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23화 (123/200)

# 123

44장 - 이상한 상담사 (1)

민원식은 아주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도 고생 많았습니다.]

“원식아, 자꾸 왜 그래? 재하가 알면 실망하겠어.”

[……음. 고생 많았다, 대민아. 이벤트도 없이 15만 명…… 상상도 못 했던 수준이야. 덕분에 프리VR도 탄력받고 있다. 오늘 13만 명이 관람한 게 오균헌 덕만은 아닐 테니까. 월요일에 나갈 리테일버전도 초기 가입자가 상당할 걸로 예상하고 있어. NG 쪽에서도 슬슬 본격적으로 밀어줄 모양이고. 무슨 뜻인지 알지? 경쟁구도가 구축될 거다.]

오균헌 상담으로 프리VR의 프로모션은 종결됐다.

베타버전 뒤의 상용화 버전을 출시할 차례.

월요일부터는 수많은 정신건강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각자의 시간대에 공개상담이나 개인상담을 진행하게 된다.

공개상담의 경우 PPL과 배너 광고료를 시청자 수에 따라 급여로 나누고, 개인상담은 유료결제로 예약하는 방식.

그리고 그 리테일버전의 출시에는 다른 함의도 있다.

이제는 국방부 VR 사업에 입찰할 수 있다는 것.

그 입찰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조달청과 장성들에게 어필해야만 한다.

3대 통신사 중 NG와 협약한 프리VR은 상담이 메인컨텐츠.

현역 장병들에 한해 개인상담 우선권을 무상으로 지급한다는 것이 협상 카드다.

그에 비해 CT는 오성전자 및 젯게임과 협력해 VR 훈련 컨텐츠를 완성했고, ST는 고도로 암호화된 VR 회의 위주의 컨텐츠에 주력하고 있다는 상황이다.

우리는 장병들을, 경쟁자들은 장성들을 타겟으로 삼은 셈.

그들을 따돌리려면 확실한 무기가 필요할 터였다.

“그래. 팀에서는 어떻게 기획하고 있어?”

[우선은 유명세가 커진 꼰마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너 행동교정 프로그램도 촬영 날짜 잡혔다며? 그걸 프리TV 차원에서 최대한 밀어줄 거야. 시청후기 남기면 스티커 주거나 별사탕 충전해주는 식으로.]

“음…… 그것만으론 좀 부족할 것 같은데.”

[뭐? 은근히 욕심부리네.]

“그런 뜻이 아니라, 방송 하나 가지고 잘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거야. 시청률이 정말 잘 나와서 10%가 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승산이 있다고 확신하긴 어려워.”

[하. 하여튼 박 부장, 뭐든 조심스럽기 그지없지.]

“원식아. 나 그거 꼭 따고 싶다. 아니, 따야 된다.”

[알아, 무슨 말인지. 지금 중점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건이 있는데, 메인은 그쪽이 될 거다. 신중히 준비하고 있어.]

“어떤 방향인데?”

[그건…… 준비 다 되면 말할게. 아직은 확실치 않아.]

민원식은 그렇게 뺐지만, 명현수 과장은 달랐다.

하도 설레발을 쳐 대리 때부터 ‘명과장’이라 불린 녀석이라.

[그거요? 아니, 꼰마의 토크콘서트를 본인만 모르셨다니?]

“……토크콘서트?”

[예. 자회사 중에 프리웍스 있잖아요? 그쪽이랑 협업해서 추진하고 있는 기획이에요. 이 시대의 참 상담사 꼰마님이, 직접 각지를 찾아가 현장에서 관객들을 상담한다! 거기에 매회 연예인도 초청하고 아이돌 공연도 넣는 거죠. 현재 추산으로는 적어도 2만 명 이상씩 방청 신청이 들어올 것 같습니다. 인터넷 생중계도 죽어라 홍보할 거고요.]

“그렇구나. 종편에서 했던 <톡투유>가 생각나네. 그걸 프리TV 차원에서 밀어준다고 하면, 효과는 있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로 대단한 이슈가 될 것 같진 않은데?”

[후후. 일단 이게 프리TV 차원이 아닙니다. 트위치 유튜브랑도 채널 협약 중이죠. 하이라이트 클립 광고수익 내주는 방향으로 해서, 그쪽에서도 생방송 홍보까지 나갈 거예요. 메인페이지에 배너 띄우는 방향으로요.]

“……경쟁사에, 수익을 빼주기로 했다고? 그걸 갑수 형이 용인했어?”

[하핫! 갑수 형이라니, 몇 번 들어도 개운한데요? 예. 갑수 형이 부장님 띄우기로 작정했습니다. 아예 인방계의 아이콘으로 메이킹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이거 MBC랑도 방영권 협의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생방송이랑 하이라이트가, TV에서 또 편집본이 나가게 된다는 거죠. 이제는 진정한 꼰마의 시대가 열리는 셈입니다. 프리월드는…… 꼰마의 고향이라는 이미지 정도? 그것만 얻어도 이득이니까요.]

그런 거였나.

수익성을 포기하고 인망 좋은 나를 중점적으로 지원해, 그로써 프리월드의 기업이미지를 제고하겠다는 전략.

그거라면 진갑수라도 수긍할 법한 이야기였다.

“그런 거라면, 네 아이디어겠구나. 결재받느라 고생했겠다.”

[……부장님. 이 아이디어 갑수 형 겁니다.]

“……그랬어?”

[예. 사실은 저도 비슷한 거 생각하긴 했는데요, 결재는커녕 쪼인트만 까일 것 같아서 참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민 차장이, 위에서 내려온 프로젝트라고 이걸 풀더라고요.]

“그랬구나. 그런데, 민 팀장이라고 해야지?”

[하핫. 일단 회사에선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아무튼 부장님, 대단하세요. 민 차장에 진 대표에, 그 고집스런 양반들을 이렇게 꼰마 추종자로 만들어버리시고 말입니다.]

추종자라고까지 말하면 좀 ‘명과장’이겠지만.

진갑수 대표는 대민재단 10억 출연을 결의해준 갑수 형이 됐고, 민원식 차장은 동갑내기 친구 원식이가 되어 있다.

이제는 그 둘을 믿고 맡겨둬도 되겠지.

“일단 알겠다. 그런 방향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듯해. 그렇지만 빨리 진행돼야 할 것 같다. 6월부터 입찰 들어가서 7월말에는 심사 마칠 테니까. 늦어도 7월초엔 개시해야 해.”

[알고 있습니다, 부장님. 믿어주십쇼. 저희가 어떻게든, 부장님을 인통령으로 만들어드릴게요.]

인방계의 대통령을 논하는 현수의 목소리.

그 잔향을 곱씹으며, 나는 꼰마의 미래를 생각했다.

내 활약으로 다시금 인방 삼국지에 불을 붙인 프리월드가, 수익마저 포기하고 집중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거기에 MBC에서는 신태훈 CP와 유종찬 PD가 날 전폭적으로 푸시할 예정.

<퀸즈 랜드> 촬영 이후 드라마국 쪽 소문을 들은 유종찬이 기프티콘을 무진장 날려대기도 했다.

내 예능의 첫 방영일로 예정된 6월말에도 드라마가 이어질 테니, 분명 성공적으로 지상파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말 그렇게 된다면, 입찰의 성사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그렇기에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미래가 다가왔다.

내가 놓쳤던 김 이병을 만날 수 있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항해하던 내게, 비로소 바르게 써나갈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내가 대비해야 할 것은 그 이후의 일.

NBSC를 다시금 체크한 것이 그런 까닭이었다.

「 성명 : 박대민 / 성별 : 남 / 연령 : 47

직업 : 상담사 Lv.12 (36/10)

관계 : 100 / 진단 : 100 / 화술 : 100 / 외모 : 80

환기 : 100

“비소유적 온정” (관계 +10)

“크리스마스 캐럴” (진단 +10)

“증거기반 개입” (외모 +10) 」

빠른 성장을 견인하던 두 반복퀘스트를 잃었기에, 요 며칠간 exp는 고작 1만 상승한 상황.

그리고 손바울 에픽퀘스트는 ‘외모’의 기본치가 100에 이르고 exp가 25 이상 모여야 완료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기에 45가 될 때까지 exp를 모아두려 했다.

다만, ‘외모’는 언제고 올려야 할 능력치.

필요하다면 미리 100을 만들어도 괜찮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미래에 대비해 나를 업그레이드해야 할 시점.

문제는 그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였다.

‘외모’가 90이 된 현재, 내가 아는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60까지는 균형 잡힌 젊음의 미(美)가 회복됐다.

70까지는 세부적인 단점들이 해소됐다.

그 이후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후광(後光)이 형성됐다.

그렇기에 미남 배우를 무수히 봐왔을 드라마 PD조차 아우라가 느껴진다며 감탄했다.

이성을 향한 표현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천수연 같은 입지전적인 여배우가 나를 이상형으로 꼽기도 했다.

심지어 오균헌과 함께한 VR상담 기사에는……

외모 면에서 내가 그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는 댓글이, 500개 이상의 ‘공감’을 받으며 베스트댓글에 올라 있었다.

거기에는 심리적인 후광효과도 물론 작용했을 것이다.

오균헌에게 경탄을 불러일으킨 내가 실제보다 조금쯤 더 멋져 보였으리라.

‘사회적 미남’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러나 오균헌이 30대에서 가장 유명한 미남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가볍게만 받아들일 일은 아닐 듯했다.

그런 ‘외모’가 110에 이르게 되면……

대체 어떤 수준이 될 것인가.

‘상담사’의 능력치니, 단순히 내담자에게 안정감을 주는 이상적인 인상 정도만 형성해줄까.

그게 아니면, 혹 경국지색(傾國之色) 아저씨가 되어 주변에 위화감을 주지는 않을까.

그 리스크 때문에 한참을 고민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이 아니기에.

세 개의 기술을 사거나, 한 특성을 20 향상시킬 수도 있다.

에픽퀘스트의 달성 시점은 늦어지겠지만, 당장 새로운 힘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일 터였다.

그렇게 10분쯤 룸미러를 바라본 뒤.

나는, NBSC를 믿어보기로 결심했다.

상담사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평정’조차도 부가적인 [특성]으로 분류해둔 시스템이다.

그런데 단 넷뿐인 [능력]에 ‘외모’를 올려뒀다.

무려 ‘관계’ ‘진단’ ‘화술’과 함께.

세 가지 능력이 상담사에게 얼마나 필수불가결한 가치인지를 생각해보면, ‘외모’ 역시 고작 여자나 꼬시라고 만들어진 능력은 아니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두 차례의 레벨업을 수행한 결과.

NBSC가 내 선택에 반응했다.

「 모든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셨네요!

‘상담사’님의 위대한 첫걸음을 축하드려요.

서브퀘스트의 봉인이 해제되었어요!

이후 현실의 문제들로부터 exp를 얻으실 수 있어요. 」

……말하자면, 해금(解禁) 조건이라는 거구나.

모든 능력을 최대치까지 향상시키는 것.

그럼으로써 상담사의 기본기를 완성했을 때, 비로소 새로운 퀘스트 시스템이 나타난다는 설정이었다.

결코 이상한 알고리즘이 아니다.

인방을 하지 않는 상담사라면, 반복퀘스트를 제한치까지 완수하는 데에 수십 년이 걸렸을 테니.

그 오랜 수련으로 잠재력이 만개하지 않을 리 없다.

반복퀘스트가 사라지기 전에는 모든 능력치가 100에 이르러, 이미 서브퀘스트가 해금되어 있는 것이 당연했다.

내 버그 플레이가 NBSC의 유저 리텐션(retention) 전략에 부합하지 않았을 뿐.

그 분석에, 허탈해서 한숨이 나왔다.

이걸 미리 알았다면 홀로 고뇌할 이유가 없었을 텐데.

곧바로 ‘외모’를 100으로 올리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 번민 덕에 깨달은 것이 적지 않긴 하지만.

어쨌든 이제는 다 지난 일이었다.

후회하기보다는 앞을 보며 전진할 때.

그렇기에 룸미러를 통해 변화를 확인하고자 애썼다.

그렇지만……

내 얼굴에서는 어떤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다.

안도감과 함께, 약간은 배신감까지 느껴졌다.

90이나 110이나 차이가 없는데 왜 머뭇거렸을까 싶어서.

다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지라, 어차피 에픽퀘스트 달성의 요건 중 하나였으리라 위안 삼으며 차에서 내렸을 때였다.

아파트 주차장 한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저기요.”

돌아본 곳에는, 어려 보이는 여자애가 서 있다.

헤어스타일은 단정한데 옷은 꽤 노출이 많은.

그 아이가 도발적인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오빠. 나 술 한잔 사줄래요?”

그 순간에 참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혹시 110의 ‘외모’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 어린 학생이 오빠라고 부르며 접근할 정도로 지나치게 멋진 모습이 되어버린 걸까.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그런 혼란을 단숨에 밀어낸 것은, 소녀의 표정이었다.

당당하고 매력적인 외모를 가장한 화장 아래.

미세하게 경련하는 입꼬리 위로, 콧잔등은 연신 찡그려지길 반복하고, 눈망울은 진한 마스카라마저 지워내는 물빛이다.

저런 얼굴로 남자를 꼬시는 아이가 존재할 리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답은 간단했다.

“일단…… 학생 아닌가요? 고등학생 같은데.”

“아닌데요? 스무 살인데요.”

“그렇다 칩시다. 그래도 오빠 나이는 아니네요. 어쨌든 술은 무리고, 여기 앉아서 말해봐요. 아저씨가 상담해줄게요.”

“상담?”

“……날 알고 부른 게 아닌가요?”

“네? 아닌데. 그냥 잘생겨서요. 오빠, 상담사예요?”

바로 그 순간, NBSC의 문자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서브퀘스트 “조미숙을 살려봐요” 발생! 」

……이렇게 갑자기, 방금 해금된 서브퀘스트가 나오다니.

심지어 그 내용은……

나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오빠? 왜 그래요? 사주기 싫어요?”

“……이름이, 뭐예요?”

“저요? 저, 미소요.”

“본명 말이에요.”

“보, 본명인데요!”

“빨리 말해요. 성 빼고 이름만 말해도 되니까.”

“……미숙이요. 아, 촌스러워서 말하기 싫었는데.”

정말, 조미숙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이 아이는 정말로, 죽을 셈인 건가.

NBSC의 퀘스트창에는, ‘조미숙을 살려봐요’라는 문구가 여전히 금색으로 반짝이고 있다.

그리고 소녀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 내담자 명 : 조미숙

평가 결과 : 극도의 불안 속에서 구원을 찾고 있다. 」

……이거였나.

NBSC가 말하는 ‘외모’의 극한이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위기의 아이들이 마지막 지푸라기로 잡을 만한……

그런 호구의 아우라를 뜻하는 것이었던가.

조미숙의 접근이 꼭 ‘외모’ 때문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우연이 겹쳤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이 ‘외모’에, 정말로 만족한다.

정말로……

울고 싶을 정도로.

“술, 사달라고 했지요?”

“네! 저 예쁘죠? 남친 없는데.”

“남자 꼬시는 솜씨가, 영 꽝이네요. 처음이지요?”

“아 뭐래……? 오빠, 왜 울어요?”

왜냐하면, 살릴 수 있어서.

조미숙이라는 생면부지의 아이가,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수 있게 돼서.

그래서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다.

결코 대답해줄 수 없는 이야기지만.

“하, 하하. 글쎄요. 오빠라는 말이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술은 안 돼요. 대신 밥 사줄게요. 뭐 먹을래요?”

“아 뭐야. 술 못 먹어요?”

“그게 아니라, 미숙 씨가 미성년자라서요.”

“아, 아니라니까요?”

“어른들은 보면 알아요. 아무리 진하게 화장해도.”

“아닌데…… 모르던데…….”

“그렇다고 하면, 모른 척한 거겠지요.”

“그런가…… 아, 근데 고딩 아니라니까요!”

이미 다 들켰는데도 고집을 부린다.

그렇지만 고민과 무관한 말다툼 덕이었을까, 조미숙의 얼굴에서 조금쯤 불안이 옅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녹아내릴 듯 포근해졌다.

“어쨌든요. 고딩이든 성인이든, 밥은 먹어야지요? 술이라면 그 뒤에 생각합시다. 그렇게 하면 괜찮겠지요?”

“아…… 그래요. 근데 왜 자꾸 존댓말? 꼰대 같아.”

“상대 허락도 없이 반말하는 게 꼰대 아닐까요?”

“……그런가? 말 놔요, 오빠.”

“오빠라고 안 부르면 놓을게요.”

“아 뭐야. 이상해. 진짜 아저씨라고 해요?”

“그래, 그렇게 불러. 가자, 미숙아. 떡볶이 먹을래?”

“아, 그런 애들 먹는 거 말고요.”

“그러면?”

“그…… 돈가스요.”

“그래. 어른들이 참 좋아하는 메뉴구나. 가자.”

“어? 차 안 타요?”

“가까운 데 24시간 하는 집이 있어. 걸어가도 충분할 거야.”

“아, 거기? 그래요. 걸어가도 되겠다.”

대화를 마무리하고, 조미숙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일견 당차고 어른스러운 움직임.

그러나 그 어깨의 흔들림에서 진한 비애가 느껴진다.

아이는 뭔지 모를 악령에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가정폭력, 가출청소년, 따돌림, 성폭행, 학업 스트레스……

무수한 가능성들이 의식을 드나든다.

그 어느 하나 쉽지 않은 문제들.

한 발 잘못 딛는 순간이 조미숙의 파국일 터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를 잃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나이도 무엇도 모르는 아이지만.

잃지 않을 것이다.

내 모든 것을 걸고.

그러니 이것은, 서브퀘스트 따위가 아니다.

박대민의 에픽퀘스트.

조미숙이라는 이름의 김 이병은, 나란 인간의 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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