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89화 (89/200)

# 89

33장 - 상담사의 철로 (1)

어버이날의 밤은 갖가지 사건으로 뒤덮였다.

첫 번째 사건은, 프리월드 시절의 부하직원들이 선물을 사들고 내 집에 방문한 일.

어버이 같은 전 부장님께 함께 인사하고 싶었다더라.

요즘은 드라마 속에서도 나오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대체 회사에서 어떤 존재였던 걸까.

“음…… 정말로 고맙긴 한데, 너무 늦었잖아? 얼른 들어가. 내가 다음에 이 멤버 그대로 고기라도 사든지 할게.”

“아빠! 들어가서 그거 같이 보면 안 돼요? 웃기네?”

참견쟁이 송성희 대리가 팔을 잡고 매달렸지만, 될 법한 일이 아니었다.

<웃기고 앉아있네>의 방영 시간은 11시 50분부터.

그걸 보고 간다면 새벽이 되고 말 터였다.

유보원 차장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성희 씨, 실례잖아. 선물만 드리고 가기로 했지?”

“그랬지만요…….”

“무슨 일이야?”

돌아본 현관 앞에 아내가 있었다.

경계심 가득한 얼굴이었는데, 직원들의 손에 들린 과일바구니 등을 보고는 곧 상황을 파악했다.

“회사 분들이야? 들어오시라고 하지.”

“안녕하십니까, 사모님! 명현수 과장입니다!”

“아, 알겠네요. 이이랑 자주 통화하던…….”

“차장 유보원이에요. 반갑습니다, 사모님.”

“어머, 반가워요. 진주희예요.”

“언니, 저 송성희예요! 얘는 우선희요.”

“안녕하십니까. 과장 정해진입니다.”

“아…… 다들 고마워요. 이렇게 인사하러 와주시고…….”

정신없이 인사가 오간 끝에, 손님을 박대할 수 없다는 아내의 의지로 일단의 무리가 집 안에 들어오게 됐던 것이다.

거실에 앉아있던 딸애의 눈이 동그래진 건 당연했다.

“뭐야? 누구야?”

“오, 꼰순이! 반가워!”

“지수야. 아빠 회사 동료들이야. 갑자기 찾아오게 됐는데, 불편하면 잠깐 방에 들어가 있을래?”

“아니…… 근데 왜 와? 오늘 뭔 날이야?”

“어버이날이니까 왔지?”

“네? 어…… 왜요?”

“부장님이 우리한테도 아빠 같은 분이시니까?”

“……으.”

입모양을 보면 어이 털린다며 구시렁대는 눈치.

그렇지만 영 싫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송성희와 우선희에게 둘러싸여 아이돌 취급을 받았을 때는, 코를 세우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선물꾸러미들이 하나 둘 풀릴 때는 눈이 초롱초롱해졌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출연한 예능을 보게 된 것이다.

공채 개그맨 한 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그 무렵에 핸드폰이 울린 것이, 두 번째 사건이었다.

「이수아 : 아저씨」

「이수아 : 애들이 톡 안했져」

「그랬는데.. 왜 그래? 무슨 일 있니?」

「이수아 : 아녀」

「이수아 : 안했음 됐어여 굿나잇」

그 짧은 대화로 저간의 사정들이 파악된 것은, 110의 ‘진단’ 덕택만은 아니었다.

잠깐만 생각해보면 쉬이 알 수 있는 일인 까닭이었다.

종위보육원 아이들의 어버이날은 어땠을까.

분명 ‘보통’ 아이들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 와중에 어린이날을 함께 보냈던 나를 떠올린 아이들이 없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건, 그들 나름의 선.

아마도 이수아를 중심으로 고학년들이 말을 꺼냈을 것이다.

꼰마 아저씨는 아빠가 아니라고.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 방해하지 말고, 오늘 하루만큼은 아무도 연락하지 말자고.

그날 매니저 역을 맡았던 윤채아의 채팅이 방증이 됐다.

‘오늘도 고생하셔씁니다 꼰마님’이라 했었지.

평소에 아저씨 아저씨 하며 따르던 아이가 뜬금없이 격식을 차린 것이기에, 그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내면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수아야. 아저씨가 애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혹시 다들 잠들었을까?」

「이수아 : 먼데여?」

「이수아 : 애들 TV보고있어여」

「이수아 : 웃기네 보는데 웃기네 ㅋ」

「ㅎㅎ 그렇구나. 그러면, 애들한테 아저씨한테 톡 하나씩 보내달라고 말해줄래? 어린이날 선물 받고 싶은 거.」

「이수아 : ..왜여?」

「이수아 : 에버랜드 갔다왔는데」

「그건 선물이 아니잖아. 이렇게 하자. 신서유기 이런 거 보면 100만원 소원 빌고 하잖아? 우리는 만원으로 하자. 비싸지 않고 꼭 필요한 물건들 생각해보게 해줘. 오늘 열두 시 전까지 톡 보내면, 아저씨가 일요일에 가져다줄게.」

「이수아 : 왜여」

「이수아 : 아저씨가」

「이수아 : 왜여」

거기서 수아의 마음을 읽은 것은, 이번에는 ‘진단’ 덕분.

이수아는 물건이 아닌 대답을 원했다.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게 아빠처럼 생각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이성과 감성의 대립이었다.

그 착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아저씨가 사실 산타할아버지거든.」

「비밀이니까 수아만 알고 있어.」

「이수아 : 그런게 어딨어여」

「이수아 : 웃기네 ㅋ」

초성에는 많은 어감이 담긴다.

ㅋ 하나는 무시, 두 개는 형식적인 추임새, 세 개는 할 말 없음, 네 개는 현실 웃음을 의미한다던가.

그렇지만 이수아의 ㅋ은……

그 모든 것보다 깊은 의미를 담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소소한 산타 코스프레를 하던 와중에, 보육원 아이들보다 먼저 메시지를 보낸 내담자가 한 명 있었다.

그것이 세 번째 사건이었다.

「도세나 : 꼰마님! 저 오늘 새 웹툰 올라가요!」

「벌써요? 다음 주라고 하지 않았어요?」

「도세나 : 그리다보니까 비축분이 금방 나와서요」

「도세나 : 그래서 이거 깜짝이벤트예요」

「도세나 : 꼰마님한테만 미리 알려드리는거ㅎㅎ」

「도세나 : 기대해주세요~ 카운트다운 1분!」

기대해달라니.

그야 나를 주인공의 모델로 삼아 그렸다는 작품이니 기대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에겐 양날의 검일 터였다.

중등도의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 것이 웹툰 때문이었으니까.

한없이 도망치고 싶었을 댓글의 전장에 다시금 자신의 작품을 올리며, 어떻게 기대해달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1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핸드폰의 시계가 날짜의 변경을 알린 직후, 토요웹툰란의 첫머리에 이벤트 배너가 올라왔다.

‘<인싸부심>의 도나쓰, <기획팀장>으로 돌아오다!’라는.

기대주의 기대작에 걸맞은 대우였다.

그렇지만 그건 과연 도세나에게 좋은 일일까.

내 방송 초대석에 등장하며 이미 본명까지 유명세를 탄 상황에서, 이후 생겨날 악플의 수위는 전과 격이 다를 터였다.

그리고 악플이란 쉬이 근절될 수 없는 것.

나는 아직 세상을 바꿀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신작 <기획팀장>의 0화를 터치했다.

극히 미화된 미중년이 가죽장갑을 벗고 있더라.

운전을 마치고 막 방송국에 들어서는 장면.

그 아래로 스포트라이트 속 아이돌들의 무대가 소품처럼 하나 둘 그려지는 가운데, 주인공의 독백이 서술되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은 제각기 다른 광도로 빛난다.」

「그와 같이, 인간 중에도 특별히 빛나는 존재들이 있다.」

「누군가는 외모로.」

「누군가는 끼와 재능으로.」

「또 누군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력으로.」

「세상은 그런 존재를 ‘아이돌’이라 부른다.」

다음 컷들에서는, 조명이 미치지 않는 무대 뒤가 그려졌다.

긴 손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모니터를 바라보는 주인공.

그리고 쭈뼛거리며 눈치를 보는 여자아이들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 이름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미생 같은 자들.」

「어둡고 긴 터널 속에서 흩날리는 먼지들.」

「언젠가 하늘로 날아올라 밝게 빛날 날을 기다리며……」

「그들은 그저 남의 빛을 반사할 수 있을 뿐이다.」

「세상은 그들을 ‘연습생’이라 부른다.」

「그리고 아이돌 기획팀장인 나는……」

주인공이 여주인공인 듯한 미형의 소녀를 바라본다.

그림만 봐도 불안감이 느껴지는 표정.

도세나 스스로의 심리상태가 충분히 반영된 듯했다.

그 소녀 앞에서, 주인공이 코웃음을 쳤다.

「“꼬마들아. 너희 진짜 할 수 있겠냐? 포기하지?”」

「그들을, ‘꼬마’라고 부른다.」

왜 하필 ‘꼬마’를 강조한 걸지 고민할 이유는 없겠지.

‘꼰마’를 연상시키기 위함이리라.

프롤로그 마지막 컷의 광고가 그 추측을 긍정해줬다.

찡그리던 본편과 달리 활짝 웃고 있는 주인공이, 가슴을 활짝 펼친 채 말하는 컷이었다.

「꼬마…… 아니, 꼰마의 고민상담소! 당신의 사소한 사정까지 함께 고민해드립니다. 포기하지 말지? 매일 7~11p.m.」

……이건 PPL도 아니고 아예 직접광고인데.

포털 측에서 잘도 허락해줬다 싶었다.

딴에는 바이럴마케팅이 될 거라 생각한 걸까.

「도세나님. 이 광고는 다시 생각해주세요.」

「도세나 : ㅎㅎ 이미 2화까지 보냈는데요? 수정불가!」

「저로서는 염려가 됩니다. 작품 자체로만 평가하면 분명히 좋은 반응이 클 듯하지만, 이렇게 독특한 방법으로 다른 플랫폼의 방송을 홍보하면 악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도세나 : 음.. 혹시 싫으신거예요?」

「싫을 리가 있겠습니까? 내게는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하지만 도세나님.. 알잖아요. 이건 악플을 유발할 수 있어요.」

「도세나 : 응?」

「도세나 : 어 아닌데..」

「도세나 : 꼰마님. 저 사실은.. 이렇게 말하면 걱정하실까봐 말씀 안 드렸는데요, 이거 되게 전략적인 포석인데요?」

「예? 어떤..?」

「도세나 : 왜, 악플 다는 것도 스트레스나 시샘? 막 이런 거 때문에 그럴 때가 많잖아요. 근데 그런 사람들도 꼰마님 방송에 호기심 갖고 보기 시작하면 안 그럴 거 같아요. 왜냐면 되게 마음이 따뜻해지니까.. 그래서 제 웹툰 보는 분들이 다 꼰마님 방송 봤으면 하는 거예요. 너무 약았죠? ㅎㅎ」

그게 어디 약은 건가, 약은 척하는 거지.

8할은 내 방송을 띄워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방송 하나가 악플을 막아주리라고 믿을 정도로 순진무구한 소녀는 아니니.

물론 나야, 정말로 그걸 해낼 생각이다.

평생 아주 멍청하게 살아갈 호구니까.

다만 아직 능력이 조금 부족하다고 판단해, 예정보다도 1주 일찍 공개된 도세나의 웹툰이 영 걱정됐다.

그러나 그것도 예의는 아니었던 듯했다.

「도세나 : 아~~ 근데 왜 웹툰얘긴 안해줘요ㅠㅠ」

「도세나 : 저 지난번에 선공개하고 의견 수렴해서 되게 많이 고쳤는데」

「도세나 : 박건무 디자인 어때요? 잘 나왔죠? 괜찮죠?」

아마도 박대민+꼰마를 의미하는 듯한 박건무 캐릭터는, 미중년이라는 단어를 고스란히 형상화한 듯했다.

댓글의 절대다수가 주인공 너무 멋있다는 내용.

기획팀장이 연습생들을 데리고 방송국을 도는 시퀀스는, 아마 초기 에피소드라는 연습생 서바이벌과 관련이 있으리라.

그런 측면에서 전개가 기대된다는 댓글들도 꽤 많았다.

다행히도 아직은 이렇다 할 악플이 보이지 않는다.

주로 팬들 위주로 본 상황이라 그런 거겠지만……

새로운 팬으로서, 나도 한마디 격려는 해줘야 할 것 같다.

「도세나님.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아름다운 그림과 마음을 사로잡는 나레이션 세팅이었어요. 다른 멍청이들이 뭐라고 지껄이건, 제게는 이게 세계 최고의 웹툰입니다.」

「도세나 : ..웹툰 처음 보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말은..」

「도세나 : ㅋㅋㅋㅋㅋㅋㅋ아진짜」

「도세나 : 고마워요」

「도세나 : 오늘은 댓글 안보고 TV만 볼게요」

「도세나 : 꼰마님, 굿밤되세요 ♥」

정말 그래선 안 됐던 건데, 마지막 하트를 아내가 목격했다.

손님이 많은 까닭인지 당장은 지적하지 않더라.

그게 더 무서웠다.

일단은 그보다 우선할 일이 있지만.

“얘들아. 부탁이 하나 있는데, 지금 웹툰 어플 좀 켜줄래? 신작 <기획팀장> 읽어보고 선플을 좀 남겨줘.”

“예? 혹시, 도나쓰 작가 신작입니까?”

“어? 그거 벌써 나왔어요? 와!”

“하하. 부장님 자기 사람 챙기는 건 알아줘야 된다니까.”

그 말이 또 무서웠다.

모쪼록 ‘자기 사람’이라는 말에 아내가 발끈하지 않았기를.

이후로 웹툰 이야기를 꽃피우며 30분쯤을 보냈다.

그 뒤가, 피날레를 맡은 ‘꼰마’의 등장이었다.

“나왔다! 부장님 차례예요!”

내 모습을 TV로 보는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프리월드 최고참으로서 미디어 관련 뉴스의 인터뷰에 참여한 적도 있었던 까닭.

그렇지만 NBSC의 힘을 얻은 뒤로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무려 10분의 분량을 배정받은 일 역시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꼰마라고 합니다.]

“부장님 멋지십니다!”

“꼰순아, 아빠 TV 나온다!”

“아, 박지수라니깐요.”

“부장님, 간지가 좔좔 흐르시네요. 미중년 끝판왕!”

“이거 나가면 섭외 쏟아지겠습니다. PPL도요.”

유관부서 미팅 때처럼 말하는 제휴사업팀 정해진 과장의 말에 웃어주고 나서, 가만히 TV 속의 나를 바라봤다.

고아들을 논하는 중년의 인방러.

따뜻하고 강인한 목소리가 압도적인 ‘화술’을 전달한다.

생방송 다 봤다던 송성희가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였다.

“아…… 진짜, 부장님은 사람을 너무 울려요.”

“야 야, 상사 집에 와서 질질 짜면 되냐?”

“내가 언제 질질 짰어요, 이 명과장아. 나 티슈 좀 줘요.”

“어휴. 자 받아라. 아무튼…… 부장님. 이거 진짜 임팩트 좋은데요? 클로즈업도 잘 잡아주고 브금도 깔끔하게 들어가서, 본 사람들은 일단 반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정 과장 말대로 섭외도 쏟아질 거 같고…… 진짜 유명해지시겠어요.”

명현수의 말대로였다.

이미 과분할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앞으로는 그 이상일 터.

저 ‘꼰마’는 열차를 타게 될 것이다.

공중파 신규 프로그램에서 얻어낸 10분의 분량.

화제성 높은 도나쓰의 신규 웹툰에 올라가는 직접광고.

그것들이 순례자의 사막 위에 철로를 올릴 터였다.

안전장치 하나 없는 구형 레일바이크만을 쥐어준 채로.

그런 생각을 아내 역시 한 모양이었다.

내 옆에 몸을 붙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더라.

“여보. 당신…… 정신 바짝 차려야 될 것 같아.”

염려할 법도 한 일이다.

평범하게 살던 이가 갑자기 유명세를 타게 되면, 그리고 그것이 주변의 높은 기대감을 부르는 방향이라면, 그건 행운이라고 할 수 없다.

외부의 찬사들이 오히려 내적인 고통을 부르게 된다.

그 결에 초심을 잃고 선로를 이탈한 사례가 얼마나 많던가.

하지만, 우선은 염려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모든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영웅은 아니다.

그러나 죽을힘을 다해 철로를 붙잡을 것이다.

아내와 딸의 자랑스러운 남편으로서, 이 땅 모든 내담자들의 존경할 만한 멘토가 되기 위해서.

그런 생각 속에서 옛 직원들과 작별의 포옹을 나눴다.

유보원 차장이 울컥 눈물을 보이더라.

“부장님…… 스타 되셔도, 판교 자주 오실 거죠?”

“자주 갈 수밖에 없잖아? VR 업무도 있으니.”

“인방 하다가 스타 돼서 방송 접은 친구들도 많고 해서…….”

“안 그래. 100만 동시시청자 유치가 꿈이거든.”

“우, 우와.”

그렇게 직원들을 보내놓고, 우선희 대리가 사온 캐릭터 인형에 푹 빠진 딸애마저 들여보낸 뒤, 아내와 마주앉았다.

먼저 카톡을 보여주면서.

“이런 식으로 대화가 된 부분이야. 염려할 일은 전혀 없어.”

“……염려할 줄 알았다니 다행이네.”

“그래도 걱정된다면, 앞으로는 더 선을 긋도록 할게.”

“당신 때문에 간신히 우울증 극복한 사람한테?”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야. 도세나 내담자의 경우엔 단순의존관계라기보다 내적인 추동을 이끄는 뮤즈 같은……”

“하핫. 뮤즈라고 하니까 이상해.”

“음. 화 난 거 아니었어?”

“장난친 건데, 좀 눈치 좀 채시지? 됐어. 당신 믿어.”

최근 여러 차례 들은 ‘당신 믿어’지만, 어감이 묘했다.

뭔가가 좀 더 진전된 듯한 느낌이었다.

“내 어떤 행동이 믿음을 줬을까?”

“당신 행동은 아니고, 직원들 얼굴 보니까.”

“응?”

“나, 당신 회사 임원들 말고 다른 직원들이랑 얘기 나눈 거 이번이 처음이다? 가끔 한밤중에 통화하는 목소리나 들었지. 그래서 기분이 묘했어. 예전엔…… 왜 오피스와이프 이런 말도 있고 하니까, 사람 마음 잘 사는 당신한테 여자들 들러붙고 그러지 않을까 의심했었거든. 그런데 오늘 온 사람들 얼굴을 쭉 보는데…… 당신 보는 시선이, 사람으로 안 보더라. 정말 아빠 보듯이 보고 있었어. 약간 사이비 종교 같았어.”

그야, 어버이날에 옛 상사를 찾아오는 것부터가 별일이다.

그렇다고 사이비 종교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복잡하지만.

“그래서 알았던 거야. 당신 정말…… 정말 약한 모습 안 보이는구나. 밖에서는 언제나 남 이야기 들어주기만 하는 그런 바보였구나. 그걸 이번에 확신했어. 그런 사람은, 남자로는 안 보이지. 정말 다행이야.”

“음. 기분이 복잡한걸. 당신한테도 그런 거야?”

“뭐? 그건 또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아내는 흐뭇해서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마치 연애하던 때처럼, 내 볼을 양쪽으로 쭉 늘였다.

“나한테는 항상 당신 얘기만 하잖아. 이 나쁜 양반아.”

“엇…… 내가 그랬나. 미안해. 안 그러려고 노력했는데.”

“됐거든? 그게 좋다는 거야. 당신한테 내가 그만큼 특별하다는 거니까. 다 들어줄게. 힘들 땐, 언제나 나한테 얘기해.”

……선로 이탈을 염려할 이유가 또 하나 줄어들었다.

나와 함께 운전대를 잡은 아내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멋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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