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06화 (106/200)

# 106

39장 - 상담사와 연애 (2)

[걔가 그래요? 제가 깡냥님이랑 행복해 보였다고요? 와, 돌겠네. 아니, 실례되게 그런 얘길 여기서…… 하.]

BJ준태- 한태준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쉰다.

그림처럼 멋진 자세였다.

과연 11년차 남캠이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다만 그 외모가 한태준의 전부는 아니다.

그랬다면 여신이라 불리던 정시내와 열애를 공개한 시점에서 시청자들이 다수 이탈했겠지.

그러나 둘은 오히려 선남선녀 커플이라며 추앙받았다.

한태준이 외모만큼이나 바르고 성실한 청년인 까닭이었다.

그렇기에 정시내에게 고백할 때 나름대로 격려까지 해줬던 것인데.

올곧았던 녀석이 결혼까지 생각한다던 애인을 실망시킨 것은, 대체 어째서였을까.

[후우. 시내도 이거 보고 있겠죠?]

“안 볼 거라고 했는데, 또 모를 일이지요. 연인의 상담 내용이란 건 정말 궁금한 부분이니까요.”

[그렇겠죠. 아무튼…… 아무튼 진짜 감사드립니다, 부장님. 아, 부장님이라고 부르면 안 되나?]

“편하게 불러요. 뭐든 괜찮아요.”

[헤헤. 그럼 부장님도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전에 말씀 놓기로 하셨잖아요? 그 뒤로 자주 못 뵙긴 했지만…… 아무튼 진짜 감사합니다. 중재 부탁드린 거 친절하게 받아주셨다고 들어서 기뻤어요. 진짜로요. 이제는 저희보다 훨씬 잘되는 방송국 되셔서, 이런 탐방 사실은 귀찮으셨을 텐데.]

사실 친절하게 받아준 건 아니었다.

탐방이 귀찮은 것은 아니지만 청년들의 연애사에 개입하는 일에 작은 거리낌 정도는 있었으니.

그런 떨떠름한 허락을 이상하게 전달한 인물은……

흘끗 노려본 디렉터석에는, 대수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다.

대본은 싫어하면서 거짓말은 참 잘도 한다 싶더라.

“그랬구나. 하지만 나야 사연이 왔으니 받았을 뿐이야. 나보다는 특별 컨텐츠를 용인해준 후원자님들께 인사드려야지.”

[앗, 아! 그러네요. 대민재단 후원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희 때문에 고민상담도 제대로 못 하고 계시겠네요.]

「ㅋㅋㅋ ㄱㅊ 꿀잼」

「준하!」

「준하~~~~」

[아, 준하는 좀…… 가능하면 태하라고 해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 정주나요 안정주나요」

「근데 준태형 꼰마님이랑 친함?」

[아, 네! 저 꼰마님 회사 계실 때 자주 뵀거든요. 이거는 저번에 방송에서도 말씀드리긴 했는데, 저 세나랑 진결 고민하고 있을 때 진지하게 상담해주셨던 분이세요.]

「헐 ㄹㅇ?」

「유튜브에 준나방 꼰마님썰 검색해보세여~」

「아 꼰마님 그런 꿀잼썰을 왜안풀어요!! 이걸 남의입으로 들어야 되겠습니꽈!!!」

“……음. 그랬었나? 미팅 중에 잠깐 나왔던 얘기여서,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진 못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도요. 그런데도 정말 신중하게 들어주셨어요. 그땐 제가 어려서, 회사 일로 바쁘실 거 생각도 못 하고 그냥 막 떠들었거든요. 근데 그거 듣고 같이 고민해주시면서…… 아마 점심도 못 드셨던 것 같아요. 진짜 감사했습니다. 그때 상담이 진짜 도움 많이 됐어요.]

그야 카페에서 얘기가 길어지며 점심을 놓치긴 했다.

하지만 그 상담이 도움이 됐을지는 의문이었다.

방송용 우결 기믹과 실제의 모습을 착각한다면 언젠가 분명 크게 다칠 거라며, 흔한 꼰대의 사고방식을 전했을 뿐이니.

“슬슬 본론으로 돌아오자. 시내 씨 입장에서 느낀 변화들을 설명하고 있었지. 일단 물어볼까. 네 생각은 어때? 연애 초기와 비교해서, 네가 좀 변했다고 생각하니?”

[아…… 그야 똑같지는 않을 것 같아요.]

「ㅠㅠㅠㅠㅠ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사랑은!」

「돌아오는거야!!!」

[하, 하하. 여기 시청자 분들은 연령대가 좀 있으시네요. 아무튼 저도 나이가 이제 서른 됐잖아요. 스무 살 때부터 방송 시작해서 사회생활은 거의 못 해봤지만, 친구들 술 사주고 이런저런 얘기 들으면서 생각 많아지고 그랬죠. 근데 그렇다고 해서 시내를 향한 마음이 변하거나 그런 건 아니거든요. 그냥 좀 더 현실적이 된 거죠. 먼 미래도 생각하고 해야 되니까요. 아무래도 BJ라는 직업이…… 이게, 부장님 앞에서 말씀드리기 부끄럽긴 한데요, 평생직장은 아닐 수 있잖아요?]

그야 고민해볼 만한 문제기는 했다.

나야 NBSC의 힘으로 동안이 된 덕에 오히려 추진력을 얻은 셈이지만, 다른 스트리머들에겐 나이가 큰 장벽이 될 테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들 하지만, 분명 사랑은 변한다.

트렌드 역시 그렇다.

시류가 흐르면 사람들의 관심도 빠르게 움직인다.

긴 경력 내내 갈고닦은 노하우도, 그 트렌드에서 벗어나는 순간 올드한 것이 되고 만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이제 옛말.

새로운 것이 모든 오래된 것을 대체하는 시대다.

이미 11년차 화석인 한태준이 얼마나 더 스타일 수 있을까.

현실에 천착하는 게 당연한 시점이었다.

그렇지만, 그와 무관하게 의아한 지점이 있었다.

“태준이 너는, 그간 충분히 돈 모아두지 않았어?”

[아…… 그게요…… 사실대로 말씀드려야 되겠죠? 방송에선 얘기한 적 없었는데, 저 1년쯤 전에 크게 사기 한 번 당했어요. 아는 형이 요식업 시작해보자고 해서 모아뒀던 돈 전부 투자했는데…… 그게 수익이 아니라 빚이 돼서…….]

「헐 오빠ㅠㅠㅠㅠㅠ」

「준태야 왜이제말해ㅠㅠ」

“……그랬구나. 그 경험이 영향을 준 걸까?”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제는 정신 차려야 될 때라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지만요. 그래도 모아둔 돈이 있으니까 좀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때부턴 현실적인 고민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랑 융자 청산 못 한 아파트밖에 없는데…… 혹시라도 방송을 계속할 수 없게 되면 어떡하나 하고요. 그때를 대비해서 더 열심히 일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합방 자주 하게 된 것도 그래서고요.]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러면-”

[준태변태님 별사탕 100개. 태준오빠 유유유유유.]

[어? 어, 잠깐만요, 스톱 스톱!]

[준태이블님 별사탕 200개. 유유유 쭈니 힘내자 아자아자.]

[아니 잠깐만 있어보라니깐요?]

[준태리어님 별사탕 300개. 준태야 형이 더잘벌게.]

[아니 그게 아니라, 이러려고 한 말도 아니고요, 꼰마님 방은 이렇게 후원 막 하면 안 된단 말이에요. 아까 말했잖아요? 상담 흐름 끊기는 거 싫어하신다고요. 형님들, 참아줘요.]

PIP창의 한태준이 너무 쩔쩔매고 있어서, 내가 대신 상황을 정리해줬다.

“제 방송에 별사탕 쏘시면 태준이한테 안 갑니다.”

「헉???」

「왜여 반반아니에여???」

“여기로 들어오는 돈은 전액 대민재단에 기부돼요. 오직 내일이 막막한 아이들을 위한 후원입니다. 그러니 태준이를 위하신다면 준태방에 후원해주세요. 아시겠지요?”

[준태극기님 별사탕 500개. 맞다 그랬지. 준태야 미안. 오늘은 여기인 것 같다.]

[하하핫. 극기 형, 굿잡요. 저는 마음만으로 충분합니다. 사실은 저도 후원하고 싶거든요. 근데 이래저래 상황이 좀 복잡해서 못 하고 있는 거고…… 그래서 전에 꼰마크루 모집하실 때도 신청 못 했던 거고 그래요. 아무튼 제 얘긴 끊으셔도 되는데, 이제부터는 부장님 말씀은 끊지 말아주세요.]

그런 소통의 와중에 내가 생각한 것은, 한태준이라는 청년의 진심이었다.

본인의 말대로 그는 분명 변화했다.

스무 살 사회초년생 때부터 대세 BJ로서 친구들 술 다 사주던 녀석이, 첫 사업에 실패해 세상의 무게를 깨달았기에.

그렇지만 지금도 그는 올바른 인성의 소유자다.

사업을 제안했다는 형을 원망하지도, 그 스트레스를 연인에게 토해내며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정시내를 슬프게 만든 것은 어째서였을까.

[완전한 공감]을 쓰기도 전이지만, 그 답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준아. 너, 깡냥이님하고 합방할 때 무슨 생각 했었니?”

[아, 예. 생각…… 글쎄요? 무슨 생각 했었더라. 근데 부장님, 저 진짜 아니에요. 걔가 이뻐 보인다거나 바람피우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 진짜 하나도 안 했어요. 아니, 물론 저도 남자니까 게임 해서 스킨십하고 그러면 기분 이상하긴 하죠. 근데 전 진짜 시내 하나밖에 없거든요. 어디까지나 합방이니까…… 이렇게 말씀드리면 시청자 분들은 좀 역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방송이니까 재밌게 하려고 연기하는 게 있거든요. 그래야 형님들이 재밌게 보시고 후원도 해주시니까. 저는 솔직히 그런 거 아니면 방송 재밌게 하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부장님처럼 혼자서도 방송 잘할 줄 알면 합방 하지도 않았죠. 별사탕은 점점 줄어들고, 매달 대출금 상환하느라 머리 아파 죽겠는데, 제가 무슨 바람을 피운다고 여자애랑 시시덕거리겠어요?]

11년차 방송인이 방송 재밌게 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이쪽 업계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고인물’은 트렌드를 주도하지 못하는 법이니.

지금까지는 분위기 있는 외모와 정시내와의 달콤한 커플방송으로 화제성이 유지됐겠지만, 그게 만사형통일 리는 없다.

스스로가 대출금 등으로 쫓기는 상황이라면 특히나.

아무래도 그쪽을 짚고 넘어가야 할 듯했다.

결국은 사연의 내용과도 연결되는 이야기니까.

“좀 다른 얘긴데,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태준이 너, 지금 좀 별로다.”

[벼, 별로요? 으아…… 죄송합니다.]

「왜왜왜 오빠한테 왜그래여ㅠㅠㅠㅠ」

「울오빠 괴롭히지 마여!!!!!」

“태준이 팬 여러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이 순둥이 친구가 진짜 자기 매력을 모르고 있으니까요. 태준아. 넌 여유로울 때 매력적이야.”

[예? 어…… 여유로울 때요?]

“그래. 지금은 꼰마가 아니라 퇴직한 프리월드 부장으로서 하는 말이다. 시청자만 많고 별사탕 순위는 높지 않았던 널 파트너BJ에서 내리자는 얘기가 한 번도 안 나왔던 건, 어디까지나 너라는 사람의 평소 모습이 좋아 보여서였어. 썰도 별로 재미있게 풀지 못하고 게임에도 재능 없는 너지만, 그냥 평범하게 소통하고 평범하게 경험담 이야기하는 모습 자체가 매력적이었거든. 왜 그랬을 것 같니?”

[왜…… 왜 그랬을까요?]

본인은 모르는 것들이 있다.

호수의 물속에서는, 관광객들의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아름다운 물가의 풍경에 어떻게 감동하는지, 본인만은 평생 모른 채로 살 수밖에 없다.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생각도 못 하고 이런저런 마음들을 흘리고 다녔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줬지.

이 청년이 그렇게 되도록 놔둔다면, 상담사 실격이리라.

“네 중심에 올바른 마음이 있었으니까. 지속적으로 해온 자원봉사나, 대출금에 쩔쩔매면서도 취소하지 않은 기부를 말하는 것도 아니야. 그런 게 없더라도 BJ준태 자체가 보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었어. 시청자들을 진짜 친구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게 보였어. 어떤 BJ들처럼 그저 돈줄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말이야. 그 마음이 있어서 네가 10년간 장수할 수 있었다고 본다. 나도, 그런 네가 좋아 보여서 점심까지 패스하고 별 관심 없는 연애 얘기를 경청했던 거고. 그런데 이젠 네가 딱 그런 모습이네. 별사탕 좀 더 받으려고 하고 싶지도 않은 컨텐츠나 하고 있고. 그게 아무리 봐도 별로잖아.”

[……그게…… 아 그게…….]

사랑과 시대가 그렇듯이, 사람도 변한다.

큰돈을 일시에 날리는 경험은 그 변화의 강력한 촉매.

그때에는 성인군자라 해도 마음이 조급해진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해. 내가 했던 말은 가물가물하고, 네가 했던 말들 위주로. 시내는 애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져요. 저번에 애기 보고 막 좋아서 손뼉 치는데 그거 사진으로 못 찍은 게 천추의 한이잖아요. 솔직히 저한테는 과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에요. 근데 저 아직 수입 별로 안 나오고 그냥 시청자만 많은 하꼬인데 괜찮을까요. 아뇨 사랑은 자신 있는데, 혹시 걔 실망시키게 될까봐 걱정돼요…….”

[으아. 부장님, 그거 말씀하시면 안 되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쫄보나왔네」

「준태오빠 다들 그럴거라고 생각했어요 ㅋㅋㅋㅋㅋㅋ」

「준태쫄보는 과학입니다.」

[어…… 왜 아무도 안 놀라는 거야?]

역시, 본인보다도 시청자들이 잘 알고 있다.

BJ를 알려면 그 애청자들과 대화하는 것만으로 충분하겠지.

다만 그 대상 중에서 한 명 정도는 제외해야 한다.

그 본인만큼이나 주관적으로 호수를 바라볼 한 사람이다.

“그런 문제들을, 시내 씨는 알고 있었겠지?”

[아, 예! 시내는요, 제 사정 알고 원금까지 자기가 다 갚아주겠다고 한 애예요. 뭘 믿고 그러냐니까, 결혼하면 어차피 우리 애 거 아니냐고 하데요. 그런 애한테 제가 어떻게 딴 맘을 품어요……. 이거 진짜예요. 믿어주세요, 부장님.]

“믿어. 그때도 말했던 것 같긴 한데, 난 시내 씨가 너한테 과분한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어. 너보다 세 살 어리지만 훨씬 더 머리회전 빠른 시내 씨가, 쫄보인 너한테 상처를 주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 다행이었던 건 네가 그 시내 씨까지 변화시켰다는 점이야. 아까 얘기 나눠보고 알았어. 예전과 참 많이 다르더라. 훨씬 더 멍청하고 순진무구한 아가씨가 됐어. 그게 다 준태쫄보 때문이겠지.”

[헉…… 아 부장님, 왜 그러세요? 시내 안 멍청한데…….]

정시내와 실제로 마주했던 건 단 두 번이었다.

BJ시내였을 때 한 번, 한태준과의 열애를 인정하고 BJ세나로 닉네임을 바꾼 뒤에 한 번.

그 두 번의 만남에서도 꽤 큰 차이를 느꼈었다.

오늘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서는, 그 이상으로 놀랐고.

원래는 대단한 말괄량이였던 것이다.

남친이 변했다 싶으면 당장 눈에 불 켜고 헤어지자고 외쳤을 법한.

그러던 아이가 7년 동안 참 많이도 변했다.

그게 단지 나이를 좀 더 먹었기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멍청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잖니. 마음이 떠난 탓이라고만 생각했다는 거야. 사업 말아먹은 자기한테 실망하지 않았을까 움츠러들었던 너를, 멋지게 프로포즈할 자신이 없어서 만날 때마다 웃지 못했던 너를. 그렇잖아? 오랜만에 얼굴 본 나조차 알겠는데. 지금 네가 입은 그 재킷 안주머니 말이야.”

한태준의 얼굴이 덜컥 굳는다.

카메라 너머로도 어렴풋이 감지될 만큼 도톰해 보이는 가슴팍을, 그는 정시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무심결에 쳐다보거나 쓸어내리곤 했다.

거기에 내가 아는 쫄보 이미지를 더하자 분명해졌다.

결정적으로는 [내담자 평가]가 오류 없는 진실을 알렸지만.

“프로포즈링이지? 시내 씨와 만나지도 않을 오늘 그걸 가슴에 넣어둔 건, 최선을 다해 상담에 임하겠다는 다짐이었겠지. 아마 사업 시작할 무렵에 구입했을 거야. 그 뒤로 일이 안 풀리며 점차 미뤘을 거고. 그래서 더 위축됐겠지. 사업이 잘돼서 당당해졌을 때 청혼하려고 사둔 걸, 이제는 꺼낼 수 없게 돼버렸으니까. 그래서 평소처럼 대하기가 힘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더 멋진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돼버려서. 그래서 자괴감 속에 자꾸만 시선을 피하게 되지 않았을까. 내 생각이 틀렸나?”

떨리는 손으로 가슴팍을 매만지는 청년.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옷 속의 내용물을 꺼냈다.

비싼 가격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링케이스였다.

「헐?」

「사쿠라여?」

「와우???? 이거 사전에 합의된건가여??」

「에이설마 이거 대본이죠????」

대본이라고 확신해도 할 말이 없긴 한데.

그렇지만, 한태준의 얼굴이 오해를 불식시켰다.

화면과 케이스를 번갈아 보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 진짜…… 어떻게 아셨어요. 이거 진짜…… 숨겨두려고 했던 건데, 갑자기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아직 청혼할 상황도 아닌데, 지금 이거 보여주면…… 안 되는 건데…….]

“그래? 그러면 아니라고 대답하지 그랬어.”

[근데 그러면…… 부장님이 틀리신 게 되니까…….]

“그랬겠지. 네가 그렇게 멍청하다는 거다. 시내 씨가 그 멍청함을 닮아버렸더라. 푹 빠졌기 때문이겠지. 사랑에 빠진다는 말, 특이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니? 그 시점 이후로는 바깥이 보이지 않게 되는 까닭일 거야. 마치 호수에 풍덩 빠지는 것처럼. 그걸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어? 한 발짝 물러나서 보면 명확하게 보일 정황들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래서 호수 밖의 낚시꾼이 좀 간섭한 거야. 너나 시내 씨나, 그대로 두면 정말 헤어질 것 같아서.”

[아니…… 부장님…… 낚였어! 근데 저 어떡해요! 저 이거 지금 보여주면 안 되는 건데! 시내 보고 있으면 어떡해요!]

“별수 있겠어? 시작하자, 영상편지.”

[으아아…… 저기…… 아, 안 돼!]

한태준이 두 손으로 얼굴을 움켜쥐는 사이에, 답이 나왔다.

[BJ세나님 별사탕 12486개. 야 이 바보야. 진짜 너는 진짜 아 그냥 빨리 주면 됐잖아. 진짜. 나랑 결혼해줘, 태준아.]

「와우.. 전설의 만이사랑해..」

「셜록꼰즈님 오늘도 한건하심 ㄷㄷ」

「보는 쏠로 맴찢ㅠㅠㅠㅠ」

「감동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준태쫄보 뭐해 빨리대답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으…… 어…… 응. 하, 할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할게 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 진짜 이커플은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구니님 별사탕 1000개. 풍악을 울려라.]

[은진알통님 별사탕 112개. 신고하세요. 혼인신고.]

[꼰마야놀자님 별사탕 1004개. 세나님 천사야 유유.]

[세이클럽님 별사탕 1818개. 하 정말 쏠로 맴찢이네요.]

[효준한님 별사탕 2000개. 허허.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행복하길 바라네. 서로의 허물을 눈감아주며 사랑만 하시게.]

「ㅋㅋㅋㅋㅋㅋㅋ효준좌 감동인데 웃기다」

「파뿌리효준좌 염색만 하시게 ㅋㅋㅋㅋ」

한태준에게는 예정과 참 많이 다른 전개였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한 커플이 마음을 확인하게 됐다.

이후로는 두 사람이 알아서 잘 해나가겠지.

믿음이란 초석 위에선 사랑만큼 강한 힘이 또 없으니.

그렇기에 나는 즐거워하는 한태준을 바라보지 않았다.

시선의 끝은 책상의 맞은편.

형용하기 어려운 눈빛으로 모니터를 보는 진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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