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35장 - 고민하는 상담사 (1)
손바울은 느긋하게 핸들을 틀었다.
그게 불만스러운지, 한효준이 입술을 이기죽거린다.
운전석의 손바울과 눈이 마주치자 또 인자하게 웃었지만.
그 이후에 조심스레 내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박 군. 저 친구 내담자지? 예후가 안 좋아 보이는데.”
“아, 그게 보이십니까?”
“에잉. 나 한효준이야.”
“아, 예. 하지만 많이 좋아진 겁니다. 어제는 더 심했지요.”
“그러니 하는 말이야. 심한 녀석을 왜 곁에 두나?”
“심하니까요. 놔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흘끔 룸미러를 보니, 이젠 손바울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자길 따돌리고 나누는 귓속말이 불쾌해서라기보다는……
우리 대화를 독순술로 읽어내고 싶은 모양.
극단적으로 미묘한 표정의 변화지만, [완전한 공감]의 잔재 덕분인지 조금쯤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아. 바울아, 저 앞에서 우회전하면 돼.”
“네, 알겠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모르는 지름길을 전하자, 반문도 없이 차선을 변경한다.
아침에 집 앞에 왔을 때부터 저런 상태였다.
내가 하는 말이면 모두 오류 없는 진실이라고 믿는.
주일을 맞아 인세의 신께 경배하러 온 것이라고 말하며, 그는 모든 행동을 내게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렇기에 차마 돌려보낼 수 없었다.
그것이 건강한 신념이 아님을 알기에.
곁에 두고 지켜보기 위해서, 손바울의 청을 받아들여 내 차의 운전대를 맡기게 됐다.
그렇기에 종위보육원을 향하는 길 내내 한효준이 뒤통수를 긁게 된 것이다.
“흠…… 아스퍼거는 아닌 것 같고…….”
“교수님, 그런 얘기는 좀.”
“내 목소리가 컸나?”
“입술을 읽을 줄 아는 것 같습니다.”
“뭐? 정말로? 그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관찰력이 비범합니다. 타인의 정서에 크게 흥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통 과정에는 꽤 관심이 있는 듯합니다.”
“허. 마치 사이코패…… 흠. 그러면 뭐, 입을 좀 닫지.”
“괜찮은데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대화 나누시죠.”
한효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를 위해서 평온한 척 화제를 바꿔줬다.
“부산은 어떠셨습니까? 간 김에 좀 둘러보셨지요?”
“둘러보긴 뭘. 알고 지내던 센터나 좀 가봤지.”
“어땠습니까?”
“양극성 장애(조울증)가 늘었더군. 양극화 때문이겠지.”
“상관관계가 있는 겁니까?”
“……농담 아닌가? 사람 참, 진지하기는.”
한효준은 유머코드의 차이를 탓하며 넘기려 했는데, 뜬금없이 손바울이 끼어들었다.
“농담으로만 치부할 문제는 아니죠. 양극성 장애가 본질적으로는 단극성 우울 장애의 다른 표현형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잖아요? 조증 삽화는 우울감에 저항하기 위한 방어기제라는 식으로요. 전 그게 타당하다고 보는데요. 경제의 양극화로 타인과의 비교가 공격적으로 작용하는 사회풍조는, 양극성 장애의 확산에도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OCPD(강박성 인격장애) 같기도 하고.”
“그건 아닐걸요.”
잘도 읽어내네- 중얼거린 한효준이 입을 닫는다.
나 역시 그때부터는 창밖을 보며 생각에 집중했다.
내 일일 운전기사의 상태는 대단히 독특하다.
조현성 인격장애에 해당하는 특징들이 뚜렷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하나의 카테고리에 한정할 수만은 없었다.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고 심리학을 독학하는 등, 타인의 활동에 흥미를 보이는 경향이 일반적 조현 증상과 반대니.
물론,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그렇다.
두 가지 이상의 증상과 삽화가 혼재하는 건 흔한 케이스.
진단의 모델이 다중요인인 까닭에 오진 역시 드물지 않다.
개인화를 고려하지 않고 질환으로만 규정지으려 한다면, 그때는 도리어 내담자를 악화시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케이스 바이 케이스.
비상한 관찰력으로 타인을 관찰하면서도 망상 속에서 감정 교환을 꺼리는 손바울에게,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은 참고로만 적용해야 한다.
그의 망상 속에서 신으로 추앙되고 있는 나로서는, 특히.
네 번째 에픽퀘스트는 여전히 달성되지 않았다.
손바울이 손을 모아 내게 경배한 뒤로도.
단순히 exp가 모이기를 기다려주는 것만은 아니리라.
그보다는, 내담자에게 숭배되는 일이 상담사의 덕목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을 듯했다.
하지만 그 다중관계를 해소한다는 건……
지금의 손바울에게는 지나치게 큰 스트레스겠지.
방금 전만 해도, 내가 한효준에게 별 것 아닌 면박을 듣는 모습을 보자마자 참전해서 그를 몰아붙였다.
변화는 주의 깊고 느리게 진행돼야 한다.
그렇기에 그를 보육원 내부에 동행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서로 악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핸들 위로 손가락을 두드리며 한 말이 아니었다면, 생각을 재고할 일은 없었으리라.
“보육원…… 흥미롭네요. 여기 애들은 뭘 생각할까.”
“봉사활동으로 와본 적 없니?”
“네. 사회복지학과지만, 자봉을 강제하진 않으니까요. 시키는 커리가 몇 개 있었지만, 전 주로 요양원 나갔어요.”
“왜 그랬지?”
“거긴 조용하니까. 느긋하게 살펴볼 수 있어요.”
단순히 청각 자극이 덜하다는 뜻은 아니리라.
감정 표현이 정제돼 있어 파악하기 수월하다는 얘기겠지.
그리고 말 이면에 잠긴 빙산이 있을 법도 했다.
손바울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육원 아이들보다도 못한 성장환경을 겪었으니.
이곳 아이들은 그나마 생활지도원이나 또래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교류할 수 있다.
반면 손바울은, 양친을 모두 잃고 신당을 운영하는 조모의 슬하로 들어갔다고 했다.
어린 나이였기에 본인은 그 시기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드물게 떠올리기 싫어하는 티를 내었을 뿐.
거기서 추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으로 초기 사회성을 완성해야 했을 중대한 시기를, 오히려 방치와 학대로 보낸 것은 아닐까 하고.
“……바울아. 같이 들어가볼래?”
“당연하죠.”
“음. 들어가면, 아무 말도 해선 안 돼.”
“네.”
이유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손바울은, 이후 적극적으로 내 지시를 이행했다.
“어! 못생긴 아저씨다.”
“하이요!”
“형, 몇 살이에요?”
“꼰마님이랑 무슨 관곈데요?”
“왜 대답 안 함?”
“재미없어! 못생김은 덤이고요.”
“……바울아, 자기소개 해줘.”
“네. 안녕. 손바울이다. 박 선생님 사…… 제자다.”
……혹시 ‘사도’라고 소개하고 싶었던 걸까.
정말 그랬다면 아이들은 뭔 소리냐며 까르르 웃었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면의 울림을 외부 세계에 맞는 단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손바울 본인에게 얼마나 불편한 과정이었을지를.
몽상가의 소통이란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다들 자리에 앉자. 아저씨 일 도와주러 오신 분이야. 귀찮게 굴면 되겠어, 안 되겠어?”
“안 돼요!”
“되는데! 왜 안 된대!”
“푸하하하!”
“아저씨, 선물 줘요!”
“아 맞다! 선물 선물!”
“알았어 알았어. 얌전히 자리에 앉아서 10초 동안 지난 한 주의 행동을 반성하는 친구들한테만 줄 거야.”
“반성반성반성반성-”
“아저씨! 저 인터스텔라라 벌써 10초 지났는데요!”
“푸하하…… 인터스텔라가 뭐야?”
“그것도 모르냐, 븅아?”
“아 씨 개짜증나!”
어린이날 선물을 꺼내던 손바울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 저 CCTV 작동돼요?”
“응? 물론 되지.”
“되는구나. 아쉽네요. 사각지대 찾아볼게요.”
“……바울아. 애들 때리면 안 된다.”
“네? 왜…… 아녜요. 알겠습니다.”
아이들의 어리광이 꽤 불쾌했던 모양.
그야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내담자 평가]로 그들 하나하나의 정서적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내가 아니라면, 훈육의 필요성을 떠올릴 법도 했다.
거기서 CCTV를 묻는 파격성만이 별날 뿐.
그것조차 손바울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조현성 인격은 일반적으로 타인에게 공격적이지 않지만, 자기 내면세계를 건드릴 때는 얘기가 다르니까.
마음속 신이 아이들에게 곤란을 겪고 있으니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까.
사실 곤란할 것이 없었음을 보여주면 될 따름이다.
“자! 아저씨 분명히 말했다. 수아, 은혜, 둘만 나와.”
“넹.”
“네에!”
“어 왜요! 쌤 저 반성했는데!”
“아저씨, 저 인터스텔라라니깐요!”
“조용! 남을 곤란하게 만들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에게 줄 선물은 없어. 너희가 20초 동안 반성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 할게요…….”
“반성반성반성…….”
‘관계’가 82이던 시절에도, 일정 정도의 라포가 형성된 지인들은 어지간해선 내가 원치 않는 행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110.
그 나이 애들다운 칭얼거림도 내 정색 앞에서는 제지된다.
공포 때문이 아니라, 꼰마 아저씨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싫다는 자발적인 충동에 의해서.
그제야 손바울의 얼굴에 여유가 돌아왔다.
신의 한마디에 수그러드는 아이들을 보며 안정감을 느낀 듯하다고 생각하다가, 홀로 웃고 말았다.
[완전한 공감]이 참 대단하긴 대단하단 말이지.
과거였다면 이런 진단은 장난으로도 못 했을 텐데.
지금은, 손바울에 한해 내 자격지심과도 무관하게 꽤나 나르시스트 같은 분석까지도 해낼 수 있게 됐다.
물론 그 활용성에는 아직까지 물음표가 붙는다.
손바울은, 염려했던 바와 반대로 감정이 미약했던 케이스.
정말 악감정으로 가득한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혹은 그와 반대로, 내가 악감정을 가진 대상의 경우에도.
바로 그날 저녁에 그런 케이스와 마주하게 됐다.
내 일거수일투족에 따라붙으려는 손바울을 간신히 돌려보내고, 원룸으로 돌아와 방송을 켠 뒤.
처음 보는 닉네임의 사연 하나가 내 호수를 흔들었다.
“젤리댄스님의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부모님한테 여친 소개해드렸는데 엄마가 결혼하지 말라고 그러네요. 여친이 고아거든요. 부모 없이 자란 애가 어떻게 좋은 부인이 되겠냐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생각해보니까 틀린 말도 아니어서 고민이 되네요. 여친이 지금도 저한테 의존성 크고 우울증도 달고 사는 편인데, 결혼하고 나서 괜히 애들한테…… 흠.”
다른 때였다면, 최선을 다해 이해해줬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날은 5월의 두 번째 일요일.
전날의 대민재단 창립식 덕에 보육원 출신의 사회인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은 직후이며, 손바울이 집중해서 시청하고 있을 것이고, 이수아가 나레이션 크루로 참여하는 첫날이었다.
그런 날에 고아에 대한 편견에 부딪친 것이다.
다행인 점이라면, 시청자들의 주류는 반대파였다는 것.
그들의 공격이 딱딱해지려던 마음을 막아줬다.
「와 ㅋㅋㅋ 쓰레기네」
「제정신인가 저것도 고민이라고」
「꼰머님 우리 고민좀 선별해서받져」
「찐이 잘못했네」
“……자, 우리 좀 정리하고 갑시다. 젤리댄스님 본인이 어떤 악행을 하려고 사연을 보내신 상황은 아니지요. 벌써부터 우리가 악인으로 단정 짓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문제행동일 수 있습니다. 부탁드릴게요. 혐오를 멈춰주세요.”
「ㅋㅋㅋㅋㅋㅋ혐멈 나왔다」
「ㅋㅋㅋ근데 꼰머님이 젤빡쳤을 듯」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뻔했지만, 괜찮습니다.”
「대민스님의 말씀이십니다~」
「젤리댄스 : 그니까여 고민은 할수있자나여」
맞는 말이다.
고민은 범죄가 아니다.
그간 그가 여친에게 얼마나 헌신적이고 성실했을지에 대해서는, 짧은 고민 사연만으로 알아낼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젤리댄스를 비난한다면, 고아라서 안 된다고 못 박는 이들만큼이나 편협한 태도가 될 터였다.
공감도 직면도, 멀찍이 떨어진 채로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다가가고 다가가서 바로 곁에 선 뒤에야 누군가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도, [완전한 공감]은 고마운 기술이었다.
나 자신의 불쾌감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니.
아 존나 각박하네 뭔 말도 못 하게 하냐……
내가 뭐 범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조까 솔직히 아닌 건 아닌 거잖아……
그래도 꼰마님이 도와주니까 좋네……
하이라이트 보고 멋있는 줄은 알았지만 역시 크……
근데 수연이가 이 방송 보진 않겠지……
유튜브도 잘 안 보니까 아마 안 보겠지……
씨바 생각하니까 좀 그렇긴 하네……
착한 앤데 하…… 근데 솔까 결혼은 집안문제잖아……
어떡하냐 하 돌겠다…… 누가 정답 좀 알려줬으면……
답을 갈구하는 청년의 목소리.
그의 마음을 고스란히 호수에 담고, 생각했다.
사실 정답은 없는데.
그 사실만 수용해도, 세상이 훨씬 더 따뜻해질 텐데.
「ㅎㅎㅎ꼰마님 먼생각해여?」
「대민스님 번뇌와 싸우는중임ㅋㅋㅋㅋㅋ」
「불쌍한 중생이로다으알어ㅏ라악!!!」
「흐. 콰. 한. 다.」
“……흑화 안 합니다. 생각을 좀 해봤어요. 젤리댄스님께서는 아마 포근한 가정……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긍정적이라고 인식되는 ‘내조’가 유년기의 경험에 좌우된다고 생각해서 여친과의 장기적 관계를 고민하시게 된 것 같은데, 맞습니까?”
「??」
「이렇게말하니까 그럴싸한데」
「젤리댄스 : 어 말하자면 그런거져..?」
“그래요. 흔히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이 좋은 며느리감이다, 그런 말들을 하지요. 하지만 그것만이 좋은 가정의 유일한 가능성일까요? 여쭤보고 싶습니다. 가정의 형태가 그것뿐입니까? 젤리댄스님께서 좀 더 노력하셔서 포근한 관용의 캐릭터를 맡아주셔도 되지 않을까요? 거기에 섬세한 감성을 가진 여친 분께서 엄한 훈육자로서 아이들을 인도해준다면, 그게 나쁜 가정일까요? 오히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두 분의 슬하에서 더욱 따뜻하고 마음씨 고운 아이들이 자라날 수 있지 않을까요?”
「오」
「흑화안했네 ㅋㅋㅋ」
「젤리댄스 : 어.. 그래도돼여? 애들 정서나 그런게.. 아니 결혼 선배님이시니까 진짜 현실적인 조언좀 해주세여..」
대부분의 경우,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은 고민의 연속이다.
시선이 멀어질수록 불안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그럴 때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니다.
오직 현재만이 마음의 답으로 인도해준다.
“오랜만에 꼰대 빙의 좀 해야겠네. 이봐요, 젤리댄스님. 태어나지도 않은 애들 정서 생각하기 전에 댁 정서나 생각해요. 진짜 헤어져도 괜찮겠어요? 무지 좋아하잖아. 아니야? 욕먹을 거 뻔히 알면서도 생방송 찾아와서 그런 사연 적은 거, 좋아해서 그런 거잖아요. 왜 자기 진심을 모릅니까?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해요. 정답은 없어. 정해진 길 따위 없습니다. 당신 앞의 그 길이 수렁이 될지 탄탄대로가 될지는, 현재의 한걸음 한걸음이 결정하는 거예요. 나도 그랬습니다. 촌에서 태어나서 교양 하나 없이 공부만 하며 자라서는, 한남동 부잣집 금지옥엽이랑 사랑 하나로 결혼했어요. 집안 반대? 대단했지요. 그렇지만 지금 우리 가정이 어떤 줄 압니까? 방송시간 앞으로 당길까 고민 중이에요. 한 시간이라도 일찍 들어가고 싶어서. 그러니까…… 마음만 바라보세요. 정답은 그 뒤에야 나옵니다.”
「오오」
「오이오이 역시 흑화했잖아??」
「젤리댄스 : 아.. 이궁.. ㅎㅎ 그럴지도몰겠네여」
「꼰마귀욤 : 아빠 시간땡기면 밥은언제먹냐 바부야」
「!!!」
「야생의 꼰순이가 나타났다!?」
「ㅋㅋㅋㅋㅋㅋ 아재요 바부소리듣고 괜찮슴까」
“당연하지요.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우리 딸, 사랑해. 방송 끝나고 바로 갈게.”
「으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꼰마님 내손발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꼰마귀욤 : ..아머래.. 나도사랑해」
[마구니님 별사탕 1000개. 하. 치사량이다.]
[젤리댄스님 별사탕 100개. 헉 크크. 저도 꼰순이 같은 딸 낳게 해주세여 흐흐.]
[dosena님 별사탕 500개. 꼰순아 언니도사랑해 유유.]
[Paulus님 별사탕 100개. 마땅히 그래야죠. 아멘.]
……마지막은 아마 손바울이겠지.
참 곤란한 녀석이다.
당장은 조심스런 접근이 우선이지만, 저 아이에게도 언제고 꼰대가 되어서 직면을 수행해야 할 텐데.
그 생각으로 끝이 아니었다.
고민 끝의 사연을 마감하자, 순간 다른 고민이 이어졌다.
이 치사량의 오글거림은……
이수아에게 어떻게 비쳐졌을까.
행복도 죄라고 말한 주제에, 나는 방금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
「Manager슈아 : 꼰순아」
「Manager슈아 : 언니도사랑해」
「꼰마귀욤 : ㅋㅋㅋㅋㅋㅋ하지마 아 하지마」
「꼰마귀욤 : 아니쫌ㅋㅋㅋㅋ 톡으로도하지마」
멍하니 채팅창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마음은 번뇌의 바다라고 했던가.
참, 고민이 끊이지 않는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