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88화 (88/200)

# 88

32장 - 상담사의 용서 (3)

“유정국 교수라고 아시죠?”

조명기는 자택에 다 와갈 즈음에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를 논하면서.

내게는 특히 모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정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이셨지 않습니까. 케바케 내담자의 부모님을 치료하려 하셨던.”

“그렇죠. 그 외에도 추돌사고를 당한 아이돌이나, 아덴만의 영웅이나, 판문점 귀순 병사나, 이런저런 유명한 인물들을 직접 집도하셨죠. 나하고는 2017년부터 사적으로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소속은 다르지만 이래저래…….”

“알 것 같습니다.”

“응? 정말요?”

“개인적으로 찾아가신 게 아닙니까? 치료자로서요.”

“……어떻게 알았어요?”

“그런 분이시잖습니까.”

“하하. 그래요. 내가 오지랖이 좀 넓은 편이라, 직접 만나보지 않고는 직성이 안 풀리더라고. 충분히 염려할 만한 상황이잖습니까. 직군부터가 가장 끔찍한 상태의 환자들만을 만나서 트라우마가 없을 수가 없는데, 거기다 그 교수님은…… 그 외에도 많은 문제에 맞닥뜨려 있었죠.”

그 부분도 모르는 사람이 드문 일이었다.

대중에게는 한국 최고의 외상외과의이자 시대에 보기 드문 의인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업무현장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폐쇄적 집단에서는 나서는 사람을 싫어하기 마련이니.

선진국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높은 중증외상 환자의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그는 20년간 갖은 애를 썼다.

그것이 의료원장의 욕설 등 수뇌부의 따돌림으로 돌아왔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 말했는데, 도리어 그것이 잘못이라며 손가락질 당하고, 현실은 무엇 하나 개선되지 않는 상황.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그 막막함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어떠셨습니까, 그분은.”

“엉망진창이었죠. 몸도 마음도.”

“……그렇습니까.”

“예. 참 대단한 위인인데, 그런 사람에게도 헬조선은 견디기 어려운 지옥이었던 모양이에요. 그냥 한담이나 좀 나누다 나왔습니다. 내가 뭐라고 해드릴 말씀이 없더라고.”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으랴.

평생의 꿈을 외압에 의해 부정당한 의인.

지옥의 판을 뒤엎으려다 불길에 타버린 프로메테우스.

그 마음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멀기만 하다.

“난 그래서…… 그래서 대민 씨가 걱정됐어요.”

“제가요?”

“예. 그렇게 될까봐. 드높은 이상을 추구하다가 현실의 장벽에 부딪쳤을 때, 더는 손 쓸 수도 없을 정도로 괴로워할까봐. 그래서 그 걸음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 마음이었나.

고마운 배려지만, 터무니없는 망상이었다.

나는 유정국 교수와는 다르다.

불길 위를 자청해 걸었던 그와 어찌 감히 비교나 될까.

그 생각으로 비교를 부인하려던 때였다.

조명기가 먼저 픽 웃으며 자기 생각을 철회했다.

“내 오해였어요.”

“……예, 그렇지요.”

“박대민 씨는, 쓰러지지 않을 거야.”

“예?”

“PTSD가 아닙니다. 당신은, PTG(외상 후 성장)의 가장 긍정적인 사례예요. 한 선생님이나 불독 교수님은 그걸 알아봤던 모양이지. 내가 제일 늦었네요. 미안합니다. 당신은 평생 그렇게 살 겁니다. 아주 멍청한 호구로 평생을…… 하하.”

욕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다만…… 마음에 들었다.

멍청한 호구로 평생을 할 것이라는 그 저주가.

“감사합니다.”

“참나. 난 갑니다, 호구 선생. 방송 잘해요.”

집에 들르기에는 시간이 마땅치 않아, 곧바로 원룸으로 향했다.

차를 몰면서 종종 생각했다.

고민상담소와 중증외상센터를.

박대민이 유정국과 다른 것처럼, 꼰마의 고민상담소도 중증외상센터와는 다르다.

말하자면 정신건강 분야의 외래 진료.

응급 환자가 아닌 가벼운 사연들만이 들어온다.

그렇기에 나는 생사의 기로에 선 피투성이 환자들만을 상대해왔을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중증의 환자들이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자신이 찾아가야 할 곳이 병원의 정신과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별다른 생각 없이 채팅에 참여하는 이들이.

그날 방송의 첫 번째 사연이 그런 케이스였다.

“쉬림프치즈님의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꼰마님. 우리 엄마 좀 이상한 거 같아요. 저보고 왜 이렇게 짜증 내냐고 히죽거리지 말고 잠 좀 자라고 자꾸 그래요. 저는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는데 완전 잘 그리거든요? 꼰마님 보여주고 싶은데 카톡 알려주면 안 돼요? 아 맞다, 저 꿈이 대통령인데요…….”

의식의 흐름대로 끼적인 듯한 사연.

그걸 읽다가, 불길한 느낌에 잠깐 행간을 노려봤다.

그러는 동안 채팅창이 요란해졌다.

「ㅋㅋㅋㅋㅋ뭐라는거야」

「ADHD아님?」

「뉴타입관종이네 꼰마님 무시해여 ㅋㅋㅋㅋ」

「쉬림프치즈 : 왜 안읽어줘여? 전자녀해야겠다」

[쉬림프치즈님 별사탕 1개. 근데 저 잘하는게 많아서 고민돼여. 아무거나 하면 잘하거든여. 천재라서 그래여.]

「돌겠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조만간 공중부양할듯」

“……스톱. 여러분, 잠시만요. 쉬림프님과 잠깐 진지한 얘기 좀 하겠습니다. 쉬림프님. 아저씨도 쉬림프님처럼 천재적일 때가 있잖아요? 한번 내가 말하는 거 맞는지 볼래요?”

「쉬림프치즈 : ㅋㅋ 먼데여」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하죠? 왁!”

「엌ㅋㅋ 먼데」

「쉬림프치즈 : 왜이래영 짜응나」

“……미안해요. 요즘 잠은 한 네 시간씩 자요? 천재니까?”

「쉬림프치즈 : 3시간자는데여」

“최근에 친구랑 심하게 싸운 적 있죠? 걔가 잘못한 일로.”

「쉬림프치즈 : ㅋㅋㅋ어케알았지 애가 깝쳐가꼬요」

「머임? 대체 머임?」

나는 정신건강의학과의 전문의가 아니다.

하지만 때로 그들 이상으로 정밀한 진료를 할 수도 있다.

NBSC의 기술이 채팅만으로도 활성화되기에.

「 약식 심리평가보고서

내담자 명 : 쉬림프치즈

평가 결과 : 양극성 정동장애를 앓고 있다. 」

……사실은 이렇게 쉽게 나오면 안 되는 결론인데.

양극성 정동장애- 이른바 조울증 중에서도, 소아청소년의 그것은 오진률이 매우 높은 정신질환이다.

사춘기 시점까지 조증과 우울증 삽화가 뒤섞여버리는 까닭에, 정신분열이나 ADHD로 오진되는 경우가 특히 많다고.

한 번의 진료로 확진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그런 것이 한 번의 [내담자 평가]로 오류 없이 보고되었다.

110의 ‘진단’이 유의미한 증상을 캐치한 까닭.

의심 단계이던 그것을 [내담자 평가]가 확인해줬다.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조울증은 그 자체로도 자살률이 10%를 넘는 질환이다.

소아청소년 시기에 발병했다면, 오진과 방치 등 다른 이유들도 작용한 까닭이겠지만, 그 비율이 무려 20%를 넘긴다.

그야말로 명재경각의 질환.

고민상담소 따위를 찾아올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후의 상담은 신중해져야 마땅했다.

마치 중증외상센터의 응급 수술처럼.

“쉬림프님. 혹시 부모님이 옆에 계십니까?”

「쉬림프치즈 : 아녀 나 방인데 ㅋㅋㅋ」

“부모님을 모셔와주세요. 쉬림프님의 천재성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10초 드릴게요.”

「쉬림프치즈 : ㅋㅋㅋㅋㅋㅋㅋ그래여」

「..먼상황인지 1도머르게따」

「꼰마님 왜그래여?」

「효준한 : 자네 지금 대체 뭘 하려는 겐가?」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겠습니다. 쉬림프치즈님? 부모님 옆에 오셨습니까?”

「쉬림프치즈 : 엄마왔는데 ㅋㅋㅋ 천재성 말해여」

“예. 어머님. 침착하게 들어주세요. 따님께서 현재 조울증을 앓고 계실 확률이 상당히 높아 보입니다.”

「쉬림프치즈 : 아 머래? 존나짱나게」

망상에 가까운 자기긍정과 비정상적으로 빠른 기분전환.

그 모두가 조울증의 증상에 해당한다.

조증과 우울증이 보통 몇 주 단위로 교대하는 성인기 조울증과는 달리, 소아청소년 조울증은 혼재 양상이 강한 까닭.

한효준이 즉각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 역시 그 가능성을 인지했기 때문일 터였다.

「쉬림프치즈 : 저기 진자요 왜요 무스닐이에요」

그렇다고 이렇게 어조까지 변하지는 않겠지.

모친이 핸드폰을 빼앗아 채팅에 참여한 듯했다.

“어느 정도 의심은 하고 계셨을 겁니다. 지금은 주로 조증 삽화가 강한 것 같지만, 때때로 심하게 우울해져서 방에 틀어박힐 때도 있었지요? 복통과 피로를 호소하고, 이유 없이 짜증을 내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심하게 민감하게 굴거나.”

「쉬림프치즈 : 아」

「쉬림프치즈 : 그런적도 있었고요」

「쉬림프치즈 : 선생님 어떡해야되나요」

“저는 의사가 아닙니다. 진료나 치료는 할 수 없어요. 정신과를 찾아가십시오. 쪽지로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방송 마치고 이 분야에서 가장 믿을 만한 병원들을 추천해드리겠습니다. 어머님, 마음 강하게 먹으세요. 청소년기의 조울증은 흔한 질환입니다. 잘 관리하면 충분히 괜찮아질 수 있어요.”

「쉬림프치즈 : 아 예 예!」

「와 이게머야」

「지금 정신병 맞춘거임? 채팅몇개갖고?」

「꼰마님 당신은 도대체..」

「헐 아니면 어쩌려고요 ㄷㄷ」

맞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진실이지만, 결과에 오류는 없을 터.

내일이 되면 쉬림프치즈는 확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꼰마가 유명세를 떨치게 되겠지.

썩 달갑지는 않은 미래였다.

이런 방식으로 유명해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아직은 소소한 고민상담만을 하고 싶었다.

내 능력이 한참 부족함을 잘 알기에.

그렇지만, 당장 며칠 안에 우울증 삽화로 전환되어 자살로 이어질지 모를 증상을 앞에 두고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담자의 의지에 반해 환경을 강제해야만 했다.

결코 즐겁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이후로도 몇 번이고 이런 일을 수행하게 될 터였다.

어쩌면 그것이 NBSC의 의지가 아닐까 싶었다.

‘오류 없는’ 기술들을 부여해, 피할 수 없는 개입의 순간을 강요하는 것.

NBSC는 나를 유정국으로 만들고 싶은 것일까.

그렇게 나를 통해 무수한 질환들을 박멸하려는 것일까.

그런 거라면……

불쾌하면서도 기쁜 일이었다.

그보다 더 적극적인 속죄는 없을 테니.

나를 원한다면, 줘야지.

이미 한 사람을 죽게 만든 살인자다.

그 외에도 또 몇 사람에게 해악을 끼쳤을지 알 수 없다.

수십 수백의 내담자를 살림으로써 그 죄를 갚을 수 있다면, 부족한 능력으로라도 전장에 뛰어들 따름이다.

“어머님. 마지막으로 당부드립니다. 조울증은 유전적 요인이 강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모든 심리 문제가 그렇듯 그것만이 이유일 리는 없습니다. 정신과 진료와 임상심리 과정에 동참하셔서 가정 내의 문제는 없었는지 확실하게 평가받으세요.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으로 변화해주세요.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쉬림프치즈 : 네 아 네 그러겠스비다」

일단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문득, 이상한 의심을 하나 품었다.

어쩌면 NBSC는……

이 시스템이 날 찾아온 이유는……

「띠링! ‘상담사’님의 ‘외모’가 1 상승합니다.」

……속죄의 결심이 ‘외모’로 이어진 건가?

이번에도 당장 이해하기 어려운 알고리즘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겠지.

우선은 방송을 진행해야 할 때다.

쉬림프치즈가 내 유일한 의뢰인은 아니니까.

시청자들 중 또 누가 중증 질환을 품고 있을지 몰랐다.

물론 그런 케이스가 흔하지는 않았다.

별다른 사건 없이 이어지는 방송 중에, 시청자의 수효만이 쉽게도 4만을 돌파했다.

방송 시작 후 한 시간도 안 돼서 나온 쾌거였다.

「찐death : 오 평일 4만따리 껌인데여 ㅋㅋㅋ」

「찐death : 초대석 하이라이트가 크긴 컸나봉가」

「찐death : 그것도 벌써 70만 찍었던데 기대됩니다아~」

케바케 초대석의 하이라이트는 연일 화제였다.

사연과 무관한 내적인 문제를 짚어내, 장기적으로 문제가 됐을지 모를 정신질환을 막아준 그림이었기에.

특히 그 내용이 드라마틱한 일가족의 교통사고다.

구독자들의 홍보가 각종 커뮤니티사이트를 달구고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늘 방송의 하이라이트도 그렇게 될 것이다.

내일 쉬림프치즈의 모친과 연락을 취해 그 진찰 결과를 유튜브 클립에 포함시킬 테니.

그때는 상담의 필요성을 회의하던 대중들도 눈을 크게 뜨고 나를 검색해보게 될 터였다.

그런 일들이 이후로도 반복된다면……

나는 살아있는 영웅이 된다.

그로써 직종의 한계를 뛰어넘어 무수한 내담자에게 시달려, 개인적인 행복 없이 그저 상담만을 하며 살아가게 되리라.

잠조차 수술복을 입은 채 자야 했다는 유정국처럼.

죄인에게 잘 어울리는, 끔찍한 미래다.

그렇지만 기분은 즐겁기만 했다.

어떤 의미에선 행복한 미래임을 아는 까닭이다.

선의와 소명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은 아니지만, 아주 멍청한 호구인 내겐, 그 내담자들이 오아시스가 되어줄 테니까.

방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무렵.

내가 얼버무리며 지나온 다른 과오를 떠올렸다.

하나뿐인 딸에게도 나는 죄인이었다.

자책과 PTSD 속에서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했던 심리는, 사랑스럽고 정의로운 딸아이마저 외로워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어떤 표독스러운 말을 들어도 불쾌하지 않았다.

아빠의 등조차도 자주 보지 못한 아이의 소외감이, 어떻게 그 아이 본인의 잘못일까 싶어서.

하지만 아내의 말대로 내 딸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봐야 할 때.

내 잘못을 고백하고, 딸에게 진짜 행복을 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귀가했던 까닭이다.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딸의 얼굴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어, 지수야? 아빠 기다리고 있었어?”

“어! 왜 이렇게 늦게 와?”

“아빠가, 좀 생각할 게 있어서.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10분 동안 서있었잖아.”

“그랬구나. 미안해. 그런데 왜 서서 기다렸어?”

“아 몰라. 이렇게 해봐.”

딸애의 손길이 몸을 숙인 내 상체를 펼친다.

뒷주머니를 경유한 그 손엔, 카네이션이 들려 있었다.

“이거 달아줘야 되는데 아빠가 집에 안 오니까.”

“아…… 그랬구나. 어버이날, 생각해줬구나.”

“쌤이 이거 달아서 사진 찍어오라고 했단 말이야. 아 가만 좀 있어봐. 빨리 달고 사진 찍고 TV 볼 거야…… 엄마!”

“엄마 방에 있다.”

“빨랑 나와! 거실에서 찍게.”

“뭐? 박지수! 넌 말을 왜 그렇게 듣기 싫게 하니? 엄마가 니 하인이야? 부르면 뛰어나와야 돼? 당신도 한마디 좀 해.”

“음. 지수야.”

“왜 뭐!”

딸은, 늘 그랬듯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 턱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행동과 다르다.

제발 나쁘다고 말하지 말아달라며 호소하고 있었다.

아마……

김 이병을 마주했던 내 표정과 닮아 있겠지.

“엄마나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러면 안 돼. 절대로 안 돼. 그런 경우에는 아빠도 화를 낼 거야. 그렇게 대해도 되는 건 아빠밖에 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지수야?”

“……왜? 아빠한테는 왜 해도 되는데?”

“아빠한테는, 지수 마음이 보이거든. 아빠가 미워서가 아니라 카네이션 준비한 게 부끄러워서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게 아빠 눈엔 다 보여. 그래서 용서해주는 거야. 알겠어?”

“뭐래…… 짜증나.”

짜증을 내는 표정은 아니었다.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하며, 박지수는 입매로만 웃었다.

오랫동안 가정을 외면한 아버지를 이미 용서했다는 듯이.

사과를 하려고 했는데, 그조차 필요치 않을 것 같네.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웃어줬다.

처음으로 아빠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준 이 어버이날이, 딸에게 더 오랫동안 추억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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