
“‘남다’라는 말이, ‘남’에서 나왔다나봐.”
“그래요? 왜? 남이 남는 건가?”
“내 사람들 세고 나서 남은 사람들은, 남이잖아. ‘우리’라는 우선순위에 안 드는 사람들이니까. 그럴싸한 것 같지?”
“그런가……? 근데요?”
“너한테는, 이제 남밖에 남지 않았구나 싶어서.”
“아…… 팩폭 자제 좀? 그리고 진짜 좀 그만 울어요. 아저씨가 쪽팔리지도 않나. 뭐…… 안구충만증? 이런 거야?”
안구건조증의 반의어를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지.
화풀이하듯 투덜대는 조미소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세상에는 남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부모는 그녀를 폭행하고 매도했다.
그렇게 고작 열네 살에 사회에 내던져진 뒤, 여성의 신체를 돈으로 사고 파는 이들 속에서 살아왔다.
그들이라고 전부가 비인간적이었겠느냐만……
몸을 담보로 돈을 버는 아이에게 그들이 ‘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기는, 그 와중에 만난 단 하나의 ‘내 편’.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동반자였으리라.
보통의 엄마들보다도 애착이 몇 배는 컸을 수밖에.
“이름이 뭐였니?”
“……소미.”
“엄마 이름을 거꾸로 했구나.”
“아니! 누굴 바보로 아나? 그냥…… 작고 예뻐서.”
소미를 잃은 미소에게, 남은 것은 추억뿐이다.
핸드폰도 없이 거리를 떠돌았던 것이 그래서였겠지.
죽은 아기의 사진으로 가득 찬 그 전화기를 볼 때마다, 불행하고 한심한 스스로를 죽이고 싶어졌을 테니까.
이제 남은 것이라곤 남들밖에 없는 아이.
조미소에게 이 세상은 이미 생지옥일 것이다.
그런 아이를 살리겠다며 설치던 나는, 얼마나 또 우스운지.
이런 날 신이라 생각한 손바울은 반성을 좀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신의 역할을 대신하고자 한다.
엿으로 그의 입을 막은 채, 조미소를 구원하려 한다.
“미소야. 너는 행복해질 거야.”
“……어떻게? 아저씨가 행복하게 해줄 거야? 뭘로?”
“남으로.”
“남……?”
“그래. 너한테 남은 건 남뿐이잖아. 남을 사랑하게 해줄게.”
“아, 뭐요. 아저씨요? 같이 자자고?”
“그런 말 좀 그만하고. 내일 봉사활동 하러 가자.”
“뭐? 싫어. 내가 왜? 집에 갈래. 안 죽을 테니까 걱정 마.”
“거짓말 연습 좀 해. 어리다곤 해도 연기력이 참.”
“아, 뭐! 지는 뭐 연기 잘하나?”
“다음 주에 아저씨 출연한 드라마 방영해.”
“……짜증나. 아, 나 싫어. 그냥 술이나 먹자, 응?”
“술도 줄게. 따라와.”
“어? 진짜? 뭐야 뭐야? 아저씨, 이제 나랑 자고 싶어?”
차에서 내려, 입버릇 못 고치는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 가자.”
“응…… 근데 차로 안 가? 근처에 모텔 있어?”
“집으로.”
“어? 결혼했다며? 아, 오늘 친정 갔어? 알아, 알아. 그런 날 많이들 오더라. 아저씨 그래서 오늘 늦게 들어왔구나?”
남들보다 큰 내 손에, 작은 미소의 손은 잘 맞지 않았다.
검지를 펴주니 그걸 꼭 쥐더라.
그녀의 손가락을 쥐었다는 아기처럼.
그렇게 쫄래쫄래 잘 따라오던 아이는, 주방 식탁에 앉아 있던 아내의 얼굴을 본 순간 팔짝 뛰었다.
“아, 아저씨! 어, 어떡해!”
“안 잤어? 미안해. 얘 좀 데려오느라.”
“아, 아저씨?”
“참나. 말도 없이 손님까지 데려오셨어?”
“정말 미안. 집에 맥주 남은 거 있었지?”
“아저씨이……?”
“요즘 안 마시더니 웬일? 나도 맥주 당겼는데.”
“그래? 다행이다. 얘랑 같이 마시려고.”
“아저씨…… 뭔데 이거……? 무서워…….”
엄해 보이는 아내 앞에서, 조미소는 잔뜩 주눅이 들었다.
그렇지만 맥주 몇 캔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내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칭얼거릴 정도로.
“언니, 언니, 이뿌당. 언니는…… 왜 하 완 내?”
“왜 화 안 내냐고 묻는 거야? 누구한테?”
“아조씨…… 집에 뇨자 데료왔눈데.”
“니가 여자니, 애지. 자, 여기 무릎 베.”
“아뉜데에. 나 애도 있눈데? 아. 아니다. 엄따. 애 엄써…….”
아내는, 고맙게도, 자세한 사정을 캐묻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줬다.
조미소가 쇼파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 뒤에야, 내 옆구리를 마구 찌르면서 한을 풀었다.
*
귀밑을 한참 긁은 뒤, 한효준은 물었다.
“저 애는 누군가?”
“아는 앱니다.”
“저런 어린 애를 어디서 알았어?”
“집 앞에서요.”
“거! 저번 손가 녀석도 그렇고…… 사람은 고양이가 아닐세.”
“죄송합니다. 혹시 고양이 기르십니까?”
“응? 내 말 안 했던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제 가시지요. 애들 기다리겠습니다.”
“에잉, 제 할 말만 하고서는!”
그렇게 다그친 뒤에야 한숨을 쉬며 뒷좌석에 타더라.
뒤따라 운전석에 타니, 이미 조미소가 말을 걸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꼰마님 아빠예요?”
“……허허. 내가 어찌 아빠가 되겠니? 고작 열 살 차인데.”
“아 진짜요? 대박. 70인 줄.”
“……박 군. 자네는, 내 소개도 안 하고 뭐 했나?”
“출발하겠습니다. 미소야, 안전벨트 다시 매.”
“아 알았어. 저 할아버지는 뭐 하는 할아버지야?”
“할아버지 아냐, 미소야. 그리고 그런 건 직접 여쭤봐야지.”
“아니…… 할아버지처럼 생겼는데 왜 아니래?”
“어허흠!”
불편한 침묵 속에서 20분쯤 달려가면, 종위보육원이 있다.
그 나들목에는 이수아가 서 있었다.
“수아야? 나와서 기다린 거야?”
“넹…… 아, 아뇨. 그냥, 산책.”
“하하. 타렴. 같이 올라가자.”
“넹. 근데…… 누구예요?”
“아저씨 아는 학생인데, 같이 놀러 왔어.”
“안녕! 나 미소야. 수아? 몇 살이야?”
“……열아홉이요.”
“어?”
“몇 살이세요?”
“어…… 나도 열아홉. 반가워.”
조미소만 해도 요즘 애들 치고 몸집이 작은 편이다.
그렇지만 수아는, 중학생들에 비해서도 작은 몸집.
그 아이가 동갑이라는 걸 믿기가 어려웠으리라.
“아저씨, 쟤는 여기 애야?”
“실례잖아, 미소야. 직접 물어봐야지.”
“아니…… 야. 너 여기 있는 애야?”
“……네. 근데요, 너 왜 반말해요?”
‘너’와 ‘요’의 기묘한 호응관계에, 미소는 뭐라 답을 못했다.
대신 날 보며 소곤거렸다.
“지금이라도 존댓말 할까? 너무 늦었나?”
“나한테 이렇게 반말을 하면서? 일단 사과하렴. 그 뒤에 서로 말 놓으면 어떻겠냐고 물어봐야지.”
“아 씨. 싫은데. 아니 난 여기 오고 싶지도 않았는데 끌고 와놓고…… 왜 자꾸 귀찮게 그래? 그리고 아침에만 해도 그래. 아저씨 딸이 나 보는데 막 살기 느껴진 거 알아? 내가 왜 그런 취급을 당해야 되는데? 뭘 잘못했다고.”
“네가 나나 주희한테 자꾸 달라붙어서 그런 거잖아.”
“그거야 나는 민망하니까 친해지려고…… 어?”
보육원 정문에 들어서면 주차장 겸 운동장이 나온다.
운동장이라곤 하지만, 고급 아파트의 놀이터 규모.
그곳에 중등반 아이들이 나와 있었다.
‘천수연의 이상형’ ‘슈퍼스타 꼰마’ ‘꼰마 더 서폿 갓’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수아가 마중 나온 게 이 이벤트를 위함이었던 모양이다.
“아저씨! 드라마 데뷔 축하해요!”
“고맙다, 정말.”
“프로게이머 데뷔도 축하해요!”
“그건 아니고.”
“요 이상형 맨~! 아찌, 천수연 대존예 인정?”
“어, 인정.”
가볍게 답해주고 아이들을 한 명씩 끌어안았다.
유진호가 지수에게 고백한 일로 인해 아직은 좀 쭈뼛거리는 느낌이었지만, 한번 안기고 나서는 폴짝거리며 뛰어다니더라.
그 아이들을 지켜보며 조미소가 또 소곤거렸다.
“욜, 아저씨 좀 자주 왔나봐? 나 쟤네랑 놀아주면 돼?”
“넌 아니고. 이쪽으로 와라. 교수님,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흠. 고양이한테 생선 맡기기는…….”
복도를 걸으며, 조미소는 내 옷소매를 꼭 쥐었다.
“아저씨. 근데 여기 좀…… 무서워.”
“뭐가 무섭니?”
“약간, 공기가 무거워. 산이라 그런가?”
“언덕배기일 뿐이야.”
“근데도. 그냥…… 좀 무거워.”
그녀라고 해서 모르겠는가.
닮은 듯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부모에게서 달아나 사회인이 되었던 아이와, 부모에게 버려져 단체생활을 하게 된 아이들.
그런 개인사가 종위보육원의 감상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근데 우리 어디 가? 애들이랑 안 놀아? 아, 저기 초등반!”
“더 갈 거야. 쭉.”
“응? 더 뭐 없는 거 같은데?”
육아원에 항상 7세 이상의 아이만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 형제자매가 함께 배정되기도 하는 까닭.
주로 부모의 사고 이후 일가친척이 없거나 받아주지 않는 경우인데, 상황에 따라 한 시설로 보내지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 아이가 종위보육원에 한 명 있었다.
이제 네 살이 됐고, 여덟 살 오빠가 있으며, 엄마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
조미소와 함께 그 아이의 방에 찾아갔다.
일요일 대청소 시간인지라, 아이만 홀로 자고 있었다.
“……애기?”
“정수영.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오빠가 있어서 이쪽 시설로 같이 왔고. 너, 이제부터 여기서 일해라. 봉사활동이 아니라 취업이야.”
“아, 내가 왜! 나…… 이제 돈 모아도 할 거 없어.”
“모이지도 않을 거야. 네가 하던 일보다는 한참 덜 줄 테니까. 여기서 주는 게 아니라 내 지갑에서 나가는 거고.”
“그럼, 그럼 더 안 해! 뭐야? 나한테 자선사업 하게? 나한테도 아저씨가 용돈 주는 거야? 그게 더 싫어!”
“몸의 대가로 받는 돈보다는 낫잖니.”
“이 씨…….”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야. 네 살이라곤 해도 젊은 지도원들한테는 버거워. 나이 찬 애들이 사고도 많이 쳐서, 매시간마다 지도원 한 명씩 빼놓기도 부담되고. 그러니까 네가 도와줘. 오래 안 해도 좋아. 인원 보충될 때까지 당분간만이라도 얘 돌봐주렴. 그 뒤에는 간섭하지 않을게.”
잠든 아기는 천사 같다.
야근한답시고 딸 봐준 적이 별로 없는 내게도.
그런 정수영 앞에서, 조미소가 악마 같은 얼굴로 돌아섰다.
“왜 이래? 나보고 뭐, 어쩌라고. 얘 보살피면서 뭐, 마음을 이렇게 막, 힐링하라고? 그래서 행복해지라고? 싫어. 아냐. 얘는 소미 아냐. 내가 왜 얘 돌봐야 되는데? 난-”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지는 분명했다.
아이처럼 칭얼거리는 엄마에게, 따끔하게 말해줘야 하리라.
나와 남을 그만 좀 나누라고.
그렇게 갈라서기만 해서야 남만 남은 이 세상을 어떻게 헤쳐갈 수 있겠냐고.
그렇지만, 그것조차 필요치 않았다.
“……모야아? 누구야?”
“어, 어, 어.”
“뭐 해. 너 때문에 애 깼잖아. 가서 인사해.”
조미소가 아주 천천히 돌아섰기에, 한발 물러나 있던 내게 그 표정의 변화가 잘 보였다.
소녀는 울면서 웃다가, 괴로워하면서 흥겨워하다가……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는, 비통하고 행복해졌다.
“아, 안녕. 나는…… 미소 언니야.”
“……엄마야?”
“아, 아니.”
“웅…… 꿈에소, 엄마 바써요.”
“엄마, 봤어요?”
“웅, 웅. 엄마랑…… 병언노리, 해쏘요.”
“으…… 응. 그랬구나……. 언니도, 하고…… 싶었는데…….”
“수영이랑, 병언노리 할래요?”
“흐, 흑…… 응, 수영이랑…… 병원놀이 할래요.”
“헤헤. 나 으사! 어디가 아파서어, 오셔써요?”
“……마음이요. 선생님…… 저,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마으미요? 안 대여. 환자분, 아프지 마로라?”
네 살 아이라고 해서, 마법의 주문을 갖고 있지는 않다.
미운 네 살이라 보육사들이 골치 썩게나 만들겠지.
그렇지만 지금만큼은……
수영이는, 기적이었다.
“으흐, 흐윽…… 응, 으응, 안, 아파요. 이제, 안, 아파요.”
“안 아푼데 우로요? 웅…… 그러며는, 수영이 안아주께!”
“응…… 안아주자. 응, 안아, 주자.”
그 모습을 오래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나까지 울컥 울어버릴 것 같아서.
*
“치사해…… 반칙이야, 꼰대 아저씨.”
한 시간 뒤에 만난 조미소는, 말과는 다르게 히죽 웃었다.
눈은 여전히 슬픔으로 가득하지만……
그녀는 이제 분명히 죽음으로부터 멀어졌다.
NBSC가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었다.
「 서브퀘스트 “조미숙을 살려봐요” 완료!
5exp를 지급해드렸어요! 」
열 명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1 오르던 exp가 한 명의 상담으로 5나 상승했다.
인방으로 10exp씩 벌던 내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다른 상담사들에게는 참 대단한 업그레이드겠지.
그만큼 훌륭한 일을 했다고 인정받은 셈이리라.
사실은 반칙 말고는 한 일이 없는데도.
“미안하다. 네 표정이 그만큼 안 좋았어.”
“치. 아닌데. 아무튼 난요…… 감사합니다.”
감사라니.
나는 무엇도 해주지 못했다.
신도 상담심리사도 아니어서,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녀의 비극 앞에 무력할 따름이었다.
“미소야. 고마워하지 마. 난 네게 미안하다.”
“뭐가요? 소미 죽기 전에 나 찾아주지 못해서?”
“……그래. 어떻게 알았니?”
“참나. 나도 이제 아저씨 대충 알거든. 남 일에, 글케 막, 멍청하게 우는 사람이 어딨냐구. 진짜 한심해. 그래서 이번엔 뭔데요. 아저씨도 말해봐요. 뭐 힘든 일 있죠? 말해봐. 이번엔 내가 위로해줄게요.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
나를 위로해주겠다는 꼬마숙녀.
멍하니 보고 있자, 엄마들의 주특기인 등짝스매시를 날렸다.
“아! 쫌! 기운 좀 차리라고. 아저씨가 왜 힘들어해?”
“그게…… 마침 내가 아는 보육원에 영아가 있지 않았더라면, 널 구하기가 참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
“뭐야. 아저씨 바보야 진짜?”
“어……? 왜 그래?”
“수영이는…… 만나서 좋긴 한데요, 나 죽을 생각 없었거든? 어제 아저씨랑 같이 신나게 울고 나서요. 기억나? 돈가스가 눈물에 푹 절어버렸잖아! 아니, 왜 남의 돈가스를 막…… 그렇게 막, 뭐라 그러지? 중탕? 그걸 해버리냐고. 진짜 이상해.”
“그랬어? 그런데, 많이 슬퍼 보였는데.”
“그거야…… 슬프긴 했죠. 아저씨랑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다 해서. 소미 낳기 전에…… 아저씨 결혼하기 전에?”
“그때라면, 네가 수영이 나이였을 텐데.”
“아, 그런가? 와 대박. 말도 안 돼.”
어깨를 씰룩거리며 신기해한 뒤.
소녀는 촉촉한 봄바람처럼 말했다.
“고마워요. 자살 포기하게 해준 거 말구…… 수영이 만나게 해준 것도 말구…… 내 손 잡아준 거요. 한 명도 없었어. 젖이랑 궁뎅이 만지는 새끼들은 졸라 많았는데, 아무도 손은 안 잡아주더라구. 그니까, 거의 아다손이었다?”
“……너는 아무래도 말조심을 좀 해야 돼.”
“응. 잡아줘서 고마워요, 이상한 상담사 아저씨.”
짭짤한 것이 입술을 훑고, 조미소가 뒤돌아 뛰어갔다.
눈물 맛 가득한 도둑뽀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