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00화 (100/200)

# 100

36장 - 신이 숨긴 상담사 (3)

대만과 한국의 시차는 한 시간.

한국 기준으로 일곱 시마다 시작되는 내 생방송은, 대만에서라면 여섯 시부터 방송에 임해야 한다.

그렇기에 여유롭게 저녁을 먹을 여유는 없었다.

다섯 시쯤에는 현장에서 떨어져 식당으로 향했다.

거기에도 촬영팀 몇 명이 동행했다.

내 야외방송에 김용식 역시 출연할 예정이고 하니, 어디까지 인서트 할지는 모르지만 식당 장면도 찍어두겠다는 것.

덕분에 손바울과는 따로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다.

그보다는 주로 조명기와 진행 멘트를 주고받았다.

“여긴 인테리어가 참 신기하네요. 동굴 컨셉인가?”

“컨셉으로 꾸몄다기보다, 실제로 동굴 안에 지은 것 같네요. 입구에서부터 침식구조가 연결되고 있습니다.”

“오, 그걸 보면 알아요? 역시 이과.”

“저희 때 수능은 문이과 구분이 없어서…… 선배님 때에는 어땠습니까?”

“우리? 과학은 택1이었죠. 이 교수님은 어땠어요?”

“나 때도 사회계열 택1이었던 것 같네요.”

“하하, 역시 동년배시네요. 한 선생님도 마찬가지시죠?”

“허, 우스운 소리. 나 때는 자네들 때와는 전혀 달랐어. 열다섯 과목인가, 그렇게나 많았지. 같은 세대로 치지 말게.”

“에이, 뭐 몇 년이나 차이 난다고. 아무튼 여기까지 라떼 토크였습니다. 제작진 양반, 이런 것도 방송될 수 있을까요?”

“어, 하하. 전 막내라 잘……. 근데 재밌긴 한데요? 옛날에 수능 두 번씩 보고 했었다는데, 그거 진짭니까?”

“아하! 그건 우리 후배님이 잘 아시겠지. 그렇죠?”

“……예. 제가 유일하게 여름에도 수능을 본 세대지요.”

“와아……!”

세대 공감 토크 끝에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다.

그 틈을 타서 뒤쪽 테이블에 시선을 줬다.

작가들은 저마다 핸드폰을 보며 연락을 주고받는 중.

그리고 대수는 카메라로 이것저것 촬영하며 편집자로서 영감을 받는 듯했다.

그리고 손바울은, 짐작했던 대로, 대수나 제작진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벽면만 쳐다보는 상태다.

동굴의 지질구조를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정신적 유희를 즐기는 모양.

그런 청년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들었다.

[직면 선택지]의 두 옵션은, 양극단의 직면을 보여준다.

가장 상냥한 방식과 가장 폭력적인 방식을.

거기서 내용만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후자 쪽이다.

내담자가 극복해야 할 왜곡된 인지의 대척점일 것이기에.

그런데 그 내용이 내 짐작과는 많이 달랐다.

‘넌 신이 되지 못할 거야’라니.

그건 마치, 손바울이 신을 꿈꾸고 있었다는 말 같지 않은가.

그 지점에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망상으로 대변되는 조현성 인격이라 해도, 스스로 신이 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비현실이다.

분명 문자열 이면의 의미가 있을 터였다.

손바울이 생각하는 신이란 무엇일까.

그걸 이해하지 않으면 대화는 평행선을 달릴 것이다.

아무리 ‘환기’를 발휘한들 본론에 접어들지 못하리라.

고민 속의 식사는 맛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저 꾸역꾸역 씹어 삼키고 자리를 정리하자, 곧바로 야외방송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진대수가 공유기와 촬영용 스마트폰의 충전을 확인한다.

그때쯤에 한효준이 내 옆에 다가섰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군. 왜 그러나?”

“아, 예. 저…… 교수님께선 신을 믿으십니까?”

“신? 허. 저 손바울 녀석 때문에 묻는 건가?”

“그런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합니다.”

“글쎄. 신이라. 본질적으로는 믿지 않아. 그런 존재가 실존한다면…… 세상이 이토록 비합리적이지는 않을 것 아닌가.”

한효준다운 이야기였다.

그는 터무니없이 위대한 이성의 수호자.

십여 년의 PTSD를 극복하고 인격자의 가면을 완성한 사람에게, 신이라는 단어는 허황된 울림일 터였다.

그러나 한효준의 말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까 싶기는 해.”

“예? 그건 어째서인지요?”

“자네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 이 악의의 세상에서 때때로 기이한 선인들이 등장하는 것은, 신의 배려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포기할 만한 종이 아닌가. 저 스스로는 극악한 욕구들에 사로잡혀 있는 주제에, 그러면서도 타인의 작은 잘못을 꼬투리 잡아 공격하는 일에 여념이 없지. 혹자는 신의 이름을 훔쳐서는 마음 약한 이들로부터 잇속을 챙기기도 해. 그런 종을 신이라고 해서 사랑할 수 있겠나? 그저 애증 속에서 아주 가끔 시선을 준다면 모를까. 마치…… 악성댓글 피해자가, 기분 나빠질 것을 알면서도 끝끝내 댓글창을 확인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 덕에 멸종은 면했나보지.”

신랄한 어조와, 가슴 아픈 비유.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종교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신에게 인간과 비슷한 품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분명 PTSD에 시달렸으리라.

인류의 역사 대부분을 몰이해의 동족상잔이 채웠으니.

대부분의 지역에서 포화가 멎은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총칼을 휘두르는 대신 키보드를 잡았을 뿐.

타인을 마구 악마화하고, 과거사를 왜곡하는 등, 집단을 이룬 인간은 이성적으로는 감히 하지 못할 악행을 일삼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밉기만 한 종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끝내 그 시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참 예쁘지 않습니까. 가장 견고한 조직 안에서도 내부고발자가 나옵니다. 군중심리에 휘둘리는 혐오의 파도 속에서도 누군가는 양심의 목소리를 냅니다. 아이들은 꿈을 꾸고, 어른들은 그들을 지킵니다. 노인들은, 후대를 위한 세상을 만들고자 코피를 쏟아가며 백 년의 계획을 세웁니다. 좋아질 겁니다. 늘 그랬듯이, 인간은 진보할 겁니다.”

“……자넨 참…… 흥.”

“말씀하시지요. 괜찮습니다.”

“됐어. 저기, 자네의 내담자가 오고 있잖나.”

김용식의 등장으로 대화가 끊겼다.

이제는 최초의 야방을 준비해야 할 때였다.

야외방송은 기본적으로 이동을 기반으로 한다.

자주 하기 힘든 이벤트기에, 평소와 달리 지나다니는 시민들과 인터뷰를 하거나 지역의 명소를 소개하곤 하는 것.

그래서 이래저래 논란을 만들기도 했다.

맛집에서 자영업자들에게 민폐를 끼친 사례가 넘쳐나고, 행인에게 비하발언을 해서 뭇매를 맞은 BJ도 있었다.

다만 내 경우엔 평소와 같은 상담 방송.

애초에 해외인지라 행인들과의 소통이 어렵다.

지우펀 명소 소개라면 관심 가지는 시청자들도 많겠지만, 최근 급증한 유입 시청자들의 고민 쪽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 계획을 들은 김용식이 키득거리며 웃더라.

“아 진짜…… 대만까지 오셔서도 평소처럼 하시는 거예요? 먹방 안 찍으시고요?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시지 않았어요?”

“우리야 일찌감치 나와서 풍족하게 먹었습니다. 용식 씨야말로 제대로 식사를 못 하셨을 텐데, 가면서 길거리 음식 드시는 정도로 양해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 저 원래 저녁에 잘 안 먹어요. 그리고 어차피 밤에 또 촬영하면서 야식 먹어야 되니까. 아무튼 상담 방송이라 이거죠? 거기서 저는 뭐 해요? 사연 읽어드리면 되나?”

“그래주시면 고맙지요. 어드바이스도 부탁드릴게요. 그 외엔 시청자 찰 때까지 썰 몇 개쯤 풀어주시면 될 듯합니다.”

“옙! 개인기는 뭐 준비할까요?”

“……그건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진짜요? 게스트 나가면 작가들은 못 써먹어서 안달인데?”

“우린 상담만 하면 됩니다.”

“오…… 난 돈만 받으면 돼, 이런 거예요? 하하하.”

<타짜>의 너구리 형사를 흉내 내는 개인기가 과연 일품.

분명 시청자들이 몹시 좋아하리라.

하지만 김용식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는 않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공황발작에 시달렸던 내담자니까.

그렇게 컨셉을 전달하고 나서, 인적이 좀 적은 언덕 위쪽으로 올라왔다.

아경으로 유명한 아메이차루(阿妹茶樓) 인근 골목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한 까닭.

꼭 김용식의 광장공포증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소음 때문에 도무지 생방송을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심지어 채팅에서도 곧바로 그 얘기가 나왔다.

[꼰마야놀자님 별사탕 100개. 아메이차주관 갔다왔어요? 가서 야경보여주세여 홍등골목 대존예에여 흐흐흐.]

“야놀자 후원자님,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아경보다는 사람을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특별게스트가 있거든요.”

「오잉 설마」

「찐하?」

「혹시 꼰마눌님??」

“다 아닙니다. 안전상의 문제로 미리 알려드리지 못했는데, 실은 제가 지금 대만에 온 게 예능 촬영 때문이거든요. 거기 출연하시는 개그맨 한 분을 게스트로 모셔보려 합니다.”

「오 연예인???」

「와우 아재요 예능 머찍습니까??」

“바로…… 트립크루! 환영해주세요. 김용식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식용 김 김용식입니다. 꼰빡이들 하이!”

「엌ㅋㅋㅋㅋㅋ 키묭식이닼ㅋㅋㅋㅋㅋ」

「용하!」

「와 와 꼬마부장님 트립크루도 찍으시네요!!!」

[마구니님 별사탕 100개. YS형 우린 꼰빡이라고 안함.」

“아, 여기는 꼰빡이라고 안 해요?”

“예. 제 방 시청자들은 후원자님들입니다.”

“후원자님들? 오. 그러면…… 후하!”

「용하!」

홍등은 흐릿하게만 보이는 야경이 배경이지만, 연예인들 중에서도 A급에 속하는 스타와 진행하는 첫 야외방송.

방제를 ‘트립크루 김용식 초대석’으로 변경하자 별처럼 많은 시청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김용식이 의욕적으로 주변 설명에 나섰다.

“제가 아까 트립크루 찍으면서 이것저것 들었는데요! 아까 얘기 나온 아메이차루 있죠? 거기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모티브라고 해서 유명해졌거든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여기 아니고 다른 데라고 했다는데, 분위기가 비슷해서 그래요. 근데 이게 또 썰이 재밌어요. 그 애니 제목이 행방불명이잖아요? 근데 이게 일본어로는 카미카쿠시라고 한대요. 뭔 뜻이냐면 신이 숨겼다는 거래요. 혹시 아셨어요?”

“예. 오다가다 들어본 것 같네요.”

“아, 역시. 똑똑하시네요. 저는 오늘 처음 들었는데, 얘기가 재밌더라고요. 뭐냐면 일본에서는 유쿠에후메? 이게 보통 행방불명이라는 의미고, 카미카쿠시도 행방불명이라는 뜻이긴 한데 좀 다르다는 거예요. 약간 미스터리하게 사라져서 납치인지 실종인지 알 수 없을 때 그렇게 말한대요.”

“불가해한 사건을 신의 소행으로 해석한 거군요.”

“그런 거겠죠? 일본이 약간 여기저기 사당도 많고 그렇잖아요? 그런 잡다한 신들 중에 애들이나 여자들 납치하는 신들도 있대요. 그래서 카미카쿠시라고 합니다.”

“아이나 여자를 납치한다면, 그게 신은 아니지 않을까요?”

“그렇죠? 모르겠어요. 문화의 차이인가?”

우리의 의문이 해소된 건, 여러 건의 고민상담 뒤 시청자가 4만 명을 돌파할 즈음이었다.

차례차례 등장한 세 교수들 중 박학다식한 이가 있었다.

이상심리학을 공부하며 특히 일본의 독특한 사회현상들을 공부했다는 조명기.

그가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어조로 부연설명에 나섰다.

“아까 카미카쿠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게 일본 토속신앙인 신토(神道)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카미는 선한 신만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에요. 예를 들면 호소가미라고 해서 천연두를 퍼뜨린다는 악신도 카미라고 불리죠. 신토에선 그게 당연해요. 애초에 신과 인간이 구분되지 않거든.”

“신과 인간이, 같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특별한 삶을 산 인간은 신이 된다고 믿는 신앙이라서요. 심지어 생신(生神)을 모시는 종교도 드물지 않고. 그러다보니 선신과 악신이 구분될 수 없는 거죠.”

“놀랍네요. 어떻게 그런 신을 모실 수 있는 걸까요?”

“떨어진 채 서로를 관찰하고 활용하는 관계인 겁니다. 그쪽의 신 개념은 힘이 센 인간과 별다를 게 없어요. 예의를 갖춰서 잘해주면 보상을 주고, 그러지 않으면 징벌하죠.”

힘센 인간 같은 신이라.

말하자면 무속신앙에서 말하는 귀신과 같은 것일까.

그들 역시 선악이 혼재한 존재로 묘사되며, 무당들이 실존인물의 영정을 모시고 굿을 벌이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의 무속신앙이 일본으로 건너가 주류로 자리잡았을 가능성 역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카미카쿠시도 그런 논리로 이어진 전승일 겁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자면 외부인이 아이나 여인들을 납치한 게 당연한 상황에서, 신의 비위를 거슬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잖아. 무리 지도자들 입장에서는 외부와의 무력충돌을 막을 수 있는 변명이 됐을 거예요.”

“그런 의미였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하핫. 앞으로도 많이 활용해줘요. 나 의외로 박식해. 아, 어렸을 때 귀신 본 썰도 좀 풀어볼까요?”

“나중에요. 일단 컨텐츠 진행하지요.”

“거 쪼잔하게 굴기는. 후배님, 너무해, 너무해.”

「이아저씨 발랄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

「꼰마님 선배면 꼰배님인가」

「ㅋㅋㅋㅋ꼰배님 재밌었음여」

그렇게 조명기는 ‘꼰배님’이 되고, 이용덕은 그 꼰배님이 장난삼아 입에 담은 ‘불독 교수님’ 때문에 ‘불교님’이 되고, 이미 네임드 후원자인 한효준은 여전히 효준좌라 불리는 와중.

2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시청자가 6만을 돌파했다.

인방에서 보기 힘든 A급 연예인의 홍보효과 덕분일 터였다.

그 앞에서, 마침내 김용식의 초대석 상담이 시작됐다.

상담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흐름이었지만.

“자 그러면…… 소개를 마쳤으니 이제 2부를 진행하죠. 용식 씨는 저희 방송이 처음이셔서 잘 모르실 텐데, 원래 수요일이 시청자 초대석입니다. 직접 사연을 듣고 조언이나 전문적인 치료를 진행하지요. 혹시 고민이 있으신지요?”

“저요? 없는데요? 고민을 싹 다~ 갈아엎어 주셨잖아요?”

“아, 그건-”

“시청자 여러분, 다음주 트립크루 꼭 보셔야 됩니다. 두 번 보셔야 돼요. 지금 말씀드리면 스포니까 뭐라고 말은 못 하겠는데…… 이분 진짜 대단한 분이시더라고요. 간단하게만 말씀드리면, 저 광장공포증 있다는 건 아시죠? 근데 그런 제가 방금 전까지 지우펀에서 촬영하고 왔잖어. 벌써 기대되죠? 꼰마님 출연하는 트립크루, 꼭 보셔야 되겠죠?”

「ㅋㅋㅋㅋㅋㅋㅋ아니 영업직이냐고요」

「보긴볼건데 근데 우린 그런거 익숙함」

「꼰마님이 좀 곤마꼰마하져 ㅋㅋㅋ」

「우울증도 한방 트라우마도 한방 ㄷㄷ」

“……어, 어라? 이 방에선 이게 당연한 일이에요? 진짜?”

「꼰마신교에 입교하신 걸 환영합니다 형제여」

꼰마신교라니, 드립이 좀 심하네.

초대석 직후에 신작을 준비하기 시작한 도세나나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다는 케바케 등의 사례가 만든 장난이다.

그래서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가 되지만……

영 민망해서, 뒤통수를 긁적여야 했다.

*

야방을 마친 뒤에도 김용식의 일정은 이어졌다.

수십 스탭의 경비 때문에라도 매번 최대한의 분량을 뽑아내야 하는 것이 여행예능이니까.

다만 케어팀의 임무는 여기까지였다.

인파 대부분이 숙소로 돌아간 10시의 지우펀이 몹시 한산해, 더는 김용식의 광장공포증을 염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손바울을 조용히 불러냈다.

목적지는 아메이차루.

마침내 내 추종자에게 직면을 시도하기 위함이었다.

홍등이 꺼진 거리는, 정말 귀신이 나타나 아이를 잡아가도 목격자 하나 없을 것처럼 인적이 드물었다.

그 골목에서 손바울에게 물었다.

“오늘 방송은 어땠어? 흥미로운 얘기가 있었어?”

“네. 카미카쿠시 얘기요.”

“그랬구나. 어떤 점에서?”

“그냥 흥미로워서요. 신이 인간을 잡아가서 어디에 쓸까 싶네요. 잡아먹나? 아니면 노리개?”

“……그래. 참 궁금한 일이지.”

신이라는 화제는 끊임없이 NBSC를 의구하게 만든다.

일본의 신토 때문에 더욱 그랬다.

지금까지는 당연히 선한 신의 권능이라고 믿어왔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 싶어서.

NBSC는 악마를 연상시키는 면모 역시 충분히 갖고 있었다.

말하자면, <파우스트> 속 메피스토펠레스.

그 존재는 학자 파우스트에게 흑마술의 지식을 전달한다.

순수한 파우스트에게 세속적인 쾌락을 안겨줘, 신에게 사랑받는 그의 영혼을 빼앗기 위해서.

사실은 NBSC 역시 그와 흡사했다.

제2의 루트를 숨긴 채 승리만을 종용하는 에픽퀘스트와, 오직 양극단만을 보여주는 기술…… 그런 것 이전의 문제다.

내가 이 시스템을 악용하고자 했다면 어땠을까.

독심술에 가까운 기술과 세뇌나 최면 수준으로 발전한 전달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다면, 정말 인세의 신과 같은 지위까지도 획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는……

악마에게 영혼을 카미카쿠시 당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선생님? 여기 가려던 거 아니었어요?”

번민에 잠긴 탓에 아메이차루를 지나칠 뻔했다.

혼자였다면 금세 길을 잃었으리라.

뒤에서 손을 내밀어 붙잡아준 손바울을 바라본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

그렇지만 그 내면에, 나라는 존재를 향한 존중과 신뢰가 엿보였다.

그는 분명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바울아. 솔직한 이야기를 하나 해도 될까?”

“계속 솔직하셨던 거 아니었어요?”

“하하. 딱 한 가지 숨긴 게 있어. 일단…… 들어가자.”

11시 마감이라는 설명을 듣고 차루의 창가에 앉았다.

멀리 창밖으로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 바다와 맞닿는다.

건물 안에서 보니 또 다른 세상이다.

밖을 지나는 관광객들은 유명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생각하며 이 건물만을 바라보겠지만, 안쪽의 종업원들에게는 저 푸른 바다야말로 그리운 공간일 터였다.

사람 사이 역시 그렇다.

밖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손바울의 마음을 내부에서 경험했음에도, NBSC의 서술 하나에 혼란을 겪었다.

그러니 인간이란 참 우스운 존재다.

나는, 그중에서도 무척이나 멍청한 호구.

거기까지 생각하고서야 호수의 파도가 멎었다.

“바울아. 너는, 신이 되고 싶은 거지?”

“……네? 흠.”

“솔직한 얘기를 하자고 했잖아. 너도 솔직하게 답해줄래?”

“그게…… 네. 인간은 한심하니까요. 물론 신이 되고 싶죠. 아직은 무리겠지만요. 그래서 선생님한테 배우려고요.”

“그래. 그리고 그 신이라는 단어는, 현대인들이 보편적으로 표현하는 신의 의미와는 조금 다를 거야. 너는 신당에서 유년기를 보낸 아이니까. 말하자면 신토의 신과 상통하지 않을까 싶어. 아까 나누던 대화, 기억하지?”

“……네. 그쪽이 더 맞는 것 같네요.”

“그래. 네가 말하는 신은 그런 존재야.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누는 선. 한심하고 하잘것없기에 고개 숙여 경배해야만 하는 인류와, 그들의 위에 서서 오연히 내려다보는 신.”

“흠. 그런 거 같네요.”

“그렇게 생각하니 좀 알 것 같더라. 바울이 너는…… 조금씩 자라나는 감정 속에서, 무의식 중에 스스로를 저주하게 됐을 거야. 죄악의 잉태. 양친을 살인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씨앗. 그리고 그 뒤로도 조모의 학대 속에서 신당의 한구석에 방치됐던 경험들이…… 네게 인간에 대한 경멸을 안겨줬을 거야.”

“흠.”

손바울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입을 닫았다.

시야 한구석에서는, [내담자 평가]가 반짝거리며 오류 없는 메시지의 추가를 알리고 있다.

그쪽으로는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나는 두 줄의 메시지에 가려진 청년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내가 그동안 널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네게 신이란…… 반드시 되어야만 하는 목표였어. 너를 살인자 눈깔이라고 매도한 조모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존재니까. 그렇기에 내게 집착했겠지. 네 눈에 보이는 인간들 중 유일하게 그 신에 가까워 보였을 테니. 그런 거지?”

“흠.”

여전히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특성을 활용하지 않은, 상담사 박대민의 화제이기에.

그렇지만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몽상가의 마음을 뒤흔들, 단 하나의 진실을.

“바울아. 나는 진짜 신을 만난 적이 있다.”

“네……?”

“그 존재는 우리들과는 전혀 달라. 모든 인간의 정신을 꿰뚫어보고, 미래를 예지하지. 심지어 한 인간을 신처럼 보이게끔 변화시킬 수도 있어. 그게…… 박대민을 변화시켰어.”

“무슨, 네? 그런, 건, 없잖아요!”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냐는 핀잔은 필요 없다.

신당 안쪽에서 무당의 허와 실을 속속들이 들여다봤을 손바울의 망상 속에, 진정한 신은 처음부터 없었을 테니.

버려진 아이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었다.

한효준보다도 더 격렬하게 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성장환경일진대, 대체 어떻게 선한 신을 경배할 수 있었겠는가.

일본의 신토 역시 그런 개념이었다.

학살 같은 내전 속에서 매일 칼끝에 몸을 실은 사무라이들에게는, 전사자의 영혼이 존중받는다는 확신이 필요했을 터.

그게 없다면 피폐한 정신이 무너져내리고 만다.

그렇기에 신과 인간의 경계가 지워지고,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이 트라우마의 치료제로 작용했으리라.

중세의 전사들에게나 필요했던 망상.

어리고 약한 손바울이, 그들만큼이나 아파했다는 얘기다.

그것이 내가 깨뜨려야 할 저 아이의 왜곡이었다.

“있어. 존재해. 증명할 수도 있다. 내가 널 끌어안았을 때 기억하지? 그때 넌 날아가는 날파리를 보고 있었어. 인간들은 우주가 시끄러우니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했었지. 이게 신의 힘이 아니면 뭐겠니. 나는 진짜 신을 알아. 네가 말하는 신은 신이 아냐. 우리는 신이 될 수 없어. 그저 인간일 뿐이야. 한심하고 미약하지만, 그래서 혼자서는 금세 길을 잃어버리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열심히 끌어안으며 살아가는 인간. 우리는 그런 존재란다.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바울아. 너는…… 인간인 나를 미워할 거니? 신이 아니니 내 곁에서 멀어질 거니? 신이 되지 못한다면, 다른 인간들과 동등한 존재임을 안다면, 너 스스로를 포기할 거니?”

손바울의 가면 같은 무표정이 깨지기 시작할 무렵.

세 번째 선택지가 나타났다.

「3. 우리는 신이 될 수 없어. (R+3 S+2 P+9)」

……이제 직면은 끝났다.

남은 것은 손바울의 대답뿐.

그 시점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읊조렸다.

신 같기도 하고 악마 같기도 한 NBSC야.

내 영혼을 원한다면, 가져가렴.

얼마든지 짓밟고 짓이기고 집어삼키렴, 시름없이.

그렇지만 그 전에 시간을 주렴.

손바울이 인간을 믿게 될 때까지, 내가 네 힘으로 이 세상을 바꾸기까지, 소설 속 메피스토펠레스만큼만 기다려주렴.

그렇게만 해준다면 아낌없이 주도록 하마.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온 프로메테우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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