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42장 - 상담사의 드라마 (1)
프리월드 진갑수 대표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너 게임방송 좋더라. 투썬이랑 계속 합방 하면 어때?]
“갑수 형. 나한테는 내 컨텐츠가 있습니다.”
[아니, 알지. 맨날 하라는 게 아냐. 주 1회 어때? 오늘처럼 1부에만 게임 좀 해주고 2부는 상담하는 식으로. 오늘 2부도 반응 좋았잖아? 게임 안 하는데도 다시 20만 넘기고.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러면 매번 배너도 올려주고, 투썬 쪽으로 주는 후원 수익에서는 수수료도 아예 빼줄게. 그러면 너한테도 좀 유익하지 않겠어?]
대중에겐 주로 자극적인 엽캠과 선정적인 여캠 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프리TV의 가장 큰 고객은 게이머들이다.
종종 10만 시청자를 넘기는 개인방송이 전부 게임방송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자체 게임단을 만들고 대회 후원자로 참가하는 등 적극적으로 게이머들에게 어필해온 게 그래서였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고, 사실은 고객만족을 위해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그러던 것이 현재는 트위치에 밀리고 있다.
세계 팬들을 노리는 챔피언스리그 팀들이, 속속 그쪽과 계약을 맺어 프로게이머들의 개인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했기에.
그간의 공이 물거품이 될 위기.
뜬금없이 투썬을 불러내 역사적인 22만 시청자를 달성한 내게 알랑방귀를 뀌는 건, 경영자로서 당연한 일일 터였다.
예전이었다면 그 제안에 기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은……
조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형. 억지로 주도권을 뺏어올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이제부터라도 롤 방송 하는 아마추어들 많이 지원해줘요. 그렇게 해서 프리TV 출신 프로게이머가 많이 나올 만한 인프라를 만들어줘요. 그렇게 하면 결국 시청자들은 돌아올 겁니다.”
[아니…… 그게 그렇게 쉽게 되나.]
“돼요, 충분히. 영웅은 언제나 작은 계기로 탄생합니다. 프리TV에서 투썬 같은 선수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어요.”
[에이,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인생이 드라마잖습니까.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거참…… 그냥 싫다고 할 것이지. 알았다, 알았어.]
진갑수는 공감하지 못한 듯했다.
난 진심인데.
오늘 내 눈앞에서 드라마가 펼쳐졌는데.
투썬을 붙들고 눈물을 흘렸던 장도준은, 향후 프리TV에서 롤 방송을 진행하며 프로게이머를 지망하겠다고 밝혔다.
긴 투병으로 인해 학력은 검정고시밖에 답이 없는 상황.
심지어 편부는 병원비로 인해 빚까지 졌다고 한다.
당장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는 환경인 셈인데, 약한 면역력으로 밖을 도는 것보다는 인터넷방송에 도전하는 편이 나은 선택일 터였다.
양선호야 어린 나이에 공부가 우선이라며 금전적인 도움을 주려고 하더라.
그렇지만 소년이 스스로 거절했다.
진성 투까가 잠든 ‘오른팔’이 운다면서.
말은 중2병스럽지만 꼭 그런 뜻만은 아닐 터였다.
자기 힘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일이니까.
장도준은, 그간 비난해왔던 양선호와 유사한 입장에 서봄으로써, 그를 괴롭혔던 무의미한 증오를 반성하려는 것이다.
응원해주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이었다.
물론 드라마는 딱 여기까지일지도 모른다.
신인BJ 오른팔은 투썬의 팬들에게 끔찍한 욕을 먹고 방송을 청산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게 잘 풀린다고 해도, 아직 플래티넘인 그 아이가 챌린저들의 세계인 프로에 들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고.
그럼에도 그 드라마는 아름다울 것이다.
변화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그 자체로 위대하다.
어떤 보상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무너지고 깨져서 전보다도 못한 꼴이 된다고 할지라도, 도전했던 그 마음만은 남아서 세상을 빛낼 테니까.
그렇기에 떠올릴 수 있었다.
나의 도전이, 나 혼자만의 도전은 아니라는 것을.
위인전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아이들은 종종 생각하곤 한다.
저렇게 특별한 사람들이 있구나.
나도 저렇게 돼야지.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멋진 사람이 돼야지.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꿈은 무너지고, 박탈감이 남는다.
난 특별하지 않아.
난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은 아무것도 못 할 거야.
나 같은 99%는 특별한 1%를 위한 들러리인 거야…….
밝게 빛나는 존재들을 보면 드는 생각이다.
슈바이처보다 못하고 루터 킹보다 못한 나.
그들보다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을 리 없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NBSC의 신비한 가능성에 매료됐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NBSC가 그리 흔한 행운은 아닐 테니.
슬픈 죽음들을 막기 위해, 단 한 명의 가해자까지 찾아내서 그 마음의 짐을 내 호수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위인들보다도 위대해지고자 했다.
하지만 우스운 일이지.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전설적인 게이머로서 추앙받을 ‘위인’ 양선호를 위로한 것은, 작은 소년 장도준이었다.
인간 양선호를 사랑하고 미워했던 아이.
밉다고 밉다고 외치던 악플러 주제에, 끝끝내 그를 찾아와서는,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울부짖게 된 소년이다.
그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법을 깨닫게 됐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인간의 일이 못 되지만, 인간을 바꾸는 것은 오직 인간의 일이라는 것을.
모든 위인은 위인이기 이전에 인간이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입에 담기 힘든 욕을 들으면서도 너그럽게 웃는 유대인을 보고 진정한 용서를 깨달았다.
마틴 루터 킹 2세는, 노골적인 인종차별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부친을 보며 위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
그들의 위인전은, 서로를 변화시켜온 인간의 기록이었다.
슈바이처와 루터 킹은 이제 없다.
세상을 바꾸려던 그들의 꿈은 스러져, I Have a Dream보다 오버워치 캐릭터의 대사를 외우는 청소년이 더 많은 시대.
그럼에도 세상은 아름답다.
죽은 위인의 사회지만, 서로를 안아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렇기에 내게는 그들 하나하나가 드라마다.
60억 개의 드라마가 방영 중인 멀티채널.
그 안에, 사실 위인은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인간의 세상을 이루는 것은 인간.
세상을 바꾸려면 사람에게 다가가면 된다.
1인분의 상담사로서는 평생 백만에도 못 미치는 내담자만을 만날 뿐이겠지만, 그걸로 족하다.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
위인들의 시대는 지금과는 달랐다.
신문과 TV와 연설 및 강연은, 대체로 단방향.
그래서야 변화할 준비를 마친 이들밖에 바꿀 수 없다.
평생을 바친다 해도 천 명을 만나기가 힘들었을 터였다.
그렇지만 21세기의 꼰마는 다르다.
22만 시청자야 다시 나오기 힘들겠지만, 어쨌든 매일같이 십만 내외의 시청자가 찾아주고 있다.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 명을 만나면 백만이고, 그들이 또 열 명을 만나면 천만이고, 그들이 또 누군가를 만나면……
나는 십만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슈바이처와 루터 킹에 비해 한참 부족한 울림이지만, 그들보다도 한참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담을 수 있다.
슈바이처가 아니라, 욕먹는 유대인이 되어.
루터 킹이 아니라, 그와 이름이 같은 아버지가 되어.
그럼으로써 백만의 드라마를 만든다면.
내가 아닌 그들의 드라마를 위인전으로 만든다면.
마왕(demon king)이란 칭호를 가진 세계적 인플루언서이자, 트위치에서 개인방송을 할 때마다 20만 이상의 시청자를 끌고 있는 양선호의 드라마도.
그리고 그를 경애하는 소년 장도준의 드라마도.
신작을 내자마자 조회수 1위를 꿰찬 도세나의 드라마도, 제호를 호십이치킨으로 바꾼 착한치킨의 드라마도, 입양한 두 아이의 영웅인 용호맘의 드라마 역시도.
내가 아닌 그들의 자리에서 퍼져나가리라.
그들이 나처럼 인터넷방송에서 썰을 풀지 않는대도 괜찮다.
사람은 누구나 그 삶으로써 1인미디어니까.
SNS와 커뮤니티 댓글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이 시류를 만들 텐데, 어떻게 그 사람들이 인플루언서가 아닐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5천만의 슈바이처가 용서를 논할 때, 세상이 어떻게 바뀌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이 내가 미디어를 믿는 이유다.
때로는 악플과 왜곡으로 시름하지만, 언젠가 그 과도기를 이겨내고 밝은 미래를 가져오리라 확신했던 이유.
21세기를 사는 야매 상담사의 신념이었다.
그 당연한 전제를, 잠시 잊고 있었다.
NBSC의 힘에 취해 나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참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이지.
당장 나와 통화하는 진갑수만 해도, 나레이션 채널과 자막 기능을 통해서 참 많은 것들을 바꾸고 있는데.
“갑수 형. 녹두 풍년집의 일장연설, 기억하고 있습니까?”
[응? 또 그 얘기냐? 뭐…… 대충 기억하지.]
“양방향 통신을 통한 소통의 시대가 온다고 했었죠. 이제는 정말 그렇게 됐습니다. 롤만 해도 TV가 아닌 인터넷으로 보는 시청자들이 더 많아졌죠. 시대는 분명 바뀌었습니다.”
[그래, 그래. 빌어먹을 트위치 새끼들이 파이를 다 가져가고 있어서 문제지.]
“하하. 그 시청자들 핸드폰에도 프리TV 앱은 설치돼 있습니다. 조바심내지 말고 차근차근 해나갑시다. 언젠가 우리의 소통이 세상을 바꾸는 날까지요.”
[……이 자식이 진짜 드라마 찍고 있네. 됐다. 끊는다.]
드라마 보지도 않는 양반이 계속 드라마 타령은.
그게 재밌어서 잠깐 웃고 있자, 진대수가 쭈뼛대며 말했다.
“저기, 형님. 그 저기…… 드라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드라마? 그게 왜?”
“아뇨…… 오늘 들어온 섭외 중에 드라마가 있었거든요.”
“뭐? 드라마에, 날? 연기자로?”
“옙. 인방 스타 등장시켜서 젊은 층 관심까지 받아보겠다 이거겠죠. 웹툰 원작 드라마예요. 오프닝시퀀스 어쩌고 하던데, 대충 극초반부 까메오로 한 30초쯤 나오려나봐요.”
“……대체 무슨 배역인데?”
“주인공 상담해주는 상담사요. 연기라기보다는 평소처럼 상담한다고 생각해주세요……라고 쓰여 있네요.”
황당무계한 섭외의 소식 속에서.
눈앞에 퍼뜩 떠오르는 모습이 있었다.
대한민국 드라마의 최대 소비자이자, 현실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영향력 있는 1인미디어……
어머니들의 얼굴이었다.
*
10만 시청자를 달성한 직후 쏟아지기 시작한 섭외 제안은, 사실 그 이전부터 날 눈여겨보고 있던 케이스가 많았다.
47세의 동안 인방러에게 흥미를 가진 것이 신태훈 CP만은 아니었던 것.
그러나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해 지켜보고만 있다가, <웃기고 앉아있네>와 <트립크루> 출연으로 빠르게 이름값이 높아지는 것을 보며 황급히 제안을 넣은 것으로 보였다.
10만 시청자 유치 타이밍에 섭외가 몰린 건 그래서였다.
그러다보니 방향성도 제각각이었다.
이미 출연한 MBC 뉴스데스크 초대석에, 여섯 건의 유튜브 PPL에, 세 건의 프리TV 생방송 협찬에, 네 건의 예능까지.
이러다 TV CF까지 들어오겠다 말하며 대수와 웃곤 했었다.
그렇지만 드라마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고작 2개월차 인방러를 들이기에는 높은 문턱이다.
모 BJ가 사극 까메오로 나온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조차도 다양한 예능에서 활약하며 안방극장에 충분히 얼굴을 알린 뒤의 일이었다.
[아하핫. 안방극장이라니, 너무 옛날 어휘예요.]
도세나의 웃음소리는 쾌활했다.
내 까메오 제안 얘길 들은 뒤로 몹시 즐거운 눈치.
고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 심정이었다.
[근데 참…… 기분이 복잡하네요. 사실은 제가 먼저, <기획팀장> 드라마화됐을 때 짜잔 하고 모시려고 했는데.]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말아요. 내가 배우도 아닌데.”
[히히. 비주얼은 배우신데요?]
“그렇지도 않고, 연기력도 없잖아요, 내가.”
[그렇죠. 심하게 없으시죠. 얼굴이 그냥 진실의 입이시죠. 그래도 제 웹툰 원작이면 되시지 않겠어요? 저 진짜 연구 많이 하면서 대사 쓰고 있는데. 꼰마님이시면 이 상황에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하면서요. 싱크로율 대박이었죠?]
“그야…… 솔직히 감탄하면서 보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드라마 주인공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그래서야 내 방송을 할 수가 없잖습니까. 워낙 바빠질 테니까.”
[하핫! 자신 없다고는 안 하시네요? 솔직하셔.]
더 솔직하게는, 그쪽도 기존의 계획에 들어있었다.
NBSC의 특성 중에 [연기]가 있었기에.
그 수치를 올리고 시청률 높은 작품에서 활약해, 인터넷방송과는 인연이 없는 중장년층에게도 어필하려 했었다.
게임 애호가들이 그렇듯, 드라마의 ‘안방 1열’ 역시도 악플의 온상 중 하나라고 봤던 까닭.
물론 이제는 무의미해진 이야기다.
나는 주인공보다 까메오에 잘 어울린다.
내가 그리고 싶은 오아시스는, 내 드라마가 아니니까.
그렇기에 이어지는 도세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퀸즈 랜드>는…… 18년도 원탑 인기작이었어요. 처음에는 대한제국이 유지됐다는 배경설정 때문에 <궁> 표절 아니냐는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나중에는 쏙 들어갔죠. 특히 여자 황제로서 겪는 이런저런 딜레마들이 여성 독자들한테 공감을 많이 샀다고 해요. 저는 별로였지만요.]
“그러셨군요. 왜였는지요?”
[너무 주체적이지 못한 것 같아서요. 황제잖아요? 남녀를 떠나서 이미 기득권인 거고, 또 주인공 성격도 굉장히 터프한 편이거든요. 그런데도 극적으로 꾸미려고 억지로 궁지에 모는 느낌이랄까. 아, 그래도 좋은 작품이라고는 생각해요. 작가 언니도 사적으로는 친한 사이고요. 아마 드라마도 잘될 거야. 출연하시면 진짜 좋을 것 같아요.]
도세나에 따르면, <퀸즈 랜드>의 주인공인 황제는 제국을 위해 헌신하는 영웅적인 여성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몰이해와 왜곡보도로 달걀을 맞는다고.
심지어 삼각관계를 형성하던 집사와 혁신당 의원을 모두 쳐내고 정략혼을 택하는 것이 엔딩이라는 것이다.
연재 당시에 실검까지 올랐던 이유를 알 만했다.
[아마 드라마에선 그 부분 고칠 거예요. 너무 새드엔딩이니까. 말씀하신 거 들어보면, 아마 그 정략혼 직전의 상담이 오프닝시퀀스로 들어가는 모양이네요. 그때 명대사 하나 나오거든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위정자는 사람답게 살지 못해야 하네. 그게 그 언니 마인드예요. 누군가는 피해를 봐야 세상이 좋아진다는. 솔직히 그게 좀 별로였던 건데…… 그래도, 꼰마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내가요?”
[네. 꼰마님이 딱 그런 분이시니까. 힘들고 아픈 건 혼자 다 하시려고 하는. 그래서 내담자들은 다 웃으면서 나가게 만드시잖아요. 어제 진짜…… 저도 울었어요. 게임은 잘 알지도 못하고, 또 캠 안 돌려주셔서 소리로만 들었던 거지만, 둘이서 어떤 표정으로 얘기하고 있을지 다 짐작이 되더라고요. 꼰마님은 그렇게 내담자들만 행복하게 해주시고, 거기 못 끼고 혼자 울면서 보고 계셨잖아요. 너무해 진짜. 자기들끼리만 드라마 찍고 있어. 꼰마님이 다 해주신 건데 말이야. 그쵸?]
도세나는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었다.
고맙긴 하지만, 사실을 알려줘야 할 일이지.
“도세나님. 그때 가장 행복했던 건, 나였어요. 행복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어요. 얼싸안고 마음을 나누는 그 모습이야말로 내가 상담사를 꿈꾸는 이유입니다. 그들이 행복해지는 게 내 행복이에요. 그래서 전혀 서운하지 않았어요.”
[으…… 어떻게 그래요? 그 꼬맹이 고맙다는 말도 안 하고 갔잖아요?]
“하하. 말하고 갔어요.”
[네? 어, 안 들렸는데요? 소리 켜고 집중해서 들었는데?]
“소리를 내서 말하진 않았지요. 아무래도 고1은 낯간지러운 말이 안 나오는 나이니까. 그래서 눈으로 말하더군요.”
[으아. 마음의 창이라 이거죠? 치.]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장도준의 두 눈.
그렇지만 그 창문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고맙다고.
평생 가슴에 못 박힐 잘못을 막아줘서, 정말 고맙다고.
“나는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러니까 도세나님도 드라마화해서 주인공 맡기겠다는 생각 하지 말아요. 이렇게 다시 돌아와서 웹툰을 연재하고 있는 모습 자체가, 내게는 죽어도 여한이 없는 기쁨이니까. 그러니 즐겁게 그려줘요.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고요. 그것까지도 난 행복할 겁니다.”
[아…… 으…… 이거 쓸래요. 저 이거 대사 쓸 거예요. 아니 진짜, 드라마도 아니고 평소에 이러시는 게 어딨어요? 꼰마눌님은 진짜 좋겠다. 세상에 이런 아저씨가 어딨냐구, 진짜.]
꼰마눌님이라면, 어젯밤 드라마 섭외 얘기 듣고는 내 등짝을 두드리며 꼭 하라고 외쳤었는데.
그녀를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일이겠지.
더 고민할 이유는 없을 듯했다.
작가에게 답장을 보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