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03화 (103/200)

# 103

38장 - 상담사와 아빠 (2)

인터넷방송에서 고민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종종 무거운 사연들을 마주하게 된다.

끔찍한 현실의 억압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

그럼에도 상담소가 아닌 인방을 찾은, 안타까운 케이스다.

이때는 적극적인 공감과 주의 깊은 직면이 필수였다.

하지만 그쪽이 메인스트림은 아니다.

연애나 교우관계 등 가벼운 고민이 훨씬 많다.

그럴 때는 나 역시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 비중이 보통 3:7 정도.

대체로 유쾌하고, 때때로 진지해지는 분위기다.

그렇기에 재미없는 아저씨 BJ가 상담이라는 컨텐츠로도 지속적인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다만,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부류도 있다.

어떤 말도 도움이 안 될 듯한 사연.

내용은 단순하나 해소는 그렇지 않은 케이스다.

사소한 문제가 마음을 온통 잠식하고 있는 까닭에.

14일의 밤에 받은 사연이 바로 그런 이야기였다.

한없이 가볍고, 또 한없이 무거운.

“다음은 블루벅님의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꼰마님. 스무 살 새내기인데요, 저 이 사연 올릴까 말까 고민 많이 했어요. 그런데 꼰마님은 편견 없이 봐주실 것 같아서…… 이렇게 글 써봐요. 저는 제 아빠를…… 죽이고 싶어요.”

「어우;;」

「헐 머지」

“어렸을 땐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빠가 싫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얼굴 볼 때마다 살의가 솟아요. 아빠만 죽이면 다 행복해질 거라는 근거 없는 생각도 들고요. 근데…… 저도 미치겠는 게, 딱 이거다 할 만한 이유가 없어요.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거나, 술 마시고 맨날 폭력을 휘둘렀다거나, 정신병을 의심할 만한 증상을 보이거나 한 건 아니거든요. 인터넷 검색해서 그런 사연들 볼 때면 찔끔하기도 해요. 전 그런 문제가정은 아닌데, 왜 이럴까. 객관적으로 보면 노력도 많이 하고 모질게 굴지도 않는 아빤데, 왜 미울까.”

「ㅋㅋㅋ 와 이건 니가정신병인데」

「잘못도없는데 죽이고싶다고? 사이코패스네 ㅋㅋ」

좀 부주의했던 걸까.

사연을 끝까지 읽기도 전에 반발이 나왔다.

감정보다 정황을 먼저 고려하는 사람들이리라.

객관적으로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는 관점이지만, 상담이란 때로 아주 주관적인 관점을 요구한다.

내담자가 스스로 다가온 케이스는 특히 그랬다.

이미 변화를 각오한 이에게, 아무나 떠들 수 있는 비난 따위는 무의미하니.

“여러분, 채팅 주의해주세요. 정신과 전문의 아니시면 정신병이니 뭐니 떠들지 마시고, 프로파일러 아니시면 사이코패스니 뭐니 떠들지 마세요. 전문의나 프로파일러라도 어지간하면 손 무릎 합시다. 끝까지 듣고 나서 얘기해야죠.”

「;; 아니 더들어볼것도없는대여??」

「낳아주고 길러줬는데 고마워하진못할망정ㄷㄷ」

“부탁드릴게요. 제발 스톱.”

「블루벅 : 아 죄송합니다 저때매 분위기가..」

「꼰마님말씀이맞아요 좀닥쳐요!」

「알지도못하고떠드는거 극혐이다」

뒤늦게 역성을 드는 이들도 있다.

이쪽은, 아마도 유사한 충동을 느껴본 사람들.

그렇기에 주관적인 악의도 이해해주는 케이스다.

어느 쪽이건 내담자가 휘둘려선 안 될 편향이었다.

“데스야, 채팅창 얼려라. 5분.”

“예압. 얼음!”

내 입장을 말하자면, 이 문제에 있어서 할 말이 너무 많다.

동시에 어떤 이야기도 꺼내기 힘들었다.

무수히 봐왔지만, 한 번도 부숴주지 못했던 굴레이기에.

프리월드의 직원 중 적어도 스물일곱 명이 이와 유사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내게 심중을 털어놓곤 하던 50여 명 중, 약 절반.

살인충동까지 입에 담은 것은 겨우 3인 정도였지만, 맥락 면에서 유사한 케이스라면 터무니없이 많았다.

그렇기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은 그렇게 흔한 이야기다.

아무에게나 털어놓지 않는 가족사인 까닭에, 고민을 안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이상한 거라고 오인하며 살아갈 뿐.

82의 ‘관계’를 가졌던 나는 이례적인 케이스였다.

상담사도 아닌 주제에, 상담사들도 만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의 친부혐오자들과 만나봤다.

NBSC를 갖지 못한 시점이라 경청하는 일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그 경향은 각양각색.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다.

내용 면에서도 저마다 표면적인 추동이 달랐고, 나름대로 강구한 해결책 역시 다양했다.

우선희는 빨리 독립하고 싶다고 했고, 송성희는 양친을 이혼시켜 엄마를 구하겠다고 말했고……

다만 기저의 색깔만큼은 모두가 동일했다.

부친을 향한 뿌리 깊은 증오.

이유는 무거울 수도 있고 가벼울 수도 있다.

사실상 어떤 행동 때문에 도출된 감정이 아닌 까닭이겠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블루벅 내담자는 훌륭한 관찰자다.

자신의 감정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움에서 논리를 도출해 되짚고자 노력하는 성격이기에, 그간 충동만 느낄 뿐 실천적 행동에는 이르지 않은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이 사소한 사연은, 다른 어떤 고민보다도 어려운 문제.

지금의 나로서도 해소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채팅창을 얼린 채 조심스레 다가섰다.

“그럼 계속 읽을게요. 처음 밉다는 감정을 느꼈던 건 중3 때였던 것 같아요. 미술학원 다니면서 예고 준비했는데, 어느 날 아빠가 그쪽은 비전 없다, 지금이라도 공부 제대로 해봐야 된다, 그런 얘길 했어요. 저 미술학원 보낸 건 엄마 혼자 생각이고 아빠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근데 저한테는 꿈이었거든요. 그래서 엄마랑 오래 얘기해서 결정한 일이었거든요. 그걸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자기 기준에서 무시해버리니까, 솔직히 기분이 되게 나빴어요. 거기다가 엄마가 가정주부라서 세상 돌아가는 걸 몰라서 그런다고 말하고…… 그래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더니, 무서운 표정 지으면서 아빠한테 무슨 말버릇이냐고 화내는 거예요. 때리거나 한 건 아닌데, 엄마랑 그 문제로 말다툼도 많이 했고요. 그게 앙금처럼 남았어요. 평소에는 안 그러는 성격이라서 더 충격적이었던 거 같고…… 그 뒤로는 몇 년 눈도 안 마주쳤던 거 같아요.”

앙금라는 말로 단순화하기는 어렵겠지.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가정이라는 절대적인 보금자리 내에서 느낀 배신감은, 때로는 정신질환까지 유발하는 트라우마가 된다.

그것이 아무리 상식적이고 온건한 방식으로 이뤄진 일이라고 할지라도.

부모라는 족속의 천형(天刑)이다.

가족구성원의 천부적 역할이라는 상식에만 갇혀 행동한다면, 험한 말 한마디 없이도 아이를 망가뜨릴 수 있다.

“그렇게 무시하면서 살다가 고3 때 또 싸웠는데, 그때는 제가 먼저 화를 냈어요. 변기 열어놓고 소변 본 거 때문에요. 알아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인 거. 그런데 그냥 밉고 꼴 보기 싫고 그랬어요. 그래도 최대한 참고 차분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는데, 아빠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고3 스트레스냐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 그런 소리나 하는 거예요. 거기에 열받아서 제가 욕을 했던 것 같고…… 그래서 대판 싸웠어요. 그 뒤로도 엄마아빠 싸울 때마다 제가 끼어들었어요. 엄마 속도 모르고, 집에서 편하게 있으면서 일 마치고 온 남편한테 왜 바가지 긁냐는 식으로 말하는 게, 너무 짜증나서요. 그럴 때는 뚜껑 열려서 통제가 안 돼요. 아빠 니가 해준 게 뭐 있냐고 패드립도 치고…… 그렇게까지 말하는데도 손찌검은 안 했으니까, 객관적으로 보면 진짜 좋은 아빠겠죠. 알아요. 그런데 아는 거랑 마음이랑은 별개인 것 같아요. 차라리 대학이라도 먼 데 가서 기숙사 갔으면 좋았을 텐데, 운 좋게 인서울 붙어서 그러지도 못하게 됐어요. 학비 생각하면 자취는 생각하기 어려운 처지거든요.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직 채팅창은 얼어 있는 상태.

그러나 정지가 풀리고 나면, 분명 다시금 양쪽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것이다.

비슷한 부류의 고민 중 가장 긍정적인 사례임에도 그렇다.

정제되지 않은 내면의 응어리를 건드리는 까닭에.

그렇다면……

이때 내가 취해야 할 스탠스는 명확하다.

“블루벅님의 사연은…… 저로서는 흠칫하게 되는 이야기네요. 딸을 키우고 있는 아빠라서요. 그런 동시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아빠가 되기 전의 제가, 블루벅님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증오했던 까닭입니다. 다만 그 내막들을 말씀드리긴 힘들 것 같아요. 이미 고인이셔서요.”

고인의 생전 행적을 비난하는 것이 금기인 이유는, 이제 더는 상대방의 반론을 들을 수 없는 까닭.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다.

한쪽의 말만 듣고서는 세상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블루벅 내담자는 그 진리를 얼추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반적으로 자기변호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는 사연을 적으면서도, 부친이 비난받지 않도록 그를 변호했으니.

이토록 선량한 딸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그런 딸조차 부친을 증오하게 만든 가족역동이란, 대체 얼마나 무서운 기작인가.

“과거에…… 인터넷에 검색해본 적이 있습니다. ‘아빠 죽이고 싶다’라는 키워드를요. 정말 많은 검색결과가 나오더군요. 대부분은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를 가진 증오들이었어요. 블루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상습적인 폭력, 외도, 그런 케이스가 주로 눈에 띄었습니다. 그건 일견 명료한 인과관계처럼 보입니다. 블루벅님의 혼란도 그 지점에서 나왔을 겁니다. 나는 그들처럼 명확한 증오의 이유가 없는데, 왜 부친이 극도로 미운 걸까. 대체 어디서 생겨난 미움인 걸까.”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가.

NBSC의 힘으로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게 됐다고 해서, 정말 이토록 첨예한 가정사에 개입할 수 있을 것인가……

5초쯤 고민한 끝에 마음을 굳혔다.

할 수 있든 없든, 해내야지.

내 내담자의 걸음을 오아시스로 이끌기 위해서, 설령 가시밭길이라 해도 뚫고 나아갈 따름이다.

“단적으로 말해, 무의미한 고민입니다. 명료한 인과관계…… 방금 그렇게 말씀드렸지요. 하지만 그건 사실 아주 조금도 명료하지 않습니다. 한쪽의 시각에서 바라본 인간은 야수파의 그림처럼 왜곡되어 있게 마련입니다. 정작 미움받는 부친들의 반론을 읽어보면,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어떤 가정사도 일방적으로 완성되지 않는 까닭입니다. 예를 들면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부친을 죽이고 싶다는 글이 올라왔는데, 얼마 뒤에, 가만히 있는데 나가 죽으라는 식으로 욕하니 손이 올라간 거라고 반박한 사례가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가해자를 옹호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범죄자가 아닌데도 미움받는 아빠가 많은 현실을 직시하고 싶은 것입니다. 각자의 마음에 한번 물어봐주세요. 부친의 죄악이 과연 증오의 발단일까요? 어쩌면 이미 존재하던 증오를 합리화하도록 도와주는, 촉매일 뿐인 것은 아닐까요?”

선후관계란 것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하찮은 요소.

때로 인간은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근거를 만들어낸다.

그런 관점에서 프레임을 뒤집을 필요가 있었다.

잘못을 한 모든 부모가 아이들에게 미움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모는 폭력을 휘두르고서도 다시금 가족들에게 받아들여지며, 외도를 했는데도 동정을 받는 사례도 있다.

죄악과 증오를 필연적인 인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분노한 아이들의 마음을 평생 이해할 수 없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폭력을 휘두르거나 외도를 한 적이 없음에도, 가난하다고는 해도 나름대로 굶기지는 않고 키운 아버지셨음에도 불구하고, 증오했습니다. 그로부터 벗어나길 바랐고, 그를 압도하는 멋진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자는 이런 감정을 신화의 오이디푸스에 빗대더군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신분석학의 어떤 부분들은 옳겠지만, 오이디푸스는 없습니다. 현실이 있을 뿐입니다.”

“……땡.”

채팅창의 얼음이 녹고, 무수한 이야기가 올라온다.

다행히도 뚜렷한 싸움의 양상은 보이지 않았다.

물음표로 가득한 수많은 채팅들은, 그저 내 공격적인 직면으로 생겨난 혼돈이었다.

그 앞에서 다시금 다짐했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죄는 있을지언정, 증오받아 마땅한 이는 어디에도 없다.

야매 상담사는, 용서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건 상담이 아닙니다. 한때 아들이었고 또 아빠가 된 꼰대가, 모든 ‘보편적인’ 가정들을 문제시하려는 시도입니다.”

「케바케 : 성님 먼말씀 하시려는건지..」

「꼰마야놀자 : 아저씨 그냥 넘어가도 괜차나여ㅠㅠ」

“들어주세요. 친부혐오의 공통점은 이것입니다. 그들은 아빠를 가족의 일원이 아닌 침략자로 여깁니다. 나 자신, 또는 나와 모친이 만든 평화롭고 따뜻한 울타리를 부수고 외부의 세계관을 강요하는 악마라고 믿습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분명히 같은 편인데. 그 울타리를 부친도 함께 세우고 보수했을 텐데, 왜 그런 악마화가 발생하는 걸까요? 왜 야수파의 그림처럼 모든 것이 강렬하게만 느껴지는 걸까요?”

「흠.. 이런거 보통 엄마때문이던데..」

한 시청자가 보편적인 맹점을 짚었다.

단순하게 보면 부친과 아이 양자의 갈등.

그러나 그 양자 모두의 정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친은, 모든 갈등의 양상에서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그런 관점에서 아이와 아버지의 갈등이 모친의 잘못된 태도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역시 결국 그런 관점이리라.

아이가 주로 정서적 교류를 담당하는 모친에게 집착하고, 그렇지 못한 부친을 미워하게 된다는 메커니즘.

일견 일리가 있는 말이다.

세상의 무수한 엄마들이 아이 앞에서 스스럼없이 아빠 흉을 보곤 하니.

하지만 그 역시 내가 목표하는 결론은 아니다.

아버지를 용서하려면, 어머니 역시 용서해야 한다.

“그런 의견도 있을 수 있지요. 남성의 외벌이가 보편적 통념이던 여러 국가에서, 아빠들은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소통할 만한 기회가 적었습니다. 그에 비해 엄마들은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을 강요당했지요. 그 전근대적 구분법 역시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엄마만의 세계관에 세뇌되어 편견에 빠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많은 케이스에서 엄마들은 중립적이에요. 오히려 아빠를 미워하지 않는 엄마를 아이들이 답답하게 여기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게 과연 단순한 엄마에의 이입일까요?”

「블루벅 : 아 저희엄마도..」

「블루벅 : 싸울때마다 아빠편들고 그래요」

「블루벅 : 저보고 왜그러냐고 아빠도 가족아니냐고..」

「블루벅 : 저한테 아빠 욕할땐언제고ㅠㅠ」

「뭐야 그럼 누가잘못한거예요??」

그 시점에서, 마침내 [직면 선택지]가 작동했다.

[내담자 평가] 역시 반짝거리며 새 메시지를 알린다.

보편적인 이야기만으로도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

하지만 아직 시선을 돌릴 때는 아니지.

이미 그녀는 내 안에 담겨 있다.

내담자를 마주하기 위해, 눈을 떼지 않고 캠을 직시했다.

“블루벅님. 왜 그랬습니까? 왜 아빠한테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블루벅 : 네??」

「블루벅 : 아니 이런얘기 안들어주니까요..」

「블루벅 : 또 싸우게 될게 뻔하니까..」

“그 얘기가 아니에요. 미술이 꿈이 되었다는 얘기를, 왜 엄마에게만 했습니까? 미술학원에 가고 싶다는 말을, 예고에 진학해서 꿈을 실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왜 아빠와는 나누지 않았습니까? 엄마가 그걸 반드시 설득해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아닐걸요. 그런 경우라면 아빠가 아닌 엄마에게 서운해졌겠지요. 결국 블루벅님은, 부친에게 자기 꿈을 말하기 싫었을 뿐입니다. 이유가 뭐였건 그 자체가 죄예요. 부친 입장에서는 어땠겠어요? 학원비를 조달하고 예고 학비를 마련할 사람은 그 한 명인데, 그가 모르는 꿈과 그가 모르는 토의 과정을 통해서 모든 선택이 끝나버렸을 때. 그런 비정상적 가정에서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까?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맞지 아빠입장에선 황당하지 의논도안했으면」

「블루벅 : 아..」

「블루벅 : 왜그러세여 그땐 어렸자나여ㅠㅠ」

“도망치지 마세요. 중학생이면 알 거 다 아는 나이입니다. 마주하세요. 처음 부친을 소외시켰던 것이 누구인지, 그 진실에서 눈을 떼지 마세요. 거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블루벅 : ..제가잘못한거에여..?」

「응 니잘못 ㅋㅋㅋ」

「ㅋㅋㅋㅋ이제보니까 아빠가 세인트네」

물론, 그것도 정답은 아니다.

가족 사이의 감정은 행동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촉매일 뿐.

부모 죽이겠다며 칼 휘두르던 아이도 사랑받을 수 있고, 열과 성을 다해 가정을 지킨 부모가 미움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서로를 내 안에 담으려는 마음만 있다면, 가족은 분명 서로를 용서할 수 있다.

물론 모두가 가질 수 있는 마음은 아니지만……

이 선량한 딸에게는 기대를 걸어봐도 괜찮겠지.

「 내담자 명 : 블루벅

평가 결과 : 신중하고 사려 깊다. 양친에게 양가감정을 품고 있다. 이상적인 아버지상인 ‘꼰마님’에게 부친의 개념을 치환하고 있다. 」

방어기제 치환(displacement).

상실하거나 변질된 정서적 가치를 보다 적절해 보이는 대상으로 전이시키면, 정서적 만족감을 유지할 수 있다.

극복할 수 없는 단절의 상황보다는 거짓 위안이 나으니.

가깝게는 TOX의 주민성이 이용덕을 부친의 자리에 치환해 마음의 안정을 얻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블루벅의 입장은 그와 다르다.

정작 친부에게는 꺼내지도 못할 말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환상 속의 아빠에게 전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녀의 부친은 고인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녀 본인이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까.

“여기까지, 꼰대로서 한 이야기입니다. 아까 말했잖아요, 이건 상담이 아니라고.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실제로는 달라요. 아이가 겪는 모든 정서적 문제들은, 결국 부모로부터 비롯되는 겁니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 단언할 수 있어요. 블루벅님의 부친도 모친도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부친은 그 이전에 블루벅님이 소외감과 단절감을 느끼게끔 만드셨을 것이고, 모친은 블루벅님이 그 슬픈 정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셨을 테니까요. 그러니 잘못한 건 언제나 부모입니다. 따님께 미움받았다고 해서 슬퍼할 순 없겠지요. 다만…… 부탁드리고 싶었습니다. 블루벅님과 여기 계신 모든 시청자들께요. 왜 잘잘못을 따져요? 누가 잘했고 못했고가 중요한 일이 아니잖아요?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일이잖아요?”

「머.. 셋다잘못하긴 했네여 ㅋㅋㅋ」

「사실 대부분이 쌍방과실이져」

「블루벅 : 힝..ㅠㅠ」

「블루벅 : 행복해지는건 어떻게해야돼여ㅠㅠ??」

고금의 동서양을 통틀어 세상 가장 어려운 질문.

하지만, 그것이 무엇보다 쉬운 일이 될 때가 있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의 전제다.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고, 한쪽의 말만 듣고 사람을 판단하는 건 금기입니다. 입체파가 되어야지요. 피카소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시겠지요? 정면과 측면과 후면까지 그려야 진짜 그 사람이 보입니다. 그래서 단면으로 타인을 욕해선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블루벅님은, 부친의 단면만 봤어요. 그를 타인 취급한 거죠. 무시당하면 속상해질 꿈 이야기를, 그 꿈을 지원해줘야 할 부친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마음속에서는 이미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몰아냈던 거예요.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었지만. 그러니 살인충동이 들 법도 하지. 당연하잖아요? 가족도 아닌 사람이 집에 들어와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니, 좋아 보이겠습니까? 그런 침략자는 죽여 없애야지. 무의식이 살인충동을 강제해온 것도 당연해요.”

「블루벅 : 그래도 가족인데.. 제가.. 미친거에여?」

“전혀요. 미치지도 않았고, 이제부터는 잘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어요. 그냥 걸어가면 돼요. 키는 블루벅님에게 있어요. 마음속에 넘쳐나는 증오, 그런 건 그냥 놔두세요. 그 마음 그대로 아빠한테 다가가세요. 그리고 에둘러가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하세요. 아빠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다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도 싫다고. 그래서 달라지고 싶다고. 부탁이니까 달라질 수 있게 해달라고. 당신의 아이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제발 도와달라고…….”

「블루벅 : 아..」

“그렇게 얘기하세요. 그래도 돼요. 마구 기대고 칭얼거리세요. 피하지 말고, 밀어내지 말고, 한 울타리 안에서 마주보세요. 가족이라는 전제는 거기서 시작되는 겁니다.”

「블루벅 : 아 그랬는데 화내면어떡해요ㅠㅠㅠ」

할 마음이 있긴 한가보네.

웃음을 참으며 약속을 덧붙여줬다.

“그럴 리 없을 거라 믿지만, 정말 그러면 그때는 제가 직접 블루벅님의 집으로 출동할게요. 그러면 안심이 되시겠지요?”

「블루벅 : 힝..」

「블루벅 : 그냥 출동해주시면 안돼여??」

“안 되죠. 난 블루벅님의 가족이 아니잖아요. 그거야말로 침략이에요. 가짜 아빠한테 칭얼거리지 말고, 진짜 아빠한테 가요. 받아줄 사람이잖아요? 사실은 알고 있죠?”

「블루벅 : 힝..」

“스무 살이나 돼서 힝이 뭡니까? 어른이 돼야죠?”

「블루벅 : ㅠㅠㅠㅠㅠ 힝입니다!!!」

블루벅의 다음 채팅은, 한 시간쯤이 지난 뒤에 나왔다.

그녀 스스로의 타이핑은 아니었다.

「블루벅 : 감사합니다 선생님 딸아이랑 오랫동안 제대로된 대화도 못하고 있으면서 제가 멍청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선생님 말씀 듣고 제 방에 노크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왔다고 했습니다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못난 아빠고 딸이 잘못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칭얼거리라고 했더니, 사과를 해버린 건가.

그리고 그 아빠라는 사람은, 자기야 욕을 먹건 말건 딸이 채팅창에서 미움 샀을까봐 안달 내고 있고.

참 우습고…… 참 예쁜 집안이다.

방송을 마치며, 블루벅의 아빠와 박지수의 아빠를 생각했다.

4월까지의 행적으로 비교하면 나도 그 못잖았지.

미움받고 침략자 취급을 당한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블루벅이 날 이상적인 아버지상으로 바라본 것은, 사실상 제3자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딸은 아빠를 미워하지 않았다.

퉁명스러운 말투로나마, 내 안위를 염려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걸까.

그 아이라고 해서 성인군자는 아닐 텐데.

해답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집에서 나를 반겼다.

“여보! 유민지가, 걔야? 따돌림 당한다던?”

“어……? 어, 그렇지. 지수가 말 안 했어?”

“안 했어! 방금 통화하는 거 듣고 처음 알았잖아! 얘 박지수! 너 어떻게 그런 말을 엄마한테 안 할 수가 있어?”

“아 왜! 내가 왜 일일이 보고해야 되는데!”

“보고해야지! 이 바보야, 의논부터 하고 계획을 세웠어야지! 너가 혼자 실수해서 괜히 따돌림 당하거나…… 그랬어봐! 그랬으면 니 아빠가 속이 어땠겠니? 어? 자기 때문에 니가 울거나 다치면, 니 저 바보 같은 아빠가 어떻게 했겠냐고!”

“아니, 다 잘됐으니까 된 거거든? 그치 아빠?”

“되긴 뭐가 돼! 이 기집애 다리몽댕이를 그냥!”

“아빠! 아빠, 나 살려줘! 아빠아!”

……성인군자라고 표현하긴 좀 이상하긴 한데.

아내에게 고마워할 이유가 하나 더 는 것 같다.

감사와 사죄의 마음을 담아, 드잡이질을 하고 있는 내 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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