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36장 - 신이 숨긴 상담사 (2)
신의 존재를 궁리했던 시절이 있다.
아마도 십대의 거의 모든 기간.
왜 우리 집은 이토록 가난한가, 그런 고민에서 시작됐었나.
서울대에 합격한 이후로는 나야말로 신에게 선택받은 인재라는 식으로 우쭐하게 됐던 것 같다.
그렇게 푸르던 마음은, 김 이병의 죽음 앞에서 원망이 됐다.
대체 신은 어디 있단 말인가.
연약한 어린양들이 죽어가는데도 무엇 하나 해주지 않는 신이, 정말 존재하긴 한단 말인가.
그 생각으로 모든 신비를 부정했다.
아마 세계를 알고리즘으로 코딩하는 컴공인으로서의 배움도 거기에 한몫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을 갈망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히어로무비를 시청하며 생각했다.
내게도 초능력이 있다면 좋겠다고.
혹시 신이 존재한다면, 위기에 빠진 주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을 내게 내려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지금 나는, 아마도, 신을 마주하고 있다.
스스로 신성을 언급한 NBSC의 퀘스트를 보며 그것을 확신하게 됐다.
애초에 신이 아니고서는 줄 수 없는 능력이긴 했지만……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신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무슨 목적으로 내게 상담의 길을 열어준 것일까.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NBSC는 내 마음속 질문에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저 일방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만 하달할 뿐.
그 메시지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려본다.
신비한 신의 시스템은, 내가 내 추종자에게 신이 아님을 단언한 행동으로부터 히든퀘스트의 달성을 선언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 퀘스트가 된 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
애초에 타인을 신으로 추종하는 것부터가 비현실이니.
물론 NBSC가 내려주는 힘은 신비막측하고, 상담사 아닌 직업이었다면 분명 세계를 놀라게 할 성과를 냈으리라.
그렇지만 손바울처럼 진심으로 인세의 신을 떠올리는 사람이 흔할 리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보통은 우쭐한 마음을 겸손으로 바꾸는 게 어려울 테니.
초능력을 얻은 사람이 특별한 존재가 된 것처럼 콧대를 세우고 다니는 모습은, 히어로무비의 클리셰 같은 것이었다.
내 경우에도 고민은 있었다.
손바울의 마음이 상처받을까 염려했기에.
그러나 끝내 그를 위해 직면을 시도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NBSC는 내게 새로운 보상을 내려주려 하고 있다.
아직 하나도 산 적 없는 특성을 향상시킴으로써.
신이 어쨌건, 우선은 이게 당면한 문제겠지.
앞으로 9분 30초 안에 마무리해야 할.
지난 4일의 방송으로 16까지 모은 exp를 활용해, 구입하자마자 100이 될 패러미터를 결정하는 일이다.
기존에 눈여겨봤던 몇 가지 특성이 먼저 떠올랐다.
「 특성 ‘평정’ (10exp)
감정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충동을 제어합니다. 100에 도달하면 불구대천의 원수마저 눈감아줄 수 있습니다. 」
「 특성 ‘해학’ (10exp)
웃음을 유발할 만한 표현방식을 도출합니다. 100에 도달하면 출산의 고통 속에서도 웃게 만들 수 있습니다. 」
‘평정’의 경우 기술 [완전한 공감]을 위해 고려했던 특성.
그걸 100으로 만든다면 안전하게 교감을 시도할 수 있다.
그에 비해 ‘해학’은 좀 더 실용적인 요소.
그게 100이 되면, 유머러스한 토크 전개를 통해서 방송가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구축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조금 아쉬운 느낌이다.
‘평정’은 마음을 굳게 먹으면 대체할 수 있다.
‘해학’ 쪽은, 정작 심각한 상황의 내담자들에겐 일시적인 효과밖에 안 될 것이라는 점이 걸린다.
당장 김용식에게 도움을 줄 만한 특성들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으로 고민을 거듭했던 탓이다.
내 시선은, 그간 관심 갖지 않았던 뒤쪽 키워드에 멎었다.
「 특성 ‘환기’ (10exp)
즉각적으로 주의집중의 방향을 돌립니다. 100에 도달하면 게임에 중독된 대상에게서도 관심을 살 수 있습니다. 」
게임이나 드라마 등 중독적인 취미생활에 대한 고민 상담이 드물었기에, 그런가보다 하면서 넘겼던 특성.
그렇지만 그것이 꼭 취미에만 국한될까.
이를테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의 관심을 끈다거나.
아니면, 공포에 집중한 내담자의 시선을 돌린다거나.
말하자면……
기술 [정문의 일침]을 범용화한 특성은 아닐까.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겪어온 NBSC의 서술은 늘 제한적이었다.
해설보다는 명칭 쪽이 좀 더 적확한 개념.
그렇다면, ‘환기’라는 이름을 믿어봐도 좋지 않을까.
공황발작의 가장 큰 난점은 환자가 몸의 변화에 지나치게 예민해진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집중력이 과도한 공포를 이끈다.
인지행동치료의 핵심 역시 그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방식.
전조 시점에서 주의를 환기시킬 수만 있다면, 내담자가 끔찍한 공포에 빠져드는 일을 막아줄 수 있다.
특정 증상에만 유효한 재능.
그러나 김용식 같은 케이스에는 최고의 조력일 터였다.
그런 생각으로 10의 exp를 투자했다.
「 성명 : 박대민 / 성별 : 남 / 연령 : 47
직업 : 상담사 Lv.12 (6/10)
관계 : 100 / 진단 : 100 / 화술 : 100 / 외모 : 80
환기 : 45
“비소유적 온정” (관계 +10)
“크리스마스 캐럴” (진단 +10)
“증거기반 개입” (외모 +10) 」
기존 수치는 평균치보다도 낮은 편.
‘화술’과 무관하게, 경청을 좋아하는 성격 탓이리라.
그런 내 성향이 김용식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다.
그 짐작이 맞기를 기원하며 히든퀘스트를 주시하자, 잠시 후에 ‘환기’의 수치가 100으로 향상됐다.
……뭐가 달라진 걸까?
‘외모’나 ‘진단’과 달리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없었다.
그렇기에 다시금 옆자리의 손바울을 바라봤다.
흠 소리만을 내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청년.
신성을 부정한 내 말에 여전히 불편해하고 있다.
대화를 이어가기보단 내면의 관조에 집중하려는 태도.
그런 손바울이 내게 집중하기를 바라는 의도를 가지자, 뜬금없는 대화의 소재가 머릿속을 채웠다.
“……바울아. 네 할머니는, 신내림을 받으신 거지?”
“흠. 네. 그렇죠. 신병을 앓으셨죠.”
“그 내용도 알고 있어? 선친의 일기에 적혀 있었다거나.”
“어, 맞아요. 아빠 나이 좀 차고 나서 신병이 생겼대요. 그게 전형적인 케이스였어요. 왜, DSM에서 말하는 신병이 그런 거잖아요? 고통의 원인을 초자연적인 존재에 투사한다는 그런 거. 전 얼굴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가 바람나서 딴집살림을 차리고, 그 와중에 아들딸 건사하려고 혼자서 아등바등하던 중이었대요. 그 스트레스가 빙의 같은 조현 증세를 촉발한 거죠. 그 길로 어린 자식들 버리고 신내림 받았다나.”
방금까지 콧소리만 내던 청년이 의욕적으로 대답에 나선다.
소재의 선정 덕분이었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조모에 대한 무의식적 불만과, 존경스러운 나로부터 심리학 지식을 인정받고 싶다는 추동.
그런 심리를 신병이라는 단어가 자극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평소의 나였다면 꺼내지 못했을 화제.
구태여 소재의 흥미도를 분석하지도 않았으리라.
손바울이 관조를 마치길 기다려줬겠지.
그게 내담자의 성찰을 장려해주는 좋은 상담사의 자세일 수도 있겠지만, 종종 단절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로 작용했을 법도 했다.
그러니 특성이라는 거겠지.
모든 상담사가 갖춰야 할 ‘능력’은 아니지만, 종종 써먹으면 유용한 ‘특성’이라는 해석.
특수한 케이스에서는 절대적일 수도 있는 힘이다.
아무래도 김용식을 위한 정답을 찾은 듯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짐을 내리던 대수에게도 다가가봤다.
좌석에 놓인 스마트폰의 화면이 켜진 상태.
거기에 송은진의 녹화방송이 재생되고 있었다.
“너, 은진이 방송 보고 있었구나?”
“엥? 어, 아, 이거 아님다. 그냥 잠깐 벤치마킹요.”
정말 벤치마킹이라면 유튜브 하이라이트를 봤겠지.
다른 얘기는 신이 나서 떠드는 주제에, 송은진이 화제에 오르면 이렇게 헐레벌떡 변명부터 하고 본다.
이런 대수에게도 새로운 특성이 적용될 수 있을까?
“대수야. 은진이가 결혼한다 그러면, 예식 보러 갈 거야?”
“그…… 어…… 당근 가야죠. 친구 아이겠슴까.”
“그러면 축의금은 얼마나 할 생각이야?”
“……헤헤. 뭐…… 많이 해야죠. 그냥 친구 사이지만, 그래도 걔 덕분에 우리 꼰마 형님 뵙게 된 거잖어요? 그렇게 이래저래 고마운 게 많긴 하니까요. 걔가 결혼을 하면…… 하하. 100은 해야죠. 짜식이 진짜 결혼상대 찾을 수 있을지나 모르겠지만요. 요즘 세상에 혼전순결이 될 말이냐고요. 그렇지 않아요? 쪼그만 게 고집은 쇠고집이고 말야. 사실은 그거뿐만이 아니란 말이죠. 방송 쪽에서도 빤히 보이는 쉬운 길을 안 가려고 했어요. 열혈 정모도 안 해, 댄스 리액션도 안 해, 우직하게 토크랑 엽캠만 밀어붙이는 게 참 예뻤…… 그러니까 말하자면 기특했었죠. 괜찮은 녀석이에요.”
여전히 진솔하지만은 않은 대답.
그렇지만 그 안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이미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기에.
결혼이라는 화제만으로 거기까지 진전된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씩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거라면, 김용식이 다시 공황발작의 전조증상을 보이더라도, 재빨리 주의를 ‘환기’시켜 외부로 시선을 끌면 그만이다.
그것만으로도 발작의 강도가 크게 약화될 터였다.
나는, 그 성실한 개그맨의 미래를 지켜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안도했지만……
새로운 특성을 활용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낮 내내 유쾌한 말재간으로 숨겨진 명소들을 소개한 김용식이, 번잡한 지우펀에 도착한 뒤로도 증세를 보이지 않았기에.
유종찬 PD 쪽에서 먼저 질문을 던질 정도였다.
“저기, 용식이 형? 괜찮아요? 불편하면 얘기하세요.”
“어? 아니, 괜찮은데? 일에 집중하니까 섹시하냐? 어라? 너 때문에 새치기 당했잖아? 저 찻집 머스트 플레이스라니깐!”
“그렇긴 한데……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당근이지. 이렇게 뒤에 우리 전문가 선생님들이 계신데, 내가 뭐가 무섭겠냐.”
카메라 건너의 대화가 잘 들려온다.
다만 우리는 후방에서 지방방송에 집중했다.
주로 조명기가 히죽거리면서 나름의 해석을 붙이는 식으로.
“흐흐. 이거 이거, 지지적 관계가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된 것 같은데요? 그야 그럴 만도 하지. 우리 후배님께서 공황장애를 말 한마디로 공황공항에 보내버렸으니까.”
“……그런 문제가 아닌 걸 아시잖습니까.”
“그런 문제일 수도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한순간의 그 몇 마디가 삶을 바꾸는 경험이 될 수도 있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급한 김에 아빠 연기를 했을 뿐인데요.”
“바로 그거지. 오면서 저 개그맨 친구들한테 정보를 좀 캐내봤어요. 부친 쪽으로 상당한 양가가 있었던 모양이야. 너무나 안타깝고 미안한 그런 마음의 한편으로, 다리가 불편하신 탓에 도움보다는 짐만 되는 그런 경험들이 감정으로 쌓인 듯했어요. 그런데 그게 갑자기 삐끗했단 말이지? 내면에 침잠해서 공포와 싸우느라 현실적인 지각이 약화된 순간에, 아빠 같은 목소리가 구원해줬단 거죠. 과거의 기억과 현실의 경험이 맞닿은 기묘한 경험. 그게 마음의 응어리를 폭격했다…… 이렇게 추론하는 것도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닐 거예요.”
그야 가족 간의 양가감정은 흔한 사례다.
미아가 된 자신으로 인해 다리를 못 쓰게 된 부친에 대한 김용식의 마음 역시, 당연히 헤아릴 수 없이 복잡했으리라.
그렇지만 그 진단의 결론이 당혹스러웠다.
내 한마디가, 표층을 넘어 내면까지 닿았다는 얘기였기에.
만약 조명기의 해석이 옳다면……
그 역시 NBSC의 힘인 걸까.
「 기술 [정문의 일침] (5exp)
내담자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를 제시해줍니다. 한 명의 내담자에 단 한 번씩 사용할 수 있습니다. 」
그저 대화를 이어나갈 키워드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쪽에 방점을 두고 본다면, 그 대화의 목적지가 짐작될 법도 했다.
아마도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의 응어리.
일상적인 소재에서 출발해도 심해저까지 파고드는 침투야말로, [정문의 일침]이 가진 진짜 가치가 아닐까.
처음 기술을 사용했던 진대수도 마찬가지였다.
‘혼전순결’이라는 키워드는, 사실 선의의 거짓말.
그런 변명으로라도 그녀에 대한 애정을 지워야 했던 죄책감이야말로, 대수의 마음을 짓누르는 괴로움일 터였다.
짧은 비행 동안에도 그리워서 방송을 켜보는 순정이니.
고작 5exp로 구입했기에 때로 경시했던 기술.
그렇지만 그 역시 신의 권능이었다.
김용식은, 더는 상담을 필요로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는 거군요.”
“응? 바로 납득한 거예요? 그러면 안 되는데. 우리 분량 날아간다니까? 자, 한 선생님께서 추가설명 좀 해주세요.”
“거참……. 그래. 얽히고설킨 감정들은 때때로 자연스런 치유의 억제제로 작용하기도 하네. 그런 경우에는 아주 작은 감각만으로도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 이 케이스는…… 김용식이라는 사람의 무의식을 짓누르고 있던 상실의 두려움과 방치의 경험이 일거에 뒤집힌 셈일까. 양가감정의 한 축이 무너진 덕분에, 빠르게 자가치유가 일어난 거겠지.”
“아, 좋습니다. 이상심리학 방면에서는 이런 추론이 가능한 상황인데, 우리 전문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뭐, 나도 동의해요. 흔히 보기 힘든 케이스지만, 종종 있으니. 사실 의사는 제1치료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모든 개인이 그 스스로의 주치의죠. 복잡하게 가라앉은 앙금이 그것을 저해하기에 가끔 정신과 전문의가 필요할 뿐. 그게 없어지면 대부분의 문제를 스스로 해소할 수 있어요.”
새로운 관점의 정보에, 곧 [내담자 평가]가 반응했다.
세 석학이 동의한 추론은 오류 없는 진실이었다.
「 내담자 명 : 김용식
평가 결과 : 소심하고 예민하다. ‘꼰마 선생님’의 존재감에 안정감과 호기심을 함께 느끼고 있다. / 신비로운 경험으로부터 해리됐던 기억이 되살아나 내면의 중압감이 경감됐다. 」
……결과적으로 ‘환기’는 괜히 구입한 셈인가.
그렇지만, 광대를 내리누를 수 없는 변화였다.
스스로를 치유한 경험은 가장 포근한 안식처가 돼줄 테니.
그것이야말로, 우리와 헤어진 뒤에도 김용식의 미래를 밝게 비춰줄 등불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즐거운 요소가 하나 있었다.
처음으로 합을 맞춘 세 교수 사이의 케미가 그것.
“그렇다는 겁니다. 자, 이거 잘 찍혔어요? 어이고. 거 사람들이 너무 미네. 제작진 양반, 우리 이렇게 고생하는 거 잘 찍어줘요. 나이 먹고 이게 무슨 꼴이냐구. 아, 삭신이야.”
“허. 새파랗게 젊은 친구가 어디서 나이로 유세야?”
“으응? 아이고, 같은 50대끼리 왜 이래요? 한 형!”
“뭐, 뭐야? 이 자가 노망이 들었나.”
“젊은 친구라더니, 왜 또 노망이래? 이 교수님, 제가 알츠하이머 같습니까? 솔직히 우리 나이면 다 동년배잖아요?”
“왜 이래요? 난 조 교수한테 형 소리 듣기 싫어요.”
“한 선생님한테 한 형 하시는 건 좋지 않으세요?”
“……흐음. 좀 끌리긴 하는데.”
“어험…… 둘 다 시끄러워! 줄이나 똑바로 서.”
늘 하는 생각이지만, 조명기는 방송에 최적화된 인물이다.
일곱 살 연상의 한효준까지 놀려대는 장난꾸러기.
그러면서도 주변의 흐름을 읽고 대화를 이끄는 데 능했다.
강경한 캐릭터인 한효준과 이용덕 사이에서 티키타카를 끌어내는 데에, 그만큼 적절한 인선은 또 없을 터였다.
거기에 한효준과 이용덕 사이도 꽤 유쾌했다.
한때 서로에게 불만을 품은 앙숙이었기에 지금도 직접적인 대화는 나누지 않지만, 중간의 나로 인해 가까워지고 있다.
라이벌이었던 50대 교수들의 어색한 친목.
제3자 입장에서 보기에 재미요소가 넘칠 관계였다.
거기에 나는……
세 교수의 인정으로 인해, 김용식의 구원자로 공인됐다.
10대의 우상인 TOX의 주민성에 이어 20대의 슈퍼스타인 김용식까지, 내 적극적 개입으로 공황에서 벗어나게 된 것.
그보다 더 충격적인 캐릭터는 흔치 않으리라.
그러니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 촬영분이 방송되고 나면, 어떻게 될까.
편집 나름이겠지만, 향후에 나와 세 교수를 메인으로 두고 신작을 연출할 유종찬 PD가 분량을 짜게 주지는 않을 터.
아마도 인지도가 끝을 모르고 치솟게 될 듯했다.
부담스러운 미래.
그렇지만 내가 다가가야만 할 목적지다.
압도적인 명성만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허무맹랑한 목표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테니.
그리고 그 전에……
이제는 손바울을 마주봐야 할 때가 된 듯했다.
인파 속에서도 무심하게 코웃음을 치고 있는 나의 추종자.
그 얼굴 위로 두 줄의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1. 신이 정말 존재한다고 믿니? (R= S+2 P+9)」
「2. 넌 신이 되지 못할 거야. (R= S+9 P-5)」
신이라는 키워드는 짐작했던 대로.
그렇지만 그 내용이, 또다시 당혹감을 불러일으켰다.
신이 되지 못할 거라는 직면은 무슨 의미일까.
손바울은, 그 자신이 신이 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오랫동안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100까지 오른 ‘화술’과 ‘환기’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