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76화 (76/200)

# 76

28장 - 첫 번째 목적지

업무환경에서 한국어의 가장 흔한 오용 사례는, 아마 ‘우리’와 ‘저희’일 것이다.

나와 주변 사람들이 포함된 집단을 지칭하는 일.

‘우리’는 청자가 집단과 동등하거나 그보다 손아래일 때, ‘저희’는 청자가 집단보다 손위일 때 사용한다.

문제는 청자가 집단의 일원일 때다.

이때는 당연히 동등한 관계이므로 ‘저희’를 써선 안 된다.

듣는 청자까지도 낮추는 높임법인 까닭.

그렇지만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팀장을 향해서 “저희 팀이 이번에……” 등의 오용 사례를 보인다.

단순히 지식의 부족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그 외에도 “커피 나오셨습니다”나 “오늘이 마감일이세요” 등 높임법의 오용이 넘치도록 많은 까닭.

그것들을 전부 착오로 인한 것으로 해석하기보다는, 권위적인 사회 속에서 무어라도 책을 잡히지 않으려는 생존본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와 같이 심리는 언어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심리적 요인이 언어를 교란시키는 가장 명백한 사례가 ‘다르다’와 ‘틀리다’일 것이다.

차이와 시비(是非) 모두를 ‘틀리다’라고 표현해버리는 것.

그 역시 지식의 부재가 아니라 사회공통의 인지 오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학부 시절 들은 바에 따르면, 영어로 different와 wrong으로 구분되는 두 개념은, 일본어에서는 違う로 동일하다고 한다.

굳이 ‘틀리다’를 강조해야 할 때만 間 한 글자를 덧붙일 뿐.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다름과 틀림이 다르지 않다.

질서와 통일성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일본의 사회상이 잘 드러난다.

한국은 그와 달리 ‘다르다’와 ‘틀리다’가 오래 공존했다.

15세기부터 ‘다ㄹ다’와 ‘틀이다’가 발견된다.

그러던 것이 격동의 20세기를 거치며 점차 연결되었다.

‘다르다’를 사용하는 빈도는 줄어들고, 차이와 시비를 막론하고 ‘틀리다’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왜 그렇게 변화하게 됐을까.

이에 대해서 일부 심리학자들이 ‘해소되지 않은 PTSD’를 이야기하곤 한다.

전 국토를 전쟁터로 만든 이른바 ‘동족상잔’의 비극이, 민족과 가족을 무엇보다 중시하던 이 땅의 모든 민중의 정신을 공격해, ‘빨치산’ 등에 대한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사회와 개인을 동일시하는 생존전략을 취하게 했다는 것.

그들이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자녀 세대에까지 그 사고방식을 세뇌하며 사회를 경직시켰다는 가설이었다.

합리적인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어린이들이 한 명의 가부장에게서 모든 사회적 덕목을 익혀나갔으니.

그때의 교육은,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세뇌였다.

마음이 병든 한 조부가 많게는 수십 명의 인지도식을 왜곡시켰을 수 있다.

그에 더해,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도 문제가 된다.

도덕률은 일제 부역자들을 반역자로 규정하지만, 현실을 보면 그런 이들이 선대의 유산으로 명예까지 획득하고 있다.

많은 대학생들이 그 리얼리티 앞에서 절감한다.

남들 생각해봤자 결국 폐지 줍는 노인이 될 뿐이니, 도덕률 따위 버리고 세상이 시키는 대로 야합하는 게 옳다고.

이와 같은 내적 문제들이 한국을 점령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회에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몰이해가 넘친다.

조금만 튀는 행동을 보였다간 바로 ‘아싸’가 되어 따돌림을 당하고, 대중적 유명세에 반드시 악플이 따라붙으며, 일부 특성을 일반화해 전체를 매도하는 악마화는 일상이 됐다.

그렇기에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공감을 샀으리라.

청년들은 취업이 어려운 것을 가장 크게 생각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심리적인 요소가 클 것 같다.

우리보다 훨씬 실업률이 높은 스페인조차 자국 멸칭은 ‘에스파니스탄’ 정도에 그친다고 하니.

자기가 사는 땅을 지옥에 빗대는 방식은,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 사이에선 결코 유행할 수 없는 신조어다.

나는 그 헬조선의 상담사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결의한.

그 지점이 아무래도 한숨 나오는 부분이었다.

개개인의 PTSD만 해도 해소가 쉽지 않은 난제.

과거사 청산은 더더군다나 가망이 없는 일이다.

그와 같은 사회 인지 속에서 이기주의를 삶의 신조로 삼은 청년들은, 초보 상담사에겐 접근조차 어려운 최종보스였다.

그런 이들을 바꿔나가야 한다.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난이도.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오아시스가 멀게만 느껴졌다.

오직 시간만이 답이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해야지.

적어도 내가 죽기 전에는 변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내 딸의 세상이 밝을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쉼 없이 전진해야만, 이수아와 이아리와 주민성과 김서현이 다시 아픔을 겪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생각들을 담담한 어조로 전달했다.

한효준은, 우습지도 않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텝스 마치고 나온 제자들을 아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시험장 나오자마자 세상을 바꾸겠다는 중년은 처음이야.”

“다른 데서 세상을 바꾸겠다 한 청년은 보신 모양입니다?”

“……그것도 요새는 드물지. 과거에는, 아주 없지는 않았어. 이 찌든 세상을 고쳐내겠다며 미간을 좁히던 청년들이…… 생각해보면 꽤나 많았지. 흠. 자네 흡연은 하지 않나?”

“예. 교수님께서도 피우지 않으시는 걸로 아는데요?”

“지금은 그렇지. 끊은 지는 얼마 안 됐어. 꽤 오래 즐겼지.”

“그러셨습니까? 의외네요.”

“의외는 무슨. 나 때 관악에선, 끽연(喫煙)을 하지 않는 자는 지식인으로 치지도 않는 그런 문화가 있었단 말이야. 요즘처럼 연기만 맡아도 질겁하는 건, 당시엔 건강염려증 환자나 하는 행동이었어. 자네 때까지도 그렇지 않았나?”

그야 안방에서 담배를 태우던 시절이다.

버스 안에서, 식당에서, 누구나 담배를 피우고 간접흡연을 당연시했다.

개인적으로 담배연기를 싫어해도 어쩔 수 없었다.

당시의 한국에서는 통일성을 거부할 수 없었으니까.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싫은 것을 싫다 말할 수 있다.

그것 자체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

그렇지만 바뀐 문화를 향유하는 대중이 그 시절 그대로다.

나이를 막론하고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꼰대’들만 가득하니, ‘다른 사람’이 ‘틀려먹은 놈’이 되어 아싸로 몰린다.

“저는 지식인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컴공인이었지요.”

“흥. 어쨌든 그렇게 담배를 피우거나 약주를 기울이며 서로를 마주보고 있노라면, 분연히 주먹을 휘두르며 말하는 청년들이 꽤 있었던 게야. 아주 당당히 내가 세상을 바꾸겠노라 외치는. 그러던 치들이 다 어떻게 됐는지 아나?”

“십중팔구 포기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포기 정도가 아니야. 포기하지 않은 건 단 한 명도 없고, 십중팔구 쪽으로 말하자면 변절을 했지. 그토록 경멸했던 세속적인 가치에 물들어 자기 영달만 노리고 있어. 욕할 것도 없지. 그렇게 만드는 세상이니. 이 ‘헬조선’은, 현진건이 논한 술 권하는 사회에서 하나도 발전한 것이 없어.”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

대학 교양수업 때 탐독했던 기억이 있다.

그중 한 문단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민족을 위한다 사회를 위한다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 외치던 사람들이 단 이틀이 못 되어 변절하니, 이런 사회에선 정신 바로 박힌 놈은 피 토하고 죽을 수밖에 없고, 그렇지 않으면 술이나 먹게 된다 했던가…….

1921년의 소설과 2020년의 현대가 고스란히 이어진다.

지금 한국도 마찬가지다.

사회에 열의를 가진 이는 중2병, 관종, 그런 소리만 듣는다.

결국 진심일랑 소주 한 잔 걸칠 때나 토로하게 된다.

그렇지만, 현진건은 사실 그 소설과는 다른 위인이었다.

일제를 위한 글줄 따위엔 손도 대지 않았다.

평생 가난을 벗했으며, 동아일보 재직 중 손기정 선수의 가슴팍에서 일장기를 지운 일로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사회가 술만 권한다는 인식을 논하면서도, 그 본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

“저는…… 현진건 선생님께 공감합니다.”

“뭘 살아있는 사람처럼 논하는 게야? 현진건이 어쨌길래?”

“친형이 일제에 투옥된 탓에 작고하고, 형수 역시 그 한 달 뒤에 죽음을 택했습니다. 그 시신들 앞에서 천지신명께 맹세했을 것입니다. 살인하는 제국주의와는 한 하늘을 이고 살지 않겠노라고. 그랬기에 평생 부끄럽지 않고자 애썼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와 같이 살고 싶습니다.”

“……거창하게 말하지 말아. 부담스러우니.”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그런 의도가 있건 없건 부담스러운 일 아닌가. 제자가 십자가를 지고 싶다 하는데, 어떤 스승이 마음이 편하겠어.”

십자가, 등신불,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진대수라면 ‘아재돌’이라고 하겠지만.

사회의 변화에는 긴 시간이 요구된다.

100년의 세월이 쌓은 퇴적층을 어찌 하루아침에 걷어내랴.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생채기도 낼 수 없다.

권력이든 금력이든 어떤 사회적 인망이든, 고금에 없을 만한 절대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면 무의미할 터였다.

거기서 내 길을 결정하게 됐다.

권력도 금력도 상담사의 길은 아니다.

오직 절대적인 사회적 인망만을 추구할 뿐.

그로써 한국사회 전체의 사랑을 받는 정신적 지주가 되어, 모두가 날 믿고 따르게 만들어, 마침내 세상을 바꾸리라.

터무니없이 먼 길.

그렇지만 내게는 단 하나뿐인 방책이다.

그리고 그 길에 한효준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부담을 드리겠습니다. 함께 고민해주십시오. 제가 가는 길이 올바른지 감독해주십시오. 슈퍼바이저로서.”

“……참으로 당당하시구만. 정말이지 담배 당기는 날이야.”

말만 그렇게 할 뿐, 한효준은 담배를 사러 떠나지 않았다.

그가 허락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미 스스로의 입으로 스승이라 말했으니까.

박대민의 길에 동참하겠다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지점에서, 약간 의혹이 드는 부분이 하나 있긴 했다.

세 번째 에픽퀘스트가 아직 완수되지 않은 점.

이번에야말로 직접적으로 직면을 시도해 “한효준을 쓰러뜨려봐요”에 합당한 행동을 한 셈인데, 요지부동이다.

어쩌면 좀 더 명확한 결과물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의 주관적인 자기비하를 일부 걷어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것만으로 삶의 빛깔이 바뀌진 않을 테니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비행기를 탄다거나, 결혼을 한다거나.

“흥…… 그리 하세나. 내 선심 쓰지.”

“예. 그건 그렇고, 혹시 맞선 생각 있으십니까?”

“이 자가 정말!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말할 타이밍에, 무슨 헛소릴 하는 게야? 하여튼 어처구니없는 자란 말이야.”

그렇게 투덜댄 뒤, 한효준은 씩 웃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두드린 뒤 떠나갔다.

그 뒷모습이, 뭐랄까……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다.

그날은 아주 정신없이 흘러갔다.

점심도 먹지 못한 채 차를 달려 판교에서 VR상담을 진행했는데, 통통한 개그우먼 한 명이 게스트로 참여했다.

주된 소재는 몸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것이 상담 내내 무겁지 않은 분위기로 이어졌다.

개그우먼으로서는 장점이 되지만 여성으로서는 단점이 되는 특성이기에 이래저래 상처를 받았을 법도 한데, 의외로 낙관적인 사고방식으로 자기인식을 하고 있더라.

뚱뚱한 것도 모두가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긴 하지만, 지금 자기 모습에 만족하고 있으니 우울하거나 괴롭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그 태도에서 한 점 가식도 느껴지지 않아 꽤 놀랐다.

너무도 아름다운 인간상.

자신의 다름을 미워하기보다, 오히려 타인의 증오조차 유머로써 받아치는, 그야말로 경애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며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오랜 세월은 필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무수한 부작용 속에 많은 이들이 괴로워하고 있지만.

나처럼 세상을 바꾸리라 외치는 이는 극히 드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편견에 마주해 걸어나가면, 세상은 분명히 변할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인간이니까.

그 개개인의 변화에 응답하지 않을 리 없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낙관을 품으며 돌아온 까닭이었다.

그날 저녁의 생방송 마지막 사연이, 가슴을 세게 때렸다.

“이모띠끄님의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꼰마님. 저는…… 청각장애가 있습니다. 그래서 꼰마님 방송이 좋습니다. 항상 얼굴의 각도와 입모양이 일정하셔서, 구화(口話, 독순술)로 이야기를 읽는 게 수월합니다. 물론 세상 사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오늘 낮에 예랑이(예비신랑) 가족을 뵀습니다. 예랑이는 제 귀가 안 들린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꼭 말씀드리고 설득하겠다고 했었는데……. 오늘 얼굴 마주한 자리에서 처음 말씀드리게 됐습니다. 이제는 수술도 받을 가망이 없는 중증장애라는 사실을요. 그 자리에서는 나쁜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표정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들리지 않기에 시각에 더 예민합니다. 그래서 도저히 안 될 결혼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분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 잠깐만 시간 좀 주시겠습니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이쪽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만을 전체로 착각하고 있었다.

청각장애인 예비며느리를 보고 표정을 굳혔다는 내외처럼.

인터넷방송은 어디까지나 발화를 통한 소통.

녹화본을 편집해 내보내는 TV 프로그램조차, 편집의 편의성을 위해 전체 대화를 모조리 자막으로 내지는 않는다.

3만 명에 육박한다는 이 땅의 청각장애인들은, 다른 이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문화를 소비하지 못한다.

이 사회는, 주류에게만 친화적인 곳.

선천적으로 다른 이들에겐 아주 조금도 너그럽지 않다.

나조차 그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름을 배척하는 사회를 바꾸겠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 다른 이들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 부끄러움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부끄러운 것이 많은 세상이다.

세상도 나 자신도, 바꿔갈 것이 너무나도 많다.

“이모띠끄님. 일단 제가…… 이 문제에 어느 정도 답변을 드리자면, 어른들 점수 따는 데는 이게 최곱니다.”

말을 마치고 [인자한 웃음]을 사용한다.

72의 ‘외모’ 덕에, 아마 더없이 매혹적으로 보일 미소.

그 얼굴을 유지한 채 말했다.

“이모띠끄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청각장애로 인해 표정에 예민하시다고. 그렇지만 사실…… 장애가 없는 인간들도 그렇습니다. 대다수가 어떤 감각보다도 시각에 민감하죠. 특히 예비며느리와의 첫 만남에서는 그게 극대화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단 하나의 정보라도 더 얻기 위해 티 안 나게 눈에 불을 켰을 겁니다. 그 앞에서 이모띠끄님은 얼마나 밝으셨나요? 어느 정도로 꾸밈없이 웃으셨나요?”

「이모띠끄 : 아 잘 못 웃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점수가 깎여요. 제가 아들은 없지만 딸 가진 아비라 얼추 압니다. 부모라는 족속들은 이기적이에요. 내 아이의 반려자라는 기준점을 두고 바라볼 때,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이기적인 관점을 갖게 됩니다. 그 이기주의에서 장애라는 것이 감점의 요인이 될 수도 있겠지요. 혹시 유전인가…… 그런 생각이 분명 들 테니까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 다른 점까지도 극복할 만큼 절대적인 강점을 보여준다면, 그래서 이 사람을 놓치면 아들이 정말 후회하겠다 생각하게 되면, 그때는 이기적인 만큼 맹목적이 됩니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밝게 웃는 사람? 그런 사람은 마치 한창 때의 바조처럼 잡고 싶은 판타지스타가 됩니다.”

「이모띠끄 : ㅎㅎ 바조가 누구예요?」

비유가 적절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감 정도는 전달됐으리라.

오류 없는 [내담자 평가]를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채팅…… 그러니까 필담으로만 대화해본 거지만, 이모띠끄님께서 얼마나 사려 깊고 선량한 분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건 오히려 글이기 때문에 더 잘 전달되는 부분이에요. 마주앉은 자리에선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 그걸 보여줘야 해요. 더할 나위 없이 열정적으로 보여줘야만 그 일부나마 전달됩니다. 이모띠끄님께서는 예비 시부모님의 표정을 관찰하며 마음이 약해지셨겠지만, 그게 실수였어요. 그게 어디 관찰하러 가는 자립니까? 관찰 당하러 가는 자리예요. 한국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그게 진리예요. 그럴 때는 열과 성을 다해서 관찰 당하셔야지요. 그러지도 못한 채 장애만 탓하는 것은, 우리 한심한 비장애인들과 다를 바 없는 태도입니다. 다음엔 그러지 마세요. 나는 세계 최고의 며느리감이다, 이렇게 확신하며 웃으세요. 그러면 그 진심이 전달될 겁니다.”

「ㅋㅋㅋㅋㅋㅋ세최며 먼데여」

「나 이꼰머 져아 ㅎㅎ」

「이모띠끄 : ㅎㅎㅎㅎㅎㅎ아」

「이모띠끄 : 고맙습니다. 다음엔 꼭 그렇게 할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이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은, 표정이나 태도보다 장애 쪽이 훨씬 더 강력하니.

다만 나만큼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어떤 다름도 단점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지금도 방송 잘 봐주고 계시다니 참 감사한데, 관련해서 좀 개선이 필요할 것 같네요. 조만간 동시자막 직원을 붙이겠습니다. 세계 최고의 며느리감인 이모띠끄님께서 제 이야기를 한 글자도 놓치시지 않도록 말입니다. 재단의 사업상 경비로 그쪽 조금 지출하는 건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후원자님들, 괜찮으시죠?”

「마구니 : ㅋㅋㅋㅋㅋ오키염」

「케바케 : 아따 다 갖다 써부시요~~」

「꼰마야놀자 : ㅎㅎㅎ그럼전철에서소리끄고봐도되겠네여」

「이모띠끄 : 아.. 꼰마님은 진짜..」

「이모띠끄 : 세계 최고 장인어른감이세요 ㅠㅠ」

「세최장~~~」

「엥?? 3만 돌파띠~」

「와 벌써 3만따리?????」

세계 최고의 장인어른감이자 3만따리 인방러가 된 그날.

나는 마침내 첫 번째 목적지를 정하게 됐다.

아직 NBSC는 한효준의 에픽퀘스트에 멈춰 있지만, 상담사 박대민은 그 이후를 바라보기로 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인방러가 되자.

단 한 사람의 시청자도 놓치지 말자.

그들을 내 안에 담아, 그들의 세상이 내게 밀려오게 하자.

박대민이 결정한 첫 번째 메인퀘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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