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20장 - 상담사와 아이돌 (2)
“흐흐, 으흐흐, 형님, 짱이에요 진짜. 으흐흐흐.”
진대수는 직접 만든 ‘움짤’을 보고 있다.
내가 이호정의 코칭을 받아 춤추고 노래하는 리액션.
그 어색함이 대수의 광대를 치솟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그걸 계속 쳐다보고 있다.
“……놔두고 정리하자. 덕분에 배부르게 먹었는데 설거지는 내가 할게. 오늘 반응은 어땠어?”
“헤헤. 늘 그랬듯이, 최고였습니다. 역시 형님은 케미가 좋아. 혼자 방송할 때보다 누가 옆에 있을 때가 훨씬 빛나요. 다른 애들은 옆에 누가 있으면 말도 꼬이고 소통이 안 되거든요? 근데 형님은 그게 아니라 옆에서 깐족거리든 태클을 걸든 치켜세우든 자기 할 방송 딱 해버린단 말이죠. 그러는데 그 옆에 있는 애는 오히려 좋아서 환장하고. 이러면 보는 사람들도 즐거워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높은 ‘관계’ 때문일 터였다.
처음부터 82였던 것이 이제는 업적 보정까지 받아 102.
100 이상의 능력치가 어떻게 판정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인세에 보기 드문 수준이리라.
합방 쪽이 내 장기를 펼치기에는 더 유용할 터였다.
“그래, 알겠으니까 정리부터 해주라.”
“예압! 흐흐. 우선 최고시청자는 21,225명이네요. 어제 기록을 아깝게 못 깼습니다. 그렇지만 별사탕 기록은 터졌어요. 무려 106,982별! 이젠 하루에 연봉을 버시는구나!”
처음으로 일일 10만별을 달성했다.
환전 수수료를 떼어도 900만원에 가까울 금액.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이호정 팬덤과 우리 팬클럽 사이에 경쟁이 붙은 까닭이었다.
경쟁이라고 해서 부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호정방 시청자들은 자신들의 BJ가 존경한다는 내게 팬덤의 파워를 인정받으려 애썼고, 우리 시청자들 역시 그들에게 밀릴 수 없다며 평소 이상으로 후원을 해댔던 것이다.
덕분에 몇 차례고 아이돌식 리액션을 배워야 했다.
그렇다고 후원금 기록에 기뻐할 건 없지만.
“별사탕이야 어차피 반으로 나눠지잖아.”
“엥? 아뇨, 오늘 후원금 전부 형님 건데요?”
“무슨 소리야? 합방 자동분배 기능 추진한 게 나야.”
“방송인에 게스트 아이디 입력돼 있는 시간 동안 자동분배 되는 거죠? 하지만 우리 호정 씨 아이디는 거기 없었습죠.”
“아니, 왜?”
“본인 요청입니다. 그쪽 방에도 이미 공지 나간 거예요. 좋은 일 하시는 분이니까 수익금 전부 넘길 거라고.”
“……이런. 액수가 너무 큰 후원인데.”
“본인이 원한 건데요 뭐. 모기 소리 들을 일은 아니죠.”
‘모기’란 대형 BJ와의 합방 등으로 소위 피를 빠는 행위를 뜻한다.
과거에는 공식적으로 기능이 지원되지 않아 별사탕의 분배에 어려움이 있었고, 보통은 보다 잘나가는 BJ 쪽에서 격려의 의미로 수익금을 양보하곤 했다.
팬 입장에서는 모기에 피 빨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그림이었던 것이다.
내 경우는 기존의 후원도 상당했기에 모기로 폄하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못내 미안한 심정이 됐다.
합방을 마치고 떠나며 이호정은 말했다.
앞으로도 자주 놀러오고 싶다고.
그때는 자동분배 기능을 믿고 그러자고 했지만, 이런 얘기를 듣고 나니 그게 좀 곤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대수 쪽에서 정반대의 의견을 냈다.
“그래서 말인데요. 고정게스트를 시도해보죠.”
“고정게스트?”
“옙. 형님 소통력 자체가 파트너가 있든 없든 채팅창을 그냥 관통해버리는 수준이고, 호정이도 또 나오고 싶다고 했고 하니까, 라디오처럼 요일별로 고정게스트를 두는 겁니다. 아까 호정이가 고민 사연에 어울리는 노래 불러주는 거 반응 되게 좋았거든요? 그런 식으로 특색을 넣어서, 하루는 노래상담, 하루는 미술상담, 이렇게…… 크루를 만드는 거죠.”
크루(crew).
온라인 오프라인 상으로 주기적인 합방을 진행하는 팀이다.
원래는 적정 인원이 필요한 게임방송에서 시작된 개념이지만, 이후 케미가 잘 맞는 토크 BJ들이 티키타카를 위해 본격적으로 팀을 꾸리기 시작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다만 그 최대 아웃풋인 ‘킹엔터’와 ‘꿍꿍즈’가 불화와 입대로 깨진 18년 이후로는 이렇다 할 크루가 없는 실정이었다.
“……크루라. 이제는 한물 간 유행인데.”
“그렇긴 하죠. 요즘은 겜방 아니면 굳이 크루 안 짜니까.”
“회사에선 리얼버라이어티의 몰락과 환경적으로도 겹친다고 보고 있어. 굳이 종합선물세트 같은 걸 보지 않아도, 유튜브로 내가 보고 싶은 방송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세상이니까.”
“거기에 괜히 어그로도 많이 끌리고 이래저래 불화도 많고. 크루원 사고에 전체가 같이 피해를 보기도 하고요. 특히 리더는 모든 이미지 타격을 다 받으니까, 메리트가 없죠.”
“……그런데도 추천하는 거야?”
“예압.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요.”
“흐름?”
“프리TV 자체가 지금까지…… 각종 사회악의 산실처럼 그려졌잖어요? 개중에 괜찮은 BJ들이 있어도 가뭄에 콩 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죠. 그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요. 꼰마크루는 다르다. 프리TV 트위치 유튜브 그런 구분과 무관하게, 꼰마크루는 믿을 수 있다, 이걸 만들고 싶슴다. 그렇게만 되면 그때는 진정한 아재돌이라는 거죠.”
그거구나.
나를 프리TV의 아이콘으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계단이라는 얘기였다.
혼자서 만드는 명성에는 한계가 있으니.
별사탕 순위 1위를 다투는 BJ호정도 최대시청자 10만을 자랑하는 BJ가루트도, 그들만의 리그일 뿐 절대적이지 않다.
나 역시 혼자 성장해서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기 어렵다.
내 목적을 위해서도, 이호정이 자기 방송에서 날 언급해줬듯 더욱 널리 ‘꼰마’라는 이름이 회자되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잖아?”
“현실적인 문제들을 비현실적으로 덮어버리면 됩니다. 재단 설립하고 나면 크루 신청을 그쪽으로 돌리는 거예요. 수익의 일정 퍼센티지를 기부해야 크루원 자격이 생기는 식으로.”
“뭐? 그런 식으로 크루를 모집하면 누가 하겠어?”
“엥? 너무 많이 하려고 할까봐 걱정인데요? 비율 적절하게 설정 안 하면 피 빨려는 중소기업 모기들 달려들 거예요.”
“3주차 신입 BJ한테?”
“3주차지만 실검스타고, 2주 연속 신인 1위 꿰찼고, 최대시청자 순위도 별사탕 순위도 최상위권에 올라 있죠. VR 모델이랑 재단 설립으로 곧 대중적으로도 알려지실 거고. 대기업 될 게 뻔한데 좌표 찍히고 싶은 애들이 좀 많겠어요?”
내가 이호정 팬들에게 모기 소리 들을까봐 걱정하는 동안, 대수는 내게 모기 붙을 기회주의자들을 염려했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현실성 없는 말도 아니었다.
2주 만에 동시시청자 2만이라는 건 전례가 없는 일.
인기 아이돌 출신이며 언변까지 뛰어난 이호정조차, 시청자 2만을 넘긴 건 2개월차에 접어든 최근의 일이었다.
“그래서…… 윈윈이라는 거구나. 나는 정기후원자를 얻고, 그 친구들은 유명세를 얻을 수 있는.”
“예압. 선순환이죠. 그동안은 자극적인 컨텐츠나 인맥 샤바샤바로만 얻을 수 있었던 네임밸류를 선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거. 물론 오래는 안 가겠죠. 몇 명 제외하면 얻을 거 얻고 탈퇴하겠지.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기도 하겠고. 그래도 뭐 어때요? 그때도 크루 들어오고 싶은 애들 많을 텐데. 형님이 시청자들만 꽉 잡아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는 꼰마크루 출신이 인방을 휘어잡게 될 거고, 꼰마라는 이름이 스트리머를 대표하게 되지 않겠슴까?”
거기까지 듣고 생각했다.
이건 해볼 만한 시도……
아니, 해야만 하는 시도다.
처음에는 난항도 겪을 것이다.
기존의 크루들을 몰락시킨 불화나 이미지 문제 등을 나라고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을 테니.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기부를 통해 가입하는 크루다.
수익을 위해 뭉친 크루들과는 인상부터가 달라, 선행이 보상받는 사회풍조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상담만으로 2주에 2만 명을 유입시킬 수 있는 NBSC의 힘이 아니고서는, 어떤 뛰어난 BJ도 해낼 수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고민할 이유는 없다.
모든 예상되는 문제들을, 그저 타파해나갈 뿐.
“좋아. 그렇게 준비해보자. 호정 씨한테는 얘기해둔 거야?”
“아뇨, 그게 관건입죠. 호정이랑 쇼부 친 기부율이 베이스가 될 테니까요. 한번 전화해보세요. 얼마까지 생각하는지.”
이미 오늘의 방송 수익금을 전부 후원한 이호정.
그는 배꼽을 잡을 듯이 웃었다.
[하하핫! 기부를 통해서 크루를 뽑아요? 하하하핫! 이거 말도 안 되는 플랜인데요? 근데 되게 재밌을 것 같아요.]
“어…… 재밌을 것 같아요?”
[네. 일단 저도 요즘 수익이 예상보다 많아서 좀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세금폭탄 이런 얘기도 있으니까요. 들어보니까 재단에 기부하면 30%까지 공제된다고 하던데. 그쵸?]
“소득공제는 아니고 세액공제지만…… 예.”
[그럼 30%로 잡을게요.]
세상 물정 모르는 청년이라는 게 거기서 드러났다.
하는 수 없이 내 입으로 설명해줘야 했다.
“총 수익의 30%라는 게 아니라 필요경비를 제한 소득금액에서 공제되니까, 별사탕 30%면 오버가 날 수 있어요.”
[큰 차이는 아니지 않아요? 꼰마님 게스트로 나가면 그만큼 제 시청자 수도 늘어날 거고, 윈윈일 것 같은데.]
“호정 씨 방송국은 안 그래도 최상위권이잖습니까?”
[에이. 꼰마님, 그게 얼마나 가겠어요. 지금이야 해체한 지 얼마 안 돼서 팬덤 파워가 있는 거고, 그 누나들 얼마 안 가서 다른 아이돌한테 빠질 수도 있어요. TOX나 이런 잘나가는 친구들 많잖아요. 제가 뭐 대단하다고 계속 보겠어요? 그나마 지금처럼 수입 괜찮을 때 스카웃 받아둬야죠.]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긴 한데…….”
[크루라. 왠지 설렌다. 아이돌 때 생각나요. 그때는 숙소에서 애들이랑 마피아 하는 게 제일 행복했는데. 가입할게요. 꼰마님이랑 매주 보면 진짜 재밌을 것 같아요.]
진심이라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지금이야 3개월차 신인 BJ의 패기겠지만……
그 마음 자체는 변하지 않을 듯했다.
전화를 끊고 돌아보자, 대수가 씩 웃고 있었다.
“30으로 오케이? 야, 이 친구 통 크네요?”
“음…… 너무 피 빠는 느낌인데.”
“에이, 기부금인데 피 빠는 거겠슴까? 잘 버는 애들한테 돈 뜯어서 풀면 그건 의적이죠. 기부 홍길동 꼰마크루, 출격!”
그렇게 꼰마크루 프로젝트가 구체화됐다.
수요일의 시청자초대석을 제외하고 매일 2인씩 크루를 출석시켜, 그들이 ‘꼰마의 동료’라는 수식어를 듣게 하는 전략.
거기서 13인의 월간 출연금 규모가 도출됐다.
*
프리VR 홍보 스틸컷 촬영을 위해 다시 만난 화요일 낮.
이용덕은 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월 2억? 허.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만 1분쯤 더 설명을 이어가자, 입을 떡 벌렸다.
“허…… 월 수익이 3천이 넘는 이들이 그렇게 많아요?”
“인터넷방송이 그렇습니다. 요즘 청년들의 취미생활을 단 두 개만 뽑는다면 웹툰과 인방일 텐데, 그중 웹툰은 베스트댓글이 아니고선 자기 이름을 드높이기 어렵지요. 결국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만한 곳은 인방이 됩니다.”
“흠. 그런 줄은 몰랐네. 정말 인방을 해볼 걸 그랬나.”
“생각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름을 알리기 좋은 플랫폼이라고 누가 추천해주더군.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포기했어요. 나 같은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겠더라고. 요즘 박대민 씨 하는 걸 보면, 저러니 사람들이 붙는구나 싶더군요.”
언변으로만 따지자면 나보다도 나은 데가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침침한 노안과 구시대적 사고방식으로는 시청자들과 적절하게 소통하기 어려울 터.
인터넷방송 쪽에 어울리는 위인은 아니었다.
“혹시 어제 방송도 보셨습니까?”
“어제는 끝까지 봤지요.”
“그러셨군요. 닉네임이……?”
“안 알려줍니다. 내가 한 교수처럼 ‘관종’인 줄 아나.”
세간의 인식으로는 이용덕 쪽이 관종이고 한효준은 인자한 거장인데.
그렇지만 이용덕 입장에서는 반대로 생각할 법도 했다.
대중의 관심을 끌려던 그의 행동들은, 사실 정신과의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사명감 때문이었으니.
“어제 나온 호정이란 친구가, 과거 주민성 씨에게 정신과 의사를 추천해달라고 했다더군요. 그때 민성 씨가 교수님을 언급하며 꼭 찾아가보라고 말했던 모양입니다.”
“……흠. 민성이가, 그랬구만. 하지만 난 본 적이 없는데요?”
“스스로 좋아졌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보다 남들의 사정을 먼저 염려하는 여유로운 상태가 되었지요. 제게 민성 씨를 많이 도와달라고 당부하더군요.”
“흐음. 거, 장하네. 민성이도 그렇게 돼야 할 텐데…….”
딱딱한 표정으로 거기까지만 말한다.
내 앞에서는 치기도 보여주곤 하는 한효준과는 달랐다.
감정을 피력하는 행위 자체를 꺼리는 듯했다.
짧지 않은 방송생활을 통해 얻은 성격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원래부터 기질이 그런 편일 수도 있겠지만……
「 내담자 명 : 이용덕
평가 결과 : 영활하고 합리적이고 논쟁적이다. ‘주민성’에게 혈연의 유대감을 품고 있다. ‘박대민’에게서 작은 희망을 보고 있다. 아들을 잃은 자책으로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다. 」
[내담자 평가]의 보고처럼, 아들을 잃은 까닭일 것이다.
진심을 표현하자면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겠지.
아들이나 주민성과 달리 스스로 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이호정에게, 그리고 그런 그를 지탱해줬을 주변의 환경에.
그 마음을 이해하며 그저 고개를 꾸벅여 보였다.
“흠. 그리고 박대민 씨. 춤을 참 잘 추더군요.”
“아. 예…….”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눈꼴사납던데. 무슨 상담사가 춤추란다고 따라서 추고 그래요? 아이돌이 되고 싶으신가?”
내뱉듯이 하는 비난 역시 그의 진심과는 다르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냐는 거겠지.
하지만 내겐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저는 가끔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립니다.”
“응? 뜬금없이…… 그 신화는 왜요?”
“사소한 일로 나쁜 마음이 들 때마다 말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번 강연 중에 이 교수님께서 절 강단으로 불러내셨을 때도, 울컥 반감이 치밀었지요. 그래서 공격적으로 나섰고.”
“큼. 그 얘길랑 그만합시다. 좀…… 오해였으니까.”
“그랬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면 문득 그 문장이 떠오릅니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윤동주로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예. 프로메테우스와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면, 부끄러워집니다. 밤잠을 설치고 치를 떨게 만들던 분노조차도 우스꽝스럽게 여겨집니다. 저 아무 죄 없는 이들조차도 고난을 달게 받았는데, 나는 왜. 내가 뭐가 그리 잘나서. 이다지도 쉽게 분노하고 이다지도 쉽게 남을 비난하는가.”
이용덕은 이제 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타인지로군요. 보다 고차원적인 인지를 통해서 말초적인 감정들을 승화시키는 기전이야. 그거 참…… 효율적이겠는걸. 그런데 아이돌 얘기를 하다가 왜 그리로 갑니까?”
“교수님. 아이돌이란 뭘까요.”
“Teen idol. 애들이 좋아하는 스타지요?”
“요즘은 20대 30대도 아이돌을 많이 좋아합니다.”
“그야, 세상이 요지경인 게지. 정서적으로 안정을 얻을 만한 곳이 얼마나 없으면 어린 이성한테 열광을 할까. 그래서 들어보면 춤을 따라 추고 하면서 동아리 활동도 한다더군요.”
“예. 이호정 씨는 저를 따라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아이돌이시다?”
“기존에 일면식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방송을 보고 저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더군요. 그에게 저는…… 프로메테우스였습니다. 예. 저는 아이돌이 되고 싶습니다. 일상에 지치고 무너져서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잊고 사는 이들에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악의를 승화시킬 수 있게 되는, 그런 프로메테우스이고 싶습니다.”
말하면서 조금 긴장하긴 했던 것 같다.
이 의사가 혹시 망상장애를 진단하진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이용덕은, 눈살을 찌푸리며 웃었다.
그 순간만큼은 한효준의 표정과 비슷했다.
날 선녀라고 부르던 때에 저런 얼굴을 했었지.
“……그럼 그러시든가. 민성이한테 말해줘야겠네요. 오랜만에 배꼽을 잡고 웃겠어. 마흔일곱의 아이돌이라니.”
“하하. 진짜 아이돌을 웃게 해줄 수 있다면, 기쁘겠네요.”
그런 의미에서도 뜻깊은 내담자였다.
주민성은 진짜 아이돌이다.
그의 상담은 10대와 20대와 30대의 눈을 사로잡을 터.
단지 개인의 상담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불안을 겪고 있는 무수한 시청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리라.
그러니…… 이제는 조명기와 만나야 한다.
두 번째 에픽퀘스트의 대상이자, 임상심리학의 일인자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