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43장 - 이상형인 상담사 (1)
“자…… 이제 드디어 컨텐츠를 시작할 수 있겠네요. 오늘의 첫 사연은, 오벨론님입니다. 안녕하세요, 꼰마님. 방송 재밌게 보기만 하다가 처음 사연 올려요. 요즘 회사에서 혈액형 얘기 때문에 죽겠어요. 유사과학 믿는 사람들 많은 건 알았지만 저희는 요즘 특히 대유행이거든요. 뭐만 하면 넌 A형이라서 그런 거다 그런 식으로 말해서 스트레스가 심각해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요?”
「ㅋㅋㅋㅋ유사과학충 극혐」
「근데 이거 있음」
「주변사람들보면 진짜맞는거같아여」
「여기도있네 하」
「머리빻았냐고 세상에 성격이 네개뿌니냐고」
까메오 출연 썰과 오른팔 이벤트매치 썰 풀어달라는 시청자들의 성화에, 방송 시작 후 30분 만에 시작한 컨텐츠.
첫 사연부터 상당히 첨예한 문제가 나왔다.
가볍게 분위기를 풀고 갈 필요가 있을 듯했다.
“오벨론님이 실수하셨네요. 처음 혈액형 물어봤을 때 A형이라고 하지 말고 이상형이라고 하셨어야죠. 유우머로.”
「ㅋㅋㅋㅋㅋㅋㅋ아재요」
「어르신 넘모 우껴요ㅎㅎㅎㅎㅎㅎㅎ」
「오벨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럴걸그랬네여」
“하하. 어쨌든 이런 사회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통계를 알아보는 것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 관련해서 한국갤럽에서 자세히 조사한 게 있었는데…… 잠시만요…… 여기 있네요.”
즐겨찾기에 저장돼 있던 페이지를 PIP 창으로 띄워주자, 시청자들이 퍽 당황했다.
「어떻게 바로나옴 ㄷㄷ」
「아저씨는미리준비해왔어요 」
“하하. 종이접기 아저씨처럼 준비한 건 아니고요,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어서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재직 중에 팀원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 데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요.”
「ㅎㅎ 꼰마님도 믿으시는구나」
「아 젭알;; 꼰마님 노놉;;」
“자, 통계로 돌아가보죠. 2002년, 2012년, 2017년에 무작위 추출을 통해서 전국 1,500명씩 조사한 결과입니다. 혈액형에 따른 성격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의 비율은, 2012년 67%에서 2017년 58%로 제법 감소세를 보였어요. 그렇지만 전혀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의 비율은 7%에서 10%……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소수파군요. 흥미롭지요?”
「어휴.. 이게21세기냐고..」
「그만큼 맞는이론이라서 그러죵 ㅋㅋㅋ」
「역시 탈조선이 답인가」
「근데 진짜 있긴함ㅎㅎ」
「꼰마님 제바류ㅠ 모지리들 계몽좀해주세여」
「설마 꼰마님도 믿는건아니져ㅠㅠㅠ」
사실은, 내가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느 쪽이 과학적으로 옳은지 역시 전혀 중요치 않다.
탈조선까지 언급하며 반발하게 되는 소수파의 목소리가, 내게는 유일하게 유의미한 요소.
상담사에게는 이론적 증명보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 참 무례한 일입니다. 각자의 인간관은 다른 것이 당연하고, 자기 논리만을 강요한다면 그건 정말 끔찍한 만행이에요. 혈액형과 성격이 유관하다 생각하는 분들이 흔히들 그런 행동을 저지르곤 합니다. 첫 만남에 혈액형을 묻고 그걸로 상대를 판단하지요. 심지어 제3자에게까지 그 편견을 전파하곤 합니다. 결코 긍정적이지 않아요.”
「아 형니뮤ㅠㅠ 여윽시ㅠㅠㅠ」
「잉.. 근데 진짜 있는데」
「아니라는 애들 보면 다 A형이에여ㅎㅎ」
“또 또. 여기 조사결과를 보면, 오히려 A형이 혈액형별 성격설을 믿는 비율이 조금 더 높아요. 매도하지 마세요.”
「ㄹㅇ 유사과학충들 정신차려야됨」
「문이과 나누지말고 다 과학배우게해야됨」
「아니 근데 안믿으면안믿는거지 왜머라그런대」
「ㅋㅋㅋ뇌는 왜달고다니냐 틀린건바로잡아야지」
「걍 재미로보면되지 되게예민하게구넨」
그렇게도 말할 수 있는 문제지만.
‘혈액형별 성격’ 가설과 관련해 대립이 첨예해지는 이유는, 옳고 그름 따위가 아니다.
‘지구 평면’ 가설에 분개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우리는 종종 감성에 속아 이성을 꾸며내고 만다.
상담사가 바라봐야 할 지점은 그곳이다.
압도적으로 허무맹랑한 주장에도 사람 좋게 웃던 이들이, 유독 혈액형 문제에만 핏대를 세우며 반발하는 이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엇도 진전되지 않는다.
“뭐가 문제냐고 되묻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어차피 사주풀이처럼 재미로 하는 건데, 과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 아니냐고요. 그렇지만 그게 아닙니다. 절대로 이상하지 않아요. 그들이 예민해지도록 만든 게, 바로 근거 없이 자기 판단을 강요하는 다수파인 까닭입니다. 소수파가 처음부터 화를 냈을까요? 아닐 겁니다. 한두 명이 떠드는 가설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겠지요. 그렇지만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대다수가 혈액형을 말하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는 사회라면,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얼마나 괴로운 세상이겠습니까. 이러면 탈조선을 외칠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구가 돌지 않는다고 믿는 세상을요.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허구의 대사 속에 담긴 좌절감만큼은 모두가 공감해야 마땅합니다.”
「오오 꼰머좌」
「ㄹㅇ 그래도 혈액형은 상관없다 크」
「잉.. 그러면 혈액형 물어보고 그러면 안돼여 」
“안 됩니다. 앞으로는 우리 그러지 맙시다. 정말 혈액형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조사하고 연구해서 과학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이론을 만드세요. 그거라면 응원하겠습니다. 다만, 이어서 말씀드릴 게 있어요. 혈액형별 성격설을 믿지 않으시는 분들께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엌ㅋㅋㅋ갑자기 」
「꼰디르 나왔다 ㅋㅋㅋㅋㅋ」
「왜요 맞는말한건데 머가문제임;;」
소통에서 배제된 소수파는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무리 속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사회적 동물의 본능과 긍정할 수 없는 논리라는 이성이 부딪치며, 마음은 불안정해진다.
그렇기에 점점 더 표현이 거칠어진다.
결과적으로 전혀 차별적이지 않은 설문조사에도 목소리를 높여 조사자를 비난하는 일마저 생기고 만다.
상처받은 마음 때문이라곤 하나, 그 역시 바르지 못한 소통.
그들 역시 일방적인 피해자는 아닐 터였다.
“여러분. 세상에는 입증되지 않은 다양한 가설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흔히들 믿고 계실 빅뱅이론조차 아직은 가설에 불과하지요. 가장 저명한 학자들조차 우주배경복사의 비정상 분포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 우주의 문제에는 어떤 의심도 말하지 않지요. 그저 대중적으로 비난 여론이 형성돼 있는 혈액형에만 집중합니다. 그게 정말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입니까?”
「않이;; 빅뱅이론은 시트콤밖에;;」
「모르는건어쩔수없자나여」
“예. 모르는 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관련해서, 캘리포니아 대학의 연구팀이 삼색털 고양이를 연구한 사례가 있습니다. 털 색깔에 따라 동종에서도 공격성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혔지요. 양적연구였기에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흔히들 말하는 바넘효과도 확증편향도 나오기 어려운 실험군에서, 성격과 하등 관련이 없어 보이는 털 색깔이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입니다. 인간은 영장류니 다를까요? 글쎄요. 포유류라는 부류의 기작이 그토록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헐랭.. 이거진짜에여?? 그럼 혈액형도..??」
「아니 이건에바져 털하고혈액형이 같나」
새로운 사례의 등장으로 채팅창은 혼란스러워졌다.
새 정보를 수용하는 이들도 있고,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고자 반발하는 이들도 있고.
내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그게 아니었는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털도 혈액형도 아닙니다. 우리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탔을 뿐인 꼬마들끼리 서로 비난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바넘효과니 확증편향이니 하며 진실과 거짓을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신뿐이에요. 성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아직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그런 것을 어떻게 그렇게 당당히 긍정하거나 부정합니까? 그 편견 역시도, 지구는 평평하다 믿고 살던 고대인들의 무지와 똑 닮아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재미로 혈액형을 말하는 사람들을 용서해줍시다. 혈액형으로 판단 당하고 싶지 않은 인권을 존중합시다. 용서와 존중으로 만든 그 공유지를, 그저 서로의 행복으로 채웁시다.”
「ㅋㅋㅋㅋ이럴줄알았어」
「꼰마님 믿고있었다능!!」
「엥 일케끝나는거에여??? 모야모야」
「“용서하고 존중하거라” 꼰마복음 1장 1절 말씀입니다」
[샤오룽님 별사탕 10개. 꼰마님 그래서 결론적으로 혈액형이 성격 결정한다고 믿는거에여 아닌거에여.」
돌고 돌아 다시 이 질문.
22만이 시청한 수요일 방송 이후, 내 결론을 짐작하지 못하는 시청자들이 꽤 늘었다.
지금이야말로 꼰마의 진심을 알려줄 적기겠지.
“여기까지, 꼰대 아저씨가 양비론을 말해봤습니다. 저는 그런 거 안 믿어요. 맞든 아니든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믿는 건 오벨론님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입니다. 이렇게 재미없는 방송을 꾸준히 시청해주신 분들이라면, 혈액형보다도 바넘효과보다도, 곁에 있는 사람들을 믿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게 오벨론님께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에요.”
「여윽시 하나도 해결안해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벨론 : ㅎㅎ 내이럴줄알아써」
“헉. 알고 계셨다니…… 당혹스럽네요. 아무튼, 내일 올라올 이 방송 하이라이트를 재밌는 영상이라며 추천해주세요. 그러면 무작정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덤으로 저는 새로운 시청자들을 얻을 수 있겠지요.”
「오벨론 : 요건몰랐네 ㅋㅋㅋㅋㅋㅋㅋㅋ」
「“내 방송을 보게 하라” 꼰마복음 1장 2절 말씀입니다」
「ㅋㅋㅋㅋ꼰마복음먼데여 진짜있음 」
“그런 거 없습니다. 그렇지만 참 죄송스럽네요. 고민을 해결해드리지도 못하고 그저 홍보만 하는 제가 참…….”
그렇게 너스레를 떨 무렵이었다.
쉽게 보기 힘든 액수의 후원이 나왔다.
그간 본 적 없던 닉네임으로부터였다.
[1000SY님 별사탕 10000개. 와 라이브는 처음보는데 재밌네요. 꼰마 선생님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히히.]
「와우?? 뜬금 만개 」
「꼰마님방은 진짜 별이 어마어마하게터지는듯」
「보람보람보 : 헐 에궁 열혈밀렸다ㅠㅠ」
「오늘고마운게먼데여 」
「1000sy면 천.. 천sy?」
「잠만 오늘 드라마찍은거 천수연거아님 」
“……천님, 열혈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금은 전액 대민재단의 기부활동으로 꼭 필요한 곳에 투입하겠습니다.”
「1000SY : 아 이거다기부예요?? 어떡해」
[1000SY님 별사탕 10000개. 안녕하세요. 저 천수연이에요. 이거는 선생님 쓰세요. 꼰마 선생님 너무 멋있어요.]
일명 ‘쌍천만’ 배우 천수연.
그녀의 등장에, 말 많던 채팅창이 한순간 멎었다.
모두가 말을 잃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량에 서버가 과부하를 일으킨 탓.
소란스러운 침묵 속.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우선 채팅창을 얼렸다.
“자 자, 연예인 사칭하시면 혼나요. 서버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은데, 좀 이르지만 1부 끊고 2부에서 뵙겠습니다.”
그 뒤에 1000SY에게 쪽지를 보냈다.
「수연 씨.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유명인이시잖아요.」
「1000SY : 괜찮아요 ㅎㅎ 요즘 인방 다 많이 봐요.」
「1000SY : 출연도 하는데 후원하면 왜 안 돼요 」
「인방 BJ와 엮이면 이미지에 좋지 않을 수 있어요.」
「1000SY : 꼰마님 방송은 이미지 제일 좋으니까 괜찮다고 그랬어요. 회사에 얘기 다 하고 충전한 거예요.」
「1000SY : 그러니까 받아주세요. 저 꼭 드리고 싶어요. 대신 오늘밤에 형님들 홍보좀 해주세용 ㅎㅎ 저 나와요~」
케이블 예능프로 <형님들> 홍보와 교환하자는 건가.
내 방송이야 오늘도 무려 11만이 시청하고 있으니, 홍보를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면 미안할 일까지는 안 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오전의 오지랖 상담이 고마운 까닭일 터였다.
마음이 못내 무거워진다.
기대치 않은 호의가 짐으로 느껴져서.
투썬과의 합방과 오른팔의 ‘리젠’으로 내 이미지는 까마득히 솟구치고 있는 중.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소통방송을 진행하다보면 때로 첨예한 논쟁에 휩싸인다.
혈액형 문제는 얼렁뚱땅 잘 넘겼지만, 이렇게 양비론으로 회피할 수 없는 주제 역시 가끔은 나올 터였다.
시청자가 10만을 돌파하고부터 절감하게 된 문제였다.
첨예한 주제의 사연들이 날로 늘어간다.
게다가 사람은 다양하고 시간은 제한적인지라, 중재하고 화해시키기 어려운 공격적인 채팅들까지도 나오곤 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수한 사람들.
끝끝내 설득하지 못할 경우엔 내게 증오를 돌릴 수도 있다.
아직은 천수연처럼 호의 가득한 눈으로 봐주는 이들이 대다수지만, 몰이해와 편견으로 비난하는 이들도 없지 않을 터.
그들이 날 좋아하는 이들마저 미워할지도 몰랐다.
이용덕이 말한 ‘공인’의 무게가 느껴진다.
내 가족과, 꼰마크루와, 교수들과, 연예인들.
한순간의 실수로 그들 모두가 이미지를 잃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나는…… 철인이 되어야만 한다.
천수연의 슬픈 가시를 지우고, 양선호와 이혁권이 사람으로서 마주하게 도왔지만.
나만큼은 새로운 갑옷을 입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그 누구도 아파하는 일이 없도록.
방송을 마친 뒤에는 또 하나의 무게가 어깨를 눌렀다.
“형님 형님, 오늘 나레이션 채널 2만 돌파했슴다.”
“……정말로? 그 정도야?”
“예압. 폭스랑 같이 중계했던 게 파급력이 준나 컸나봐요. 공지 때려서 새 기능 안 써봤던 애들까지 몽땅 쓰게 했으니까 당연한 일이긴 한데…… 어제 1만, 오늘 2만, 점점 늘어나네요. 중계방에선 슈아짱 실물 궁금하다고 출연시켜달라는 애들도 많더라고요. 솔직히 솔깃한 얘기긴 해요. 걔 얼굴도 귀엽게 생겨가지고 마스코트 될 것 같잖어요?”
“대수야.”
“무울론, 농담입니당. 형님 성격에 맘 여린 애 방송 시키지는 않으시겠지. 근데요 형님, 걔 어차피 곧 알아보는 사람 나올 겁니다. 알아듣는다고 해야 되나? 흔한 목소리는 아니거든요. 미리 대비하게 시키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22만이 시청한 투썬 합방에서 캐스터를 맡은 이수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접근성방송의 일환으로 끌어들였던 그 아이도, 이제는 내 크루의 중심에 서 있다.
그 아이를 위해서도 나는 흔들려선 안 된다.
“근데 진짜 대박이네용. 천수연이 우리 방 열혈이라니! 이건 제가 하이라이트에 대문짝만 하게 써서 붙일게요. 구독자 떡상각이죠? 오늘도 밤샘각이 예리하구나!”
“……몸 관리하면서 해라. 아플까 걱정돼.”
“엥? 형님, 제가 감기도 안 걸려본 몸입니다. 걱정 노놉! 아무튼 가셔서 형님들 꼭 보세용. 오늘 꿀잼각 날카롭거든요.”
그리고 이 아이도.
형님 형님 하면서 나만 바라보고 있는 진대수는, 물론 유튜브 구독자가 ‘떡상’하며 상당한 수익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아직은 염려스러운 대상이었다.
염원하던 집을 살 때까지는 내가 잘 버텨줘야지.
루머로 고생했던 과거를 회상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그런 생각 속에 돌아온 집.
예능 <형님들>을 시청하고 있던 아내와 딸은, TV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빠!”
“어? 왜 그래?”
“아빠, 엄마한테 사과해!”
“어? 어, 미안해, 주희야.”
“……하란다고 바로 하네. 아빠 아빠, 이거 좀 봐봐. 엄마, 리모콘 줘봐. 이거 녹화 뜨고 있었거든? 이렇게 하면…….”
타임머신 기능으로 되감기된 TV 화면 속에는, 교복을 입은 천수연이 생긋 웃고 있다.
아마 드라마 홍보를 위해 2주 전쯤이나 촬영했을 방송분.
나이에 무관하게 전원이 말을 놓는 게 프로그램의 컨셉인데, 거기서 퍽 흥미로운 질문들이 나왔다.
[야, 대단하네. 그래 팬이 많았나? 니 그럼 연애도 했나?]
[어데, 안 했다. 내 모쏠이다.]
[거어짓마알.]
[거짓말 하고 그러면 혼난다 너?]
[진짠데? 왜 못 믿어, 나쁘다.]
[마 됐다 됐다. 그럼 이상형은 눈데?]
[이상형? 아, 나 요즘 이상형 생겼는데! 꼰마님.]
[꼬…… 누구? 그게 눈데?]
[꼰마님이라고, 인터넷방송 하시는 분인데. 너희 모르지! 요즘 이분 모르면 안 돼. 근데 이러면 자료화면 나가나?]
정말로 내 방송이 자료화면으로 첨부되더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돌아보니, 아내가 도끼눈을 떴다.
“좋으시겠어? 여배우한테 이상형으로 꼽히고.”
“음. 글쎄. 그…… 왜 그랬을까?”
“글쎄? 유우머는 아닌 것 같은데?”
“아빠, 엄마 뿔났어. 조심 조심.”
조심스레 한숨을 내쉬고 생각했다.
앞으로 며칠 동안, 정말 소란스러워지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