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21장 - 상담사와 외모 (2)
섭식장애란 거식증과 폭식증을 포괄하는 질환이다.
정확하게는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과 신경성 대식증(Bulimia Nervosa)인데, 전혀 다른 말처럼 들리지만 그것들이 같은 장애로 분류된다.
신경성 대식증 역시, 폭식이란 반작용이 있긴 하지만, 결국 구토나 설사로 영양 섭취를 막는 까닭.
그중에서 조명기의 환자는 거식증에 해당했다.
“현재로선 CBT(인지행동치료)로 명확하게 어떤 효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질환이에요. 특히 한국에서는 다이어트 의욕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어서, 병원을 찾는 케이스 자체가 드물죠. 이 환자는 그래도 체중 상태가 심각한 상황은 아닌데…… 약물로도 임상으로도 도무지 호전될 기미가 안 보여요. 분명히 심리적인 어떤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본인은 입을 안 열고. 병원에 매인 나로서는 더 깊이 파고들기도 곤란하고. 그래서 부탁하는 거예요. 따로 만나서 상담해줄 수 없을까요?”
“교수…… 선배님. 곤란합니다. 저는 공인된 상담심리사도 아닐뿐더러, 섭식장애에 대한 지식도 부족합니다. 치료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부정적 반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 얘기가 아녜요. 이건 그러니까-”
“거, 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내 욕을 하나?”
한참 앞서 걷던 한효준이 짜증을 부린다.
거기에 몇 마디 너스레로 대답한 조명기는, 내 주머니에 두 번 접은 A4용지를 집어넣었다.
“이따 읽어봐요. 한 선생님껜 말씀드리지 말고.”
“왜 비밀인 겁니까?”
“그게…… 부끄러워서 그래요. 나 혼자서 어떻게 못 해주고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환자를 위하는 일을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도 부끄러운 일인데, 그래도 별 수 없네요. 나도 사람인지라.”
내게 부탁하는 것이 정말 환자를 위한 일인지는 차치하고.
[내담자 평가]의 보고가 그의 말이 사실임을 입증해줬다.
「평가 결과 : 활달하고 영민하고 주의 깊다. ‘박대민’의 독특한 능력에 크게 경도되어 그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
유튜브 하이라이트만 보고서 내게 경도되었단 말인가.
하지만 아직 확신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용덕 때엔 협동 치료를 다짐하는 것만으로 퀘스트가 해결되었지만, “조명기를 쓰러뜨려봐요”는 여전히 진행 중.
거식증 환자를 상담하는 일이 그 관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읽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해줘요. 자, 올라갑시다. 한 선생님이 한 성냄님이 되겠네. 하하, 이건 꽤나 웃겼지요?”
독특한 사람이다.
평소에 하는 행동은 아이들보다도 더 천진난만한데, 그 머릿속으로 또 무수한 계산들을 하고 있는.
어떻게 보면 진대수와 비슷한 면이 엿보였다.
헬기장까지만 돌아보고 다시 내려오는 길.
이번에는 한효준이 곁에 붙어서 조명기의 흉을 봤다.
“뒤늦게 하는 말이네만, 저치가 아주 음흉한 자였어.”
“……그렇습니까?”
“그렇다니까. 방금 막 기억이 났어. 신입생 때부터 어찌나 욕심이 많은지, 한국 심리학계 걱정은 혼자 다 하면서 석학들만 보면 쫄래쫄래 달려와 의견을 말하곤 했던 게야. 새내기가 교수회관까지 나와서는 열심히 지 주장을 폈다니까. 교수들은 귀엽게 봤다지만, 내 볼 때는 영 아니올시다였어.”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것 같습니다.”
“나이 먹고 정신을 차리긴 한 모양이지. 요샌 연구도 꽤나 그럴싸하고. 하지만 본질이 바뀌겠나. 조심하도록 해. 어떤 면에서는 이용덕보다도 더 위협이 될 수 있어.”
“위협이 되다니요?”
“상담심리와 임상심리가, 우열이야 어쨌건 한 배에서 나온 이란성 쌍둥이 같은 존재잖나. 자칫하면 저쪽이 치고 나올 수 있다는 말이야. 저런 승냥이들에겐 늘 조심을 하라고.”
날 위한 노파심이었다.
부모들이 흔히 갖는 편향이다.
내 아이 주변에 있는 애들에게선 단점만 도드라져 보이는.
사실은 조명기를 높이 사고 있으면서도, 굳이 30년 가까운 과거사를 끌어와 의심을 만들어내는 모습이었다.
“이러니 귀여운 분이란 말씀을 들으시는 거지요.”
“뭐! 이…… 저 자랑 어울리다가 사람 버리겠구만. 앞으로는 사적으로 대화도 나누지 말게. 내 어이가 없어서 원.”
“제가 볼 때 교수님은, 좋은 부모가 되실 것 같습니다.”
“헛소리.”
“정말입니다. 친구 같은 아빠 되실 수 있을 거예요.”
“거…… 헛소리는.”
대부분의 감정은 나이를 먹으며 흐릿해진다.
그렇지만 그 수묵화 속에서 어떤 색깔이 빛나기도 한다.
조명기의 민망함이나, 한효준의 치기 같은 것들.
확실히 귀여운 데가 있는 어른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나는, 귀여운 구석도 없고, 그들에 비해 한참이나 입문이 늦은 말학.
이런 내가 거식증 환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깊은 고민 속에서 두 교수와 작별했다.
그리고 조명기의 쪽지를 펼쳤다.
「 스물두 살 여자애예요. 대학 다니다가 거식증이 심해지며 휴학했다고 해요. 현재는 집에서 쉬며 통원치료만 받는 중. 저체중이 심각해진 6개월 전부터 통원을 시작했지만, 현상유지예요. 입원이라도 시키면 좋겠는데 부모가 반대하고 있고. 한번 정신과 입원하면 홀로 설 수 없다나 뭐라나. 그런 부분을 보면 가족역동도 염려되고 그런데, 본인이 말을 안 해요. 가족들은 더더욱 입 꾹 닫고 있고. 조금만 조사해보셔도 아실 거라 믿지만, 섭식장애라는 게 단지 미를 추구하기 위한 강박만은 아닙니다. 멍청한 미디어가 논점을 흐리고 있는 면이 큰데…… 각설하고. 나로선 개입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치료자니까. 그렇지만 환자의 유일한 낙이라는 인터넷방송 BJ라면 가정방문도 용이하지 않을까 싶어요. 허락해주신다면 보호자에게는 제가 허락을 구해볼게요. 앞으로 워낙 바빠지실 분이라 급하게 부탁드립니다. 연락 주세요. 」
거기까지 읽고 생각했다.
피해서는 안 되겠다고.
정말 피하고 싶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녀는, 내가 피한다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다.
*
“애들 어쩜 그렇게 다들 착해? 완전 감동했잖아. 당신 방송도 매일 보면서 하나하나 노트필기를 한다는 거야 글쎄. 졸업반이라 자기들 학점 관리도 힘들 텐데 말야. 이 재단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까, 당신 정말 힘내야겠어.”
두 시간 만에 만난 아내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오랜만에 젊은 학생들과 토의를 나누고 고양된 모양.
“잘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 교수님이 소개해주신다는 이사진이나 감사들은 또 다른 문제겠지만, 일단 실무진이랑 소통이 편하면 여러모로 힘이 될 거야. 사실 내 동기들 중에- 와! 벚꽃들 참 예쁘다. 학생 때 이 길 참 많이 걸었는데. 그때보다 벚나무들이 훨씬 많아진 것 같아. 아무튼 동기들 중에-”
“저, 주희야.”
“응? 왜?”
“혹시 거식증에 걸렸던 친구는 없었어?”
“어…… 갑자기? 등산하고 와서 웬 거식증이야?”
“부탁을 받았어. 거식증 환자의 상담이야.”
아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가족이 우선이라며.”
“어?”
“그거 알아? 우리 오늘이 첫 서울대 데이트인 거. 나 대학원생 시절부터 연애 했는데도, 여기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거.”
그 말에 마음이 아득해졌다.
아내는, 단지 학생들과의 토의로 들뜬 게 아니었다.
첫 캠퍼스 데이트이기에.
동문이면서도 함께 걸어보지 못한 청춘의 공간을, 15년 만에 처음으로 공유하는 순간인 까닭이었다.
그런 아내를 옆에 두고 또 내담자부터 생각하고 말았다.
하나뿐인 반려자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은 채로.
변명할 수 없는 실수였다.
“미안해. 내가 실수했어.”
“푸흡. 이런다니까.”
“……어?”
“당신은 사과가 너무 빨라. 장난친 거야. 가족끼리 일 얘기 할 수도 있지 뭐. 이젠 내가 당신 재단 이사장인데, 상담 얘기 좀 했다고 화내겠어? 하여튼 눈치 꽝이라니까.”
‘진단’이 100이 되면 절대 안 들을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격지심을 떨쳐내는 게 참 쉽지 않다.
아내 덕분에 다시금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다만, 거식증 쪽은 오히려 생각이 복잡해졌다.
“동기 중엔 없었고, 후배 중에 있었나. 들리는 소문으로 들었던 것 같아.”
“어쩌다가 그렇게 됐대?”
“음…… 가물가물하긴 한데, 스트레스 때문이었대. 원래 교우관계가 참 좋은 애였거든. 애들 사이에서 인기도 참 많고. 그런데 아마…… 그 친구 동기 남자애랑 다른 학번 여자애랑 연애를 했을 거야. 그러다 갈등이 있어서 깨졌는데, 그때 동기 편을 들었대. 그런데 그 일이 여학생들 공분을 샀던 모양이야. 소외되고, 고립되고, 여성의 적이라는 말을 듣게 되고…… 원래 사회성이 좋았던 친구라서 그게 더 충격이었나봐.”
아내가 알고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그 학생이 전과(轉科)하며 소식이 끊어졌다고.
아마 이후 사범대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으리라.
그게 아니면, 치료받지 못해 불행한 끝을 맞았을지도…….
그 시대에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배불러서 그래, 배고프면 먹겠지, 하는 식으로 방치하는.
하지만 거식증은 편식 따위와 다르다.
체내의 지방을 태우는 것으로 모자라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심장의 근육까지 소진하게 만드는, 실재하는 질환이다.
자연적으로 나아지는 경우는 드물고, 치료가 필요하다.
필수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아 각종 합병증에 시달린다.
동시에 호르몬 불안으로 정신적인 병증이 수반될 수 있다.
링겔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한다 해도 그때뿐, 근본적인 문제해결 없이는 끝없이 스스로를 파괴하게 된다고 했다.
거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거식증.
개론서 수준에서 학습한 것이라 완전하지 못할 터였다.
그리고 조명기가 내게 기대하는 상담은, 개론서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무언가다.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 택시 금방 오네. 더 오래 있고 싶었는데.”
“미안해. 내가 수업이 있으니까…….”
“됐어. 투정부려본 거야. 오늘 촬영도 한댔지?”
“어. 엘피 브랜드 홍보영상. 화보도 찍으러 오겠다네.”
서울대 대학원 재학 중인 것으로 꽤 유명해지기도 했고, 교정 자체가 봄이면 벚꽃에 물들어 그럭저럭 예쁘다.
해서 시간도 아낄 겸 교내에서 촬영하게 된 것.
아내는 내가 입은 후드티를 몇 차례고 만지작거린 뒤에 택시에 올랐다.
그러고 나서야 주변의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꼬, 꼰마님!”
“방금 그분이 꼰마눌님 맞아요?”
“완전 예쁘시던데!”
이런 관심에 처할 때면, 대학에 다니는 연예인들의 고충이 이해되곤 했다.
BJ인 나보다 훨씬 더 심하겠지.
친구들과 편하게 웃고 떠들 수도 없으리라.
수업을 들을 땐 크게 신경 쓸 일이 없다.
내가 있는 강의실이란 게 이미 익숙해진 그림이라서, 일주일 동안 자기들 나름대로 적응을 마쳤다.
하지만 교정으로 나서면 ‘서울대 석좌교수가 후원하는 BJ’라는 타이틀이 조금 불편해지곤 한다.
카메라와 스탭들이 몰린 촬영 때는, 그게 거의 50여 명의 반원으로 구체화됐다.
“거기! 이쪽으로 조금 나와봐요! 거기 프레임에 걸려!”
촬영을 담당한 포토그래퍼가 인상을 쓴다.
이벤트성 화보라서 금방 끝날 줄 알고 왔다가, 몰려드는 학생들 때문에 짜증이 난 모양.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전에 내가 나섰다.
“여러분, 미안해요. 제가 교정을 전세 낸 것도 아닌데 이렇게 피해를 끼치게 됐네요. 이분들이 식사도 못 하시고 제 촬영 도와주고 계시거든요. 통제에 따라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뭘 그렇게 사정을 하고 그래? 이미지 관리 되게 하네.”
나보다 열 살쯤 어려 보이는 포토그래퍼는, 나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조명기를 본받아 그저 밝게 웃어 보였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곧 사진에 집중하더라.
진대수의 얼굴만이 빨개졌다.
“아니 저 아저씨가 진짜-”
“대수야. 쉿. 넌 영상에 집중해야지?”
“영상이야 뭐 나레이션만 잘 넣으면 돼요. B급 CF 컨셉이니까. 아무튼 저 인간은 제가 엘피에 컴플레인 걸게요.”
“걸지 마. 자기 나름대로 고충이 있겠지.”
“아니 그래도…… 어휴…… 대민스 크라이스트.”
대수의 농담처럼 내가 무슨 성인이어서는 아니다.
불쾌감 따위에 낭비할 정신력이 없는 까닭.
조명기가 빠르게도 가정방문 약속을 잡아줬다.
무려 오늘 밤 방송 마친 직후로.
남의 집에 방문하기에 적절치 않은 11시 반이다.
그러나 그때가 아니면 환자의 가족이 모두 집에 있는 시간이 없어서, 모쪼록 방송 마치자마자 가달라는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끝마칠 상담은 아니지만, 집중해야 할 문제.
포토그래퍼의 반말을 꾸짖을 여유가 없었다.
사실, 필요가 없기도 했다.
그는 곧 내가 아닌 학생들의 반발에 직면했다.
“어…… 야, 좋네. 방금 좋았어! 스타일이 참…… 진짜 모델들보다 나은데? 방금 팔 든 자세로 표정만 다시 가볼게!”
“저기요 아저씨! 아저씨 뭔데 반말해요?”
“뭐? 아, 이 핏덩이들이. 방해하지 말고 저리 가라.”
“저 모델 분 연세는 알고 그래요?”
“아저씨가 핏덩이일걸요?”
“……뭐라는 거야? 몇 살인데?”
“마흔일곱!”
“사과부터 하시죠!”
“어…… 어? 어…… 예? 어…… 아니…… 저, 죄송합니다…….”
포토그래퍼의 얼떨떨한 사과도 진대수의 득의에 찬 미소도 자세히 보지는 않았다.
그저 거식증을 생각했다.
모델들 사이에서 특히 자주 발병한다고 했지.
저 포토그래퍼가 나와 비교한 ‘진짜 모델’들이, 섭식장애의 가장 유명한 산실이었다.
미디어가 섭식장애를 마른 몸매에 열광하는 외모지상주의와 결부시키는 게 그래서다.
실제로 모델들이나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특히 거식증 발병률이 높으니.
하지만 그건 결과론적인 분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무수한 다른 모델들이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고,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하지 않은 시절에도 거식증은 존재했으며, 외모와 무관한 직업을 가진 이들도 거식증을 앓곤 하는 까닭에.
그러니, 모델들이 거식증을 많이 앓는 건 표현형일 뿐.
생업이 다이어트와 강하게 결부된 까닭에 온갖 정신적 스트레스가 그런 방향으로 집중되는 게 아닐까 싶다.
다른 많은 정신질환이 그렇듯, 거식증 역시 무의식의 방어기제라고 보는 것이 옳으리라.
몸매에 집착하는 인지를 교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이면의 원인을 바라봐야 한다.
상담사니까.
음식을 먹이는 게 아니라 내담자의 역동을 이해해야 한다.
BJ 입장에서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지만, 그 대화의 모든 과정은 상담사의 사명감으로 이뤄져야 할 터였다.
몇 차례 옷을 갈아입으며 화보 촬영을 마쳤다.
그 뒤엔 다시 카디건을 걸치고 영상을 마무리했다.
아무 말 없이 멋 부리는 모습만 찍어서 뭔가 좀 심심하지 않나 싶었는데, 대수는 거기에 충분히 만족한 듯했다.
“역시, 역시 멋있어. 형님은 진짜 멋져부러요.”
“그래?”
“예압. 모델들 저리가라야. 그냥 보기만 해도 옷을 사고 싶게 만드네요. 여기다가 제가 짠 나레이션을 딱 얹으면, 이건 뭐 광고주 입장에서도 뻑이 가는 시나리오죠. 안 그래요?”
“예에!”
“꼰마님, 꼰나 멋있어요!”
“저 SNS에 목격샷 올려도 돼요?”
“아, 예. 올려주시면 감사하죠. 많이들 올려주세요.”
다만 한효준의 생각은 좀 다른 듯했다.
남은 수업을 마치고 교수실에 찾아갔을 때,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투덜대더라.
“거 좀 멋있는 데 가서 찍지는. 이게 뭔가?”
“아…… 바쁘신 줄 알았는데, 언제 그걸 검색해보셨습니까?”
“바빠도 핸드폰 만질 정신은 있어.”
“그러셨군요. 그래도 꽤 괜찮지 않습니까? 포토그래퍼는 만족하고 돌아갔습니다. 학생들도 꼰나 멋있다고 하고요.”
“꼰나? 흥. 거 됐고, 여기 뭐 정장은 안 파나?”
“예. 캐주얼 브랜드입니다.”
“흠. 다음에는 정장도 찍어. 애용해줄 테니까.”
애정이 넘치는 그 말에, 잠시 고민했다.
굳이 조명기와의 약속을 어길 필요는 없지만……
내담자를 생각한다면, 역시 이 사람에게 자문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저, 교수님. 제가 받은 사연들 중에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가 한 명 있습니다. 방송에 냈다가는 외모에 대한 집착만 자극할 수 있을 듯해 개인적으로 만나볼까 하는데요.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해.”
“……너무 고민 없이 답하시는 거 아닙니까?”
“고민은 새벽에 다 했어. 조명기 얄팍한 속을 내가 모르겠나? 얼굴만 보면 답이 나와. 그치가 부탁한 게 맞지?”
당황해서 대답을 꺼내지 못했다.
한효준은 거기에 개의치 않았다.
“해. 괜찮아. 자네라면 할 수 있어. 거식증이 됐건 뭐가 됐건, 근본은 마음이야. 그리고 자네에겐 마음의 지도가 있어. 말 한마디 안 하고 들어주기만 해도 큰 힘이 될 거야.”
“그렇……습니까? 전, 그 질환에 대해 지식이 부족해서…….”
“환자라고 생각하지 마! 자네가 한 말이잖나. 누구도 환자가 아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신경계가 정신질환을 일으키지만, 정신은 신경마저 지배해. 답은 마음이야. 마음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생명의 목소리를 찾아. 난 자네를 믿어.”
그 문장들이 물기처럼 스며들었다.
답은 마음이야.
마음으로 들어가.
자네에겐 마음의 지도가 있어……
“단, 외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마.”
“아, 예. 물론입니다.”
“가족역동도 주의 깊게 살피고. 또 그 외의 정신질환이 수반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해. 정신분석학에서는 이걸……”
믿는다고 해놓고 결국은 일장연설을 하더라.
덕분에 하굣길이 상당히 촉박해졌다.
하지만 덕분에 목적의식을 얻을 수 있었다.
환자의 질병이 아닌 내담자의 마음으로 들어가야 한다.
마음의 지도를 가진, NBSC의 상담사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