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20장 - 상담사와 아이돌 (3)
조명기는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담소를 나누는 우리를 발견하고 손까지 흔들더라.
“아이고, 이 교수님! 그리고 우리 꼰마님?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박대민이라고 합니다.”
“알아요, 알아요. 너무 반가워서 그러지 내가. 생방송으로는 못 봐도 유튜브 하이라이트는 자주 찾아보거든요. 어제 그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 입양가정 얘기. 사실 입양가정 엄마들이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많이 앓아요. 기본적으로 감수성이 풍부하신 분들이 주로 입양을 하는데, 상상했던 따뜻한 가정을 꾸리는 게 결코 쉽지가…… 아이고. 실수를 했네요. 우리 이 교수님은 이쪽에 관심 없으실 텐데.”
어제 생방송을 다 봤다는 이용덕 교수가,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뀐다.
조명기는 거기에 불쾌함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저 내 왼쪽에 앉아서는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흐음…….”
“……저, 조 교수님?”
“하하.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왠지 조교수 같잖아? 그렇다고 내가 조교수들을 무시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명기 씨라고 불러줘요. 우리 몇 살 차이도 안 나잖아요?”
“그렇지만 한참 말학의 입장에서-”
“아이고, 그러면 조 선배라고 부르시든가. 그러면 조선 배 느낌도 나고 그렇죠? 아, 이거 ‘아재개그’인가? 하하하.”
올해 쉰 살의 임상심리전문가, 조명기.
세 번째 모델로서 주민성의 상담에 참여할 인물이다.
[내담자 평가]가 그에 대해 한 가지 단초를 제공했다.
「평가 결과 : 활달하다.」
……지나치게 단출했다.
하지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정보가 늘어날 터.
에픽퀘스트의 목표로부터 시선을 떼고, 준비가 끝난 분장실로 들어가 메이크업을 받았다.
이후에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시선이 온통 나를 향했다.
“와. 저게 마흔일곱이라고?”
“실물이 더 낫네. 배우 해도 되겠는데?”
딴에는 작게 말한다고 하지만, 고요한 환경이라 잘 들렸다.
포토그래퍼 쪽은 대놓고 말했다.
“야…… 이건 뭐, 방송 화면하고도 비교가 안 되네요.”
“감사합니다. 박대민이라고 합니다.”
“예, 반가워요. 원래 방송할 때 메이크업 안 하세요?”
“예.”
“헤어도 혼자 하시고?”
“아내가 좀 도와주긴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르구나. 프로필사진이 뽀샵을 한 게 아니었네. 야…… 좋습니다. 오늘 피사체가 아주 좋아요.”
그렇게 밝아졌던 포토그래퍼의 표정은, 곧 어두워졌다.
이용덕과 조명기가 모습을 드러냈기에.
“아, 불독이랑 메뚜기가.”
“……하하.”
“앗. 들렸어요? 혹시 얘기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불독을 닮은 이용덕과 메뚜기를 닮은 조명기가 다가온다.
그 타이밍에 스튜디오 입구가 열렸다.
프리월드의 차세대 사업답게, 프리TV 공식 MC가 홍보를 위해 방송을 켜고 찾아온 것.
김진석이 진지한 척하는 목소리로 외쳐 말했다.
“드디어, 영광스런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보이십니까? 저기에 프리VR의 멋진 모델들이 서 있네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보이십니까? BJ계의 아이돌, BJ계의 이서준, 꼰마님이 보이십니까? 그리고 옆에 계신 분들도…… 예, 그렇고요.”
“크흠.”
“아이고, 뭐가 그렇다는 거예요? 하하하.”
“여러분, 소개하겠습니다. 프리VR 상담 컨텐츠의 세 얼굴! 꼰마님, 이용덕 교수님, 그리고 조명기 교수님이십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BJ꼰마입니다.”
“반가워요. 정신과 이용덕입니다.”
“조명기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아무래도 이 꼰마님한테는 저희가 많이 처지지요? 저희는 누구 닮았어요? 응? 방금 메뚜기 이런 거 본 거 같은데. 하하. 못됐다 정말.”
조명기는 순식간에 시청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몇 년쯤 인터넷방송을 해온 사람처럼.
심지어 개인 컷 촬영하는 동안에 메뚜기춤까지 췄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발랄함이었다.
“저분은 진짜 텐션이 어마어마하네요. 상담은 잘하시려나?”
내 옆에 서서 방송하던 진석이가 그런 말을 꺼냈다.
홍보를 맡은 BJ로서 해선 안 될 말이기에 지레 움찔하더라.
하지만 상황에 적절한 지적이었다.
프리TV의 공식방송이기에 2만 명을 돌파한 시청자들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을 품었을 테니.
“조명기 교수님은 학계의 존중을 받는 석학이십니다. 환자들의 평가도 스탭들의 평가도 최고예요. 지금은 이런 촬영장에 처음 와보셔서 조금 들떠 계시지만, 내담자들과 만날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이실 겁니다.”
“아…… 그렇구나. 근데요 부장- 아니, 꼰마님. 이게 상담사랑 임상심리사? 그게 어떻게 다른 거예요?”
“정확하게는 상담심리사와 임상심리사, 이렇게 구분됩니다. 조명기 교수님은 임상심리전문가와 1급 정신보건 임상심리사 자격증을 갖고 계시죠. 상담 과정에서의 차이점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치료의 주체가 누구인지가 관건일 것 같네요.”
“치료의 주체요? 그게 뭔데요?”
“상담심리사는 대화를 통해서 내담자 스스로가 문제점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역할입니다. 반면 임상심리사는, 이미 질환 소견이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평가와 치료를 수행하죠.”
“아, 그러니까 상담사는 리제네레이션이고, 임상사는 리스토어라는 거죠?”
단순화가 심하지만, 뜻은 통했다.
시청자들이 즐거워하고 있으니 거기에 맞춰줘야지.
“더 직관적으로 말하면…… 상담심리사는 친구고, 임상심리사는 부모님 포지션일 수 있겠네요.”
“오. 가릿 가릿. 부모님한테 말할 일이면 조 교수님, 친구한테 말할 일이면 꼰마님. 이해가 딱 되네요. 시청자 여러분 잘 아셨죠? 응? 아, 꼰마님 춤 보여달라고 하시는데.”
“그건 좀. 나중에 VR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꼭 체험단 신청해주세요. 직접 경험하시면 더 이해가 쉬울 테니까요.”
적당한 홍보와 적당한 설명으로 대화를 끊는다.
그렇게 방송을 종료한 뒤, 진석이가 사적인 얘길 꺼냈다.
“부장님. 크루 만드신다면서요?”
“어, 그렇게 됐다. 메일 읽었어?”
“예. 근데 진짜 격세지감이 느껴지네요! 방송 막 시작하고 아무것도 모르셔서 제가 많은 걸 알려드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크루를 만드신다니. 정말 시간이 빨라요.”
진석이의 탐방은 고작 2주 전 일이고, 나야 그 당시에도 아무것도 모르던 수준은 아니었는데.
말을 참 아전인수로 하는 녀석이다.
“일단 나랑 아는 BJ들한테 우선적으로 연락하라고 하긴 했는데, 진석이 너한테는 아마 좋은 조건이 아닐 거야.”
“하고 싶은데요?”
“어, 그래?”
“예. 부장님 방에서 사랑받을 수 있으면 땡큐죠. 어차피 기부 안 하면 세금폭탄 맞을 거, 좀 줄이는 게 낫기도 하고.”
그렇게 쉽게 말할 일은 아니었다.
방송 종료 뒤에 좌표(링크)를 남기는 소위 ‘시청자 돌려먹기’는 하지 않겠다고 미리 못박아뒀다.
크루가 된다고 해도 주1회 입담을 뽐낼 수 있을 뿐이다.
이미 수천 명의 고정시청자가 있는 진석이에게 반가운 제안이 될 순 없었다.
그렇기에 예의상 연락을 취했을 뿐 거절할 거라 확신했다.
대수는 분명히 답신이 올 거라 했지만, 내 생각엔 잘나가는 BJ들보다는 신인들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하꼬’들을 빠른 시일 내에 메이저 BJ로 키워내는 게 당면과제라고 생각했던 것.
대뜸 동참하겠다는 진석이의 말이 꽤 당황스러웠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왜는요. 일단 부장님 방송 시간이 좀 앞쪽이잖아요? 저랑은 겹쳐봤자 한 시간 정도고. 유부남 아니면 다 새벽까지 본단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본 겁니다. 부장님이 열한 시에 방종하면 그 2만 명은 어디로 갈까? 아 잘 봤다 하면서 잠자리에 들까? 아니죠. 폰 들고 누워서 또 딴 방송 찾아보겠죠. 그런데 다른 방송 보려고 해도 이게 색깔이 너무 다르죠. 부장님 방송은 솜사탕 맛인데, 딴 데는 거의 마라탕이니까.”
“아하…….”
“그 부장님이랑 매주 합방하면서 친밀해진 BJ가 그때쯤 방송 켠다? 이런 경우면 훨씬 이어서 보기가 편하죠. 피 잘 빨면 저도 2만따리 찍을 수 있겠다는 각이 서더라고요. 오늘도 봐요. 아무리 공식방송이라고 해도, 모델이 형님 아니었으면 2만따리 나왔겠어요? 이건 파워인 거죠. 또, 시청자 수만 많습니까? 탕력도 어마어마하잖아요? 큰손들만 있는 게 아니라 하루에도 천 명 넘게 별사탕 쏘니까. 이러면 아 빨아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피라는 거죠.”
진석이는 계산적인 준거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얼굴을 보면, 그게 진심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진석아. 부담스러우면 안 해도 돼. 어그로 많이 끌릴 거야.”
“진짜 하고 싶어요, 부장님.”
“정말 괜찮아서 그래. 네가 안 도와줘도 신입 BJ들 불러서 키워내면 돼. 내가 프리월드 부장 경력이 몇 년인데 잘될 BJ들 못 찾아내겠어? 몇 개월 안에 다 키울 수 있을 거야.”
“그게 부러워서 그래요. 부장님. 제가 누구 때문에 대상 BJ 됐습니까? 다 떡잎부터 알아보고 응원해주신 부장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 좀 키워달라고 애교 부리는 거예요.”
그게 아니다.
[내담자 평가]를 보지 않아도 진석이의 본심이 보였다.
내가 추진한 크루가, 검증되지 않은 BJ들의 논란 때문에 어그러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것.
매너로 유명한 자신이 붙어서 도와주려는 마음이었다.
“너는 참…… 그게 적은 돈이 아닌데.”
“부장님이 잘 키워주시라니깐요? 오늘 제 리액션 좀, 헤헤.”
“네 리액션 하다간 내 몸이 남아나질 않아.”
“딱 한 번만요. 네? 부장님? 어디 가요? 아 형님!”
2년 전, 공적인 만남으로 알게 된 청년이다.
떨지 말고 잘하라는 의미에서 해준 격려.
그 몇 마디의 인연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유명무실해진 크루라는 이름이, 더없이 진하게 다가왔다.
이후 촬영이 길어진 탓에 학교엔 들르지 못했다.
황급히 차를 몰고 원룸으로 가서, 진대수가 세팅해놓은 방송에 아슬아슬하게 입장할 수 있었다.
이후 숨을 헐떡이는 동안에만 시청자가 3천을 돌파했다.
지속적인 홍보의 결과다.
프리VR 홍보 주간인 만큼 어플 전체에 배너가 걸려 있고, 어제 이호정과의 합방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오늘은 진석이가 진행한 공식방송에서도 활약했다.
시청자가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기존 애청자들의 사연이 많았다.
고민이라기보단 생존신고 같은 사연들이었다.
“다음 사연은 보람보람보 후원자님이시네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초반에 자주 오시다가 요즘 뜸하셨죠? 반성하세요.”
[보람보람보님 별사탕 100개. 크크 요즘 바빴어요 죄송.」
“예. 농담이고, 다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셨던 이유가 사연에 적혀 있네요. 최근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집이 여유로워서 용돈 많이 받았는데, 요즘 좀 힘드신가봐요. 그래서 야간 편돌이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 힘드네요. 손님이 아니라 손놈들이 와서 반말 하고 짜증내고, 그런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돈을 막 던져요. 그렇다고 저도 잔돈 던져서 줄 순 없어서 공손히 드리면 독수리처럼 확 채가요. 손놈의 새…… 예. 이런 사연을 주셨습니다. 우선 람보 후원자님. 그런 형편에 후원을 왜 합니까? 한 달 동안 후원금지령 드립니다. 이런 푼돈 따위 필요 없다는 거야.”
「엌ㅋㅋㅋㅋ 뼈때리네ㅋㅋㅋㅋㅋ」
「애들은 가~ 애들은 가~」
「보람보람보 : 묵직하네여 크으..」
사실 그런 후원자들이 대다수일 터였다.
돈 많은 사람들만 이용하는 VIP서비스가 아니니까.
근근이 번 돈의 대부분을 인방에 소진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내 방송은 팬클럽 가입자가 7천 명을 넘기는 수준이어서, 그들 대다수의 기분이 나빠질 수 있는 발언이었다.
즉, 페이크.
“방금처럼 대꾸할 수 있는 사회라면 좋겠습니다. 사장이 아닌 알바생이라도, 손놈에게는 당당하게 당신 푼돈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거기까지 가는 길은 참 멀겠죠. 하지만 우리 동년배들이 더 노력하겠습니다. 당장 람보 후원자님의 매장에 손놈이 없어지게는 만들어드릴 수 없어도, 그들이 타인을 괴롭히지 않는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조언하겠습니다. 일단 저부터 노력하겠고요.”
「ㅋㅋㅋㅋㅋ역시 빌드업이었어」
「꼰머가 꼰머가 아닌데 ㅋㅋ」
[보람보람보님 별사탕 100개. 놀랐자나요 크크. 고맙습니다. 꼰마님이 말해주니까 힘이되네요 크크.]
“그렇다고 후원하셔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고. 람보 후원자님은 후원금지령 상태입니다. 이건 취소.”
「보람보람보 : 아 왜여ㅋㅋㅋㅋㅋ」
「ㅋㅋㅋㅋ꼰머맞네ㅋㅋㅋㅋ」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회사에서 통계를 잡는 부분은 아니지만, 민간의 설문조사로는 후원 경험자 중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특히 많다고 했다.
업무 없이 용돈을 받는 10대들과는 얘기가 다르다.
BJ를 응원하려는 선의로만 볼 수 없는 문제였다.
아마도, 을이 아니고 싶은 열망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을 사는 대다수의 BJ들이, 후원을 받으면 고개를 조아리며 고맙다고 말해주니까.
그 순간만큼은 자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니 맥락만큼은 비슷한 행위다.
회식에서 깨지고 나온 직장인이 편의점 알바생에게 돈을 던지며, 내가 그래도 이건 할 수 있다고 자위하는 것과.
돈을 쓰지 않고 행복해질 줄 알아야 한다.
나중에 대출까지 끼는 무리수의 발단이 되지 않도록.
자기파괴적인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습관을 학습하지 않도록, 다른 방향성을 안겨주고 싶었다.
“내가 요즘 좀 번다, 노후걱정 없다, 이런 분들만 후원하세요. 좋은 일에 쓰는 거니까 아낌없이 하세요. 그렇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신 분들은 다른 걸 좀 부탁드립니다. SNS나 블로그 만들어주세요. 제 오지랖을 더 많은 분들이 볼 수 있게 홍보해주세요. 후원보다 그게 더 기쁩니다. 아시겠죠?”
「ㅋㅋㅋㅋㅋㅋ이게목적이었나」
「치사빤쓰예요 꼰마님 ㅋㅋㅋㅋㅋ」
[마구니님 별사탕 1000개. 이래도 후원보다 더 기쁩니까.]
“……라고 꾸짖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엌ㅋㅋ」
「보람보람보 : 아재요 태세전환 먼데요ㅋㅋㅋㅋㅋ」
적당한 직언과 적당한 장난.
그 가운데 진심만이 잘 전달되길 바랐다.
이들이 나와 함께하는 이 시간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기를.
“다음 사연은…… 아, 소망강처녀 후원자님이시네요. 예전에 한번 상담을 진행해드렸었죠? 그런데…… 이건 후기로군요. 후기는 SNS나 블로그에 부탁드립니다. 다음 사연 보죠.”
「소망강처녀 : 아 넘해여ㅠㅠㅠ 한참쓴건데ㅠㅠ」
“장난입니다. 감사한 사연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예전에 꼰마 오빠가 연애상담 해주셨는데요,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게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감이 안 잡혔어요. 그래도 꼰마 오빠가 알려주신 것처럼 생각을 바꾸니까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항상 뜨거울 순 없는 거고 점점 식는 게 당연한 거니까 남친이 나쁜 게 아니라고. 그래서 덜 매달리고 제 일에 집중하니까, 일도 더 잘 되고 남친도 더 저한테 관심이 많아졌어요. 어젯밤에는 걔가…… 하략.”
「소망강처녀 : 그 뒤에가 핵심인데요ㅠㅠ」
“죄송하지만 ‘뜨밤’ 얘기는 해드리기 어렵겠네요. 아이들도 보는 방송이라는 점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고마워요, 소망님. 앞으로도 예쁜 사랑 하시길 바랍니다. 다만 이건 알아주세요. 제 상담과는 무관한 결과입니다. 원래 소망님이 그렇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었던 거예요. 상담사는 무언가를 알려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는 친구죠.”
[소망강처녀님 별사탕 100개. 친구야 안뇽 흐흐.]
“……친구는 좀 너무 갔던 것 같네요.”
기대하는 반응을 보여주지만, 내심은 달랐다.
정말 친구라고 생각한다.
나이와 처지를 떠나, 시청자들은 내 오아시스.
누구 하나 아픔을 겪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그 친구의 숫자가 수만 수십만에 이르길 바란다.
그런 생각의 와중에, 또 다른 친구가 찾아왔다.
[BJ보람님 별사탕 100개. 아저씨 저왔어여 하이여.]
「보람찬하루일을 : 보람이 컴온」
「보람보람보 : ㅋㅋㅋㅋ여러분 노래하는 보람누나예요」
“……보람 후원자님, 감사합니다. 사연 읽을게요.”
[BJ보람님 별사탕 100개. 아녀 아저씨 저예여. 저 크루 신청하러 왔는데 여기서 하면 돼여. 재단 어딨어여.]
순간 황당한 심경에 대수를 바라봤다.
어느새 회장님처럼 고쳐 앉고 V를 그리고 있더라.
「찐death : 면접임다~ 시청자 3천따리 하꼬가 2만따리 크루 들어오려면 면접을 봐야겠죠? 그래서 5분 줬어요. 형님 면접관도 해보셨으니까 압박면접 기기하시져~」
“……데스야. 이건 좀…….”
「찐death : 어그로 끌릴 수도 있긴 한데, 좋은 기회일 수도 있슴다. 빨리 면접봐주세요 지금 줄 밀렸어.」
줄이 밀렸다는 말까지 듣고선 별 수 없었다.
독단적인 디렉팅은 방송을 마치고 혼내주겠다고 다짐하며, 차분하게 시청자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실은…… 어제 호정님이랑 진행한 합방이 워낙 반응이 좋아서, 앞으로도 고정게스트 출연진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친한 BJ들에게 참가 의사가 있는지 물어봤어요. 조건은 별 수익의 30%를 기부하는 겁니다.”
「?」
「30퍼?」
「와 30퍼를 내고 크루들어온다고???」
「보람찬하루일을 : ??? 그런말은 없었잖아??」
[BJ보람님 별사탕 100개. 회비라고 생각할게요.」
“보람님 같은 경우에는…… 그 회비가 연 1억에 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설마 했는데…… 보람님, 진심이에요?”
[BJ보람님 별사탕 100개. 근데요 아저씨 저 계속 후원하기 힘든데 전화좀 받아주세요. 화상통화 면접 갑시다아.]
“아, 전화가 왔었구나. 보람님, 이걸 왼쪽으로 하면 돼요?”
[BJ보람님 별사탕 100개. 아 진짜 나빠. 왼쪽 맞아요.]
「ㅋㅋㅋㅋㅋㅋ이와중에 수금하네ㅋㅋㅋㅋㅋ」
「돈많으면 칼같이 뜯어내는구나ㅋㅋㅋㅋㅋ」
하지만 면접이라고 해봐야 별반 질문할 것이 없었다.
그저 진심이냐고 재차 물어봤을 따름.
정보람은 메이크업 중이던 얼굴로 해맑게 웃어 보였다.
[저 꼰마님 방송 진짜 좋아하거든요! 같이 하고 싶었어요.]
대답 역시 지나치게 단출했다.
그에, 하는 수 없이 [내담자 평가]를 확인했던 것이다.
「평가 결과 : 감성적이고 열정적이다. 경등도의 우울장애를 해소하게 이끌어준 ‘박대민’을 인생의 멘토로 여긴다.」
……인연이 이어진다.
내 성공적 데뷔를 위해서 추진됐던 합방.
그 첫 번째 내담자가, 나를 멘토로 생각하며, 자신의 수익을 나누기 위해 찾아왔다.
주민성의 인터뷰를 본 이용덕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일단…… 알겠습니다. 고맙고…… 다음에 연락하자.”
[네! 아저씨, 꼭 저 뽑아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후로 찾아온 BJ들 역시 대동소이했다.
과거 내 첫 생방송을 찾아와준 12탐방러 중, 진석이와 대경이를 포함해 열 명이 줄을 지어 재탐방에 임했다.
얻을 유명세보다 잃을 수익이 더 클 수도 있는 메이저BJ들.
그들이 하나같이 나와 함께 방송하고 싶다고 외친다…….
“형님! 계속 생각해봤는데, 꼰마주니어 어때요?”
방송을 끝내자마자, 대수가 그렇게 말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음…… 꼰마주니어는 뭐야?”
“크루 이름이요. 왜, 파워주니어라고 열세 명 아이돌 있잖어. 그것처럼 형님도 열세 명 팀 짜는 거니까 꼰마주니어요.”
“그냥 꼰마크루로 하면 되잖아.”
“그래도 약간 아이돌 느낌 내고 싶은데. BJ계의 아이돌 아니심까? 거기에 어울리는 멋진 이름이 있어야죠.”
“그래도 꼰마주니어는 아니지. 시니어면 몰라.”
“엇? 꼰마시니어? 의외로 괜찮은데요?”
“……그냥 꼰마크루로 하자. 그리고 넌 왜 말을 안 하고 이렇게 막 추진을 하니.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헤헤. 딱 이번까지만 봐주십쇼. 앞으론 절대 안 그럴게용.”
잔뜩 혼낼 셈이었지만, 금세 약해지고 말았다.
대수의 애교가 아니라 열한 명의 [내담자 평가] 때문에.
간을 쪼아 먹던 독수리가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프로메테우스는, 사슬을 풀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