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65화 (65/200)

# 65

24장 - 상담사의 존재감 (2)

VR상담의 프로모션은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스마트폰이나 PC나 VR기기를 활용해서 우리를 바라보며, 이 상담의 진행을 관찰하고 있을 터였다.

프로모션 이벤트의 1차 당첨자가 되어 오큘러스GO2를 수령한 이아리와 친구들도.

콘서트 때 굿즈 구매 비용을 아끼며 모은 용돈으로 기기를 샀다는 내 딸도.

각자 방식은 다르겠지만, 나나 TOX의 민성을 좋아하는 수만의 팬들이 이 상담에 눈을 빛내고 있을 터였다.

그 점이 프로모션 상담의 한계.

공개된 방송이기에 비밀을 보장해줄 수 없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들은 에둘러가야 한다.

이를테면, 주민성의 유년기 같은 것들.

사실은 그쪽이 가장 빠른 길일 텐데.

주민성은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를 가슴 속에 묻어둔 채 아이돌의 가면을 쓰고 있다.

그 얘길 피하며 진행하는 상담에는 한계가 있다.

당장 긍정적인 효과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쪽을 털어놓고 나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우선은 비밀 탄로의 불안이 사라지리라.

역으로 그 약점 아닌 약점을 긍정해주는 팬들의 목소리에 힘입어, 다른 불안마저 불식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저 추측.

역효과를 낳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는 ‘야매’ 상담사라도 윤리강령을 따라야 한다.

내담자의 호전을 확신할 만큼 분명한 준거가 있지 않은 이상에는, 숨기려는 것을 억지로 끌어내선 안 될 터였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말은 한정적이다.

“날이 많이 따뜻해졌죠? 오늘 옷 멋지시네요.”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근데 꼰마님이 더 멋지세요.”

“마음에도 없는 말씀 감사합니다.”

“아닌데! 진짠데요, 헤헤.”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정말 ‘민쭈’시네요. 무대 위에 계실 때는 엄청나게 멋지셨는데, 여기서는 되게 쑥스러워하시고. 이런 게 팬분들이 민성 씨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일까요?”

“아…… 그냥 뭐…… 하하. 그냥 쭈구리예요.”

소위 ‘자존감’이 낮은 이들의 흔한 반응.

충분히 자부해도 되는 일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겸손해 보이려는 의도도 일부 있기는 하겠지만, 실제로 자기 행동과 인기 사이의 상관관계를 확신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런 부분의 인지를 제고해주면 작은 도움은 되겠지.

“제가 아이돌을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TOX도 딸아이가 좋아하는 그룹이라서 조금씩 알아가게 됐는데, 그래도 사람 대 사람으로서 인기의 요인을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민성 씨는…… 자주 ‘레벨업’이라고 외치시죠?”

“아, 네. 제가 좀 쪼렙이어가지고, 하하. 연습생도 멤버들에 비하면 오래 안 하고 데뷔하게 돼서요, 기본기가 부족해요. 그래서 트레이너 형들한테 열심히 배우고 그래요.”

“그래요. 사실 닉네임에도 들어있다시피 제가 소위 꼰대입니다. 지금부터 꼰대짓을 좀 할 건데,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마세요.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니까. 사람들은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싫어할 수가 없습니다. 가끔은 너무너무 잘하는 사람 이상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죠. 그런 면에서 민성 씨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 같아요. 노력의 정도를 누가 감히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늘 진지하시니까. 성과에 도취되지 않고 매번 더 노력하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싫어하겠어요. 그 점은 자부하셔도 될 것 같네요.”

“아…… 근데, 그냥 진짜로 못해서 그런 건데요, 히히.”

“무례하시네요.”

“네, 네?”

“저한테는 정말 멋져 보이시는데, 아니라고 하시니까. 상담사의 눈을 믿지 못하시는 발언이 개탄스럽습니다.”

“아, 하하하. 아…… 죄송해요. 네, 제가 좀 멋지죠! 하하.”

농담까지 섞어서 접근해봐도, 여전하다.

그는 스스로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지점을 [내담자 평가]가 확인해줬다.

「평가 결과 : ‘월드투어’에 강한 두려움을 품고 있다. / 자신을 향한 긍정적인 평가들이 한때의 운이라고 믿고 있다.」

……쉽지 않네.

기저에 깔린 부정적 정서가 모든 소통을 틀어막고 있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본위 편향(self-serving bias) 속에 살아간다.

잘된 일은 자기가 잘나서 이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잘못되면 운이 없었던 거라고 푸념한다.

과한 경우에는 아집에 사로잡힌 꼴이 되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자긍심을 느끼며 살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다.

그 편향이 무너지면 삶의 만족도가 크게 저하된다.

우울장애로 이어질 확률 역시 높다.

잘된 일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그렇지 못한 일은, 내가 엉망진창인 거라고.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악화되리라고 생각해버리는 이들.

특히 가정 경험이 부정적인 경우에 그런 경향이 강했다.

2004년 연구에 따르면, 양육시설의 아동들은 우울감을 느끼는 빈도가 여타 아동의 2.5배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거기에는 물론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사회적 편견이나 집단생활의 불편함 등등.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가정의 해체를 경험하거나 버림받았음을 자각하며 형성된 자기존재의 회의일 터였다.

아이들은 결코 둔하지 않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생존에 직결되는 보호자의 존재감은 특히 그렇다.

보호자의 억압이나 방치를 경험한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삶 자체를 역방향의 편향 속에서 해석하게 된다.

주민성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그의 친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미혼모로서 주민성을 홀로 키우며 심화된 우울증.

어린 시절 주민성이 그린 그림일기에는, 적색과 녹색이 특히 많았다는 듯했다.

자해와 음주의 모친을 보며 아이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겨우 5세의 미취학아동이었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길 나이.

십중팔구 자기가 잘못해서 엄마가 슬퍼한다 믿었으리라.

결국 그의 모친은 양육의 의무를 저버렸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올바른 판단이었다.

이후 오래지 않아 자살했다고 하니.

아이와 함께였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역으로 아이까지 끌어들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사실을 주민성 역시 알고 있다.

성인이 된 뒤 친모를 찾으려 한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그래서 직접 이용덕에게 진술한 내용이라 했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던 친모가 울며불며 그를 안아줬더라면, 마음속 앙금이 아주 조금쯤은 풀렸을지도 모르는데.

이제는 묶을 수도 풀 수도 없게 된 매듭이다.

그 주민성 앞에서, 초면의 상담사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래요.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서, 혹시 어떤 고민 같은 게 있으실까요? 친구라고 생각하고 편히 말씀해주세요.”

“아, 헤헤. 예. 제가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공황장애가 조금 있었는데, 그 부분은 이용덕 교수님이랑 같이 많이 치료를 했거든요. 그래서 그거 말고는…… 더 노래를 잘하고 싶어요. 제가 너무 못해가지고…… 아뇨, 아뇨. 이제 춤은 진짜 조금 출 수 있게 된 것 같은데, 노래는 진짜 별로여가지고요. 근데 이게 빨리 늘지를 않고, 조바심이 나고 그러거든요. 그게 마음이 편해야 빨리 는다고 하던데…… 어떻게 하면 좀 편하게 노래연습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있어요.”

그게 이 상담의 표면적인 이유다.

이용덕을 위해 VR상담 출연을 결심한 주민성이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안겨주는 공황장애 쪽은 배제된 것.

홍보도 옛 예능 <무르팍 도사> 같은 느낌으로 했다더라.

프로모션 상담이 너무 깊어지면 그것도 곤란한 일이니까.

아이돌을 모신 첫날은 대중이 쉽게 흥미로워할 만한 가벼운 신변잡기에 집중하자는 게, 프리월드 쪽 결론이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실력에 대한 부담감.

겸사겸사 춤과 노래를 선보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나 역시 VR상담은 가벼운 선에서 그치려 했다.

섣불리 진행할 상담은 아니라고 봤기에.

오늘은 에둘러가는 방향으로 가볍게 속마음만 떠보고, 진짜 치료는 이후 이용덕의 병원에서 해나가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주민성의 출국은 당장 내일 아침.

월드투어를 위해 한국을 뜬 아이돌은, 그 긴 일정을 발작 없이 마칠 수 있을까.

그런 고민 속에서 준비된 멘트를 읊었다.

“이건 한번 봐야 되겠는데요? 대체 뭐가 잘하는 거고 뭐가 못하는 건지, 춤과 노래를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제가 이래봬도 프로예요. 뮤직, 큐!”

춤추고 노래하는 주민성을 그저 가만히 바라본다.

본인은 부족하다지만, 어딜 봐도 멋진 아이돌이다.

자기 표현대로 여러 차례 ‘레벨업’한 결과겠지.

이용덕은 그 노력을 현시욕의 결과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친부모에게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던 열망.

시기가 절묘했던 까닭이다.

주민성이 친모의 죽음을 알게 된 때와 첫 공황발작이 발생한 시기의 텀이, 인과관계가 의심될 만큼 충분히 짧았다.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닐지도 모른다.

표층의식으로는 날 버린 부모 알 게 뭐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심층에서는 달랐으리라.

자신을 버린 친부모에게 이렇게 잘 컸다고 인정받고 싶은, 그런 현시욕이 전혀 없었을 거라고 보긴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 친모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 주민성은, 이후 2개월이 채 못 되어 첫 공황발작을 겪었다.

그게 세 차례쯤 반복됐을 때 이용덕을 찾았고.

그 지점에서 ‘치환’이 발생했으리라 판단된다.

좌절된 애착을 다른 대상에게로 옮기는 그 방어기제를 통해, 가져본 적 없는 친부를 따사로운 의사에게 대입한 것.

그렇기에 이용덕에게 모든 걸 맡기려 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주민성의 왜곡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대상이니, NBSC의 기술과 결합하면 충분한 효과를 낼 것이라 믿으며.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이용덕과 말을 맞춰둔 상담기법은 하루아침에 성과를 낼 만한 것이 아니다.

주민성은 찢어진 마음을 봉합하지 못한 채 출국하게 될 터.

불확실한 미래를, 우리는 그저 지켜봐야만 한다.

“후아…… 헤헤. 끝났어요. 저 어땠어요?”

“……고생했어요. 앉아요. 여기, 물.”

“아, 고맙습니다. 여기 미끄러워서 좀 힘들었어요.”

“그래도 즐거워 보이네요, 민성 씨. 아이돌이 좋습니까?”

“네? 아이돌이요? 아, 완전 최고죠. 팬분들도 많이 사랑해주시고요, 그리고 또…… 춤추고 노래하고, 기분 좋아요.”

그 포인트가 도움이 된 건 사실이리라.

격하게 몸을 쓰는 일은 정신에도 유익한 법이니.

역으로 말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공황발작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그 마음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건 얼마나 끔찍한 공포였을까.

자신을 버린 친모가 오래 전에 자살했다는 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아이돌이 되어버렸기에, 팬들에게 버림받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레벨업’ 해야 한다는 압박감.

어느 쪽을 봐도 행복하지 못한 현실 속에서, 주민성이란 아이는 무엇을 보며 살아왔을까.

“우선은, 민성 씨. 이제 곧 투어를 가셔야 하죠?”

“아, 네. 내일 아침 비행기예요.”

“거의 반년이라고 들었는데, 그동안 또 실력이 많이 느실 것 같네요. 지금만 해도 팬들에게 굉장히 사랑받는 센터신데 말이죠. 실력을 고민하실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요?”

“아…… 근데, 좀 아쉬워요. 더 잘하고 싶은데.”

“그렇군요. 그런데 민성 씨. 왜 잘하고 싶은 거예요?”

“네? 그냥, 잘하면 좋으니까요? 팬분들도 좋아해주실 거고, 그러면 저희 회사 식구들도 기분 좋아지실 거고, 멤버들도 저한테 의지할 수 있을 거고, 그러면 다 좋잖아요?”

“예. 다 좋겠네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주민성은 큰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강아지 같은 친구다.

그 큰 눈에 내 얼굴이 빤히 비쳐 보였다.

“방금 하신 이야기에, 왜 민성 씨는 없을까요?”

“네? 어…… 하하. 저도 좋죠. 칭찬받으면 좋잖아요?”

“그렇군요. 그러면, 칭찬받는 건 행복한 일일까요? 민성 씨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얘기하셨지만, 세상에는 민성 씨보다 훨씬 더 춤을 못 추고 노래를 못하는데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사람들은 왜 행복한 걸까요?”

“어, 그거야, 직업이 다르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떤 직업이든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중에서 칭찬 받는 사람만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누구나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근데…… 근데 잘하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잘하면 더 좋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한다는 ‘레벨업’을 여덟 차례나 경험해본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레벨의 박대민보다는 9레벨의 박대민이 훨씬 더 대단하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내 행복을 완성하는 것은, 내 능력이 아니다.

그저 단 한마디.

잘해왔다고 말해준 가족의 한마디가 행복을 완성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등을 돌린대도 살아갈 힘을 줄 수 있는, 그 무엇보다도 질기고 따뜻한 동아줄.

주민성이 박탈당한 것은 그것이다.

그렇기에 갈구하게 된다.

목이 짓무르고 배가 터질 정도인데도,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더 많은 칭찬과 사랑을 갈망하게 된다…….

이용덕이 정말 이 아이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까.

그는 주민성의 가족이 아니다.

친부를 치환한 존재가 되었다 해도, 어디까지나 방어기제.

그로서도 이 타는 목마름은 채울 수 없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곳은 사실 물을 채워둬야 하는 논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무수한 사람들의 칭찬이 아니다.

때로는 가족의 인정조차 필요치 않은, 선인장의 밭.

“민성 씨. 그러다…… 버림받아요.”

그 한마디에 주민성이 동상처럼 굳었다.

다만 움직이는 것은 눈동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시선이 떨리기 시작한다.

어쩌면 공황발작의 전조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는다.

그는 누구에게도 버림받지 않았다.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하면.

“민성 씨가 지금 스스로를 버리려고 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래서 많은 팬들한테 사랑받는 좋은 사람이 됐는데, 그걸 본인이 제일 잘 알면서도 아직도 모자라다고 채찍질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괴롭히지 말아요. 사랑해줘요. 만약에 누군가가 민성 씨를 떠난 적이 있다면, 그건 그가 민성 씨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에요. 민성 씨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나한테도 미움 받는 사람을 누가 사랑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사랑해줘요…….”

나는 가족 없이 살아보지 못했다.

무뚝뚝한 부모님 슬하에 태어나, 14년 전에 가정을 이뤘다.

소중한 사람에겐 단 한 번도 버림받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주민성의 심리를 알 리 만무하다.

다만…… 나 스스로 나를 버렸다.

김 이병을 잃고 돌아와 학교를 졸업한 뒤, 오직 일에 매진하며 일상을 지워나갔다.

그땐 몰랐지만 아마 PTSD(트라우마)였겠지.

내가 내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심리 속에서, 회사 내의 인정도 가족의 사랑도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잘했다, 박대민.

그 한마디가 너무 어려웠다.

내 잠재의식이 날 살인마처럼 대했기에, 좋은 일을 겪어도 즐거운 마음을 느끼지 못했다.

주민성 역시 그랬을 것이다.

자신이 모친을 죽인 것만 같고, 평생 용서받지 못할 것 같고, 그렇기에 연습에 매진하지 않으면 불안이 도졌으리라.

그 점에서 주민성과 지난 내 20년이 닮아 있었다.

그렇지만……

방금 그건 너무 흔해빠진 이야기였지.

전달됐을 리 만무하니, 빨리 다음 전략을 짜야 할 것 같다.

다만 그 전에, 주민성의 상태가 묘했다.

불안과 당혹감은 어디로 가고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다.

그리고 어째선지 손수건을 건넨다.

“여기…… 이거요.”

“예? 아, 이런.”

뒤늦게 볼의 감각이 돌아왔다.

상황에 몰입한 탓에 눈물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주민성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히히. 아, 왜 우세요? 제가 뭐라고. 어? 아, 저도 울었네요? 꼰마님이 울어서 그렇잖아요! 이거 이상해요. 다 큰 남자 둘이 마주 울고 있고. 원래 상담이 이렇게, 이런 거예요?”

“……그런 건 아니에요. 방금은 내가 오버했어요.”

“뭐예요, 이상해요. 진짜 이상하다니까요? 이거 뭐지 진짜? 저 방금 진짜…… 이거 말해도 돼요? 솔직하게.”

“혹시, 공황이 올 것 같았습니까?”

“아, 네! 아셨구나! 저 이제 약간 느낌을 알거든요. 왜 그런진 모르겠는데 눈앞이 하얗게 되는…… 그게 방금 왔었는데…… 없어졌어요! 꼰마님 철철 우시는 거 보면서.”

“철철 울지는 않았어요.”

“아니 진짜 철철 우셨는데! 하하하. 아 뭐지? 이거 뭐예요? 어떻게 하신 거예요? 지금 저 뭘로, 치료해주신 거죠?”

사실은, 정말 의도치는 않았지만, 그럴지도 모르겠다.

보통 공황장애의 가장 큰 폐해는 공포에의 공포.

자기 자신이 언제든 발작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라는 인지가, 그 자체로 2차적인 공포가 되어 마음을 좀먹는다.

그렇기에 심리치료에 노출요법이 포함된다.

두려워하는 현상을 안전한 상황에서 체험함으로써, 그것이 공포스럽지 않은 일임을 신체에 각인시키는 작업이다.

다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의사의 통제와 준비과정 등 유리한 조건에서 경험한 둔감화는, 홀로 겪는 문제 상황에서 쉽게도 무효화된다.

그것이 공황장애의 재발률이 높은 이유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기회일지도 모른다.

방금 전 그는 복식호흡도 근육이완법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발작이 사라졌다.

이러면, 공황장애 쪽이 먼저 호전될지도 모른다.

“민성 씨. 난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의사가 아니잖아요? 민성 씨 눈 보고 뭔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장 이용덕 교수님 호출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 진짜요? 어? 뭐지……? 방금 갑자기 없어졌는데.”

“그러면 그건, 민성 씨가 극복하신 거겠지요. 심리상담이란 그런 겁니다. 대화를 통해서 내담자의 마음이 ‘레벨업’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어쩌면 이미 다 나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진짜요? 그럴까요? 아, 설마? 에이. 아니 근데, 진짜 왜 없어졌지? 갑자기 느낌이 싹 사라졌는데? 꼰마님 우시는 거 보니까 이게 갑자기 없어졌거든요? 어어? 진짜 뭐지?”

NBSC라 해도 그런 초능력은 없는데 말이지.

그렇기에 그 부분은 이용덕이나 조명기의 조언을 들어봐야 할 부분이지만, 일단 한 가지는 명확한 것 같다.

지금은 웃을 때라는 점.

강아지처럼 고개를 이리 갸웃 저리 갸웃 하면서도 연신 하하 웃는 내담자에게, 있는 힘껏 마주 웃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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