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23장 - 상담사의 기대 (3)
[놀랍징이요? 아이고, 거긴 이미 다 채웠는데.]
신태훈 부장은 몹시 아쉽다는 투로 답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 되었다.
그 프로에서 1위를 하고 어떤 자성적 발언을 한다면, 동안에 열광하는 세상에 경종을 울릴 수 있었을 텐데.
“그렇군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신경 써주셨던 일인데.”
[하하, 아녜요. 거기는 시간과의 싸움이거든요. 한 번 거절한 출연자에겐 아쉬움을 갖지 않죠. 옛날 스타들 초빙하는 그 설탕사람인가, 그건 반대겠지만. 아무튼 이제 좀 게스트 출연 의지가 생기신 모양입니다? 제가 좀 더 알아볼까요?]
“아, 예. 그래주신다면 정말 영광이겠습니다.”
[하하. 뭐 어떤 조건은 있어요? 놀랍징 얘기 다시 꺼내신 거 보면, 이제 아무거나 상관없어지신 걸까요?]
“아, 가능하면 일정 정도 발언권이 있는 프로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응? 아, 아하. 놀랍징은 1위소감이 있고 그러니까? 그래서 그런 일정 정도의 발언을 하시려는 게 진짜 의도군요? 이건, 제가 먼저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 혹시 문제의 소지가 있으면 곤란해요. 무대 쪽으로는 절대 못 꽂아드리게 돼요.]
무대 쪽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다.
예능국의 무대 방송이라면 공개 코미디와 음악방송 정도가 있는데, 양쪽 모두 내가 나갈 만한 곳은 아니다.
신태훈도 그렇게까지 파격적인 사람은 아닐 텐데……
하지만 우선은 불안을 불식시켜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저…… 놀랍징의 경우엔, 제 동안이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사회에 은은한 울림이 될 발언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오…… 예. 무슨 말씀인지 알겠네요. 의외로 전략적이신데요? 그렇죠. 단발성 게스트 출연으로 이슈를 얻으려면 그게 최고죠. 사회적인 울림이 있는 발언, 좋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신태훈과의 통화를 마친 뒤.
복도까지 따라와 물끄러미 보던 김지연의 시선을 받았다.
“어흠.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네. 그게, 걱정돼서요. 요즘 너무 불안해 보이세요. 이번 초대석 때도, 도세나님 때랑 느낌이 많이 다르셨어요.”
“아. 그래 보였어요? 부끄럽네요. 요즘 좀 신경 쓰고 있는 일이 많아서, 눈앞의 내담자에 집중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염려스러운 김서현 케이스를 고민했던 탓이지만……
실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측면도 있었다.
두 번째 초대석 게스트는 ‘인왕킹’이라는 발랄한 남학생이었는데, ‘진단’으로도 [내담자 평가]로도 그저 유명해지고 싶어서 안달이 난 꼬마라는 게 여실히 보였다.
자연히 겉핥기식 상담만 조금 한 뒤 귀가시키게 됐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문제임에는 분명하다.
당장 내일부터 주 1회 VR상담이 시작되고,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여름부터는 주 1회 가정상담까지 하게 될 터.
어쩌면 초심을 잃고 시청자들을 실망시키게 될지도 몰랐다.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김 선생님. 앞으로도 내가 중심을 잃었다 싶을 땐 또 이렇게 말씀해주세요. 나 혼자서는 때때로 국소적인 일에 매몰돼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아…… 그렇게 믿어주시는 건 영광인데, 정확히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집중하지 못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약간 조급해 보이신다는, 그런 느낌이에요.”
“그래 보였습니까?”
“네. 인왕킹 내담자한테는 충분히 잘해주셨어요. 저였어도 그렇게 들뜬 꼬마한테 무슨 삶의 깊은 얘기를 해주진 못했을 거야. 그리고 그날 걔 보내고 나서 해주신 상담들은, 평소처럼 좋았고요. 다만 너무 웃음이 없어지셨어요. 왜 그렇게 급하신 거예요? 좀 더 느긋하셔도 될 것 같은데…….”
그게 보이는 거구나.
민망한 마음에 뒤통수를 긁고 말았다.
“그게…… 정말 그렇긴 합니다. 조급해요. 말씀 못 드렸는데, 곧 저를 중심으로 행동교정 프로가 편성될 수도 있어서요.”
“네? 어? 어어? 지, 진짜로요? 우, 우와!”
“쉿. 아직 기획 중일 뿐입니다. 여러 과정이 필요해요. 당장은 VR 상담부터 실수 없이 진행을 해야 하고, 또 제 이름을 지금보다 널리 알려야 하고,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을 수 있게끔 기본기를 함양해야 하고…… 이래저래 마음이 급합니다. 그런 심정이 표정에 드러난 모양이네요.”
“그러셨구나. 들으니까 이해가 되네요. 충분히 조급해지실 만한 상황이에요. 저라도 그랬을 것 같아요. 텝스도 코앞이고 하니까…… 당장 준비하실 게 정말 많겠어요.”
이해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공감에도 웃음이 지어지진 않았다.
이런 조급함은, 정확히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명확했다.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괴리를 느낀 것 같습니다.”
“괴리요? 어떤……?”
“지난 초대석 날, 조명기 선배님과 협력해서 거식증 환자의 가정상담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그게 결과가 참 좋았어요. 제 발언이 좋은 효과를 내서, 내담자는 물론 가정 전체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와! 그거 되게, 너무 좋은 일인데요? 잘하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제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말해야 되겠다, 그런 확신을 했던 건 맞는데, 그게 어떻게 작용해서 어떤 방식으로 효과를 거둘지는 미처 몰랐던 겁니다. 직관과 지식 사이에서 괴리가 발생했어요. 제 머릿속의 감각적인 해결책을, 저 스스로는 이해하지도 못했던 거지요. 역으로 조명기 선배님께 배우게 됐어요. 그때부터 뭔가 콱 막힌 느낌입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찬사를 받는 것 같고, 이러다 큰 실수를 저지를 것 같고…… 하하. 이러다 공황에 빠지곤 하는 거겠지요?”
스스로 말하고도 황당해지고 말았다.
내가 뭐라고.
지금도 날 기다리는 내담자들이 세상에 넘쳐날 텐데, 대체 지금껏 뭘 해냈다고 공황을 논한단 말인가.
NBSC의 거대한 능력과 내 부족함의 괴리다.
초능력 같은 기술이 쌓일수록 간극은 벌어지리라고, 그 정도는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순간의 안주도 없이 정진하리라 다짐했었다.
나는 이미 이런 순간을 각오했어야 마땅하다…….
마음이 무거워진 내게, 김지연이 손을 내밀었다.
주먹을 쥐고 있는 작은 손이다.
뭘 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 빤히 봤더니,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끌어올려 그 주먹에 맞대도록 만들었다.
“참나. 이것도 모르세요? 피스트범프잖아요?”
“아, 알긴 아는데…… 하하. 못난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정말로요. 저보단 훨씬 잘나셨지만, 못나셨어요 참. 이거 하나는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상담사 실격이세요.”
그 말이 기시감을 일으켰다.
내가 김서현의 모친에게 했던 말이다.
부모 실격이라고 말하며 그녀를 공격했었지.
나는…… 그만큼이나 부족한 모습이었던 걸까.
그렇지만 김지연의 의도는 나와 많이 달랐다.
“상담사는 뭐 무적이에요? 언제나 최고여야 돼요? 그런 사고방식이 마음을 병들게 한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에요. 기본을 잊어버리고 자길 채찍질하면, 내담자들은 뭐 바본가? 불안해하는 상담사 보면서 안심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 우리 박대민 내담자님, 아직도 안 나았네요. 이거 제가 팔 딱 걷어붙이고 다시 상담소로 끌고 가야 되겠어요.”
“아…….”
“내담자 가정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면서요? 그 얘기 하실 땐, 웃으셔야죠. 행복하게 막 즐거워하셔야죠. 그런 일이 뭐 흔한 줄 아세요? 아니 뭐, 선생님이야 너무 자주 겪는 일이라 그게 당연하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은 아니에요. 아주 엉망진창이야. 이생망!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내담자가 호전되는 걸 보면, 그때라도 웃어야 돼요. 그래야 살아요. 우리는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에요. 아시겠어요?”
그래야 산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다……
오래 전, 오아시스를 논하며 웃음 짓던 김지연을 떠올린다.
그녀를 보며 상담사의 무거운 책무를 절감했었다.
나 역시 그렇게 될 것임을 직감했었다.
그랬는데도, 단 한 차례의 괴리에 흔들리고 말았다.
나는 대체 어디까지 가 있었던 걸까.
당장 사막 전체를 녹지화 시키기라도 할 셈이었던 걸까.
그게 아니다.
날지 못하는 순례자는, 그저 매 걸음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 걸음걸음을 즐기지 못하면 곧 쓰러지고 만다.
“하하. 이거…… 좀 살겠네요.”
“헤헤. 그렇죠? 저 꽤 괜찮은 상담사 아녜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제 유일한 상담사시니까요.”
“어머. 와. 그 거짓말 진짜예요?”
“예. 이 거짓말은 진짜입니다.”
“……뭔가 애매한데요?”
“본인이 말하고 그러시면 됩니까. 아무튼, 정말 좋은 상담이었어요. 내가 뭘 놓치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어…… 뭘 놓치고 계셨는데요?”
“한 교수님이, 김 선생님이, 왜 늘 가면을 쓰시는지요. 단순히 수월한 상담을 위해서만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아닐 겁니다. 상담자 본인의 짐들이 역으로 내담자를 괴롭히지 않게 만들기 위한…… 내담자를 지키는 방패인 거지요. 그걸 깜빡 잊고 있었어요.”
“아, 아뇨, 그렇다고 연기를 하시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팔을 파닥거리는 김지연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물론입니다. 연기를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사람을 하나만 꼽으라면, 그게 저일 테니까요. 가면을 못 쓰니 어쩔 수 없지요. 여유로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가장 긴박하고 부담스러운 순간에도, 누구보다 행복하겠습니다.”
“……우와. 그게 돼요?”
“하라고 하신 분이 그러시면 됩니까. 하겠습니다.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몇 안 되는 특기였으니까요.”
어려서부터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언제나 내 미래를 가장 밝은 빛깔로 그렸다.
가난 속에서 서울대를 꿈꿀 때도, 대표의 면전에 타박을 하고 돌아설 때도, NBSC의 초능력을 마주했을 때조차.
그런 내가 주저앉을 정도의 무게였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은.
지나치게 멀고 무거운 꿈이, 정작 그 길을 좀먹고 말았다.
하마터면 사막에 누워 바다를 그릴 뻔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 회기의 페이는 어떻게 드릴까요?”
“하핫! 주실 생각도 없으시면서?”
“아뇨, 있습니다. 김 선생님 이름으로 기부해드릴게요.”
“으으, 됐거든요? 박 선생님 성함으로 많이 하세요. 아, 혹시 괜찮으면…… 나중에 그 프로그램 출연시켜주세요.”
“예? 아, TV 말입니까?”
“네. 저 어렸을 때 TV 나오는 게 꿈이었거든요.”
“그런 거라면 제의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김 선생님 연락처 물어보는 메일이 우리 쪽으로도 많이 올 정도인데요.”
“아, 거기로도 연락했어요? 학교로 오는 건은 다 커트해달라고 해서 그런가봐요. 그냥 아무 TV 말고, 행동교정 프로 나가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아빠랑 같이 많이 봤거든요. 상담사로 진로 정한 것도 그래서였던 거 같고…… 그래요.”
……그런 영향이 있었구나.
그렇게 상담을 공부하기 시작한 김지연은, 그러나 그 부친을 지켜내는 일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 마음이 종소리처럼 은은하게 스며든다…….
그녀는 이제 누구 못지않은 훌륭한 상담사가 되었다.
내담자 본인이 깨닫지 못한 문제까지 짚어줄 정도로.
그런 그녀는, 분명 자랑스러운 존재.
아버지라면 자랑스러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흠…… 그렇지만 안 되겠는데요. 저는 사실 MC 겸 제자 롤입니다. 실질적인 전문가 패널진은 한 교수님과 이용덕 교수님, 그리고 조명기 선배님입니다.”
“아, 으아. 어마어마하네요. 그러면, 저는 안 되겠네요…….”
“그렇지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긴 해요. 제가 주로 직접 가정에 투입되는 역할인데, 부끄러움 많은 여자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심도 깊은 대화가 어려울지도 모르겠어요.”
“네? 에이. 아리의 왕자님이신데요?”
“어흠. 그냥 들으세요. 그림 면에서도 약간 보기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나 역시 가끔은 누굴 시켜먹기도 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동기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어요.”
“어? 네?”
“괜찮으시다면 한번 추진해보지요. 상담소에 박사과정에 워낙 바쁘실 분이라 힘드실 수도 있겠지만-”
“할게요! 하, 할래요. 저기…… 제가…… 방해가 안 되면…….”
“방해가 안 되게 노력을 하셔야겠지요? 미리미리 준비를 해두세요. 방송환경이나 MC들의 화법 말입니다.”
“앗…… 네! 네…… 열심히, 할게요!”
현실에서 선보인 꼰대마스터가 퍽 잘 먹혀든 것 같다.
한참 선배를 동기로 격하시킨 것인데도 환히 웃는 걸 보면.
그 미소가 보기 좋아서, 코웃음과 함께 돌아섰다.
……마주 웃어주는 게 상식적인 행동일 텐데.
어쩌면 한효준을 닮아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믿는 사람에게는 도리어 퉁명스러워지고 마는.
그는 오직 심리적 거리가 있는 대상에게만 상담사의 탈을 쓰고 가장 여유로운 모습을 연기하곤 했다.
그에 비해 조명기는……
그 사람은 기본이 웃는 탈.
상담 중이었다는 어젯밤에는 조금 침울했지만, [내담자 평가]가 그의 본성이 활달함을 입증하고 있다.
태생적으로 상담사에 어울리는 위인이었다.
나는 어떨까.
그 모든 무거운 짐들에도 여유롭게 웃을 수 있을까.
어떤 연기도 해내지 못하는 이 얼굴로, 모든 내담자에게 오직 편안함만을 안겨줄 수 있을까.
생각한 끝에, 빙글빙글 웃게 되었다.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어서.
내담자는 내 오아시스.
그 앞에서 조급하게 안달을 낼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저 바라만 봐도 행복해지는 존재인 것을.
아주 오랜만에, 마음이 턱없이 포근해졌다.
*
“아, 대민 씨……? 어라. 음. 뭐지? 뭔가 좀……?”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아이, 그냥 선배라고 하라니까요. 그런데 그…… 뭐랄까 좀, 약간, 편해 보이시네요? 너무 방심하신 거 아니에요? 이제 잠시 후면 대망의 첫 VR 상담이 시작되는데?”
방심을 논하는 그의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이제는 몰라볼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만 놀리시지요? 까마득한 후배 놀리시면 좋습니까?”
“어어? 아이고, 내가 뭘 놀렸다고 그래요?”
“제가 칭찬을 안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안 하신 게 아니잖습니까? 서현 씨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걱정해서 안달복달 하는 것이 우스워서 그러셨던 거, 알고 있습니다.”
“아이쿠! 그걸 어떻게 알아버리셨지? 하하하.”
천성이다, 이건.
사람을 워낙 좋아해서 마구 장난을 치고 마는.
“부끄럽지만, 그간 계속 몰려 있었습니다. 그제 전화를 드릴 때까지도요. 하루빨리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이었지요. 거기서 벗어났을 뿐입니다. 지금은…… 완벽하게 방심했습니다.”
“하하. 그래요? 그거 참 고무적인 일인데요?”
“기대하십시오. 삼고(三顧 삼고초려) 때에는, 선배님께서 오히려 제게 꼭 함께하게 해달라고 매달리시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때는 제가 선배님 출연료를 깎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고, 그래요? 그래가지고 또 기부를 하시게요? 아유 무서워. 항복합니다. 기부 업! 하하하.”
……기부와 give up의 언어유희인가.
참, 어떻게 이렇게 밝을 수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침울해졌던 일전의 상담 역시도.
“그제 밤에 진행 중이셨다는 상담, 여쭤봐도 괜찮습니까?”
“응? 아, 되죠. 유족들을 좀 만나고 있었어요.”
“유족……들이요?”
“예. 4월이니까요. 그래서 저녁이면 계속 바빴죠. 대민 씨 생방송 못 본 건 그래서예요. 안 바빴으면 봤겠지. 미디어는 싫어도 우리 후배님은 내가 좋아하니까. 그런데 이번 달에는…… 그럴 수가 없어요.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 앞이라서. 그때도 대민 씨 전화 아니었으면 안 받았을 겁니다.”
……그래서였던 거구나.
미디어를 싫어하기에 주변에서도 알리지 않았을 뿐, 이 남자는 매년 4월이면 그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딸을 둔 부모로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아, 뭘 또 그렇게 반응해요? 이젠 그냥 일상이야. 그쪽에서도 제발 오지 말라고 그래요. 귀찮게 왜 자꾸 오냐 그러더라고. 보여주기 식으로 오는 거면 인터뷰나 좀 해요 이 양반아, 막 이러는 거야. 그래놓고 약주 한 잔 하면 꼭 엉엉 운다니까요? 하여튼 츤데레들이란 말이지. 츤데레 알아요? 난 그거 요즘에 배워가지고, 너무 재밌던데.”
“……솔직히 와룡보다 봉추가 더 어울리십니다.”
“뭐요? 아 이 후배님이, 사람 외모로 놀리기 있습니까?”
외모와는 무관한 이야기였지만, 그저 씩 웃어 보였다.
이 사람을 놀리는 것이 나도 즐거워져서.
“선배님을 얻고 말겠습니다. 반드시.”
“으응? 이런. 그거 진짜였어요?”
“예?”
“브로꼰백마운틴?”
“……제겐 아내밖에 없습니다.”
장난임을 알면서도 울컥하고 말았다.
하지만 잠시 후에는, 마음이 봄날처럼 푸르러졌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주민성의 마음을 열어 이용덕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매스미디어가 만든 오해들을 하나하나 깨부숴 조명기의 마음마저 사로잡아서.
그럼으로써……
마음속의 모든 번민들을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만들어, 나 자신의 기대까지 충족시키는 상담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