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81화 (81/200)

# 81

30장 - 상담사와 크루 (2)

“아, 또 아홉수네. 오늘 뚫었어야 됐는데.”

진대수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 그렇게 투덜거렸다.

네임드 BJ 둘을 초빙하고도 시청자 4만을 못 뚫은 까닭.

하지만 아쉬워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정보람도 이호정도 이미 탐방과 합방 등으로 시청자들이 상당수 연결되어 있어, 새로운 시너지를 기대하긴 힘들었으니.

평균 3만 시청자를 달성한 게 애초에 그들 덕분이다.

꼰마크루 창립일의 시청자 수가 3만 9천에 머물렀다 해서 아쉬워할 건 없었다.

“조바심 내지 마. 조만간 달성할 수 있겠지.”

“평화로우시구만요! 전 아쉬워 죽겠다고요. 오늘 방송 진짜 좋았는데. 더 많이 봐야 될 거였는데. 왜 안 보는 거지?”

“내용이 좋다고 해도, 자극적인 방송은 못 되잖아? 그런 걸 3만 9천이나 봐주신 게 감사한 일이야.”

“그야 요즘 애들이 자극적인 거에 뿅가는 건 사실인데, 그래도 형님 방송은 보면 반할 수밖에 없는 뭔가가 있슴다. 아직도 마케팅이 부족한 거지 이건. 저한테 맡겨주십쇼. 조만간 괜찮은 건수 하나 물어올 테니까요.”

“그럴 거 없어. 곧 웃기네 본방도 나갈 거고…….”

“뽈롤롤롤로!”

대수는 귀를 막고 주술 같은 소리를 외며 떠나갔다.

참 귀여운 부단장이었다.

신설 꼰마크루가 방송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대중이 알게 될 크루원은 BJ들뿐이겠지만, 그 외에도 무수한 손길이 필요한 집단이기에.

일단 진대수는 연락과 조율 등 부단장 업무를 해줘야 한다.

그리고 이수아가 나레이션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강제적 독립까지 1년도 남지 않은 아이.

그러나 입양의 가능성은커녕 결연후원자도 없어, 이후 진학은 고사하고 방 하나 구하기도 어려울 형편이다.

그렇기에 자립의 여지를 주고 싶었다.

본인이 원한다면, 독립 후 꼰마재단에 취업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일.

내가 사고라도 당하면, 재단은 사상누각이다.

수아에게는 스스로 돈을 모을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다.

그 지점에서, 매일 방송을 모니터링하며 나레이션을 넣는 일이 썩 나쁘지는 않은 아르바이트로 여겨졌다.

사실은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하게 해줘야 맞겠으나……

해소되지 않는 경제적 불안은, 학업능력마저 저해한다.

보육아동들의 성적이 좋지 않은 근본적 이유였다.

그렇기에 그녀도 곧바로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재택근무로 2만원의 시급을 받는 건 축복이니까.

그 돈을 차곡차곡 잘 모아, 혹시 내가 더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에도 스스로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나야 그런 날이 오지 않길 바랄 따름이지만.

그렇게 꼰마크루의 인원은 5명이 됐다.

이후 매월 두 명씩 BJ 크루가 추가될 예정.

다만, 자막 담당자 쪽은 문제가 좀 더 복잡했다.

기본적으로 심리학에 최소한의 조예가 있어야 하기에.

유명 정신과 의사의 유튜브 편집자가 ‘방어기제’를 지속적으로 ‘방어기재’로 기재해 빈축을 샀던 일이 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일상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단어니.

전공이 다르면 고학력자라 해도 실수하기 쉽다.

내 방송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세한 개념의 분별을 위해 때로는 전문용어를 섞어서 방송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

그럴 때마다 자막의 오류를 지적하며 상담을 진행하면, 거듭 흐름이 끊기며 방송의 질이 떨어질 터였다.

그렇기에 모집공고의 위치는 학과 게시판이 됐다.

서울대 심리학과 재학생이라면 기본적인 단어를 혼동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오히려 때로는 내가 미처 해설하지 못한 용어들을 자막으로 풀어서 설명해줄 수도 있을 듯했다.

하지만 면접일 아침까지도 많은 지원자를 기대하진 못했다.

재택근무라곤 해도, 근무시간이 7~11p.m.인 까닭.

한창 놀기 좋은 시간대에 저녁밥 허겁지겁 먹고 알바를 뛰고 싶을 대학생이 흔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건 현실에서 동떨어진 추론이었다.

과사무실에서 빌려준 강의실 앞 복도에 학생들이 넘쳐났다.

장준범을 비롯한 19학번들에, 다수의 18학번과 20학번들이 눈동자를 빛내며 내게 박수갈채를 안겨줬다.

심지어 학부생이 아닌 얼굴도 끼어 있었다.

“어…… 고맙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께서 와주셔서 참 기쁘긴 한데…… 제가 좀 고지를 잘못했나 싶네요. 시급 2만 원짜리 알바입니다. 세 명을 뽑을 예정이라 충분한 수입이 안 될 거예요. 석사 과정이 지원할 수준은 아닐 텐데요.”

석사 1학기 우지현은, 멋쩍은 듯 앞머리를 꼬았다.

그러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공부가 될 것 같아서요…….”

“어, 제 방송의 자막 작업이요?”

“네……. 그게, 저도 솔직히 고민이 돼서 교수님한테 여쭤보고 그랬는데요, 생각이 있으면 일단 면접 보라고 해주셨어요. 상담사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배우는 게 참 많을 거라고요. 그래서 용기 내서 참석하게 됐습니다.”

그 교수님도 참, 대학원 과정의 전문인력이 자막 달면서 뭘 배울 수 있다는 건지.

어쨌든 대화를 들은 학부생들의 눈까지 초롱초롱해졌다.

첫 순번으로 들어온 장준범과 정은수는, 서로 경쟁하듯이 자신의 업무적합성을 자랑했다.

“형님, 일단 저 한글 600타 친다는 점!”

“초딩 때 아니고? 오빠, 저 번역 알바 하면서 하루에 거의 A4 열 장씩 썼어요. 거의 타자의 신이에요.”

“됐고, 형님! 전 채팅 치는 거 보면 아시겠지만 신조어 빠삭해요. 쟤는 문찐(문화 찐따)이라 그런 거 잘 모르거든요.”

“아니거든? 오빠, 저도 잘 알아요!”

“……일단 둘 입장은 잘 알았다. 재하는?”

조용히 옆에서 손가락만 꼬물거리고 있던 민재하는, 가려진 눈 아래로 희미하게 웃었다.

“저, 1000타 쳐요. 애국가는 1300까지 쳐봤어요.”

“헐?”

“와우?”

놀랄 일은 아니었다.

타이핑이야 어차피 보고 치는 것이 아니니.

고수들의 경우, 시스템의 딜레이만 없다면 화면을 아예 꺼놓아도 오타 하나 내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청각에 집중하며 놓치는 단어 없이 기재하는 데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유리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동시자막이야 분당 500타만 나와도 충분하다.

그것으로 우열을 가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너희가 말하고자 하는 뜻은 이해했어. 그렇지만 난 타자경연대회를 열 생각은 없다. 지금 이상하게 많은 친구들이 지원을 해줘서 그런 건 알겠는데…… 나로선 솔직히 좀 당황스러운 심경이거든. 인근에서 과외만 해도 충분히 더 나은 시급이 나올 텐데, 왜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 거니?”

“저한테는 형님이 장동건이고 정우성이기 때문입니다!”

장준범의 너스레를 무시하고 정은수를 바라봤다.

19학번에서 수석을 도맡고 있다고 했다.

장준범 말로는 범접할 수 없는 천재라나.

그런 은수가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단 과외는, 시급은 세지만 학부모 등쌀이나 학생 시험 스케줄 때문에 정신적으로 좀 피 말리는 그런 느낌이 있고요.”

“아…… 그건 그렇지.”

“그렇기도 하고, 솔직히 좀 공으로 돈 버는 죄책감도 있고요, 빈익빈부익부를 조장하는 행위라는 불편함도 있고요.”

“아하.”

“근데 오빠 방송에서 자막 단다고 하면, 보람이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일 하면서 겸사겸사 돈도 버는 거니까.”

“음…… 그래.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긴 한데.”

“그리고 장기적으로도 학업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배우고 있는 이론들이랑 비교하면서 체화하는 효과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결정적으로, 심리학을 대중화시키는 데에 이렇게 좋은 일은 또 없으니까요.”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

자기 커리어와 함께 소명의식까지 고려하는 태도.

그 점에서 장준범보다는 훨씬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민재하의 경우, 그 정은수보다도 나은 점이 보였다.

“저…… 저는 저, 신조어는 잘 몰라요.”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리고 저기, 인방도 많이 못 봤어요.”

“그래. 인터넷방송이란 게 시각 위주니 어쩔 수 없지.”

“아뇨, 근데, 저 드라마는 좋아하는데.”

“그래?”

“네. 저는 이거 안 쓰면 잘 못 돌아다니니까, 밤에는 거의 집에만 있거든요. 그래서 심심하니까 드라마 많이 봤어요. 근데 요즘은 아저씨 방송이 더 재밌는 거 같아요. 드라마 몇 편 본 거 같기도 하고…… 보고 나면 기분 좋아지고요.”

“그렇구나.”

“그래서…… 안 들리는 친구들한테도, 전달해주고 싶어서.”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가, 들리지 않는 아이들을 생각한다.

자기 불편함에만 매몰된대도 비난받지 않을 처지인데.

그 마음에 합격점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여러 학부생들을 채점하면서는, 아무래도 과거를 떠올리게 됐다.

프리월드의 최고참 부장으로서 주재했던 무수한 면접들을.

그렇게 만나본 청년들의 수가 2천 명 이상이다.

개중 200여 명 정도가 신입사원으로 채용되었다.

그 직업 면접에서는 나 역시 꽤나 긴장했다.

창창한 청년들의 미래를 좌우할 이벤트라는 생각에, 약속된 시간을 넘겨가면서까지 그들의 내면을 끌어내고자 애썼다.

그러다가 골프 치고 돌아온 대표에게 까이기도 했었지.

그 결과 역시 전부 만족스러웠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최대한의 기회를 줬다는 정서적 만족감은 느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알바 면접은 훨씬 마음이 편했다.

객관적으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니까.

그렇기에, 하고 싶은 얘기들을 다 들어주고 내 기준에 대해 설명해주는 과정들이 더없이 편안했다.

마지막에 홀로 들어온 우지현만이 예외였다.

“저, 분당 800타 쳐요. 제가 통계학과에서 왔잖아요? 그래서 타이핑 작업은 진짜 끔찍하게 많이 했거든요. 나중에 그쪽으로도 도움 드릴 수 있어요. 평소에 자주 쓰시는 어휘나 화법 같은 거 통계 내서 알려드린다든가…… 괜찮죠?”

“……우 선생님.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제가 진행하는 상담이라는 것이, 대학원생이 수련의 과정으로 삼을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저 본인이 우 선생님의 후배입니다. 그리고 내용이라 해봐야 그저 고민상담이에요. 그런 것이 학업에 도움이 될 리 있겠습니까?”

“어, 그래요?”

“그렇지요. 지금은 아니지만 곧 수련도 나가고 연구도 진행하실 것 아닙니까? 1분1초가 아쉬워지실 텐데, 며칠씩 네 시간을 들여서 푼돈을 버는 일에 정말 가치가 있을까요?”

“어…… 박 선생님은 매일 네 시간씩 방송 하시잖아요?”

“저야 입장이 다릅니다. 상담심리사로서 학문적인 업적을 이룰 생각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방송인이 되는 게 진짜 목적이거든요. 그 차이를 생각하셔야죠.”

우지현은 내 설명을 다 듣고도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이슬처럼 맑게 웃었다.

“요즘 바쁘셔서 연구실 자주 못 오셨잖아요?”

“아, 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인턴으로서 도움을 좀 드려야 하는데. 막내 일 혼자 하느라 힘드시죠?”

“아이, 전혀요. 요즘 현희 언니랑 창호 오빠도 많이 도와주고 그래요. 그리고 박 선생님 석사 시작하셔도 연구실 일로 귀찮게 해드릴 생각은 없어요.”

“나이는 잊어주세요.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겠습니다.”

“나이 때문이 아니라요…… 약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 요즘에 제일 많이 하는 얘기가, 교수님 얘기거든요.”

“그건 원래 그렇지 않았나요?”

“앗. 그랬나? 헤헤. 근데 약간 느낌이 달라요. 예전에는 우왕 교수님 킹왕짱 크…… 이랬으면, 요즘은 흥미진진해요. 진짜 상상도 못했거든요. 우리 교수님이 ‘키워’일 리 없어!”

‘키보드 워리어’는, 한효준에게 딱 어울리는 어휘는 아니다.

그 교수는 현실에서도 채팅에서도 오직 상담사의 윤리를 위배하는 일에만 목소리를 높이니까.

하지만 원생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충직한 제자로서 반신으로만 여기던 인물이, 인방 채팅이라곤 하지만, 종종 내게 져주기까지 하는 그림인 까닭.

“그런 거 보면서 가끔 생각했어요. 우리는 교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고 있었구나. 너무 막 높은 곳에 옥좌를 만들고 그분한테 그 캐릭터를 강요하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한효준 본인은 인정하지 않을 이야기다.

하지만 20년의 세월을 생각해보면, 편견 속 제자들의 태도 역시 그의 가면을 고착시키는 데 역할을 했을 법했다.

“그래서 요즘 생각이 복잡했어요. 저한테는 연구실이 세상이었거든요. 통계학과 때부터 들어오고 싶어서 안달 나 있던 곳이니까. 한 교수님은 신이시고, 이 안에서 인정받으면 저한테도 멋진 길이 놓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박 선생님은 전혀 다른…… 더 높은 곳을 보고 계시더라고요.”

“제가, 그런가요?”

“네. 교수님까지 반해버리실 정도로 높은 곳 같았어요. 그래서 저희한테는 기대하지 못하시는 어떤 걸 박 선생님께 기대하시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직접 스카웃도 하시고, 방송에도 가셔서 하나하나 조언해주시고, 그러시는 거잖아요?”

다시 한번 절감했다.

사람은 참 예민한 동물.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갈구할 때, 그 육감은 초능력이 된다.

곧 랩의 막내가 될 내 입장에선 참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하지만 사실과는 다릅니다. 우열이 아니라 그저 고도가 다를 뿐이에요. 교수님께서 창공을 나는 매와 같다고 하면, 저는 그 그림자를 보며 사막을 걷는 인간입니다. 이쪽 세계는 여러분께 어울리지 않아요.”

“헤헤. 선생님은 표현이 참 고급져요. 우열이 아니라 고도가 다른 거…… 그건 제가 오해했나봐요. 그런데 그래도 결론은 같은데. 그 사막이 궁금해졌어요. 위에서만 바라보는 규칙적인 세상은…… 그러니까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이란 건…… 생각해보면 참 치사해요. 아니, 그러니까, 제가 좀 치사해요.”

“치사하다고요.”

“네. 저는…… 박 선생님 처음 오셨을 때 랩 분위기 참 엉망이었잖아요? 한 교수님 랩 아니었으면 몇 명 나갔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거 보면서 참 별로였어요. 저한테는 꿈같은 곳이었는데, 대체 왜들 저러고 있나 싶고. 태민 오빠한테 맨날 태클 거는 혜진 언니가 싫은데도, 저랑 얘기해주는 게 그 언니밖에 없어서 그냥 기분 맞춰줘야 됐고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는데…… 그땐 진짜 별로더라고요. 심리학과 대학원 사람들끼리 모였는데도 자기 심리 하나 짚지 못한다는 게…… 이런 걸 배워서 뭐 하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타과 학부에서 꿈만 갖고 건너온 석사 1학기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꼈대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올바른 생각이라는 건 아니지만.

“우 선생님. 그 말씀은 심리학에 대해 오해하고 계신 걸지도 몰라요. 여러분의 연구와 수련에는 분명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당장 무가치한 것처럼 보여도, 그 과정들이 쌓이고 쌓이며 과거보다 훨씬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 있어요.”

“아, 알아요. 오해하시게 말씀드렸구나. 그냥, 제가 최근에 그런 얘길 들었거든요. 학부 동기 한 명이 밥 사준다고 불러서 그러는 거예요. 요즘 살기가 싫다고. 매일 자살 검색해본다고. 너 상담심리 랩 갔으니까 나 좀 상담해주라고…… 그러더라고요. 들어보니까 취업이 안 되는 게 문제 같았어요.”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자아실현의 좌절감이 작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우 선생님 동기라면 아직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그보다는 가족 역동이나 교우관계 쪽에서 진단해볼 여지가 있을 듯해요.”

참지 못하고 끼어든 말에, 우지현이 웃었다.

쓴웃음이었다.

“아, 헤헤. 맞아요. 한 시간 정도 얘기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친구들이랑 만나기가 무서워진 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다른 애들은 다 진학하거나 취업을 했거든요. 그런데 자기만 여전히 취준생이고 이러니까, 그게 좌절감을 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알아도, 저는 할 말이 없더라고요.”

“할 말이요……?”

“나도 힘든데 쓸데없이 불러내서 뭔 소리 하는 거야, 정말 힘들면 센터부터 가볼 것이지, 그런 생각부터 들더라고요.”

“아…… 예.”

“죄송해요.”

“아뇨, 저한테 미안하실 일은 아니지요.”

“저는 그렇더라고요. 진짜 멋진 상담사가 되고 싶었는데, 그래서 집안도 안 좋은데 진학 선택한 건데, 선수과목부터 해서 참 많은 거 배웠는데도, 그렇더라고요. 혼자서 뭐라도 된 척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더라고요.”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교수의 인정을 갈구하며 서로 반목하던 김태민과 박혜진도, 친하지 않은 동기의 상담에 부담감을 느낀 우지현도, 그저 흔하고 흔한 사람일 뿐 악인이라 할 수 없다.

원래는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을 터였다.

비교대상이 없었다면.

“그래서 그랬어요. 박 선생님 방송 보면서, 이번엔 제가 죽고 싶더라고요. 선생님은 그러시잖아요. 친하기는커녕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인데도, 혹시 그 사람들이 나쁜 선택이라도 할까봐 걱정돼서 한마디라도 더 해주려고 막…… 그러시잖아요. 그런 선생님 보면서 자꾸 생각했어요. 난 뭐야…… 왜 이렇게 한심한 거야…… 이러면서 무슨 상담심리사가 되겠다고 하는 거야…… 진짜 1도 모르겠더라고요.”

“오해입니다. 나도 별다를 것 없는 사람이에요.”

“아뇨, 아니에요. 위로해주지 마세요. 분명히 달라요.”

눈물을 글썽거리는 우지현이 무척 염려스러웠다.

과도한 비교와 자기비하는 결코 좋지 않다.

컸던 꿈만큼 큰 좌절감이, 스스로를 갉아먹게 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직면을 준비할 때였다.

“그래서, 가까이 있고 싶었어요.”

“……예?”

“가까이 있으면,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저도 언젠가는 박 선생님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은 친구들한테도 대학원 선배들한테도 가식적인 애지만,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어제 방송 끝나고요, 그 보람 언니가 자기 방송에서 그러더라고요. 꼰마 아저씨랑 있으면 되게 착해지는 것 같다고. 그래서 같이 크루 하고 싶었던 거라고. 맨날 다보탑 외치는 나쁜 시청자들은 거기 가서 좀 정화하고 와야 된다고.”

“아, 그랬군요.”

“헤헤. 저도 그런 마음인데…… 안 될까요?”

“그야, 뭐…… 일단 채점부터 해봐야지요.”

“저 석사 과정이니까, 약간 가산점 없어요?”

“전혀요. 오히려 감점 요인입니다. 나중에 연구 때문에 소홀해질 게 뻔하니까. 하지만, 방금 얘긴 좋았어요.”

“아, 정말요?”

“예. 0.1점 정도는 가산점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아 뭐야…… 히히.”

팀스피릿이라고 하나.

누군가는 돈을, 누군가는 커리어를, 누군가는 소명의식을 생각하겠지만, 때때로 집단은 정신적 성장 요인이 되기도 한다.

지나치게 빛나는 대상의 크루가 되어 동화하려는 욕구.

자기비하보다는 훨씬 더 멋진 방어기제였다.

문제는 내가 그 의욕에 합당한 존재인가 하는 부분인데……

그쪽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NBSC가 나를 수호하고 있으니.

「띠링! ‘상담사’님의 ‘외모’가 1 상승합니다.」

면접과 ‘외모’의 상관관계는 1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웃기로 했다.

우지현의 빛나는 롤모델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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