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57화 (57/200)

# 57

21장 - 상담사와 외모 (3)

[그러실 줄 알았어요.]

미디어팀 유보원 팀장은 그렇게 말했다.

차를 타고 마포구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받아, 동안 특집 ‘놀랍징’ 출연 제의를 거절한 직후였다.

“어떻게 알았어?”

[그런 분이시니까요.]

“내가? 동안 쪽으로는 무슨 얘길 한 적이 없었는데.”

[네. 외모 쪽으로는 무슨 얘길 하신 적이 없었죠.]

“그런데, 어떻게 섭외 거절할 줄 안 거야?”

[그래서요. 십여 년 동안, 외모 얘길 하신 적이 없어서.]

아……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전 세계적인 풍조는 아니라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삼삼오오 모이면 흔히들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서로의 외모에서 예뻐진 부분들을 칭찬하고.

살이 쪘다면 염려하고, 살이 빠졌다면 부러워하고.

외모지상주의적 무례라고까지 생각지는 않는다.

한국사회에선 그저 일상적인 대화일 뿐.

극소수를 제외한 일반대중의 공통관심사기에, 친해지기 위해서 쉽게 공감할 만한 시각정보를 늘어놓는 것일 터였다.

다만, 나는 극소수 쪽에 해당했다.

외모보다는 마음 쪽이 더 중요했기에.

불독 같은 이용덕과 메뚜기 같은 조명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꾸만 김 이병이 보였다.

목을 매달기 며칠 전까지 활기차게 웃고 있던 아이.

한 사람의 두 얼굴이 너무 진하게 각인됐다.

그 뒤로는 살가죽 따위에는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그 안의 마음이 죽어가고 있진 않은지가 먼저 걱정이 돼서.

그런 내가 첫 만남에 예쁘다는 말을 건넸던 아내는, 정말 대단한 미인이었던 거지.

그래놓고 곧 프로젝트 얘기로 옮아간 게 에러였지만.

“그랬구나. 어쨌든 미안하게 됐다. 미디어팀에도 좋은 기회였을 텐데, 거절하게 만들어서.”

[아뇨, 그래서 조율 단계에서 얘기를 해봤어요.]

“어? 무슨 말이야?”

[전달은 하겠지만 그쪽으로는 출연이 어려우실 수도 있다, 혹시 다른 방송에는 출연할 만한 곳이 없겠냐, 이렇게요.]

“뭐? 작가한테 그런 권한은 없잖아?”

[네? 아 그게, 통화는 주로 작가랑 했지만, 들어보니까 CP 쪽 오더더라고요. 그쪽에서도 어떻게든 출연시켜야 하는 눈치여서 슬쩍 운 띄울 수 있었는데…… 인맥 아니셨어요?]

CP(Chief Producer)라면 부장급 PD를 말하는데.

관리직으로서 여러 프로그램을 망라하는 직위다.

처남의 인맥이 상당한 고위직이었던 모양.

“내 인맥은 아니라서, 몰랐다. 그나저나 상전벽해네? ‘마이텔’ 파일럿 편성 때 실수만 저질렀던 유보원 과장이, 이제는 작가들을 구워삶아서 정보를 얻어내기도 하는구나?”

[아, 그 얘긴 반칙이죠! 치. 아무튼 그렇게 됐어요. 놀랍징 출연 어렵다고 회신하면 곧 새로 꽂아줄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놀랐지 뭐야. 부장님, 인맥도 쓸 줄 아시네요?]

“하하. 그럼. 내가 호구처럼 보여도 짬바가 있어.”

[짬바? 짬바가 뭐예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란 거야. 미디어팀인데 알아둬야지?”

[아, 뭐야. 전 신조어 못 외우겠어요. 포기했어.]

“그래. 아무튼 고맙다, 유 팀장. 또 연락할게.”

[참나. 바쁘신 거 알거든요? 제가 또 연락드릴게요.]

그 통화 이후엔 곧바로 처남에게 연락했다.

섭외를 주선해준 고마움과, 그걸 거절하게 된 미안함을 전하기 위해.

뭘 그런 일로 연락했냐며 웃더라.

[매형. 좁아지는 시장에서 매년 실적 높이고 있는 접니다. 실무직은 상대도 안 하죠. 아무튼 그분이 MBC 예능국 신태훈 부장님인데, 사실 크게 기대는 안 했어요. 저랑 트신 지는 얼마 안 되셔서. 그런데도 이렇게 빨리 추진해주신 걸 보면…… 매형한테서 그만큼 가능성을 느끼셨나보네요.]

“그런 거라면 기쁘겠네.”

[그럴 거예요. 솔직히 전 이렇게 생각해요. 지금 꼰마를 잡는 사람은 로또 1등이나 다름없다고. 스트리머 중에서 TV스타 발굴해내는 게 중요한 능력이 된 시대입니다. 어떤 애들은 케미가 별로라서 토크쇼에선 활약 못 하기도 하고, 어떤 애들은 인방에서 논란발언 해서 프로그램까지 말아먹기도 하니까. 근데 매형은 그런 게 없잖아요. 사람이 많으면 더 방송이 잘 사시고, 또 어휘나 사생활은 청교도시고. 이러면 안 잡는 사람이 바보인 거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앞서, 마음이 찡해졌다.

바쁜 녀석이 언제 거기까지 생각을 했는지 원.

“그래도 참 내가…… 미안하다.”

[미안해하실 거 없어요. 놀랍징 이런 건 별로죠. 잘 거절하셨어요. 신 부장님이 다시 좋은 프로그램 잡아줄 거예요. 제 부탁이라서가 아니라, 그럴 만한 스타시니까.]

“고맙다. 자신감을 가져보마.”

[고마워하실 것도 없어요. 미리 아부하는 거거든요. 매형, 저 나중에 좀 잘 부탁드려요. 요즘 로보어드바이저 때문에 입지가 점점 좁아져요. 저 짤리면 운전기사라도 시켜주십쇼.]

“농담이지? 그리고 그런 거면, 형님들이 계시잖아.”

[형들한테 숟가락 얹는 건 제가 아무래도 자존심 상할 것 같아서요. 그런데 매형은 덜 갈구실 것 같아서. 하하.]

“……정말 그렇게 되면 그때 생각해보자. 고생하고.”

[예, 매형. 오늘도 방송 기대하겠습니다.]

그렇게 두 통의 전화를 마친 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에서 솟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응원을 받고 말았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더없이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의 생방송도 최선을 다해 꾸려가야지.

그리고 섭식장애 내담자를 찾아가, 모든 능력을 다해서 그 마음을 바라보겠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다.

최고의 상담사를 향해서.

그런 생각을 하며 올라간 원룸.

대수가 활짝 웃으며 반겨줬다.

“형님! 오늘도 희소식이 있는데요, 뭐부터 들으실래요? 1번, 2번.”

“두 개나 있어? 뭔진 모르겠지만, 1번부터?”

“또로롱! 1번 희소식입니다. 아까 찍은 영상에 임시로 자막만 붙여서 광고주한테 보내줬는데, 대만족이래요.”

“그걸 벌써? 너, 밥은 먹은 거야?”

“다 먹으면서 했죠. 나레이션 넣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최고라고 막 기프티콘 보내주네. 잘하면 이거 말고 다른 PPL까지 줄지도 모르겠어요. 말씀드렸나? 거기 아웃도어 브랜드도 같이 하고 있거든요. L3라고. 가을쯤에 그것까지 찍어서 올리면…… 흐흐. 그쪽은 5천도 받을 수 있어요.”

“그렇게까지?”

“아웃도어고, 그때까지 구독자도 팍 뛸 테니깐. 글고 이번 VR 모델까지 잘되면? 아예 TV광고까지 줄지도 모르죠. 뭐 이건 설레발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게 1번이고요……”

1번 희소식이 그렇게나 희망적이었다.

그랬는데, 2번은 더했다.

“또로롱! 2번 희소식입니다. 꼰마크루가 실시간검색어 11위까지 올라왔습니다. 곧 1위 찍을 수 있을 것 같어요.”

“그게 벌써?”

“예압. 하이라이트 업로드하고 크루 애들 SNS에 공유하게 했거든요. 그게 벌써 7만뷰! 걔네들 하이라이트도 곧 올라갈 거니까, 금방 1위 찍을 거예요. 덕분에 시청자들이 만든 블로그랑 SNS도 득을 보고 있슴다. 타이밍이 기막히죠? 형님이 블로그 만들라고 하자마자 방문자 폭발한 거니까, 걔네도 탄력받아서 더 열심히 운영하게 될 겁니다.”

“그거 참…… 잘됐네.”

“예압. 형님, 오늘 방송도 빠이팅임다!”

두 개의 희소식 속에, 들뜨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내 행운이 모두의 행운은 아니다.

혼자 즐거워서 방방 떴다가는, 무거운 현실 속에서 힘을 얻으려 접속한 시청자들에게 괴리감을 줄 수도 있다.

“반갑습니다. 꼰마입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도토리키님, 처음 뵙는 것 같네요. 반갑습니다. 가가벨님, 오랜만입니다. 보람의노예님, 어제 뵙고 또 뵙네요. 엘피가이님, 아…… 오늘 목격담 올라온 거 보셨다고요. 예, 맞습니다. PPL을 하나 하게 됐어요. 조만간 유튜브에 올라갈 겁니다. 지금 입고 있는 옷 맞냐, 맞습니다. PPL 얼마짜리냐…… 그건 제가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요즘 사연이 계속 밀렸죠? 오늘은 잘 끝내볼게요. 시작합니다.”

방송에 들어가면, 상담사가 되어야 한다.

수천수만 명의 집단상담을 진행하는.

그들에게 나는 치료적 도구.

나 자신의 감정에도 휩쓸리지 않고, 오직 내담자들을 위해 꼰대마스터가 돼야 마땅했다.

“히포꼬리님의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꼰마님. 저 오늘 친구가 다 없어졌네요. 대학교에선 소심해서 아싸였고요, 회사에선 노예처럼 일만 해요. 고등학교 친구랑만 가끔 봤는데, 어제 대판 싸웠어요. 회사에서 깨지고 마음에 좀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럴 만한 일은 아니었는데, 괜히 열받아서 안주 엎었어요. 오늘 아침에 톡이 왔네요. 다신 연락하지 말래요. 맨날 지가 연락했으면서. 가족들이랑도 연락 잘 안 하고 모쏠이고…… 이젠 정말 세상에 혼자네요. 웃기죠. 저 같은 아싸도 살 가치가 있을까요. 그냥 퇴직하고 여행이나 갈까 해요.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와 내인생 미만이다 ㅋㅋㅋㅋ」

「소심하고 욱하고 안좋은거 다가졌네 ㅉㅉ」

「인생 독고다이임 걍 돈이나벌어요」

어느 정도 심각한 고민인지 글만으론 알 수 없지만……

이런 경우에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부정 편향만 불러올 터.

상담사의 덕목에는 부합하지 않더라도, 지금은 내담자가 채팅에 신경도 쓰지 못하게 몰아붙여야 할 것 같다.

“다 됐고, 한 가지만 말할게요. 안주 엎었다는 데서 아웃이야. 히포꼬리님,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어디 감히 소중한 음식을 엎어? 그러니까 친구가 화내지. 당해도 싸다 싸.”

「꼰머나왔다 ㅋㅋㅋㅋ」

「히포꼬리 : 으아 왜그쪽으로가요」

“나 때는 말이야, 짜장면 하나씩 사 먹을 여유가 안 돼서 한 그릇 시켜놓고 4등분해서 밥 말아먹었어요. 그렇게 꾸역꾸역 산 시절이 겨우 30년 전이야. 배부른 고민 패스합니다.”

「ㅋㅋㅋ라떼이즈홀스」

「히포꼬리 : 꼰마님 한번만 봐주세요 ㅎㅎ 잘못했어요..」

“오케이. 진지하게 붙잡으시니까 한번만 봐드릴게요.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그리고 여행 말인데…… 흠.”

때로 [내담자 평가]보다 100의 ‘진단’이 유용할 때가 있다.

100% 확실한 사실만을 드러내는 그 기술이 보여주지 않는 어떤 징조가, 가끔씩 직관적으로 의심되는 케이스.

그럴 때는 또 다른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직관보다도 한발 앞선, 초능력을.

「 [정문의 일침]을 사용합니다 > 히포꼬리

주제 ‘여행’에 대응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하늘나라’ 」

……맥락이 이상하다 싶더니, 역시나.

새로운 정보로 [내담자 평가]가 갱신됐다.

「 내담자 명 : 히포꼬리

평가 결과 : 우유부단하다. ‘꼰마 형’을 신뢰하고 있다. / 우울증이 심화된 가운데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목적지는 하늘나라. 」

누구나 그런 순간을 경험한다.

이 이상 떨어질 데가 있을까 싶은 밑바닥.

시간이 지나보면 거기서 좀 더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금세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 전부가 괴물처럼 느껴진다.

그런 사람에겐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까.

약해빠진 생각 말라며 정신이 번쩍 들게 해줘야 할까.

그게 아니면 그 마음 다 이해한다며 위로해줘야 할까.

83의 ‘화술’은, 양쪽 모두 부정했다.

“가지 마요. 내 방송 봐야지 어딜 가? 해외에선 와이파이 잘 안 잡혀요. 그냥 하던 대로 노예처럼 일만 하면서, 퇴근하면 꼰마 월드로 여행 와요. 그리고…… 형이라고 부르든가. 형 해줄게. 나랑 친구 먹자. 내가 요새 많이 바쁘긴 한데, 다음에 술 한 잔 살게. 쪽지로 번호 찍어.”

「머야머야???」

「꼰마님 저도요!!!!」

「소망강처녀 : ◆ 저도 친구가 하나도없고요 해외여행가려는데요 꼰마오빠 저랑도 술한잔해여 너무보고싶어여 힝」

“소망님 저리 가시고. 남친 찾아내서 이를 겁니다. 히포야, 뭐 해? 쪽지 안 보내? 번호교환 하지 마?”

「히포꼬리 : 헐..진짜요? 장난아니었어요?」

「누군줄알고 번호교환??」

「꼰마님 순진하시네 ㅋㅋㅋ」

전화번호 하나 줘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줘야지.

그렇지만 이게 정말 올바른 방향일까 싶긴 했다.

만나는 우울증 환자마다 약속을 잡는다면 시간이 남아나지 않게 될 텐데……

아니, 아니다.

다음 내담자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다.

지금 내 앞의 생명에 집중할 따름.

“빨리 안 보내? 5, 4, 3, 2, 1……”

「히포꼬리 : 0102909195!!!」

「엌ㅋㅋㅋ전체공갴ㅋㅋㅋㅋ」

“놀래라. 다행히 자릿수가 안 맞네요. 쪽지로 보내. 오늘은 안 되고, 다음 주쯤 시간 내볼게.”

「히포꼬리 : ㅎㅎㅎㅎㅎ근데 바쁘신데 술은괜찮아요 그냥 그렇게 얘기해주신것만해도 좋네요 ㅎㅎ 고맙습니다 형」

“흠…… 히포야. 진짜 술 먹고 싶으면 쪽지 해. 아무 때나.”

[히포꼬리님 별사탕 100개. 시른데 시른데 크크.]

“……시른데 빌런이 너었어? 아이고…….”

「펄떡펄떡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꼰머는 쓸데없이 진지해ㅋㅋㅋㅋㅋ」

「히포꼬리 : ㅎㅎㅎㅎ 꼰마형 낚였죠? ㅎㅎㅎㅎ」

정말 우유부단한 친구다.

지나친 배려에 당황해서 물러선 게 빤히 보였다.

그렇지만, 일단은 그거면 충분할 것 같다.

여행은 떠나지 않을 테니.

「평가 결과 : 우유부단하다. ‘꼰마 형’을 존경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못할 혼자만의 비밀.

NBSC가 있기에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내가 그를 놓지 않았기에 찾아낸 최선.

진짜 모델들보다도 멋지다는 포토그래퍼의 칭찬보다, 이 비밀스런 결과 쪽이 훨씬 더 자랑스러웠다.

나는 이름 모를 김 이병을 지켜냈다.

NBSC와 함께라면 이런 일들이 가능하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길이 좀 더 뚜렷해졌다.

적어도 내 앞의 내담자만큼은 놓칠 일이 없을 테니까.

그렇게 고양된 건 잠깐이었다.

방송을 마치고 원룸을 나서면서는 마음이 또 복잡해졌다.

대수는 ‘꼰마크루’가 두 시간 가까이 실검 1위를 꿰찼다며 좋아했지만……

당장 찾아가야 할 용산구가, 정말 용의 산처럼 느껴졌다.

22세 김서현.

4개월 사이에 체중이 20kg이나 줄어든 이후, 조명기가 최선을 다해 치료했음에도 제자리걸음이라는 거식증 환자.

그런 아이를 만나러 가야 한다.

우연히 보게 된 내 방송이 삶의 낙이 됐다고 했으나, 그것만으로 긍정적 반응을 자신할 수는 없었다.

[빨리 갔다 와야 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운전하는 길에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톡 쏘는 말투지만, 목소리는 늘 그랬듯이 따뜻했다.

“여보. 기다리지 말고 일찍 자.”

[당신 얘기 듣고 싶어. 상담한 얘기.]

“그런 거면, 최대한 빨리 갈게.”

[응. 여보. 나…… 거식증 후배 얘기, 동기들한테 물어봤어.]

“어, 그래. 그 뒤로 어떻게 지낸대?”

[자살했대.]

“……아. 그랬구나.”

[……상담, 잘해줘.]

다시금 한효준의 말을 떠올린다.

답은 마음이야.

마음으로 들어가……

용산구의 높다란 고급 아파트에 들어선다.

현관에 나와 맞아준 건, 깐깐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박대민이라고 합니다.”

“흠…… 이쪽으로 오세요.”

기다란 복도를 걸어가 거실 쪽으로 돌아섰을 때.

놀라운 모습이 보였다.

주방의 홈바에 앉은 깡마른 여자아이 앞에, 짜장면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서현 씨?”

끄덕끄덕.

상황파악이 잘 안 되지만, 우선은 그 앞에 마주앉았다.

“반갑습니다. 박대민이에요. 짜장면 드시려고요?”

도리도리.

말주변이 없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그리고 먹지도 않을 짜장면이면 대체 왜 주문해서……

그 생각 중에, 히포꼬리와의 상담 내용이 떠올랐다.

꼰대 모드로 내뱉은 말 중에 그런 게 있었다.

“혹시, 저 주려고요? 어렸을 때 짜장면 못 먹은 얘기 해서?”

끄덕끄덕.

시선은 그저 테이블과 무릎만을 오가고 있다.

그 모습이 참, 진했다.

30년 전을 들먹인 꼰대 발언을 기억하고 짜장면을 주문해주는 이 아이가, 대체 왜 이토록 야위어야 한단 말인가.

가방 하나 들 수 없을 것 같은 몸이다.

그 외모는 분명 정신질환의 결과.

그렇지만 보지 않는다.

상담사에게 보이는 건, 그 안에서 솟구치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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