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17장 - 춤추는 상담사 (3)
딸애가 활기차게 친구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그 아이의 자리에 앉아 아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지수의 ‘짱친’이라는 수지는 쾌활한 수다쟁이였다.
“소희랑 저랑 지수랑 친했는데, 요즘 민지랑도 같이 놀아요. 민지 전에 잘 안 씻어가지고 냄새 났는데 요즘 잘 씻거든요. 셋이서 노는 거보다 넷이 노는 게 더 재밌는 거 같아요.”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술술 얘기해준다.
유명인이 된 친구 아빠한테 점수를 따겠다는 심산일까.
그 솔직함을 옆자리에서 듣는 민지 기분이 걱정이었는데, 악의가 없다는 걸 아는지 그저 수줍게 웃고만 있었다.
“지수가 심심해서 민지랑 놀았는데 재밌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걔 별로 아니냐고 냄새나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지수가 향수 사줬다 그랬어요.”
“그랬어?”
“네. 그리고 잘 씻고 다니라고 하니까 진짜 잘 씻더라고요. 지수가 리더십이 있거든요. 아빠 닮아서 이뻐가지고.”
“……하하. 고맙다. 날 닮은 건 아니고 엄마 닮은 거야.”
“긍가? 암튼 그래서 우리 넷이서 같이 놀아요. 또요? 또 궁금한 거 없어요?”
한편 자신이 지수의 진짜 단짝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소희의 경우에는, 태도가 조금 달랐다.
딸애로부터 최근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지수 저랑 절친인데 수지랑 민지랑 요즘 너무 놀아요.”
“아닌데? 나랑 짱친인데? 그지 민지?”
“어…… 헤헤.”
“하하. 그래도 소희 너 되게 좋아하는 것 같던데? 전에 하굣길에 아저씨 봤잖아? 그때 네 얘기 했었는데.”
“진짜요? 아저씨한테 제 얘기 했어요?”
“안 했는데! 아빠 루머 퍼뜨리지 마라.”
언제 다가왔는지 지수가 투덜거린다.
못 들은 척했다.
소희 역시 기분이 좋아져서는 하고 싶은 말만 해댔다.
“근데 지수는 옛날 말 너무 많이 써요.”
“옛날 말?”
“막 오나전(‘완전’의 오타) 이러고, 즐(작별인사) 이러고.”
“……요즘은 잘 안 쓰는 말이니?”
“안 쓰는데요? 아저씨가 알려준 거 아니에요?”
“아저씨는 유행어를 안 쓰는데…… 엄마한테 들었을까?”
돌아봤더니, 이번엔 딸이 못 들은 척 도망쳤다.
그 속마음을 얼추 알 것 같았다.
대화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어서 멀어진 공감대.
그걸 좁혀보고 싶은 마음에, 엄마에게 들은 옛날 유행어들을 머릿속에 담아둔 건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민지라는 아이는 소심한 성격이었다.
바꿔 말하면, 배려심이 많아서 말 한마디도 조심하는 아이.
아마도 그 때문에 학급 내에서 소외됐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 아이가 온순한 눈으로 날 흘끔 바라봤다.
“저…… 아저씨 방송 봤어요.”
“그랬어? 어땠어?”
“어…… 재밌었어요…….”
“민지 얘 완전 빠순이래요.”
“아, 아냐.”
“오늘 아저씨 온다 그래서 잠도 못 잤대요.”
“아닌데…….”
“하하. 고맙다, 민지야.”
민지는 더는 제3자의 염려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한참 더 조심스러운 성격 때문에 종종 힘든 일도 겪겠지만, 친구가 곁에 있다면 힘들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렇게 살아가니까.
인간은 완벽할 수 없으니까.
“지수가…… 아빠 자랑했어요.”
“정말? 뭐라고 말했는데?”
“아빠 잘생기고…… 착하고…… 엄마한테 잘한다고…….”
친구들 앞에서 날 자랑하는 딸의 얼굴을 상상해봤다.
그러다 정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2주 전까지만 해도 그 반대였을 텐데.
그 뒤로도 정말 부녀다운 활동은 해보지 못했는데.
첫 아이였다.
육아가 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모든 일들이 어색했고 하나하나가 다 후회였다.
네 살 이후로는 대화도 제대로 나눠보지 못했다.
그래서 원망 받아도 할 말 없는 못난 아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딸은 오히려 날 그리워하고 있었다.
오랜 단절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을 뿐, 행동으로 내게 다가오려고 하고 있었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학교에서 나오는 내내 마음이 푸근했다.
나는 가족들에게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었다.
NBSC를 통해 유명인이 되기 전부터.
그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후 판교로 가서 첫 PPL 계약의 도장을 찍고, VR 스튜디오를 돌며 다가올 시범 서비스의 구상을 전해 들었다.
그 내담자 목록에 흥미로운 인물이 하나 있었다.
뚱한 표정의 민원식에게 그에 대해 물어봤다.
“TOX의 민성…… 이 친구도 온다고요?”
“예. 픽스예요.”
“유명한 연예인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걔가 유명해요? 난 처음 들어봤는데.”
“애들 사이에선 핫한 아이돌입니다. 페이가 상당했을 텐데.”
“허. 뭘 그런 것까지 알고 살아요?”
“딸애가 좋아하는 그룹이에요.”
“거참. 공부할 나이에 아이돌은 무슨. 어쨌든 아이돌이라고 하면 애들 장사잖아요. 우리 타겟층은 아닌 거죠. 근데 이 친구는…… 아, 얘가 걔네. 아마 이용덕 씨 때문에 자원했을 겁니다. 그래서 페이 후려칠 수 있었던 거겠죠.”
“아. 이용덕 교수를 멘토로 생각한다는 그 아이돌이군요.”
“예. 방송에서 공황이라는 얘기도 하고 그랬다죠? 그러면서 자기 의사선생님 찬양하고 그랬었다는 것 같은데.”
공황장애(panic disorder).
국내에선 유명 개그맨이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유명해졌다.
그 덕분에 우울증보다도 대중의 인식이 넉넉한 편이다.
공황을 극복해 연예활동에 복귀한 케이스도 꽤 흔해, 환자들에겐 증세 호전의 희망봉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그로 인해 병증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희석됐다고도 할 수 있었다.
공황발작(panic attack)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다.
남들은 평생 한 번이나 경험할 만한 강렬하고 극심한 공포를 수시로 느끼게 되는 것.
일반인에겐 광장공포나 고소공포 등이, 연예인에겐 사회불안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TOX의 민성이 그 후자였다.
간략하게 기재된 증상에 따르면, 낯선 사람을 만날 때마다 심장이 격하게 뛰고 숨이 가빠지며 몸이 떨린다고.
대표적으로 방송 녹화 도중 화장실에 숨어 나오지 못했다는 사례가 적혀 있었다.
사회불안장애가 공황장애로 이어진 것이다.
공황장애는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심리에서 유래한 질환이지만, 그 발현은 신체적이며 실재적이다.
그것을 희화화해 연예인병 정도로 생각한다면 환자의 처지를 이해할 수 없다.
공황장애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공포만큼은 정말 죽음에 임박했을 때와 동일하기에.
그렇기에 거의 모든 공황장애 환자들이 약을 달고 산다.
발작의 빈도와 강도를 낮추기 위해서.
인지행동치료와 병행하면 점차 약 없이도 정상생활이 가능할 만큼 호전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심리적 의존성이 생겨 약 없이는 무엇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어려운 문제였다.
TOX의 민성이 그중 어떤 경우든, 풋내기 상담심리사가 치료하겠다고 나설 대상이 아니다.
리스크도 리스크지만 이용덕의 환자니까.
시범상담 중에 내가 어떤 영향을 끼치려고 든다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체면이 크게 깎일 터였다.
안목을 넓혀준 의사에게 그런 치욕을 겪게 하고 싶진 않다.
에픽퀘스트가 그를 쓰러뜨리라 종용한다 해도.
그가 내담자의 적이 아닌 이상, 공격하지 않는다.
그렇게 결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TOX는 딸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그룹인데.
그 멤버의 마음을 치료해준다면, 지수가 얼마나 행복해할까.
상담사로서 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서울로 돌아오는 도중.
이아리의 전화를 받았다.
[아저…… 삼촌!]
“그래, 아리야. 학교 마쳤어?”
[응! 지금 가방 싸고 있어요. 근데요…….]
그때부터 아리가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작지만 흥분된 목소리였다.
[저, 저, 친구가 집에 같이 가자고 했어요.]
“……그랬어? 그, 어느 친구?”
[서진이랑, 다희요. 오늘 삼촌 방송 같이 보자고 그랬어요. 근데, 근데, 학원 가야 된다고 하니까, 중간까지만 같이 가자고 했어요. 그래서요…… 그래서…… 어떡해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서운데…….]
“왜 무서워?”
[나…… 재미없으니까, 같이 가다가 싫어지면 어떡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그러나 있을 수 있는 반응이었다.
지속된 따돌림 속에서 사람은 스스로를 불신하게 된다.
그 낮아진 사회적 유능감이, 우울증에 선행하는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것이다.
드러난 단서 없이도 미움 받을 거라고 단정 짓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진짜 자신을 알게 해줘야 한다.
스스로가 어떤 면에서 가치 있는 사람인지를.
모두가 갖고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간으로서의 유능함을, 단호하고 분명하게 언급해줘야 한다.
그로써 자기유능감이 향상됐을 때 비로소 형체 없는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아리야. 삼촌한테 중학교 1학년 딸이 있어.”
[알아요! 엄청 예쁜 애! 인스타에서 봤어요!]
“……그래? 어떻게?”
[그게요, 해시태그 하고 꼰마 검색하면 나오던데요…….]
“아, 그러네. 나하고 찍은 사진 올렸었지. 아무튼 그래서 삼촌 딸한테 아리를 소개해주고 싶었어. 왜 그랬게?”
[……왜요?]
“내 딸한테 이런 언니가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너처럼 마음이 따뜻한 아이는 처음 봤어. 나쁜 생각까지 할 정도로 못되게 굴었던 아이들을, 미워하지 않았잖아. 계속 슬펐다는 말만 했지, 미웠다는 말은 한 번도 안 했잖아. 엄마아빠한테 미안하다고 했잖아. 선생님한테 죄송하다고 했잖아. 널 둘러싼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잖아.”
머리를 콩콩 때리며, 아리는 스스로를 비난했다.
가족도 담임도 방관자들도 욕하지 않았다.
심지어 원조교제 루머를 퍼뜨린 주동자들에 대해서도, 원색적인 욕을 입에 담지 않았다.
내게 용서하겠다고 말하기 전에, 이 아이는 이미 모든 원망을 버리고 있었다.
그랬기에 문제의 근원인 스스로를 해치려 들었던 것이다.
얼마나 갸륵하고, 얼마나 어리석은지.
손해만 보며 살 그 마음을 바꾸고 싶진 않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해주고 싶을 뿐.
이 착해빠진 호구가 살기 좋은 세상을 꿈꿀 뿐.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아리 너는 모르지? 본인은 몰라. 당연한 일이니까. 그게 절대 당연하지 않은 대단한 일이라는 걸 자기만 모르고 있는 거야. 그래서 아리가 좋은 거야. 단지 따돌림 피해자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존경스럽고 멋진 사람이라서.”
[진……짜요?]
“그래. 서진이랑 다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아? 자기들이 너한테 투명인간 시켰던 거 기억하고 있을 텐데. 그래서 집에 같이 가자고 하면서도 침 꼴깍 삼키고 있었을걸? 아리야. 오해하지 마. 기회는 네가 준 거야. 아리처럼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줬으니까, 잡는 건 걔들 몫이야.”
아리가 내 말뜻을 확실히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순진한 아이는 그저 진리처럼 받아들였고, 웃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마주하기 위해 전화를 끊었다.
사실은, 시작점은 모두 이렇게 단순할 것이다.
타인의 가면 아래에 대한 불안.
그 불확실성에 대한 의심에서 대부분의 불안장애가 생겨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였다.
불안장애의 일종인 공황장애 역시, 어린 시절의 이별 등 심리적 충격과 연결된 이슈가 발작의 요인으로 지목되곤 한다.
연예인들이 그에 취약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들 스스로가 겉과 속을 분리해야 하는 방송인이기에.
부처 눈에 부처만 보인다는 말처럼, 본능적으로 자기 외의 사람들도 연기를 하고 있을 거라는 인지도식을 품게 된다.
그것이 특정한 계기로 촉발되었을 때 공황발작이 발생한다.
그때는 문제가 두 가지로 분화된다.
기저의 불안에, 발작에 대한 두려움이 더해지는 것.
다음 발작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 더욱 웅크리게 된다.
그렇기에 의사들은 발작을 완화시키는 약물을 처방하고, 임상심리사들은 발작해도 안 죽는다, 10분만 참으면 된다, 그런 논지의 인지행동치료를 수행한다고 했다.
하지만…… 꼭 그렇게 접근해야만 하는 문제일까.
NBSC라면 그와 다른 무언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약이나 인지행동치료가 아니라, 내담자 스스로도 모르는 불안의 근원을 끄집어내, 공포 자체를 없애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허황된 생각이 들었다.
*
금요일 방송으로 오랜만에 1만 2천 명의 시청자를 달성하고, 토요일 낮 방송으로 그보다 적은 9천 8백 명을 만나고.
콘서트장에 가기 위해 딸애의 학원으로 향했다.
그때 VR 상담의 첫 번째 내담자를 말해줬다.
지수의 눈이 별처럼 커졌다.
“진짜? 진짜야? 민쭈가 거기 나와?”
“어…… 민주?”
“아니이, 민쭈! 민성 쭈구리 민쭈!”
“이런. 사람을 그렇게 부르면 안 돼, 지수야.”
“아니 아니, 별명이거든? 멤버들이 부르는 별명. 근데 진짜냐구. 진짜로 아빠랑 민쭈랑 상담하는 거야?”
“나 혼자서 하는 게 아니야. 의사 선생님이랑 임상심리사랑 같이 셋이서 만나는 거야. 싸인은 받아줄 수 있을 거야.”
“싸인 말구 나 거기 가면 안 돼? 가서 사진 찍으면 안 돼?”
“불가능하진 않지만…… 지수야. 그 민성이란 친구가 공황장애가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알아!”
“그게 뭔지도 알아?”
“어…… 사람 많은 데 가면 쫄리는 거? 그래서 음방(음악방송)이랑 콘서트 할 때 약 먹고 한다고 그랬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피상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을 터였다.
무대에 올라 팬들 앞에 서는 게 일인 아이돌이, 그 팬들에게 자신의 모든 증상을 말해줄 수는 없었을 테니.
그래서야 팬들까지도 불안의 대상일 수 있음을 고백하는 꼴이 될 터였다.
“……그런 거야. 아직 얼굴 모르는 네가 무서울 수도 있어.”
“나 얼굴 아는데? 팬싸 한번 붙었는데.”
“그랬어?”
“응. 근데…… 나 기억 못 할 거야. 그냥 싸인만 받아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자신의 욕망을 꺾는다.
내 딸은 그런 아이였다.
아빠와 뛰어놀고 싶을 나이에 별거 같은 관계가 됐음에도, 나라는 가족을 바운더리 밖으로 밀어내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그 사랑을 돌려줄 차례였다.
“옷, 잘 어울린다. 우리 지수 진짜 예쁘네?”
“헤헤. 진짜? 나 이뻐? 웹툰 언니보다 더?”
“어…… 물론이지.”
“방금 고민했지? 오나전 어이없고요.”
투덜대는 딸과 웃는 나는, 같은 후드티를 입고 있다.
그래서인지 차에서 내리자마자 꽤 시선을 모았다.
개중 세 명이 날 알아보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급히 딸을 가렸는데, 지수는 오히려 날 밀며 V를 그렸다.
“아빠, V 해야지.”
“……지수야. 이렇게 얼굴 알리면 나중에 불편할 수 있어.”
“왜? 나도 인플루언서 할 거야.”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위험해. 방송 봤잖아? 도세나 언니처럼 악플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고, 너는 모르는 사람들이 널 알아보는 일 때문에 사회…… 대인기피증이 올 수도 있어.”
“아닌데? 괜찮은데?”
“지수야. 지금 괜찮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럼 아빠가 고쳐주면 되잖아.”
“……어?”
“나 아프면 아빠가 고쳐주면 되잖아. 암튼 V해, V!”
얼떨떨하게 딸의 포즈를 따라하며, 생각했다.
가족에게도 밝히기 힘든 것이 정신질환이라고 했는데.
내 딸은, 내가 있어서 두려울 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저 저, 꼰마님 구독하고 있는데! 따님이에요?”
“아…… 예. 제 딸입니다.”
“예뻐요!”
“헤헤. 고맙습니다.”
“옷 완전 잘 어울려요!”
“둘이 닮았어요!”
“어디 거예요? 엘피? 와, 이쁘다.”
“콘서트 보러 가시는 거예요?”
“진짜? TOX 팬이에요?”
“히히. 제가 팬인데요, 아빠랑 같이 왔어요.”
“와…… 부럽다. 신세대 아빠 둬서 좋겠네?”
“쫌? 아빠 아빠, 싸인 해드려. 저희 아빠 싸인 받아요.”
생면부지의 구독자들에게 싸인을 해주며 생각했다.
만약에 기분으로만 춤을 출 수 있다면.
나는 꽤 대단한 댄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만큼은, 콘서트를 준비 중일 TOX보다도 더 멋진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