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18장 - 타협하는 상담사 (1)
콘서트는 별세계였다.
대학 시절 학교 축제에 가거나 한때 성행했던 게릴라콘서트의 거리 홍보를 본 적은 있지만, 아이돌 콘서트는 처음.
자연히 모든 일들이 낯설고 신선했다.
“아빠 아빠, 여기 줄 서 있다가 주는 거 받아줘.”
“뭘 주는데?”
“몰라. 뭐 줄 거야. 그럼 받으면 돼.”
딸애는 수수께끼만 남기고 다른 줄을 찾아 떠나갔다.
같은 줄에 선 팬들과 대화하며 진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슬로건 같은 거 나눠주거든요. 그거 받는 거예요.”
“아, 소속사 측에서 이벤트를 하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 팬들이 비공굿…… 자기가 만든 응원물품들 푸는 거예요. 퀄 좋은 건 돈 받고 팔기도 하는데, 이렇게 줄 긴 거는 그냥 ‘나눔’ 하는 거죠.”
“파는 건 이해가 되는데, 왜 무료로 나눠주는 건지요?”
“네? 어…… 글쎄요?”
“재미로?”
“아 근데 계정 팔로우하거나 카페 가입해야 주기도 해요.”
내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추동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몇 군데 줄을 도는 와중에도 구독자들이 나타났다.
그런 이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콘서트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면, 그들이 자기 ‘최애’가 아닌 멤버의 비공식 굿즈를 하나씩 나눠주곤 했다.
“따님 최애 누구예요? 크리스? 대한?”
“최애……는 모르겠네요.”
“중학생이면 아마 크리스겠지? 그럼 이거, 크리스랑 민성이 받으세요. 좋아하면 좋겠다.”
“아, 고맙습니다.”
“꼰마님도 자주 오세요! 남팬이니까 애들이 좋아할 거야.”
“남자 팬을 보면 좋아하나요?”
“그럴걸요? 여덕들은 그냥 얼굴로 좋아하는 경우가 많지만, 남덕 붙는 건 완전 실력파라고 인정받은 거잖아요? 옛날에 버즈? 이런 그룹처럼요. 남자 팬 엄청 많았다던데?”
맞는 비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덕분에 여성이 대다수인 팬들 사이에서 큰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슬로건과 포토카드 등이 쌓여갔다.
내 쪽에서는 민성이란 멤버에 대해서 물어보곤 했다.
“혹시 민쭈는 어떤 멤버죠?”
“아! 민쭈 아시는구나!”
“민성이 완전 상남자죠.”
“상남자요? 민쭈가 쭈구리라는 뜻 아니었습니까?”
“아, 모르시는구나.”
“밖에서는 터프한데 멤버들한테는 쭈굴쭈굴 해요.”
“완전 갭모에!”
그룹에서 춤을 가장 잘 추는 터프가이라고 했다.
인터뷰에서는 쾌남아의 풍모로, 예능에서는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신체로 활약했다는 모양.
그럼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에겐 순한 양이라는 것이다.
화 한번 안 내고 늘 포용해주는 대인배라고 했다.
일견 ‘내 사람에게만 잘해주는 나쁜남자’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모든 사람이 입체적인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게 이중적이라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다.
안팎의 행동이 그리 다르다면, 십중팔구 한쪽은 가짜.
방송에서 보여주는 면모들은 캐릭터 이미지메이킹을 위한 연기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본성과는 다른 연기를 보여주는 삶은……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받아온 무수한 굿즈에 무척 기뻐한 딸은, 민성에 대한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성격? 원래 그렇댔는데? 안 친한 사람들한테는 솔직하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 강한 척하는 거 같댔어.”
“왜 그런 걸까? 어떤 사건 같은 게 있었을까?”
“몰라. 그냥 그런 사람도 있는 거지 뭐.”
“……하하. 그 말이 정답이네.”
그런 사람도 있는 거다.
행동의 이중성은 공황발작의 직접적 원인이 될 수 없다.
진짜 문제는 탐문을 통해서는 알기 힘들 듯했다.
“근데 완전 노력파야. 맨날 레벨업! 외치면서 연습실에서 산대. 팬싸에서도 레벨업! 레벨업! 이랬어.”
“그랬어? 멋진 청년이네.”
“근데 멤버들은 너무 무리하는 거 같다고 걱정했어. 제일 잘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센터면서 자신감이 없대.”
콘서트 내내 민성이란 멤버에게 집중했다.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딸애의 말대로 멤버들 가운데에서 가장 빛나는 청년.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어떤 정신적인 문제도 경험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쳤다.
[아…… 힘들다. 어땠어요? 전요, 솔로 퍼포먼스가 제일 힘든 것 같아. 그래도 우리 팬들 생각하면서 열심히 했어요. 다음 콘서트 때는 더 멋진 거 보여드릴게요. 이번 월드투어까지 하고 나면 훨씬 더 레벨업! 해서 돌아올 거야. 아…… 그리고 저, 투어 전에 또 예상치 못한 데서 인사드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소녀팬들이 눈을 크게 뜨며 서로를 돌아본다.
아직 VR상담 프로젝트가 공표되지 않은 까닭.
멋들어지게 웃어 보인 민성이 어깨를 으쓱였다.
[되게 가까운 곳에서 여러분이랑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기대해줘요. 그때 보여드릴 퍼포먼스도 준비하고 있거든요.]
상담 전에 퍼포먼스를 보여줄 셈인 모양이다.
팬들에게는 꽤 좋은 선물이 되겠지.
VR을 통해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는 내 아이돌의 퍼포먼스를, 심지어 기기에 저장해서 보고 싶을 때 또 볼 수 있을 테니.
나 역시 그날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아직 어떻게 접근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방법이 있을 것이다.
NBSC와 함께 저 청년의 마음을 레벨업해줄 방법이.
*
일요일 아침엔 차를 몰고 한효준의 집으로 향했다.
알아서 보육원까지 찾아오겠다고 하더라만, 원서를 읽는 것과 내비게이션을 읽는 능력은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교수아파트에 들러 모셔가는 것은 예의 이전의 문제였다.
물론 한효준은, 조수석에 오르자마자 투덜거렸다.
“흥…… 뭘 또 이렇게 기사 노릇을 하나? 바쁜 양반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좋아하고 있다.
이제는 한효준이 짓는 표정 하나하나가 손에 잡힐 듯했다.
높아진 ‘진단’과 여러 차례의 면담 덕분이었다.
“멀지도 않은 길이니까요. 그나저나 가족 분들과 보내실 시간을 방해한 것 같습니다.”
“뭐? 나한테 가족이 있을 것 같나?”
“아, 죄송합니다. 독신이십니까?”
“당연하지. 주말까지 연구실 나간 게 왜겠어?”
“학문에 대한 열의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자네라면 뭐 그랬을 것 같군. 하지만 난 좀 달라. 가족이 있었다면, 안 그랬을 거야. 가능한 한 집에 있었겠지.”
현명한 이야기였다.
석학에게도 학문보다는 가족이 우선되는 것이 옳으리라.
그로써 가족을 통해 나 자신을 긍정해야만, 마음의 응어리가 아닌 선한 힘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내가 46년을 살고서야 깨달은 진리였다.
하지만 그렇게 듣고 나니 독신이라는 사실이 의아했다.
가족을 내팽개칠까봐 두려워 피한 것도 아니라면, 능력도 있고 인망도 좋은 그가 왜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일까?
“교수님? 왜 가정을 꾸리지 않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어려운 문제인가? 나 같은 사람은 아비가 되면 안 돼.”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올렸다.
한효준 본인의 부친이 어떤 이였는지를.
“……괜한 걸 여쭤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이란 게 괜한 말들에서 시작되는 법이지. 내 생각은 그래. 핏줄의 힘이란 게 참 무서워. 단순히 유전자의 유사성을 말하는 게 아니야. 가정이란 공간의 경험을 공유하는 까닭이야. 내가 겪은 아버지는 온당하지 않은 사람이었어. 그리고 그 외의 어떤 아버지도 나는 알지 못해. 그런 내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기른다면, 그 아이는 얼마나 불행하겠나. 구태여 슬픔을 대물림할 이유가 어디 있겠나.”
분명 그럴 수 있다.
나만 해도 내 아버지를 닮은 아비다.
한때 그와는 다르다고 믿으며 그와 다르고자 애썼지만, 내 독선적인 행동들의 근본은 분명 나의 선친이었다.
심리학자인 한효준이 미리부터 염려할 만한 문제였다.
“하지만…… 교수님께선 다르시지 않습니까?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분이 아닙니다. 자신의 심리를 관조하고 계시고, 문제행동에 스스로 대처할 줄 아는 분이십니다.”
“맞아. 그럴 수 있어. 하지만 그래서야 그게 가족이겠나? 가면을 쓰고 겪어보지 못한 아버지를 연기하는 공간이, 내게 가정일 수 있겠나? 나 같은 사람은 홀로 늙는 게 옳아.”
“그렇지만……”
“실은, 입양이라면 생각해본 적이 있긴 해.”
“예?”
“영유아들 말고 다 큰 애들. 저 교수아파트만 해도, 방이 두 개인데 월 관리비가 50도 안 돼. 한 명 정도는 내 나름 건사해줄 능력이 되고. 어차피 입양된 아이도 날 정말 친아빠로 여기진 못할 거 아니겠나? 가면을 쓰고 대해도 무방한 게지. 사회환원의 의미에서 그렇게 할까 생각해본 거야.”
“솔직히, 방법이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하! 참 솔직하시군. 그래. 외로워서 생각해본 것뿐이야. 죽는 순간까지 혼자라는 건…… 상상하니 끔찍하더라고.”
가족조차 거부하며 평생을 이상심리학 연구에 쏟은 학자.
그 슬픈 정진의 동기는……
아마도 모든 나쁜 부모의 교화였으리라.
자신 같은 슬픈 아이가 더는 생기지 않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꿈.
그리고 스스로를 나쁜 부모라고 단정 지은 한효준은, 정년이 되면 누구도 찾지 않는 곳에서 삶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어떤 보람도 없이.
무수한 명저를 남겼으나, 어떤 아이도 남기지 못한 채로.
“……제가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허허! 우스운 소릴 다 하는군. 기껏해야 10년 상관이야. 나 갈 때쯤 되면 자네는 구부정 노인네 안 될 것 같나?”
“신체나이로는 20년쯤 차이가 나지 않겠습니까.”
“이런, 못된! 내가 겉늙은 데에 보태준 거 있나? 사람이 말이야, 매너가 있어야지. 흥…… 그런데 바둑은 좀 두나?”
“하하. 한번 배워보지요.”
그런 서설 끝에 VR상담 쪽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낙성대를 돌아나와 신림역을 지날 때쯤에 설명이 끝났다.
“패닉(공황)이라. 굉장히 민감하고 광범위한 증상이지. 보고되지 않을 뿐 인류의 반 정도는 그걸 겪어봤을 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요. 패닉이란 단어 자체가 일상어니. 하지만 중등도의 발작 재발까지 가면 비율은 높지 않잖습니까?”
“따로 놓고 보지 마. 재발해서 disorder(장애)로 분류되건, 다시 발작을 겪지 않아 정상인으로 치부되건, 그건 약쟁이들이 나누는 분류일 뿐이야. Panic attack(공황발작) 자체는 누구나가 안고 살아가는 거야. 그 점을 확실히 인지해.”
임상심리 레지던트까지 수료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닌데.
그렇지만 이상심리 석학이 해주는 이야기다.
귀를 열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가족역동은 어떤가? 미리 조사를 해봤지?”
“그건 어려웠습니다. 방송에서 가정사를 이야기한 적이 없더군요. 열심히 검색을 해도 언급 자체가 없어서…….”
“자연스러운 일인가? 보통 가족 인터뷰도 많이 하잖아?”
“예전에야 그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명인 가족이라는 이유로 고초를 겪는 경우도 있고 해서요. 가족들이 원치 않기에 숨기고 있다고 봐도 되겠지요.”
“그렇군……. 이용덕 그 인간하고 같이 상담을 한다고?”
“예. 스스로 담당했던 환자인 만큼, 첫날은 이 교수가 메인으로 나설 것 같습니다. 라포 형성도 돼 있으니까요.”
“흥. 어처구니없는 작자야. 치료도 해내지 못한 주제에 무슨 멘토랍시고 으스대는 것인지 원.”
“정신질환은 몸의 병과는 다르잖습니까.”
“따로 놓고 보지 말라고 했잖나? 어떤 증상이건 원인과 기작이 있게 마련이야. 그것도 모르는 놈이 무슨 의사인가?”
이번에도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 점이 한효준의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지난번과는 사정이 달라. 그때야 자네가 새로 배운 점도 있다고 생각을 해서 양보를 해줬다지만, 이번에는 내담자를 만나는 자리야. 절대로 양보하지 마. 옳다고 믿는 길로 가.”
“그렇지만 사전정보에서 차이가 큽니다. 제가 틀릴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미지요.”
“그렇게 생각하나? 정말로?”
확신할 수 없는 일이긴 했다.
100이 된 ‘진단’으로 단서의 부족을 극복하고, 92의 ‘관계’로 빠르게 라포를 형성한다면, 내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용덕을 궁지로 몰고 싶지 않다.
앞으로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그 의사가, 자신의 멘티로부터 부정당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협력 차원에서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어디까지나 내담자를 위해서요.”
“허. 참 끝을 모르는 배려로구만. 그럼 그렇게 하든가.”
거기까지 대화할 무렵에 종위보육원에 접어들었다.
대학원생들은 이미 도착해서 주차장에 모여 있는 상황.
나와 한효준이 내려서자, 신형준 원장이 나와서 반겼다.
“아이고, 한 교수님. 이렇게 와주셔서 영광입니다.”
“하하. 저 같은 말학을 아십니까?”
“물론 알지요. 사회복지 공부하면서도 명성을 많이 들었습니다. 발달심리 쪽으로도 많은 책을 쓰셨지 않습니까? 이런 기관들에도 가정에서 학대 받은 아이들이 들어오곤 합니다. 사별과는 다른 이유로 헤어진 케이스고…… 많은 관심이 필요하죠. 그럴 때마다 교수님의 저서에서 도움을 얻었습니다.”
“이거야 원. 금칠을 해주시네요. 우선 들어가지요. 아이들부터 먼저 만나봐야 될 것 같습니다.”
명문대의 석좌교수와 그 제자들이 함께하는 재능기부.
다만 그들이 맡게 된 것은 초등학생들 쪽이었다.
한효준과 신형준이 합심해서 그렇게 결정했다.
“중고등학생들은 이미 우리 박 선생과 친밀관계가 형성돼 있지요. 그러면 그쪽으론 우리가 개입할 게 없습니다.”
“그렇군요. 동감합니다, 교수님. 박 선생님이 충분히 잘 지도해주시겠지요. 지금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어요.”
“……교수님? 원장님? 그렇지만 당장 사회에 진출할 준비를 해야 하는 애들입니다. 이렇게 대학원생 인생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일은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자 한효준이 돌아보며 씩 웃는 것이다.
“어딜 날로 먹으려고? 내담자들을 남에게 떠넘길 텐가?”
“아니, 떠넘기려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렇게 보일 수 있으니까 하는 말이야.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봐. 앞으론 바빠지면 다른 동료들 보내겠다는 심산으로 보이지 않겠어? 구태여 그런 불안감을 안겨줄 게 뭐 있나?”
그 말을 듣고서야 이해했던 것이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불안에 대해.
다른 상담사를 소개해주는 건 아이들이 원할 때여야 한다.
날 만나려고 기다리는 아이들에겐, 내가 가야만 한다.
“……제가 섣부르게 생각했네요.”
“인맥을 만들어주고 싶었겠지. 자네 말고도 고학력자 형 언니들을 만들어주고 싶었을 거야. 이해해. 친자식처럼 대해주고 싶은 건 이해하겠는데, 뭐든 떠먹여주려고 들지는 마. 필요로 하지 않는 호의란 진짜 부모만 줄 수 있는 거야.”
맞는 말이다.
나는 이곳 아이들의 부모가 아니고, 그들의 미래를 섣불리 재단해서 내 멋대로 호의를 베풀어선 안 된다.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약속한 대로 그들의 앞에 서주는 일.
“얘들아, 아저씨 왔다!”
“오, 꼰마!”
“꼰마 업!”
“하하. 현실에서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누가 보면 버릇없다고 한다. 자, 다들 편하게 앉아. 오늘도 신나게 떠들어보자.”
세 번째 집단상담의 날.
아이들은 이제 나를 동반자로 여기기 시작한 눈치였다.
욕심꾸러기 중3 유진호가 특히 그랬다.
“아저씨! 동수 입양된대요.”
“동수? 동수가 누구야?”
“나랑 친한 애요. 초딩인데요, 담주에 입양된대요.”
“그렇구나. 어떡하지? 진호 외로워지겠는데?”
“헤헤. 그래서 전번 갈켜줬어요.”
“전화번호 가르쳐줬어? 하하, 잘했어. 자주 통화해야지. 진호 네가 형이니까, 입양된 데서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게 이것저것 잘 설명을 해줘. 우리 진호는 모르는 게 없잖아?”
“아 글죠. 아저씨가 사람 보는 눈이 있네!”
영아원(1~6세 보호시설)처럼 빈번하진 않지만, 육아원(7~19세 보호시설)에서도 종종 입양되는 아이들이 나온다.
그 본인에게는 무척 기쁜 일.
하지만 주변 아이들에게는 박탈감이 주어질 법도 했다.
그게 남은 이들에게 부정적인 경험이 되지 않도록 지도해주는 건, 상담사의 중요한 업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심리를 분석하던 중이었다.
드물게도 딸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잠깐 양해를 구하고 복도로 나섰다.
“어, 지수야. 점심시간 됐어?”
[응. 근데 아빠, 나 민쭈 루머 하나 들었는데.]
“루머? 어떤 루머?”
[응…… 이거 아마 아닐 거 같은데, 전에 민쭈랑 고아원 친구였다고 판에 글 하나 올라온 거 있었대. 근데 금방 지워져서 아무도 안 믿었대. 아닌 거 같은데 혹시 궁금할까봐.]
“……하하. 그랬구나. 고맙다, 지수야.”
[응. 근데 아니겠지 그런 거?]
“아니겠지? 정말이었으면 감춰졌겠어?”
[헤헤. 맞네. 암튼 나 밥 먹으러 가.]
웃는 소리로 전화를 끊고 나서, 굳은 얼굴로 생각했다.
정황에 맞아떨어진다.
평상시의 이중적인 태도도, 가족을 언급하지 않는 철칙도, 이후 사회불안장애가 공황장애까지 발전한 것도, 레벨업을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닌다는 평소의 모습까지도, 애착의 상실로 비롯된 것이라고 하면 말이 됐다.
100의 ‘진단’이 무대 위의 아이돌과 루머 속의 인간 민성을 빠르게 매치시켜나간다.
이내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만큼이나 까다로운 문제라는 판단 역시도.
아동기 애착 문제가 성인기 정신병리로 발달했다고 하면, 그 근원은 너무나 무겁고 까다롭다.
라포 없이 단기간에 해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니, 애초에 해소가 가능할지도 확실치 않다.
만약 정말 그 케이스라고 한다면……
“아저씨. 안 들어와요?”
어느새 문을 열고 나온 이수아가, 내 옷깃을 쥐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불안을 심어줬던 모양이다.
“미안. 아저씨가 잠깐 고민에 빠져서 그랬어. 들어가자.”
“넹…… 근데요, 다른 아저씨들은요?”
“어? 하하. 그분들은 초등학생 동생들 봐주고 계셔. 왜? 아저씨 말고 다른 아저씨들 만나보고 싶었어?”
“아니요. 별론데요.”
“다들 좋은 사람들인데.”
“그게 아니라요. 아저씨가 좋은데요.”
“……어?”
“다른 아저씨들 말고…… 아저씨만 계속 와요.”
붙잡으면 오기 싫어지니, 다시 오라는 말도 안 했다던 수아.
그 아이가 옷깃을 꼭 쥔 채 그렇게 말하고 있다.
혹시라도 내가 멀어질까 두려워하고 있다.
서울대 교수보다도 나를 더 신뢰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용덕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 역시 이런 마음을 느껴본 게 아니었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