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78화 (78/200)

# 78

29장 - 상담사와 공통점 (2)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도 있다.

반대되는 말 같지만 사실 같은 함의를 품고 있다.

사람이란 자기 처지에 대입되어야만 공감하는 동물이란 것.

타인의 입장에 섰을 때 비로소 그 행동을 이해하는 것을 역지사지라 한다.

자기는 죄의식 없이 행동하면서 남들이 그 행동을 할 때 이중잣대를 들이밀면, 내로남불이란 말로 비난할 수 있다.

양자 모두 핵심은 ‘나’다.

내가 소속된 무수한 범주가 인간의 공감능력을 좌우한다.

가장 대규모의 예시로는 성별의 차이가 있겠다.

출산의 고통을 겪어볼 수 없는 남성들은, 보통 애 하나 낳는 게 아파봐야 얼마나 아프겠냐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다가 고환을 강타당한 것 이상의 괴로움이라는 도표를 보고 나면, 그제야 ‘나’를 대입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그거 진짜 죽을 노릇이겠구만 하면서.

보다 근원적으로는 거울신경세포를 들 수도 있다.

인간은 타인의 감정표현을 표층의식 아래에서 분석한다.

상대의 얼굴에서 ‘내가 어떨 때 저런 표정을 지었더라’ 하는 비교분석이 자동적으로 수행되기에, 표정이 극적인 사람일수록 쉽게 공감대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상담사 박대민의 장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스스로 인지하기도 전에 표정이 새어나오고 만다.

특히 울상을 지을 땐 워낙 실감이 넘쳐서, 보는 이들마저 눈물 글썽거리게 만든다는 모양.

민망하긴 하지만 꽤 쓸 만한 장점이었다.

그러나 그건 절대적인 능력이 못 된다.

아무리 잠재의식이 공감한다 해도, 의식 수준에서 부정되면 논리적인 반발을 부를 수 있으니.

그렇기에 표현방식이 중요했다.

전혀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조차 대척점의 고민에 공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인방 상담의 핵심이다.

“오엠쥐님의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꼰마님. 노출이 많은 옷을 좋아하는 여대생입니다. 남친이랑 요즘 그거 때문에 너무 많이 싸워요. 전 그냥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입은 건데 이해를 못해줘요. 왜 그딴 거 입냐고 사람들이 창녀라고 욕한다고 그런 소리 해서 마음이 아파요……”

「와 미쳤다」

「그런놈만나지마여 ㅠㅠ」

「노출많은옷좋아하는게 이상한거아님?」

「남친입장에서 할말했네 그런건 말해줘야지」

“스톱. 남성 동지 여러분, 채팅 스톱합시다. 어디 꼰대 앞에서 꼰대질이야? 여성들은 노출 좋아하면 안 됩니까? 시상식 드레스 사진 뚫어져라 본 적 없는 사람들만 돌을 던지세요.”

「엌ㅋㅋㅋ」

「할말없네ㅋㅋㅋㅋ」

「그러면서 지여친만안된대」

「완전 개X끼에요」

“여성 동지들도 스톱. 여친이 미워서 몹쓸 말을 한 건 아니잖아요? 우리나라 사회상 자체가 노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니까, 여친이 그런 시선에 상처받을까 걱정돼서 말해준 거예요. 그것도 개엑스끼 소리를 들을 일은 아닐 수 있어요.”

「ㅋㅋㅋㅋㅋㅋ글죠 단둘이있을땐 괜찮음」

「와 이중잣대 오진다」

「야한옷입었다고 까는게누군데 ㅋㅋㅋ」

「꼰마님 쟤네 혼내줘요 ㅠㅠㅠ」

예상했던 대로의 반응이 줄줄이 이어진다.

멈추게 하려 해도 쉽지 않은 몰이해의 향연.

타 방송에 비해 남녀 성비가 균형 잡힌 까닭이리라.

아내조차 메시지를 통해 불신감을 드러냈다.

「진주희♥ : 당신도 시상식 드레스 뚫어져라 봐?」

「진주희♥ : 이거 확실히 말해」

「진주희♥ : 나는 뭐 자신 없어서 안 입는 줄 알아?」

확실히 말하자면, 나는 그런 적이 없다.

남들이 여자 몸매 보며 감탄할 시기에 PTSD를 겪은 까닭.

그러나 개인적인 변명을 할 적기는 아니었다.

집단상담은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니.

“자, 여러분.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남녀가 본질적으로 다른 게 아니에요. 일단 인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심미안을 생각해보죠. 동성이건 이성이건 멋진 몸매를 보게 되면 누구나 감탄합니다. 그런 걸 보면, 아름다운 신체에 대한 동경은 남녀를 막론하고 본능적인 감정 같아요. 거기까진 동의하시죠?”

「근데 남자들은 더럽잖아요」

「맨날 야동보고 섹드립치고」

「여자들은 야동 안보는줄알겠네」

「ㅋㅋㅋ여자들 섹드립이 더심하던데」

“자. 공대 아저씨가 가이드라인 하나를 정해줄게요. 모성애라고 하죠? 없는 분들도 분명 계시겠지만, 대다수의 여성들이 공감하는 감정이에요. 그게 남성들의 성욕과 동등한 본능 같습니다. 이쪽도 전부는 아니되 대체적으로 공유하는 감정이지요. 이상하게 들리나요? 인간이란 종의 번성을 위해서 생겨난 본능이니 하는 말이에요. 남성들이 여성의 몸을 광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무수한 위협이 넘치는 대자연 속에서 새 생명이 잉태될 수나 있었을까요? 그리고 여성들이 아이를 소중히 생각하는 본능을 갖지 않았다면,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무사히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그 두 본능은 개개인의 선악과는 무관합니다. 그저 인간이란 종이 그래야만 했던 거예요. 근대에 들어서야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한 필요성이죠. 그걸 동일선상에 놓아야 소통을 시작할 수 있어요.”

과학은 현대인의 진리.

그 대목에서 채팅창이 약간은 진정되었다.

공감대를 형성할 적기였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봅시다. 일단 남친의 표현 방식이 올바르지 않았다는 점에는 모두 공감하시죠? 좀 꾸미고 나왔다고 ‘호빠 선수 소리 듣겠다’는 식으로 말하면, 남자들도 기분 나쁠 거잖아. 거기서 남친 분 감점 100점.”

「ㅋㅋㅋㅋㅋ아니그건좀」

「모쏠남 선수소리 들어보고싶어여..」

“시끄러워요. 모쏠이 자랑이야? 힘내세요. 다음으로 여친 분을 생각해보면, 그 몹쓸 소리 듣기 전에도 분명히 여러 차례 마찰이 있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친 의견을 무시하고 노출 많은 옷을 입었죠? 오엠쥐님도 감점 100점.”

「헐뭐야 왜요」

「오엠쥐 : ㅠㅠ그게왜잘못이에요 표현의자유가있는데」

“표현의 자유, 있지요. 하지만 연애라는 게 서로를 구속하는 일을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관계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양다리도 자유인가요? 아니지요? 그렇게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 연애의 시작입니다. 구속의 강도가 개인마다 다르니, 대화를 통해 공동의 선을 만들어나가야 해요. 오엠쥐님은 그 중요성을 간과하셨던 거예요. 둘 다 잘못했어요.”

「오엠쥐 : 힝 저그럼 예쁜옷 입으면안돼여?」

「어흠 이건 보고판단합시다」

「오엠쥐님 인스타주소점~~」

「아 진짜 더러워」

“농담 스톱. 하여튼 여러분 사내자식들은, 분위기 파악 전에 드립부터 치는 게 문제야. 듣는 사람은 진담인 줄 알아요.”

다시금 채팅창을 침묵시키고 잠깐 뜸을 들였다.

이와 같은 첨예한 문제의 해결책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사실 해결책이 존재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상담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공감대를 늘리는 일뿐.

“외모지상주의적 발언 죄송합니다만, 남친 분 잘생겼어요?”

「오엠쥐 : 아 네 쫌 ㅎㅎ」

“좋습니다. 그럼 그 남친 분 주변에 여사친도 꽤 있겠네요. 그 사람들 만날 때 남친이 BB 잔뜩 바르고 멋 부리고 나가서 웃으면서 사소한 거 하나하나 챙겨주고 다니면, 괜찮아요?”

「오엠쥐 : 헐 흘리는거자나 개에바에여 ㅠㅠ」

“알겠습니다. 오엠쥐님, 저는 그 ‘개에바’인 행동이 노출 많은 옷을 입는 것과 동등한 수위라고 봐요. 본인의 의도는 어찌됐건, 다른 이성들을 유혹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러면 애인 사이에선 걱정하는 게 당연해요. 오해해선 안 돼요. 남성들은 노출을 통해 매력어필이 이뤄지는 일이 드무니, 여성들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다고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크게 보면 연애하는 남성의 자유 역시 크게 제한돼요. 지나가는 다른 여자 쳐다볼 때, 매장 점원에게 밝게 웃어줄 때, 그 행위를 규제하지 않는 여친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연인 관계는 가장 공감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것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표현형과 호르몬의 차이를 동반하는 까닭에, 쉽게 집단 사이의 갈등으로 발전해버린다.

그러나 인간으로 보면 다르지 않다.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모든 인간의 공통점이다.

거기서 공감대의 확대를 위한 최선책이 도출된다.

그저 사람으로 바라보는 일.

성별이나 인종이나 국적이나……

그 모든 ‘나’의 집단을 뛰어넘어 인간과 인간으로 마주섰을 때에야, 비로소 공통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크게 봅시다. 상대가 다른 이성과 연관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연인이 같아요. 그걸 어떻게 자유를 제약하는 구속이라고 매도할 수 있겠어요? 노출은 해도 바람은 안 피운다? 남친이 배경화면 여자연예인 하면 혼낼 거잖아. 그렇다고 그 연예인이랑 바람피우는 것도 아닌데. 서로 다른 표현방식일 뿐 같은 마음이에요. 방식에 치우쳐 본질을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오랫동안 사랑하실 수 있어요.”

「이거맞네 ㅋㅋㅋㅋ」

「ㅋㅋㅋ 배경화면 이서준인데 남친 질투해여」

「ㅎㅎ그렇게생각하니까 그러네여」

「오엠쥐 : 아.. 알아또요 ㅠㅠㅠ 안그래보께요 ㅠㅠㅠ」

보통은 이렇게 쉽게는 풀리지 않을 일.

격화된 감정은 역지사지를 내몰고 내로남불을 부른다.

어지간한 달변으로는 멈추기 어려울 것이다.

105의 ‘관계’와 100의 ‘화술’에 감사할 일이었다.

“정리하자면, 이게 다 오엠쥐님이 지나치게 매력적인 까닭입니다. 예쁜 게 죄라는 말이 있지요. 다음 생에는 남친이 아무 간섭도 안 할 만큼 평범하게 태어나시길 기원할게요.”

「오엠쥐 : 아 ㅋㅋㅋㅋ 저주하지마여 ㅋㅋㅋㅋㅋ」

“그거 정말 차별적인 발언이네요. 슬픕니다. 채팅창의 많은 평범하신 후원자님들께 대신 사죄드립니다.”

「난아님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모쏠 우러요」

「암튼 난 아님ㅠ」

적절한 선에서 채팅창의 갈등을 풀어준다.

그리고 다시 사연을 받고, 다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고.

그 단순한 패턴 속에서 시청자들의 수가 폭증했다.

어느새 2만은 기본이 됐고, 3만도 금세 가시권에 들었다.

그 앞에서 종종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 이벤트도 없이 평균시청자가 3만에 근접했다.

본격적으로 크루가 가동되고 나면, 나는 어디까지 올라갈까.

더없이 기대되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공지할 게 있습니다.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꼰마재단의 창립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어요. 관련해서 꼰마크루 내정자 12인 중 두 분이 우선적으로 출연금 약정을 해주셨습니다. BJ호정님과 BJ보람님이에요. 그 두 분께서 내일부터 화요일 게스트로 고정출연 해주실 예정입니다. 그 내용은, 당연히 뮤직테라피. 여러분의 사연마다 두 분의 보컬리스트가 어울리는 노래를 찾아서 직접 불러드릴 예정이에요.”

「보람보람보 : 드디어!!!!!!!!!!」

「정보 듀엣이네요 ㅋㅋㅋㅋㅋ」

「와 귀호강하겠어여ㅎㅎㅎ」

「보람찬하루일을 : 보람이 귀갱될듯 ㅠㅠㅠㅠ」

“뭐라고요? 보람찬 후원자님, 우리 보람이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보람이 보면 슬퍼하겠네.”

[BJ보람님 별사탕 100개. 찬오빠 실망 유유.」

[보람찬하루일을님 별사탕 500개. 억 와있었네 흐흐. 미안해 보람아. 오빠가 거짓말을 못 하는 스타일이라 흐흐.]

[보람보람보님 별사탕 100개. 보람누나 마니 챙겨주세유.]

[호정요정님 별사탕 1000개. 울옵빠 사랑해주세용 히히.]

그렇게 꼰마크루의 태동을 알린 뒤에 생방송을 마쳤다.

다수의 시청자들이 11시에 시작하는 두 사람의 방송으로 이동해, 초 단위로 수천 명 단위 시청자가 나왔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크루의 카르텔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

진대수가 우는 척을 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크윽! 형님! 드디어 레츠기릿 해버릴 때가 왔네요!”

“그래. 다른 BJ들에게 좀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엥? 뭐가 미안해요? 아쉬우면 지들도 30퍼 내고 들어오면 되는데.”

“대기열이 길어서 한참 기다려야 할 거 아냐.”

“아무튼 미안할 일은 아니죠. 지들도 자신 있으면 전액 기부하고 크루 만들라지?”

“흠. 혹시 그렇게 될 수도 있을까?”

“……와, 진심 기대하시는 표정이네? 근데 그건 안 될 검다. 형님이야 유튜브에서만 첫 달 예상수익 5천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나마 가능한 거고, 보통은 그 반대니까요. 암튼 유튜브가 더 빨리 커야 돼요. 아직도 세금 떼면 마이너스니까.”

“그러게. 생각보다 별사탕 수익이 너무 컸지?”

“예압. 빨리 유튜브 백만 찍어서 애드센스 1억에 PPL 1억씩 땡겨야 될 거 같슴다. 별사탕 전부 유보금 되겠어요.”

BJ의 주 수입원인 별사탕은, 곧바로 소득이 되지는 않는다.

프리월드의 유보금으로 들어갔다가 각 개인이 환급 신청을 한 뒤에야 기타소득으로 잡히는 것.

그 별사탕 환급액을 여타 소득의 절반 이하로 조절하면, 세금폭탄을 맞으면서도 일정 정도의 수입을 남길 수 있다.

물론 그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일이지만.

“금요일에 <웃기고 앉아있네> 본방 나갈 거야. 인방 하고 있다는 것도 언급을 했으니, 유튜브 구독자도 꽤 늘겠지?”

“글죠. 그거 기대하고 있슴다. 그거 생방송 클립 타임플래그 찍혀서 공유되면서 는 구독자도 상당해요. 채널 오픈 한 달도 안 돼서 50만 달았으니까 이건 뭐…… 레전드죠. 형님 그거 몇 번 더 출연해도 좋을 것 같은데, 안 하실 거예요?”

“그래. 신태훈 부장이 다른 프로 알아보는 중이래.”

“그거보다 나은 게 있나? 솔까 형님을 위한 방송이던데.”

“더 나은 게 있겠지. 전문가를 믿어보려고.”

“헤헹…… 오키염. 글면 형님, 오늘은 여기까짐다!”

그렇게 정리회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신발을 벗기도 전에 몇 차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다.

“어때?”

“어때?”

아내가 가슴이 파인 원피스를 입고 있다.

그게 다가 아니라, 딸애까지 심각한 미니스커트 차림이었다.

“두 사람, 쇼핑 했어?”

“뭐? 이거 당신이 사준 옷이거든?”

“내가? 정말?”

“정확하게는 같이 쇼핑 가서 내가 고른 거지만.”

“아, 그랬구나. 혹시 지수 너도……?”

“아 뭐래. 전남친이 사준 건데?”

“뭐? 그…… 어린애가 무슨 돈으로…….”

“용돈 모았대. 이거 이쁘지? 이 정도는 괜찮지?”

노출 의상으로 뭐라고 지적했던 적은 없었는데.

장난인 척 먼저 물어보는 마음들이 참 예뻤다.

혹시라도 내가 싫어할까봐 걱정된 모양이지.

“둘 다 예쁘네. 역시 내 마누라, 내 딸이야.”

“흐흥.”

“아 뭐래. 오글거려. 영혼 흘리고 왔어?”

막상 예쁘다고 해주니 부끄러웠던 것 같다.

어깨를 으쓱이며 방으로 들어가려는 딸애의 팔을 붙잡았다.

“지수야. 아빠는 우리 지수가 어떤 옷을 입어도 다 예뻐 보여. 그렇지만 그래서 걱정도 돼. 이렇게 노출이 많은 옷을 입으면, 늑대 같은 나쁜 남자애들이 너무 좋아할까봐.”

“헤헤.”

“웃을 일이 아냐, 지수야. 혼자 다닐 땐 절대 이렇게 입지 마. 무슨 말인지 알지? 예쁜 옷을 입는 게 잘못이라서가 아니라, 세상에 이성보다 본능이 강한 일부 범죄자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항상 조심해야만 해.”

“아빠나 조심하시지? 엄마가 keep an eye on you니까.”

그렇게 말하곤 빙글빙글 웃으며 가버리는 것이다.

아내가 고개를 흔들며 주석을 달아줬다.

“안 입을 거래. 그냥, 아빠가 걱정해주니까 신난 거야.”

“꼰대가 간섭한다고 화난 건 아닐까?”

“표정 보고도 모르니? 참나.”

그야 보자마자 알았지만, 딸애 문제에는 소심해지고 만다.

수천 시청자들의 반응은 쉽게도 읽으면서.

세상 모든 아빠들이 그러지 않을까 싶다.

밖에서는 무수한 부하직원들을 깔끔하게 통솔하면서도, 집에 들어오면 혹시나, 어쩌면, 그런 생각으로 약해지고 만다.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재단 이사장으로서 바깥일이 많아질 텐데.

그때 아내에게 흑심을 품은 남자들이 접근한다면……

“뭐야? 왜 그렇게 봐?”

“주희야. 넌 몸이 약하니까, 항상 그…… 외투 챙겨 입어.”

“……후후. 얘, 지수야! 엄마가 이겼어!”

“뭐? 진짜? 거짓말! 아빠 진짜야? 진짜 엄마 야한 거 입지 말라고 말했어?”

“내가 뭐랬니? 니 아빠한텐 엄마 아직도 미소녀거든?”

“헐이다 진짜. 주책바가지야! 엄마 마흔인데 뭔 걱정?”

“너어, 엄마한테 혼나야 정신 차리지? 졌으니까 이번 달 용돈 절반이야. 아껴 쓰는 경험 해볼 좋은 기회다, 그치?”

“아 어이없어. 아빠 왜 그래? 바보 같아.”

딸애는 인상을 팍 구기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내기의 패배로 긴축재정을 학습하게 된 모양.

그 뒷모습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더니, 아내가 나긋하게 내게 몸을 붙여왔다.

“여보랑 있을 때만 입을게. 원래 그러려고 산 거야. 기억 안 나? 당신이 막 눈 동그래져서 이런 건 좀…… 저게 낫지…… 이럴 때 내가 그랬잖아. 자기 방에 놀러 갈 때만 입겠다고. 그때 표정 아직도 기억난다? 어쩜, 자기가 늑대면서…….”

“너한테만 늑대야, 주희야.”

거의 10년 만에 현관에서 나눈 키스는, 뜨겁고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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