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84화 (84/200)

# 84

31장 - 케이스 바이 케이스 (2)

사고가 정신적 외상(trauma)이 되는 기작은 단순하다.

생명이나 신체의 완전성을 저해하는 방향의 움직임을, 저항하지 못한 채 당하거나, 바라보거나, 따라야만 했을 때.

그 경험은 무력감이 된다.

다시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고자 하는 본능이 각종 심리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것들이 베트남전 이후로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라 명명되었다.

다만 증상의 방향은 굉장히 다양하다.

사고와 유사한 환경에 대한 회피만이 공통점.

트라우마의 경험이 워낙 다양하니, 사람에 따라 자해를 하기도 하고, 술이나 약에 의존하기도 하고,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의 정신질환이 이어지기도 한다.

급기야는 자신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로 광적인 범죄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부적응 반응만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참전용사들조차 일부는 장애 없이 일상생활에 적응했다.

개중에는, 트라우마를 극복함으로써 과거보다 더 나아진 행동양식을 보여준 사례가 없지 않았다.

마틴 셀리그만 등은 이를 PTG(외상 후 성장)라 명명했다.

세상을 믿고 행복을 추구하는 내면의 생명력이, 결국은 전쟁 수준의 경험마저 극복하게 해준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학습된 무력감이나 부정적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나는 상담사로서 PTG의 가능성을 믿는다.

회복과 성장이 불가능하다면, 트라우마의 경험들이 너무나 부정적으로만 느껴질 테니까.

내담자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성장 가능성을 논해야 한다.

다만 그 성장이 과거를 기억 저 밑에 묻는 방식이라면, 결국은 망령으로 되살아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케바케가 바로 그런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분명 사고를 잊고 안정적으로 현실에 적응했다.

비록 차량을 두려워해 먼 거리도 걸어다니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외에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성향은 발견되지 않는다.

적어도 그는 회복의 단계에 와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부지불식간에 새어나온 눈물이, 케바케가 여전히 과거의 사건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 뭐지. 왜 이러지. 하하. 갑자기 눈물이 나네요.”

“예. 갱년기인 모양이네요.”

“예? 아, 하하하. 아 뭐예요. 저 아직 어린데.”

“그러면 눈에 먼지가 들어간 모양이군요.”

“하핫. 알았어요, 알았어요. 인정할게요. 저 아직…… 네. 불면증도 있고요, 자다가 악몽 꾸고 일어나기도 해요. 솔직히 오늘은 그런 얘기는 안 하고 싶었는데…… 이제 나름 적응도 했거든요. 근데, 한번 말해볼게요.”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내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믿어버리는 고집이 아니다.

정신적 통증을 인정하고 직시해야 한다.

그 끝에 스스로가 결코 무력하지 않은 생명임을 재확인해야 한다.

그래야만 망령에서 벗어나 호수를 정화할 수 있다.

셀리그만은 이러한 직면을 일컬어 ‘트라우마를 이야기로 엮어 새로운 삶의 원칙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케바케가 겪은 사고는 엮기에 좋지 않은 이야기였다.

“봄이었는데…… 동생이 학교 앞에 자취방을 얻어서 가족끼리 같이 거기 가보는 중이었어요. 수원인데, 계속 통학 시키다가 처음으로 방 얻어준 거예요. 저는 인서울이라 자취 못 해봐서, 그래서 방 어떠려나 하고 좀 들떠 있었고…… 엄마랑 저랑 뭐 재밌는 얘기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아빠도 웃고 있었는데…… 오른쪽에서 트레일러 하나가 신호 무시하고 달려가지고, 앞쪽이 쾅 받혔는데, 그게…… 많이 심했어요. 저만 운이 좋았던 게, 동생 갖다줄 이불이랑 쿠션이랑 뒷좌석에 쌓아둔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완충작용이 많이 됐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부모님은 그렇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이송도 많이 늦어졌대요. 동생 말 들어보니까, 바이패스? 아무튼 병실이 없다고 해가지고 계속 돌다가…….”

“그랬군요.”

“예. 며칠 이따가 깨어나서 그 얘기 들었는데…… 그때는 진짜 미치겠더라고요. 트레일러 개새끼, 병원 개새끼, 막 그러면서 소리치고 그랬는데…… 퇴원할 때는 그냥 다 잊어버리기로 했어요. 어차피 끝난 일이고……”

“동생이 걱정되셨겠지요.”

“하하. 저 그렇게 좋은 형은 아닌데. 그냥 생각해봤자 우울하니까 까먹고 싶었던 거 같아요.”

인간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그저 잊고 싶다고 해서 잊을 수 있다면, 심리 문제로 괴로워하는 내담자가 세상에 왜 그토록 많겠는가.

그런 부분을 시청자 중 한 명이 지적해줬다.

고민 마크를 단 사연이었다.

「댕댕철 : ◆ 저 케바케형 동생인데요.. 그때 형 되게 힘들어하고 그랬을 때 제가 짜증냈어요.. 형이 뭔데 힘들어하냐고 내가 제일힘들다고 나때문에 엄마아빠 다 죽은 거라고 그랬는데.. 그거때문에 형이 힘들었으면.. 미안해 형..」

「??」

「헐 ㅠㅠ」

「동생맘도 이해는되는데..」

“……사연이 하나 올라왔는데, 여기. 읽어볼래요?”

“아, 어, 진철이네. 어…… 아니, 그런 거 아닌데.”

“아닐 수도 있겠지요. 본인이 가장 잘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말 아니라고 믿는 일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다를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서는 아니에요. 케바케님도 댕댕철님도,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두 분은 잘 견뎌냈어요. 문제는 다른 부분입니다.”

많은 경우에 미움은 최강의 해결책이다.

트레일러 운전수나 바이패스(병실 부족으로 인해 응급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돌리는 일)를 선언한 의사를 증오할 수 있었다면, 형제가 자책할 이유는 없었으리라.

하지만 동생에게는 미움의 요건조차 충족되지 못했다.

「댕댕철 : 범인이 되게 울었대요 밤새고 졸음운전이었다고.. 자기도 아버지 교통사고로 잃었다고 진짜 미안하다고.. 자기가 죽일놈이라고 무릎꿇고 그랬어요. 그 바이패스 병원은 이정대병원 거긴데.. 그때 외상센터장 그분이 엄마아빠 살리려고 원장한테 멱살잡히면서 도와주려고 하셨댔는데.. 그분도 저한테 따로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자기잘못도 아닌데.. 그래가지고 뭐라고 말도 못하겠더라고요.. 그냥 다 저때문인거같고 그래서 죽겠는데 형은 소리만지르니까.. 그때 못참고 그런 얘기 했던 게.. 후회되네요..」

대형화물차량 운전수들의 현실은 각박하다.

유류비로 인해 제대로 수입을 못 내는 경우가 많고, 의뢰마다 시간제한이 붙는 경우가 허다하다.

진행 중인 건을 빨리 마무리하고자 밤샘운전 한 직후에 운 좋게 또 의뢰를 받게 되면, 바로 출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기에 트레일러 사고는 반복해서 발생한다.

거기에, 이정대학병원 외상센터장은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권역외상센터의 현실을 고발하며, 응급 상황에서 이송되는 위급한 환자들의 생명을 지켜내야 한다고 호소했던 의사.

자기 건강까지 도외시하며 환자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이를 증오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그렇기에 동생은 스스로를 미워하게 됐다.

형 쪽은, 하나뿐인 동생의 죄책감을 불식시키고 가장 노릇을 하기 위해서, 썩어가는 호수의 범람을 둑으로 막고서 멀쩡한 척 세상을 속여왔다.

그 둑이 2년이 지나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제3자의 관심을 갈구하는 형태로.

그조차도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방향은 아니라는 점이, 참 고맙고도 슬펐다.

대체 얼마나 강인한 정신력이면 그럴 수 있는 걸까.

상담사의 가면으로 자신을 숨겨온 한효준처럼, 케바케 역시 부정적 충동을 감추기 위해서 부단히도 애썼을 것이다.

노력이 아닌 노오오력…… 그렇게 표현해도 되겠지.

그렇지만 지속되고 있다는 불면증 등을 생각해보면, 이후로 악화될 가능성은 충분한 상황.

케바케의 응어리는 방치해선 안 되는 종류였다.

그런 내 생각에 반응하기라도 한 것처럼, [직면 선택지]가 발동했다.

「1. 케바케님은 거의 멀쩡해요. (R+1 S-9 P-3)」

「2. 그러다 동생까지 망가집니다. (R-1 S+9 P+9)」

……이번에도 참 극단적이네.

이 기술이 늘 이런 식이다.

양극단의 방향이라 선택할 수 없는 결과물만 제시해준다.

다만, 그 결과에 대한 예측에는 오류가 없다.

그로써 나는 조금쯤 더 나은 직면을 도출할 수 있다.

양자의 장점만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낮추기 위해 1번 선택지의 사고방식을 취한다.

참여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동생을 위하는 감정을 취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포의 증대를 위해, 나 자신의 경험을 가져왔다.

“케바케님. 우리가 참 오래 알고 지냈죠? 한 달이 됐나요?”

“아…… 네. 저 첫방부터 봤으니까, 딱 한 달 됐네요.”

“그러네요. 4월 6일부터 방송을 시작했으니까요. 한 달 동안 참 많은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첫 후원이 언제였는지도 기억해요. 아들이 교통사고로 입원했다는 황비형님의 사연에, ‘오랜만에 푹 쉬면서 아빠 얼굴 자주 볼 수 있어서 좋겠네요’ 하고 답해드린 뒤였을 겁니다. 그렇지요?”

“……그, 그랬나……? 아니, 그걸 다 기억하세요?”

“초기부터 꾸준히 후원해주신 분들은 저절로 기억에 남습니다. 그 당시에 쓰셨던 채팅 내용도 얼추 기억이 납니다. ‘교통사고 내는 새끼덜 씨를 뽑아부러야제’ 였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투리 어색한거보소 ㅋㅋㅋㅋ」

“제가 그랬어요? 아…… 매너챗 해야 되는데.”

“매너챗이었어요. 나였으면 씨부럴 정도는 붙였을 겁니다.”

“아, 하하.”

“내 부모님 역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헙…….”

웃다가 숨을 삼킨 케바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요……? 그랬는데, 어떻게…….”

“잘 운전하고 다니냐고요?”

“예? 아, 그것도…… 그렇지만 그…… 사연에 뭐라고 안 하셨잖아요. 교통사고 관련해서, 나쁜 말 안 하셨는데…….”

「ㄹㅇ」

「꼰머님 왜케착함;;」

「전에 교통사고냈다는 사연도 있었는데 별말안했음ㄷㄷ」

“……제 경우엔 케바케님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일단 사고 당시에 동석하고 있지 않았지요. 그러니 지금도 쉽게 운전을 하고 다닙니다. 아예 반대인 지점은, 운전자가 내 동생이었다는 점입니다. 전시회 축하하며 차 사줬더니, 그걸로 시승식을 하다가 추돌사고에 말려들었더군요. 황급히 반차를 내고 병원으로 달려갔지요. 간신히 유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 예…….”

“양친 명의의 모든 유산을 동생에게 주라고 하시더군요. 그때는 순간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사경을 헤매는 상황에서도, 당신들 사고 당하게 만든 멍청한 초보운전자만 챙기시는 모습에, 거의 뚜껑이 열렸지요. 그래도 유언인데 어쩌겠습니까. 따랐지요. 대신 그 뒤에 동생 깨어났을 때 세상 끔찍한 욕들을 끝도 없이 내뱉었는데…… 그 뒤로 오래 못 봤지요. 한 8년을 서로 연락도 하지 않았습니다.”

케바케- 박수철은 입을 벌린 채 듣고 있다.

김지연 쪽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졌고, 진대수는 입을 막고서 신음하고 있고.

당사자인 나만이 그저 평온했다.

이미 한 달 전에 떨쳐낸 망령인 까닭에.

“아무튼 그때에 내게 가장 신기했던 건, 임종하신 선친의 얼굴이었습니다. 웃고 계셨어요. 울화를 꾹 참으며 유산 잘 집행하고 동생 잘 챙기겠다고 답한 내 말에, 한세상 잘 살다 간다는 양, 아이처럼 행복하게 웃으시더군요. 그 얼굴이 이후로 참 자주 떠올랐습니다. 대체 왜. 운전자인 동생이야 친아들이니 어쩔 수 없었다지만, 추돌사고를 일으킨 개자식들 정도는 원망하셔야 마땅했던 상황인데, 그분은 어떻게 그토록 선하게 웃을 수 있으셨던 걸까. 케바케님의 양친은 어떠셨나요?”

“저희, 엄마아빠는…….”

「댕댕철 : 형이랑 잘 지내라고 하시고.. 웃으셨어요..」

댕댕철- 박진철의 채팅을 읽어주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떨쳐냈다곤 하지만, 잔재는 남는다.

가장 진한 것은 아무래도 슬픔 쪽.

상담사의 감정이 내담자에게 흘러들지 않도록, 눈물을 감추며 [인자한 웃음]을 사용했다.

“참 신기한 분들이시죠. 가장 큰 피해자들이신데, 왜 그분들이 우리 아들들보다 더 평온하셨던 걸까요. 어떻게 어떤 미련도 없이 웃으며 세상을 떠나셨던 걸까요.”

“왜…… 그러셨던 걸까요?”

“오래 고민해봤는데,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이미 용서하셨던 까닭이에요. 사고를 낸 가해자들을, 병실에 자리 없다며 바이패스 불러버린 응급실 책임자들을. 좀 더 정확하게는…… 신경도 쓰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들이 어떻게 벌을 받고 어떻게 반성하는지가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정말 중요한 건 지금 내 임종을 지켜주는 아들인데. 다른 병상에서 아파하고 있을 아들인데. 그깟 가해자가 뭐가 중요해서 욕하고 미워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겠어요. 남은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아주기만 한다면, 그걸로 모든 응어리가 풀어질 텐데.”

잠깐의 텀을 두고 댕댕철의 과거 채팅들을 떠올렸다.

그는 형에 비해 훨씬 더 조용한 편이었다.

채팅도 후원도 거의 하지 않고, 그저 케바케의 후원이 나올 때에만 좀 과하다는 식으로 투덜거리곤 했다.

그래서 한때는 악플러인가 의심하기도 했었지.

하지만 이제는 안다.

박진철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그런 그의 마음을, 박수철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케바케님. 해소되지 않은 미움은 가슴속에 독을 남깁니다. 지금은 그런 괴로움을 스스로를 괴롭히며 풀고 계시겠죠. 조금이라도 우울한 마음이 생길라치면, 오히려 과장되게 행복한 모습을 연기하셨을 거예요. 그럼으로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셨던 거지요. 거기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입니다. 그 성실하고 따뜻한 행동 덕분에, 동생 분의 마음을 누르던 짐이 어느 정도는 해소됐을 테니까요. 다만 그 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작 케바케님 스스로가 고통 속에서 일그러지신다면, 그때는 홀로 남을 동생이 어떻게 제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자기 때문에 온 가족이 망가졌다고 느낄 텐데요.”

“아니, 저 진짜 괜찮은데요!”

그렇게 외친 직후, 박수철의 눈동자가 떨렸다.

일단 습관처럼 답했을 뿐인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선 그 역시 자신의 상태를 모르지 않으리라.

“저기…… 만약에 혹시 그런 거면요, 어떻게 해야 돼요?”

마침내 호수의 암흑을 직시하는 형.

그 가장을 마주보며, 내 마음을 그의 호수에 던졌다.

“용서해주세요.”

“용서……요?”

“예. 졸음운전으로 신호를 위반한 트레일러 운전수를 용서해주세요. 센터장이 미워서 바이패스를 강요한 병원장을 용서해주세요. 홀로 살아남아야 했던 피해자들의 장남을…… 동생을 위해 희생하려 했던 그 가장을, 용서해주세요.”

조금 더 긴 이야기를 해주려 했다.

한마디로 바꿀 수 있을 만한 감정은 아니라 생각했기에.

그렇지만, [직면 선택지]가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3. 용서해주세요. (R+9 S-9 P+9)]

박수철은 이미 입을 떨며 울고 있었다.

1분쯤이 지난 뒤에야 눈물을 닦고 고백했다.

동생 앞에선 늘 밝게 웃었지만, 매일 밤 한강변을 달리며 머릿속에서 가해자들을 갈기갈기 찢어죽이고 있었음을.

그런 날마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불면증이 찾아왔기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었음을.

그나마 내 방송에 돈을 쓴 날에는 그게 덜했다고 했다.

웬 생불(生佛) 같은 아저씨가 다 괜찮습니다 말해주는 방송인지라, 거기서 관심을 받으면 좀 행복해졌다는 것.

기뻐하기에는 너무 민망한 이야기였다.

친동생에게는 훨씬 더했으리라.

「댕댕철 : 아 씨바.. 형 진짜 나쁘다 왜 나한테 말을안하냐 나는 그것도모르고.. 그냥 성격 이상해져서 유산만 축낸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미안해.. 내가미안하다.. 용서해주라..」

……이런 연년생은 흔하지 않겠지.

열 살이나 차이 나는 나와 중민이도 갈등이 참 많았으니.

정말 우리와는 많이 다른 형제였다.

그 방송이 끝난 뒤에, 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형. 오늘도 방송 잘 봤어. 음…… 나 그때 얘기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처음 들어보네. 형도 참 진짜 답답하다. 그렇게 욕 좀 했다고 내가 형 미워했을 줄 알았어? 난 그냥…… 형이 욕해줘서 고마웠어. 안 그랬으면 내가 날 용서 못했을 테니까. 근데…… 자꾸 그 돈이 어떤 돈인 줄 아냐, 부모님이 평생 짜장면 한 그릇도 안 드시고 너 주겠다고 모으신 돈이다, 인간답게 못 살 거면 한 푼도 쓰지 마라, 계속 그런 말만 하니까, 짜증은 좀 났던 거지. 아무튼…… 나 인간답게 잘 살고 있어. 형한테 쪽팔리게 안 살려고. 다음에 가볍게 전시회 하나 할 건데, 그때 초대할게. 보러 와줘.]

깊이 잠긴 목소리가 날아든다.

그것이 잔잔한 내 호수 위에 퐁당퐁당 잠겼다.

“고맙다, 용서해줘서.”

[……용서는. 내가 고맙지, 용서해줘서.]

용서라는 해독제가 관계를 감쌀 때.

전혀 다른 두 개의 케이스가, 그렇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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