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22장 - 나쁜 내담자는 없다 (2)
“너…… 너, 먹었어? 저녁밥은 그렇게 기를 쓰고-”
“조용! 방해하지 마세요.”
반쯤 돌아보고 나지막이 으르렁댄 말에, 김서현의 모친이 찔끔해서 목을 움츠린다.
약간 미안한 감정이 들긴 했다.
181cm의 거한이 노려본 것이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지만 입을 열어 사과하진 않았다.
김서현의 모친은, 나쁜 사람이다.
상담심리사라면 그런 사람에게조차 직면에 앞서 정서를 지지해줘야 하지만, 야매 상담사 박대민은 그들과 좀 다르다.
나쁜 사람에겐 진실을 직면시켜줄 요량이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판단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성문법을 말하고 어떤 이는 도덕률을 말한다.
나 역시 그 문제에 한 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용덕의 일침을 통해 깨달은 기준.
선해지려고 노력하는 자는 선하다.
그러지 않고 주변만을 파괴하는 자는, 악하다.
극단적인 예시로는 이런 것이 있겠다.
악플러들조차도 악인으로만 가득한 건 아니라고 믿는다.
스트레스의 방어기제인 수동 공격(passive aggression)을 웹상에 표출해, 그로써 현실의 주변인을 지켜나갈 테니.
인터넷이 피해자 없는 대나무숲이 아닌 것이 문제지만.
그들 중 일부는 효자 효녀일 수 있다.
일부는 상냥한 친구일 수 있다.
다정한 부부나 호구 같은 직장인일 수도 있다.
다만 ‘이 정도 댓글은 괜찮아’나 ‘이건 진실을 위한 정의의 철퇴야’ 같은 자기 상식 속에서 웹을 검게 물들이는 것이다.
결코 미화가 아니다.
한 연예인을 공격하기 위해 뭉친 어느 악플러 모임의 회원수가 무려 11만에 달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1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10대의 48%와 20대의 29%가 악성 댓글 작성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자각하지 못한 악플까지 고려하면 그것조차 최소치.
그리고 2020년 현재, 악플러가 줄어들었을 리는 만무하다.
그 무수한 인간이 모두 악마 같은 사이코패스일까?
나는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다.
정말 그런 거라면, 인류는 차라리 멸종하는 편이 나을 테니.
악플은 범죄다.
현실의 폭력과 다를 바 없는 가혹행위.
피해자가 실재하고, 그들이 때로 생명의 위해까지 입는다.
피해사실을 수집해 엄벌해야 마땅하다.
다만 그 벌은, 이용덕의 말대로, 관할이 다르다.
상담사는 검사나 형사가 아니다.
그저 내담자의 어긋난 마음을 자각시켜주는 존재.
그리고 그릇된 인지도식은 비난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억압에의 반발로써 더욱 강하게 분출되고 만다.
그 진리를 망각하고 일방적으로 악플러들을 매도했던 일은, 내 울분을 풀기 위한 화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용덕의 가르침이 기꺼웠다.
한 피해자에 매몰되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뻔한 언사에 제동을 걸어준 것이기에.
결론적으로, 악플러 대부분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
일부는 정의를 구현한다는 의무감까지 품는다고 했다.
끔찍한 일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비난이 아닌 상담으로 그들이 스스로의 범죄를 깨우치게 만든다면, 십중팔구 정도는 변화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미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니까.
현실에서나마 선인이려 하는 이들이 80%는 될 것이다.
그들이 악성 댓글도 잔악한 범죄임을 자각하도록 돕고, 쏟아지는 방망이들을 바른 방식으로 해소하게끔 이끌어준다면, 웹상에서도 선인으로 거듭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비난 없이 세상을 바꿔나갈 셈이다.
수백만 구독자를 가진 최고의 BJ로 성장해서.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믿기에 상담소를 찾아본 적 없는 가해자들마저 내 방송국에 유입시켜서.
그들이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변화시킴으로써.
……1단계부터 까마득하게 멀긴 하지만.
그래도 나아가야지.
끊임없이 전진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나쁜 내담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담자는 주위의 평화를 지키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상담소를 찾아오는 과정에 어떤 외부의 개입이 있을 수 있고, 또 상담사의 지시에 불퉁하게 반응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스로를 변화시켜 주변을 지키겠다는 따뜻한 마음을 조금쯤은 품고 있다.
김서현 역시 그랬다.
비록 자기파괴적인 방어기제는 몹시 잘못된 대처(coping)에 속하나, 그게 가족들이 망가뜨린 잠재의식 때문이었다면.
가정의 시스템을 부수지 않고자 스스로를 괴롭힌 것이라면.
그걸 대체 어떻게 정신병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물론 거식증의 요인은 끝없이 다양하다.
개중 일부는 상담 치료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김서현은 아니었다.
저렇게 웃으면서 짜장면을 먹고 있으니.
“앗, 그만. 그만 먹어요. 더 먹으면 안 돼요. 밤에 배탈 날지도 몰라요.”
“움…… 으…….”
“그래도 토하지는 말아요. 영혼을 위해. 참아줄 수 있죠?”
김서현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눈꼬리가 보기 좋게 휘었다.
그러더니 입술을 오물거리며 스스로를 내려다본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음식물을 섭취한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한효준의 설명에 따르면, 섭식장애의 60%에 우울증이 수반되고, 그 증상이 조절될 경우 식사 쪽도 급격하게 개선될 수 있다고 했다.
김서현의 경우엔 모친의 과도한 통제로 인한 우울감.
일시적으로나마 그것을 차단하고 자기통제감을 제고해줬으니,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학습된 무기력이란 끔찍하리만치 극복하기 어려운 법.
김서현 본인의 호전되고 싶다는 의지 덕분이었다.
동경하던 BJ의 방문이 약간의 힘은 돼줬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변화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순식간에 정상체중이 되진 않되,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다시 누군가가 그녀의 자기통제감을 박살내지만 않는다면.
이제 모친을 바라볼 차례다.
스스로에게 어떤 의심도 품지 않고 있는 인물을.
딸의 정신적 독립을 저해하고 종속물로 만들었으면서도, 오직 딸만이 문제를 갖고 있다고 믿으며, 그녀가 끝끝내 스스로를 학대하게 만든……
비속살해를 저지를 뻔한, 악인이다.
“사모님. 저를 보시죠.”
“아…… 예…….”
그녀는 혼란에 빠진 상태다.
당연한 일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노려봐야만 간신히 음식을 삼키던 딸이, 스스로 젓가락을 받아 음식을 섭취했으니.
하지만 그 당혹감에 호응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왜 그러시죠? 무슨 놀랄 일이 있었습니까?”
“아, 아니 쟤가…… 먹었잖아요! 안 먹어도 된다는데.”
“예. 스스로 선택해서 섭취했네요. 안 먹어도 된다는데.”
“그게, 말이 안 되는데! 최면? 그런 거예요? 우리 애한테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에요? 그런 거면, 당신…… 당신……!”
모친의 흥분에 긴장한 김서현을 돌아보며, 웃어 보였다.
괜찮다고, 날 믿으라고,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고.
모쪼록 [인자한 웃음]이 효과를 내주기를 바랐다.
자리를 옮겨서 대화할 만한 여건이 못 되어서.
이 순간이 지나면, 그녀의 모친은 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100의 ‘진단’이 강하게 경고했던 것이다.
직관 같은 감각을 믿어야 할 때였다.
“전혀요. 보셨다시피 부탁했을 뿐입니다. 소리 지르거나, 강요하거나, 결정권을 침해해서 괴롭히지 않고, 부탁했어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했어요. 사모님께선 어떠셨죠?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신 적이 있었습니까? 서현 씨가 태어나서 21년을 살아온 이 시점까지, 식사가 됐건 뭐가 됐건, 단 한 번이라도 말이에요.”
“말도 안 되는…… 당연히, 같이 생각하고 의논해야죠. 내가 엄마니까. 엄마랑 딸은 다 그런 건데요? 당연한 일이에요.”
당연한 일이라.
그 무지의 실수까지 비난할 생각은 없다.
가족이라는 허울에 지나치게 안심한 나머지 섬세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된 거라면, 퉁명스러운 반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가 용서가 안 됐다.
우리의 옆자리에 앉아보지도 않았던 자기확신.
딸이 즐거워하며 봤다는 BJ가 왔는데도, 그녀가 새장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회피했던 일.
그것만큼은 받아들여줄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저 역시 딸이 있는 아버지예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솔직히 완벽하다고는 못 하겠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사모님은, 부모 실격입니다.”
“……뭐! 당신, 당신이 뭔데!”
“보세요. 지금 몸소 이유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제게 목소리부터 높이시잖아요. 지금 따님이 이렇게나 긴장하고 있는데도, 사모님의 기분이 우선이시잖아요. 그게 당연한가요?”
“서현이도 똑같이…… 똑같이 황당해하고 있어요!”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방법이 잘못됐지요.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안정이 필요한 아이니까 그런 얘길랑 나중에 하자고, 그렇게 피하는 게 정상이에요. 적어도 딸에게 괜찮냐고 물어봐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실격인 겁니다. 사모님의 감정을 고스란히 이어받는 마리오네트라고 착각하시는 점이요. 보셨잖아요? 서현 씨는 스스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저보다도 서현 씨를 모르고 계셨어요.”
비난은 대부분의 경우에 백해무익하다.
화풀이로 누군가를 꾸짖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심지어 악플러에게조차 조심해야만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끔은 그것이 필수적일 때가 있다.
가해자가 대체 불가능한 보호자일 경우.
피해자의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보금자리를 함께 구성해나갈 부모가 자기 상식만을 고집하고 있다면, 그들을 온건하게 대하면서 상황을 개선할 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모든 순간순간에 그 그림자가 드리워질 테니까.
그래서 83의 ‘화술’로 현실과 직면시켰다.
[차분한 음성]으로 감정적인 반응을 억제하며.
다행히도, 효과가 있었다.
“그러…… 그렇게…… 그럴 리가…… 없는데……. 나 때문이었다고요? 제가, 서현이를 아프게 했다고요?”
“예. 조 교수님 소견도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절 보내신 거예요. 부탁드립니다. 새장을 여세요. 사모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인형이 아닌, 마음에 또 다른 우주를 품고 있는 친구로 봐주세요. 그렇게만 해주셔도 정말 많이 좋아질 겁니다.”
“전, 그냥…… 그냥 병에 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드는 병이란 건 없어요. 부군께도 꼭-”
그 순간에 도어락 소리가 났다.
긴 복도를 쿵쿵거리며, 김서현의 부친이 다가온다.
“어, 어?”
그는 내 존재에 놀라지는 않았다.
그 대신 젓가락을 들고 있는 김서현에게 놀랐다.
역으로, 김서현 쪽은 그럭저럭 반가워하고 있다.
어깨를 살짝 움츠리고 손을 꼼지락거린다.
이쪽이 모친보다는 좀 편한 모양이지.
하지만 그 부친에게도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어어? 이게 웬일이지? 저기…… 뭐였지? 꼬마님?”
“안녕하십니까. 박대민입니다.”
“아, 예. 저…… 서현이가, 저걸 먹었어요?”
“보시다시피, 그렇습니다.”
“아이고…… 저기, 그러면 안 되는데? 박대민 씨? 저런 기름진 건…… 밤에 먹으면 안 되는데? 이건, 상식이잖아요?”
나보다는 네댓 살쯤 많아 보이는 위인.
부인과도 나이차가 꽤 날 것 같다.
그럼에도 저자세로 부인의 눈치부터 살피고 있다.
이 비싼 아파트가 어느 집안에서 나왔을지 짐작이 됐다.
한효준에게 세뇌되듯 들은 정보를 떠올려본다.
오그던과 스튜어드의 연구에 따르면, 거식증 환자의 모친들은 자녀와의 분리를 두려워하며 과잉보호하는 완벽주의를, 부친들은 소외되어 있거나 무기력한 전형성을 보여준다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님을 명심하라고 첨언하긴 했지만……
김서현의 가정은, 너무나도 전형적이었다.
“사장님. 초면에 죄송합니다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따님의 거식증은 사모님의 그 ‘상식’에 기인한 바가 큽니다.”
“뭐? 네? 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잘못된 상식은 아닐지라도, 지나친 간섭이었습니다. 간난아이가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줄 아는 아입니다.”
“네? 그게…… 그…… 전문가도 아니시잖아요?”
“비전문가입니다만, 사모님께선 이미 그 현실과 마주하셨습니다. 오늘 서현 씨는 스스로 짜장면을 섭취했어요.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 있는 아이였던 거예요.”
“아니…… 여보, 정말? 정말이야?”
“그리고. 사장님께도 책임이 없지 않습니다.”
눈을 휘둥그레 뜨는 모습이 안쓰럽다.
부유한 처가에 기우는 결혼을 해서 딸 하나를 뒀다는 공통점 때문에, 그에게서 내가 보였다.
나 역시 저러지 않았으리라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 사람은 자정에는 집에 들어왔다.
반면 난 한 달 중 열흘은 숙직을 자처한 일벌레.
만약 내 아내가 딸애의 자율성을 존중할 줄 아는 선인이 아니었더라면, 지수 역시 김서현처럼 고통받았을지 모른다.
가족에게조차 그 아픔을 이해받지 못한 채로…….
“부모가, 왜 부모입니까? 왜 엄마아빠입니까? 무언가를 실수했을 때 그 잘못을 서로가 바로잡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진화해왔습니다. 우리가 실수를 저지를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일부일처제를 통해서 가정을 보완해왔습니다. 그렇기에 부모입니다. 왜 말리지 않으셨습니까? 따님이 저 지경이 되도록 왜 개입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모른 척하셨습니까. 대체 왜요…….”
“아니, 나는…… 여보. 이게 맞는 얘기야? 정말…… 그래?”
“나, 난 아냐. 난…… 당신도 알잖아? 얼마나, 서현이한테, 얼마나 잘했는지 알잖아? 그냥, 오늘은 그냥, 우연히…….”
날 비춰보며 순간적으로 물러졌던 탓일까.
자칫하면 기왕의 직면마저 어그러질 판이었다.
하는 수 없이 강수를 뒀다.
김서현의 곁에 서서, 그 왜곡된 부모를 바라보며.
“사장님. 보세요. 따님을 보세요. 서현 씨가 저와 있을 때 더 편안한지, 아니면 평소에 사모님과 있을 때 더 편안한지.”
“그건, 그, 나는 잘…….”
“잘 모르시면 안 됩니다. 아버지라면, 그래선 안 됩니다. 부탁드립니다. 따님을 위해 이제부터라도 아버지답게 행동하세요. 오늘 면담한 내용을 조 교수님께 전달해드릴 겁니다. 내일 치료에는 반드시 두 분도 동석하세요. 그리고 숨김없이 사실만을 말씀해주세요. 아시겠습니까?”
“그런…… 그런 거야, 할 수 있지만…… 난 당최…….”
말끝은 여전히 흐릿하지만, 생각은 충분히 깊어진 듯했다.
한숨을 간신히 참으며 김서현과 시선을 맞췄다.
깡마른 여자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잘못한 거 아닌데…… 제가, 나쁜 거예요.”
분노나 불편이 아닌 죄책감.
그야 부모에 대한 양가감정 중 분노 쪽이 컸다면, 폭식증이 발현됐을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나마 사람답게 살 수는 있었을 텐데.
남을 미워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속이 풀렸을 텐데.
이 아이는 나쁜 아이일 수가 없다.
21년을 시달렸으면서도, 그 근원을 사랑하고 있으니.
“미안하게 됐어요. 그렇지만 잘못하신 게 맞아요. 그건 서현 씨 때문도 아니고, 다른 누구 때문도 아니에요. 그저 두 분이 부모라서. 부모는 언제나 죄인이거든요. 특히 첫 아이에게는…… 평생 죄책감만 품고 살아가야 마땅해요.”
“왜……요?”
“우린 실수하는 동물이니까. 어떤 부모도 완벽하지 않아요. 그걸 명심해야 해요. 사랑과 종속은 다른 겁니다. 순종하는 것만이 효도라고 생각해왔을 것 같은데, 그거 아니에요.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실수하지 말아요. 결국 두 분의 가슴에 못을 박게 될 거예요. 당당하게 말하고 선택하세요. 서현 씨는, 인간 김서현입니다. 어른이 돼야 해요.”
“어른……이…….”
“엄마를 버리라는 게 아니에요. 엄마의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친구가 되는 일이에요. 그렇게 해드릴 수 있겠지요?”
“아…… 저…… 네.”
훌륭한 대답이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그녀의 부모를 돌아봤다.
이대로 떠나도 괜찮을지 확인하기 위해.
[내담자 평가] 보고서는……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당장 모든 것이 바뀔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점차 나아질 것이다.
활달하지만 세심한 조명기가, 그들을 놓지 않을 테니까.
그렇지만 용산구를 벗어날 때쯤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첫 아이가 그렇듯, 첫 가정방문도 영 후회가 남는 일이라고.
다시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훨씬 더 잘할 것 같다고.
하지만 또 이런 케이스를 다루진 못하겠지.
센터 수련조차 거쳐보지 못한 풋내기니.
오지랖은 딱 여기까지다.
소소한 고민상담의 BJ로 돌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