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83화 (83/200)

# 83

31장 - 케이스 바이 케이스 (1)

꼰마상담소의 수요일은, 유일하게 크루 아닌 출연진이 등장하는 날이다.

시청자 초대석이 그 컨텐츠.

슈퍼바이저 역할의 김지연은, 버스를 타고 나타났다.

“에헴. 오래 기다리셨어요?”

“예. 그냥 내 차 타고 오지, 왜 굳이 따로 옵니까?”

“그냥 이런저런 생각할 것도 있고 해서요. 데스도 하이?”

“얍, 하이 하이. 젼쓰, 혹시 남친 문제야?”

“그랬으면 좋겠는데, 남친 없는데?”

“아하. 꽃 피는 봄에 외로우시구만? 형님, 얘 남소 가죠?”

“……넌 상담사 선생님한테 태도가 그게 뭐냐?”

“에이, 동갑끼리 친하면 좋잖아요? 근데 제 친구들은 거의 여친 있어서 소개해주기 그런데…… 우리 형님이 또 IT기업의 토니 스타크셨지. 젼쓰, 이상형 말해봐. 어떤 남자가 좋냐?”

뜬금없는 전개에 김지연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렇지만 대화의 소재에 아주 관심이 없지는 않은 듯, 이내 눈동자를 굴리며 자신의 이성관을 소개했다.

“음…… 저는 약간, 자유롭고 낭만적인? 감수성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 예술가 스타일이라고 하면 되겠다.”

“어이고. 형님, 혹시 아티스트 지인은 없으심까?”

“……한 명 아는 친구가 있긴 한데.”

“아, 역시! 어떤 분야예요?”

“예술인마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김 선생님. 정말 소개에 관심 있으십니까?”

“하핫. 그냥 해본 말이에요. 그런데 화가 분이랑은 어떻게 아세요?”

“친동생입니다. 열 살 차이가 나지요.”

“앗. 음.”

김지연은 미묘한 목소리로 침음했다.

그 반응에 머쓱해지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괜한 소릴 했네요.”

“아, 아뇨. 좀 감동했어요.”

“감동이요?”

“네. 가족을 소개해준다는 건, 절 되게 믿어주신다는 뜻이니까.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전 자만추거든요. 아시죠?”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시는군요. 알겠습니다.”

목소리에서 어색함이 느껴지진 않지만……

에둘러 표현한 거절일 수도 있겠다.

서른일곱의 화가가 연애상대로 매력적이지는 않을 테니.

그래서 더 말을 잇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대수는 그 종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젼쓰, 자만추란 건 ‘자기만족 추하다’의 줄임말이거든? 너 그러다 노처녀 된다? 아니, 이미 노처년가?”

“……별로인 찐데스님, 죽으실래요?”

“하핫. 연애를 하려면 더 적극적으로 알아봐야 한단 거야.”

“그래서 님은 연애 알콩달콩 하고 계시고요?”

“어흠. 됐고, 저 남자 어때? 존잘 아님? 오빠가 번따 해줘?”

“무슨 길거리에서 번호를 따…… 어.”

대수가 가리켰던 남자가 우릴 향해 걸어온다.

‘존잘’이란 말대로, 박중민보다 훨씬 젊고 매력적인 청년.

혹시 나를 알아보고 인사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오늘의 게스트였다.

“안녕하세요! 나와 계셨네요? 저 기다려주신 거예요?”

“아…… 이분이구나. 반가워요, 제가 찐데스예요.”

“오늘 초대석 손님? 안녕하세요, 세이클럽이에요.”

“반갑습니다, 꼰마입니다. 혹시 닉네임이 어떻게 되시죠?”

“예! 저 케바케입니다.”

예상치 못한 소개에 퍽 당황했다.

‘케바케’는 내 방송의 큰손 중 한 명.

늘 전라도 방언으로 채팅하는 독특한 인물인지라 막연히 나이 지긋한 건물주를 상상했는데, 실물과 천양지차였다.

“평소에는 사투리를 안 쓰시는 모양이군요.”

“아, 약간 컨셉이에요. 제가 관종이라서요.”

“독특한 컨셉이군요.”

“하핫. 탕력으로는 센 분들이 많으니까, 좀 기억에 남을 만한 게 뭐 없을까 생각해본 거죠. 고향이 나주기도 하고요.”

“알겠습니다. 차는 어디에 주차하셨습니까?”

“아따, 날씨가 좋아가꼬 걸어왔지라. 저 걷는 거 좋아해요. 집은 강서구인데요, 한강 산책로로 오면 경치 죽여요. 건강에도 좋잖아요? 형님들도 누님도 자주 걸으세요, 하하.”

케바케는 여유롭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객관적으로는 심리적 문제가 엿보이지 않는 태도.

그렇지만 NBSC의 ‘진단’이 뭔지 모를 경고를 보내왔다.

잘 꾸민 가면일 뿐, 그 내면은 다를 것이라는.

진대수의 표정도 그 추측의 준거였다.

말도 없이 안절부절 못하는 모양새가, 우리 중에서 유일하게 사연 내용을 읽어본 그의 복잡한 심리를 보여줬다.

다만 그것이 어떤 연민이나 공포 같지는 않았다.

그저 방송에 피해를 주진 않을까 염려하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케바케는 방송에서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른 시청자들의 사연에 답할 때가 특히 그랬다.

“오비삼락님은 그거 같네요. 약간 회피하는? 그런 성격이요. 그게 나쁜 건 아니라고 저도 생각하거든요? 근데 약간…… 좀 더 편해지실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 같네요. 친구들이 짓궂게 굴면 이렇게, 딱 턱 들고 한마디 해보세요. 어, 재밌네. 야, 더 해봐. 어디까지 가나 한번 보자. 해봐, 이 자식들아.”

「엌ㅋㅋㅋㅋ」

「케바케성님 멋있소~」

「아따 근데 왜 사투리 안쓴당께요??」

“아따, 전라도 사투리가 그런 것이 아니요. 당께요만 붙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랑께. 오늘은 표준어 좀 쓸게요, 형님들.”

「본인인증 완료 ㅋㅋㅋㅋㅋ」

「신기하네 난 사투리 절대안고쳐지던데」

“암튼 그 얘긴 그만해요, 형님들. 죄송합니다, 꼰마 형님. 저 때문에 상담 자꾸 꼬이네요. 오비삼락님도 쏘리요.”

「오비삼락 : ㅋㅋㅋㅋ 괜찮음」

「오비삼락 : 근데 케바형 꼰마형님옆에서도 안꿀리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죠. 형님 20대 때 저 같은 거 트럭으로 있어도 다 압살하셨을 텐데. 안 그러십니까, 형님?”

직접 방송을 해도 잘할 것 같은 청년이다.

외모도 준수하고 말도 유쾌하게 하는 까닭.

다만 그럴 일은 없을 듯했다.

양친이 모두 돌아가시고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아, 소일거리 삼아 카페 알바만 하고 있다고 하니.

“저 일하고부터 카페 매출이 두 배로 뛰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시급도 두 배로 줘요. 이상한 사장님이죠?”

“매출이 두 배면 순이익은 서너 배일 텐데, 당연한 일이지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관계 같네요.”

“하핫. 그런가? 아무튼 진짜 재밌어요. 다른 알바들도 저 되게 좋아하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제가 좀 김탄이거든요. 아시죠? 상속자들. 이런 거 얘기하면 좀 꼴불견일 수도 있는데, 어쩌다보니 유산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아, 사연 올라왔다. 꼰마 형님, 이번에 제가 읽어도 돼요?”

“예, 그러시죠.”

활달한 미남이 마음껏 활개를 치도록 놔둔 채, 김지연과 시선을 교환했다.

그때쯤엔 그녀 역시 문제를 인지한 듯했다.

케바케가 신나게 떠드는 사이에 귓속말을 건네더라.

“연극성 인격장애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HPD(histrionic personality disorder), 연극성 인격장애.

외모 등 성적인 매력으로 주변의 주목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정신질환으로, 주로 SNS에서 관심받기를 갈구하는 이들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충동의 달성 과정이 과장스럽고 연극적인 표현방식으로 드러나기에 ‘연극성’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

일상적인 신조어 중 ‘관종’과 어느 정도 상응한다.

관심을 갈구하는 성미가 통제 불능의 지경에 이르면, 그때 연극성 성격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고 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교집합이 아닌 경우도 많다지만.

2부에서 본격적으로 게스트 상담을 진행해보니, 케바케의 고민 사연이 바로 그것이었다.

“저 요즘…… 슬슬 이게 좀 심하구나 싶거든요. 요새 거의 관종 마스터레벨 된 거 같아서 걱정이에요. 솔직히 재밌긴 한데, 약간 가끔 보면 내가 왜 이러지 싶을 때도 있고 그러거든요. 꼰마 형님이랑 세이 누님이 좀 그러지 말라고 해주시면 말 잘 들을 거 같아서, 이렇게 초대석 신청하게 됐습니다.”

“그러셨군요. 주목을 받고 싶으실 때는 어떤 느낌인가요?”

“예? 어, 뭐 딱히 느낌 같은 건 없는데. 그냥 재밌게 장난도 치고 싶고 뭐 그런 거거든요.”

“네. 내가 왜 이러지 싶을 때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하고 나서 생각하는 거죠. 예를 들면 우리 꼰마 형님 방송 만따리 됐을 때! 제가 별 만 개 충전해서 쏘고 나서 생각한 거죠. 아이고? 이거 좀 너무 갔는데? 하하하.”

김지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볼펜을 까딱거렸다.

어떤 말로 상담을 이어갈지 고민하는 듯했다.

HPD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까닭이리라.

하지만, 어째선지 그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직감.

대부분의 경우에 그런 느낌이 진실을 담보하곤 했다.

NBSC의 ‘진단’이 이미 110에 이르렀기에.

김지연 역시 잠시 후에는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몇 번의 대화 뒤에 석연치 않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라.

“그러니까, 어렸을 땐 그런 충동이 없으셨다는 거네요?”

“그냥 평범했대요. 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나.”

“가족 분들이 그렇게 말씀해주신 모양이네요.”

“예. 동생까지 해서 네 명 가족이었는데, 걔가 요즘 저 보면 그래요. 형 요새 좀 이상하다고. 너무 관종 됐다고, 하하.”

연극성 인격장애는 보통 나이가 들며 약화된다.

아무 전조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질환은 아닌 것.

그렇기에 김지연도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언제부터 성격이 바뀌신 거예요?”

“글쎄요? 한 1년 됐나?”

“그렇군요. 그 무렵에 혹시 사고 같은 걸 겪으셨나요?”

“아뇨? 부모님 돌아가신 건 3년 전이고, 작년에는 별일 없었는데. 아, 동생이 대학 졸업했어요. 저희 연년생이거든요.”

“네…… 동생 분은 혹시 취업을 하셨나요?”

“아이고, 걔 그거 취준생이에요. 제가 볼 땐 백수로 늙어죽을 것 같아요. 노오오력을 안 해요 노오오력을, 하하.”

“그런가요. 동생 분과의 사이는 어떠세요?”

“저희요? 좋죠. 관종 됐다고 하는 것도 사실 그냥 놀리는 거고, 저 좋아해요. 짜식이 귀여워요. 아니 연년생이 이러면 좀 웃기긴 하겠는데, 애가 진짜 귀염상이거든요.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하고 있고요. 요즘 취준생 주제에 연애도 하고 있는데, 여친이랑 싸울 때마다 저한테 상담하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저도 나름 꼰마님이랑 세이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 거라고 하면 좀 웃길라나요? 하하.”

‘진단’이 작동하는 부분은, 이런 경우다.

과장스런 너스레를 떠들고서 하하 웃을 때.

그때마다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요…… 일단 돌아가서, 다시 관종 얘기를 해볼게요. 그 단어를 들을 때 기분은 어때요? 불쾌하진 않으세요?”

“아뇨? 전혀요. 전 그냥 뭐, 이렇게 살아도 될 것 같아요. 별사탕 충전만 너무 많이 안 하면? 하핫.”

“그래요. 혹시 다른 취미는 뭐가 있으세요? 드라이브?”

“예에? 아뇨, 저 걷는 거 좋아해요. 차는 뭐 굳이 타야 되나 싶고 그러네요. 자연을 느끼면서 워킹, 좋잖아요?”

“저, 케바케 내담자님?”

내가 끼어들자, 시청자들이 ㄲㅁㅇ을 타이핑했다.

별다른 진전 없이 이어진 대화가 벌써 10분.

슬슬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한마디를 기대하는 듯했다.

사실 상담에서 뜬금없는 일침이란 나올 수 없다.

소통과 공감을 쌓고 쌓아 인지를 변화시키는 것이 상담의 본질이기에.

그저 빤히 바라보다가 한마디 찔러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건, 셜록 홈즈 같은 프로파일러 직종의 미덕이었다.

그렇지만 가끔은 나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

오류 없는 [내담자 평가]를 활용한다면.

「 내담자 명 : 케바케

평가 결과 : 대담하고 미래지향적이다. 차를 두려워한다. 」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자꾸 캐내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 부모님의 사고에 대해 한 가지 더 여쭤봐도 될까요?”

“아, 괜찮아요. 벌써 옛날 일인데요 뭐.”

“감사합니다. 케바케님의 부모님께선, 혹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까? 거기에 케바케님도 동석해 계셨습니까?”

“……어라?”

케바케는 눈을 연신 깜빡거렸다.

잠시 뒤에는, 손가락을 들어 날 가리켰다.

“와! 뭐예요?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사연엔 안 썼는데?”

“저, 정말, 어떻게 아셨어요?”

김지연까지 동참해서 내게 시선을 모았다.

전혀 즐겁지 않은 감탄이다.

애초에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었고, 시청자들은 대본 아니냐는 의심을 공론화하고 있는 상황.

재빨리 직면 과정에 돌입해야 할 듯했다.

물론, 아직은 시기상조.

나는 케바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NBSC는 셜록 홈즈 이상의 직관까지 제공해준다.

한 사람에 단 한 번 정도는.

「 [정문의 일침]을 사용합니다 > 케바케

주제 ‘교통사고’에 대응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 ‘PTSD’ 」

……그랬구나.

짐작하고 있던 부분이 맞아떨어진 점에, 못내 슬퍼졌다.

[정문의 일침]이 드러내주는 것은 본격적인 상담을 유도하기 위한 키워드.

거기에 PTSD가 나왔다면, 케바케의 문제는 결코 관종 같은 것이 아닐 터였다.

“잠깐 대화 나눠본 것뿐이긴 하지만, 케바케님은 무척 대담하고 미래지향적인 분으로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저희 방송국에 오실 때, 저희 디렉터가 차로 모시겠다는 것을 거절하셨죠. 그리고 적어도 한 시간을 걸어오셨습니다. 또, 드라이브를 말하며 미약하게나마 불안한 표정을 지으셨지요. 그 지점에서 문득 생각해봤습니다. PTSD의 가능성을요.”

“예? 어? 그, 트라우마요?”

“예. 소중한 분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의 기억은, 성격에도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어라? 어…… 근데 저 트라우마 같은 거 없는데요? 제가 닝겐노 멘탈와 튼튼데스네여가지고…… 그거랑은 딱히…….”

당황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케바케를 바라본다.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참 많다.

정신적 통증이 눈에 보이는 종류가 아니기에.

잠재의식이 아무리 호소를 해도 그럴 리 없다며 무시하다가, 마침내 강박이나 발작 등의 발현으로 드러났을 때에야 조심스레 정신과를 찾게 된다.

케바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회의 문제일 것이다.

정신질환을 터부시하는 대중의 문화가, 그리고 개인에게 정신적 강인함을 강요하는 풍조가, 문제를 악화시킨다.

마음만 먹으면 상담소가 멀지 않은 시대인데.

그 마음을 먹지 못하게 세상이 막아서기에, 더 빨리 인지할 수 있는 문제들이 마음의 호수 밑에서 썩어가고 만다.

케바케의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

과거의 박대민이었다면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심연.

그러나 지금은 그 호수의 밑바닥이 보인다.

그 문드러진 마음을, 내 안에 담을 수 있다.

“케바케님. 헐크도 큰 충격을 받으면 변신이 풀리고 맙니다. 하물며 인간은 어떨까요. 가장 강한 육체도 날붙이에는 잘려나갑니다. 정신 역시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끔찍한 사고 앞에서는 상처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해요. 낫닝겐이에요, 그건.”

“아…… 하하. 그래요? 근데 전…… 진짜 괜찮은데. 상담 받고 싶은 건 관종끼인데요? 그거는 작년부터 그랬던 거라, 3년 전 사고랑은 별로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트라우마는 좀 히스테릭하고 그런 거잖아요? 저랑은 다르지 않아요?”

“정신적 외상 이후 증상 발현까지 수년이 걸리는 사례가 드물지 않습니다. 그리고 증상의 방향은…… 세이 선생님?”

“……아, 네! 아, 그럴 수 있어요. S-PTSD를 염려해야 맞을 것 같아요. 물론 이제, 흔히 들어보신 트라우마틱한 반응들과는 매치가 안 되실 거예요. 그저 좀 튀실 뿐이지, 신경증적으로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는 않으시니까. PTSD 반응이든 다른 정신질환이든 문제행동이 있어야 진료를 받으니까 주로 부적응 유형들만 강조되곤 하지만, 사람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케바케님은, 안정적 적응 유형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건 정말 다행한 일이지만…… 얘기해봐야 할 부분이 많겠어요. 혹시 오늘 잠은 충분히 주무셨어요?”

“어우…… 그게요…… 오늘 잠 좀 설치긴 했는데, 근데 그건 오늘 이제, 방송 나오니까, 설레서 그랬던 건데요.”

“정말인가요? 사고 때의 기억을 꿈으로 꾸거나, 불면증 같은 수면장애를 겪고 계시지는 않나요?”

케바케는 딱 소리 나게 입을 닫았다.

그리고 눈을 아주 가늘게 떴다.

분명한 회피의 태도.

김지연의 질문이 핵심을 짚었다는 반증이었다.

심리적 문제를 자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회성(Simple) PTSD 속에서도 안정적 적응 유형을 보여주고 있는 케바케는, 그게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는 그가 가장이니까.

어리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동생에게 하나뿐인 보호자가 되었으니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면 동생의 버팀목이 무너진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증상을 외면하며 자신을 다잡아야 했을 터였다.

검게 물들어가는 호수 위에서 괴로워하면서도……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젓고 있었으리라.

케바케는, 나와 참 많이 다른 형이었다.

“케바케님. 저는…… 사실 이 상담 자체가 실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요청하신 사연과 전혀 다른 문제처럼 느껴지실 수도 있고, 상처를 후벼파는 말들로 정신질환을 끌어내려는 시도가 불쾌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뇨 뭐…… 불쾌한 건 아닌데…… 진짜 아니라서요.”

“예.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이상심리학을 함께 공부하는 상담사지, 병증의 확진이 가능한 의사가 아니니까요. 다만 이 말씀만큼은 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누구도 견디기 힘들 사건을 겪고, 소중한 부모님을 불의에 잃게 되셨는데도, 이토록 훌륭한 청년으로 자라주셔서요.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동생 분을 멋지게 지켜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

케바케는 바람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미남의 얼굴이, 흘러내리듯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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