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41장 - 상담사의 한계 (2)
‘투썬’ 양선호는 ‘꼰마’를 몰랐다고 했다.
팀원들의 하드캐리 덕분에 간신히 3위를 수성한 스프링시즌의 폐막 이후, 정신과 진료도 심리상담도 마다하고 플레이오프와 MSI(Mid-Season Invitational) 준비에만 매진했다고.
4월 6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나를 본 적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 그를 TV 앞으로 부른 것이 감독 이혁권이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뉴스를 보게 됐다는 것이다.
이어진 네 시간짜리 생방송까지도.
“그랬군요. 바쁘실 텐데, 고맙습니다.”
[네. 그니까 그…… 혹시 트위치는 안 하세요?]
“예? 아, 예. 프리TV 파트너BJ로 묶여 있어서요.”
일종의 독점제다.
파트너를 포함한 베스트BJ들은, 일반BJ들보다 수수료를 덜 떼이는 대신, 타 플랫폼 활동이나 동시송출이 제한된다.
수익다각화를 원한다면 일반BJ로 돌아가야 한다.
계약으로 묵인 파트너BJ의 경우에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전문 인방러가 아니니 자세히 알지 못했을 이야기.
그렇지만 내게 그 문제를 묻는 것이 기이했다.
새벽녘에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달라 부탁할 정도의 추동이, 단순한 호기심일 리는 없는데.
양선호는 대체 내게 뭘 원하는 것일까
[아, 그렇구나. 그…… 감독님? 저도 프리TV 못 가요?]
[너야 파트너십 아니니까 상관없지.]
[진짜요? 오. 그럼 저기, 혹시 저랑 합방 안 하실래요?]
“……합방이요.”
[네. 그니까 그…… 홍보도 할 겸.]
“양선호 선수가 홍보가 필요한 입장은 아닐 텐데요.”
[그니까…… 아, 롤 배워보실 생각 없으세요? 재밌는데.]
[한번 해보세요, 꼰마님. 진짜 재밌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네.
이 나이에 게임을 배울 생각은 없는데.
이혁권이야 그런 식으로라도 나와 양선호가 가까워지길 바라며 부추기는 것이겠고, 내게도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의를 알 수 없었다.
오늘 처음 본 내게서, 양선호는 대체 무엇을 떠올린 걸까.
“양선호 선수? 미안한데, 이유를 먼저 묻고 싶네요. 왜 그러시는 거지요? 팬들과의 소통에 큰 관심이 없어서, 트위치 개인방송도 아주 가끔씩만 켠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합방을 말하는 거지요? 방송을 통해서 무얼 얻으려는 건가요?”
[아…… 그니까 뭘 얻으려고 하는 건 아닌데요.]
소년의 말투다.
올해 성인이 되었지만, 고작 열다섯 나이부터 게임 외의 모든 것에서 관심을 끊었기에, 사회성은 아직 부족할 터였다.
그 이전에도 말주변은 없었다는 듯하고.
PoG(Player of the Game) 인터뷰조차 단답형으로 끊는 것이 일종의 밈이 되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열심히 말을 골랐다.
자신의 마음을 내게 전달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마음은, 내가 예상치 못한 빛깔이었다.
[제가 그니까, 되게 좋더라고요.]
“……좋았다고요?”
[네, 네. 어, 그니까, 악플러들 얘기하신 거요.]
“아, 예. 그게…… 좋았습니까?”
[네. 좀 잘 이해해주시는 거 같아서요.]
“그건 의외네요. 양선호 선수 본인도 악플 피해를 많이 입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네. 저도 뭐…… 폼 떨어졌다고 연습 안 했냐고, 왜 지가 못해놓고 즙 짜냐고 그러기도 하고, 제 팬들이 문제라고, 그래서 팀 분위기 곱창난다고, 그런 말도 보고 그랬죠.]
이른바 ‘투까(투썬 안티팬)’들의 행동이다.
한 업계의 톱스타에게 안티팬이 생기는 건, 빛에 그림자가 따르듯 자연스러운 일.
듣도 보도 못한 2군 처지에서 순식간에 선배들을 밀어낸 양선호는 특히 그랬다.
‘투독(투썬 팬)’과 ‘투까’의 싸움이 게임 게시판에 보이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라고.
방송에서라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좀 달랐으리라.
그러나 양선호는 늘 단답형이었고, 표정도 단조로웠다.
얼핏 보면 팀원의 실수를 비난하는 듯한 무표정.
그러다가 게임에서 지고 울컥 눈물을 보일 때가 있는데, 자기 잘못은 모르고 분해서 운다는 게 투까들의 해석이었다.
이혁권의 제안을 받고 검색해보기 전에는 잘 몰랐던 사실.
하지만 본인이 하나하나 언급할 필요는 없었는데.
떠올리기도 싫었을 이야기를 전달하는 양선호의 목소리는, 그러나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예. 그래서, 제가 뉴스에서 했던 이야기가 오히려 불쾌하진 않으셨을까 걱정했는데요. 좋으셨다는 게 의외네요.”
[네. 근데, 그니까…… 그래도 팬이니까요.]
“예?”
[저희 경기 보고, 게임 분석해주시고, SNS에 올려주시고, 그래서 저희가 인제 게임 해가지고 돈 벌 수 있으니까요. 저는 싫어하셔도 저희 팀 좋아해주시는 분들이고…….]
“……그렇습니까.”
[그리고 또 제 팬들도요, 나쁜 사람들 아닌데…… 저한테는 진짜 잘해주는 분들인데, 게임 이해도가 부족해서 동료들한테 비난하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되게 욕 많이 먹고 있고요.]
“그렇더군요.”
[그런 게 좀 그랬거든요. 전 그니까…… 그 사람들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악플러라고 다 밴(차단)하라는 사람들도 있고 해서, 그게 싫었거든요. 근데 아저씨가 하신 얘기 들으니까, 속이 시원해서요.]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110의 ‘진단’이 목소리를 분석한 결과다.
게임 솜씨만큼 대단한 연기력까지 겸비한 게 아니라면, 양선호는 정말 안티팬들마저 감싸안는 성격일 터였다.
그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었다.
고작 스무 살이다.
이유 있는 비난에도 격분해서 마주 욕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나이에, 도리어 그들이 용서받기를 바라다니.
단순히 질박한 성격의 결과만은 아닐 듯했다.
“양 선수. 혹시…… 악플러를 직접 만난 적이 있습니까?”
[엇. 어.]
[와. 셜록꼰즈 또 한 건?]
[어어. 그게 뭐예요?]
[됐고, 말씀드려. 뭔지 나도 궁금하네.]
감독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
양선호는 뭔지 모를 ‘셜론꼰즈’에 잔뜩 주눅 든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그니까, 소아암 환자인 팬이 있었거든요? 도준이라고, 걔가 자기 수술받기 전에 꼭 저 한번 만나보고 싶댔어요.]
[아, 작년 걔. 기억나네. 니 광팬이었잖아? 그래서 시즌 중이라 바쁜데도 굳이 시간 내서 보러 갔잖아.]
[그래서, 만났는데…… 쪼그만한 애가 저 보고 너무 좋아서…… 저 때문에 힘든 치료 다 견디고, 수술 결심할 수 있었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게 너무 고맙고 좋아서…….]
[하하. 그래서 결국 수술도 잘됐지? 마왕의 가호네.]
아저씨인 내가 게이머 팬심을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때 양선호가 어땠을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한없이 고양되었으리라.
정보람의 눈물을 마주했던 나처럼.
그 행복이 오래 유지됐다면 좋았을 텐데.
무사히 수술을 마친 소년은, 이내 ‘투까’가 됐다고 했다.
[그때 제가 슬럼프가 왔거든요. 너무 의욕이 앞서니까 CS도 잘 못 따고 퍼블도 자주 주고…… 그니까 그게, 보고 있으면 실망스러웠을 것 같아요. 그때 콜업된 민규가 폼 올라와서 거의 캐리해줬거든요? 근데도 제 팬들은 자꾸 민규가 팀웍 망친다고 욕심부리니까 저 짤리는 거라고 그러고.]
[아하. 그래, 그때 너 움짤 꽤 돌았지. 민규 쳐다보면서 ‘존나 깝치네’ 중얼거린 거.]
[……‘존나 잘하네’ 한 거였는데.]
[표정이 그게 아니었으니까.]
[네……. 그래서 그다음부터 롤갤(리그 오브 레전드 갤러리)에 저 욕하는 글까지 쓰고 그러더라고요. 제 팬들이랑도 많이 싸우고요.]
[그랬어? 하. 그 새끼 닉 뭐야?]
[오른팔…… 근데 뭐라고 하지 마세요. 그냥…… 도준이가 잘못한 거 아니에요. 저 욕하는 건 괜찮으니까. 제가 더 잘할 테니까, 사람들끼리 안 싸웠으면 좋겠는데…… 전 그래요.]
때 묻지 않은 순수함.
팬이었던 사람이 돌변하면 배신감에 분노가 치미는 게 보통인데, 오히려 그의 처지를 옹호하고 있다.
천성적으로 미움을 어려워하는 성격이리라.
차라리 자신이 미움받는 것을 더 편안하게 여기는.
이용덕의 이야기에서 떠올렸던 의심이 확신에 가까워진다.
이 정도로 겸허한 아이가, 과거의 자신과 경쟁하며 사회공포증을 앓게 됐을 리 없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다른 지점.
아마도 이혁권이 가장 잘 알고 있을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그 전에, 합방 얘기를 정리해야지.
말하자면 이건 양선호의 선물이다.
내 이야기를 듣고 행복을 느꼈으니, 자신의 네임밸류로 내 방송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받아줘야 되겠지.
나 역시도 양선호와는 만나보고 싶었다.
모두가 소아암 환자는 아니겠지만, 무수한 팬들에게 하루를 버틸 힘을 주는 스포츠 스타.
그런 인물이 정신적인 문제로 무너져선 안 될 일이었다.
“어떤 느낌인지 알겠네요. 그런 의미에서 진행하는 합방이라면,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어? 그런 의미에서요?]
“예. 암을 극복했다는 그 친구를 불러서 제가 붙어보지요. 투썬 선수가 지도해준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어, 어우.]
[하하! 아, 그거 재밌는데요? 마흔일곱 아저씨를 코칭해서 네임드 투까를 쓰러뜨린다. 대통합의 이벤트가 될지도? 타 포지션은 연습생 애들이 해주면 되겠고……]
감독인 이혁권이 즉각적으로 지지해준 덕분에, 프리TV 합방 계획이 빠르게 진전되었다.
서머시즌 전까지는 공식 일정이 없는 까닭.
장도준이라는 친구와 약속을 잡는 게 급선무지만, 그것만 해결되면 합방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했다.
[아. 그래도 꼰마님 연습 좀 하셔야 되겠죠? 저희가 월말 공개평가전 직전까지는 여유를 둘 수도 있는데요.]
“아니에요. 그때는 양 선수도 경기 준비에 집중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쪽이야 승패가 중요한 이벤트는 아니니, 가능한 빨리 추진하기로 하지요.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할 것 같다는 건…… 흠. 선호야, 넌 이만 가서 잘래? 이제부턴 사무적인 얘긴데, 컨디션 관리해야지.]
[어, 어, 네…….]
[오늘은 딴생각 말고 푹 자라. MSI 우승 놓친 거 니 잘못 아니야. 그냥 전체적으로 손발이 안 맞았어. 알지, 마왕님?]
[네…….]
그렇게 신이 마왕을 쫓아내는 동안.
나는 시선을 돌려 보고서를 살폈다.
「 내담자 명 : 양선호
평가 결과 : 선량하며 소심하고 사려 깊다. 불안장애로부터 파생된 우울증으로 하루하루 칼날 위를 걷고 있다. 」
……어딘지 표현방식이 섬세해진 느낌이 드는데.
그거야 어쨌건, 오류 없는 레드라이트였다.
양선호는 위험하다.
불안장애에 우울증이 수반된 상황에서 정규리그에 출전하면, 과도한 압박감 속에 금세 마음이 무너지고 말 터였다.
MSI 직후 이혁권이 날 찾은 건 천만다행.
그러지 않았다면, 수십만 명의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스타의 파멸을 지켜보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NBSC의 힘.
어떤 전문의도 단시간에 확진할 수 없었을 문제를, 이 초능력은 짧은 통화만으로도 유추해낸다.
그조차 에픽퀘스트의 보상 중 하나일 뿐이었다.
exp만 그치지 않고 쌓였다면, 상담사 꼰마는 언젠가 세상의 정신질환을 모조리 몰아낼 수 있었을 터였다.
그 가능성이 틀어막혀버린 현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담사다.
내 곁으로 다가온 고통을 방치할 수 없는.
“혁권 씨. 양 선수는 갔습니까?”
[아, 예. 꼰마님, 방금 하신 말씀, 그거죠? 선호 상태가 진짜 안 좋은 거죠?]
“……보통 전화 한 통으로 그렇게 단정 짓지는 않습니다.”
[꼰마님은 보통이 아니시니까요. 셜록꼰즈시잖아요?]
이혁권의 목소리는 내용과 달리 어두웠다.
단지 에이스를 염려하는 감독으로서의 마음만은 아닐 터.
이제는 게임의 신을 마주봐야 할 때였다.
“혁권 씨. 양 선수의 원래 포지션은, 서포터였지요?”
[아, 예. 연습생 땐 그랬죠. 그러던 걸 제가 17시즌에 발굴해서 미드라이너로 키웠고요. 지금은 로밍 갓이에요.]
롤이라는 게임의 팀은 다섯 개의 포지션으로 구성된다.
기본은 탑, 미드, 봇의 세 라인.
거기에 정글러라고 해서, 전장 곳곳을 떠도는 역할이 있다.
마지막 한 자리가 봇라이너를 돕는 서포터다.
‘뉴겜’ 이혁권은 미드라이너였다.
압도적인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상대 미드라이너와 타워를 홀로 무너뜨리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 동안 포지션을 벗어나 활약함으로써 전황을 뒤바꾸는, 소위 ‘로밍형’ 미드라이너.
그 접두사의 시초가 이혁권이었다.
현재의 양선호가 바로 그 뉴겜의 후계자.
전성기의 이혁권에게도 밀리지 않는 피지컬을 바탕으로 전장을 지배한다.
워낙 정교하게 스킬을 피하고 자기 공격을 성공시키기에, 한 번도 쉽지 않다는 펜타킬을 쉽게도 내곤 했다.
그렇지만 그는 원래 서포터였다.
스스로 빛나기보다는 팀원들을 위해 희생하는 포지션.
악플러조차 욕하지 못하는 양선호의 성격에 완벽하게 어울렸을 터였다.
신체 쪽은, 그와 달랐겠지만.
“서포터에 만족하고 있던 양 선수의 포지션을 옮긴 건, 피지컬 면에서 혁권 씨와 가장 유사했던 까닭이겠지요?”
[예. 몸이 안 따라주면 절대 할 수 없는 스타일이니까요. 사실 피지컬만 보면 제 롤드컵 때보다도 나아요. 솔직히 전 그때도 손목 통증 안고 하고 있었던 거라서요. 그런 애가 멍청하게 서포터나 잡고 있으니까 성적이 안 나왔던 거죠. 그 포지션은 아무래도 피지컬보단 멘탈이거든요. CS 먹느라 바쁜 팀원들 대신해서 머리를 굴려야 되는데, 걔가 그게 좀 약해요. 아쉽죠. 둘 다 됐으면, 진짜 만능 미드 됐을 텐데.]
“만능 서포터도 될 수 있었겠지요. 메타를 뒤바꾸는.”
[하하. 그건 좀 깊은 얘기인데요? 역시 프리월드 부장님 짬은 다르구나. 그래도…… 서폿은 손 느린 애들 시켜야죠.]
“본인이 원한다고 해도요?”
[예. 서폿 챔피언들은 잘해봤자 1인분이잖아요? 감독으로서 3인분 전력을 낭비할 수는 없어요. 직무방기죠 그건.]
“그 직무 때문에, 양 선수가 괴로워하고 있다고 해도요?”
이혁권은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놀라서 말문이 막힌 느낌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허탈한 듯이 웃었다.
[하하…….]
“혁권 씨.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을 거예요. 소심하고 주목받기 싫어하는 양 선수가, 그래서 탁월한 신체능력에도 불구하고 서포터만을 즐기던 그 선수가,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가 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느끼는 불안을. 그렇기에 본인이 괜찮다는데도 상담사들을 찾았던 것 아닙니까?”
[……예, 그랬던 것도 같네요.]
“그럼에도 안 되는 일입니까?”
[하하. 전 감독이에요, 꼰마님. 성적을 내야 되죠.]
이혁권- 마구니가 종종 치곤 했던 채팅이 떠오른다.
‘경영자로선 어쩔수없는 선택이었겠져’
그 마인드는, 우월감에 취한 금수저의 것이 아니었다.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 앞에 휘둘리는 보스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한숨처럼 적은 이야기였으리라.
“괴로웠겠군요.”
[흠…… 좋진 않았죠. 그래도, 별수 있나요. 이기는 팀을 만드는 방법이 그거 말곤 없었는데. 한정된 자원으로 소수정예만 가지고 쟁쟁한 팀들을 물리쳐야 되는데, 그걸 아무 희생도 없이 해낼 방법은 안 떠오르더라고요.]
사실은 양선호의 부담감에 공감도 안 됐겠지.
현역 때의 이혁권은 관심을 즐기는 성격이었으니.
그러나 어느 정도 심증은 가지고 있었기에, ‘공과 사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라는 보고가 나왔을 것이다.
그는 감독 이혁권과 인간 이혁권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다.
고작 게임상의 포지션이 무슨 대수라고……
내 또래들이라면 아마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LoL 방송 관련 사업에 수십억을 투자해왔던 프리월드의 부장으로서, 나는 그 무게를 모를 수 없었다.
양선호가 스무 살도 되기 전부터 느껴왔을 압박감을.
“혁권 씨 스타일의 미드라이너는 기본적으로 팀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구합니다. 픽과 밴을 전부 미드에 맞추고, 게임 중에도 미드를 키우기 위해 전원이 희생해야 합니다. 마치 메시에게 페널티킥을 몰아주는 바르셀로나 FC처럼요. 심지어 게임 외적으로도 그렇게 됐을 겁니다. 팀의 마케팅을 위해서 스타성 높은 선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인터뷰나 CF를 포함한 그 모든 마케팅에 양 선수만 불려다녔을 겁니다. 헌신적인 다른 선수들을 배제한 채로. 투썬은 테이크의 얼굴이 됐습니다. 그리고 세계 수천만의 게이머가 주목하는 롤의 얼굴이 됐어요. 행복한 자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사람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 있어요. 최강이 되기보다 행복한 게임을 하길 바랐던 아이라면.”
[예…… 그렇죠.]
“투까들이 투썬 때문에 팀웍 무너진다고 불평하는 상황입니다. 양 선수는 의도한 적 없는 스타로서 팀원들과 팬들을 괴롭히고 있어요. 심지어 말주변이 없어 사과도 제대로 하지 못했겠지요. 그 상황에서 마음이 멀쩡하다면, 그건 기계입니다.”
[……그렇군요.]
“제 진단은 이렇습니다. 게임에서 서포터라는 자리를 빼앗긴 양 선수는, 현실에서 서포터가 됐습니다. 어떤 즐거움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부속품이 되고 말았어요. 세계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그의 일상은, 희생의 연속이었어요.”
이혁권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사실은 그래서…… 그래서 꼰마님께 부탁드리고 싶었어요. 그 녀석이 달라질 방법은 없을까요? 부담감을 극복하고, 관심을 즐기는, 그런 성격이 될 순 없을까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바꾸셨잖아요. 불안장애를 치료하셨고, 흡연자랑 비흡연자가 서로 인정하게 만드셨고. 그런 꼰마님이라면 하실 수 있지 않아요? 걔가…… 미드라이너로 장수할 수 있게요.]
“……잔인한 부탁이신데요.”
[그렇지만, 그 애를 위해서기도 해요. 걔, 게임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열다섯부터 롤만 잡고 살았으니까. 그런데 지가 좋아하는 서포터로는…… 솔직히 가망이 없죠. 제 밑에서 미드로 성공하는 게 유일한 비전이에요. 스무 살이 된 지금 사회인으로 돌아간다? 그 순해빠진 녀석이 뭘 해먹고 살겠어요.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세요, 꼰마님.]
이혁권의 부탁에 뚜렷한 답을 주지 못한 채 통화를 마쳤다.
지도자로서 하는 말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의욕 없는 아이를 즐기는 스타로 만드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그런 생각 중에, 괜히 웃음이 나왔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양선호와는 반대였다.
김 이병의 죽음을 본 이후, 의욕은 넘쳐났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쓰러뜨리는 미드라이너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저 현실에 몸을 맡긴 채 쥐죽은 듯 살아야 했다.
그렇기에 NBSC에 기대를 걸었다.
그 초능력이 날 상담의 신으로 만들어주리라 믿었다.
더는 어떤 아픔도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기대가 무너진 지금.
12레벨의 나는, 아직도 1인분이 한계인 서포터 처지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표는 수정하는 것이 옳겠지.
그렇지만……
한 명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양선호가 미래와 마음을 동시에 지키게 도와주는 일이라면, 지금의 나로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꼭 쥐었다.
우선은 한 사람부터.
실현 불가능해진 알고리즘의 개선작업은, 양선호에게 오아시스를 안겨준 뒤에 고민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