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17장 - 춤추는 상담사 (2)
방송이 끝나고 스마트폰을 확인해보니, 동생에게서 문자 하나가 와 있었다.
「박중민 : 오늘도 방송 잘봤어. 괜히 아부지 생각나네. 내일 한번 가봐야겠다. 형은 바쁘지?」
「어.. 딸애 학교에 가보기로 했어. 조심히 다녀와.」
「박중민 : 어. 요새 채팅창 좀 복잡하던데 잘 정리하길 바랄게. 파이팅.」
아마도 할머니 이야기를 꺼낸 은진러뷰 때문이겠지.
우리의 선친은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당신 치매 걸리면 요양원에만 넣어주고 찾아오지 말라고.
늘 짐이었던 아비한테 괜한 시간 쏟지 말고 너희들 앞길 잘 찾아가라고.
짐까지는 아니었다.
밭농사 작게 지으시던 분들이라 작황이 좋은 해에도 큰 수익을 내진 못하셨지만, 어쨌든 배 곯리며 키우진 않으셨으니.
동생에게 하는 말은 아니고 내게 하신 말씀이었으리라.
대학 장학금 받은 걸로도 모자라 숙식 가정교사까지 했다.
그렇게 번 돈의 반 이상을 집으로 보냈다.
그랬기에 동생이 시내의 미술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내 희생 덕분에 시골집과 밭뙈기가 재산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건데, 이미 그 무렵에 유산마저 동생에게 다 물려주리라고 유서를 써놓으셨던 것이다.
미안하셨겠지.
하지만 아버지 본인이 옛 시절의 장남이셨다.
형제간의 형편을 맞추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믿는.
자기가 그랬듯 나 역시 희생해야 한다고 믿으셨을 것이고, 그렇기에 미안하다는 말 대신 간병하지 말라는 얘기로 마음을 표현하셨던 것 같다.
당시에는 많이 서운하고 원망스러웠다.
그놈의 유산 반 갈라서 준다고 한들, 아예 나한테 전부 다 줬다고 한들, 설마 내가 친동생을 안 챙겼겠는가.
유산을 못 받았다는 것보다 그 불신에 분통이 터졌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마음이 이해된다.
대학까지 졸업하고도 먹고 살기 쉽지 않은 예술가의 길.
그대로 뒀다간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걱정이셨으리라.
그런데 장남인 나는 사돈댁에서 거의 도둑놈 취급을 당하고 있었으니, 친동생 결혼자금까지 보태주려 하다가는 집안 사이의 싸움이 될 수도 있으리라 짐작하셨을 것이고.
‘진단’이 극에 달한 지금의 판단이다.
이전에는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럴 만한 단서가 부족했던 것이다.
대화를 나누지 않는 무뚝뚝한 부자였으니까.
우리는 언제나 각자 판단하고 그저 통보했다.
두 분의 죽음을 경찰 통보로 알게 됐던 것처럼…….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다 문득, 지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그 아이에게 어떤 아비였을까.
용돈으로는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지원해주고 있지만, 대화라는 측면에서는 내 아버지와 얼마만큼 달랐을까.
2010년도에 부장을 달고, 그 책임감으로 가족까지 도외시한 나는, 고작 네 살이었던 딸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그런 생각 중에, 진대수가 원룸으로 돌아왔다.
“형님 형님! 데스 이즈 백!”
“어, 그래. 무슨 통화를 그렇게 비밀스레 했어?”
“무슨 통화는요, 방송 내용이죠. 모레 탐방 하나 올 거예요.”
“벌써? 빠르기도 해라.”
“하핫. 자연스럽게 합방 약속까지 갈 겁니다. 모레 7시에 켜서 8시에 조인하는 걸로 하면 되겠죠?”
그 말에 아차 했다.
대수에게 미리 말해주지 못한 변동사항이 있었다.
“대수야, 미안하다. 토요일에는 내가 저녁에 일이 있어. 그래서 앞당겨서 낮에 방송하려고 해.”
“엥? 갑자기 무슨 일요?”
“딸애가 콘서트에 가거든. 같이 가주기로 했어.”
“오…… 글쿠만. 탐방 카드를 낮에 쓰긴 좀 아까우니까, 그럼 일요일로 미루든가 하죠. 아무튼 그건 그렇고…… 오늘도 고생하셨슴다. 정리하기 전에 일단 옷부터 보실래요?”
“그래. 엘피라고 그랬지?”
“옙. 보니까 박시한 후드티도 있고 가디건도 있던데. 여름 시즌 되면 또 얇은 걸로 신상 보내줄 거예요. 가져가서 한번 입어보시고 어떤가 체크해보세요.”
꼰대마스터 이미지와 크게 동떨어지지 않은 모노톤 의상.
그걸 하나씩 챙겨서 집으로 들고 왔다.
아내가 또 현관까지 나와서 내 귀가를 반겼다.
“왔어? 그건 뭐야?”
“PPL이야. 이걸 입고 방송하고, 홍보용 영상을 하나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주는 거야.”
“흠…… 예쁘네. 한번 입어볼래?”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때쯤엔 지수도 거실에 와 있었다.
아내와 딸이 후드티를 걸친 나를 바라본다.
“올! 아빠 잘 어울려! 괜찮은데?”
“……청춘이다 진짜.”
아내는 내가 점점 젊어지는 데에 심사가 묘해진 듯했다.
딸애만이 신이 나서 내 주변을 돌아다녔다.
“아빠 아빠, 이거 내일 입어라.”
“어, 친구들 보는 자린데 정장이 낫지 않을까?”
“난 이거 좋은데? 이쁜데? 이게 더 좋아.”
수트핏이 좋다는 말은 가끔 들었다.
하지만 오버핏 후드티가 예쁘게 어울린다는 얘긴 처음.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불가항력으로 올리게 된 ‘외모’지만, 딸애의 자랑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보람찬 일이었다.
“지수야. 이거, 작은 사이즈도 달라고 할까?”
“어? 내 거? 내 것도 준대?”
“여성용 작은 사이즈 있는지 물어볼게. 너무 클 수도 있어.”
“나 오버핏 좋아! 나도 입을래!”
“알았어. 그럼 당신도……?”
“뭐야. 가족티야? 그러든가.”
아내는 침대에 누울 때까지도 마음을 잘 추스르지 못했다.
그리고 이불 속에서 내 오른손을 꼭 쥐었다.
“당신…… 진짜 바람피우면 안 돼?”
“하하. 그럴 사람 아니란 거 알잖아?”
“그거 아니까, 몇날며칠 집에 안 들어와도 믿었던 거야. 그래도 지금은 좀 불안해. 너무 유명해지지 마. 응?”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내가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으리라.
단순히 ‘외모’ 때문이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미녀 웹툰 작가를 상담하거나,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신과 의사와 토론을 펼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기 시작했으니.
미리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얘기해야 할 때였다.
“주희야. 나, 앞으로 더 유명해질 거야. 상담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만한 사람이 될 거야.”
“좀…… 거짓말로라도 안 하겠다고 해주면 안 돼?”
선의의 거짓말은 분명 유용한 것.
그렇지만 가족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내 길을 진주희에게 이해받아야만 한다.
“그렇게 하고 싶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전문가도 아닌 나 같은 사람한테도 손을 내밀 정도로, 지푸라기 하나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더라.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만들고 싶어. 더 유명해지고 더 멋있어지고 싶어.”
“……아, 네. 그러고 싶으시면 하셔야죠.”
또 통보하듯이 말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샐쭉해진 아내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렇지만 예전과는 달라질게. 일에 매몰돼서 당신이랑 지수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관심도 없던 그런 사람 안 될게. 제일 중요한 건 가족. 일은…… 내담자들은, 그 다음.”
“진짜야?”
“진짜. 그 기준만큼은 꼭 지킬게.”
“그럼…… 됐어. 그것만 지켜주면 돼.”
“예, 이사장님. 분부 받잡겠습니다.”
“……뭐야. 참나. 음…… 팔베개 해줄 거야?”
“어? 어, 해줄게.”
아내는 내 팔을 베고 손을 꼼지락거렸다.
마흔이 됐지만, 이럴 땐 여전히 소녀였다.
마흔일곱의 내가 소년 같은 꿈을 꾸는 것처럼.
가족이기에 그 여린 마음마저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함께 나아가야 한다.
단지 가족이기에 연민하거나 가족이라서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함께 소통하며 나아가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내 근원이니까.
박대민이 상담사로서 나아가게 해준 힘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수를 생각했다.
강한 척하지만 마음은 여린 아이.
그 아이와 그 아이의 반에 있다는 ‘찐따’를 떠올렸다.
*
내가 어렸던 시절에, 피자는 외식용의 고급 음식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거기에 두 부류가 생겼다.
저렴하고 양 많은 피자와, 비싸고 양 적은 피자.
그중 후자의 가게로 가서 라지 사이즈로 20판을 샀다.
“어디 학원 선생님이신가? 이렇게 많이 사시고.”
“아뇨, 딸애 학교에 가져가는 겁니다.”
“아이고, 따님이 학생이에요? 일찍 낳으셨나보네. 우리 애는 이제 유치원 들어갔는데.”
나보다 한참 어린 점주의 말에 그저 웃어 보였다.
그나 나나 아이 낳은 나이는 비슷할 것 같다.
하지만 굳이 그 점을 지적해서 무안함을 주긴 싫었다.
차에 피자를 싣고 용원중학교로 향하며, 나는 더없이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지수에게 해줄 말들.
지수의 클래스메이트들에게 해줄 말들.
그리고 따돌림을 당한다는 아이에게 해줄 말들.
학부모가 교실 내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처음 딸이 ‘찐따’를 입에 담았을 때는 의욕만 앞서서 내가 다 해결해주겠노라 말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성급한 발언이었는지를.
피자 사온 학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은 한정돼 있다.
퀄리티 높은 식사로 마음에 작은 여유를 안겨주고 나서, 내 경험담을 빙자해 넌지시 친구와 삶에 대해 떠들 뿐.
그 이후 교실을 바꿔나가는 건 아이들 스스로의 역할이다.
즉, 내 딸아이의 역할이었다.
딸에게 영웅이 되도록 강요하고 싶진 않았다.
그 마음은 지금도 동일하다.
하지만 그렇게 내 아이만 싸고도는 아버지인 채로는, 고통 받는 아이들 앞에서 하는 말들이 얼마나 공허하겠는가.
그리고 방송을 보는 내 딸은 얼마나 혼란스럽겠는가.
이아리를 바꾸려 하기 전에, 도세나의 세상을 바꾸겠다 장담하기 전에, 가장 먼저 마주했어야 했던 문제.
나는 그 어린 악의의 공간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어머…… 안녕하세요! 지수 아버님 맞으시죠?”
“예, 선생님. 지수 담임선생님 되십니까?”
“네, 저예요. 어머…… 실물이 더 멋있으세요. 아, 저 지수가 진로탐색 발표할 때 영상 봤거든요. 연예인 닮으신 것 같아.”
“그렇기야 하려고요.”
“정말로요. 배우였는데…… 누구더라? 엄청 잘나가는 배우 있는데. 상무님 이런 역할로 자주 나오는…….”
애청자들에게 자주 들어서 누군지 알 것 같다.
2000년대에 청춘스타로 활약했으며 지금도 미남스타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배우 이서준.
단순히 잘생겼다기보다는 신뢰를 주는 외모다.
그리고 꼭 외모가 닮았기보다는, 최근 작품에서 그가 한 스타일링과 대수의 꼰대마스터 스타일링이 비슷한 게 컸다.
“수업 방금 막 끝났어요. 전에 말씀드렸던 거지만, 애들 피자 먹는 동안 살아가는 얘기 같은 거 좀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회사원으로 일하셨고 지금은 방송도 하고 계시니까, 여러 관점에서요. 애들도 궁금한 게 참 많을 거거든요.”
“감사합니다. 이건 선생님들도 드시도록 넉넉히 샀습니다. 열 판은 여기 둘게요.”
“하하. 고맙습니다, 아버님. 이제 가시죠.”
복합적인 긴장 속에서 교실을 향해 간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딸애의 친구들과 마주한다는 설렘도 있지만, 거기서 악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면서 딸애가 리스크 없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복도에선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종종 나를 알아봤다.
그 비율이 높은 건 지수의 학교인 까닭이겠지.
한 명 한 명 눈인사를 해주며 1학년 3반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연예인처럼 환영받았다.
“우와!”
“꼰마다!”
“꼰마아아!”
“야! 니 친구냐? 우리 아빠거든?”
“꼰마 아저씨!”
활기찬 학급이다.
일부 과한 아이들이 있지만, 딸애의 외침에 얌전해졌다.
집에서와는 다르게 학급을 꽉 잡고 있는 듯했다.
그 점은 무척이나 반가운 부분이었는데……
이상하지.
높아진 ‘진단’을 최대한 발휘해 살펴봐도, 누군가 소외된 아이가 눈에 띄지 않았다.
스무 명 남짓의 학생들이 저마다 서너 명씩 그룹을 이뤄 활기차게 떠들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요!”
“꼰마 업!”
“어허! 너희, 친구 아버님한테 그러면 돼 안 돼?”
“괜찮습니다. 선생님도 이제 가서 식사하시죠. 제가 애들이랑 잠깐 이야기 나누고 있겠습니다.”
“네…… 혹시 문제 생기면 바로 전화 주세요.”
담임을 돌려보내고 다시 둘러봐도 ‘찐따’는 보이지 않았다.
결석을 한 걸까?
어쩌면 그 사이에 전학을 가버린 걸까?
“자…… 얘들아, 반가워. 아저씨가 지수 아빠야. 너희들한테는 꼰마라고 잘 알려져 있는 것 같네?”
“꼰마 업!”
“하하. 자, 편하게 먹어. 먹으면서 심심하지 말라고 아저씨가 이야기보따리를 준비해왔어. 한번 들어볼래?”
“하핫!”
“이야기보따리, 할아버지 같애요.”
“에잉…… 이제 이 할애비가 옛날 얘기를 해줄게요.”
한효준의 목소리를 흉내 내서 장난스레 말을 시작한다.
친구들과 피자 먹으며 시끄럽게 굴 법도 하련만, 83으로 올린 ‘화술’ 덕에 몰입도는 결코 낮지 않았다.
“옛날 옛적에 아저씨가 학생이었을 적에, 아저씨는 친구가 참 많았어요. 그때는 학교에도 친구가 있고 동네에도 친구가 있고 그랬거든. 너희는 요즘 아파트 같은 라인에 또래가 살아도 인사 안 하고 지낸다며? 얼마나 심심할꼬.”
“푸하핫!”
“아닌데요! 폰에 친구 개많은데.”
“SNS 친구도 있고 겜 친구도 있어요.”
“그건 얼굴도 모르는 애들이잖아? 길 가다 봐도 알기나 알겠어? 엇, 지존잘님! 어라, 힐러짱님? 이럴 수도 없잖아?”
“우흐흑!”
“아! 성태 먹다 뿜었어요!”
“으헤…… 웃겨가지고. 힐러짱이 뭐예요! 그런 거 안 써요.”
아이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부분에서 적절하게 공감과 세대차를 섞어준다.
가르치려 드는 의도가 없다면, 옛날얘기는 꽤 재밌다.
할머니 무릎 베고 듣는 얘기가 즐거운 건 세대를 막론한 경험인 것.
그 안에 티 나지 않을 만큼만 교훈을 섞는 것이다.
아이들의 예민한 눈치로도 모를 만큼만.
친구들과의 행복한 경험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는지, 작은 악연이 얼마나 무거운 후회가 되는지 이야기한다.
이후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문득 떠올릴 수 있게끔.
그렇지만 20분 넘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보지 못했다.
적어도 이 학급 안에는 따돌림이 실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조금 소심하게 참여하는 아이가 딸애 옆자리의 민지라는 아이였는데, 그것도 따돌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급의 중심인 지수가 곁에서 어울려주고 있었기에……
어.
그 얘기는 혹시……?
혼란 속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딸애를 불렀다.
고구마 피자를 손에 쥔 채로 뛰어와서 내 무릎에 앉더라.
네 살 아기였을 때처럼.
거리낌도 없다는 듯 날 올려다보며 실실 웃는다.
“왜? 나 뭐?”
“지수야. 혹시 옆자리 친구 말이야. 그 애가……?”
“헤헤.”
“지수 네가, 친구 해준 거야?”
“어. 잘했지?”
별 생각 없이 뻐기는 것처럼, 아이답게 웃는 얼굴.
내가 걱정했던 따돌림의 전이 같은 것 없이, 혼자 힘으로 모든 문제를 다 잘 해결했다며 자랑하는 얼굴.
그러나 나는 그 안에서 깊은 마음을 봤다.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은 아이의 진심을.
그 순간, 나는 내 아버지를 떠올렸다.
중학생 시절의 박대민이 그렇게 물었었다.
아빠, 나 친구 왕따 당하는 거 도와줬어요.
그때 내 세상의 중심이었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누구 아들인데.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몇 년 동안 연락도 없던 삼촌이 사업 실패했다며 뒤통수 긁적이며 찾아왔을 때, 하나뿐인 소를 팔아 자금을 마련해준.
그게 너무도 당연하다고 믿던 옛날 아빠였다.
나와는 전혀 달라 원망도 많이 했던 참 답답한 어르신에게, 나는 왜 그 이야기를 꺼냈던 걸까.
지금 내 딸아이에게서 그 시절의 내가 보인다.
딸과는 진지한 이야기 한 번 해본 적 없으면서, 남의 집 애는 상담소까지 데려갔다는 아빠를 바라보는 눈.
안 닮은 듯 참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와, 나와, 내 딸아이가.
“잘했다. 절대로 당연한 일이 아닌데, 정말 잘했어. 혼자 고민하게 해서 미안해. 어렵진 않았어? 힘든 일은 없었어?”
“……아 짜증나. 저쪽 봐. 아빠 잘 운다고 애들이 놀린다고.”
“아빠 안 울었는데?”
“울 것 같잖아. 짜증나. 이거 먹고 뚝 그쳐.”
제 엄마 같은 소리를 하고 후다닥 달아나더라.
그 뒷모습마저 나를 닮아 있었다.
딸애 말처럼 울 것 같은 기분은 안 들었다.
그저, 신나게 춤을 추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