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42화 (42/200)

# 42

16장 - 복수의 용서 (1)

“역시, 훌륭하신 분이야. 들으셨지요? 한효준 교수님께 참 잘 배운 모양이에요. 그렇지요. 어제 그 사람이 1년 전? 아무튼 중등도 우울증 진단을 받은 적이 있는 건 맞지만, 내원을 끊은 지 꽤 됐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재진료가 이뤄져야 하는 게 맞지요. 환자라고 부르는 건 옳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거야 원, 내가 한 방 먹었네요. 하하하.”

대단한 위인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이렇게까지 공개적으로 저격을 당한 직후에, 빙긋 웃으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무튼 그 상담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 어휘를 바로잡았으니 이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대체 왜 그 ‘내담자’에게 세상을 바꿔주겠다고 말한 거지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나라면 이용덕처럼 대응하지는 못했으리라.

애초에 이렇게 대척점의 인물을 강단 위로 끌어들이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건 분명 학자로서 훌륭한 태도에 해당했다.

다만, 의도가 고약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고압적이고 고집에 차 있다.

그저 입장이 불리해 물러섰을 뿐, 내가 어떤 약점만 보이면 곧바로 진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정신의학계의 거인이 전차가 되어 나를 노리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라는 사람이.

고통 받는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애써야 할 사람이.

대체 어째서, 그 훌륭한 학식과 언변을 자신을 드높이기 위해서 사용한단 말인가.

한효준의 염려는 고마운 것이며, 그 지시는 합리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저 가면을 벗기고 싶다.

이용덕이라는 전차를 향해 한 발 더 걸어가고 싶었다.

이미 몇몇 청강생들이 카메라를 켜들고 있다.

눈에 안 띄게 이리저리 숨기고 있지만 티가 난다.

그들이 찍은 영상이 목격담처럼 곳곳에 떠돌게 되겠지.

오늘 이용덕과 나눈 대화가 그와 나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의 환자들과 내 내담자들에게도.

내가 바꿔나가야 할 이 사회에도.

거기까지 생각한 뒤, NBSC를 바라봤다.

도세나의 상담을 통해 무려 10exp가 쌓였다.

히든퀘스트의 보상을 조정하기 위해 급하게 레벨업을 했지만, 아직도 한 번의 레벨업이 더 가능하다.

원래는 ‘관계’부터 100으로 만들 요량이었지만……

당장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겼다.

이용덕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지금껏 가져본 적 없는 수준의 ‘화술’이 필요했다.

「 성명 : 박대민 / 성별 : 남 / 연령 : 47

직업 : 상담사 Lv.9 (7/10)

관계 : 92 / 진단 : 100 / 화술 : 83 / 외모 : 72 」

그걸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용덕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소리가 되었다.

“우울증은 감기가 아니라고 하셨지요? 저도 교수님과 마찬가지로 생각합니다. 다만 무언가가 어긋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가 우울감을 경험합니다.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 그 감정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습니다. 질환이라고 말한다면, 우리 모두가 우울증 위험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하. 재밌는 얘기긴 한데, 비전공자로서 하시는 얘기지. 우울증은 유전적인 요인과 생화학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병이에요. 모두가 위험군이기야 하려고.”

“알고 있습니다. 일란성 쌍둥이가 우울증에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것도, 우울증 상태에서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에 이상이 발견된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 구체적인 원인은 의학계에서도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유전적 요인이란 그저 경향성에 불과합니다. 남들보다 쉽게 우울감을 느낄 뿐이지 그들 모두가 우울증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호르몬 역시 선후가 불명확해, 우울감이 강화됐기에 신체리듬이 무너졌다고 말할 수도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용덕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은 어떤 의사도 대답할 수 없는 난제다.

표면적으로야 그저 들어주겠다는 태도지만, 그 내면에는 당혹감이 엿보였다.

드높아진 ‘화술’이 전차의 철갑을 가르고 있었다.

“즉, 우리 모두가 우울증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그들의 입장에 다른 누가 서게 됐을 때, 증상이 발현하지 않을 확률은 몇 퍼센트나 될까? 사람마다 대처방법이 다르기에 전원은 아닐 수 있겠지요. 그러나 반수 이상은 같은 증상을 보이지 않겠습니까? 상대적으로 취약해서 환자가 된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건 병의 발현이 아닙니다. 범죄입니다.”

“아하. 범죄라고.”

“그렇습니다. 머리에 대고 방망이를 휘두르면 누구나 쓰러집니다. 일부 튼튼한 사람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망이를 휘두른 일이 정당해집니까? 일어서지 못한 이들을 사회에 적합지 않다고 단정 지어도 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힘을 합쳐 가해자의 방망이를 빼앗아야 합니다. 환자라고 불려야 할 것은 우울증을 겪는 이들이 아닙니다. 저는 그들을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누구나 쉽게 악플을 쓰는 이 세상을 바꿔주겠다고.”

객석이 일순 적막해졌다.

대부분이 처음 듣는 이야기겠지.

카메라를 켠 일부 학부생들만이 웃고 있다.

아마 다섯 명 정도가 내 방송의 애청자들인 듯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수와 무관하게 분위기가 내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83의 ‘화술’이 적절한 논거와 함께 극대화됐다.

스스로나 주변에서 우울증을 경험해봤기에 공개 강연까지 찾아왔을 청강생들은, 내 거시적인 관점에 금세 빠져들었다.

선한 마음의 연대가 장내에 번지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확신을 갖고 이용덕을 내려다봤다.

그런데, 이상하지.

그는 더 이상 당혹감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뜬 채 웃었다.

“그래서, 상담사의 윤리강령까지 위배하면서 환자와 친밀관계를 만드셨다?”

……고작 그런 말로 극복될 분위기가 아님을 알 텐데.

이용덕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것일까.

“친밀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인지도식을 뒤바꿔 내담자가 부정 편향에서 빠져나오길 바랐습니다. 그 목적성은 다중관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요? 인지도식을 뒤바꿨다…… 달콤한 말이야. 그렇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지. 이래서 비전문가들이란.”

상담심리사 전체를 비난하는 말은 아니다.

나는 아직 자격증도 취득하지 못한 비전문가가 맞으니.

그 적절한 선 위에서, 전차의 포신이 드러났다.

“브레넌 교수가 최근에 발표한 논문을 읽어보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네? 박대민 씨는 읽어봤지요? 심리학도잖아요.”

현대 심리학의 거두 브레넌을 언급한다.

아직 교재만 공부하고 있는 내 입장에선 알 수 없는 영역.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하긴, 방송하느라 바쁘신 분이니까.”

그 한마디에 내 입지가 추락하고 말았다.

방송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이용덕 역시 마찬가지.

심지어 그는 외래 진료와 정신질환 클리닉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정신건강의학과 교실을 지휘하는 주임교수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언급한 논문을, 나는 초록조차 보지 못했다.

“초록 수준에서 간단하게만 설명을 해줄게요. 불평 행위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고 육체적 상태를 개선시킨다. 그것이 부당하든 정당하든, 세상에 참여하고 있다는 안정감으로써 자아효능감과 자아존중감을 끌어올린다. 아마 여기까지는 알고 있겠지요? 결론은 이겁니다. Z세대는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의 90% 이상을 웹상에서 해소하며 현실의 자존감을 지켜내고 있다……. 그 현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권위자의 논문이다.

그것도 정신의학계가 아닌 심리학계의 석학이 연구한 결과.

이걸 부정한다는 건, 내 전문성을 부정하는 일과 같았다.

심지어 이용덕은 쉬지도 않고 다음 논지를 몰아쳤다.

“악플이 난무하는 세상을 바꿔주겠다! 말은 좋아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된다고 쳐도 문제 아닌가? 고도화된 사회에서 무수히 경험하는 스트레스를 웹상에서나마 풀 수 없다면, 그 문제행동이 어디로 향할까요? 폭력들이 고스란히 현실세계로 옮겨지지나 않을까? 그때는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들은 나설 이유도 없어지는 거지. 전부 경찰 관할이 될 테니까. 악플을 쓰는 손가락이 아니라 그 사람을 봐야지요. 그게 상담의 기본 아니겠어요? 그런데 뭐? 방망이? 철없는 소리지. 이 사회에는 방망이를 쥔 개인 따위 없어요. 비처럼 쏟아지는 방망이들이 있고, 그걸 이리저리 쳐내는 군상들이 있을 뿐.”

방망이를 쳐내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파편에 맞아 다친 도세나를 연민했지만……

나는 진짜 가해자를 알고 있었던가.

“그러니까 공허하다는 거야. 어제의 ‘내담자’가 부정 편향에서 빠져나오게 도왔다고 했지요? 정말 그래요? 그저 악플러들을 악마로 몰아가게끔 도왔을 뿐인 건 아니고? 악플러들 입장에선 어땠을까? 자기들을 바뀌어야 할 세상 중 하나로 뭉뚱그리는 대민 씨랑 ‘내담자’의 대화를 보면서, 스트레스가 더 쌓이지나 않았을까? 그걸 또 어디 가서 폭력적인 악플로 풀고 있지는 않을까? 대민 씨 방송 때문에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거기까진 생각 못 했어요?”

맹점이었다.

악플 피해자의 우울증에 매몰되어 악플러들의 심리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악플이라는 범죄를 처리하는 일은 경찰의 의무.

상담사는, 그 행위가 아닌 근원을 바라봐야 한다.

이러니…… NBSC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거지.

손잡이를 쥔 내가 이 모양이다.

‘진단’이 100이 됐다 한들, 어딜 진단해야 될지 모르는 채로는 이렇게 실수를 반복하리라.

부족한 상담사로서 이용덕에게 뭐라 답할 말이 없었다.

복잡한 생각 속에 이를 악물던 순간이었다.

맨 앞 열의 학부생 하나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 교수님? 죄송한데요…….”

“예. 말해봐요, 학생.”

“저는 공감했는데요.”

“뭐라고요?”

“어제 그…… 방송 봤는데요. 그거 보고 반성했는데요.”

“……아하. 여기에…… 우리 상담심리학계의 샛별에게 감화된 청년이 있군요? 그래요. 그런 케이스도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정신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그런 말을 해서야 쓰나. 쌓이기만 하는 스트레스는 결국 표출돼요. 악플이 아니라면 다른 쪽으로 나오겠지.”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Neutralization이 있었는데요.”

Neutralization. 중화.

스트레스로 인해 나쁘게 형성된 조건반사를 좋은 기분과 생각을 통해 새로운 조건반사로 이끄는 치유 기전.

그 말에 이용덕이 침음을 내뱉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표정을 지키지 못했다.

“음. 흠. 하하, 재밌네요. 아주 좋은 케이스가 있었던 모양이야. 하지만 특별한 사례 하나가 실수를 정당화해주지는 않습니다. 봐요. 여기 안에…… 이 박대민 씨 방송을 보신 분?”

열두 명이 손을 들었다.

300석 정도 되는 객석을 꽉 채운 청강생 중 열두 명인 것이니, 내 예상보다는 좀 더 많은 인원이었다.

아무래도 정신의학과 심리학이 밀접한 까닭이겠지.

그들을 향해서, 이용덕이 애써 의기양양한 투로 물었다.

“이중에서 내가 악플을 썼거나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 하시는 분들만 계속 손을 들어볼까요?”

세 명이 팔을 내렸다.

집중된 이목에 나머지 역시 꽤 고민하는 기색이었지만, 끝끝내 손을 내리지는 않았다.

“좋아요. 그럼 물어볼게요. 이중에서 대민 씨 방송을 보고 나서 악플이라는 행위를 후회하거나, 중화를 느끼신 분만 남아볼까? 아마 몇 분 안 될 텐데…… 어…….”

여전히 고민하는 기색은 역력하다.

그러나 9인 중 누구도 손을 내리지 않았다.

객석 곳곳에 솟아난 복수의 손이 깃발처럼 하늘거린다……

그들 중 한 명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방송 본 사람들은 거의 그럴걸요!”

“……왜, 거의 그렇다는 거죠?”

“꼰마님…… 저기, 박대민님이 좀 그렇거든요. 잘생기고 멋있고 좀…… 그래서, 전공은 다르지만, 제 롤모델입니다! 이제 악플 안 달겠습니다! 그런 거 안 해도 괜찮아요. 박대민님 방송 보면 스트레스…… 방망이 다 날아가거든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내가 뭐라고.

내 방송을 본 것만으로 사회의 방망이들을 걷어낼 수 있었다는 건, 정말 말도 되지 않는 일인데.

하지만 그 이야기에 반박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내 방송 시청자들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서 날 처음 봤을 장년층조차 그럴 만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중 일부가 장난스레 외치기도 했다.

“방송 못 봤지만, 잘하신 것 같은데요!”

“방망이 얘기 좋았어요!”

“방송 한번 찾아볼게요!”

이용덕만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딱딱한 표정이었다.

내 얼굴 역시 그와 비슷하겠지.

하지만…… 이건 분명한 승기였다.

당장 이용덕을 쓰러뜨릴 수도 있을.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내 눈앞에는 진갑수 대표가 서 있었다.

……이용덕은 분명 편협한 모리배다.

그를 굴복시키는 일은 NBSC의 에픽퀘스트의 달성목표.

그러니 약점을 보인 순간 몰아쳐서 굴복하게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일 터였다.

아무리 밀접하다 해도 정신의학과 심리학은 별개의 학문이니, 한효준의 비호를 받는 내게 해코지를 하지도 못하리라.

그렇지만, 나는 분명 그로부터 생각지 못한 것을 배웠다.

적어도 이용덕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는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아 언변에 걸맞은 학식까지 갖추게 된, 능력 면에서는 존중해 마땅한 인물이었다.

그런 이에게 치욕을 안겨주는 것이 옳은 일일까.

제2의 진갑수를 만들어도 되는 것인가…….

“교수님. 민망한 일이지만, 이렇게 생각해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제가 짧은 생각으로 움직였던 점에 대해서는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뜻을 굽히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약간의 소통만으로도 그들이 사회의 방망이를 쳐낼 수 있게 되리라고,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교수님과 나눈 이 대담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 길에…… 교수님께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교수님께 비하면 말학이라는 말도 부족하겠죠. 배우겠습니다.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들을 향해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그러니…… 지켜봐주십쇼. 누구도 환자가 아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궁지에 몰린 쥐에게 퇴로를 열어준다.

여전히 굳은 얼굴 위로, 이용덕이 웃음을 머금었다.

연기임에 분명한 미소였다.

“거참. 누구도 환자가 아니면 나는 뭘 먹고 살까요?”

“……하하.”

“아무튼, 즐거웠어요. 역시 한효준 교수님이 칭찬할 만한 인재야. 자, 테스트는 끝입니다. 앞으로도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테스트라는 말은, 내 화해의 제스처를 받아들인 신호.

그렇지만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는 표정은 결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언변일 뿐.

그와의 악연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듯했다.

교수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청강생들이 내게 박수갈채를 안겨줬다.

선의의 학술교류에 감동한 듯한 얼굴들.

일부는 수업 중임에도 슬금슬금 다가와 악수를 요청했다.

이용덕의 질문에 손을 들었던 12인이었다.

“꼰마님, 진짜 대박. 여기서 뵐 줄 몰랐어요. 대존잘!”

“공부하시려고 강연도 다니시는 거죠? 감동입니당.”

“방금 완전 멋있었어요. 교수님 데꿀멍, 히히.”

……정말 민망한 이야기들이지만.

희망을 품게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저들이다.

저들이 내 어깨 위의 산이며, 두 손의 힘이며, 꿈이다.

내가 만든 변화이자 내가 추구할 길의 끝이다.

물론, 내가 만들었다는 생각은 자만이겠지.

92에 달하는 ‘관계’ 덕분에 많은 이들을 감화시킬 수 있었을 뿐, 내가 악플러들에게까지 좋은 상담사였던 건 아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방송을 진행하며 그들을 규정짓고 단정하고 비난했다.

NBSC가 아니었다면, 불특정다수의 심리에 억눌린 공격욕구를 얹어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가 좀 더 공부하고, 배려하고, 바르게 볼 수 있다면.

NBSC의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해 내 영향력을 선한 일에 사용할 수 있다면.

세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강연이 끝난 뒤엔 곧바로 연건 캠퍼스를 벗어났다.

이용덕과의 설전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비록 조력에 의한 승리라서 무시된 것인지 퀘스트는 달성되지 않았지만, 퀘스트 보상보다도 소중한 것을 깨달았다.

이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러니, 실천을 준비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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