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97화 (97/200)

# 97

35장 - 고민하는 상담사 (3)

[아, 지금 공항이세요? 오늘 출발이었구나. 바로 수속 밟으시는 거예요?]

주민성이 들뜬 어조로 묻는다.

눈앞에는, 서로를 마뜩찮게 바라보는 진대수와 손바울.

그들 사이의 시선 교환에 유의하며 대답했다.

“여유가 있어요. 제작진은 30분 뒤에 도착한대요.”

[하하. 집 앞에서부터 촬영하는 프로니까, 이것저것 찍다가 엉켰나보네요. 용식이 형네 팀이랑 가시는 거죠?]

“그래요. 김용식 씨하고는 잘 아는 사이입니까?”

[잘 아는 것까진 아닌데, 예능에서 몇 번 만났거든요. 그 형이 되게 유쾌해 보이는데 카메라 꺼졌을 때는 다르더라고요. 그게 좀 인상 깊었어요. 속으로는 곪아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무심코 생각했죠. 나중에 광장공포증이라고 들으니까 확 이해가 되더라고요. 공황하고 비슷한 거잖아요?]

일반적으로 광장공포증은 공황장애와 깊은 연관을 갖는다.

보통은 과도한 불안감이 공황장애를, 그리고 공황장애가 광장공포증을 유발하는 기작이라고.

그렇지만 이 증상 역시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때로는 다른 불안장애 없이 독립적으로 광장공포증이 발현되기도 한다.

“조금은 차이가 있을 겁니다. 처음 증상 고백했던 방송을 보니, 특별한 발작 경험이 없더군요. 그 상황에서 광장공포증이 나왔다고 한다면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그렇구나. 하긴, 저는 발작 전까지는 사람 많은 데가 싫거나 그러진 않았으니까…… 좀 다를 수 있겠네요. 그러면 용식이 형은 왜 그런 걸까요? 그냥 유전적인 걸까요?]

“미리 재단하지는 않으려고 하고 있어요. 워낙 다양한 요인들이 있으니까요.”

[헤헤. 용식이 형 부럽네요. 전 직접 찾아가서 상담받았는데, 그 형은 자기가 출연하는 프로에서 이렇게 멘탈케어를 받으시고. 꼰마님이시니까 아마 금방 치료해주시겠죠? 공황까지 한 방에 물리치시는 분이시니까요.]

결코 그런 문제가 아닌데.

공황장애처럼 주변에서 경각심을 느낄 만한 발작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광장공포증은 그 자체로 우울증을 유발한다.

대중을 즐겁게 만들어야 하는 직업이 거기에 악영향을 더할 수도 있을 것이고.

쉽게 생각하고 접근했다간 낭패를 볼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자신의 문제와 싸우고 있는 주민성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은 금물일 터.

우선은 밝은 어조로 답해줬다.

“열심히 해봐야지요. 최선을 다해서.”

[아, 역시 꼰마님. 아무튼 아쉬워요. 저는 다음 주부터 대만 들어가는데. 타이밍이 맞았으면 뵐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베트남이라고 했지요? 그곳 분위기는 어때요?”

[최고예요. 작년에 왔을 때보다도 더 열광적인 느낌이에요. 혹시 아세요? 여기, 이제 전 국민이 한국어 배우는 거.]

“하하. 박항서 매직이로군요.”

동남아의 많은 나라 중에서도 베트남은 특히 한국과 인연이 깊다.

20세기까지는, 파병의 과거사나 일본과의 관계로 인해서 미약하게나마 반한정서가 있던 나라.

그렇지만 2000년대 한류열풍 속에서 감정이 개선됐다.

현재는 인민영웅으로 칭송받는 박항서 감독으로 인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인기 있는 나라가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한 관계가 내게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비록 직접적인 침탈이 아니라 우방의 요청이었다곤 하지만, 어쨌든 우리 군대의 총이 뇌성을 울렸던 나라.

그러나 진정성 있는 사과와 호혜가 어우러진 덕분에 이제는 형제 같은 사이가 됐다.

개인 사이의 반감 역시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런 바람 때문이었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나직이 대수를 불렀다.

“대수야. 바울이한테 너무 눈총 주지 마라. 나쁜 애는 아닌 거 알잖아.”

“……형님은 소름 안 끼치십니까? 아니, 어떻게 남의 방송 스케줄 몰래 알아내서 해외까지 따라올 생각을 하냐는 거죠, 제 말은. 무서워요. 저 진짜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긍정적으로 봐주렴. 저 아이를 못 믿겠다면, 날 믿어줘. 바울이의 행동에는 아직 선악이 없어. 그런 걸 분간하기엔 너무 오랫동안 타인과 담을 쌓고 살아왔거든. 처음 유치원에 간 아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으. 더 싫은데요. 그냥 애들도 싫은데, 덩치 큰 애라니.”

“부탁한다, 대수야. 행동 측면에서는 내가 계속 가르쳐서 사회성을 함양해줄 거야. 그 실수의 의도까지 곡해하진 말아주라. 어디까지나 나랑 같이 있고 싶다는 호의였으니까.”

“으으…… 노력해볼게요.”

대화 끝에 고개를 돌리자, 손바울이 멀뚱히 쳐다봤다.

그 역시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나눴다.

“바울아. 대수랑은 좀 어때?”

“흠. 나쁘지 않아요. 사람이 멍청해서.”

“멍청하다고?”

“네. 생각하는 게 빤하잖아요. 그런 인간들은 대하기 편해서 좋아요. 어차피 얽힐 일 없을 테지만.”

“……일단은 그런 건 멍청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진솔하다고 표현해야 맞는 거야. 그리고, 왜 얽힐 일이 없어? 저 친구가 내 방송 활동 전반을 지원해주고 있는데.”

“저랑 얽힐 건 없죠. 선생님, 저 동영상 편집 공부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저 사람 대체할게요. 운전기사 겸 디렉터로.”

“바울아. 대수랑 나는 그렇게 쉬운 사이가 아냐. 지금의 꼰마를 있게 해준 친구다. 아무리 더 능력 있는 편집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대체한다거나 할 생각은 없어. 그리고 운전기사 역시 마찬가지야. 네 전공하고 전혀 안 맞잖아?”

“전공은 그냥 취미예요. 살릴 생각은 없습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강요하진 않겠지만, 난 사람마다 자기가 꿈꿔온 일을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네게도 언젠가 그런 게 생길 거야. 동행을 허락하는 건 그때까지만이야.”

“전 선생님의 사도가 되는 게 꿈입니다.”

“바울아. 난 종교적 선지자도 아닐뿐더러, 누군가를 제자로 삼을 만한 능력도 없어. 그건 다시 생각해줬으면 싶다.”

“흠.”

할 수 있는 말은 거기까지였다.

손바울의 ‘흠’은 내면세계의 침범에 대처하는 안전행동.

그 이상 공격받는다고 느낀다면 역효과가 나올 터였다.

삶의 목표 설정이나 대수와의 관계 개선이나, 아직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이후에 도착한 이용덕과 조명기 역시 비슷했다.

과연 이 분야의 베테랑들인지라, 손바울과 인사 몇 마디 나눈 것만으로도 사회성 문제를 알아봤다.

하지만 긍정적인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좀 걱정되는데. 거리를 두는 게 낫지 않겠어요?”

“동감입니다. 아무리 호구 후배님이라도 저런 케이스는…… 감정에 접근 자체가 어려워서, 문제가 될 수 있겠는데요.”

“……교수님. 선배님. 저는 바울이를 믿습니다.”

“하하.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요.”

“후우. 가는 동안 챙겨야 할 사람이 둘이 된 듯하군요.”

잠시 후 화장실에 갔던 한효준까지 우리 곁으로 온 뒤.

마침내 제작진의 선발대가 공항에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쪽은 그 디렉터라는 분이시겠고…… 여기는 누구시죠?”

“손바울 학생이에요. 내 방송을 도와주러 왔어요.”

“예? 어, 저, 준비를 다섯 자리밖에 못 했는데요.”

“따로 왕복 끊었습니다. 일단 촬영 준비를 하지요.”

유종찬이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렇지만 곧 촬영 컨셉 소개에 집중했다.

“여기 케어팀 분들은 뒤쪽에서 따로 등장하실 예정입니다. 공항에서 오프닝 찍는 동안 저희가 광장공포증 얘기를 꺼낼 거거든요. 그때 인파를 헤치며 멋지게 걸어와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거기에 BGM 깔고 근사하게 이미지메이킹을 할 거예요. 그리고…… 인방 팀 분들도 같이 오셔도 되겠는데.”

“엥? 아이고, 저는 됐습니다 PD님. 저 카메라울렁증요.”

“대수 씨는 싫으신가보네. 그럼 거기…… 바울 씨는?”

“흠.”

대답 없이 고개만 갸웃거리던 손바울은, 내가 옆구리를 찌른 뒤에야 불퉁한 태도로 대꾸했다.

“당연히, 선생님 옆에 붙어 있을 겁니다.”

“아…… 그러세요 그럼. 그림이 괜찮으려나.”

“선생님 가방을 들고 따라붙겠습니다.”

손바울은 수행비서 같은 그림을 원한 듯했다.

방송에 출연하기 싫다는 마음보다 신과 같은 박대민의 유일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싶은 욕심이 컸기에, 고민 끝에 출연을 택한 것.

그렇지만 내게는 얘기가 달랐다.

누군가의 수행을 받을 만한 위인이 못 되기에.

그렇기에 우리의 등장은 약간은 어정쩡한 타협안이 됐다.

바퀴가 달려 무겁지도 않은 캐리어를 굳이 함께 끌며, 공항 분량을 촬영하던 김용식과 두 친구에게 다가섰다.

“자, 지금 말씀드린 멘탈케어팀이 오고 계십니다.”

“어? 어, 저분 방송에서 많이 뵀던 의사 분인데?”

“야 야, 그게 문제가 아니라!”

“와, 꼰마님이네!”

“저런 핫한 분이!”

“뭔데? 꼰마님이 누군데?”

“용식이 형, 감 잃었어? 요즘 인방 슈퍼스타잖아.”

“유튜브 구독자가 거의 백만이야.”

“방송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도!”

정확하게는 한 달 조금 넘었고, 구독자는 이제 70만 수준.

그러나 사실을 적시하기 전에 김용식의 멘트가 시작됐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반가워요. 한효준입니다.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로 있어요.”

학과장이나 석좌교수라는 타이틀을 입에 담지 않는 한효준의 겸손한 인사에, 이용덕과 조명기의 소개가 이어지고.

나와 손바울 역시 담백하게 멘트를 받았다.

그 뒤에는 다시 여행설계자인 김용식의 차례였다.

“아이고, 진짜. 우리 제작진 진짜 고맙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전문가 분들까지 불러주시고……. 종찬아, 고맙다.”

“괜찮아요. 이분들 출연료 다 형 출연료에서 깔 거니까.”

“얌마! 야 야! 벼룩의 간을 빼먹지!”

“농담입니다. 여기 VIP 멘탈케어팀 분들은 비행기랑 여행지에서 설계자님 상태를 봐주실 건데, 또 꼰마님이 워낙 유명한 인방러시잖아요? 그래서 지우펀 가서 해 질 때까지 골목 돌면서 인방도 콜라보로 진행해주실 거예요.”

“아하……. 일단 같이 여행하시는 거죠? 그럼 플랜 풀게요?”

PD의 설명에 이어 세 개그맨이 여행 계획을 소개한다.

그러는 동안 차분히 김용식을 살폈다.

내 이름조차도 알지 못하고 있었기에, 라포 형성은 기대할 수 없는 프로그램상의 내담자.

그러나 표정에서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인파가 몰린 상황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상당한 듯했다.

조명기 역시 그걸 느낀 모양.

“사람이 너무 많아. 말 그대로 ‘공항장애’가 되겠는데요?”

“……선배님, 목소리 다 들어갑니다.”

“응? 아, 마이크 달고 있지. 어흠. 묵언수행.”

“아, 거기 쌤들! 집중하셔야죠? 안 들으시면 낙오된다굽쇼?”

신기한 건, 그런 불안 속에서도 멘트는 청산유수라는 점.

방송에 임하는 성실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정상 컨디션이 아닐 때조차 물 흐르듯 멘트가 이어지도록 밤낮으로 연습한 게 분명했다.

다만 자꾸만 눈동자를 굴리며 게스트들의 눈치를 살피는 데에서, 문제의 근원이 광장공포증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

이용덕의 설명에 따르면, 공황장애가 수반되지 않은 광장공포증 환자의 경우 성격적인 경향성을 보인다고 했다.

보통 소심하며 주위의 변화에 민감하다는 것.

그렇기에 불안-공황-광장공포의 자연스런 연결고리 중 공황이 빠진 게 아니겠냐는 논리였다.

몸과 긴밀히 연결된 정신은, 불리한 상황을 회피하고자 신체적 변화로 신호를 보낸다.

대표적인 것이 과호흡.

정신적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타나는 심인성 증상이다.

그 변화를 빠르게 캐치하는 사람이라면, 심리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을 미리 회피할 수 있을 터였다.

그것이 독립적 광장공포증에 불안의 과거력이 흔한 이유.

이를테면 어린 시절의 분리불안 등……

과호흡 등의 증상이 나올 만한 스트레스를 자주 겪으면, 그만큼 남들보다 안전행동(safety behavior)이 수월해진다.

조심스러운 쥐 같은 김용식에게서 그 안전행동이 보였다.

주민성은 사회불안 증세에도 불구하고 ‘레벨업’을 외치며 활동에 열중했고, 그에 마음이 견디지 못해 공황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반대로 문제에 맞서지 않는 성미라면.

위기감지와 회피행동이 적극적이기에 발작의 위기는 잘 회피해왔겠지만,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광장공포증 앞에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할 것이다.

공황 수반 케이스보다 낫다고 말하기는 힘들겠지.

그러니, 김용식에게 촬영이란 살얼음판 위의 스케이팅.

본능적인 균형감각으로 견뎌내고 있을 뿐 언제 밑바닥이 깨어질지 모른다.

유종찬이 케어팀을 초빙한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번 여행 중에 공황발작이 발현하는 순간을 직접 목격했을지도 모르니.

그런 생각으로 김용식을 빤히 바라보던 중이었다.

머릿속 구상을 실현하고자 내 곁에 바짝 붙어선 손바울이, 작은 소리로 귓속말을 건넸다.

“김용식, 재밌네요. 대로변의 쥐 같아요.”

“……대로변의 쥐?”

“네. 나쁜 시력으로 차 피하려고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저러다 밟혀서 터지곤 하죠. 여러 번 봤어요.”

“여러 번 봤다니? 무슨 소리야?”

“많았거든요, 신당에 오는 사람들 중에. 웃긴 일이죠. 사실은 마음속이 까맣게 탄 주제에, 그것도 모르고 액운만 찾으면서 굿을 하고. 그게 차라리 낫죠. 김용식은 좀 안 좋네요.”

“어떤 면에서?”

“자기 문제를 자기가 알긴 하고, 그래서 지금까지 잘 피해왔던 것 같은데…… 저러면 반동이 더 크더라고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이야기였다.

신당(神堂) 생활이 남긴 것이 인격장애만은 아니었던 걸까.

조현성이 의심되는 증상 속에서도, 손바울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관찰력으로 타인의 태도를 관찰하곤 했으며, 심지어 독학으로 배웠다는 심리학이 꽤 깊은 수준이었다.

그 배치되는 양상에 무속(巫俗)이란 퍼즐이 끼워졌다.

한국 무속인들의 신병(神病)은 미국정신의학협회가 편찬한 DSM에도 그 발음 그대로 실려 있다.

조현형 인격장애(조현병 : 정신분열증)와의 연관성 위주로.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망상이 극대화될 때에, 그를 받아들이는 방어기제로 무속신앙이 활용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어쩌면 손바울은, 그 변화의 기로에 서 있었던 걸지도.

나를 신으로 받들려던 사고방식을 떠올려본다.

그게 재림(再臨) 같은 성경 기반의 망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유일신의 신념 속에서 그게 쉬웠을까 의구되는 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수한 신을 용인하는 무속인의 태도였다면.

나는, 이 청년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형? 형! 왜 그래!?”

고민의 와중에 그 외침이 들렸다.

돌아본 우측에서 김용식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목을 움켜쥐고 앞으로 엎드린 양상.

잠깐 눈을 뗀 사이에 정말 발작이 온 듯했다.

케어팀은 빠르게 반응했다.

한효준과 조명기가 김용식의 양쪽에 붙어 안정이 될 만한 말들을 외치고, 이용덕이 가방을 향해 달려간다.

아마 벤조디아제핀을 가져오겠지.

즉각적으로 발작 증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으니.

그 순간에, 나는 김용식의 미래를 생각했다.

이것이 아마도 첫 번째 공황발작.

이 순간의 대처가 장기적인 예후를 결정하게 된다.

어떤 방법이든 안정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 급선무겠지만, 그것이 약물을 통한 회복이라면 의존성이 생길지도 몰랐다.

심지어 그 약조차 전달이 늦어지고 있다.

극적인 연출을 위해 제작진이 준 캐리어를 끌고 오느라, 이용덕의 약가방은 조연출에게 맡겨져 있었던 까닭.

순간적으로 무수한 가능성이 뇌리를 스쳤다.

지금 이 순간, 안쓰러운 저 장년을 위해 뭔가 해줄 일이-

“선생님. 가서 한말씀 해주시죠?”

“뭐?”

“신의 음성이야말로 약이잖아요. 쥐를 하수구로 옮겨주는.”

망상 속의 손바울이 건넨 말.

그렇지만 아주 의미 없는 조언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는, 신을 의심할 만한 신비가 있다.

“……용식아. 아빠 왔어. 자, 손. 아빠 손 잡고 숨 쉬자.”

그 이야기가 작은 기적을 일으켰다.

보편적인 완화법에 의거해 주의를 돌리고 호흡을 조절해주던 두 교수에게 반응하지 않던 김용식이,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뱉어냈다.

헐떡이던 숨소리가,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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