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62화 (62/200)

# 62

23장 - 상담사의 기대 (2)

두 번째 실검 1위는 처음보다 더 큰 효과를 냈다.

본디 실검이라는 것이 그렇다.

소수의 정보수집가 타입을 제외하면, 처음 보는 단어에 호기심은 품을지언정 굳이 알아보려는 마음은 잘 먹지 않는다.

그것이 여러 차례 눈에 들어올 때에야 대체 이게 뭔가 하면서 검색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꼰마’는 이제야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방송이 끝나기 직전에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hsjungkk : 대민아 나야 호성이~~^^ 잘지냈어~? 이렇게 보니까 완전 반갑다~~ 어제 실검 눌러보고 깜짝놀랐지 뭐야~~ 근데 넌 어떻게 그대로냐 더멋있어졌네~ㅎㅎ 이거 보면 쪽지로 연락처좀 주라~~ 애들도 다 너 보고싶다고 난리다~~ 오랜만에 동창회 어떠냐~~^^」

「엌ㅋㅋㅋ 실시간 아재체 등장ㅋㅋㅋㅋ」

「아-하!」

「머야머야 오늘 꼰마님 흑역사 나오나여 ㅋㅋㅋ」

「아재요 꼰마님 첫사랑얘기해주세요~~^^」

정호성.

과 동기였고, 나처럼 졸업 직후에 취업을 했던 것 같다.

사교성 없는 녀석이었지만 서울대 인맥과 굳이 연을 끊진 않았겠지.

여자친구가 있는 사범대조차 한번 찾아본 적 없는 나만이, 학교의 추억에서 스스로를 떨어뜨려왔다.

“호성아, 반갑다. 상담하느라 채팅을 좀 늦게 봤네. 나도 참 보고 싶고 그런데, 요즘 내가 좀 정신이 없어. 대학교도 다시 다니고 있고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그래서 동창회는 모르겠지만, 우선 전화번호 남길게.”

「꼰마님 지금 영통가죠 ㅋㅋㅋㅋㅋ」

「친구분도 동안이에여??? 궁금하다」

20대에도 탈모로 고민하던 친구다.

아마 지금쯤 머리가 싹 벗겨졌으리라.

그 점을 고려해서 노코멘트 하려는데, 쪽지를 받은 정호성이 곧장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여보세요?”

[대민아! 야, 이게 얼마만이야. 나 알아보겠어?]

“어, 어. 그래. 알아보겠네. 너…… 음.”

[하하하. 부분가발이야. 괜찮지? 젊어 보이지 않아?]

헤어스타일은 사람의 이미지를 상당부분 좌우한다.

가짜 머리를 붙인 마흔일곱의 정호성은, 20년 전만큼이나 젊어 보이는 측면이 있었다.

“음…… 그런데 얼굴 공개해도 괜찮은 것 맞아? 시청자들이 꽤 많은데. 가족들이 보거나 하면 불편하지 않겠어?”

[나야 괜찮지. 독신이니까. 보여줘 보여줘. 안녕하세요, 여러분? 꼰마님의 친구입니다. 하하. 다들 반갑습니다.]

그렇게 공개된 친구 정호성의 얼굴.

시청자들이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ㅋㅋㅋㅋㅋㅋ아재 왜때문에 해맑음ㅋㅋㅋㅋㅋ」

[하하. 이런 거 처음 나와봐서요.]

「가발 티안나여 ㅎㅎㅎ」

[티 안 나죠? 하하. 고맙습니다.]

「와 근데 ㅋㅋㅋㅋ 원래 47살이 이런거구나 ㅋㅋㅋㅋ」

[아이고…… 쟤가 너무 동안인 거예요.]

「우리꼰마님 대학생때 어땠어요?」

[대민이- 아. 꼰마는, 되게 공부만 했습니다. 공부랑 동아리랑. 그래서 얼굴도 자주 못 봤어요. 그때 8학기 내내 알바 했을 거예요. 그랬지? 뭐였더라? 가정교사였나?]

「꼰마님 첫사랑 얘기 해줘요!」

[꼰마님 첫사랑이요? 쟨 그런 거 없었어요. 진짜로 공부 동아리 일 이렇게만 했거든요. 술도 거의 안 마셨지 아마. 그런데 쟤 좋아하는 여자애들은 꽤 있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공대에 여자는 참 드물었는데, 그 드문 애들이 둘에 하나는 박대민 아냐고 물어봤거든. 소문이 났던 거지. 공대에서 드물게 미남이었으니까. 아, 졸업앨범이나 꺼내볼까?]

“……호성아, 그만. 이제 방송 끝내야 돼.”

[아, 그렇지? 하하. 다음에 한가할 때 전화 한번 주라.]

그렇게 통화를 마칠 때쯤, 아내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진주희♥ : ㅎㅎ 그럼 내가 당신 첫사랑인가?」

……그거야 아 다르고 어 다르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인데.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첫 PPL에 돌입했다.

의자에서 일어서 카디건을 휘날리며 전축으로 접근.

거기서 클래식 명반 하나를 재생시킨 뒤에, 소리가 나기 시작할 즈음에 살짝 돌아보면서 말하는 거다.

“LP. 신뢰할 수 있는 이름.”

「??」

「이거먼뎈ㅋㅋㅋㅋㅋㅋㅋ」

「아 ㅋㅋㅋㅋ 엘피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꼰마님 숙제하신다」

[보람보람보님 별사탕 100개. 도랏 크크 꼰마님 숙제 머에여 미치겠네 크크 혁신적인 피피엘이네여 크크]

반응을 보면 방송 종료 시그널로 나쁘진 않을 듯했다.

그렇게 방송을 끝내고 검토회의를 진행할 차례가 됐는데, 대수가 왠지 흥이 돋아서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형님 형님, 진짜 동창회 한번 가보시죠?”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럴 시간은 없어. VR에 방송에 시험 준비까지 해야 하는데,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하다.”

“크, 방송! 그것도 참 기대가 되는 일인데 말이죠. 근데 몸 쪼갤 거 없이 야방 가면 돼요. 동창 분들 상담해주시면서.”

“그래서야 동창회 분위기를 깨게 되잖아.”

“에이, 안 그럴 것 같은데.”

“그렇게 되는 거야. 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첫 숙제였는데, 엘피 쪽 담당자는 봤대?”

“예압. 대만족이랍니다. 홍보영상 완성본도 기대하고 있대요. 나레이션 최종본도 짜봤어요. 내일 녹음하게 연습해주시면 될 것 같고…… 근데 빡세네요. 형님 영어시험 그게 5월초죠? 진짜 바쁘긴 하겠어.”

“괜찮을 것 같아. 낮에 모의시험 쳐봤는데, 합격권이야.”

“우왕! 역시 천재 꼰마님!”

“천재는 무슨. 선배들이 도와준 덕분인데.”

학교 후배이자 석사 선배들인 대학원생들은, 내 텝스 준비에 열성적으로 도움을 주려 했다.

그게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프로젝트는 마무리 단계라고 해도, 각자의 연구가 있을 터.

최근 들어 지나치게 호의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효준의 잦은 부재에 심리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그 대용으로 의지하려는 것도 있겠지만……

주된 이유는 이용덕의 SNS겠지.

주민성의 VR 상담을 위해 협력을 다짐한 이후, 그는 BJ꼰마의 방송에 호의적인 포스트를 올리기 시작했다.

정신의학계의 거목이 나를 인정하기 시작한 게 같은 랩의 대학원생들에게 꽤나 큰 힘이 되는 듯했다.

“어쨌든 그렇게 토요일 되면, 홍보영상도 올라가고 엘피 쪽에서 인터넷 화보도 낼 겁니다. 일단 홈피 대문 장식했다가, 반응 봐서 인터넷쇼핑 이미지모델로 넣는 방향도 생각해보고 있대요. 모델 페이에 인지도까지! 떡상 각입니다요!”

“그렇게 되면 좋겠네. 오늘은 이 정도로 하자. 고생했어.”

“고생은요! VR 이슈에 2차 실검까지 해서 유튭 40만 고지가 코앞이 됐는데? 돈방석이 코앞인데 상하차를 한들 피로가 느껴지겠음? 기냥 다아 저한테 맡겨두시면 됨요. 형님, 피곤하실 텐데 얼른 들어가십쇼. 푹 쉬시고요.”

그렇게 대수와 작별했지만, 푹 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당장 조명기의 설득 쪽이 급했기에.

시험과 여러 프로젝트로 정신이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마음이 온통 쏠리는 건 세 번째 스승 쪽.

김서현의 상담 과정을 통해서 존경심은 더욱 커졌는데, 그 쪽에서 거리를 두고 있어서 가슴이 답답했다.

이용덕과는 물론이고 한효준과도 무척 다른 위인이다.

내 편법을 응원하면서도 스스로는 충실한 상담사로만 기능하는 한효준은, 정석의 극한에 다다른 학자.

반면 조명기는 시스템을 넘나들 줄 안다.

임상의 선을 넘는 방향으로도 전략을 짜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환자를 치료하는, 말하자면 내 상담의 이상향이었다.

그런 사람이 합류해준다면 배울 점이 정말 많을 텐데.

하지만 미디어에 품고 있는 혐오감이 걸림돌이다.

[정문의 일침]을 사용하면 어느 정도 포인트가 잡히겠으나, 그건 한 사람에 단 한 번밖에 허락되지 않는 초능력.

당장 미디어 출연을 위해 써도 될지 확신이 안 섰다.

그런 고민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주머니 속에서 웅웅대는 핸드폰을 꺼내보니, 어느새 정호성이 날 단톡방에 초대한 상태였다.

(정호성님이 박대민님을 초대하셨습니다.)

「이호남 : 호성이 넌 가발 얘긴 왜 했냐 ㅎ」

「정호성 : 아니~ 나도 너무 반가워서 그랬지~ ㅎㅎ」

「정호성 : 자 다들 대민이한테 박수~~!」

「조정혁 : 오 대민이 초대했구나!」

「최명중 : 대민아 오랜만이다 ㅎㅎ」

「송경철 : 대민이 이게 얼마만인가~?」

「정호성 : 흠 대민이 생방 끝나고 정리하나보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이름들.

모든 동기들이 다 모인 건 아니고, 십여 명 정도였다.

긴 시간이 흐르며 친한 멤버들만이 남았겠지.

그 끝에 기대치도 않았던 이름이 보였다.

「신경미 : ㅎㅎ 대민이 보고싶다 잘지냈어?」

흔치 않은 공대 여학생이었던 신경미는, 내 첫사랑이었다.

그렇게 표현해도 괜찮을지는 확신이 어렵지만……

경애의 사랑도 사랑이라면, 말은 될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절로 타자가 흘러나왔다.

「잘 지냈어? 오랜만이다 다들.」

「정호성 : 대민이 등장~~^^」

「송경철 : 야 대민아! 어떻게 이렇게 오랜만이냐!」

「이호남 : 하하 정말 대민이네! 가족사진 단란하구나~」

「신경미 : 대민아 안녕! 사진 보니까 참 좋다!」

「신경미 : 사실 나 꼰마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정호성 : 어? 그런 말 안 했잖아?」

「신경미 : ㅎㅎ 지금 HIS 관리하고 있거든」

「신경미 : 고대 교수님이 꼰마님이랑 일할 거라던데~」

「신경미 : 그런데 그게 너인 줄은 몰랐지 뭐야 ㅎㅎ」

그게 또 뜻밖의 지점이었다.

HIS(Hospital Information System)라면 병원 등의 전산 정보망을 관리하는 프로그램.

그 업무 과정에서, 고려대병원의 조명기와 BJ꼰마 사이의 접점을 들어본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조 선배님께서 내 이야기를 하셨어?」

「신경미 : 어~ 등록된 의료진 외 상담사와의 협진 기록은 어떻게 남길 수 있냐고~ 비고에 적으시라고 말씀드렸어~」

그 양반 참, 별난 기록을 남기신 모양이다.

나는 등록이 문제가 아니라 의료인이라고 볼 수가 없는데.

다만 김서현이 이후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된다면 정보가 이어져야 하니, 환자를 위해서는 필요한 일일 터였다.

「그랬구나. 참 사려 깊은 분이지.」

「신경미 : 그러게 말이야~ 교수님한테 직접 문의 들어온 건 처음이었어~ 그래서 내가 직접 전화 드렸구~ 그런데 되게 수다스러우시더라~ 꼰마님 자랑을 한참 들었지 뭐야~」

「..ㅎㅎ 그래 뭐라고 말씀하셨니?」

「신경미 : 사람을 사람으로 볼 줄 아는 분이라구~ 이제 이해가 된다~ 대민이는 그런 애였지~ㅎㅎ」

……아니다.

나는 그런 애가 아니었다.

그런 부류에는, 신경미라는 친구가 훨씬 더 잘 어울렸다.

그게 아마 96년 봄이었을 것이다.

세상이 변해 더 이상 대학생들이 데모할 필요가 없어진.

또는, 나 혼자만 그렇게 믿고 있었던 시절의 일.

을지로 인쇄골목이었다.

눈과 코가 매워지기 시작하더니, 금세 허연 연기가 들어차고, 골목으로 학생들과 백골단이 경주하듯 달려들었다.

괜히 두려워져 황급히 가방을 챙겼다.

혹시라도 나까지 그쪽 부류로 오해받을까봐.

큰 몸집과 빠른 발로 금세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한 사람을 보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터였다.

쫓기는 무리 중에 신경미가 있었다.

전혀 다부지거나 튼튼하지 않은 몸으로, 다른 여학생을 감싸 안은 채, 곤봉에 두들겨 맞고 있었다.

그러다가 핏물 틈의 눈으로 나를 발견했다.

그리곤 빨리 도망치라고 외쳤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정치도 데모도 잘은 모르겠지만,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누군가를 위해 방망이를 맞을 줄 아는 사람이.

나는 충동적으로 신경미와 그 친구를 구해냈다.

곤봉에 쥐어터지고 최루탄에 엉엉 울긴 했지.

그러나 나름 강골이었던 덕에 붙잡히지는 않았다.

그 뒤에 두 사람이 연신 고맙다며 사례를 말했는데, 혹시나 운동권에 끌려갈까 두려워서 내가 거리를 뒀던 것 같다.

나중에…… 그날 한 학생이 맞아 죽었음을 듣게 됐다.

나보다 두 살 어렸을, 연세대 95학번이었다.

이후 꽤 오랫동안 기억의 그림자에 시달렸다.

신경미가 가상의 여신이 됐던 게 그래서였다.

무서워서 도망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구해야 했던 거라고, 세상의 빛이 될 신경미를 구하느라 고인을 구할 수 없었던 거라고, 그렇게 내 죄의식을 설득했다.

참 희한한 첫사랑이었다.

「..ㅎㅎ 고맙다. 다들 좋은 밤 보내렴.」

「정호성 : 대민아~~ 우리 동창회 일정 정해야지~~」

거기엔 답하지 않고 메신저 창을 닫았다.

반가움은 반가움에서 끝낼 일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이 더는 낯설지 않게 된 나지만, 국가의 폭력이 잦아든 시대에 더 큰 의무를 떠안고 말았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일분일초가 아쉬웠다.

내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학계 전반의 존중을 받는 석학 중의 석학이.

내 야매 상담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줄 사람이.

[음…… 여보세요?]

조명기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참 낮았다.

잠에서 깬 느낌은 아니고, 가족과의 시간을 방해한 듯했다.

“늦은 밤중에 실례하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전화를 드리게 됐습니다.”

[아, 그래요. 흠. 실례까진 아녜요. 그냥 상담 중이었거든.]

“이 시간에…… 아, 죄송합니다.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양해 구하고 받은 거야. 얘기해요.]

시간대로 보아 병원의 심리치료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상담 중에 전화를 받았다는 건 좀 의외였다.

변칙적인 사람이라곤 해도 막무가내인 성격은 아닐 텐데.

하지만 그 점을 캐물을 때는 아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드리고자,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선배님. 미디어를 싫어하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응? 아, 아까 그 얘기? 정말로 별 건 아닌데요.]

“그렇다면 부탁드립니다. 제 방송을 도와주십시오. 선배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명망도 실력도 선배님이 최선입니다. 무엇보다, 한효준 교수님께서 선배님 외의 임상심리전문가를 탐탁지 않게 여기십니다. 최선의 협업을 위해 대안이 없습니다.”

[하하. 아이고, 집요하셔라. 그건 좀 곤란하다니까요.]

“뭐가 필요하십니까? 뭐든 맞춰드리겠습니다.”

[어허, 사람 참. 날 속물로 만들고 싶은 거예요? 내가 속물이 맞긴 한데, 그런 것 때문이 아니잖아요 이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내담자 평가]가 있으니까.

그렇기에 내가 맞춰주려는 것은 돈이 아니다.

“매스미디어 전반을 뒤집어엎겠습니다.”

[……뭐라고요?]

“혐오하시지 않습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느꼈습니다. 매스미디어를 혐오하는 분이라고요. 그렇기에 제 방송도 생방송으로는 보지 않으셨던 것 아닙니까?”

[허…… 그렇게 느끼셨구나. 그건 좀 얘기가 다른데.]

조명기는 무언가를 셈하듯 한참 침묵했다.

그 뒤에, 예상외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아니, 날 원하는 거야 이해해. 자랑은 아니지만 허명도 있고, 이쪽에서 대민 씨 상담 스타일을 이해할 만한 몇 안 되는 임상심리사기도 하고. 그래서 그쪽은 알겠는데, 저의를 모르겠네요. 왜 그렇게까지? 지금도 남부럽지 않게 부와 명예를 쌓고 있잖아요? 그 이상 노력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나 역시 잠깐 침묵하며 고민하게 됐다.

이쯤에서 [정문의 일침]을 사용해야 할까 싶어서.

하지만 5초쯤 뒤에 고개를 저었다.

이런 질문에는, 진심으로 대답해야만 한다.

“자살자를 수습한 적이 있습니다.”

[……아.]

“그 얼굴이…… 며칠 전까지 해맑게 웃고 있었으나, 이제는 모든 생기를 잃어버렸던 얼굴이, 잊히질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후 상담을 시작하고 내담자의 고통을 지워주면서, 간신히 승화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고통 받는 이들이 절 찾길 바랍니다. 그저 잘나가는 스트리머로 끝날 생각 없습니다. 저는 최고의 상담사가 되어야 합니다. 한 교수님의 정석만큼이나, 조 선배님의 그 파격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내 마음은 전해졌을까.

[내담자 평가]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다만 고개를 숙인 채 그의 답변을 기다렸다.

[……하하. 이거야 원,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을 해버리시는군. 마음은 이해합니다. 이해하는데…… 이해와 신뢰는 좀 다른 부분이에요. 그것만으로는 내 신조를 허물 수 없어요.]

“이해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흐음. 정 그렇게 내가 필요하시다면…… 하나 보여줘요. 정말 미디어를 바꿀 수 있다는 걸. 방송에 하나 출연해봐요. 그리고 거기서 어떤…… 고정관념을 바꿔봐요. 매스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아주 근본적인 착각을. 뭐가 됐든 좋습니다. 그 정도 희망은 보여줘야, 이 와룡이 삼고초려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어요? 하하. 이건 좀 재수 없나?]

그렇게, 시스템 외적인 퀘스트를 받게 됐던 것이다.

말하자면 에픽퀘스트 달성을 위한 연계퀘스트를.

그 안에서 한 단어가 귀에 맴돌았다.

와룡이라는 것은, 내 별명이었다.

그렇기에 거기서 어떤 마음이 느껴질 것도 같았다.

와룡을 만드는 건 그 스스로가 아니다.

제갈공명도, 나도, 숨고자 해서 숨어 있던 것이 아니었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주위의 한계로 인해 실력을 감춰야 했을 뿐이다.

스스로를 와룡으로 칭한 조명기 역시 그와 같을 터.

그에게 필요한 건, 삼고초려가 아닌 유비현덕이다.

세상의 장벽을 허물 영웅의 가능성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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