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92화 (92/200)

# 92

34장 - 공감이 경감하는 것 (1)

잠깐의 휴식시간을 마치고 합동 상담을 위해 다시 VR스튜디오에 들어섰을 때, 김소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 저…… 꼰마 선생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음. 아닙니다.”

“아뇨 저기…… 어? 뭐지? 갑자기 후광이 비치는 이 기분?”

“요즘 애들 말로 ‘기분 탓’이라고 하지요. 두 분 교수님과의 상담이 즐거우셨던 모양입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닌데…….”

그런 게 아닌 것이 맞다.

시청자들도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외모’가 74에서 84로 급상승했으니.

바라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성장이었다.

세 번째 에픽퀘스트의 보상이었던 까닭에.

제2의 루트를 찾아 달성한 업적의 보상이, 이번에는 ‘외모’를 10 상승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었다.

「 에픽퀘스트 3 “한효준을 쓰러뜨려봐요” 완료!

한효준의 내면을 움직여 그가 향후 ‘상담사’님을 위해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2의 루트를 통해 업적 “증거기반 개입” 달성!

(업적 “증거기반 개입” 효과 : 외모 +10) 」

증거기반 개입(evidence-based intervention)이란 CBT(인지행동치료)를 위한 구조화된 방책.

왜곡된 인지를 바로잡기 위해, 내담자 개인의 삶과 언동 속에서 발견된 증거들을 수집함으로써 인지에 개입한다.

말하자면 일반화된 이론의 적용보다 개인화된 상담을 추구하는 현대 상담심리학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업적이 달성된 것은……

한효준에게 적용한 NET(내러티브 노출치료) 때문이겠지.

NET는 PTSD의 가장 긍정적인 치료법 중 하나다.

떠올리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삶이라는 서사(narrative) 속에서 의미를 갖는 경험으로 재구성하는 과정.

셀리그만이 정의한 PTG(외상 후 성장)와 직접적으로 맞닿는 개념이다.

전문 심리학자가 아니더라도 지지적인 공감대 형성을 통해서 NET를 독려해줄 수 있으며, 심지어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그 과정을 이뤄내는 사람들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마음의 가장 신비로운 자정작용이다.

6.25로 가족을 잃은 아이는, 붉은 색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는 반공주의자가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모든 전쟁을 막기 위해 헌신하는 평화주의자로 거듭나기도 한다.

자기 삶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마음의 색이 바뀐다.

나는 그와 같은 일을 한효준이 이뤄내기를 바랐다.

못된 기대다.

인간을 혐오해버리는 쪽이 훨씬 쉬운 방어기제니.

그러나 내 스승은 마침내 스스로의 고통을 성장을 위한 하나의 삽화로 받아들였고, 국내선 탑승을 통해 그를 입증했다.

그것이 “증거기반 개입”이라는 업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거기까지는 참 좋은 일이었는데……

업적의 보상이 ‘외모’라는 것은, 참 별일이었다.

내담자의 마음에 들어가 방향을 바꾼 일이 어떻게 외견과 연관될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정말 복잡한 패러미터다.

우지현의 면접 때도, 쉬림프치즈의 상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명시되지 않는 이유로 ‘외모’가 상승했다.

업적 보상까지 획득한 지금, 이제는 그 능력치를 제대로 마주봐야 할 듯했다.

우선 생각해봐야 할 것은, 짧은 기간에 ‘외모’가 12나 상승했음에도 거울을 통해 어떤 변화를 확인하기가 어려웠던 점.

환골탈태와 같은 급진적 변화는 대략 70까지였다.

그 뒤로는 이렇다 할 형태의 변동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뭔가 달라졌다는 막연한 느낌만이 들 뿐……

고민 속에서 조명기의 심리평가를 듣던 무렵이었다.

문득 손뼉을 친 김소란이, 뜬금없는 영감을 줬다.

“아! 알겠다. 꼰마 선생님, 눈빛이 바뀌었어요.”

“눈빛……이요?”

“네. 아 제가 그, 사람 눈을 열심히 보거든요? 약간, 헤헤, 혼자서 관상 공부도 했고요. 그랬는데…… 아까 들어오셨을 때랑 지금이랑, 눈빛이 많이 달라지셨어요. 되게 자신감이 넘치는 그런 느낌…… 그래서 그런가? 되게 섹시해요.”

섹시하다는 말을 쉽게 하는 요즘 애들 감성은 차치하고.

자신감.

어쩌면 그 단어가 ‘외모’의 진정한 의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때때로 마음가짐에서 우러나온다.

통증으로 인상을 찡그리는 것조차 아름다워서 추녀가 따라했다는 ‘경국지색’ 서시의 일화는, 아마도 과장된 전설.

훌륭한 외양도 바른 표현 없이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인간의 거울신경세포가 모든 태도 속에서 그 감정을 추론해내는 까닭에.

그 가장 명백한 실현이 표정이다.

선한 표정을 가진 추남이 때로는 비뚤어진 미남보다도 멋져 보일 때가 있다.

영혼의 교감과도 같은 거울세포의 작용이, 잠깐의 눈맞춤으로도 그 대상을 오롯이 끌어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상담사는 당당한 자세와 긍정적인 표정으로 내담자를 바라봐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실 아주 훌륭한 상담사의 탈을 갖추지는 못했었다.

늘 과도할 정도로 겸손했으니.

그 심리가 내 행동과 태도와 표정 전반에 드러나, 내담자로 하여금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나와 닮기 위해 꼰마크루의 자막 알바에 지원했다는 우지현을 마주하며, 쉬림프치즈의 오류 없는 질환을 적시함으로써 유정국과 같은 사명의 미래를 자초하며.

나는 조금씩 나를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속죄의 철로를 향해 걸어가며, 나와의 만남이 내담자에게 터무니없이 소중한 운명이 될 수도 있음을 확신했다.

그 자신감이 눈빛에 드러나지 않았을 리 있겠는가.

스스로를 긍정하는 마음은 온몸을 통해서 드러나는 법이다.

혹자는 그것을 ‘후광’이라 부르기도 한다.

남들과는 분명 뭔가가 다른데, 그것이 너무도 불가해한 차이인지라, 종교나 환상의 관점에서 용어를 차용하는 것이다.

즉, 70 이후의 ‘외모’라는 것은 후광의 영역.

어떤 말이나 행동 없이도 상담사를 믿고 의지하도록 만드는 존재 자체의 마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업적의 달성이 그곳으로 연결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수십 년을 괴로워하던 스승에게서 위대한 걸음을 유도해낸 일은, 상담사로서 자신감을 가져도 될 만한 성취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슬슬 ‘외모’를 올릴 때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 ‘상담사’님께 가장 적합한 보상을 분석할게요……

[완전한 공감] 할인권을 지급해드렸어요.

100exp 상당의 기술이 지금은 25exp!

준비되셨나요? (3:51 후 자동으로 수행됩니다)

(구매조건 : 관계 100 달성과 “증거기반 개입” 달성)

* 기술 구입을 위해 관계 100을 달성해주세요! 」

그 메시지를 본 시점에, 내 ‘관계’는 95였다.

업적 “비소유적 온정”의 효과로 +10 되어 있었을 뿐.

그런데도 ‘관계’가 100이 되어야만 구입할 수 있는 기술의 할인권이 주어졌고, 결국 한 차례의 레벨업을 수행한 뒤에야 보상을 수령하는 게 가능해졌다.

그렇게 남은 exp가 딱 2였던 것이다.

「 성명 : 박대민 / 성별 : 남 / 연령 : 47

직업 : 상담사 Lv.12 (2/10)

관계 : 100 / 진단 : 100 / 화술 : 100 / 외모 : 74

“비소유적 온정” (관계 +10)

“크리스마스 캐럴” (진단 +10)

“증거기반 개입” (외모 +10)

성장 : 5 」

그 포인트에서 심경이 복잡해지고 말았다.

퀘스트의 달성이 한효준의 국내선 탑승 뒤였던 것은, 그럼으로써 35 이상의 exp가 마련됐을 때에 비로소 할인권이 주어졌던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NBSC가 일부러 시점을 조절한 것은 아닐까.

혹시 그런 것이라면, 다음 에픽퀘스트의 달성은 할인권 구입에 더해 ‘외모’를 100으로 만들 수 있을 55exp가 쌓인 뒤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exp를 아낄 이유는 없어진다.

내담자들을 위해, 당장 내 후광을 드높여야만 한다.

아주 작은 차이가 누군가의 삶을 바꿔줄지도 모르니.

하지만…… 나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컴공인.

남은 ‘성장’ 5를 바로 사용하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남아 있었다.

당장 새 기술의 활용성만 해도 영 괴이쩍었다.

「 기술 [완전한 공감]

라포를 형성한 내담자의 심리에 5초 동안 이입합니다. 동기화된 감정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

마치 빙의와도 같은 초능력.

그것이 100exp의 가치를 갖고 있음은 명백했다.

상담사라 해도 모든 삶의 색깔을 경험해본 것은 아니기에, 때로 내담자의 마음을 오인해서 상담을 망칠 수 있는 까닭.

그때에 이 기술은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당장 사용해도 괜찮은 것일까.

단 5초라고 해도 타인의 심리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칠지도 모를 일.

그렇기에 그간 신경 쓰지 않았던 [특성] 쪽에 관심이 갔다.

「 특성 ‘평정’ (10exp)

감정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충동을 제어합니다. 100에 도달하면 불구대천의 원수마저 눈감아줄 수 있습니다. 」

……이쪽도 내용상으로는 참 해괴하지만.

정말 [완전한 공감]을 제대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이 ‘평정’부터 투자해놓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외모’를 제외하면 모든 능력치가 100에 도달했으니까.

어차피 에픽퀘스트의 달성 시점이 조절된다면, 좀 더 여유를 갖고 안정적인 성장에 주력해도 될 듯했다.

사실 그 에픽퀘스트 쪽은 아예 달성이 요원하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전개였기에.

「 에픽퀘스트 4 “손바울을 쓰러뜨려봐요” 발생!

NBSC는 ‘상담사’님의 끝없는 도전을 응원합니다. 」

그간 진행해온 퀘스트와 동일한 서술이긴 하지만……

대체 손바울이 누구란 말인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미래예지에 가까운 능력을 갖춘 NBSC의 신비를 생각해보면, 아마도 조만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그렇게 갈림길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당장 ‘외모’부터 올릴 것인가.

아니면 ‘평정’이라는 새 특성을 구매할 것인가.

새 기술을 사용해보지 않고는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렇기에 조심스레 김소란을 바라봤다.

[내담자 평가]에 따르면, 짧은 시간의 상담으로 이미 상당한 라포가 형성되었으며, 심리 상태 역시 안정적인 내담자.

기술을 테스트하기에 적절한 인선이었다.

무엇보다 내 양쪽으로 두 명의 전문가가 배석한 상황이다.

지금이라면 5초의 공백을 염려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입속으로 ‘완전한 공감’을 읊조렸다.

그 직후에, 세상이 일변했다.

이 아저씨들 멘트 치는 호흡 왜 이렇게 좋아?

그리고 꼰마님은 왜 저렇게 멋있는 거야?

저 얼굴로 마흔일곱이라니, 말이 돼?

저렇게 동안일 수도 있다니, 남자들은 좋겠다.

열 살만 젊으셨어도 진짜…… 아, 스톱 스톱.

맞다, 성규 오빠는 경기 준비 잘하고 있을까?

내 VR상담 보고 있진 않겠지?

아, 아까 섹시하다는 말은 하지 말걸 그랬어.

또 악플 달리면 어떡하지…….

꼬리치는 거 아닌데.

예능에서 성규 오빠 만났을 때도 그냥 팬이라 좋았던 건데.

먼저 대시한 건 오빤데, 왜 내가 여시년이냐구.

그래도 오빠 생각하면 사실대로 기자회견 하기도 그렇구.

라인업 경쟁 중인데 괜히 머리 복잡해질 거 아냐.

하지만…… 나도 힘든데.

운동선수라서 밤일 기대하고 만난다니, 말이야 방구야.

진짜 개자식들 너무 많아.

남의 마음은 생각도 안 하고 막말하는 개자-

“……해서, 이런 부분에선 우리 꼰마 선생님이 한말씀?”

“아, 예.”

“한말씀?”

“……죄송합니다. 무슨 얘기 중이었지요?”

“응? 이 사람이 웬일이야? 선생님, 기사의 댓글을 볼 때 가지면 좋은 마음가짐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잖아요?”

“아, 예. 제가 지금 보여드렸습니다.”

“응?”

“어, 지금요?”

“예. 방금처럼 개무시를 하는 방식입니다. 너는 떠들어 나는 행복해, 그렇게 웃어넘길 수 있다면 차선은 되겠지요.”

“아, 하핫! 그렇겠네요?”

“아이고. 이 양반이 날 놀렸구만?”

“죄송합니다. 어쨌든, 그조차 최선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회피는 늘 잔재를 남기니까요. 꼭 열애설이 아니더라도, 김소란 씨는 유명인으로서 앞으로도 많은 곤경에 처할 겁니다. 그때마다 귀를 닫고만 살 수는 없겠지요. 조금쯤 사고방식을 바꿔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행복도 죄일 수 있습니다. 불행이 가득한 헬조선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선남선녀가 그저 미워만 보일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예의 없고 몰상식한 개자…… 흠.”

“개자?”

“어흠. 그런 댓글들이 넘쳐나지는 않겠지요. 어쩌면 행복의 소득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불행한 세상이기에 불가피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렇게 긍정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으…… 그게 뭐예요. 나빠. 왜 제가 힘들어야 되는데요.”

“힘들어 마땅한 분은 결코 아니지만, 나쁜 세상이 현실인 탓이지요. 심지어 양도 소득세를 내는 나라 아니겠습니까?”

“양도 소득세……? 응? 양도소득세? 아, 뭐예요!”

아재스러운 우스갯소리로 직면을 얼버무린다.

그 ‘화술’을 활용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잔재처럼 남은 김소란의 감정들 때문에.

[완전한 공감]이 낳은 것은, 5초의 이입만이 아니었다.

시스템은 정확히 5초에 멎었겠지만……

그 공감의 경험은 고스란히 내 기억에 스며들어, 이후의 사고와 행동에마저 거친 충동으로 영향을 끼치려 들었다.

그야말로 양날의 검 같은 기술이었다.

극단적인 악의는 없었던 젊은 배우의 감정이 이 정도.

그렇다면, 끔찍한 PTSD로 원망과 분노가 가득한 내담자의 경우엔 어떠할까.

평화로웠던 내 호수에 붉은 피가 번질지도 모른다.

내담자의 악의가 박대민의 본질을 해칠 수도 있다.

역시…… ‘평정’이 우선이겠어.

지금으로서는 [완전한 공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기 위해서는, 당장 ‘외모’에 ‘성장’을 투자할 여력은 없었다.

그런 생각 속에서 세 번째 VR상담을 마친 뒤.

도세나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새 웹툰으로 바빠진 뒤로는 처음이었다.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줄줄이 사탕이었다.

「도세나 : ㅎㅎㅎㅎ 개자식이라고 할 뻔했죠!」

「도세나 : 방송사고 나는 줄 알았잖아~」

「도세나 : 사실 저는 속으로 많이 그러지만요 ㅎㅎ」

「도세나 : 행복소득세 얘기 참 좋았어요」

「도세나 : 그렇게 생각해볼게요 행복도 죄라고..」

「도세나 : 그리고.. 꼰마님은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도세나 : 저처럼 그 사람들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도세나 : 꼰마님 같은 분한테까지 미움받으면..」

「도세나 : 그때는 진짜 아무한테도 위로받을 수 없잖아」

……이게 악플 피해자가 할 소린가.

몇 차례고 행간을 읽다가, 결국 픽 웃고 말았다.

그렇지.

아주 멍청한 호구에게까지 외면당한다면, 그들은 정말 갈 데가 없지.

“응? 여기서 뭐 해요? 빨리 방에 숑 가서 방숑 해야지.”

벽에 기대 있던 날 보고 조명기가 농을 건넨다.

그의 평온한 얼굴을 보며, 조심스레 물어봤다.

“선배님. 제가 PTG의 좋은 사례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런 저는, 어떨까요. 가장 무서운 악의마저 극복할 수 있을까요?”

“……갑자기 그걸 물어봐요? 아직은 나중 얘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뭔 고민이 많긴 한가보네. 그런데 내 생각에는, 그렇게 걱정할 건 없을 듯해요. 우리 후배님은 아주 멍청한 호구니까. 최악의 악감정도 삭여 없앨 수 있을 겁니다. 댁이 날 그렇게 만들었잖아? 그랬으면 본인도 해내야지요.”

“하하……. 맞는 말씀이네요. 저는, 해내야지요.”

시야 한구석의 특성 상점이, 조용히 사그라진다.

그쪽을 일별한 뒤 능력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남은 모든 ‘성장’을 ‘외모’에 투자했다.

그에, 뜬금없는 메시지 하나가 화답하더라.

「띠링! ‘상담사’님의 ‘외모’가 1 상승합니다.」

……무슨 5+1 행사도 아니고.

이 결의마저 자신감의 상징이라는 것일까.

결과적으로 ‘외모’가 80까지 올라가고 말았다.

“뭐야? 뭐지? 갑자기 얼굴이 확 사네? 내 한마디에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나? 그러면 후배님, 밥 사세요. 비싼 걸로.”

“예, 비싼 걸로 크게 사겠습니다. 조만간이요.”

“……진짜로? 뭐야? 별 생각 없이 한 말인데, 이게 약간 명언이었나? 어디가 마음에 들었어요? 뭐가 괜찮았던 거야?”

귀찮게 구는 조명기에겐 웃어주기만 하며 생각했다.

‘평정’이란 정말 좋은 특성이지만……

그건 나를 위한 방패일 뿐.

오아시스에 필요한 것은, 그런 금속의 무기가 아니다.

나를 믿고 나아가자.

자신을 믿지 못하는 내담자들을 위해서.

그렇게 결심하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 길에, 문자 하나를 받게 됐다.

저장되지 않은 전화번호로부터였다.

「안녕하세요? 손바울이라고 하는데요……」

그렇게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NBSC의 네 번째 에픽퀘스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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