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40장 - 가장 유명한 상담사 (3)
“좀 어때요? 유명해진 기분은.”
이용덕은 웃지도 않으며 질문했다.
마땅히 답할 말이 없어서, 한참 뒤통수를 긁적였다.
“……좀 놀라고 있습니다. e스포츠라는 것이 대단한 화제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야 알았지만, 기사 하나로 선수 본인도 아닌 그 관련인에게까지 관심이 쏟아질 줄은 몰랐어요.”
일정 정도까지는 예상하고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실시간검색어에 오른 상태에서 최강의 프로게이머와 얽히게 됐으니, 처음에 ‘꼰마란 건 또 무슨 신조어야?’ 정도로 생각하던 청년들도 이제는 단순노출효과(mere exposure effect)를 겪을 것이라고.
그러니 각인처럼 ‘꼰마’가 알려지리라 생각했다.
다만 그 일만으로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오를 줄은 몰랐다.
정말로 투썬에게 정신적인 질환이 있을까 하는 토의에서 시작한 논란은, 이내 ‘투독’이니 ‘텤까’니 하는 비하적인 말들을 끌어내더니, 급기야 내 자격논란에 이르렀다.
심리학 학위도 없는 사람에게 국보급 플레이어를 맡겨도 괜찮냐는 이야기.
딴은 맞는 말이지만, 그 게시물과 댓글 하나하나에 비속어가 섞이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하하! 지금까지는 잘 느끼지 못했겠죠. 아무래도 관심 갖는 이들의 대부분이 대민 씨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을 테니까.”
“……그렇습니까?”
“그래요. 애초에 대민 씨를 방송을 통해 봤던 사람들이야 당연한 것이고, 아이돌 팬덤도 개그맨 팬덤도 일정 정도는 정신과적인 문제에 대해서 경각심을 갖고 있는 편이죠. 그러니 자신들의 우상에게 도움을 줬다는 상담사가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노력했을 겁니다. 길에서 알아보고도 귀찮게 굴지 않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혹시 몰랐습니까?”
“아…… SNS에 목격담이 많이 올라왔다고는 들었습니다. 직접 말을 건 친구들은 썩 많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그랬을 겁니다. 다만 이제는 좀 다르겠지. 검색을 좀 해봤어요. 테이크게임즈가 애들 상담 보낼 돈 아껴서 공개방송이나 시키는 거라며, 대민 씨를 아주 역적으로 몰던데.”
정확한 진단이다.
분명 지금까지와는 방향이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그게, 왜 그런 걸까요? 스포츠스타의 팬덤이 방송인의 팬덤과 성격이 다른 탓일까요?”
“일단은 스포츠스타라기보다 게이머로 한정하는 게 맞겠지요. 주로 멀리서 활약하는 모습을 구경만 하는 일반적인 팬덤과 달리, 게임 쪽 팬들은 실제로 대전을 할 수도 있어요. 현역 선수들이 인터넷방송으로 자기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하고요. 기본적인 거리감이 보다 가깝지. 그렇지요?”
“맞습니다. 상당히 해박하시네요.”
“게이머 친구들도 외래로 종종 오니까. 아무튼 그런데, 방송을 자주 보다보면 마치 함께 대전했던 사이처럼 친숙하게 여겨지는 모양이에요. 거기다 그 게임이라는 게 채팅이나 음성 대화를 통해서 부모 안부까지 묻곤 한다잖아요? 그 문화권에 속해 있다는 전제가 표현을 더 쉽게 만들어주겠지.”
“그 말씀은……”
“악플의 온상(溫床) 중 하나라는 이야깁니다. 중계방송에서 ‘범인찾기’ 따위를 놀이처럼 즐기던 이들은, 이후 다른 분야에서도 쉽게 누군가를 비하하고 모욕할 수 있게 돼요. 드라마 배역을 욕하던 이들이 이내 배역 아닌 배우에게까지 악감정을 배설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날 찾아왔던 선수들도 그런 문제를 안고 있었어요. 대중의 손가락질을 받을까 하는 두려움에…… 심하게는, 경기 끝나자마자 뛰어가서 구토를 한다는 아이도 있었지. 참 끔찍한 노릇이죠?”
빠지지도 않고 등장하는 악플이다.
자연히 우리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악플러를 욕한 나 역시 가해의 방조자일 수 있음을, 그때 이용덕이 깨닫게 해줬었지.
이번에는 그의 설명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플러 역시 사람이지요. 대단히 보편적이어서 내 주변 두 명 중 한 명꼴일지도 모르는. 왜곡된 방어기제 속에서 일그러져버린 그들에게, 미움을 주지는 않겠습니다. 절 향한 모욕 정도야 웃어넘길 수 있어요.”
“……하하. 참 웃기는 양반이로군.”
“교수님의 모욕까지 허락한 적은 없습니다.”
“뭐요? 거, 쪼잔하기는. 모욕이 아니라 칭찬입니다. 나는 그렇게 되기까지 참 오래 걸렸거든요.”
이용덕은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다음 말을 찾았다.
원래는, 그저 프로게이머들의 정신건강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자 찾아온 자리.
하지만 그의 지난날을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그야말로 정신건강 분야의 제일가는 유명인이니까.
나보다 한발 앞서 대중적 명성을 획득한 전문가로서, 모셔 배워야 할 선배라고 할 수 있다.
그 선배가 시선을 피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내가, 야매 상담사들을 몰아내겠다며 유명세를 꿈꾸던 시절에, 자연히 반동도 많았어요. 의사라는 자가 방송에서 입담이나 뽐내고 있냐며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고, 저렇게 실실 쪼개는 의사를 어떻게 믿겠냐는 이들도 있었고. 불쾌한 일이었죠. 무시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어요. 분노 속에서 익명 아이디로 싸우기도 많이 했지요. 그러다 나중에야 알게 됐어요. 내…… 죽은 아들 녀석 역시, 인터넷에 꽤 많은 악플을 남겼었다는 사실을. 그리운 마음에 아들 노트북을 켰는데 쪽지가 하나 뜨더라고. 몇 년이 지나도 네놈은 진짜 죽여버리고 싶다고. 이미 죽은 내 아들을, 죽이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랬군요.”
“그렇게나 깊은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좋은 방어기제는 아니지. 결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들이 어디 악플러가 되고 싶어서 됐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현실의 장벽이 그들에게 방망이를 휘둘러대지 않았더라면, 그들도 선량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아들을 겹쳐보니 그제야 마음이 풀립디다. 좀 이기적이지요?”
그게 어찌 이기적인 일이겠는가.
남의 일인 채로는 언제까지고 피상적일 뿐이다.
그 안으로 들어가 왜곡된 고리를 끊어내는 변혁은, 연약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못 된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게도 귀감이 되네요.”
“응? 꼰순이가 악플도 달고 그래요?”
“그 아이는 아마 아닐 것 같습니다만, 주변에 없지는 않겠지요. 제 내담자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피해자의 입장이지만은 않았을 테니까요.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려면, 악플러 역시 덮어놓고 미워해선 안 될 겁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요.”
“거참, 대승적이로군.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조금 염려를 했던 건데…… 괜한 일이었던 것 같네. 대민 씨는 이미 극복했군요. 이제는 ‘공인’이라 불려도 되겠어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어찌됐건 대중은 그렇게 부를 겁니다. 자부심을 가져요. 그리고 그…… 투썬이라고 했죠? 그 친구라면 얘기는 들었는데.”
“그러십니까? 어떤 얘기를……?”
“나한테 진료받은 친구들이 종종 말하더군요. 투썬이란 애가 있는데, 걔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어마어마한 장벽에 맞닥뜨린 것 같다고. 그래서 도망치고 싶어질 때가 있다는 겁니다. 프로 선수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라 자책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게 소극적인 플레이를 불러 다시금 악플을 맞는 악순환이 된다는 얘기였지요. 마왕이라던가? 별명이 참 유치하지요? 애들이 활약하는 게임이라 그런가.”
리그 오브 레전드의 마왕.
투썬 양선호는 그렇게 불리곤 했다.
매년 최다 펜타킬(상대팀 다섯 명을 한꺼번에 쓰러뜨리는 업적)을 기록해, 모든 상대팀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기에.
“그런 아이가 불안장애를 안고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자기 자신과의 비교 때문이겠죠. 예를 들면 19시즌의 투썬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일 것이 겁난다든지. 종목을 막론하고 기대 이상으로 활약한 선수들이 흔히 겪는 문제예요. 말하자면 performance anxiety…… 스티브블레스 증후군이라는 거지.”
과거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투수였던 스티브 블레스는, 어떤 신체적인 문제도 없이 슬럼프를 겪고, 결국 은퇴했다.
70년대 의학으로는 원인을 찾을 수 없었던 문제.
그렇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증세를 통칭하게 됐던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승리에 집착하는 과도한 긴장이 강박적 문제행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이 잘 알려져 있지만.
“그럴 수 있겠군요. 투썬이란 이름이 세계 최고를 넘어 역대 최고라는 찬사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고, 팀에서도 팬들에게도 지나치게 큰 기대를 받고 있으니…… 스무 살의 젊은이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짐이었을 듯합니다.”
“그래요. 그래서 그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요인인데…… 그 외에도 궁금한 부분이 있긴 해. 그 선수, 원래는 포지션도 달랐고 별반 주목받지도 못했다지요? 그러다가 새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던데. 그 플레이스타일이 감독의 현역 시절과 똑같아서, 제2의…… 뭐라더라?”
“‘제2의 뉴겜’ 말씀이시군요.”
“아, 그래요 그거. 그런 별명이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 지점에서도 생각해볼 문제가 있을 듯합니다. 적절치는 않지만, 살리에리 증후군 같은 것 말이에요.”
타인과의 비교는 정신질환의 주된 요인이다.
그 대상이 은퇴 뒤 신성시되고 있는 ‘게임의 신’이라면, ‘마왕’으로서도 극복하기 힘든 스트레스였겠지.
그런 생각으로 메모를 하던 중이었다.
문득, [내담자 평가]의 문장이 떠올랐다.
‘공과 사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했었지.
선배이자 감독인 이혁권의 그 혼란은……
어쩌면 그는……
복잡한 생각으로 잠시 염두를 굴리고 있자, 이용덕이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투썬이란 친구는 그 정도로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은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당장 오늘이 뉴스라면서요? 생방송인데, 미리 연습하고 준비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닙니다. 그저 준비한 대로 읊기만 하면 돼요.”
“그러니까, 긴장해서 실수하지 않게끔 달달 외우거나……. 하하. 내가 괜한 소릴 했구만. 코앞에서 공황발작이 일어나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응급처치를 하는 인물에게, 뉴스 생방송의 긴장감이 문제가 될 리는 없겠군요.”
“그렇다기보다는, 생방송이라면 늘 하고 있으니까요.”
“그거랑 그거랑 어떻게…… 흠. 뭐 좋아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지. 편하게 하도록 해요.”
편할 수 없는 상황임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다.
10만 명이 보는 내 방송조차 뉴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니.
MBC뉴스의 시청률은 최근 6%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꽤 낮은 수치지만, 그래도 100만 명쯤은 된다.
거기에 가정 외 대합실 등에서 주로 공중파 뉴스를 틀어놓는다는 사실까지 생각해보면, 파급력은 그 이상일 터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장년층에게는 어떤 예능보다도 주목도가 높은 포맷.
인서트컷도 아니고 아예 초대석에 불려간 인물이라면, 그 잠깐의 방송만으로도 압도적 명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니 그곳이야말로 첫 번째 관문이다.
가장 유명한 상담사를 향한 내 걸음을 막아설.
그런 뉴스를 앞두고 마음이 편하다면, 그건 아무래도 이상한 노릇일 터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이상한 사람인 모양.
8시 넘어 출연할 뉴스보다도 뒤로 미룬 생방송이 걱정이다.
다시금 10만 시청자를 넘긴 어제에 이어, 오늘도 무수한 e스포츠 팬들이 내 방송을 찾아올 텐데.
그들의 마음을 나는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 걸까.
그런 고민 속에 도착한 뉴스 스튜디오에서, MBC 보도국 주간이 건성으로 인사를 건넸다.
“아, 박대민 씨? 빨리 오셨군요.”
“예. 처음 뵙겠습니다.”
“예, 예. 일단은 여기, 추가된 멘트예요. 숙지해주세요.”
새로운 스크립트를 읽으며, 나는 기분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장벽을 생각했다.
우리가 거리끼고 두려워하게 되는 세상의 모든 장벽을.
그것은 흡연자와 비흡연자를 가르는 갈등일 수도 있다.
유진호에게 주어진 고아라는 편견일 수도 있다.
마왕이라 불리는 압도적인 게이머일 수도 있다.
또는, 그 마왕조차 두려워하는 게임의 신일 수도 있다.
어느 한순간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로 돌변한다.
우리는 그런 무기질의 벽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장벽은 두텁고 또 폭력적이다.
보이지도 않는 무수한 방망이가 휘둘러진다.
인간은 그 방망이를 다른 이에게 튕겨내며 자신을 지킨다.
회사에서 깨진 부모는 아이를 강압적으로 대한다.
학업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아이는 부모에게 짜증을 부린다.
누군가는 지위를 확인하고자 종업원을 함부로 대한다.
모멸감을 겪은 종업원은 모든 손님을 진상으로 몬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억압적인 현실에서 탈피하기 위해, 피해자의 마음을 생각지도 않고 낄낄대며 악플을 단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간다.
이용덕의 말대로, 정말 끔찍한 생물이지.
그렇지만 나는 또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인간의 잘못일까.
우리는 정말 서로를 악마화해 파멸시켜야 하는 종족일까.
시선을 내려 장벽을 바라본다.
‘혁신의 MBC’라는 새 카피프레이즈에 걸맞게, 산뜻하고 세련된 색감으로 꾸민 공간에 인방러를 초청한 뉴스데스크.
그러나 이곳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앵커와 스탭들을 감싸고 도는 것은, 잿빛의 냉혹함뿐이었다.
첫 번째 목적지를 향한 관문이 이 위에 있다.
뉴스에서 100만의 중장년에게 내 이름을 각인하고 나면.
그리고 100만 팔로워를 거느렸다는 ‘마왕’의 심리적인 문제를 치료해, 그 어린 팬들을 내 추종자로 만들고 나면.
그때에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길이 펼쳐질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장벽의 세계 속에서, 상담사는 어떤 존재일까.
NBSC의 힘을 가진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리허설을 진행하고 또 코앞에서 실시간으로 뉴스를 구경하면서도,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앞으로 5초! 초대석 스탠바이!”
“……월요초대석입니다. 인터넷상에서 화제의 중심에 선 분을 모셨습니다. 박대민 씨,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넷방송 플랫폼 프리TV에서 활동하고 있는 ‘꼰마’ 박대민입니다.”
“반갑습니다. 인터넷방송 외에도 독특한 이력들이 많으신데요. 우선은 프리TV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프리월드에서 20년 동안 근속하셨고, 최근 은퇴 후 상담사 업무를 시작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아이돌그룹 TOX의 민성, 개그맨 김용식, 이런 분들의 심리치료를 수행하셨죠?”
“치료라고 할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제 상담심리학을 막 배우기 시작한 입장이고, 그분들의 치료는 다른 교수님들의 몫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곁에 있었을 뿐이지요.”
“그렇군요. 그 외에도 인터넷방송을 통해 얻은 4억 3천여만 원의 수익을 불우한 고아들의 면학을 위한 자선사업에……”
앵커는 조금쯤 상기된 표정이다.
방송사에 묶여 있는 그녀로서는 호기심이 들 법도 한 일.
언젠가 프리랜서로 나와 수억의 수익을 얻는 유튜버가 되는 날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는, 자신의 멘트에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화제의 인물이죠. e스포츠계의 신성인 ‘투썬’의 심리상담을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고 알려졌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셨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문이 퍼졌다는 점에서 박대민 씨의 최근 주목도를 느낄 수 있는데요. 아마도 연예인들의 심리적 문제들에 도움을 주신 까닭 같습니다. 관련해서, 작년이었죠. 한 연예인이 슬픈 선택을 하기도 했는데요. 전문의는 인터넷 악플로 인해 우울증이 악화됐을 가능성을 지적했습니다. 세간의 관심을 받는 인터넷 상담 진행자로서, 한말씀 해주신다면요.”
이게 추가된 스크립트였지.
대본은, 가벼운 겸양의 멘트에 더해 적당한 선에서 대중의 그릇된 행동에 경종을 울려주길 바라고 있다.
리허설 때는 거기에 맞춰 앵커에게 감명을 주기도 했고.
그렇지만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정말 대중이 악마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상담사가 해야 할 말은, 악플러의 자성을 촉구하는 일인가
고인은 말했다.
악플러를 고소해놓고 봤더니, 자신과 동갑이었다고.
아마도 스트레스 속에서 순간적으로 실수한 것 같았다고.
그렇기에 선처를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렇게 고인은 방망이들을 끌어안은 채 산화했다.
그러자, 그녀가 고통받을 때는 목소리를 내지 않던 이들마저 뒤늦게 모습을 드러내 악플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게 슬픔의 고리를 끊을 해결책일까.
정말로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일일까.
“……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저, 약간 말씀을 혼동하신 것 같습니다.”
“사실입니다. 우리의 잘못입니다.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가 있다면 그 부모를 타일러야 합니다. 더 나은 행동을 가르치지 못했으니까요. 군대에서 자살자가 끊이지 않는다면 군이라는 체제의 부조리를 비난해야 합니다. 청년들이 따뜻하게 소통하지 못하도록 강요했으니까요. 그런데 어째서, 악플이라는 범죄에서는 가해자 개개인만을 비난할까요? 그들이 누굴 보고 그것을 배웠을까요? TV에 나오는 연예인을 보며 성형을 했네 안 했네 마음껏 떠드는 부모에게서 배우지 않았을까요? 자성의 목소리 없이 남의 탓만 하는 어른들에게서 배우지 않았을까요? 시청률에 눈이 멀어 고인까지 들먹이는, 이 뉴스를 보며 배우지는 않았을까요? 왜 우리는 그 작은 손가락만을 욕하는 걸까요. 왜 그들을 통해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못하는 걸까요. 제가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낄낄대며 악플을 다는 슬픔들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너무 미안합니다. 더 따뜻하고행복한 사회를 안겨주지 못해서, 그들이 피해자의 아픔을 보고서도 코웃음만 치게 만들어서. 부족한 어른으로서 그저 미안합니다.”
“아…… 예. 저, 감사합니다. 그럼…… 예.”
앵커가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나는 카메라를 바라봤다.
저 너머의 시청자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저놈이 뭔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쪽일까.
그게 아니면, 많지는 않겠지만, 혹시 한두 명쯤은 그간 자신의 행동에 악플과도 같은 잘못이 만연했음을 생각했을까.
둘 중 어느 쪽이건 미안한 일이었다.
분명한 죄과가 있는 이들을 배제하고, 평온하게 살고 있던 시민들의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셈이니.
또 내게는 심각한 악재도 될 터였다.
이제야 막 작은 유명세를 획득한 상황.
MBC 보도국 수뇌부의 심기를 건드려가며 감행한 돌발행동은, 추후 박대민 관련 보도를 부정적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장 유명한 상담사가 되는 것보다도 중요한 일이 있기에.
어른들이 ‘정상인’과 ‘이상한 범죄자들’로 선을 긋고 바라보는 채로는, 세상은 분명히 점점 더 어두워진다.
그들의 시선이 장벽이 되어 방망이를 휘두를 터였다.
갈등이 심화되고 악플은 오히려 만연하리라.
선을 그은 채로는 변화를 촉구할 수 없다.
마음은 오직 마주섰을 때에야 보인다.
그렇기에, 상담사의 적은 범죄자가 아닌 단절.
나는 그 장벽을 부숴야만 한다.
뉴스가 끝난 뒤, 주간은 날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대놓고 막말을 퍼붓지는 않더라.
그가 말없이 멀어진 뒤, 방금 켠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 대수야. 내가 나가서 다시-”
[형님, 형님! 아니 대체 왜 그런 말씀을 저랑 상의도 없이 하시는 겁니까?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어요! 근데 뭐, 잘하셨습니다. 헤헤. 이건 좀 어마어마했어요. 들어보실람요?]
이어지는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땅에서 가장 유명한 상담사가 되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