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98화 (98/200)

# 98

36장 - 신이 숨긴 상담사 (1)

“혹시…… 용식이 형이랑 미리 맞추신 건, 아니죠?”

유종찬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저어 보였다.

“오해하신 것도 당연하지만, 아닙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 스스로가 정신병리에 조예가 깊어서 묻는 말은 아니다.

방금 전의 대화들 때문이었다.

갑자기 발작이 잦아든 김용식을 앞에 두고, 학계의 거인인 세 교수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며 나를 추궁했다.

그걸 본 PD가 이상을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아까도 했던 말이지만…… 아무래도 광장공포증이라는 것이 과거의 부정적 경험과 결부되는 측면이 큽니다. 그중에서도 독립적 광장공포는 어린 시절의 분리불안과 강하게 연결되지요. 그 점에 착안해서 섣부른 추측을 해봤습니다. 어쩌면 부모님과의 나들이 도중에 미아가 됐던 기억이, 분리불안에 이어 광장공포까지 이어진 것은 아닐까 하고요.”

“……그럴 수가 있는 겁니까?”

“몇 가지 사례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이번 출연에 대비해서 미리 공부해뒀던 케이스들이지요. 그게 운 좋게도 김용식 씨의 현실과 맞아떨어진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거기까지 듣고서는 유종찬도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사실은 대부분이 거짓말인데.

진실은, NBSC의 기술이 가진 힘이었다.

「 [정문의 일침]을 사용합니다 > 김용식

주제 ‘분리불안’에 대응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아빠’ 」

기술의 설명에 따르면, 여기서 도출된 키워드는 필연코 내담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상담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심지어 공황발작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수한 가능성 중 NBSC가 짚은 단 하나의 정곡.

그 한마디가, 약이 아니고선 멈출 수 없을 것 같던 공포까지 몰아내고 김용식의 헛웃음을 유발했다.

“그럼…… 공황이 치료됐으니까, 이제 문제가 없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됐을 뿐, 실질적으로 해결된 건 없습니다. 애초에 공황 없이도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여행 중에 다시 공황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때에 대비하셔야 합니다.”

“음, 그렇군요. 그래도 선생님이 계시니까 괜찮겠지요?”

유종찬은 나를 완전히 공황의 스페셜리스트라고 믿게 된 듯했다.

사실 함부로 쓸 수 있는 방법이 못 되는데.

한 사람에게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다.

만약 김용식이 또다시 발작 상황에 처한다면, 그때는 똑같은 전개를 이끌어내지 못할 터였다.

“일단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래도 지나치게 사람이 밀집된 장소는 피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게…… 안 되는데. 대만도 워낙 유명한 관광지가 돼놔서 그게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일본 관광객들이 넘쳐나서요.”

“잘 알려지지 않은 곳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장소들을 소개해주는 것 역시 여행예능의 재미 아닐까요?”

“그야, 최대한 그런 쪽으로 뽑아보긴 했는데…… 한 군데만큼은 어쩔 수가 없어요. 지우펀. 거긴 꼭 가야 됩니다.”

지우펀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흡사한 경관 등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 양국에 대단히 잘 알려진 명소.

대만 북부를 맡은 김용식 팀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아마도 골목골목이 관광객으로 가득할 텐데.

그런 곳에 광장공포증 환자를 데려간다는 것은, 말하자면 가장 적극적인 홍수법(flooding)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선형(linear)의 호전을 장담할 수 없는 치료법.

그 안에서 김용식의 증상이 완화되도록 돕는 것이 우리 케어팀의 임무다.

잘 보살핀다면 예후에 큰 도움이 되리라.

그러지 못한다면, 물론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적어도 방송 분량은 포기해야 될 터였다.

다행이라면 그 김용식의 상태가 무척 좋다는 점.

내 개입에 한바탕 웃은 뒤로 홀가분한 표정이 됐다.

지금은 구석의 벤치에서 교수들의 보살핌을 받는 중이고.

그런 김용식에게, 유종찬이 날 이끌고 다가갔다.

“아…… 선생님!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죠?”

“그럴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하하. 와…… 진짜 신기하네요. 저, 진짜 뭐지? 갑자기 숨도 턱 막히고 아무것도 안 보이고 죽을 거 같았는데, 선생님이 한마디 하신 게 갑자기 귀에 꽂히더라고요. 완전 신기하게 바로 숨이 뚫리는데…… 상담사님, 진짜 쩌시네요!”

“그런 게 아닙니다. 김용식 씨 스스로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우연히 내 말이 계기가 된 거겠지요.”

“예? 그런 거예요?”

“모를 일이긴 하지만요. 어쨌든 앞으로는 그럴 겁니다. 한번 극복해본 일이니, 이제부터는 스스로 대처할 수 있겠지요.”

“하핫. 아…… 저 뭐지? 순간적으로 떠오른 게 있는데요.”

묻지도 않은 설명을 하는 이유가 짐작된다.

유종찬 PD의 지휘 속에 카메라 두 대가 따라온 상황이라, 아마도 지금 나누는 대화가 전부 방송에 삽입될 터.

그리고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엔 민망하지만,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응급상황을 해소해준 상담사다.

김용식은 거기서 드라마틱한 결말을 연출하려 하고 있었다.

참 성실한 방송인이다.

바로 1분 전에 죽을 것만 같은 공포를 겪었는데, 그 위기마저도 방송의 분량으로 활용하고자 애쓰고 있으니.

“제가…… 어렸을 때 터미널에서 미아가 된 적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근데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안 났는데, 방금 전에 선생님 목소리 듣는데, 그때가 팍 떠올랐어요.”

“그랬군요.”

“사람들이 막 이렇게, 몸 치고 지나갔어요. 명절이라서 엄청 붐볐는데, 다 바쁜지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울면서 엄마아빠 부르려고 했는데, 어딜 부딪쳤는지 목소리도 안 나오고, 숨도 쉬기 힘들고…… 그랬던 거 같아요.”

“무척 무서웠겠군요. 지금은 그럴 일이 없겠지만요.”

“하하. 이제는 뭐 어른이니까요. 근데 그때는, 어떻게 좋은 분이 경찰서 데려다주셨댔는데, 엄마아빠가 밤 되도록 못 왔거든요. 그때 아빠가 저 찾는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후진하는 버스에 다리가 깔려서…… 밤에나 엄마가 찾으러 와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대요. 수술받고 나온 아빠 보고 제가 엄청 울었다나. 아무튼 그런 적이 있었대요. 그게 혹시 트라우마였을까요? 그래서 공포증 생기고 그랬던 걸까요?”

“물론 트라우마가 됐겠지요. 제가 멋대로 외친 말에 반응하셨던 걸 보면, 무의식 어딘가에서 광장공포증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을 수 있고요. 그걸 알았으니 점차 나아질 겁니다.”

방송을 생각하면, 그쯤에서 끊는 게 좋았을 터였다.

의미심장하게 씩 웃고 돌아섰다면 그림이 멋졌으리라.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내게는 한 번의 방송이지만, 김용식에게는 인생이기에.

“용식 씨. 인간은 어떤 끔찍한 사건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거기엔 시간이 걸립니다. 이번 대만 여행은 정말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방금 느끼셨던 그 공황발작이 다시 나타나면, 상황에 따라 저희 도움 없이 홀로 맞서 싸워야 할 수도 있어요.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없으시다면 지금 말씀하세요. 닥터스톱을 부르겠습니다.”

유종찬이 당황해서 커트 신호를 보낸다.

그 입장에서는, 프로그램 인기의 견인차인 김용식 분량을 줄인다는 선택을 할 수 없겠지.

하지만 내게는 무관한 일이었다.

나는 상담사니까.

PD가 어떤 야망과 현시욕으로 일을 하는지와 무관하게, 나만큼은 오직 내담자만을 생각해야 마땅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유종찬이 실망하는 일은 없었다.

우울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김용식이, 씩 웃었기에.

“그래도, 죽을 것 같긴 해도 죽지는 않는 거죠?”

“……예. 공부를 좀 하셨군요?”

“제 몸 걸린 일이니까요. 그리고 제가 그렇게…… 만약에 지우펀 같은 사람 많은 곳에서 치이면서도 문제없이 방송 해내면, 그때부터는 다시 이런 걸로 걱정할 필요 없는 거죠?”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홍수법이라고 해요. 극에 달한 자극 속에서도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면, 그 사실만으로도 공황발작의 강력한 예방책이 됩니다. 광장공포증 역시 상당히 완화되어 일상생활이 편해지실 수 있지요.”

“그럼…… 도전해보겠습니다. 저도 계속 이렇게 살기는 싫거든요. 막상 무섭고 불안하고 그럴 때는 도망치고 싶긴 한데, 그래도 지금은 한번 가보고 싶네요. 이렇게 전문가 선생님들이랑 같이 여행할 수 있는 상황이 흔치는 않을 거잖아요?”

“그렇기는 합니다. 저 세 분 교수님을 한꺼번에 모시고 노출치료를 받으려면…… 적어도 수백만 원은 깨지시겠지요.”

“하핫! 이거 완전 남는 장산데요? 그런 치료를 돈 받아가면서 하는 거 아냐? 그럼 도전해야죠. 고고!”

의욕이 넘치는 건 참 고마운 일인데……

110의 ‘진단’으로 살펴본 바에 따르면, 남는 장사라서 도전하겠다는 건 거짓말인 듯했다.

그저 방송을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

김용식은 직업의 사명감으로 공포에 맞서고 있다.

한심하고 안쓰러운 마음.

그렇기에, 못내 사랑스러웠다.

이런 내담자라면 응원해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해 지원할 테니, 힘내봅시다.”

“하하. 감사합니다. 고고 고고!”

대만으로 이동하는 동안, 비즈니스석에 붙어 앉은 한효준과 이용덕과 조명기는 열성적으로 노트북을 바라봤다.

공항까지 오는 동안 촬영된 김용식의 분량이다.

최신 데이터 속에서 하나라도 더 정보를 뽑아내기 위한 준비작업이었다.

내 경우엔, 그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할 생각이었다.

NBSC의 기술을 활용해서.

[내담자 평가]에 따르면 김용식의 라포는 이미 확정적이다.

그렇다면, [완전한 공감]을 사용할 수 있다.

영상을 수백 번 보는 것보다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렇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내 옆좌석의 스탭과 자리를 바꾼 손바울이, 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바울아.”

“네, 선생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역시는 역시라는 생각이죠. 신은 신이라는.”

“……네가 말하는 신은, 어떤 존재지?”

“어떤 존재긴요. 신이죠. 불완전한 인간들과는 다른 존재요. 완전무결해서 모든 걸 알고 있는 그런 게 신이죠.”

복합적인 함의가 느껴졌다.

아마 그 스스로도 명확하게 규정짓지는 못할.

이름 속에 담긴 신약성서의 가장 유명한 사도에도 불구하고, 손바울은 아마 교회나 성당에 나가본 적이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소속감을 원치 않는 성격이니.

거기에 양친이 작고한 원인을 알게 된 이후로는 감정적인 적개심 역시 형성됐을 법했다.

그런 와중에, 어린 시절부터 세뇌되듯 들어왔던 무속신앙의 개념들이 섞여들었을 법도 했다.

나로서는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관념이다.

성경 속의 신도 무속신앙의 신도 익숙하지 않으니.

내게는 평생 단 하나의 신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NBSC라는 이름의 신이.

처음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그 시스템의 요소 하나하나를 분석하는 일만으로도 벅차, 그것이 어떤 존재인지까지는 고민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절감하게 됐다.

NBSC를 내게 준 주체는, 신 외에 있을 수 없으리란 것을.

나 개인을 변화시키는 것뿐이라면 외계문명 정도의 SF적 상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늘어가는 기술들은 조금 달랐다.

기술들 안에는, 무수한 인간들의 내면을 파악하는 전지(全知)와, 미래예지의 권능이 담겨 있었다.

그런 것은 과학으로는 이룰 수 없다.

오직 신만이 알 수 있는 세계였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분명 신과 가까운 존재다.

말하자면 NBSC가 선택한 사도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보면 무속신앙의 신통력 정도는 가지고 있는 셈.

어쩌면 망상 속의 손바울이야말로 나를 가장 명확하게 본 인물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조금은 다르다.

나는 신이 아니다.

신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바울아. 미안하지만, 나는 신이 아니야.”

“네. 그런 걸로 하죠.”

“입을 막으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바울아, 신은 심판하는 존재잖니. 나는 그렇지 않아. 그저 공감하고 개입하는 사람에 불과해. 그런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지는 않는 거야.”

“……심판하지 않는다고요?”

“그래. 늘 말했잖아. 상담사는 심판하지 않아.”

“그런가?”

연신 손가락을 두드리던 손바울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심판하고 계신데요.”

“뭐……?”

“개입과 심판의 차이를 잘 모르겠는데요. 선생님은, 제가 남은 한 명의 가해자를 죽이지 못하게 만들려고 제 정신에 개입하셨어요. 그렇게 한 명의 손바울이 죽었죠. 살인자 손바울은 박대민의 손에 살해당했습니다. 미처 태어나기도 전에요. 지금도 제가 혹시 엇나갈까봐 옆에 두고 계신 거잖아요. 그것도 예방적인 심판 아닙니까? 딱 신인데.”

“그건 궤변이잖아. 나는 손바울을 죽인 적이 없어.”

“그럼 걔는 어떻게 된 거죠? 태어나지 못했는데?”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거야. 바울이 너는 누군가를 죽이려고 들 만한 사람이 아냐. 나는 알아. 네 마음의 빛깔을 알고 있어. 그렇기에 곁에 두는 거야. 널 믿으니까.”

손바울은 무표정하게 내 눈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과는 결코 마주치지 않고 표정이나 행동만을 관찰하던 시선을, 그는 오직 내게만 마주 부딪쳐온다.

그 안에서 여러 감정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저 가면 같은 딱딱한 얼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게는 그 호수 위의 파원이 보였다.

“제가…… 누군가를 죽이지 못할 거라고요?”

“그래. 분명한 사실이야.”

“재밌네요. 할머니는 맨날 살인자 눈깔이라고 그랬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착각이다.”

“흠. 아무튼, 못 죽이나? 별로 의욕 없긴 한데, 이유가 생기면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짜증나게 구는 놈들이면요.”

“그렇지 않아. 누구와도 정서적으로 교류해본 적이 없으니 타인을 무생물처럼 느끼는 것뿐이야. 그렇지만 바울이 너는 사이코패스처럼 선천적으로 뇌기능이 제약된 케이스가 아니야. 한 번의 긍정적인 교류만으로도 사회에서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어. 그 처음이, 내가 되고 싶다.”

“……지금도 잘 교류하고 있잖아요?”

“그게 아니잖아. 날 다른 모든 사람들과 구분해서 바라보고 있잖아. 그래선 안 돼. 바울아, 난 사람이다. 신이 아니야.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 그래야…… 네 눈앞에서 쓰러진 사람한테 따뜻한 시선을 보내줄 수 있게 될 거야.”

아직도 [직면 선택지]는 나오지 않은 상황.

그럼에도 섣부르게 다가서야만 했다.

공포에 짓눌린 김용식을 바라보던 손바울의 시선이, 그 마음속에 들어가봤던 내가 느끼기에도 무감정했기에.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고,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세계에 유리되어 있었다.

그 벽을 깨고 싶었다.

첫걸음은, 물론 나를 통해서.

나는 손바울을 이해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런 존재를 신이라는 추상적 개념 속에 가둬둔 채로는, 언제까지고 인간을 밀어내며 살아갈 뿐일 터였다.

“바울아. 엄마와 아빠처럼 서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잖아? 그래서 나한테 끊임없이 질문했던 거잖아?”

“……아닌데요. 그냥 불경하게 테스트해본 건데요.”

“불경하지 않아. 신이 아니니까. 인간들끼리는, 그렇게 질문을 통해서 서로 알아가는 거야. 그래서 아름다운 세상이야.”

“아름답나. 인간들 다 찌질해요. 유산 빨리 받으려고 지 부모한테 저주 걸어달라는 인간, 액운 막으려면 도굴 해야 된다는데 알겠다고 위치 알려달라고 하는 인간, 남편한테 안 들키고 바람피우려고 부적 사는 인간. 그게 인간이잖아요. 그런 것들이랑 비슷해져서 뭐가 좋아요.”

신당 생활이 남긴 것들이 드러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려왔을, 그림자 같은 상담들.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신내림을 받은 조모와의 유년기 속에서, 손바울은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것을 넘어 인간 전체를 혐오하게 된 듯했다.

그 감정이 목소리를 높인 탓에 시선이 모였다.

한효준의 시선이 특히 염려로 가득했다.

혹시라도 내가 흔들릴까 걱정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내 호수는 잔잔할 따름이다.

“그래. 그게 인간이지. 네 말대로야.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그렇게 저열한 욕망들이 가득해. 가끔 보면 구제불능 같지.”

“그렇죠? 그렇잖아요. 근데 선생님한테는 그게 없으니까.”

“없기는. 그렇지 않아, 바울아. 내게도 잔뜩 있어.”

“거짓말.”

“정말이야. 그리고 난 그래서 사람들이 참 좋단다. 대단하잖아. 그토록 더러운 욕망의 추동에 흔들리면서도, 끝끝내 참아내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게, 참 아름답고 존경스럽잖아. 솔직히 말하면 나는 신보다도 사람이 좋다. 그게 내가 인간이라는 가장 큰 증거 아닐까? 어떻게 생각하니, 바울아.”

손바울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입버릇처럼 흠 소리만을 반복하고 있을 따름.

그렇지만 내면의 온도가 조금쯤 달라졌음이 느껴졌다.

다른 이들의 말이었다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신처럼 보였던 호구가 하는 말이니 어느 정도 울림이 있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낮은 효과음이 들려와, 혹시 [직면 선택지]인가 생각했다.

그렇지만 눈앞에 뜬 메시지는 그와 달랐다.

「 < No Back Silver Challenge >

히든퀘스트 “명백하게 깃든 신성을 거부해봐요” 완료!

보유하신 가장 낮은 특성을 100까지 올려드릴게요.

준비되셨나요? (9:59 후 자동으로 수행됩니다)

* 보상 수령을 위해 신규 특성을 구입해주세요! 」

갑작스런 히든퀘스트 달성과, 충격적인 보상.

그런 것들에는 관심도 가지 않았다.

오직 ‘명백하게 깃든 신성’이라는 메시지만이 시야를 채웠다.

NBSC는, 정말로 신이었나…….

어느 정도 짐작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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